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unter Club RAW - chapter (3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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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7# 연맹총회
87# 연맹총회
연맹총회(聯盟總會). 매년 분기마다 1회, 총 4회가 개최되며, 대륙 전역에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연맹의 행동지침을 결정하는 총회이다.
연맹총회의 구성은 크게 상원(上院)과 하원(下院)으로 나뉘는데, 대부분의 자잘한 안건들은 일반 대도시의 연맹위원들로 구성되는 하원에서 처리되는 게 보통이었다. 그러나 정말로 중요한 문제들… 예컨대 프라임리그에 관련된 사항이라든가, 체제에 영향을 주는 입법(立法) 활동 같은 경우엔 거의 모든 사항이 상원의 결정에 의해 처리되었다.
이 양원제 구조는 자세히 들여다보면 극한의 신분제 사회라고도 할 수 있었다. 하원에 속한 연맹위원들은 자잘한 업무를 도맡아 처리하는 대신, 정작 대륙의 정세에 영향을 줄 수 있는 굵직한 안건에 대해서는 거의 발언권을 행사하지 못했다. 그들이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것은 그나마 자기 도시에 관련된 사안 정도가 전부. 말하자면, 연맹에 있어 하원은 잔가지들을 모아 놓은 모임에 지나지 않았다.
반면, 각 지구를 대표하는 ‘지구위원’과, 각 분야의 전문가들이 모인 ‘상임위원’들로 구성된 상원은 그야말로 권력의 핵심이었다. 대륙의 판세를 가르는 모든 정책 활동이 그 자리에서 결정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으니까. 오라클 등 각 부처의 인사 활동을 결정하는 기관 역시 상원이었다.
‘상임위원회’. 하원과는 아예 차원이 다른 권력을 휘두르는 상원의 또 다른 이름이었다. 그리고, 과거 칼립스 연맹위원이었던 마티아스가 그토록 닿고자 했던 권력의 핵심이기도 했다.
“…각지에서 왕이라 불려도 이상하지 않은 권력을 지닌 게 연맹위원인데… 이들이 아무리 모여 봤자 상원 아래의 잔털들에 불과하다니…….”
조용히 좌석에 앉아 있던 노구덕은 낮은 한숨을 내쉬었다. 엄청난 노력과 심혈을 기울인 끝에 겨우 손에 넣을 수 있었던 연맹위원의 자리이건만, 이곳 연맹총회에서는 길바닥에 흔히 널려 있는 자갈에 불과했다.
여기도 연맹위원, 저기도 연맹위원. 어디를 둘러봐도 연맹위원이다. 대부분이 그와 비슷한 초로의 사람들. 백발이 성성한 나이 지긋한 노인네들도 적지 않은 수였다. 숫자로 따져 보자면 백오십 정도 되려나.
“대도시… 많기도 하군.”
“그렇지? 하지만 보기보다는 적은 편이야. 각 지구의 주도처럼 인구수가 비대한 도시엔 두세 명의 연맹 위원이 임명되기도 하니까.”
“……?”
난데없는 설명에 고개를 돌린 노구덕은 곧 한 명의 여인과 시선을 마주쳤다. 많아야 스물 중반 정도 되었을까? 정열적인 장미를 연상시키는 붉은색 머리카락을 우아하게 틀어 올려, 상아빛의 목덜미를 과감하게 드러낸 여인은 보석처럼 반짝이는 눈동자를 깜박이며 시원한 미소를 지어보였다.
“이름은 노구덕. 칼립스 연맹위원이자, 곧 웨스턴리그로 승격할 아이리스의 오너. 그리고 본인은 리그 최상위권의 헌터…. 맞지?”
“실례지만 누구신지?”
“아, 나야말로 실례. 소개를 잊었네.”
자기 이마를 톡톡 두드린 여인은 장난스럽게 혀를 쏙 내밀더니, 천연덕스럽게 그의 옆자리에 엉덩이를 걸치고 앉았다. 그러자 임유진조차 압도하는 볼륨을 자랑하는 그녀의 가슴이 굉장히 발칙한 무브먼트를 선보이는… 게 아니라, 가슴팍에 달린 금빛 배지가 눈에 띄었다. 말인즉슨, 그녀도 그와 같은 연맹위원이라는 소리였다.
무심결에 출렁이는 물결을 넋 놓고 바라보던 노구덕은, 그 어림에서 반짝이는 금빛 배지를 보자 뇌리 한구석이 서늘해지는 느낌이었다.
‘저 젊은 나이에 연맹위원이라고?’
