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unter Club RAW - chapter (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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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8# 파국(破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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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립스의 사태가 걷잡을 수 없이 최악으로 치닫는 동안, 노구덕은 그런 사실은 꿈에도 모른 채 데모나의 추적에만 전념하는 중이었다. 하지만 그에게도 추적의 고삐를 늦출 수 없는 나름의 이유가 있었다.
다섯 번째 각인을 새기고, 투기를 다룰 수 있게 되면서 주술적 능력이 비약적으로 향상된 노구덕은 벌레교단 인물들의 기억을 엿볼 수 있는 능력을 지니게 되었다. 같은 심령차력술을 사용하는 만큼, 뇌내 간섭을 통해 하위 개체의 기억을 끄집어내는 방식이었다.
그 결과로… 며칠 전, 칼립스 성벽에서 그를 습격했던 벌레교단의 고위 인사로부터 알아낸 정보는 무척 놀라운 것이었다.
‘벌레교단이 바이론과 데모나를 제거하려 하고 있다니.’
꽤나 오랫동안 긴밀한 협력관계를 유지했던 바이론과 벌레교단의 관계가 마침내 틀어진 것이다. 그것도 놈의 기억이 정확하다면, 이건 벌레교단의 일방적인 배신이었다. 바이론은 이러한 사실을 까맣게 모르고 있었다.
사냥이 끝났으니 사냥개를 삶아먹는다. 그동안 바이론으로부터 만족할 만한 성과를 제공받은 벌레교단은 더 이상 그가 필요 없어졌다. 하지만 가만히 내버려두기엔 바이론은 너무 위험한 인물이었다. 그 가공할 연구적 성과는 물론이거니와, 교단 내부사정에 대해서도 많은 것을 알고 있었다.
그리드의 경우를 떠올려 보면, 그의 제거는 당연한 수순이었다.
‘바이론도 나름대로 대비를 하고 있었겠지. 하지만 시기가 좋지 않다.’
지금 바이론과 데모나 부녀에게 당면한 적은 벌레교단이 아니라 마티아스의 졸개들이었다. 그들을 상대하느라 지칠 대로 지친 상태에서 벌레교단의 병력이 뒤통수를 친다면… 굉장히 위험한 상황에 처할 터.
‘바이론이야 알 바 아니지만, 데모나는 다르지.’
데모나는 장래 아이리스와 그의 앞길에 있어서 없어서는 안 되는 중요한 인물이었다. 유독 그녀에게 과도한 특혜를 몰아주고, 애매한 관계를 두고 보았던 것도, 가급적이면 그녀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는 선에서 동행하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상황이 다르다. 데모나 쪽에서 먼저 화끈하게 한 방을 터뜨려버렸으니, 노구덕도 손 놓고 좌시할 수 없는 입장이 되어버렸다..
이번 일이 어떤 식으로 끝나게 될지는 몰라도, 어찌됐든 데모나는 아이리스에 남는다. 아니, 남게 한다. 그는 필요하다면 데모나를 강제로 취해서라도 아이리스에 붙잡아 둘 작정이었다.
‘흐음?’
정신없이 산길을 내달리던 노구덕은 갑자기 발을 멈추고 근처의 높다란 나무 위로 뛰어올랐다. 활성화된 감각의 그물에 이제껏 접하지 못한 낯선 기척들이 여럿 감지되었기 때문이었다.
잠시 후, 그가 서 있었던 자리에 세 명의 남녀가 나타났다. 나무 위에서 가늘게 뜬 눈으로 그들의 행색을 살피던 노구덕은 미약하게 신음했다.
‘저 문양은… 칼립스 리그에 속한 헌터들이군. 저들이 왜 여기에…? 설마 날 찾으러 왔나?’
