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unter Club RAW - chapter (328)
0328 / 0777 ———————————————-
83# 거울의 숲
++++++++++++++++++++++++++++++
스퀘어에는 ‘자치령’이라고 하는 곳이 있다. 이는 문자 그대로의 의미로서, 여타 도시와는 달리 위원회의 지배력이 미치지 않고 간섭불가의 지역을 일컫는다. 대부분의 자치령들은 구왕조가 난립하던 시절부터 오랫동안 스퀘어 대륙에 자리를 잡고 살아 온 사실상의 소국(小國)들인데, 이들은 카름 전쟁 때에도 독자적으로 카름들과 맞서 싸워 터전을 지켜낸 저력을 지니고 있었다.
위원회에서는 이들 소국들의 공로와 전통을 존중하여, 기존 지배체제에 편입시키지 않고 자치권을 부여하는 식으로 주권을 인정했다. 사실, 이는 자치령들 대부분이 그 지역색과 특징이 너무 강해, 억지로 타 도시에 편입시켰다가는 오히려 불협화음이 일어날 가능성이 높았기에 어쩔 수 없이 채택된 방안이었다.
거울의 숲은 이런 역사를 가진 자치령들 중 하나로, 동부 지구 일대의 한 지역을 뒤덮고 있는 대삼림이었다. 이곳은 수인(獸人)과 엘프 등 숲에 거주하는 이종족들이 자유롭게 씨족을 이루어 살아가고 있는 터전으로서, 이제는 몇 남지 않은 자치령들 중에서도 특히나 타지인에 대해 배타적이고 호전적인 지역이었다.
타인의 간섭은 배제하나 그 내부는 더없이 자유롭고 평화로운 사회. 그것이 거울의 숲이 가진 본모습이었다.
그러나, 그것도 이제는 옛 얘기. 몇 년 전, 한 사내가 일당을 이끌고 거울의 숲에 들어오면서, 모든 게 뿌리부터 흔들리기 시작했다.
“헉! 헉!”
휘영청한 달빛을 받아, 은은한 빛을 흩뿌리는 울창한 수림을 가로지르는 네 남녀가 있었다.
숲의 종족 특유의 날렵한 몸매와, 귀밑머리 옆으로 길쭉하게 솟아오른 귀를 봐서는 엘프가 분명했는데, 독특하게도 그들은 머리 위에 두 개의 작은 뿔을 달고 있는 모습이었다. 나뭇가지처럼 자라난 그 뿔은 남자의 것이 컸고, 여자의 것이 작았다.
각각 두 명의 남녀로 구성된 일행은 무언가에 쫓기는 것 같았다. 길쭉길쭉 훤칠한 다리를 바쁘게 놀리면서도, 두려움에 찬 얼굴로 가끔 뒤를 돌아보거나 귀를 쫑긋 세우는 것이, 필시 어떤 무서운 존재로부터 도망치고 있는 모양새였다.
그러나 급히 달아나던 일행은 얼마 가지 못해 걸음을 멈춰야만 했다. 일행 중 가장 키가 작은 엘프 여인이 앞서 달리던 남자의 옷자락을 단단히 붙들어 세운 탓이다.
“후욱! 티토! 자, 잠깐만! 더, 더 이상 못 달리겠어!”
“안됩니다! 여기서 더 지체했다가는…!”
“바, 발이 움직이지 않는단 말이야!”
여인의 울먹이는 듯한 애원에 옷자락을 잡힌 사내, 티토는 이를 악물었다. 아닌 게 아니라 그녀의 발목어림은 물에 불어터진 것처럼 퉁퉁 부어 있었다. 약 한 시간 전, 추격자와 조우했을 때 접질린 발목을 지금껏 무리하게 움직인 여파였다.
치유 주문이라도 쓴다면 금방 나을 상처였으나, 그러면 마력의 잔향이 남게 된다. 들개보다 더욱 예민한 후각을 지닌 추적자들이 그 향기를 놓칠 리 없었다.
“치유 주문을 쓸 수는 없습니다. 우리 위치를 알려주는 꼴이니까요. 그렇다고 부목을 덧댈 수도 없으니…. 이반, 네가 공주님을 업어라.”
“알겠습니다.”
아마도 티토라 불린 그 사내가 일행의 대장격이었는지, 그에게서 지목을 받은 또 다른 엘프 사내는 군말 없이 다친 엘프 여인을 둘러업었다.
“…이반…. 미안해….”
“저는 괜찮습니다. 네리아 공주님.”
무뚝뚝하게 답하며 네리아를 안심시키는 이반이었지만, 누적된 피로로 인해 반쯤 감겨 있는 그의 눈꺼풀을 보면 그것이 허세라는 걸 쉽게 알 수 있었다.
