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unter Club RAW - chapter (3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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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 밤의 궁전
91# 밤의 궁전
모고르 족의 족장이 머무는 곳은 워프게이트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
사막의 부족이라 하여 내심 엉성한 천막이나 막사가 줄지어 늘어서 있는 풍경을 상상했던 일행은 워프게이트를 빠져나오자마자 보이는 화려한 도시의 모습에 눈을 크게 뜨며 놀랄 수밖에 없었다.
“아아… 여긴 마치… TV에서나 봤던 중동의 왕국 같네요.”
홀린 듯한 임유진의 감탄성이 말해주듯, 모고르 족의 도시는 지구의 이슬람 국가들을 연상케하는 돔형 건축물들이 주를 이루었다. 터번처럼 둥글게 쌓아올린 돔 아래, 회칠을 한 것처럼 하얀 벽면은 아라베스크 양식과 흡사한 기하학적인 무늬가 새겨져 있었는데, 곡선과 직선이 마치 하나의 글자처럼 미려하게 교차하고 있어 환상적인 멋스러움을 더하는 듯했다.
“우오옷… 많이 발전했구나. 내가 살았을 적엔 이 정도는 아니었거늘.”
“…조금 다시 보게 되네. 서부의 도시들에 비해 결코 못하지 않아.”
메마른 사막 위에 세워진 아름다운 도시의 경관은 그 깐깐한 데모나마저 인정하게 만들 정도. 하지만 보는 이의 눈을 즐겁게 만드는 도시의 풍광도 대족장이 기거하는 궁전에 비하면 조족지혈에 불과했다.
“도착했습니다. 이곳이 저희 모고르의 성지, 태양궁(太陽宮)입니다.”
자부심이 가득한 몸짓으로 팔을 펼쳐보이는 자하드. 그 어깨 너머에는, 하늘을 가릴 듯 거대한 구조물이 황금의 대지 위에 우뚝 세워져 있었다.
태양빛을 받아 눈부신 백색으로 빛나는 장엄한 궁전, 그 이름도 태양신의 신체를 받들어 모신다하여 태양궁이다. 중앙의 돔 지붕을 중심으로, 좌우에 수호신처럼 늘어선 두 개의 새하얀 첨탑이 하늘을 찌를 듯 솟아 있는 건축물은 그 이름처럼 찬란한 태양을 떠올리게 했다.
크기로 따지자면 연맹총단을 포함해, 퀸즈가든이나 크리스탈 라운지 등에 비해 비할 바가 못 되었지만, 아무것도 없는 황량한 사막에 고고하게 세워진 궁전이라 그런지, 보는 이의 웅심을 자극하는 너른 기상이 느껴졌다.
“…대단하군.”
상상을 뛰어넘는 태양궁의 위용에 장탄식을 발하던 노구덕은 갑자기 소매가 잡아당겨지는 듯한 느낌에 살짝 시선을 내렸다. 그러자 조그만 손으로 그의 소매를 꾹 쥐고 있는 브리트라의 초조한 얼굴이 보였다.
“왜?”
“…느껴진다.”
“뭐?”
“틀림없도다. 이 궁전 어딘가에… 내 일부가 잠들어 있다.”
급작스러운 그녀의 말에 노구덕은 기가 막혀 입을 딱 벌렸다. 태양신의 성물이라면 몰라도, 갑자기 브리트라의 일부가 여기서 왜 튀어나온단 말인가? 그건 리버들의 주둔지에 잠들어 있는 게 아니었단 말인가?
‘잠깐… 가능성이 없는 건 아니다.’
평정심을 되찾은 노구덕은 차분히 생각을 정리했다. 퀸젤에 의하면, 십존의 영지와 자치령은 반란의 근거지일 가능성이 가장 높은 곳. 특히 이 사막지대는 과거 태양왕의 영지였으며, 영지가 해제된 현재에도 연맹의 영향에서 벗어나 사실상 자치권을 유지하고 있는 지역이다.