일러도 너무 이르다. 모르긴 몰라도 이곳에 모여 있는 연맹위원들 중에는 가장 어린 축에 속하지 않을까. 노구덕도 불과 4년을 꽉꽉 채워 위원직을 얻어냈으니 아주 경우가 없다고 볼 순 없겠지만, 그걸 감안해도 눈앞의 여인은 너무 젊었다.
이런 케이스는 대개 두 가지로 갈린다. 하나는 본인의 능력이 극히 뛰어나 자력으로 연맹위원직을 얻어낸 경우. 다른 하나는 그만한 ‘뒷배’가 있는 경우였다.
그런데 그때, 여인의 뒤에서 서릿발처럼 차가운 인상의 사내가 불쑥 모습을 드러냈다. 그 역시 여인과 마찬가지로 잘 봐줘야 이십대 중후반으로 보이는 젊은이였다.
“여기서 뭐하고 있는 거지?”
“아, 잠깐만….”
“잠깐만이 아니다. 어르신께서 급히 찾으시니, 바로 따라오도록 해라.”
젊은 남자는 여인의 옆에 앉아 있는 노구덕에게는 단 한번의 눈길도 주지 않았다. 완전한 무시. 상대할 가치도 없다는 태도였다.
“하이구…. 망할 영감탱이.”
어쩔 수 없다는 듯 절레절레 고개를 흔든 여인은 아쉬운 한숨을 흘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 바람에 일(一) 자로 빈틈없이 맞물린 가슴 윗부분이 다시금 시선을 확 잡아 끌었으나, 노구덕은 짐짓 아무렇지도 않은 듯 태연함을 가장했다.
“시기가 좋지 않네. 뭐, 내 풀네임은 나중에라도 들을 수 있을 테니까.”
“풀네임…?”
“그럼, 좀 이따 보자구. 노구덕 위원.”
자기 할 말만 좋을 대로 해놓고, 하얀 손을 팔랑팔랑 흔들며 사라지는 여인. 고삐 풀린 망아지 같다고 할까. 정말이지 끝까지 제멋대로인 여인이었다.
‘뭐하는 여자지? 살짝 정신이 이상한 여자인가?’
“에, 주목해주십시오. 그러면 다음 안건은… 칼립스와 긴트 간의 도로정비 예산안 분배에 관한 중재 안건입니다.”
휑하니 사라져버린 붉은 머리의 여인을 떠올리고 있던 노구덕은 서둘러 그녀의 모습을 머릿속에서 지워버렸다. 막 자신의 차례가 다가왔기 때문이었다.
“저자가 그 마티아스를 실각시켰다는 그자인가?”
“겉보기에는 영락없이 아둔한 오크인데….”
“뜻밖이구려. 마티아스는 중견위원들 중에서도 유력한 차기 지구위원 후보였는데…….”
딴에는 티가 나지 않게 저들끼리 속닥거리고 있었지만, 노구덕의 예리한 감각은 그런 잡소리들 하나조차 놓치지 않았다.
‘확실히 마티아스의 위상이 대단하긴 했었나 보군.’
그런 만큼, 마티아스를 몰락하게 만든 장본인인 노구덕에게 신경이 쏠리는 것은 당연지사. 하지만 별다른 중압감은 들지 않았다. 이런 빤한 시선이야 지구에 있을 때도 얼마든지 겪어 본 경험이 있었으니까.
“의장. 발언하겠습니다.”
“긴트의 허영덕 위원이시군요. 말씀해주시지요.”
노구덕보다 앞서 발언권을 가져간 자는 칼립스와 맞닿아 있는 대도시 긴트의 연맹위원, 허영덕이란 자였다. 공식석상에서 마주한 적은 없지만, 전임 위원인 마티아스와는 꽤나 사이가 돈독했다고 하던가.
바꿔 말하면, 그를 몰아낸 노구덕과는 그리 좋은 사이는 아니란 얘기. 아마 오늘 이후로 줄기차게 부딪칠 상대가 될 터였다.
“…누차 말씀드리지만, 분담 비율은 작년과 같은 비율로 가는 게 맞지요. 솔직히 저는 이 안건이 중재 명목으로 회부된 이유조차 모르겠습니다. 칼립스는 강철대로를 중심으로 교역이 활발한 도시지만, 긴트는 그런 기반 시설이 없지 않습니까? 전임 마티아스 위원도 저희 도시의 사정을 헤아려 예산안 가결에 힘을 보태주셨지요. 노구덕 위원도 부디 전임자와 같은 배포를 보여 주시기 바랍니다.”