너무 멀리까지 달려온 탓에, 아이리스에 연락을 취하지 못한지도 꽤 여러 날이 지났다. 만약 아이리스에서 대대적인 수색을 펼치고 있다면… 거기까지 고려하던 노구덕은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선거를 앞둔 지금, 임유진이나 소피아가 그런 판단을 했을 리 없다. 그럼 대체 저 헌터들은 무슨 목적일까?
마침 노구덕이 서 있던 자리에 당도한 헌터들은 거기서 끊긴 그의 흔적을 두고 서로 의견을 교환하는 중이었다.
“발자국이 여기서 사라졌어.”
“혹시 블링크가 아닐까? 마녀는 블링크를 사용할 줄 안다며? 일단 마력 감지를….”
“잠깐, 잠깐만. 이게 마녀의 발자국이라고? 이건 나보다도 크잖아. 그 여자, 왕발이었어?”
“아니… 보기엔 나보다도 날씬하던데…….”
세 사람의 대화가 잠시 끊겼다. 무심코 발견한 흔적을 뒤쫓아 왔는데, 가만히 생각해 보니 애초 쫓던 대상이 아닌 것 같아 잠시 혼선이 온 것 같았다.
그때였다.
“그럼 이건….”
일행 중 가장 먼저 혼란스런 기색을 지워버린 남자가 무어라 입을 열려고 하는 순간, 그의 뒤에서 거대한 그림자가 뚝 떨어져 내렸다.
“닥트! 피해!”
“어어엇! 깩!”
워낙 창졸지간에 일어난 일이라 미처 반응할 틈이 없었다. 아니, 굳이 기습이 아니었더라도 칼립스 리그에서 겨우 하위권에 처져 있는 남자의 실력으로는 노구덕의 움직임을 읽어내지 못했으리라.
남자의 목덜미를 간단히 수도로 내리쳐 기절시켜버린 노구덕은 황급히 화살과 칼을 겨누고 있는 두 여인을 돌아봤다. 느닷없는 습격에 당황한 기색이 역력하던 두 헌터는 이내 노구덕의 얼굴을 알아보더니 짧은 경악성을 터뜨렸다.
“아, 아이리스 오너?”
“소…소문이 사실이었던 거야? 움직이지 마! 거기서 더 움직이면 바로 쏴버리겠어!”
뾰족한 화살촉을 겨누고 있던 궁수 여인은 노구덕이 슬쩍 한 걸음을 떼자 위협적인 경고성을 발하며 시위를 매긴 손에 힘을 주었다. 허나 노구덕은 팽팽히 당겨진 활시위를 마주하고도 전혀 동요하는 기색이 아니었다.
“미안하군. 우선 이렇게 해야 대화 분위기가 성립할 것 같았거든.”
“대화 분위기? 하! 당신, 같은 헌터를 습격했다는 걸 알고는 있는 거야?”
“습격이라니… 말이 심하군. 가볍게 목을 주물러준 것뿐인데, 그런 것도 습격이라 할 수 있나? 그 증거로 자네들 친구의 몸에는 상처 하나 없다고.”
노구덕은 잘 보라는 듯, 바닥에 쓰러져 있는 남자를 발로 톡톡 건드려보였다. 그러자 정신을 잃고 있는 남자의 헤롱거리는 낯짝이 고스란히 반대편으로 드러나 보였다. 꼴사납게 침을 질질 흘리고 있긴 하지만, 그냥 단순히 기절해 있을 뿐, 생명에는 별 지장이 없는 것 같았다.
“뭐야… 기절한 거였어?”
“휴우…….”
그가 꼼짝없이 죽은 줄로만 알고 있던 두 여인들은 안도의 한숨을 푹푹 내쉬면서도, 날카롭게 곤두섰던 처음에 비해 다소 맥이 빠진 듯한 모습이었다.
“과격한 방법을 쓴 건 사과하지. 나도 이상한 놈들과 싸우고 있던 중이라,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어.”
“무슨 대화를 하고 싶다는 거죠? 당신, 지금 상황이 어떤지 알고는 있는 건가요?”
