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unter Club RAW - chapter (3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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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5# Illusionist
-아아아아아아아–!
대공동 안이 브리트라의 처절한 비명으로 가득 차올랐다. 네리아의 목걸이를 매개로 브리트라의 본체와 연결된 심연의 촉수가 브리트라의 정기를 좀먹을 때마다, 장내에 퍼져 있는 브리트라의 기운이 눈에 띄게 약해져갔다.
소울 트랩의 무서운 점은 대상의 흡수한 정기를 원동력 삼아, 악몽의 현현을 무한히 유지할 수 있다는 점이다. 더불어 대상의 힘이 강하면 강할수록, 그에 비례하여 소울 트랩의 위력도 배가 되었다.
-괴롭다…! 너무 괴로워……! 이 무슨 사악한 술법이란 말이더냐!
브리트라의 마력을 원동력으로 하는 미라지 나이트가 작동을 멈추고, 본체의 마력으로 구현된 왕뱀의 형상이 곧 사라질 신기루처럼 반투명하게 흐려졌다. 본체에 연결된 심연의 촉수가 그녀의 강력한 기운을 빨대처럼 쪽쪽 빨아들이자, 임유진이 아무리 때려도 끄떡없던 수정막에 점점 커다란 균열이 생기기 시작했다.
저주는 성공적이었으나, 주문을 건 술자인 데모나의 처지도 그리 좋지만은 못했다.
“…쿠웁! 커억!”
“데, 데모나 언니!”
온 정신을 집중하여 소울 트랩을 유지하던 그녀의 볼이 느닷없이 빵빵하게 부풀더니, 그 입에서 한 움큼이나 되는 핏덩이가 토해졌다. 데모나의 검은색 로브는 그녀가 흘린 땀방울로 진하게 젖어든 채였다.
누가 뭐라 해도 브리트라는 신격을 지닌 지고한 존재다. 천 년 이상을 이어온 그 고고한 정신은 일개 인간에 비할 바가 못 될 정도로 강하여 소울 트랩으로도 완전히 굴복시킬 수 없는 수준. 아니, 애초에 브리트라가 발레기우스와 싸운 후유증으로 많이 쇠약해져 있지 않았다면, 소울 트랩 자체가 먹히지 않았을 것이다.
브리트라의 정신은 아직도 심연 속으로 빨려들기를 거부하며 격렬히 저항하고 있었고, 덕분에 그 반동은 고스란히 술자인 데모나에게 전해지는 중이었다.
말하자면 이건 시간 싸움. 브리트라가 먼저 끝장나느냐, 아니면 데모나가 먼저 나가떨어지느냐가 관건인 싸움이었다.
-미라지 나이트, 가동 불능. 장비를 정지합니다.
막 힘을 잃은 미라지 나이트의 가슴팍을 짓뭉개버린 노구덕은 돌아가는 사정을 빠르게 파악했다. 그는 쇳조각이 묻은 주먹을 털어내며 이두식과 나타샤에게 자리를 지킬 것을 주문하고 제단 쪽으로 힘껏 달려 나갔다. 가능한 전력을 동원할 수 있다면 좋겠지만, 만약 미라지 나이트의 기능이 다시 회복될 때를 대비해 놈을 붙잡아 둘 사람이 필요했다.
그 무렵, 정신없이 수정을 두들기던 임유진 쪽도 슬슬 가시적인 성과가 나타나고 있었다. 군데군데 실금이 간 상태로도 리치의 절대방어가 우습게 느껴질 정도의 견고함을 뽐내던 수정이, 임유진의 맹폭에 하얀 가루를 휘날리며 점차 깎여나가고 있었다.
“허억, 허억…!”
거의 모든 마력을 쏟아붓다시피 한 임유진의 안색은 데모나와 우열을 가릴 수 없을 만큼 창백했다.
수정 속 강철 왕좌에 앉아, 독살스러운 뱀눈으로 그녀를 노려보고 있는 여인은 말하자면 브리트라의 심장과도 같은 존재. 비유하자면 리치의 라이프베슬이라 할 수 있을 터다. 과연 천 년의 신격을 지닌 존재답게, 그녀를 둘러싼 수정막은 철옹성 같은 견고함을 보였으나 그것도 이제 한계. 슬슬 끝이 다가오고 있었다.
수정막 안, 브리트라의 본체는 불안한 내색을 숨기지 못한 채, 그 미려한 얼굴을 애타게 일그러뜨렸다.
-이 지독한 것! 물러나지 못하겠느냐!
