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unter Club RAW - chapter (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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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 다 된 밥에 재 뿌리기
“…….”
사위는 조용했다.
그럴 수밖에. 광장에서 재생된 영상은 유토와 마티아스의 관계를 증명하는 빼도 박도 못하는 증거였던 것이다.
수백, 수천에 달하는 이들이 단체로 패닉에 빠져버렸다. 그들의 귓가에는 유토의 마지막 절규만이 계속 반복하여 메아리치고 있었다.
그리고, 대형 스크린 앞에 버티고 서 있던 노구덕은 그 공백의 시기를 놓치지 않고 결정타를 먹였다.
“이것이 진실입니다. 유토는 겉으로 그룸달의 수족을 가장하고 있었지만 실은 마티아스 일파에 속한 간첩이었고, 마티아스의 지시에 따라 아주카를 만나러 갔던 겁니다. 자기 몸에 폭탄이 심어진 것도 모르는 채로 말이지요.”
결정적인 증거를 들이민 마당이다. 고요한 광장을 쩌렁쩌렁하게 울리는 그의 음성은 그 어느 때보다 강한 설득력을 발휘하고 있었다. 할 말을 잊은 사람들은 모두 그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마티아스는 무정하게도 오랫동안 자기 일파에 충성을 바쳤던 유토와 아주카를 희생양으로 삼았습니다. 그리고 그 대가로, 훨씬 큰 이득을 챙겼지요. 결과적으로 지금 상황은 어떻게 되었습니까? 강력한 정적이었던 그룸달이 재기불능의 타격을 입고 자살했으며, 기울어져버린 판도에 리엔더는 불출마 선언을 했습니다. 그리고 저는 얼토당토않은 누명을 쓰고 연행이 될 판국입니다. 덕분에 암중모략의 주모자인 그 누군가는 공짜나 다름없이 위원직을 홀랑 삼킬 수 있게 되었죠.”
노구덕은 크게 숨을 들이켰다. 저 멀리, 마티아스가 측근들의 부축을 받으며 죽일 듯 이쪽을 노려보고 있는 것이 눈에 띄었다.
“…여러분, 저는 언제라도 떳떳하게 조사를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자리에는 저뿐 아니라, 한 사람이 더 나와야지요. 억울하게 죽은 그룸달 위원과 유토 헌터, 아주카 오너의 넋을 달래기 위해서라도 말입니다. …판단은, 여러분께 맡기겠습니다.”
장황한 연설이 끝났다. 그의 말을 듣고 있던 자들 중에는 동조하듯 고개를 끄덕이는 사람도 있었고, 바닥에 주저앉아 망연자실 넋을 빼 버린 자도 있었으며, 뒤쪽의 마티아스를 향해 마구잡이로 욕설을 퍼붓는 자도 있었다.
일시에 찾아온 대혼란. 가장 신이 난 것은 이 모든 과정을 빠짐없이 영상수정에 꾹꾹 눌러 담고 있던 기자들이었다.
“대박이군! 아이리스 오너의 말이 사실이라면 천지가 뒤집힐 일이야!”
“내일자 신문 1면은 정해졌군. 이거야 원, 다 된 밥이라고 생각했는데… 이 시점에서 재를 뿌려버릴 줄이야.”
“이게 겨우 재를 뿌린 격인가? 아주 똥물을 끼얹은 격이지!”
“상황이 아주 재밌게 됐어. 마티아스 위원의 얼굴 좀 보라지.”
영상수정의 진위(眞僞)는 의심할 여지가 없다. 아무리 영상수정을 교묘하게 조작한다고 하더라도, 저런 장면을 이토록 정교하게 담아내는 것은 실제 상황을 찍은 진본이 아니고서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특종을 예감한 기자들의 행동은 누구보다 빨랐다. 그들은 벌써부터 썩은 고기 냄새를 맡은 까마귀 떼처럼 마티아스를 에워싸고, 앞다투어 영상수정을 들이댔다.
“마티아스 위원님! 저 영상이 정말 사실입니까?”
“아이리스 오너의 발언에 대해 뭔가 하실 말씀이 없으신지요!”
텅텅 비어 있던 공터가 사람들로 북새통을 이룰 지경에 처하자, 그 즉시 주변에 대기하고 있던 경무대가 투입되어 인의 장벽을 펼쳤다.
