Hunter Club RAW - chapter (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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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7# 사라진 마녀
“……!”
차분히 자리에 앉아 있던 노구덕은 자기도 모르게 테이블을 걷어차며 벌떡 일어섰다. 뒤로 넘어간 테이블이 우당탕탕 시끄러운 소음을 냈지만, 그쪽에 눈길을 주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데모나가… 사라졌다고? 지현이는? 소피아 너는 뭘 하고 있었어?”
“…죄송합니다.”
소피아는 노구덕의 호된 질책에 눈을 질끈 감으며 머리를 숙였다. 그러나 꼭 그녀를 탓할 수만은 없었다. 노구덕이 소피아에게 데모나의 감시를 명하긴 했으나, 실제 소피아가 데모나에게 붙어 있는 시간의 대부분은 그녀와 한 조를 이루어 바이론의 행적을 쫓아 출타를 했을 때였지, 평소 클럽에 머물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그 점을 상기했는지, 두 눈으로 불 같은 광채를 뿜어내며 진노하던 노구덕은 금세 이성을 되찾았다.
현실적으로 많은 업무량을 소화하는 소피아가 24시간 데모나를 감시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데모나가 연구를 빌미로 방에 칩거하면 감시할 명분이 없기도 했고. 대신 평소에는 거의 박지현이 그 옆에 붙어 있었다.
노구덕이 그 점을 꼬집어 캐묻자, 소피아는 얼른 고개를 들어 대답했다.
“박지현 헌터는… 현재 혼수상태에 빠졌어요. 모종의 주술에 당한 것 같은데…… 아직 원인을 파악하지 못했어요.”
“그럼 정말 데모나, 그 녀석이…?”
“네…. 그럴 가능성이 높겠죠….”
주술에 의한 혼수, 사라진 데모나. 너무도 암울하게 들어맞는 정황에, 노구덕은 깊은 침음을 삼켰다.
“언제 사라진 거지? 이걸 아는 사람은?”
“아마 두 시간 정도예요. 제가 가장 먼저 발견했으니 달리 아는 사람은 없고요.”
“제가 뒤를 쫓을게요!”
노구덕이 옆을 돌아보자, 결연히 입술을 앙다문 임유진의 얼굴이 보였다.
“두 시간이라면 그리 늦지 않았어요. 소율이와 나타샤 씨를 데리고 뒤를 쫓는다면 충분히 따라잡을 수 있을 거예요.”
“…좋아. 이걸 가져가도록 해.”
그가 건넨 것은 추적 주문이 걸려 있는 쇠가락지였다. 이 추적 주문은 소피아가 데모나와 동행하는 동안 그녀 모르게 걸어놓은 주문이었다. 만일의 경우에 대비한 보험이었는데, 현상황에 무척이나 요긴하게 쓰일 수 있는 물건이었다.
받아든 쇠가락지에 마력을 불어넣은 임유진은 깊게 가라앉은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아직… 희미하게나마 데모나의 존재가 느껴져요. 서둘러야겠어요. 그럼, 다녀올게요.”
말을 마친 임유진은 전광석화 같은 움직임으로 집무실을 빠져나갔다. 일단 그녀가 나선 이상, 제아무리 상대가 데모나라 할지라도 기대를 걸어볼 여지는 있으리라. 게다가 추종에 능한 나타샤와 신소율까지 동행으로 나설 테니 예상외로 쉽게 붙잡을 가능성도 있었다.
잠시 거기까지 생각이 미친 노구덕은 슬며시 고개를 저었다.
“아니… 그 주도면밀한 녀석이 그리 쉽게 잡혀주진 않겠지. 그런데… 데모나가 왜 이 시점에서 사라진 거지?”
그는 섣불리 ‘배신’이라는 단어를 입에 담지 않았다. 함부로 그런 말을 하기에는… 함께 한 지난 세월이 너무 길었다. 또한, 데모나는 아이리스의 그 누구보다도 공헌도가 큰 인물이지 않던가.
우선은, 그녀가 왜 사라졌는지 생각해 볼 문제였다.
데모나는 의식을 잃은 아주카와 영상수정을 훔쳐 달아났다. 그 둘은 모두 이번 선거전에서 그의 비장의 한 수가 되어줄 강력한 히든 카드였다. 사용하기에 따라선 마티아스를 끌어내릴 수도 있는 결정적 증거를 가지고 도망쳤다는 것은, 어떤 식으로든 마티아스와 관계되어 있을 가능성이 높았다.