“…죄송하지만, 그럴 수는 없을 것 같네요.”
화르륵!
힘없이 입꼬리를 끌어올린 임유진의 손아귀에, 다시금 이글거리는 열기를 내뿜는 불꽃의 창이 휘감겼다. 이윽고, 초열로 타오르는 그 창끝이 무시무시한 속도로 회전하기 시작했다.
현재 낼 수 있는 최대한의 화력을 한 점으로 집중시킨 임유진은 나직이 심호흡을 하며 한 걸음을 앞으로 내딛었다. 그 시야에, 격정에 사로잡혀 활화산 같은 진노를 터뜨리고 있는 브리트라의 여린 몸뚱이가 들어왔다.
-감히…! 그만두지 못할까!
살짝 눈을 감았다 뜬 임유진은 애원처럼 들려오는 호통을 무시한 채, 한껏 뒤로 젖힌 팔을 그대로 브리트라의 심장부에 꽂아 넣었다.
-아아아아아악—!
목청이 찢길 듯한 비명과 함께 터져 나오는 섬광. 허용 범위를 뛰어넘는 광량에 최대한 눈매를 가늘게 좁힌 임유진은 긴장한 낯빛으로 강철의 왕좌를 주시했다.
까가가가각…!
두텁게 가로막혀 있던 수정막이 부서져 내리고 있었다. 중앙에 뚫린 주먹만한 구멍을 기점으로, 급속도로 확산된 분쇄의 파문은 이내 수정 전체로 퍼져나가며 거대한 붕괴를 일으켰다. 그렇잖아도 이미 무수한 실금이 새겨져, 약해질 대로 약해져 있던 수정막은 지금까지의 강고함이 거짓이었던 것처럼 덧없게 허물어졌다.
그와 동시에, 생생히 드러난 강철왕좌의 그림자 속에서 문어다리처럼 꿈틀거리는 촉수 다발이 득달같이 일어나 브리트라의 육신을 칭칭 옭아매었다. 결계가 파괴되어 브리트라의 정신이 큰 타격을 입자, 그간 애써 억누르고 있던 소울 트랩의 저주가 들불처럼 고개를 쳐든 것이다.
-이놈들…! 아아아악—!
“수고했어. 몸은 어때?”
소울 트랩에 잠식된 브리트라의 앞을 지키며, 왠지 모르게 착잡한 낯빛을 하고 있던 임유진은 뒤에서 들려온 중저음의 음성에 살짝 고개를 돌렸다.
“전 괜찮아요. 그보다 다른 애들은요?”
“소율이가 많이 다치긴 했는데, 생명에 지장이 있을 정도는 아니야. 그 외에는 전원 무사하고.”
“다행이네요. 정말….”
임유진은 가슴을 쓸어내리며 안도했다. 신격을 얻은 존재를 상대로 이 정도의 경미한 피해라면, 그야말로 하늘이 도운 셈이었다.
만약 브리트라의 상태가 온전했다거나, 네리아의 목걸이가 없었다거나, 데모나의 저주가 없었다거나… 이 모든 요소 중 하나라도 어긋났다면 결코 이리 쉽게 승리를 쟁취하지는 못했을 터. 하긴, 애초에 그러한 ‘승리 요소’에서 충분한 승산을 봤기에 시도할 수 있었던 전투다. 노구덕은 승산 없는 싸움에 목을 맬 만큼 아둔한 인간이 아니었으니까.
‘그래도, 아슬아슬하기는 했군.’
상념을 떨친 노구덕은 고통에 울부짖는 브리트라를 무심히 내려다보았다.
“유진아, ‘핵’의 위치는? 알 수 있겠어?”
“아마 심장인 것 같아요. 그런데… 카름처럼 핵을 추출하는 방법이 효과가 있을까요?”
“자기 손으로 심장을 떼 줄 리는 없으니, 시도라도 해 봐야지.”
무미건조하게 툭 내뱉은 노구덕은 주저하지 않고 브리트라의 가슴팍에 뾰족하게 세운 손을 쑤셔 넣었다.
-카하아악…!
“어디 보자, 이쯤인가? 아, 여기로군.”
파들파들 경련하는 브리트라의 몸속을 무자비하게 손으로 헤집던 노구덕은 마침내 거세게 맥동하는 심장을 찾아 움켜쥐고는, 일말의 사정도 두지 않고 그것을 뽑아버렸다. 그러자 처참하게 열린 환부에서 무참한 피보라가 일며, 차가운 강철 왕좌의 아래에 흥건한 피웅덩이를 만들었다.