“이 자들이! 감히 어느 안전이라고!”
“저리 가지 못해!”
마티아스의 주변은 그야말로 수라장을 이루었다. 겁도 없이 경무대와 몸싸움을 펼치는 기자들과, 이 난처한 상황에 어쩔 줄 몰라하는 경무대…. 한 덩어리로 뒤엉킨 사람들이 그의 주변에서 아귀처럼 다툼을 벌이고 있었다.
그러던 와중, 누군가의 뾰족한 외침이 우두커니 서 있는 마티아스의 귓전에 통렬히 날아와 꽂혔다.
“이 더러운 협잡꾼 같으니라고! 뒤에서 사람들을 가지고 노는 게 그리 즐겁더냐!”
“…크으으으윽!”
그 순간, 침묵을 고수하고 있던 마티아스의 얼굴이 악귀처럼 일그러졌다.
어쩌다 상황이 이렇게 됐단 말인가. 고작 저따위 놈들에게 이런 말을 들을 이유가 있던가? 평소라면 감히 그를 똑바로 쳐다보지도 못했을 우민들이, 곳곳에서 가당찮은 질타를 날리고 있었다.
하극상. 천참만륙을 내도 모자랄 하극상이다. 마음 같아서는 경무대에게 지시를 내려, 주제를 모르고 지껄여대는 저 머리들을 모조리 싹둑싹둑 잘라, 본보기가 될 수 있도록 광장 한가운데에 높이 효수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럴 수는 없었다. 지금의 그는 위원이되, 위원이 아니었다. 도저히 피해갈 수 없는 그물이 목에 걸린 상태인 것이다.
‘저놈, 모든 게 저놈 때문이다.’
마티아스는 시퍼렇게 날이 선 눈으로 인파 너머의 노구덕을 노려보았다. 만약 시선으로 사람을 죽일 수 있었다면, 노구덕은 벌써 몇 번이고 숨통이 끊겼을 것이다.
‘설마 아주카 말고도 영상수정까지 빼돌렸을 줄은… 아니, 유토 그놈이 마지막에 쓸데없는 말을 지껄이지만 않았어도!’
악재에 악재가 겹쳤다. 어떻게 이렇게 운이 없을 수 있나, 하늘이 원망스러울 지경이었다. 그러나 이대로 말없이 물러났다간 사태는 더욱 돌이킬 수 없게 될 터.
심사숙고하던 마티아스는 마침내 결단을 내렸다.
“길을 열어라! 내가 직접 해명할 테니!”
마티아스의 명령이 떨어지자, 경무대는 게돈의 지휘 아래 광장 한복판으로 길을 뚫기 시작했다. 목적지는 대형 스크린이 있는 방향, 노구덕과 마스터 러셀, 백전대장이 있는 곳이었다.
노구덕은 제자리에 느긋이 서서, 마티아스가 인파를 헤치고 다가오는 광경을 여유롭게 지켜보고 있었다.
“마티아스 위원이 오고 있군. 백전대장, 마스터 러셀. 아무래도 시간이 좀 더 필요할 것 같은데… 괜찮겠소?”
“으으음….”
이제 상황은 그들의 손을 떠났다. 백전대장과 러셀은 침중한 신음만 흘릴 뿐,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그 침묵을 긍정의 뜻으로 받아들인 노구덕은 옅은 미소를 머금으며, 바늘에 걸린 물고기가 당도하기만을 기다렸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경무대의 엄호를 받는 마티아스가 광장에 도착했다.
“어서 오시오. 무거운 엉덩이가 이제 겨우 움직이셨군.”
연맹 위원을 대하는 존중은 이미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다. 마티아스는 뭐라도 된 것처럼 자신을 당당히 맞이하는 노구덕의 태도에, 치솟는 울화를 삼키며 표정을 구겼다.
“아이리스 오너… 정말 끈질기군. 벼랑 끝에 몰려 겨우 생각해 낸 회생의 수단이 겨우 물귀신 작전인가? 날 같이 끌고 가겠다고?”
“이보시오, 마티아스 위원. 변명은 내가 아니라 여기 시민들께 하는 게 어떻소?”