“그녀가 비밀리에 마티아스와 접촉한 것은 아닐까요?”
“이제 와서? 마티아스쪽에 붙으려고 했으면 더 좋은 기회가 얼마든지 있었을 텐데.”
“…그렇긴 하죠.”
‘철의 동맹’ 초창기 시절, 마티아스 산하에서 빠져나와 그와 한창 대립각을 세울 시기… 만약 그때 데모나가 배신을 했더라면 지금의 레그나토르도 없었을 터. 아니, 그리 멀리 갈 것도 없이 데모나가 없었더라면 애초부터 아이리스가 이처럼 크지도 못했을 것이다.
“저는 만약 그녀가 배신을 한다면, 먼저 주인님을 노릴 거라 생각했는데요….”
“흐음….”
노구덕 역시 소피아와 같은 생각이었다. 항시 데모나의 배신을 염두에 두고 있었던 만큼, 그는 만약 데모나가 정말로 돌아선다면 무엇보다 그에게 이식해 둔 스카우터의 눈이나 히드라의 핵을 노릴 거라 예상하고 있었다.
‘그런데 아주카를 노릴 줄이야… 완전히 허를 찔렸군.’
작게 혀를 찬 노구덕은 지그시 시선을 돌려, 심려를 감추지 못하고 있는 소피아를 돌아보았다.
“지금은… 유진이를 기다리자. 그리고 소피아, 너는 이 일이 밖에 새 나가지 않도록 단속하도록 하고.”
“네, 주인님.”
고개를 숙인 소피아가 조용히 물러가자, 홀로 텅 빈 집무실 안에 남게 된 노구덕은 창밖의 밤하늘을 바라보며 차분히 생각에 잠겼다.
그리고 몇 시간이 흘러 늦은 밤이 되었을 때, 데모나의 종적을 쫓아 나섰던 임유진 일행이 복귀했다. 결과는 실패. 씁쓸한 기색으로 돌아온 임유진이 가지고 온 것은, 추적 주문이 걸려 있는 귀걸이 한 쌍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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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뒤, 칼립스 전역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아주카의 피살 사건은 하나의 정보가 또 공개되면서 갑자기 급물살을 타기 시작했다. 식견이 있는 자라면 거의 모두가 예상하고 있었던 바로 그 국면으로.
“그룸달 님! 실종된 유토 헌터에게 삼십만 골드를 건넨 정황이 포착되었는데, 한 마디만 해주시죠!”
“…나는 모르는 일입니다.”
“블레이즈 오너의 부인 명의로 된 차명계좌가 발견되었다는데요! 그 계좌에 최근 입금된 삼십만 골드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아, 글쎄! 나는 모르는 일이라고!”
“유토 헌터를 사주해서 블레이즈 오너를 해쳤다는 의혹에 대해선…….”
“이런, 개새끼가! 씨발 찍지 마! 성질이 뻗쳐서 정말! 씨발 찍지 말라고!”
거머리처럼 들러붙는 기자들을 간신히 떼어놓고 자택으로 복귀한 그룸달은, 집무실에 들어서자마자 백발이 성성한 머리카락을 쥐어뜯으며 괴성을 내질렀다.
“으아아아아아아! 유토, 이 찢어 죽여도 시원찮을 새끼!”
와장창!
겉면이 유리로 된 장식장이 내던져진 재떨이에 맞아 산산조각이 났다. 그 외에도 온갖 집기를 때려부수며 난동을 피우던 그룸달은 시뻘겋게 달아오른 얼굴에 땀을 줄줄 흘려대며 숨을 헉헉 몰아쉬었다.
“대체… 어느 놈이지? 마티아스, 그놈인가? 아니면, 리엔더 그놈이야?”
너구리 같이 교활한 마티아스야 말할 것도 없고, 최근 분위기가 좋았던 리엔더도 웃으면서 뒤통수에 칼을 박아 넣을 인간이다. 그 둘 중 하나가 막후에 있는 건 확실한데, 누가 일을 벌였는지 제대로 짐작 가는 게 없었다.
“유토… 그 자식이 날 배신할 줄이야…. 허허… 으허허허허…….”
넝마가 된 소파 위에 털썩 주저앉은 그룸달은 창밖으로 어처구니없는 시선을 내던졌다. 굳게 닫혀 있는 정문 너머로, 아직도 떠나지 않고 하이에나처럼 주위를 맴도는 언론 관계자들이 보였다.
