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unter Club RAW - chapter (3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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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7# 연맹총회
“…일단 얘기를 듣고 싶은데.”
노구덕의 말을 들은 퀸젤은 상큼하게 눈을 치켜올렸다.
“호오? 의향은 있다는 거네? 역시 내 눈은 틀리지 않았어.”
“……?”
“노구덕 위원. 네 데이터를 봤는데… 꽤나 입지전적인 인물이던데? 난 그런 자들의 속성을 잘 알아. 밑바닥에서 기어 올라온 자들일수록 권력지향적이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지. 그래, 너처럼 말이야.”
그때였다. 문밖에서 자그마한 노크 소리와 함께 예의 그 사용인의 중후한 음성이 들려왔다.
“손님이 오셨습니다.”
“아, 이제 온 건가? 들여보내.”
“알겠습니다.”
천천히 문이 열리는 동시에 나타난 여인을 본 노구덕은 다시 한 번 크게 동요할 수밖에 없었다. 왜냐하면, 갑작스레 나타난 여인은 지금쯤 한창 아이리스의 실험실에 틀어박혀 있어야 할 데모나였으니까.
“데모나?”
“…구더기?”
데모나 역시 노구덕이 있을 줄은 전혀 짐작조차 못한 듯, 어안이 벙벙한 얼굴이었다. 두 사람이 서로를 마주보며 굳어버리자, 퀸젤은 짝짝 박수를 치며 흥겨운 웃음 소리를 냈다.
“어때? 내가 준비한 깜짝 이벤트가?‘
“…아이리스에 사람을 보낸 건가?”
“위원회 직권을 잠깐 빌렸다고 할까. 아, 그래도 너무 기분 나빠하지는 말아줘. 아름답게 자란 조카를 보고 싶은 고모의 마음 정도는 이해해줄 수 있잖아?”
노구덕은 숨을 씨근덕거리며 입술을 달싹이다,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무겁게 입술을 닫았다. 하긴, 그 정도 간판을 댔으니 위원 대리를 맡고 있는 임유진도 어쩔 수 없이 데모나를 내줄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위원회. 그 이름이 지닌 무게는 스퀘어에 속한 모든 이들에게 있어 절대적인 명령권자나 다름없었다.
‘정말 성미가 급한 여자군.’
총회가 파하자마자 초대장을 보낸 것도 그렇지만, 그새 아이리스에 사람을 보내 데모나까지 불러올 줄은 정말 생각지도 못했다. 왜 머리카락을 굳이 빨간색으로 염색했는지 알 만했다.
“사랑스러운 조카님? 이리 와서 앉아줄래? 될 수 있으면 내 옆자리로… 이런.”
문 앞에서 굳어있던 데모나는 자신을 사이에 두고 떠들어대는 노구덕과 퀸젤의 면면을 지그시 훑어본 뒤, 오연한 걸음걸이로 노구덕의 옆자리에 비스듬히 다리를 꼬고 앉았다.
“날 보자고 한 게 당신이야? 그자의 여동생이라고?”
“응응. 그래. 사정은 오면서 들었겠지? 내가 네 고모, 퀸젤 군다르 악시밀리온이란다. 원래대로라면 네 이름의 뒤에도 왕가의 미들네임과 성이 붙어야 하겠지만…….”
“그딴 건 필요 없어. 용건이나 말해.”
“대충 얘기는 들었지만, 참 드세네~. 하긴, 가정교육을 제대로 받았을 리 없을 테니… 이 고모는 다 이해한단다.”
“고모? 누구 마음대로? 정신이라도 나간 거 아냐?”
“흐응. 아주 시건방진 조카로구나? 벌써부터 네 아버지가 있는 곳으로 가고 싶기라도 한 거니?”
두 사람의 성격상 훈훈한 상봉 장면을 기대한 건 아니었지만, 만나자마자 서로 죽일듯한 신경전을 치르는 건 또 뭐란 말인가. 졸지에 관람객 신세가 되어버린 노구덕은 가벼운 헛기침을 하며, 고압 전류가 흐르는 것 같은 두 여인 사이에 끼어들었다.
“퀸젤 위원, 아까 했던 얘기를 마저 해 줬으면 하는데.”
“얘기?”