두 사람의 대화는 가까이 설치된 확성기를 통해 광장 곳곳에 울려 퍼지고 있었다. 뜻하지 않게 공개 재판을 당하게 된 마티아스는 이를 부득부득 갈았다. 무엇보다 자신은 안중에도 없다는 듯, 술술 받아넘기는 노구덕의 건방진 태도가 심기를 크게 거슬리게 만들었다.
마티아스는 부글부글 끓는 속내를 숨기며, 쥐어짜는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
“나는… 할 말이 없다. 모든 건 아이리스 오너, 네놈의 모함이니까. 저 영상 수정도 보나마나 조작된 것일게 뻔해.”
“푸하하하… 즉석에서 생각해낸 변명치고는 너무 조악하지 않소? 영상수정을 이토록 세밀하게 조작할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어디 데려와 보시오.”
“닥쳐라! 애초에 네놈은 오키도에서 그 대참사를 일으킨 바이론의 공범이지 않은가! 네놈 같은 범죄자가 하는 말에 무슨 효력이 있단 말이냐! 그리고 네놈이 데리고 있는 저 마녀!”
마티아스는 부들부들 떨리는 손끝으로 데모나를 가리켰다.
“저 마녀는 흉악범 바이론의 하나 뿐인 자식이지! 나는 그 사실을 입증할 만한 증거도 가지고 있다! 여봐라, 그걸 가져와라!”
곁의 측근에게서 서류 봉투 하나를 건네받은 마티아스는 형형한 안광을 빛내며 고함을 쳤다.
“이게 바로 그 증거다!”
마티아스가 자신 있게 서류 봉투를 흔들어 보이자, 좌중의 분위기가 다시 한 번 일변했다. 갈대처럼 흔들리는 게 사람 마음이라고, 의심의 눈초리가 이번에는 노구덕을 향한 것이다.
“확실히… 그룸달 사건에 마티아스 위원이 관련되어 있다고 해도, 그건 아이리스 오너가 가지고 있는 혐의하고는 상관없잖아?”
“그렇긴 하지…. 애당초 아이리스 오너는 바이론과 공모했다는 혐의를 받고 있는 거니까…. 저렇게 자신 있게 들이대는 걸 보면 정말 무슨 증거가 있긴 있는 모양인데….”
“에이, 세상에 믿을 놈 하나 없군. 이놈도 나쁘고 저놈도 나쁘면, 대체 누굴 뽑으란 거야?”
마지막으로 어떤 사내가 침을 칵 뱉으며 중얼거리자, 주변의 군중들이 수긍하듯 맞장구를 치는 모습이 보였다. 이것이 노구덕과 마티아스, 두 사람을 둘러싼 칼립스 여론의 현주소였다.
그러나 노구덕은 마티아스의 공갈에도 눈썹 하나 깜짝이지 않았다.
“재밌구먼. 어떻게 그 사실을 알았는지 몰라도, 순 깡통은 아니었군. 다시 봐야겠어.”
“까, 깡통이라고? 이놈이…!”
당황할 것으로 여겼던 노구덕이 너무나 태연자약하게 사실을 인정하자, 오히려 위축된 것은 마티아스였다. 이미 방금 전에 크게 데인 탓인지, 노구덕이 뭔가 또 다른 수를 준비하고 있지 않을지 조바심이 생긴 것이다.
그리고, 그 염려는 곧 현실이 되고 말았다.
“데모나 헌터의 아버지가 바이론이라는 건 사실이다. 하지만 그게 어떻단 말인가? 그 두 사람은 오래전부터 의절한 관계였고, 오히려 데모나 헌터는 바이론의 천인공노할 계획을 적극적으로 방해하는데 일조해왔다. 그런 그녀에게 죄를 묻겠다니, 지나가던 개도 웃을 일이지.”
“이놈! 잘도 그런 뻔뻔한 소리를…!”
“말이 안 되지 않나? 데모나 헌터가 바이론의 협력자라면, 그녀가 오키도에서 출현한 카름, 아트로포스와 맞서 싸운 것은 어떻게 설명할 거지? 당시 데모나 헌터는 어느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을 만큼 온힘을 다해 아트로포스의 공격을 막아냈다. 만약 그녀가 아니었더라면, 수천에 달하는 사람들이 허무하게 목숨을 잃었을 거야. 이건 시스템이 판정한 기여도가 증명하는 사실이다.”
