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unter Club RAW - chapter (3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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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 흡수의 권능
잔재주가 통할 상대가 아니다. 어떻게 돼먹은 몸뚱이인지는 모르겠지만, 단순히 육체적 성능에서는 자신을 훨씬 웃돈다는 것은 알겠다.
“오냐, 그렇게 죽길 바란다면 소원대로 해주마!”
거칠게 이를 갈아붙인 하몬의 오른손에서 파르스름한 빛이 일었다. 자세히 보니 그 손바닥에 위치한 뱀 모양의 문양이 흡사 살아있는 것처럼 생생하게 꿈틀거리는 것이 보였다.
“그게 악마의 오른손…?”
“죽어랏!”
하몬은 표범처럼 날렵하게 짓쳐들어 오른손을 쑥 내밀었다. 투기를 끌어올렸는지 지금까지보다 훨씬 더 빨라진 몸놀림이었다.
범인이라면 도저히 육안으로 쫓을 수 없는 속도. 하지만 파리의 초감각과, 비틀쉘로 인한 초인적 반사능력을 가지고 있는 노구덕에게는 충분히 인지 범위 내였다.
‘미지의 능력에 대놓고 당해줄 수는 없지.’
노구덕에게는 활짝 펼쳐진 하몬의 오른손, 그 주변의 대기가 파도처럼 요동치는 것이 선명히 보였다. 공기 중의 수분이 그 오른손에 급속히 빨려 들어가고 있는 것이다. 노구덕이 보기에, 하몬은 그보다 확실한 하수. ‘악마의 오른손’의 능력이 어떻든 간에 절대로 지지 않을 자신이 있었으나 섣부른 방심은 금물이었다.
“웃차!”
노구덕은 가까스로 몸을 비틀어 하몬의 손바닥을 피해냈다. 그 오른손에 미세하게 스친 피부가 고목껍질처럼 까끌까끌하게 주름이 잡혔다가, 곧바로 다시 팽팽해지는 것이 보였다.
‘생기를 빨아들인다더니……. 무서운 위력이군.’
만약 그가 아니라 다른 사람이었다면, 몇 번 스치는 것만으로도 행동에 제약을 받았을 것이다. 수분을 잃은 근육은 돌덩이처럼 뻣뻣하게 변하고, 그러면 해당 부위는 생각대로 움직이지 않을 테니까.
“이놈! 이놈!”
자신감을 얻은 하몬은 거친 포효성을 내지르며 노구덕을 몰아붙였다. 맨손 박투의 달인답게 그의 공격은 기상천외한 데가 있었다. 무작정 오른손만을 휘두르는 것이 아니라, 노구덕의 가랑이 사이로 다리를 걸기도 하고, 어깨를 부딪쳐 균형을 무너뜨리려 시도하기도 했다. 아이리스에서도 이 정도 박투 실력을 가진 사람은 손에 꼽을 정도.
오 분 동안 거의 수백 번의 연격(聯擊)을 날린 하몬. 그러나 그 수많은 공격 중 유효타는 단 한 번도 없었다. 노구덕은 마치 잡힐 듯 말 듯한 신기루처럼 그의 모든 공격을 아슬아슬하게 피해냈다.
아무리 강맹한 공격이라도 맞지 않으면 허망한 광대놀음에 불과할 뿐이다. 결국, 한시도 쉬지 않고 열심히 팔다리를 바동거리던 하몬은 거친 숨을 몰아쉬며 뒤로 물러났다.
‘이놈… 대체 뭐냐? 내 공격이 훤히 보이기라도 하는 거냐?’
하몬의 눈에는 노구덕이 팔랑거리는 깃털처럼 보였다. 아니면 형체가 없는 유령이거나. 육안으로 잡히는 공격을 피하는 건 이해하겠다. 그러나 눈으로 보이지 않는 사각지대를 이용한 공격까지 가뿐히 피해내는 건 무슨 경우란 말인가?