녹초가 된 그의 몸에 몸을 실은 네리아는 면목이 없어 힘없이 고개를 떨구고 말았다. 이럴 줄 알았으면 기초 수련에도 좀 더 신경을 쓰는 것인데, 하는 뒤늦은 후회가 밀려왔으나, 후회는 아무리 빨라도 늦은 법이다.
“…미안…….”
네리아가 이반의 뒷목에 머리를 묻고, 일행이 다시 출발할 채비를 꾸리는 사이, 뒤에서 귀를 쫑긋거리며 망을 보고 있던 엘프 여인이 급하게 달려왔다.
“공주님! 티토! 멀리서 놈들의 기척이 느껴집니다!”
“음! 서두르자. 그의 말이 사실이라면… 여기서 머지않은 곳에 안가가 있을 거다.”
사위에 어둠이 내려앉은 데다, 하늘을 가릴 정도로 울창하게 나무가 우거진 탓에 앞뒤 분간조차 제대로 되지 않을 지경이었지만, 밤눈이 밝은 엘프들에게 이 정도는 별 문제가 되지 못했다.
그러나 망을 보던 엘프 여인, 티샤는 다른 게 걱정인 듯했다.
“그 사람… 정말 믿을 수 있을까요?”
“무슨 소리야! 그의 이름을 댄 사람이라고! 함정일 리 없잖아!”
“하, 하지만 공주님! 만약의 경우도 생각해야 합니다. 그의 말이 거짓이라면…….”
“…거짓이라면 우린 끝장이겠지. 불길한 생각은 하지 말도록 하자. 달의 여신께서 우릴 인도하실 거다.”
“…예.”
어두운 낯빛으로 조그맣게 대답하는 티샤에게서 시선을 뗀 티토는 나머지 일행들을 재촉했다. 지체할 시간이 없었다. 어서 한시라도 빨리 이곳을 벗어나 목적지인 안가에 도착해야만 했다.
“많이 지체했다. 서두르자. 진형은 이대로…. 이, 이런…!”
티토의 커다란 뿔이 바람에 날리는 잔가지처럼 커다란 떨림을 보였다. 일행의 앞, 어둡게 우거진 덤불 속에서 푸르스름한 빛을 발하는 샛노란 눈동자들을 발견한 것이다.
“크르르르…!”
흉성 가득한 울림에 온몸의 솜털이 곤두섰다. 덤불 속에서 흉악한 안광을 번뜩이며, 일행을 위협하던 놈들은 이내 그 모습을 고즈넉한 달빛 아래로 드러냈다.
지독한 누린내가 풍기는 이빨, 용솟음치는 살의를 머금은 포악한 눈동자, 통나무보다 더 굵어 보이는 육중한 팔다리… 놈들은 여지없는 야수였다. 일반적인 짐승들과 다른 점이라고 한다면 이족보행을 하는 인간의 형상과 닮아 있다는 것.
“라이칸스로프 놈들…. 대체 어떻게…?”
어느새 티토의 얼굴은 축축한 식은땀으로 젖어들고 있었다. 전면에는 웨어베어와 웨어타이거, 양 측면에는 각기 두 마리의 웨어울프들이 포위망을 구축하고 있다. 지금 일행의 상태로는 라이칸스로프 두세 마리로도 벅찬 상대인데, 하물며 여섯 마리라니…. 도저히 길이 보이지 않았다.
결국, 티토는 결단을 내릴 수밖에 없었다.
“…나와 티샤가 시간을 끈다. 이반… 너는 네리아 공주님을 데리고 최대한 도망쳐라. 길은 알고 있겠지?”
“네, 넷?”
“티토…!”
불안하게 흔들리던 티샤의 눈동자가 크게 부릅떠지고, 이반의 등에 업혀 있던 네리아의 안색도 백지장처럼 하얗게 변했다.
그러나 이미 죽음을 각오한 티토는 반론은 일절 허용하지 않겠다는 듯 엄숙한 표정을 지어보였다.
“이대로라면 다 같이 개죽음을 당할 뿐이다. 티샤, 이럴 수밖에 없는 내 마음을 알아다오. 일족을 위해서, 공주님을 위해서다. 이견은 없겠지?”
“…알겠습니다.”
동요하던 티샤가 끝내 머리를 숙이자, 티토는 고개를 끄덕이며 지시를 내렸다.
“좋다. 이반! 어서 가라! 공주님을 반드시 지켜! 내가 길을 뚫겠다! 우오오오!”
맹렬하게 포효한 티토는 주저 없이 짐승들의 틈바구니 사이로 뛰어들었다.
