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unter Club RAW - chapter (3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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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5# Illusionist
“조심해라! 이놈들은 우리 분신이야!”
“젠장! 어쩐지 비슷한 느낌이 들더라니!”
그때, 놈들 중 하나가 번쩍이는 섬광을 일으키며 자취를 감추었다. 늘씬한 체형에 가느다란 팔다리를 가진 데 비해 가슴과 엉덩이 부분이 유독 도드라진 리빙아머였다. 그리고 겨우 눈 한 번 깜박일 정도의 시간이 지났을 때, 일행은 갑자기 정수리를 비롯한 얼굴 위쪽이 뜨거워지는 것을 느꼈다.
“위다!”
모습을 감추었던 리빙아머는 어느새 일행의 머리 위, 천장 쪽에 나타나 있었다. 철철 흘러 넘치는 붉은 빛의 마력을 갑옷처럼 휘감은 녀석은 이내 아래의 탐사대에게 불꽃의 폭우를 내리기 시작했다.
어두컴컴한 천정을 새하얀 빛으로 물들이며 쏟아지는 불덩이 세례를 본 일행의 낯빛은 순식간에 해쓱해졌다.
“맙소사! 저건 유진이 언니잖아!”
“내가 막겠어!”
벼락처럼 튀어나간 임유진은 노도와 같은 광염의 기운을 일으켰다. 그녀의 팔에서 날개처럼 펼쳐진 불꽃의 자락은 삽시간에 그 영역을 넓히며, 하늘에서 쏟아져 내리는 불의 비(炎雨)와 드넓은 전선을 만들었다.
그것이 도화선이었다. 두 불꽃의 향연에 공동 안의 공기가 질식하리만치 후끈 달아오르자, 탐사대와 리빙아머 부대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전투에 돌입했다.
데모나를 닮은 리빙아머의 손에서 녹빛의 독연(毒煙)이 방출되어 안개처럼 퍼져나가자 안세희가 광역정화로 맞서는가 하면, 그녀의 분신이 핏빛 화살을 날려 보내면 헨더슨이 화염의 장막을 일으켜 맞대응했다. 복제된 리빙아머들은 일반적으로 알려진 주문들은 물론이고, 벌레교단과 마녀회의 비전까지 놀라운 정밀도로 구현해내는 모습이었다.
근거리에서 펼쳐진 난전은 더욱 살벌했다. 어둠 속으로 스며든 네 명의 암살자는 서로 보이지도 않는 속도로 움직이며 소리 없는 공방을 주고받았다. 반면, 이두식과 노구덕, 그리고 그 분신들의 싸움은 그 거대한 덩치들에 걸맞게 무지막지한 난타전이었다.
콰앙!
미세하게 우그러진 갑옷에 투기를 두른 주먹이 작렬했다. 그 충격을 이겨내지 못한 리빙아머의 자세가 미세하게 흐트러지자, 노구덕은 달리던 추진력을 이용해 어깨로 놈의 동체를 들이받았다.
그러나 놈은 공성전차와도 같은 일격을 맞고도 여전히 쓰러지지 않았다. 오히려, 만세를 하듯 양 팔을 펼치더니 품 안에 파고든 노구덕의 옆구리를 노렸다. 그에 노구덕은 급히 투기를 일으켜 비어 있는 공간을 틀어막았다.
“놈! 어림없다!”
철퇴처럼 내리꽂히던 주먹이 무형의 장벽에 가로막히며, 그 접점에서 붉은 스파크가 방전했다. 리빙아머는 투기의 방벽을 뚫기 위해 안간힘을 썼지만, 불사마력을 근간으로 한 노구덕의 투기는 그리 만만한 것이 아니었다.
노구덕은 그 틈을 타, 놈을 힘껏 밀어붙임과 동시에 다리를 걸어 신체의 균형을 무너뜨렸다. 어찌 됐든 이 리빙아머는 그와 같은 파워 타입, 힘과 힘의 대결이라면 먼저 마운트 포지션을 잡는 쪽이 유리하다는 판단이었다.
황소처럼 질기게 버티던 거구의 리빙아머가 마침내 뒤로 벌러덩 넘어지고, 노구덕이 그 위로 몸을 날리려는 찰나, 배후의 공기가 화끈하게 덥혀지는 것을 감지한 노구덕은 급히 고개를 모로 젖혔다.
간발의 차이로 그의 머리 옆을 스친 것은 이글거리는 불길로 휩싸인 은빛의 갑주. 기습적으로 발차기를 날린 것은 임유진을 본 딴 리빙아머였다. ‘파리의 초감각’이 아니었다면 자칫 두개골이 박살이 났을 위험한 상황. 물론…‘불멸자’인 그라면 두개골이 터져나간 상황에서도 복구를 할 수 있을 테지만, 어쨌든 위기였던 것은 분명했다.