‘전신에 마력장을 두르고 있는 건가? 아니, 설령 그렇게 내 공격을 감지하더라도 반사신경이 따르지 않으면 피하는 건 불가능하다. 이 괴물은 도대체…? 그보다 왜 반응이 없는 거지? 왜 악마의 오른손이 먹히지 않는 거냐?’
좁은 머릿속이 온갖 의문으로 들어차 펑하고 터져버릴 것만 같았다. 이런 상대는 처음이었다. 아무리 재빠른 놈이라도 ‘악마의 오른손’에 몇 번 스치고 나면 눈에 띄게 속도가 느려져 결국 그의 손에 목이 비틀리는 신세를 피하지 못했다. 그런데, 이 자는 도무지 행동이 느려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즉, ‘악마의 오른손’이 통하지 않는다는 의미였다.
“네놈… 정체가 뭐냐?”
“알아서 뭐 하게?”
“…….”
하몬은 입을 다물었다. 뭐하냐고 묻는다면, 정말 할 말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냥 손만 휘두르는 게 전부면 별로 볼 건 없군. 아, 성능 시험을 해 보도록 할까.”
“뭐… 헉!”
자기도 모르게 넋을 놓고 있던 하몬은 노구덕의 신형이 흐릿해지자 덜컥 놀라 몸을 뒤로 내빼려했다. 하지만, 뱁새가 아무리 빨라봤자 황새를 따를 수는 없는 법. 하몬이 미처 몇 걸음을 떼기도 전에, 노구덕은 벌써 그의 뒷덜미를 잡아채고 있었다.
“이게 그 오른손이렷다?”
하몬의 뒤에 들러붙어 그의 오른손을 잡아챈 노구덕은 하몬이 발버둥치지 못하도록 그의 몸을 단단히 결박했다. 그래봤자 한 팔로 허리를 붙잡은 것뿐이었지만, 비상식적인 괴력을 가진 그에겐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노구덕은 늑골이 짓눌려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하고 있는 하몬의 귀에 작게 속삭였다.
“이보게, 하몬. 백인대장이라는 사람이 부하들을 이리 신경 쓰지 않아서야 쓰겠나? 자네는 지휘관 실격이야.”
“……!”
그제야 겨우 주위를 둘러 본 하몬은 소스라치게 놀랄 수밖에 없었다. 어느새 그의 주위에 남아 있는 부하가 둘 밖에 남지 않았던 것이다. 든든한 오른팔인 자크는 누구에게 당했는지 가슴팍이 시커멓게 그슬려 죽어 있었고, 나머지 부하들도 군데군데 심한 화상을 입고 바닥에 쓰러져 있었다.
그나마 온전한 두 명은 공포에 질려 반쯤 얼이 빠진 상태. 그가 이끌고 온 추격대는 사실상 전멸이나 다름없었다.
부하들을 전멸시킨 것으로 보이는 사람은 어색하게 터번을 눌러 쓴 육감적인 몸매의 여인이었다. 평소라면 여인의 농염한 몸매에 군침부터 흘렸을 테지만, 지금 하몬은 여인의 눈무신 미모를 감상할 여유가 없었다.
전력을 가늠할 수 없는 괴물이 또 있다는 사실에, 노구덕에게 붙잡힌 하몬은 그야말로 까무러치기 직전이었다.
“마침 저기 알맞은 상대가 있군. 성능 테스트를 해봐야겠어.”
“무슨…?”
노구덕은 얼빠진 하몬이 정신을 차리기도 전에 억지로 그의 몸을 움직였다. 아니, 억지로 움직인다기보다는, 아예 그 몸을 들고 가는 수준이었다. 노구덕에게 붙들려 넋을 놓아버린 부하의 앞에 당도한 하몬은 그때서야 그가 무슨 짓을 하려는지 깨닫고 다급히 외쳤다.
“이, 이놈이! 그만두지 못해!”
그러나 노구덕은 하몬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한 팔로 붙잡은 그의 오른손을 부하의 가슴팍에 강제로 잇대었다. 그러자 망연자실하게 주저앉아 있던 사내의 눈알이 튀어나올 듯 돌출하며, 그의 입에서 찢어질 듯한 비명이 튀어나왔다.