그의 얼굴, 그리고 옷자락 사이로 드러난 날렵한 육체에는 부족 대대로 전혀 내려오는 전사의 문신이 은빛의 광채를 내뿜고 있었다. 사슴뿔 부족에 전해 내려오는 성스러운 달의 문신, 달빛의 마력이었다.
“카아아아아!”
충만한 빛을 띤 은색의 오오라가 티토의 주변에 강렬한 파문을 일으키자, 그에 자극을 받은 라이칸스로프들이 게걸스러운 괴성을 내지르며 그를 덮쳐왔다. 라이칸스로프는 본래 달빛의 마력에 강하게 반응하는 본능이 있다. 즉, 티토는 달의 마력을 일으킴으로써 스스로 미끼가 된 것이다.
“티토…! 티샤…!”
“공주님, 꽉 잡으십시오.”
울먹거리는 네리아를 단단히 부여잡은 이반은 입술을 꽉 깨물며 찰나지간 뚫린 포위망 사이로 몸을 날렸다. 부족의 전사장 티토는 그에게도 스승과 같은 존재. 그런 인물의 희생을 뒤로 하고 등을 보이려니 가슴이 미어지지 않을 수 없다.
‘이반… 공주님을 부탁한다.’
두 사람의 기척이 점점 멀어지자, 티토의 동공이 완연한 은빛으로 물들었다. 근원인 달의 마력을 극한까지 끌어올린 것이다.
“오오오오오–!”
“캐앵!”
멋모르고 달려들던 웨어울프 한 마리가 달려오던 것보다 더 빠른 속도로 튕겨나갔다. 일격에 웨어울프를 패대기친 티토는 은색의 눈알을 번뜩이며 산만한 덩치의 웨어베어에게 덤벼들었다.
…만약 난데없이 그의 배후에서 튀어나온 칼이 등을 갈라버리지 않았다면, 틀림없이 웨어베어도 처치할 수 있었으리라.
“…커허어어어억!”
불의의 기습. 극도로 예민해진 감각도 미처 포착하지 못한 기습이었다. 아니, 포착하지 못한 것이 아니라 무의식중에 무시를 한 것이다. 왜냐하면, 등에 비수를 꽂은 기습자의 기운은 너무나 익숙한 아군의 것이었으니까.
척추가 훤히 드러나 보이는 중상을 입고도, 티토는 아직 숨이 붙어 있었다. 길가의 돌멩이처럼 널브러진 그의 얼굴은 경악으로 얼룩져 있어, 도저히 이 상황을 받아들이지 못하겠다는 빛이 역력했다.
“티…샤…?”
“…대장님이 나쁜 거예요. 싫다는 데도 죽으라고 하니까….”
“너… 배, 배신을…….”
“배신이 아냐! 나도 살고 싶어서 그런 거라고! 내가 왜 그깟 계집애 때문에 죽어야 되는데!”
“허, 허어어어…….”
티샤의 수려한 얼굴은 하염없이 흘러내린 눈물로 인해 흥건하게 얼룩져 있었다. 악에 받쳐 소리치는 그녀의 얼굴을 망연하게 올려다보던 티토는 허망하게 머리를 바닥에 댔다.
이제야 알 것 같았다. 어떻게 놈들이 자신들의 도주로를 예상하고 미리 매복할 수 있었던 것인지…. 문득, 외부자의 배신을 운운했던 조금 전의 상황이 우습게만 느껴졌다.
‘남 걱정할 처지가 아니었군…. 공주님… 부디…….’
콰득!
티토는 더 이상 생각을 이어가지 못했다. 어디선가 갑자기 나타난 군홧발이 그의 머리통을 수박처럼 짓밟아 터뜨려버린 것이다.
“…어? …으, 으아아아악!”
그로부터 튄 찐득한 살점 파편과 진득한 뇌수를 뒤집어 쓴 티샤는 말문을 잊은 것처럼 우두커니 서 있다가, 이내 얼굴을 감싸 쥐며 시끄럽게 비명을 질러댔다.
“시끄럽다. 뿔을 뽑아버리기 전에 그 입 닥쳐.”
“흑! 흐그급…!”
갑작스레 나타난 사내의 무서운 엄포에, 티샤는 황급히 입을 틀어막으며 울음을 삼켰다. 사내는 부족 전체를 도륙 내버린 괴물의 하나뿐인 혈육이자, 몇 년 전 새롭게 재편된 거울의 숲 먹이사슬의 최상층에 올라 있는 남자였다.