활어처럼 펄떡펄떡 뛰어오르며 사방으로 선혈을 뿜어대는 브리트라의 심장은 외견상 사람의 심장과 그리 다를 바가 없었으나, 전체가 은은하고도 영묘한 푸른 기운으로 둘러싸여 있어 범상치 않은 모습이었다.
-으으으… 네놈…!
“아직 죽지 않았나? 끈질기군.”
브리트라의 화신은 가슴이 처참하게 파헤쳐져, 그 심장을 잃고도 아직 숨이 붙어 있었다. 브리트라는 불구대천의 원수를 대하듯 노구덕을 노려보았지만, 정작 그는 그 원독어린 눈길을 받고도 심드렁한 표정이었다. 소기의 목적도 달성했겠다, 빈껍데기만 남은 브리트라의 화신에게 미련을 가질 턱이 없었다.
그때, 제단 아래쪽에서 모질고 날카로운 외침이 들려왔다.
“무슨 짓이야! 무녀님을 죽이다니!”
아래를 내려다보니, 두 눈을 시퍼렇게 부릅뜬 네리아가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대고 있는 게 보였다.
‘저걸 치워달라고 할 때는 언제고.’
그새 또 태세 전환을 한 그녀를 한심하게 일별한 노구덕은 낮게 혀를 차며 가볍게 대꾸했다.
“아직 죽지는 않았습니다만?”
“그, 그 심장을 뽑아버렸잖아!”
“이래봬도 신격을 지닌 화신체입니다. 고작 심장을 뽑힌 정도로 맥없이 죽어버리지는 않지요. 보십시오, 멀쩡히 살아있지 않습니까?”
앙칼지게 나섰던 네리아는 노구덕의 궤변에 일순 말문이 막혀 주춤거렸다. 그 말대로, 쉴 새 없이 피를 흘리는 참혹한 몰골이었지만, 브리트라는 아직 살아있었다.
“그…….”
“아무튼 잘됐습니다. 여기, 가져가도록 하십시오.”
노구덕은 강철 왕좌 위로 걸레처럼 축 늘어져 있는 브리트라의 화신체의 멱살을 잡아 일으켰다. 막상 일으켜 세우니, 딱 소피아 정도의 아담한 체구를 가진 여인이다. 무심코 찢어진 옷자락 사이로 드러난 우윳빛 살결에 시선을 준 노구덕은 이내 미련 없이 여인의 몸을 네리아가 있는 쪽으로 내던져버렸다.
“무, 무녀님!”
허겁지겁 브리트라가 쓰러진 곳으로 달려온 네리아는 서둘러 그녀의 상세를 살피다, 아연히 머리를 쳐들었다.
“마, 마력이 거의 없잖아?”
헌터들에 비해 실력이 모자라기는 하지만, 그녀 자신도 달의 마력을 다루는 마법사다. 평생을 익숙하게 다뤄 온 기운을 느끼지 못할 리 없었다.
심장이 뽑혀나간 브리트라의 몸뚱이는 속 빈 강정이나 다름없었다. 그나마 느껴지는 기운은 체내에 남아 있는 미약한 잔존 마력일 뿐, 방금 전까지 탐사대를 몰아붙였던 그 강대한 달의 마력은 흔적조차 없이 사라져 있었다.
“그, 근원… 근원은 어디에? 설마…!”
브리트라의 육신을 몇 번이고 더듬으며 마력 스캔을 하던 네리아의 움직임이 일순 정지한 듯 멈추었다. 딱딱하게 굳어진 얼굴이 제단 위를 향하고, 의심으로 얼룩진 시선이 노구덕의 손에 머물렀다.
“그 심장… 그게 달의 마력의 근원… 맞지?”
“그렇습니다. 무슨 문제라도?”
“그건 내꺼야!”
보듬고 있던 브리트라의 육신을 내팽개치고, 발작하듯이 일어선 네리아는 노구덕에게 당당히 팔을 내뻗었다.
“약속했잖아! 마력의 근원을 되찾아주기로! 숲이 잃어버린 마력을 되찾으려면 그게 필요해! 어서 이리 줘!”
당연하다는 듯 펼쳐진 그 손바닥을 물끄러미 쳐다보던 노구덕은 피식 입매를 터뜨리며 머리를 흔들었다.
“무슨 말씀이신지…. 계약 내용은 무녀를 다시 불러와 달라는 것 아니었습니까? 약속대로, 무녀를 되찾아 드렸으니 그것으로 끝난 거지요.”