“썩어빠진 들개 같은 놈들……. 간만에 좋은 건수를 잡았다 싶은 거냐?”
잔뜩 분노하여 중얼거리는 그의 말에는 도통 힘이 없었다. 전임 연맹 위원의 추락이라니, 이보다 더 자극적인 기사거리가 있을까?
이번 일로 그의 평판은 땅에 떨어졌다. 물론, 제대로 된 증거는 없었지만, 세간의 의심을 사는 데에는 그럴 듯한 의혹만으로도 충분했다.
의심을 살 만한 정황이라고는 그의 계좌에서 유토의 계좌로 삼십만 골드란 거금이 입금되었다는 것인데, 그는 이 사실에 대해서도 제대로 아는 바가 없었다. 그는 전임 위원답게 수많은 계좌를 가지고 있었고, 각 계좌마다 전담 비서를 따로 두고 관리했다. 그리고 유토에게 입금된 계좌를 관리하고 있던 여비서는… 엊그제 자기 방에서 목을 매단 시체로 발견되었다. 사인은 자살이었다.
여비서의 일도 그랬지만, 유토의 일은 그에게 있어 엄청난 충격이었다. 유토는 그가 막 연맹 위원이 되었을 때부터 그의 그림자로서 활동했던 헌터다. 시간으로 따지면 거의 십 년 동안 그에게 충성을 바쳤던 인물. 그런 이가 배신을 하다니….
그래, 이건 배신이었다. 아무리 봐도 배신이 명백했다. 그는 유토를 아주카에게 보낸 적도 없었고, 그에게 돈을 준 적도 없었다. 욕심 그득한 늙은이인 아주카를 끌어들여 어디에 써 먹는단 말인가? 유토가 독단적으로 그곳에 갔다는 것 자체가 이미 확실한 배반을 의미했다.
십 년 가까이 충성을 바친 수하조차 뒤통수를 쳤는데, 그럼 이제 누굴 믿는단 말인가? 그룸달은 이제 매일 살을 맞대고 사는 처첩조차 믿지 못할 지경이었다. 노이로제에 걸린 듯 시뻘건 눈을 하고 씩씩대는 그의 곁에 아무도 없다는 사실 자체가 이 같은 현실을 방증하고 있었다.
“크으으으웃…! 마티아스! 리엔더! 내가 이대로 곱게 물러날 줄 아느냐?”
그룸달은 부릅뜬 눈에서 시퍼런 독기를 뿜어내며 이를 갈았다. 그러나… 그는 지금까지의 일이 겨우 전초전에 불과했음을 알지 못했다. 이보다 더 지독한 악몽이 스멀스멀 다가와, 어느새 바로 코앞에까지 임박했다는 것을, 전혀 깨닫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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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그룸달이 이를 갈며 절규하고 있는 그 시각, 박장대소를 터뜨리며 축배를 들고 있는 이가 있었다. 그의 이름은 마티아스. 현 칼립스의 연맹 위원이었다.
“후후후…흐하하하하하! 지금쯤 그룸달, 그 늙은이의 표정이 아주 볼만하겠군! 이봐, 내일 매스컴에 뿌릴 보도자료는 준비 됐나?”
“예. 차질 없이 준비했습니다. 예정대로 새벽녘에 바로 터뜨릴까요?”
“그래, 크게 터뜨려버려. 제목은… 음, 이건 어떤가? ‘오키도의 끔찍한 대재앙! 칼립스에서 되살아나다!’ 요런 느낌을 주게끔 말이야…. 아, 그리고 ‘그룸달 전임 위원은 오키도의 참사와 무슨 관련이 있는 것일까?’하는 의혹제기도 잊지 말라고 해.”
“명심하겠습니다.”
수하의 답변을 들은 마티아스는 흡족한 미소를 띠며 와인을 홀짝거렸다. 안 그래도 값비싼 고급 와인의 향취가 목구멍을 쌉싸름하게 휘저으며 달콤한 끝내음을 풍겼다.
“오늘 따라 술이 술술 잘 넘어가는군.”
이제 내일이면 또다시 도시 전체가 아수라장이 될 것이다. ‘인간의 카름화’는 딕툼에서 발견된 카르믹스톤과 오키도의 대참사 이후 스퀘어에서 가장 뜨겁게 떠오른 감자였다. 현장에서 발견된 괴물의 잔해가 카름으로 변한 유토의 것이라는 의혹이 제기되면, 오랫동안 그를 수하로 두고 있던 그룸달도 혐의를 피해가진 못할 터.