문제가 된 것은 긴트와 칼립스 사이를 잇는 도로 재정비에 관한 예산이었다. 대대로 칼립스와 긴트를 잇는 도로는 그 물동량이 아주 활발한 탓에, 리버 같은 범죄자들의 주요 표적이 되어 왔다. 그런 까닭에, 두 도시를 잇는 도로는 잦은 전투로 인한 누더기 같은 꼴을 면할 수 없었는데, 쟁점이 되는 것은 이 보수비용을 어느 시에서 얼마나 분담하느냐였다.
마티아스가 있을 때에는 허영덕과 무슨 밀약이라도 맺었는지, 칼립스가 약 8 : 2의 비율로 비용을 분담했었다. 명목은 칼립스의 상단이 도로를 이용함으로써 얻는 편익이 더 크다는 것. 이에 새로이 위원이 된 노구덕이 이의를 제기하면서, 이렇게 문제가 불거져 나온 것이다.
물론, 허영덕의 말도 영 일리가 없는 건 아니었다. 강철대로로 대표되는 교역도시인 칼립스와는 달리, 긴트는 ‘용병 도시’라는 슬로건을 내세운 프리 헌터들의 도시였다. 같은 대도시일지라도, 도시의 운용자금으로 따지자면 칼립스에 비할 바가 못 되는 것이 사실.
그러나 그건 긴트의 사정일 뿐이다. 노구덕은 앉아서 도시의 자금이 줄줄 새는 걸 속 편하게 보고만 있을 정도로 인간미 넘치는 위인이 아니었다.
“의장. 발언해도 되겠습니까?”
“음, 말씀해주시지요.”
일어나자마자 따가운 시선이 얼굴에 꽂히는 게 느껴졌다. 아마 허영덕과 친분이 있거나 같은 라인을 타고 있는 자들일 터. 그러나 노구덕은 아랑곳하지 않고 입을 열었다.
“허영덕 위원의 말씀은 아주 잘 들었습니다만, 도대체 칼립스가 강철대로로 얻는 이익이 크다는 게 왜 공도(公道)의 관리비용을 더 대야 하는 이유가 되는 것인지,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어허, 노구덕 위원. 초선이라 잘 모르는가본데, 암묵적인 관례라는 것이….”
“허영덕 위원. 발언권을 가지고 있는 건 접니다만?”
“허영덕 위원, 발언을 자중해주시기 바랍니다.”
“크흠흠…!”
괜히 훈계조로 나섰다 본전도 찾지 못한 허영덕은 머쓱하니 얼굴을 붉히며 자리에 앉았다. 왜 같은 지구에 있으면서도 마티아스에 밀려 지구위원 후보가 되지 못했는지, 그 이유를 알 것 같은 위인이었다.
“칼립스의 특성상, 도시 간 왕래가 잦은 상단이 공도를 이용하는 비중이 높다는 건 인정합니다. 하지만 그건 긴트도 마찬가지입니다. 칼립스의 상단이 있기에 긴트의 프리 헌터들이 먹고 살 수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이쪽이야 꼭 긴트의 용병들을 쓰지 않더라도 자력으로 안전을 확보할 수단은 많으니까요.”
노구덕의 이야기가 지속될수록 허영덕의 표정이 심히 일그러지는 것이 보였다. 그의 말이 꼭 긴트가 칼립스에 기생한다는 것처럼 들렸기 때문이다. 하지만 따지고 보면 영 틀린 소리도 아니었다.
“마티아스 위원은 마티아스 위원이고, 저는 접니다. 그자가 무슨 생각으로 이런 불공정한 분담 비율을 승인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저는 더 이상 도시의 자금이 불필요하게 낭비되는 꼴을 좌시할 수 없습니다. 많은 걸 바라는 것도 아니고, 5 대 5로 공정하게 하자는 겁니다. 이상입니다.”
발언을 마친 노구덕은 천천히 자리에 앉았다. 반대편의 위원들 사이로, 붉으락푸르락 거칠게 숨을 몰아쉬고 있는 허영덕의 모습이 보였다.
“양측의 발언, 잘 들었습니다. 더 질의가 없으시다면, 투표를 하도록 하겠습니다.”
총회의 중재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다. 사안에 따라 다르지만, 이번 경우처럼 사안의 비중이 낮고, 양측의 입장이 확연히 엇갈리는 경우엔 자리에 참석한 위원들의 투표를 통해 한쪽의 편을 들어주는 방식이었다.
잠시 후, 전방의 스크린에 공개된 투표 결과를 확인한 노구덕은 길게 침음할 수밖에 없었다.
패배. 그것도 거의 압도적인 차이를 보인 패배였다.
‘대충 예상은 했지만….’
이건 허영덕이나 노구덕이 가진 입장, 혹은 논리의 차이가 아니었다. 다른 위원들이 칼립스나 긴트가 어떻게 되든 관심을 가질 리가 없을 테니까.