노구덕이 넝마가 된 옷을 들춰 보이며 난처한 듯 말하자, 두 여인의 경계심도 조금 누그러진 것 같았다. 물론 어디까지나 처음에 비해 그렇다는 것이지, 노구덕을 향한 무기들은 여전히 그대로였다.
겨우 대화 분위기가 조성되는 듯하자 노구덕은 반갑게 손가락을 튕겼다.
“바로 그거야. 나도 요 며칠 간 산속에만 처박혀 있다 보니 통 세상물정을 모르고 있거든. 괜찮다면 자네들이 여기까지 온 이유를 알려주지 않겠나?”
“…….”
노구덕의 천연덕스러운 제안에, 두 여인은 말없이 서로를 마주보며 눈빛을 교환했다.
‘어쩌지? 거짓말하는 것 같지는 않은데.’
‘우선… 얘기를 하는 것도 나쁘진 않을 것 같아. 시간도 벌어야 되고.’
두 여인은 자신들의 처지를 똑똑히 자각하고 있었다. 지금 마주한 아이리스 오너는 칼립스 리그 최상위권에 랭크되어 있는 실력자. 리그 소속의 헌터들 중에서도 하위권인 자신들이 상대할 수 있는 괴물이 아니었다.
칼립스에서 내건 현상금에 혹해 뛰쳐나오긴 했지만, 그녀들의 역할은 어디까지나 전위 첨병이었지, 전투를 도맡아 하는 역할은 아니었다.
대충 입장이 정리되자, 단검을 들고 있는 레인저 복장의 여인이 대표로 나섰다.
“그 난리가 났는데도 당사자는 까맣게 모르고 있다니… 당신 말을 믿어야 할지 모르겠네요.”
“될 수 있으면 믿어줬으면 하는군. 도대체 무슨 난리가 났는지 좀 알려주겠나?”
“아이리스 오너… 당신은 지금 공식적으로 현상금이 내걸린 상태예요.”
“…현상금?”
노구덕의 눈이 가느다랗게 변하자, 초식동물처럼 몸을 움찔거린 여인은 천천히 호흡을 진정시키며 말을 이어나갔다.
그룸달의 자살로 선거전의 양상이 급변한 일부터 시작해서, 아이리스의 헌터인 데모나가 대륙적 범죄자인 바이론과 함께 있던 것이 적발된 일, 그리고 노구덕의 실종과 더불어 불거진 의혹 등.
“…마티아스 위원이 공식 기자회견을 통해 의혹을 제기했고, 지지부진하게 시간을 끌던 아이리스는 어떤 만족할 만한 답변도 내놓지 못했죠. 그러다 연맹의 감찰에 의해 아이리스 오너의 실종이 밝혀졌고요.”
“…흠.”
예상보다 더 심각한 상황에 노구덕은 무겁게 고개를 끄덕거렸다. 하긴, 상황이 이러하다면 임유진이나 소피아가 아무리 능력이 출중하더라도 어찌할 도리가 없다. 해명할 당사자를 내놓으라는데, 없는 사람을 만들어 바칠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
‘마티아스 놈, 결국 먼저 선수를 쳤군.’
그 또한 마티아스의 목줄을 죌 수단을 따로 준비하고 있었던 만큼, 이런 일로 불평하는 것도 우스운 일이었다. 어차피 금방 깨져버릴 동맹, 누가 먼저 뒤통수를 후려치느냐가 관건이었을 뿐이다.
“…그래서 나와 데모나에게 현상금이 걸렸단 거군. 그러면, 아이리스는 어떻게 됐지?”
“의혹이 제대로 밝혀질 때까지 모든 활동이 중지됐죠. 헌터들은 모두 클럽 홀에 연금되어 있는 상태고요.”