어느새 그 주변은 열 마리가 넘는 라이칸스로프로 득실대고 있었다. 놈들의 번들거리는 눈알이 몸을 훑고 지나갈 때마다, 살갗을 도려내는 듯한 공포가 뇌리를 잠식했다. 실제로 놈들 중에는 그녀의 친구를 뼛조각 하나 남기지 않고 씹어 먹은 자도 있었다.
티샤가 당장이라도 까무러칠 듯한 정신을 겨우겨우 추스르고 있는 사이, 우두머리 사내는 부하들을 노려보며 신경질을 부려댔다.
“제길, 이래서 라이칸스로프는…! 멍청한 놈들 같으니라고. 뻔한 수작에 걸려서 퇴로를 열어줘? 뭣하고 있어! 당장 쫓아라!”
“크허어엉!”
“컹컹!”
사내의 명령에 갖가지 울음으로 답한 라이칸스로프들은 허둥지둥 꼬리를 말며 이반과 네리아가 도주한 방향으로 서둘러 달려나갔다. 그 뒤꽁무니를 한심한 시선으로 쳐다보던 사내는 이내 벌벌 떨며 서 있는 티샤의 머리채를 움켜쥐었다.
“으으…! 사, 살려주세요! 잡아먹히는 건 싫어요…! 살려주신다고 하셨잖아요…!”
“흐흐흐…. 걱정마라. 그건 내가 아니라, 네년의 노력 여하에 달린 거니까. 노력을 하면 개밥 신세는 면할 수 있다고? 날 만족시킨다면 말이지.”
음침한 미소를 흘린 사내는 티샤의 가냘픈 하체를 감싸고 있던 가죽 바지를 우악스럽게 찢어버렸다. 비로소 사내가 무엇을 하려는지 눈치 챈 티샤는 파랗게 질린 얼굴로 애원했다.
“제, 제발… 꺄아아악–!”
어떤 애무도, 전희도 없었다. 징그러운 남근은 그녀의 여린 살점을 도려내고, 짓밟으며 가차 없이 몸속을 쑤시고 들어갔다. 고통을 이기지 못한 티샤는 입을 쩍 벌린 채 바닥을 박박 긁어댔지만, 오히려 그렇게 고통에 발버둥치는 모습이야말로 사내의 폭력성을 더욱 부추길 뿐이었다.
“조임이 약하잖아! 죽고 싶은 거냐! 이 암캐년! 더 힘을 써보란 말이다!”
“켁, 켁…!”
사내는 욕지기를 퍼부으며 그녀의 가는 목을 한손에 쥐고 흔들어댔다. 포악한 손아귀에 기도가 터질 듯이 꽉 막히자, 고통스럽게 일그러진 티샤의 하얀 얼굴에 검푸른 죽음의 빛이 스멀스멀 피어올랐다.
이내, 꺽꺽대며 경련하던 머리가 부글부글 거품을 물고 옆으로 축 늘어졌다. 백태가 끼어 힘을 잃은 그녀의 눈자위에 비친 것은, 반쯤 부서져 눈가 일부와 한쪽의 뺨만이 간신히 형체를 유지하고 있는 티토의 짓이겨진 얼굴이었다.
============================ 작품 후기 ============================
재밌게 보셨다면 추천/코멘 부탁드립니다.
거울의 숲에 관한 설명은 예전에도 작중에 언급된 적이 있었으니… 저놈이 누군지는 따로 설명을 드리지 않아도 아실 듯합니다.
아침편이라기엔 조금 늦었지만! 좋은 하루되세요!
Na-Ru / 코멘 감사합니다!
벌레 / 리밋뷁?? 이 뭐죠?
†아마테라스† / 북왕과의 연줄은 의도한 건 아니지만… 나름 실렌이 주고 간 선물이랄까요..
asd메이지 / 저도 설정덕후 참 좋아하는데요. 혹시 설정오류처럼 느껴지는게 있다면 주저말고 말씀해주시길!
향향공주 / 정인이와 구더기를 합치면 완벽한 먼치킨이 될텐데 말이죠..
호야[虎夜] / 엄청! 까지느 아니고 나름 호형호제하는 사이입니다 ㅎㅎ
은신설야 / 저도 코멘이 많아져서 기분이 좋네요! 코멘과 추천은 언제나 작가를 즐겁게 만들어주니까요!
니오그타 / 언젠가.. 때가 오겠죠?
트릭스타 / 넵 드래프트 동기 맞습니다.
dlftjsgkdl / 높이 올라간 놈을 떨굴수록 즐거움은 배가 되는 것 아니겠습니까.
능욕12 / 아마.. 아직은 좀 더 봐야 하지 않을까요?
신수[神手] / 다음편 드렸습니다..
월병인 / 황기종이 황비홍으로 ㅋㅋ 오랜만에 듣는 이름이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