“여보!”
분신의 뒤를 바짝 쫓아, 세찬 돌풍을 일으키며 등장한 것은 말할 것도 없이 임유진이었다. 그녀는 자신이 마크하던 복제품이 돌발적인 변칙으로 노구덕에게 위해를 입힐 뻔한 것에 크게 책임을 통감하듯, 아랫입술을 꽉 깨문 얼굴이었다.
“죽어!”
드물게도 모진 단어를 입에 담은 임유진의 그림자가 꺼진 불빛처럼 명멸했다. 그림자가 다시 나타났을 때, 그녀의 손에 들린 광염의 창은 분신의 흉부를 사정없이 꿰뚫고 있었다. 임유진은 꼬치처럼 꿰여버린 분신의 동체를 사납게 바닥으로 내동댕이쳤다. 붉은 봉황을 상대로 감히 한 눈을 판 대가는 이토록 무서웠다.
임유진이 난폭하게 날뛰는 모습을 지켜보던 노구덕은 슬며시 이마에 맺힌 땀을 닦았다. 당한 것은 리빙아머인데, 왜 자신의 이마가 축축해지는지는 알 길이 없었다.
잠시 딴 생각을 하던 노구덕의 시야에 느릿하게 몸을 일으키는 거구의 리빙아머가 들어왔다. 깨진 투구 사이로 엿보이는 놈의 얼굴은 처음 봤을 때처럼 무감정 일색이었다. 도움을 주러왔던 동료가 엉망으로 당했음에도 전혀 개의치 않는 모습.
“쯧.”
노구덕은 불만스럽게 혀를 찼다. 한낱 마법적인 피조물에 불과한 리빙아머이니 감정이란 게 있을 리 없겠지만, 그래도 자신과 똑같은 얼굴을 한 놈이 아내(?)가 당했는데도 저리 태평하게 서 있는 것이 통 마음에 들지 않았다.
“가장으로서 기본이 되어 있지 않은 놈이군. 그 정신머리를 고쳐주겠다.”
벌써 건드린 여자가 넷이나 되는 자기의 처지는 전혀 고려치 않고 막말을 내뱉는 노구덕이었다.
우두둑! 손에서 위협적인 마디뼈 소리를 낸 노구덕이 자리를 털고 일어난 분신과 이차전에 돌입하려는 그때였다.
별안간 공동 한구석에서 찬란한 황금빛 빛무리가 일어나더니, 탐사대와 분신들 사이에 두터운 빛의 장막을 드리웠다.
“이건…?”
복제품과의 사이를 갈라 놓은 황금빛 장막을 본 노구덕은 어처구니가 없다는 표정이었다. 이 성스러운 황금의 장막은 아벨 교단의 보호 주문이자, 지금은 은퇴한 허문수가 장기로 삼았던 신의 가호(Divine protection)였다.
저쪽 무리에서 이 주문을 쓸 수 있는 개체라고 한다면, 당연히 안세희를 본 딴 리빙아머일 터. 신앙심이라고는 애초에 존재하지 않는 마법 생명체가 신성 주문을 쓰는 모양새가 퍽 우습기 짝이 없었다.
어느덧 대부분의 리빙아머들은 전투에서 이탈하여 황금빛 장막 내부로 속속들이 모여들고 있었다. 남은 리빙아머들의 개체 수는 일곱 기. 그 잠깐의 교전으로 다섯 기의 리빙아머가 전투불능이 된 상태였다. 남은 녀석들 또한 그리 좋은 상태는 아니어서, 팔 다리가 떨어져 나갔거나 전신 장갑이 심하게 훼손된 녀석들이 대부분이었다.
그에 비해 노구덕의 주위로 모여든 헌터들의 상태는 비교적 멀쩡했다. 심지어 전투능력이 많이 뒤떨어지는 네리아와 황기종도 핼쑥한 낯빛에 비해 달리 큰 부상은 없는 모습이었다. 아이리스 탐사대가 애초부터 그들을 보호하기 위한 방진(方陣)을 둘러친 덕분이기도 하지만, 근본적인 원인은 따로 있었다.
예기치 않게 전투가 소강상태에 접어들며 의견을 교환할 짬이 생기자, 노구덕은 가까이 있는 이두식을 일별하며 물음을 던졌다.
“두식아, 너도 느꼈겠지?”
“예. 큰형님. 이놈들… 많이 약합니다.”
“싸워 보니까 의외로 상대하기가 수월하던데요? 완전한 복제는 아닌 것 같아요.”