“…뭐?”
쿵! 그렇잖아도 크게 홉떠진 눈알이 찢어질 듯 튀어나오고, 하얀 눈자위에 선연한 혈관 다발이 빠직거리며 올라왔다. 아연실색한 네리아는 일순,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 헛웃음을 치고 말았다.
“…하아. 이제 와서 그런 억지가 어디 있어? 누가 이따위….”
그녀는 바닥에 쓰러져 뒹구는 브리트라를 발로 툭 걷어찼다.
“…쓸모없는 껍데기가 필요하댔어? 당신이 손에 쥔 그게 필요한 게 당연하잖아. 부족을 다시 규합하고, 늑대왕과 싸우려면 그게 필요하단 말이야. 장난하지 말고 이리 넘겨 줘. 약속을 지키란 말이야.”
“죄송하지만, 그럴 수는 없습니다.”
“…….”
우두커니, 동력이 끊긴 리빙아머처럼 서 있던 네리아는 돌연 넋 나간 사람처럼 주저앉았다. 그제야 노구덕이 절대로 심장을 넘겨줄 생각이 없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아니, 눈치챈 건 그보다 훨씬 이전이었지만, 그녀의 머리가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했을 뿐이었다.
“호, 호호… 결국, 이렇게 나오는 거야? 이 배신자! 그렇다면 나도 생각이 있어!”
실성한 사람처럼 중얼거린 네리아는 차갑게 식어가는 브리트라의 동체에 손을 얹었다.
“무녀님! 내 마력을 다 주겠어! 유적을 둘러싼 결계를 해제해버려! 다 죽어가도 그 정도는 할 수 있겠지! 할 수 있어야 해!”
-…약간 부족하지만, 내 잔존 마력을 보탠다면 어떻게든 가능하다. 넌 적합 인자를 가진 몸이니.
“그럼 어서 해! 그러면 더 무서운 놈이 나타나서 당신의 복수를 해 줄 테니깐!”
“어딜!”
네리아와 브리트라에게서 심상치 않은 낌새가 보이자, 임유진은 재빨리 손을 떨쳐 단검을 쏘아 보냈다. 하지만, 그보다 앞서 네리아를 감싼 그림자가 있었다.
“…컥!”
뻥 뚫린 복부를 감싸 쥐며 울컥 피를 토하는 인물, 그는 바로 황기종이었다.
============================ 작품 후기 ============================
재밌게 보셨다면 추천/코멘 부탁드립니다.
네리아가 기어코 일을 저지르네요. 여자를 가려 사귀어야 한다는 예시를 온몸으로 보여주는 황기종..
그리고 늑대가… 온다!
아~ 오늘은 크리스마스 이브입니다. 모쪼록 성탄절.. 즐겁게 보내시기 바랍니다. 잊고 계신 추천이라도 상큼하게 찍어주시면 감사하고요! 하하..
지악 / 쿠폰 감사합니다! 열심히 달려보도록 하겠습니다!
audduf11 / 크리스마스에 연참… 왜 눈물이…
벌레 / 기승전정력… ㅡㅡb
카론느 / 이미 노구덕이 금수이거늘…
빅대어 / 조만간 항암제 투척해드리겠습니다.
호야[虎夜] / 그래서 이번화는 아침드라마 컨셉으로..
비켜봐 / 쓰다 보니 희한하게 그쪽 장르가 된 듯한..?
은신설야 / 넵 저도 항상 감사하지요! 크리스마스 잘 보내세요!
월병인 / 두고 보자는 년치고 무서운 년 없다지요
Velos / 작가.. 흘린다… 눈물..
페르첸 / 너무 노골적으로 찍혔나요??
북치네 / 미저리.. 현실화.. 아침뉴스에 나오는 건가요 ㄷㄷ
신수[神手] / 유진이.. 브리트라를 보며 동질감을?
노루찡 / 철퇴정도로 끝날 것 같지가 않네요..
싴느님포에버 / 제 작품은 생각없이 보시면 재밌습니다. 아마도요..
펄미스트 / 턱주가리로 끝나지 않을 듯 싶습니다.
샤트리나 / 악역(?).. 아니 통수역은 원래 정이 가기가 힘들지요
가식적썩소 / 아하 모바일과 웹이 차이가 있었군요
김도리131 / 노예로 끝나면 그나마 감지덕지
아토므스크 / 비켜봐 시켜볼게 있어..
zunny / 뱀술은 거의 다 담궜는데, 녹용이 문제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