날카롭게 곤두선 연맹의 칼날이 어디로 향할지, 웃으며 지켜보는 것도 흥미로운 구경이 되겠지. 그룸달의 아연실색한 낯짝을 상상한 마티아스는 한참이나 낄낄거렸다.
“그룸달, 그 늙은이도 이젠 끝장이다.”
원래 정치라는 게 이런 것이다. 이 정계란 곳은 아무리 오랫동안 칼립스를 주름잡았던 권력가라고 하더라도, 갑작스런 대형 스캔들 한 방에 나락으로 떨어지고 마는 아비규환의 생태계였다. 그런 지옥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재주가 있어야 대권을 손에 쥘 수 있는 것이다.
이제 그룸달이 나가떨어지면, 최약체인 리엔더를 요리하는 거야 손쉬운 일이었다. 지금까지 팽팽한 삼자체제가 유지될 수 있었던 것은 말 그대로 ‘삼자(三者)’였기 때문. 그룸달이 파멸하고, 세력의 추가 급격히 일방적으로 기울기 시작하면 더 이상 균형은 유지될 수 없었다.
그룸달의 잔당을 흡수하고 나면, 고만고만한 리엔더나, 노구덕이 이끌고 있는 레그나토르 같은 잔챙이들은 입김만 불어도 추풍낙엽처럼 나가떨어질 터다.
“슬슬 이 지겨운 다툼도 종지부를 찍을 때다. 그리 되면 칼립스의 권좌는 영구히 나의 것이 되는 것이야.”
마티아스는 더 이상 칼립스의 정상을 보고 있지 않았다. 그가 원하는 것은 대도시마다 널려 있는 위원직 따위가 아니라, 그보다 더한 연맹의 핵심이었다. 과거의 구왕조, 하늘 밖의 하늘이라 여겨지고 있는 위원회와 직접 선이 맞닿아 있는…….
그들과 같은 눈높이가 되기 전까진… 이런 곳에서 지체할 시간 따위는 없었다.
그때, 문이 열리며 그의 직속 수하 한 명이 방에 들어왔다.
“주인님. 그에게서 연락이 왔습니다. 물건이 약속된 장소에 도착할 예정이라고 합니다.”
“그래? 수배범 주제에 약속은 잘 지키는군.”
“경무대 애들을 그쪽으로 보내. 그리고 기회가 되면… 슥삭. 알고 있겠지? 죽음보다 더한 신뢰는 없으니까.”
사내에게 작게 손짓한 마티아스는 목을 긋는 시늉을 해 보이며 음흉히 입매를 비틀었다.
============================ 작품 후기 ============================
재밌게 보셨다면 추천/코멘 부탁드립니다.
데모나는 구더기를 배신했을까요? 안했을까요? 아니, 도망간 시점에서 이미 배신인가..? 하여튼 대면은 다음편에!
월병인 / 혁명이다!
狂0for0the0fiction / 코멘트 감사합니다! 아이디 보고 깜짝 ㅋㅋㅋ
cxz778 / 코멘트 감사합니다~!
ㅂㅈㄱㄷㅂ241 / 여기까지 오는데 딱 8개월이 걸렸으니 .. 그 정도만 하면 되겠군요! 600편 ㅋㅋㅋ
너굴2i / 배신일까요? 아닐까요? 넌센스…
감자껍질 / 그래도 나름 공들인 캐릭이라 쉽게 죽이진 못합니다 ㅠㅠ
향향공주 / 곗돈 들고 튀는 데모나 ㅋㅋㅋㅋㅋ 왠지 웃기네요
김도리131 / 오오오오! 갑니다! 연참!
hohokoya1 / 이걸 반란이라고 봐야 할지.. 다음 편에 계속!
†아마테라스† / 아쉽게도 구더기가 시킨게 아니었답니다 ㅠㅠ
때구니™ / 으흠으흠 쉽게 죽진 않겠죠? 전후사정은 대충 다음편에..?
14C2A58H2 / 엥? 갑자기 왜 유혹을 하는 시나리오가…???
호야[虎夜] / 데모나는 오크페티쉬인가요… 오타 수정했습니다
트릭스타 / 일단은.. 데모나의 독단입니다..
dlftjsgkdl / 그렇게 다 죽었다고 한다..
북치네 / 뭘 정하셨다는… 거죠?
신수[神手] / 는… 다음화에서만 살짝…
아토므스크 / 신랄한 독설..?
은신설야 / 마지막 뒷부분이 심히 마음에 걸리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