나타샤의 말에 끄덕끄덕 움직이는 헌터들의 얼굴들. 그들도 직접 전투를 하다 보니 알게 된 것이다. 저 리빙아머들은 완전한 분신이 아니라는 것을.
말하자면 반쪽짜리라고 할까. 전체적인 능력이 100이라고 한다면 그 중의 60, 70 정도밖에는 출력을 내지 못하는 것 같았다. 그마저도 대상의 능력 중 위력적인 것 하나 정도를 골라잡아, 그것 하나만 겨우 원본에 가까운 위력을 낼 수 있는 모조품들이었다.
“내 분신은 투기를 일으키지 못하더군. 거의 충왕각인 정도만 복제한 것 같았다.”
“저는 잘 모르겠지만… 근력이나 민첩성이 많이 뒤떨어진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이두식이야 전투스타일이 하나로 한정되어 있으니 아예 전체적인 능력이 다운그레이드가 된 것 같았다.
그밖에도 여러 제보가 쏟아졌다. 예를 들어, 임유진의 분신은 스피드가 부족했고, 데모나의 분신은 사령술을 쓰지 못했으며, 김진솔의 분신은 중첩 강화를 걸지 못하는 반쪽짜리였다. 심지어 박지현의 분신은 불쌍하게도 말조차 소환하지 못하는 뚜벅이 신세였다고. 덕분에 박지현의 분신은 전투 개시 십여 분도 되지 않아서 네리아, 황기종의 복제품과 나란히 정리를 당하는 처지가 되고 말았다.
모습과 능력을 본 딴 분신들이라 하여 긴장했던 전투 초기를 상기하면, 조금 맥이 빠질 정도로 능력이 모자란 녀석들이었다.
하지만, 안심하기에는 아직 일렀다. 공동을 둘러싼 은빛 장막에서 다시 한 번 소용돌이 같은 기류가 흐르고 나자, 그 사이로 다섯 기의 리빙아머가 척척 절도 있게 걸어 나오는 것이 보였다. 새로이 등장한 놈들은 총 다섯 기. 형태로 보나, 숫자로 보나, 전투불능에 빠진 다섯 기가 새로이 충당된 것이 틀림없었다.
그것도 모자라 신의 가호를 앞세워, 뒤에서 전열을 추스르던 나머지 리빙아머들의 외양도 말끔히 복구가 된 상태였다.
금세 전력을 회복한 리빙아머들이 다시 진형을 갖출 기미를 보이자, 헨더슨은 이마에 주름을 잡으며 푸념했다.
“젠장. 저럴 줄 알았지. 처치할 때마다 계속해서 전력을 보충한다면, 놈들이 아무리 반쪽짜리라고 해도 이쪽이 먼저 지칠 수밖에 없어.”
“이 공동 어딘가에 마력원이 되는 매개체가 있을 거예요. 그걸 찾아야 해요.”
“마력원이 꼭 이곳에 있으리란 법은 없지. 어떤 리치처럼 이차원에 숨겨 두는 수법도 있으니까. 할망구, 아는 거 없어?”
-…큼! 이건 거울상 결계의 응용인 것 같다.
어쩐지 구슬이 부들부들 떨리는 것이 꼭 울화를 억누르는 것 같았지만, 상황이 상황이었기에 베로니카도 쓸데없는 언쟁으로 시간을 잡아먹진 않았다.
“거울상 결계? 월광의 무녀가 거울의 숲에 둘러쳤던 그 결계를 말씀하시는 건가요?”
-그래. 이건 아마도 미러이미지(Miror image)… 결계 안에 갇힌 자들을 복제하여 그 자신의 분신과 싸우게 만드는 환상 주문일 거다. 분신들의 출력이 부족한 건 너희들의 전력이 마력원으로 복제할 수 있는 수준을 뛰어넘었기 때문이겠지.
베로니카의 얘기가 길어지자 데모나는 수정구를 톡톡 건드리며 그녀를 채근했다.
“본론만 말해. 짧고 간단히.”
-끄응… 내 생각엔, 저것들과 싸우는 건 시간낭비다. 마력원이 유지되는 이상, 끊임없이 재생을 반복할 테니까.
“그럼 어떻게…?”
-간단하다. 저것들을 그냥 내버려두고 도망치면 된다. 마법진이 이 공간에 한정되어 있는 한, 이 구역을 벗어나기만 하면 저 분신들은 너희를 쫓지 못할 거다.
베로니카의 해답을 들은 노구덕과 임유진은 얼떨떨한 얼굴로 서로를 마주보았다. 얼핏 듣기엔 간단한 해결책 같았지만, 실상은 그렇지 못했다. 은빛 장막으로 둘러싸인 이 공동은 완전한 밀실이었던 것이다. 사방이 막혀 있는 벽을 포함해서, 위를 보나 아래를 보나 어디에도 다음 지역으로 통하는 출구 같은 건 보이지 않았다.