“…좋아. 감격의 해후는 잠깐 미루고, 우선 하던 얘기부터 먼저 끝내자구.”
얼핏 궁금한 기색을 드러낸 데모나는 노구덕이 잠자코 들으라는 듯 작게 손짓을 하자, 불만스럽게 아미를 찡그리며 등받이에 몸을 기댔다.
“…내가 어디까지 얘기했지? 아, 맞아. 우리는 말이야, 말 잘 듣는 충실한 번견(番犬)이 필요해. 우리가 짖으라면 짖고, 구르라면 구를 수 있는 그런 사냥개 말이야. 지금까지 많은 후보자들을 물색했지만, 내 생각엔 당신이 그 역할에 가장 잘 들어맞는 적임자인 것 같아. 어때?”
꽤나 자극적인 발언에도 노구덕은 표정 하나 변하지 않았다. 말을 하는 퀸젤의 표정에서 그녀가 딱히 자신을 무시하거나 깔보는 게 아니라는 걸 알았기 때문이다. 그녀의 저 오만불손한 말투는 습관처럼 몸에 배인 지배자의 천성 같은 것이었다.
물론, 그녀의 말이 진심이라도 노구덕의 표정을 바꾸진 못했을 것이다. 오랜 세월로 단련된 그의 연륜은 고작 이 정도 언사에 흔들릴 내공이 아니었으니.
“밑도 끝도 없는 제안이군. 위원회가 뭐가 아쉬워서? 말 잘 듣는 사냥개라면 이곳에도 여기저기 널려 있을 텐데.”
“흥, 떠보는 거야? 넌 대답만 하면 돼. 예냐, 아니오냐. 이것만 말하라구.”
“나 뿐 아니라 내가 이끄는 공동체의 운명이 결정될 수도 있는 사안이다. 타당한 이유를 듣기 전에는 대답할 수 없어.”
“뭐얏? 이 건방진 늙은이가…!”
그의 물러섬 없는 태도가 심기를 건드린 것일까. 퀸젤은 여유만만한 얼굴에 불그스름한 노여움이 어렸다. 격노하여 부릅떠진 그녀의 눈은 네까짓 게 감히 내 제안을 거절하느냐라고 호통치는 듯했다.
노구덕은 퀸젤의 가시 돋친 시선을 무덤덤하게 받아넘겼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겉모습일 뿐, 실제 그의 속내는 한껏 당겨진 고무줄처럼 뻣뻣하게 긴장되어 있었다.
이건 어쩌면 노구덕 일생일대의 도박이었다. 상대는 위원회에 속한 구왕조, 그것도 직계의 왕녀다. 단 한 걸음만 잘못 걸어도 천장단애 밑으로 떨어져 모든 것을 잃을 수도 있었다. 그는 최악의 경우, 퀸젤을 포로로 잡아 이곳을 탈출하는 선택지까지 심각하게 고려하는 중이었다.
암사자와 같은 형상으로 노구덕을 노려보는 퀸젤과, 산 같은 무게감으로 그 사나운 시선을 견뎌내는 노구덕. 그런 두 사람의 대치 구도를 깨트린 것은 그 중간에 앉아 있던 데모나였다.
“설명도 없이 멋대로 일을 진행하는 건 그쪽 가계의 전통인가 보지? 당신도 그자와 하등 다를 게 없어.”
“뭐라고? 그자가 누군데?”
“당신 오라버니지 누구겠어? 말해두지만, 우리와 싸우려면 당신도 각오해야 할 거야.”
말을 하면서 한 손에 어둠의 마력을 집중시키는 데모나. 노골적으로 전투를 준비하는 그녀의 모습에, 노구덕은 물론이고 퀸젤마저 크게 경악한 눈치였다.
“각오? 지금 나보고 각오라고 했어? 조카야, 너 지금 제정신이니? 내가 마음만 먹으면….”
“위원회가 전부 당신 것은 아니잖아? 그 안에도 여러 파벌이 있을 테지. 아쉬워서 부탁을 하러 불렀으면, 좀 더 솔직해지는 게 어때?”
