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unter Club RAW - chapter (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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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8# 파국(破局)
78# 파국(破局)
닷새… 노구덕과 데모나가 실종된 지 어느새 닷새가 지났다. 그동안 칼립스에서는 한바탕 커다란 폭풍우가 몰려와 온도시를 들쑤시고 지나간 뒤였다.
시발점은 현 의원인 마티아스가 제기한 의혹이었다.
‘유토의 시체는 어디에도 없고, 그 자리에 카름의 시체가 있다면, 혹시 그 카름이 헌터 유토가 변한 게 아닐까?’
‘우리는 2년 전의 일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2년 전에 일어났던 오키도의 대재앙, 그 역시 인간이 카름화한 것에서부터 비롯되지 않았는가?’
‘카름을 인공적인 수단으로 강화시켰던 카르믹스톤, 그리고 오키도의 대참사… 정체를 알 수 없는 테러범들의 수법은 점점 정교하고, 교묘해지고 있다. 아주카 오너의 피살도 이와 관련이 없으리란 법은 없다.’
말 자체만 놓고 보자면 딱히 누군가를 도마 위에 올려놓고 의심했다고 볼 수는 없었다. 그러나, 알 만한 사람들은 모두 알았다. 마티아스가 누굴 겨냥해서 이런 발언을 했는지.
마티아스의 정적이자, 칼립스의 위원 선거에서 두 번째 지지율을 얻고 있는 그룸달…. 가뜩이나 차명계좌의 존재가 드러나면서 난처한 입장에 빠진 그는, 마티아스의 그 발언으로 돌이킬 수 없는 타격을 받고 말았다.
‘그룸달이 테러조직을 사주해 마티아스의 세력을 약화시키려고 했다.’
이런 근원지를 알 수 없는 괴소문이 칼립스 시민들 사이에서 떠돌았다. 그럴듯한 증거는 없었지만, 정황이 너무나도 뚜렷하게 드러나고 있으니 충분히 해봄직한 의심이었다.
사람들이란 본래 남을 헐뜯고 비방하기를 좋아한다. 발 없는 말이 천리를 간다고, 처음에는 뜬구름을 잡는 것 같았던 괴소문은 점차 입에서 입을 거침에 따라 더욱 살이 올랐다. 그리고 나중에는 마치 그룸달이 테러조직의 숨겨진 수장, 혹은 후원자라는 소문까지 덧붙여졌다.
태산처럼 몸집을 부풀린 소문은 마침내 연맹 내부에까지 흘러 들어갔다. 단순한 소문이라고 해도 그 주제는 연맹에서조차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는 민감한 사안. 소문을 접한 연맹에서는 곧바로 오라클 백전대를 출동시켰고, 자택에서 두문불출하고 있던 그룸달의 신병을 구속했다.
오랫동안 마티아스와 대립각을 세웠던 칼립스 정계의 거물, 그룸달이 나락으로 떨어지는 순간이었다.
그룸달의 정치생명은 그날로 끝나버렸다. 입증된 혐의도 없었고, 형식 또한 일반적인 구속 수사에 불과할 뿐이었지만… 행동 주체가 자그마치 그 악명 높은 오라클이었다. 없는 죄도 만들어낸다는 그 오라클. 이 일이 그룸달의 지지자들에게 미치는 반향은 엄청났다.
당장 그룸달 일파를 지탱하고 있던 빅클럽의 오너들이 줄줄이 지지 철회선언을 하며 마티아스의 밑으로 들어갔다. 유죄가 될지도 모르는 그룸달의 밑에 있다가 괜히 날벼락을 맞느니, 자존심과 체면을 버려서라도 우선 살 길을 도모한 것이다.
머리가 잘려나갔으니, 꼬리들이라고 별 수 있나. 주축을 맡고 있던 빅클럽의 오너들이 이탈하자, 굳건했던 그룸달 일파는 파도에 휩쓸린 모래성처럼 산산이 와해되기 시작했다. 그들 중 소수는 리엔더나 노구덕의 레그나토르에 합류하기도 했지만, 대부분의 잔당들이 선택한 쪽은 연임이 거의 확실시되는 마티아스 일파였다.
마티아스가 7, 리엔더와 레그나토르의 지분을 합해 3…. 이제 칼립스의 세력구도는 어린아이라도 결과를 예상할 수 있을 만큼 완전히 기울어졌다. 일각에서는 마티아스의 지지자들이 벌써부터 축배를 들고 있다는 소문도 들릴 정도였다.
겨우 마티아스의 말 몇 마디. 그의 세 치 혀가 이뤄낸 쾌거였다.