마티아스… 참으로 철저한 작자였다. 한순간에 그에게 죄를 덮어씌운 것도 모자라, 노구덕의 손발이라 할 수 있는 아이리스마저 기능을 상실하게 만들었다. 이렇게 되면 혹시 모를 아이리스 헌터들의 지원도 기대할 수 없었다. 연금 상태에 놓인 헌터들이 공식적으로 그를 돕는 순간, 그들도 곧바로 공범이 되어버릴 테니까.
‘이러면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여기서 끝장을 봐야겠군.’
이대로 아이리스에 돌아간다 해도 노구덕이 고를 수 있는 선택은 많지 않았다. 잘해봐야 마티아스의 수작에 넘어가 연맹에 출두하는 것 정도일 터. 그러면 사실상 선거는 내주는 것이나 다름없고, 혹시 모를 꼬투리가 잡힌다면 지금까지 쌓아올린 기반을 통째로 잃어버릴 수도 있었다. 즉, 자살한 그룸달과 다를 바 없는 꼴이 되어버리는 것이다.
하지만, 아직 낙심하기엔 일렀다. 노구덕에게는 아직 비빌 언덕이 남아 있었다. 잘만 쓴다면 판을 백팔십도 뒤집어 버릴 수 있는 강력한 무기가.
데모나의 수중에 있는 블레이즈 오너 아주카와, 유토의 마지막 순간을 담은 영상수정. 그것만 손에 넣는다면…….
삽시간에 행동지침을 정한 노구덕은 크게 숨을 들이켰다. 집요하게 구는 마티아스에 대한 분노는 잠시 접어두고, 지금은 한시라도 빨리 데모나를 찾아야 할 때였다.
“…그래, 그렇게 되었단 말이지. 마티아스 놈, 아주 작정하고 수를 썼군.”
“당신… 정말로 그 범죄자와 연관이 있는 건가요?”
“범죄자? 데모나를 말하는 거라면, 적절치 않은 단어라고 말해주고 싶군. 아직 뭐하나 확정된 혐의도 없는데, 단순 정황만으로 범죄자라 단정 하는 건 좀 이르지 않나?”
“하, 하지만 그녀는 위원 직속의 경무대를 해쳤다고요! 게다가 그 옆에는 바이론이라는 수배자가…!”
“그야 경무대 놈들이 다짜고짜 무력을 행사했을 테니, 나름대로 정당방위를 한 거겠지. 안 봐도 뻔해. 뭐, 바이론에 대해서는 나도 할 말이 없지만.”
“그런 억지가…!”
꽥꽥 대는 레인저 여인의 말을 가볍게 흘려버린 노구덕은 천천히 몸을 돌렸다. 두 여인은 노구덕이 갑자기 뒤돌아서자 반사적으로 긴장해서는 무기에 손을 가져다 댔다.
“어, 어딜 가려는 거예요?”
“사정도 들었으니, 마녀를 잡으러 가야지. 그래야 내 무죄가 입증될 게 아닌가?”
“아니! 지금 당신은 당장 칼립스에 돌아가서…!”
“친절한 설명, 고마웠네. 기회가 되면 다음에 또 보도록 하지. 아, 이 친구에게도 미안하다는 말 꼭 전해주도록 하고.”
두 여인에게 인사를 남긴 노구덕은 발목에 잔뜩 힘을 주더니, 제자리에서 용수철같이 튀어 올랐다. 마치 번갯불을 연상시키듯 무시무시한 속도였다.
“…저기, 이제 어떻게 하지?”
“…몰라. 나한테 묻지 마.”
그리고 허망하게 남겨진 두 여인은… 팔자 좋게 잠을 자고 있는 애꿎은 남자 헌터의 얼굴만 원망스레 쳐다볼 따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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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밌게 보셨다면 추천/코멘 부탁드립니다.
날씨가 많이 춥습니다. 가게 앞을 보니 회오리바람이 장난이 아니더군요.. 추운 겨울 감기 조심하세요..
오늘 일이 바빠 리리플은 일일이 달아드리지 못할 것 같습니다 ㅠㅠ 죄송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