“으아아아악–!”
건장한 남자의 몸이 급속도로 쪼그라들고 있었다. 탄탄한 구릿빛 피부가 늙은이의 그것처럼 쭈글쭈글해지고, 오랜 세월 단련되어 탄력이 넘치던 근육이 바람 빠진 풍선처럼 볼품없게 변하고 있었다.
하몬의 오른손에 본격적으로 생기를 빨린지 몇 분 지나지도 않아 오래된 미이라처럼 폭삭 삭아버린 남자는 이내 마지막 숨결을 토해내며 뒤로 넘어졌다. 과연 ‘악마의 오른손’이라 불릴 정도로 무시무시한 위력이었다.
“끄으으으…!”
헌데, 이상한 것은 하몬의 반응이었다. 부하의 생기를 모조리 흡취한 하몬은 그 얼굴을 무척이나 고통스럽게 일그러뜨리며 괴로운 신음을 흘렸다. 흉하게 변한 얼굴을 비롯해서, 팔과 목줄기에 굵은 핏줄이 뚜렷하게 잡힌 걸 보니 뭔가 문제가 생긴 것 같았다.
노구덕은 괴로워하는 하몬을 내팽개쳐 두고, 의문스럽다는 듯이 머리를 기울였다.
“이놈, 왜 이러는 거지?”
“용량이 넘쳐버린 것이니라.”
고개를 돌리니, 어느새 가까이 다가온 브리트라가 고통에 겨워 나뒹구는 하몬을 딱하다는 듯이 내려다보고 있었다.
“조악한 그릇에 허용 범위 이상의 힘을 담으려하니, 그릇에 금이 갈 수밖에 없지 않겠느냐?”
“무작정 생기를 흡수한다고 강해지는 게 아니란 소리냐?”
“당연하지 않느냐. 무엇이든지 과하면 탈이 나는 법이니라. 인간의 생기란 신체의 활기를 유지하는 힘인데, 부상당한 환자라면 큰 도움이 되겠지만 멀쩡한 인간에게는 오히려 독이 되는 것이니.”
“흠. 그래서 처음부터 악마의 오른손을 쓰지 않았던 거였나.”
노구덕은 비로소 이해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알고 보니 하몬이 ‘악마의 오른손’을 아껴두었던 데에는 다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아마 하몬은 처음엔 박투술로 상대와 싸우다가, 몸에 적당히 상처를 입으면 악마의 오른손을 꺼내 생기를 흡취하여, 상처를 재생하는 식으로 전투를 했던 것 같았다. 그러지 않으면 과한 에너지에 몸이 버티지 못했을 테니까.
“우선 저 오른팔을 잘라두는 게 어떻겠느냐? 이자에게 물을 게 많으니, 이대로 죽어선 곤란하다.”
“내버려두면 죽어버리는 모양이군. 그런데 뭘 물어보겠다고?”
“문양의 상태가 조금 이상하다. 아무래도 인위적인 변형을 시킨 것 같은데… 아직은 잘 모르겠다. 그리고 내 권능은 겨우 이 정도가 아니니라. 이자에게 자세한 사정을 들어봐야겠다.”
“허, 이 정도가 겨우라고?”
“가뭄으로 황폐화된 도시에 단비를 내리고, 말라버린 오아시스에 한가득 물을 채워 넣었던 권능이다. 오죽하면 내가 사막의 수호신이라 불렸겠느냐? 이 몸을 과소평가하지마라.”
“호오.”
“다시 말하지만, 그대는 이 몸을 좀 더 존중할 필요가 있다.”
노구덕은 내심 혀를 내둘렀다. 방금 전, 하몬이 보여준 힘만 해도 어지간한 마법 장비를 간단히 상회하는 굉장한 권능이다. 어느 정도 사용에 제한이 있긴 해도, 자신의 부상은 치유하면서 상대에게 치명적인 타격을 줄 수 있는 힘이 아니던가? 자잘한 부상을 입을 일이 많은 근접계열에게는 최고의 보조무기나 다름없는 권능이었다.