상황이 이토록 급박하게 돌아가는데도, 아이리스 측에서는 어떤 대응이나 반응도 내놓지 않고 있었다. 꼭 겨울잠을 자는 곰처럼 무신경한 그 태도에, 같은 동맹에 속해 있는 레그나토르의 일원들 사이에서도 이러다 선거에서 참패를 하는 게 아니냐는 불길한 전망이 거론되고 있는 상황이었다.
…허나 그것은 오로지 대외적으로 비쳐지는 모습일 뿐이었다. 클럽 아이리스의 핵심 인사들은 이 불온한 긴장감을 누구보다도 더 절실히 실감하고 있었다.
노구덕의 실종. 아이리스가 적극적인 대응을 하지 못하고 있는 원인이었다.
노구덕이 아무런 말도 없이 사라진지 5일째. 표면적으로는 철저히 그의 실종을 비밀로 하고 있었지만, 이제 그것도 슬슬 한계에 다다르고 있었다. 노구덕이 위원 선거에 입후한 만큼 그에 대한 세간의 관심도는 크게 올라간 상태. 게다가 그룸달의 이탈로 사실상 후보자가 세 명으로 좁혀진 마당이다. 언론사의 접근 요청이 시도 때도 없이 쇄도하는 상황에서, 언제까지나 비밀을 유지할 수 있으리란 보장은 없었다.
그나마 임유진과 소피아가 능숙히 대처하고 있는 덕분에 큰 의심은 사지 않고 있었으나, 이런 사정이 지속되어 엿새, 이레가 넘도록 노구덕이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면… 다른 일파에 어떤 빌미를 주게 될지 모를 일이었다.
“휘유우우우…….”
바쁘게 서류더미를 처리하고 있던 임유진은 힐끗 시선을 돌렸다. 어느 틈에 들어왔는지, 꽤나 피로한 얼굴을 하고 있는 소피아가 늘어지게 한숨을 내쉬고 있는 것이 보였다.
“소피아, 무슨 일이라도 있니?”
“일이요? 일이야 많죠. 방금 전에도 인터뷰 요청을 캔슬하고 왔거든요.”
“그래…?”
“언니, 이제 이쪽에서도 슬슬 압박이 들어오고 있어요. 방금 전의 그 기자도 그렇고… 지지율이 가장 떨어지는 신참 후보 주제에 너무 콧대가 높다는 거예요. 신비주의도 정도껏 하라, 이 말이죠.”
일개 기자가 저런 말을 소피아의 면전에서 대놓고 했을 리는 없고, 아마 퇴짜를 맞은 기자가 돌아가는 길에 불평한 것을 몰래 엿들은 모양이었다.
“불만을 가진 언론인들을 중심으로 슬슬 나쁜 기류가 돌고 있는 것 같아요. 선거가 겨우 한 달 남짓 남았는데… 이런 건 좋지 않아요. 어느 찌라시에서는 벌써부터 주인님을 ‘불통왕’이라 욕하는 기사를 썼다고요. 바로 내려버리긴 했지만요.”
“후우우…. 알고 있어. 나도 좀 전에 동맹에 속한 오너들로부터 성화를 듣고 왔으니까.”
임유진도 답답하기는 마찬가지였는지, 그녀는 드물게도 거센 한숨을 내뱉었다. 노구덕이 칩거하고 있다고 알려진지 겨우 5일째. 그런데도 그따위 찌라시가 돌 정도면, 나머지 세력에서 작정하고 물밑작업에 들어갔단 뜻이었다.
선거 날짜는 점점 다가오고, 반대 진영은 이토록 활발히 움직이고 있는데도 이쪽은 가장 중요한 사령탑이 공석이다. 그녀나 소피아가 힘을 내고 있다고 해도 정작 주인공이 없으면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남들은 다 수장이 중심이 되어 열심히 선거유세를 펼치고 있는데(실제로는 마티아스의 독무대에 가까웠지만), 이쪽은 출마한 당사자도 없이 빈껍데기만 내보내면, 그게 대외적으로 좋게 보이겠는가?
실상 리엔더 측은 전의를 상실했고, 마티아스의 지지자들이 공공연하게 연임을 입에 담고 있는 상황이기는 하나… 뭐라도 해 보는 것과, 아무것도 해 보지 못하고 패하는 것은 그 모양새부터가 다르지 않은가.
어쩌면 동맹의 근간이 뒤흔들릴 수도 있는 일이다. 그러니 임유진의 미간에 잡힌 주름이 더욱 깊어질 수밖에.
“대체 이이는 어딜 가신 건지…….”
“핀에게 수색을 부탁하고는 있지만… 그 뒤로 소식이 없네요….”
소피아는 시무룩하게 귀를 늘어뜨리며 임유진의 말을 받았다.