퀸젤은 끝까지 지지 않고 꼬박꼬박 말대꾸를 하는 데모나를 보며 혀를 내둘렀다. 그녀가 세상에 나고 처음으로 위원회의 권위가 먹히지 않는 상대를 만난 것이다. 아니, 시초는 노구덕이었으니 한자리에서만 두 번째라고 할 수 있을까.
“와아… 그 나물에 그 밥이라더니. 너희들, 뭘 믿고 그렇게 당당하게 나오는 거지? 아니, 이 늙은이는 그렇다쳐도 너는 왜? 4년 간 같이 있었다고 하더니, 그새 정분이라도 난 거야? 아, 물론 그럴 리는 없겠지…만…?”
“…흥.”
어처구니가 없다는 투로 말을 이어가던 퀸젤의 눈이 점차 왕방울만하게 변해갔다. 믿을 수 없다는 듯 치뜬 눈과 표정을 보자니, 꼭 ‘띠용!’이라는 글자가 얼굴에 크게 쓰여진 것 같다. 여인 특유의 직감으로 노구덕과 데모나 사이에서 흐르는 이상 기류를 감지해 낸 퀸젤은 속절없이 고개를 흔들었다.
“…하아. 그래, 그런 거였구나. 이제 이해가 가. 하긴, 좀 못생겼으면 어때. 나이가 좀 있긴 해도 이만하면 능력도 있고, 권력도 있는 인물이니….”
“…멋대로 오해하지 마시지.”
“하지만 아쉽네. 조금만 더 기다렸으면 이 고모가 더 좋은 혼처를 찾아줄 수도 있었는데.”
“헛소리 작작…!”
“데모나!”
결국 제 성질을 이기지 못한 데모나가 출수를 하자, 노구덕은 데모나를 힘껏 끌어안는 동시에 불사마력을 일으켜 어둠의 마력을 꺼트렸다. 다행히 정말 피를 볼 생각은 없었던 것인지, 데모나의 마력은 옅은 기운으로도 쉽게 사그라들어 없어졌다.
“호오! 내 앞에서 그렇게 깨를 볶을 필요는 없는데 말이야. 그렇잖아도 슬슬 노처녀라는 말에 쿡쿡 상처를 받는 시기라고?”
“…….”
어깨를 으쓱거리며 불난 집에 부채질을 하던 퀸젤은 여전히 씩씩대는 숨결을 가누지 못하는 데모나와, 그녀를 품에 안은 노구덕의 무미건조한 시선을 받자 힘없이 한숨을 내쉬었다.
“서부 지구 녀석들은 요 정도 조크를 받아줄 아량도 없는 걸까?”
“…퀸젤 위원?”
“알았다구. 나도 첫대면인 조카에게 각박하다는 인상을 심어주기는 싫으니까. 그래, 까짓것 선심 한 번 쓰도록 하지, 뭐.”
퀸젤의 마음이 좋은 쪽으로 돌아선 것 같자, 노구덕은 속으로 겨우 한숨을 돌릴 수 있었다. 다행히 데모나의 극약처방이 제대로 먹힌 모양이었다. 아니면, 좀 전의 고압적인 자세가 실은 노구덕의 속내를 떠보기 위한 가장이었던지. 어느 쪽이든 최악의 결과는 면한 셈이었다.
“그러고 보면, 좀 전에 조카가 한 말도 그리 틀린 건 아냐. 사실, 나도 꽤 아쉬운 처지거든. 노구덕 위원, 너도 말했었지? 이곳에 널린 게 사냥개 아니냐고. 맞는 말이지만, 여기 녀석들은 머리가 굳을 대로 굳어서 말이야. 게다가 놈들도 이쪽이 가진 사냥개들의 목록은 훤히 꿰고 있다고. 그래서 함부로 밖으로 돌릴 수도 없는 처지지. 다시 말하면, 우린 놈들이 모르는 ‘히든 카드’가 필요해. 그게 널 지목한 이유야.”
“놈들?”
“그래, 놈들. 어둠 속에서 숨어서 우리 구왕조… 위원회에 반기를 든 발칙한 놈들이지. 그 왜, 어딜 가나 지배세력에 반기를 드는 녀석들은 있잖아?”
노구덕은 고개를 끄덕였다. 위원회의 지배력이 아무리 견고하다고는 하지만, 세상에 완전무결한 지배라는 것은 없다. 꾹 누르면 누를수록 거세게 튕겨 나오는 본능이 있는 게 사람이고, 그건 이곳 스퀘어라고 해도 다를 바가 없었다.