‘아이리스의 마녀’, 데모나가 본격적으로 명성을 떨치게 된 것은 아트로포스와의 전투 당시, 거대한 뼈의 장벽과 두 기의 본 골렘을 소환해 그리드의 일격을 막아낸 활약을 통해서였다.
당시 데모나가 그 공격을 막아내지 못했더라면, 성문 밖에 있던 피난민들이 떼죽음을 당했을 거란 것은 명약관화한 사실. 이는 시사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는 자라면 누구나 알고 있는 유명한 일화였다.
“그, 그건….”
노구덕의 이 말에는 마티아스도 딱히 반박을 하지 못했다 그건 데모나가 바이론의 딸이라는 확증을 가지고 있는 그로서도 도저히 풀지 못했던 의문이었으니까.
마티아스가 잠시 머뭇거리는 사이, 노구덕은 또 다른 비장의 카드를 꺼내들고 있었다.
“그리고… 데모나 헌터가 바이론과 함께 있었던 건 그에게 협력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바이론과 만나 결착을 짓기 위해서였다. 그걸 마티아스, 당신 패거리가 멋대로 공범으로 단정지어버린 거야. 이게 바로 그 증거다.”
청산유수처럼 데모나를 비호하던 노구덕은 옆에서 대기하고 있던 소피아에게 눈짓을 보냈다. 그의 지시를 받은 소피아는 기다렸다는 듯 아공간을 열더니, 시커멓게 아가리를 벌린 공간의 틈새에서 무언가를 낑낑거리며 꺼내놓았다.
두꺼운 모포로 둘둘 말린 그것은… 다름 아닌 사람의 시체였다.
“우리가 일주일 동안 뭘 했다고 생각하나. 수배자, 바이론의 시체다. 보면 알겠지.”
“……!”
잠시나마 기세가 등등했던 마티아스의 입이 쩍 벌어졌다. 시체가 된 탓에 피부색이 검게 변해 있기는 하지만, 저 용모는 수배자 바이론의 그것과 똑똑히 일치하고 있었던 것이다.
“거, 거짓말… 거짓말이다! 저 시체는 가짜가 틀림없다!”
“그건 당신이 아니라 마스터 러셀이 판단해주겠지. 바이론은 본래 저널을 가지고 있는 스카우터. 시스템을 통해 진위 여부를 가릴 수 있지 않겠나?”
“아니, 확인은 이쪽에서 하도록 하겠소. 바이론은 원래 우리의 표적… 이 자가 진짜인지, 가짜인지 정도는 여기서 바로 확인할 수 있으니까.”
갑작스레 끼어 든 것은 사태를 지금껏 수수방관하고 있던 백전대장이었다. 이윽고 바이론의 시신에 가까이 다가간 그는, 사체를 살핀 뒤 요상하게 생긴 장비를 그 심장 부근에 가져다 댔다. 아마 시스템과 연동된 장비인 모양이었다.
잠시 후, 장비에 깨알 같이 나타난 글자를 읽어 내리던 그는 고개를 끄덕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 자는 바이론, 본인이 맞소. …아무래도 우리가 아이리스 오너를 오해하고 있었던 모양이군.”
“위, 위원님!”
마티아스의 측근들은 허수아비처럼 휘청이는 마티아스의 몸을 급히 부축했다.
마지막 희망이랄 수 있는 오라클마저 등을 돌렸다. 겨우 한 걸음을 앞서나 싶었는데, 상대는 어느새 두세 걸음이나 멀리 달아나 있었다. 잇달아 벌어지는 터무니없는 사태에, 심적 동요를 견디다 못한 마티아스는 질끈 눈을 감아버리고 말았다.
와르르르….
권불십년(權不十年)이라 했던가. 오랜 세월에 걸쳐 피땀으로 쌓아올렸던 그의 성이, 밑바닥부터 철저히 무너지는 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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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밌게 보셨다면 추천/코멘 부탁드립니다.
이제 슬슬 마티아스도 막바지군요..
가게가 바쁜 관계로 오늘 리리플은 생략해야 할 것 같습니다… ㅠㅠ 죄송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