다시 말하면, 모고르 족이 뒤로 리버들과 결탁하여 호박씨를 까더라도 전혀 이상할 게 없었다.
‘이놈의 팔자는… 어쩌면 호랑이 굴에 머리를 들이민 걸지도 모르겠군. 긴장해야겠어.’
쓴웃음을 삼킨 노구덕은 자하드를 따라 태양궁에 발을 들이기 전, 다른 이들이 주의를 돌린 틈을 타 일행에게 단단히 주의를 주었다. 임유진과 데모나는 태양궁이 어쩌면 리버들의 소굴일지도 모른다는 노구덕의 말에 살짝 놀란 눈치였으나, 베테랑 헌터들답게 금세 차분함을 되찾았다. 어찌됐든, 이제 와서 발을 돌릴 수는 없는 노릇이었으니.
신중히 눈빛을 교환한 일행은 이윽고 눈부신 대리석으로 지어진 태양궁 내부로 조심스런 발걸음을 내딛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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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양궁의 내부는 겉으로 보이는 것만큼이나 드넓었다. 일직선으로 이어진 복도를 걸어, 대족장이 기다리고 있는 내궁(內宮) 입구까지 일행을 안내한 자하드는 갑자기 뒤를 돌아보더니 노구덕에게 양해를 구했다.
“알고 계시겠지만, 여기서부터는 본부장과 노구덕 님만 입장이 가능하십니다.”
“음? 무슨 소린가?”
노구덕이 두 눈을 멀뚱하게 치뜨자, 도리어 당황한 자하드는 장인 조합의 본부장에게 넌지시 눈치를 주었다. 마치 왜 사전에 언질을 주지 않았느냐는 듯, 책망하는 눈빛이었다.
자하드의 당황한 기색에 뭔가 이상하다는 것을 느낀 노구덕은 본부장을 쳐다보았다. 그러자 무척 겸연쩍어하는 본부장의 덥수룩한 낯짝이 눈에 들어왔다.
“죄, 죄송하게 되었습니다. 미리 언질을 드린다는 것이…….”
“무슨 문제라도 있나?”
“그게… 사막의 부족들은 공사(公事)에 여인들과 동석하지 않습니다.”
“흐음?”
“이, 일종의 관례 같은 것인데… 그 뭐시냐, 선원들이 여자를 배에 태우지 않는 것과 비슷합니다. 원래 사전에 제가 말씀드렸어야 했는데, 그만 일을 급히 진행하다보니 까맣게 잊고 말았습니다. 죄송합니다.”
땀을 삐질삐질 흘리며 설명을 늘어놓던 본부장은 다시 한 번 사죄를 하며 고개를 수그렸다.
“허, 참.”
그의 말을 들은 노구덕은 기가 막힌 표정을 지었다. 한마디로 데모나와 임유진, 브리트라를 데리고 내궁에 들어가지 못한다는 소리 아닌가. 사막이 암만 남존여비(男尊女卑)의 사회라지만 회의에 여자가 낄 수 없을 정도로 차별이 심하다는 건 생각지도 못한 일이었다.
“우린 외부인인데도 안 되는 건가?”
“…송구합니다. 저희 부족의 신앙과 관계되는 일인지라. 신을 즐겁게 해 드릴 무희(舞姬)가 아니라면, 내궁엔 어떤 여인도 출입할 수 없습니다.”
신앙까지 들먹이며 안 된다고 하는데 손님 입장에서 무작정 고집을 부릴 수도 없는 노릇이다. 임유진은 불쾌해하는 노구덕의 팔을 부여잡으며 부드럽게 말했다.
“저희는 괜찮아요. 기다리고 있을 테니 다녀오세요. …저희는 저희 나름대로 놀고 있을 테니까요.”
나직한 뒷말에서 묘한 뉘앙스가 느껴졌다. 아마 기다리고 있는 동안 나름대로 브리트라의 일부를 찾아보겠다는 의미일 터.
“음, 어쩔 수 없지.”