리버를 비롯한 범죄자들은 말할 것도 없고, 겉으로 드러난 클럽들 중에서도 위원회가 모르게 뒷수작을 꾸미는 자들은 얼마든지 있을 터였다.
그런데, 이어지는 퀸젤의 말은 그가 짐작했던 것보다 더욱 뚜렷한 실체를 띠고 있었다.
“놈들은 아예 이 대륙의 체제 자체를 뒤집으려는 것들이야. 기존의 헌터, 클럽, 리그로 이어지는 기반 시스템을 모조리 붕괴시키는 게 놈들의 제일 목표지. 그 다음 목표는, 연맹과 위원회의 말살이고. 사실, 이 자들은 꽤나 오래전부터 지하에서 활동해왔어.”
“으음…….”
“별로 놀라지 않는군? 하긴, 이상할 것도 없지. 우리도 자세히 파악하지는 못했지만, 꽤나 많은 수의 클럽들이 놈들에게 가담한 정황이 있어. 주로 연맹의 손길이 미치지 못하는 변방의 클럽들이 대부분이야. 클럽을 사병화하고, 개척 도시를 영지로 삼아 자기들만의 왕국을 건설하겠다는 거지.”
영 가능성이 없는 얘기는 아니다. 당장 거대 클럽들만 해도 위성 클럽이라는 명목으로 휘하 조직을 거느리고 있으며, 십존이란 자들은 공공연히 사병대를 조직해 영지 내에서 권력을 휘두르고 있지 않은가. 아예 사례가 없다면 몰라도, 이런 실례가 있는 이상, 오너들의 욕심을 부추기기는 쉬웠을 것이다.
말하자면, 이건 극히 오래된 지배구조에서 탄생한 필연적인 종기였다.
“내가 보기엔, 이쪽 시스템에 근본적인 문제가 있는 걸로 보이는데….”
“인정해. 십존 체제도 그렇고, 프라임리그도 그렇고, 뜯어 고쳐야 할 게 한두 개가 아냐. 하지만 윗대가리들이 워낙 고집이 세야 말이지. 도무지 말을 들어먹질 않아. 늙으면 정말 똥고집이 된다니까. 전통이라나, 뭐라나.”
“…….”
“하지만, 더 이상 늙은이들의 구식 놀음에 장단을 맞춰줄 겨를은 없어. 얼마 전에, 믿을만한 정보통에게 소식을 들었거든.”
“…소식?”
고개를 끄덕인 퀸젤은 기이한 열기가 일렁이는 눈을 빛내며 말했다.
“곧, 전쟁이 벌어질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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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밌게 보셨다면 추천/코멘 부탁드립니다.
다급히 올리고 나가봐야 해서, 리리플은 새벽녘에 달도록 하겠습니다. 그 전까지 혹시 궁금하신 게 있으신 분들은 저번화 리플로 달아주세욧!
오늘도 편안한 밤 되시길 바랍니다.
elas / 왕족이니까요.. 거만함은 필수.
불타는고기 / 기승전덮밥ㅂ… ㄷㄷ
audduf11 / 과연 구더기의 선택은?
asd메이지 / 사이가 좋지 않긴 하지만, 그건 수백년전의 일이니..
Velos / 크흠.. .그게 그런 플래그였나요!
우서 / 당연히 십존 체제를 만든게 위원회이니, 군다르 > 십존입니다. 명목상으로는요.
코카콜라중독 / 넵. 위계상으로는 군다르 > 십존이 맞습니다.
호야[虎夜] / 구더기 삐졌어요!
북치네 / 항상 감사합니다 (_ _
아토므스크 / 혹시 m성향이신..?
벌레 / 넵.. 못본걸로 하겠습니다..
UrDREAM / 하하.. 이름을 말하려는 찰나에 남자놈이 끼어들어서!
은신설야 / 궁금한게 없으시다면 그걸로 좋습니다!
월병인 / 그런 맹점을… 생각해 본 적이 없는데요! 요시모토 수한 ㅋㅋㅋ 아마 하나씩 떼서 부르지 않을까 싶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