‘그 뒤’란, 5일 전, 칼립스의 외진 성벽 위에서 괴인들의 시체가 무더기로 발견된 사건을 뜻했다. 바로 그 이후에 그룸달의 구속이란 초유의 사태가 터져버려 금세 묻혀 버려긴 했으나, 당시 핀(바람의 정령)을 통해 그 현장을 둘러보았던 소피아는 그 사건이 노구덕과 관련 있다는 것을 확신했다.
넝마처럼 너덜너덜해진 시체들의 상흔은 노구덕 특유의 투박한 전투술로 인한 것이었고, 뭣보다 피해자들이 벌레교단의 인물들이었다. 이 도시에서 벌레교단의 괴인들이 습격을 할 만한 사람이 달리 노구덕 말고 누가 있겠는가.
소피아는 입에 문 사탕 파이프를 질겅질겅 깨물며 말했다.
“정황을 보면 아마 데모나 씨가 주인님을 따로 불러냈을 가능성이 높아요.”
“그렇겠지…. 데모나는 마녀회의 유적에서도 그이를 금방 찾아냈다고 하니까. 블러디미러라는 주술로 신경이 연결되어 있다고 했어.”
“그리고 그 과정에서 주인님은 습격을 받았을 테고요. 데모나 씨가 사주한 일인지는 모르겠지만요.”
“그건… 아마 아닐 거야.”
소피아는 말없이 임유진과 눈을 맞췄다.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는요?’라고 묻는 듯한 눈빛이었다. 그녀의 눈을 마주한 임유진은 핏기 없는 입술을 달싹이며 입을 열었다.
“그냥, 내 직감이야. 데모나는 그렇게 번거롭게 일을 벌일 애가 아니라고 생각해. 그 애 성격상… 아마도, 그이와 직접 교섭을 벌이지 않았을까?”
“후우움…….”
의미심장한 콧소리를 낸 소피아는 느릿하게 고개를 주억였다. 임유진의 의견에 완전히 동의하는 건 아니었지만, 헌터들 중 누구보다 데모나와 친분이 두터운 임유진의 얘기다. 딱히 부정할 생각은 없었다.
“그럼… 다시 원점이네요. 역시, 추적대를 편성해야 할까요? 마침 어제 신소율 헌터와 나타샤 헌터가 탐사에서 복귀했으니, 가용인원은 있어요.”
“그래야 할까…. 아직 별달리 느껴지는 건 없니?”
“네에. 무소식이 희소식이라지만, 그래도 이건 좀 불안하네요….”
재차 눈을 맞춘 두 사람은 동시에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도 그녀들이 아직 여유를 잃지 않은 건, 노구덕과 정신적으로 강하게 연결되어 있는 소피아가 별다른 이상징후를 느끼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만약 그에게 실질적인 위협이 닥쳤다면 다른 누구보다 소피아가 먼저 알아차렸을 테니까.
하지만 그것도 여기까지였다. 벌서 5일째나 소식이 없으니, 이건 일정을 무리하게 조절해서라도 본격적인 수색을 벌여야 할 때였다.
“휴우, 가급적 이쪽의 약세를 보이지 않으려고 했는데… 이러면 어쩔 수 없겠어. 내가 직접 나갈게. 소피아, 너는 기자들이 냄새를 맡지 않게 주의해줘. 주력 헌터들이 한꺼번에 빠져나가면 의심을 살 수밖에 없을 테니까…….”
“네. 그럴게요. 인선은 어떻게 하실 건데요?”
“우선 소율이를…….”
“언니이! 유진 언니이이!”
탕!
양반은 못 되는 것인지, 임유진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신소율이 문을 박차고 들이닥쳤다. 어제 밤늦게 탐사에 복귀한 탓에 늦잠을 잔 것인지, 잠옷 바람으로 출두한 신소율의 눈에는 굵직한 눈곱이 덕지덕지 끼어 있었다.
“소율아, 여자애가 그게 꼴이 뭐니? 적어도 세안 정도는…….”
살며시 눈살을 찌푸린 임유진이 신소율의 남부끄러운 행색을 지적했지만, 신소율은 들은 체도 하지 않고 수선을 떨었다.
“지금 세안이 문제가 아니라고요! 방금 아침 신문을 받았는데, 아주 난리가 났단 말예요!”
“…난리?”
임유진과 소피아는 서로를 마주보았다. 아침 신문. 그리고 난리. 단어들 하나하나가 예사롭지 않은 느낌을 풍기고 있었다.
“그룸달이, 그룸달이 자살했대요!”
“뭐어?”
신소율이 숨이 넘어갈 것처럼 헐떡거리며 들이민 신문에는, 과연 그녀의 말대로 그룸달의 자살에 관한 기사가 대문짝만하게 실려 있었다.