그런데, 그런 권능이 새발의 피에 지나지 않는다니? 속물근성이라고 하면 할 말이 없지만, 기대가 되는 건 사실이었다.
노구덕은 임유진으로부터 뜨겁게 달궈진 단검을 받아 하몬의 오른팔을 단숨에 잘라냈다. 그 과정에서 다시 째지는 비명이 잇따랐지만, 이 자리에서 하몬의 처지를 불쌍히 여기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에게서 하몬의 오른팔을 받아든 브리트라는 신중한 표정이 되어 그 손바닥에 새겨진 오른팔을 살피더니, 오 분이 채 못 되어 무거운 한숨을 내쉬었다.
“…오리지널이 아니로구나. 이건… 정교한 복제품이다.”
그 말을 들은 노구덕은 어이가 없다는 듯 눈을 치떴다.
“복제품이라고? 아니, 일부를 찾았다고 좋아할 때는 언제고…….”
“으읏…….”
그에게 핀잔을 들은 브리트라는 격노한 듯이 통통한 볼살을 부르르 떨다가, 이내 힘없이 고개를 숙여 보였다.
“미안하구나. 전적으로 내 실수임을 인정한다. 변명처럼 들리겠지만, 이 몸은 몇 번의 탈피를 거듭하며 일부와의 연결이 약해졌기 때문에, 만전의 상태에서는 절대 하지 않을 실수를…….”
“잠깐만. 그 입 좀 다물어 봐.”
“히잉….”
사막의 수호신이 이 무리에서는 완전히 찬밥 신세다. 브리트라는 말을 끊어버린 데모나를 원망스럽게 쳐다보며 서럽게 울상을 지었지만, 정작 데모나는 그녀에겐 눈길조차 주지 않으며 하몬의 오른손을 더듬었다.
“이건…….”
“데모나, 왜 그러니?”
“…드래고니안에게서 발견한 것과 비슷한 술식이야.”
데모나의 말을 들은 임유진과 노구덕은 깜짝 놀라 그녀에게 다가갔다.
“바이론의 술식이라고? 어떻게…?”
“아니… 그 사람의 술식과 궤를 같이 하지만, 엄밀히 따지자면 그 범주가 달라. 다만 같은 원리에 기초하고 있을 뿐이지.”
“그게 뭐지?”
“뭐긴 뭐겠어? 인위적으로 카르마 에너지를 가공하는 거지. 즉, 이 자의 손바닥에 새겨진 복제 술식은 카르마 에너지를 가공해 진본과 비슷한 위력을 내도록 설계된 거야. 쉽게 말하자면… 카르마 에너지를 이용해, 이 왕뱀이 가진 힘을 똑같이 흉내 낸 거라고 할까.”
“실로 무도한 것들이구나! 감히 이따위 조악한 방법으로 내 권능을 흉내 내려 하다니!”
눈이 휘둥그레진 채 그녀의 말을 듣고 있던 브리트라는 크게 격분하여 길길이 날뛰었다. 그래봐야 제자리에서 방방 뛰는 수준에 불과했지만.
그러나 브리트라의 노성과는 다르게, 데모나의 얼굴은 심각하기 짝이 없었다.
“글쎄. 조악하다곤 해도 멍청한 왕뱀이 착각했을 정도잖아? 실제로 비슷한 위력을 내는 데도 성공했고. …이런 자가 한둘이 아니라면, 보통 심각한 문제가 아니야.”
“으음, 저놈에게 들을 게 많을 것 같군.”
노구덕의 차디찬 눈길이 정신을 잃고 널브러진 하몬의 얼굴에 머물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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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에피소드에서는 구더기가 메인으로 활약할 예정입니다. 지금껏 열심히 받아먹기만 했으니 가끔씩은 제대로 주연이 되는 것도 좋겠지요.
출근 관계로 리리플은 저녁화에 달도록 하겠습니다! 궁금하신 점이 있다면 이번 화 리리플에 달아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