수정구 안에서 일행이 우왕좌왕하는 것을 본 베로니카는 딱하다는 듯 끌끌 혀를 찼다.
-이렇게 사고가 경직되어서야 어디다 써먹을꼬. 이것들아, 이 유적의 본질이 무엇인지 벌써 잊었느냐?
“아! 환상(幻想)…!”
“알았어요! 그러니까 저기 저것들이 지키고 있는 뒤편에 통로가 숨겨져 있다, 그 말이죠?”
“아니. 아마 그건 아니지 않을까요?”
득의양양하게 소리치는 신소율의 말에 이의를 제기한 것은 뜻밖에도 이런 의견 개진에는 늘 소극적이었던 김진솔이었다.
신소율은 김진솔이 자기 말에 바로 토를 달자, 성난 암코양이처럼 앙칼지게 눈썹을 추켜올렸다.
“뭐어? 진솔이 너, 그게 무슨 소리야? 저기 뭔가가 있으니까 계속 저놈들이 저곳만 지키고 있는 게 아니겠어?”
“누, 누나 말도 일리는 있지만… 이 유적을 만든 사람은 마술사 같은 거라면서요? TV에서 보니까 심리트릭을 쓰는 마술사는 관객의 허를 찌르는 것을 좋아한다던데… 아무래도 그건 좀 뻔하지 않을까요? 저라면 아마도 비어있는 뒤쪽에 출구를 만들어놨을 것 같아요.”
둘 다 나름의 근거가 있는 의견이었다. 두 사람의 의견을 저울질해 보던 노구덕은 고개를 끄덕이며 임유진을 바라봤다.
“다툴 필요 없이 확인해 보면 되겠지. 유진아.”
“네!”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임유진의 팔을 휘감은 불꽃이 거대한 화염의 창이 되어 일행의 뒤쪽 벽면을 향해 날아갔다.
콰광!
크고 작은 돌가루가 휘날리며 화염의 창에 격중된 벽면이 심하게 파손되었으나, 그 너머로 보이는 것은 여전히 꽉 막힌 석벽이었다. 그것을 본 김진솔의 얼굴에 옅은 실망감이 어리고, 신소율의 입매가 기분 좋게 샐그러지려는 찰나.
“엇? 저길 봐요!”
나타샤가 가리킨 곳, 뒤쪽의 석벽 일부에서 기이한 현상이 눈에 띄었다.
석벽에서 흘러내린 돌가루의 일부가 벽면으로 흡수되듯 사라지고 있었던 것이다. 자세히 보지 않으면 알아차리지 못할 정도로 미세한 일부. 그러나 헌터들의 예리한 눈썰미를 속일 수는 없었다. 필시, 저 부근에 환상으로 가려진 통로가 있는 것이 분명했다.
============================ 작품 후기 ============================
재밌게 보셨다면 추천/코멘 부탁드립니다.
싸우지 않고 도망치기.
오늘은 개인 사정상 저녁화를 올리지 못할 것 같습니다… 양해부탁드려요!
즐거운 주말 되시길 바랍니다!
두패7878 / 잘 보고 있으시다니 다행입니다. 감사합니다!
월병인 / 애초에 고자…
달음누리 / 출력이 고자였다고 합니다.
불타는고기 / ??? 갑자기 정력 얘기가..!
벌레 / 기승전정력…
가식적썩소 / 오타 수정했습니다! 감사합니다!
호야[虎夜] / 맞춤형 갑옷입니다.. 였던가요 ㅋㅋ
서울우유 / 아, 박지현의 저널 정보는 차후 10편 이내에 본문에 수록토록 하겠습니다! 1부 이후 나타난 저널표는 1부 주요 인물들의 표인지라.. 지현이를 건너뛰었었네요!
은신설야 / 감사합니다아아아
†아마테라스† / 아마 나중에 나올 때 챙겨나올 수도..
트릭스타 / 그런 클리셰와 다른 점은 도플갱어들이 매우 약하다는 것..?
김도리131 / 음. 기본적으로 이 유적은 결계로 숨겨져 있기 때문에 네리아의 목걸이가 없으면 발견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늑대왕도 네리아를 쫓고 있었던 거고요. 늑대왕을 차후 어떻게 상대할 건지는.. 스포가 될 수 있으므로! 쉿! 하도록 하겠습니다.
asd메이지 / 헨더슨웨건!
수백사 / 영웅전설5를 안해봤지만.. 거기도 비슷한 던전이 있나요?
신수[神手] / 단순 갑옷 성능으로는 그리 좋은 갑옷은 아닌지라..
shakai / 오크는 계속 오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