-전임 연맹위원, 구속 수사를 마치고 자택에서 사체로 발견되다! 사인은 자살로 추정…….
“그리고 이거, 이거 좀 봐요!”
신소율은 두 사람이 미처 관련 기사를 읽어 내리기도 전에 다음 2면을 가리켰다. 그녀의 손가락이 짚고 있는 곳에는 그룸달에 관한 기사에 뒤지지 않을 정도로 커다란 헤드라인이 걸려 있었다.
얼떨떨하게 그 손길을 따라 헤드라인의 글자를 읽어 가던 임유진과 소피아의 동공이 급격히 커다래졌다. 임유진은 신문 끝자락을 찢어버릴 듯 와락 움켜쥐며 짧은 경악성을 내질렀다.
“이건…!”
“어떻게….”
두 사람의 시선이 머문 지면에는 데모나와 노구덕의 얼굴이 큼지막하게 인쇄되어 있는 상태였다. 그리고 그 아래에는 자극적인 소제목과 함께 비난조의 기사가 장문으로 실려 있었다.
-클럽 아이리스의 마녀, 알고 보니 최악의 수배범과 내밀한 관계? 현재 추적에 나선 경무대에서는 동부 지구의 수배범 바이론과 아이리스의 헌터 데모나가 같은 현장에 있던 것을 포착…….
-위원 후보자님은 범죄자와 사랑의 도피 중? 최근까지 행방이 묘연한 아이리스 오너, 알고 보니 뒤에서 마녀의 도주행각을 돕고 있다는 의혹이 제기돼……. 만약 의혹이 사실이라면, 후보자로서 자질이 의심되지 않을 수 없는 상황….
-제 2의 그룸달 사건이 도래? 마티아스 위원, 이에 관해 오늘 정오 기자회견을 열 예정…….
엄청난 폭로전에 말을 잃어버린 임유진은 무심코 창밖으로 시선을 내던졌다. 그러자 벌써부터 냄새를 맡았는지, 저 멀리서부터 까맣게 몰려들고 있는 인파가 보였다.
사태는… 점점 진퇴양난으로 치닫고 있었다.
============================ 작품 후기 ============================
재밌게 보셨다면 추천/코멘 부탁드립니다.
비도 오는데 감기 조심하세요… 저녁화는 올릴 수 있을지 없을지 모르겠습니다..
asd메이지 / 구더기의 충왕각인 중 작중 언급된 것은 4개지요. 아직 5번째는 이름이 밝혀지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아직 먼치킨이라고 하기엔… 센놈들이 너무 많네요
은신설야 / 소율이랑 유진이도 귀여워해주세요!
NineBreaker / 사랑(?)이냐, 가족이냐 사이에서 갈등하는 줄리엣..?
향향공주 / 동물교단이라고 하기엔 뭣하지만 비슷한 드루이드가 있죠. 벌레교단도 드루이드의 일파니까요. 뭔가 뜨끔한데.. 왜냐면 다음 적들은 이와 관련된 단체가.. 어흠.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호야[虎夜] / 10년만 기다려주시지요… 저도 벌써 전자발찌를 차고 싶지는 않습니다..
가식적썩소 / 칼립스 내에서는 짱짱맨? 전국구로 가면… 글쎄요..
니오그타 / 에보커님이셨군요! 필살기가 있기는 있습니다! 아직은 비밀이지만요!
우낄푸핫 / 그냥 쉽게 치고박고치고박고 하다 마티아스쪽에서 아주 강렬한 펀치를 먹였다고 생각하시면 되겠습니다.
달음누리 / 너무 통수를 좋아하시는 것 같아!
아토므스크 / 아.. 뒷… 참고하겠습니다..
포식활자 / 뭐 어차피 다 쳐 없애야 하긴 하니까요.. 어떻게 쳐 없앨지는 다르겠지만..
북치네 / 정치음모물이 취향이신듯????
김도리131 / 그리 되면 여론이 여러모로 좋지 않을 것 같네요.. 하하..
†아마테라스† / 뭐 쟤네들은 졸개 수준이니까요. 그나마 추기경급이 왔습니다만, 이제 구더기한테는 안되는 수준이라..
kred / 아마 벌레교단은 이 에피소드 이후로 한동안 조용할 듯합니다. 그리고 구더기 다음 상대는 벌레교단이 아니라 다른 단체로.. 정해져 있습니다!
월병인 / 아직은 서부 중에서도 대도시 칼립스의 정쟁에 불과하니까요.. 에피소드 끝나면 칼립스 내에 이긴쪽만 남겠죠?
샤르나크 / 어엌 감사히 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