쉽게 말해, 이건 정치적 입지의 문제였다. 허영덕은 벌써 세 번이나 위원직을 맡고 있는 중견 위원이다. 그만큼 쌓아 놓은 인맥과 입지가 상당했다. 그러나 노구덕은 어디서 굴러 들어왔는지도 모를 초선 위원. 허영덕과 비교하자면 그 입지는 전무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초선 주제에 너무 나댔군.”
“칼립스 위원이 아주 제대로 망신을 당했어. 허허….”
“마티아스를 쓰러뜨렸다길래 어떤 물건인지 조금쯤은 기대했건만….”
그날의 총회가 파하고, 느릿하게 걸어 나가는 그의 귓가에 갖은 비웃음이 날파리처럼 날아들었다.
그러나 노구덕은 전혀 신경 쓰지 않는 듯, 무표정 일색이었다. 실제로 그는 이딴 시답잖은 회의의 내용보다 어서 숙소로 돌아가 그를 기다리고 있는 여인들의 품에 얼굴을 묻을 생각만 하고 있었다.
노구덕이 그렇게 멍하니 홀로 걷고 있을 때, 느닷없이 누군가가 정중히 그의 이름을 부르는 게 들렸다.
“노구덕 위원님.”
“음?”
흠칫 놀라 고개를 드니, 회장 입구에서부터 그를 안내해주었던, 말끔하게 머리를 빗어넘긴 중년의 사용인이었다.
“무슨 일인가?”
“이걸 전해드리라는 명령을 받았습니다.”
“…편지?”
사용인이 내민 것은 얇은 종이가 들어있는 편지봉투였다. 약하게 봉인되어 있는 봉투를 뜯어, 그 안의 작은 종이 한 장을 꺼내 단숨에 훑어 내린 노구덕은 그 미려한 필체에 헛웃음을 삼킬 수밖에 없었다.
‘조금 이따가 보자더니, 이런 의미였나?’
그 편지는 회장에서 만났던 정체불명의 여인으로부터 발송된 것이었다. 짧은 고민을 마친 노구덕은 제자리에서 답을 기다리고 있는 사용인에게 말했다.
“바로 간다고 전해주게.”
아무래도, 숙소에 들어가는 것은 조금 나중으로 미뤄야 할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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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밌게 보셨다면 추천/코멘 부탁드립니다.
심장 업글 과정은 과감히 건너뛰었습니다. 너무 늘어질 것 같아서요. 다음 편이나 다다음 편에서 살짝살짝 언급하는 식으로 설명할 생각입니다.
2부에 들어서 신캐들이 속속 등장하는군요.. 참고로 저 여인은 아이리스의 누군가와 긴한 관계가 있는 인물입니다. 다음 화에 바로 밝혀지겠지만요.
cxz778 / 하나는 아직 비밀이고, 벼룩/파리/바퀴벌레/개미가 있습니다.
asd메이지 / 넵. 주술 = 영력 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마법 = 마력이듯이요.
레알군 / 아이리스 다른 멤버에 비하면 아직 미약한 수준이죠 ㅎㅎ
월병인 / 반박불가..
트릭스타 / 벌레교단의 비전을 다 먹으려면 발레기우스부터 족쳐야…
검천지룡 / 스콜피온 핵은 비틀쉘로 통합이 되었습니다.
북치네 / 넵. 감사합니다!
가식적썩소 / 오타 수정했습니다! 감사합니다!
벌레 / 라미아 … 갑자기 예전에 했던 리니지가 생각나네요
너굴2i / ㄷㄷㄷ.. 말만 들으니 뭔가 괴기스럽네요.. 아니, 이미 괴기 수준을 넘었나?
지악 / 연참을 했으니 떳떳하게 쿠폰을 받겠습니다!
호야[虎夜] / 아하.. ㄴㄱㄴㄱㄴㄱ는 알지만 공격 대사는 몰라서… 오타 수정했습니다!
노여연 / 그 사라질 쿠폰 제가 잘 받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인첸 / 크흠흠… 늑대왕과의 결전은 아직… 저 그렇게 쉽게 죽이는 작가 아닙니다..
노루찡 / 감사합니다~!
UrDREAM / 무슨 생각을 하고 계시는 거죠…?
파멸의진혼곡 / 150화나…! 대단하시네요! 시간 꽤 걸리셨을듯 ㄷㄷㄷ
은신설야 / 오늘도 감사합니다!
whomi / 뭔가 덕지덕지 붙인 느낌이 강하지만 어쨌든 착실히 강해지고 있다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