노구덕은 못 이기는 척 고개를 끄덕였다. 약간 자존심이 상하긴 했지만 처음부터 사소한 일로 트러블을 일으킬 필요는 없었다.
작은 문제를 뒤로하고 십여 분 정도가 지나, 노구덕은 마침내 사막의 우두머리라 불리는 모고르 족의 대족장, 하쉬미르를 만날 수 있었다.
“어서 오시오, 노구덕 위원.”
“반갑습니다. 대족장.”
올 해 오십 세가 된다고 하는 모고르 족의 대족장 하쉬미르는 나이에 비해 상당한 노안(老顔)인 중늙은이였다. 쭈글쭈글한 얼굴에 피어난 검버섯하며, 너구리처럼 쑥 들어간 눈가가 꼭 오늘내일 하는 병자처럼 쇠약해 보였다.
노구덕은 권좌에서 내려와 악수를 권하는 하쉬미르의 손을 조심스럽게 맞잡았다. 혹시라도 힘을 과하게 주면 그의 연약해 보이는 뼈대가 수수깡처럼 부러질 것 같았기 때문이다.
‘예상외군.’
사람을 겉모습으로 판단하는 건 좋은 버릇이 아니지만, 그래도 이만한 거대 부족의 지배자라면 무언가 남다른 면모가 있게 마련이다. 하지만 해골처럼 볼품없는 용모의 하쉬미르에게선 어떤 기재도 보이지 않았다. 지배자의 풍채로 따지자면 그 아들인 자하드가 더 비범할 정도.
그러나 노구덕은 긴장을 풀지 않았다. 외견이 어떠하든, 하쉬미르는 근 수십 년 간 안정적으로 모고르 족을 통치해 온 사막의 지배자다. 겨우 겉모습만으로 섣불리 그를 재단하는 건 어리석은 짓이었다.
접견실 중앙에 마련된 테이블에 노구덕과 대족장 하쉬미르고 마주 앉고, 거기서 조금 떨어진 작은 테이블에 후계자 자하드와 장인 조합의 본부장이 자리했다. 단순한 회담을 하는 데에도 신분에 따라 앉는 테이블이 다르다. 이런 걸 보면 모고르 족 사회의 밑바탕에는 그 어느 곳보다 철저한 계급제가 깔려 있는 듯했다.
“아다만티움과 미스릴을 제련하고 싶으시다고?”
“그렇습니다. 본부장의 말로는, 제련기술에 있어 모고르 족 만한 적임자가 없다고 하기에.”
“그건 틀림없는 사실이오. 태양신의 후손인 우리는 못 다루는 금속이 없지. 아다만티움이 단단하다고는 하나, 태양신의 성화 앞에서는 양초처럼 흘러내리게 돼 있다오.”
“성화… 얘기는 들었습니다. 대단한 힘이라지요?”
“허허허… 선조로부터 내려온 광영된 힘이오. 우리 부족에서도 일부 신의 축복을 받은 자들만이 다룰 수 있는 능력이지.”
두 사람의 대화는 물 흐르듯 막힘없이 이어졌다. 노구덕은 간간이 밑밥을 던져 성화의 정체에 대해 보다 상세한 정보를 알아내려고 했지만, 하쉬미르는 능구렁이처럼 말을 돌리거나 핵심을 빗겨나가는 식으로 응대했다.
“헌데, 그만한 아다만티움과 미스릴은 대체 어디서 구하셨소? 아, 내가 실언을 했구먼. 답하기 곤란한 문제라면 굳이 대답하실 필요는 없다오. 다만, 지속적으로 거래 가능한 물량이 공급되는 것인지 좀 궁금해서…….”
노구덕은 잠시나마 하쉬미르를 저평가했던 것을 정정할 수밖에 없었다. 다른 것은 몰라도, 은근히 사람의 심기를 건드리면서 정보를 캐내는 데에는 일가견이 있는 인물이었다.
“안타깝지만 지속적인 거래는 힘들 것 같습니다. 저도 운 좋게 구한 물건인지라.”
“크큼… 그건 좀 아쉽구려. 그러고 보니 칼립스는 강철의 도시라 불릴 만큼 제련 기술이 발달한 곳이라고 하던데, 위원께서 이런 오지까지 찾아오신 걸 보면 꼭 그렇지만도 않은 것 같소?”
“흐하하하… 물론 칼립스에도 아다만티움을 제련할 수 있는 기술자들은 있습니다. 하지만, 이왕 힘들게 구한 물건, 좀 더 솜씨 좋은 장인의 손에 맡기는 게 낫지 않겠습니까? 게다가, 본부장에게 들은 바로는 이곳에서 제련한 미스릴은 성화의 속성을 띤다고 하더군요.”
“그야 그렇지…. 내가 뻔한 걸 물었군 그래.”
이따끔 부족의 지배자다운 거만함을 드러내는 하쉬미르와 적당히 그의 비위를 맞춰주는 노구덕. 노련하게 이어지던 두 사람의 회담이 지지부진해진 것은 본격적으로 제련에 관한 문제가 논의되기 시작하면서부터였다.
노구덕은 제련 과정을 참관하고 싶다고 했고, 하쉬미르는 이를 일언지하에 거절했다. 성화의 힘을 외부인에게 보일 수 없다는 이유였다. 그에 노구덕이 신뢰성 문제를 제기하면서 분위기가 험악해지나 싶더니, 얘기가 돌고 돌아 거금의 참관비를 내는 것으로 안건이 마무리 되었다.
‘이런, 빌어먹을 영감탱이. 처음부터 돈이 목적이었군.’
너구리처럼 웃고 있는 하쉬미르를 대하는 노구덕은 속이 쓰렸다. 예상치 못한 곳에서 거액의 돈을 뜯겨버린 것이다. 그러나 태양신의 성물과, 브리트라의 일부에 대한 정보를 조금이라도 더 캐내야 하는 그의 입장에서 보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이후 참관비의 구체적인 액수 조정과, 칼립스와의 기술 교류 문제 등을 거론하던 노구덕은 갑자기 가래 끓는 기침 소리를 내는 하쉬미르의 모습에 입을 다물었다.
“쿨룩! 쿨룩!”
“대족장님!”
아래쪽 테이블에 앉아 있던 자하드는 재빨리 하쉬미르의 앞에 희한하게 생긴 약병을 대령했다. 그리고 하쉬미르가 익숙하게 그것을 받아드는 것으로 보아, 이런 일이 하루이틀이 아닌 듯했다.
호리병처럼 생긴 약병에서 노란 색을 띤 액체를 한 모금 들이킨 하쉬미르는 미안하다는 듯이 말했다.
“시간이 많이 늦었군. 노구덕 위원, 내일 다시 회담을 이어가는 건 어떻소? 보시다시피 내 몸이 그리 좋지 못해서, 장시간 말을 하는 것도 힘들 지경이라오.”
“그게 좋겠습니다.”
실제 나이로 따지자면 하쉬미르는 노구덕보다 두 살이 어리다. 하지만 겉으로 보이는 모습은 그가 십 년은 연상처럼 보였으니… 약을 복용하는 것도 그렇고, 어쩌면 오랜 기간 지병을 앓고 있는 것인지도 몰랐다.
“그래, 기왕 오셨으니, 태양궁에서 묵도록 하시구려.”
“그래도 되겠습니까?”
“물론이오. 오랜만에 귀빈이 오셨는데, 이대로 돌려보내서야 내 체면이 말이 아니니까. 자하드가 방을 안내해 줄 거요. 아… 그리고.”
하쉬미르는 막 몸을 일으키려는 노구덕을 보며 의미심장한 웃음을 흘렸다.
“…너무 일찍 잠들진 마시오. 사막의 밤은 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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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휴재 마치고 돌아왔습니다. 타이트한 일정도 끝났으니, 다시 정상 연재하도록 하겠습니다.
오늘도 좋은 하루 되셨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