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unter Club RAW - chapter (3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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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2# 사막비사(沙漠祕史)
92# 사막비사(沙漠祕史)
권좌에 앉아, 여인들의 달콤한 교성과 사내들의 거북한 숨소리가 메아리치는 장내를 내려다보던 대족장 하쉬미르는 돌연 비릿한 웃음을 흘렸다.
“그야말로 개돼지들이 따로 없구나.”
사막의 하렘. 그는 이곳에서 추악한 욕망을 드러내며 알몸으로 나뒹구는 인간들을 볼 때마다 가장 큰 희열을 느꼈다. 가장 높은 곳에 앉아, 욕망에 먹혀 허우적거리는 하등한 인간들을 오시하며 저들과는 본질적으로 다르다는 우월감을 만끽하는 것이다.
“자하드.”
“예. 왕이시여.”
하쉬미르의 부름에 공손히 고개를 숙이며 답하는 자하드. 그가 하쉬미르를 칭하는 호칭은 자연스럽게 뒤바뀌어 있었다. ‘대족장’에서 ‘왕’으로.
“그 오크 놈은 뭘 하고 있느냐?”
“저들과 별 다를 게 없습니다. 부인들과 관계를 가지느라 정신이 없다고 합니다.”
“하긴, 정신 내성이 미비한 오크가 이곳의 마법진을 견딜 수 있을 리 없겠지. 결국 그놈도 별 수 없는 놈이로구나.”
끌끌 혀를 찬 하쉬미르는 움푹 파인 눈매를 번뜩이며 읊조렸다.
“우습지 않느냐?”
“예……?”
“밖에서는 온갖 고고한 척을 하며 위세를 떨던 자들이, 이곳에 들어와서는 짐승과 다를 바 없이 추악해진다는 사실이. 우린 그저 약간의 계기만을 제공했을 뿐이다. 하지만 한번 이곳의 달콤함에 맛을 들인 자들은 결코 하렘의 그림자에서 벗어나지 못하지. 온갖 진미와 여자, 그리고 쾌락… 저놈들은 그걸 위해서라면 내 발등조차 망설이지 않고 핥을 수 있을 거다.”
“본래 하렘의 용도란 그런 것이니까요.”
흔히 알려지길, 사막의 하렘은 대족장을 시중드는 여인들이 사는 곳이라 알려져 있지만 그 실제 속사정은 조금 달랐다. 실상은 근방의 유력자들을 초청해 향응을 제공하고, 그들을 철저한 하렘의 노예로 만들어 대족장의 하수인으로 길들이는 장치였던 것이다.
어떤 강직한 자라도 하렘에 발을 디디면 빠져나가지 못한다. 여자를 싫어하는 자라도 마약에는 견딜 수 없으며, 마약을 이겨내더라도 그 피폐한 정신은 사악한 주문에 무너지고야 만다.
지금 하쉬미르의 발 아래 나뒹굴며 신음하는 자들은, 겉으로는 멀쩡해 보이나 실제로는 그 속까지 뿌리 깊게 썩어 들어간 폐인들이었다. 저들이 할 수 있는 것이라곤 여자를 안거나, 하쉬미르가 말하는 대로 짖어대는 게 전부였던 것이다.
“이번 기회에 연맹에 심어둔 세작을 하나 더 늘리는 것도 나쁘진 않겠지.”
“…….”
“붉은 봉황이라고 했더냐? 그놈과 같이 온 여자 말이다.”
“예. 그렇습니다. 자료에 따르면 광염의 기운을 다룬다고 합니다.”
“다른 두 계집도 찾아보기 힘든 우물이지만, 유독 그 계집에 관심이 간단 말이야. 상성이 아주 좋을 것 같아.”
낮게 중얼거린 하쉬미르가 갑자기 아무것도 없는 허공에 손을 내젓자, 그 전면에 맑은 빛깔을 띤 불길이 허공을 불사르며 나타났다.
근방의 대기까지도 삽시간에 들끓게 만드는 엄청난 열기. 그러자 하쉬미르를 시중 들던 여인들은 물론이고, 그 옆에 시립해 있던 자하드까지도 오체투지를 하며 바닥에 넙죽 엎드렸다.
“성화의 존체를 뵈옵니다.”
맑은 불꽃을 대하는 그들의 태도는 더할 나위 없이 경건했다. 성화(聖火). 하쉬미르가 소환한 저 불꽃이야말로 모고르 부족의 신앙 그 자체인 성화였던 것이다.
흡족하게 고개를 까딱인 하쉬미르는 다시 장난처럼 손을 흔들어 불꽃을 사라지게 했다. 잠깐이나마 느껴졌던 열기로 보건대, 아마 그 불길은 상급의 화염계 주문과 맞먹는 위력일 터. 하쉬미르는 그런 막강한 불꽃을 소환하면서 별다른 시동어나 사전 동작조차 보이지 않았다. 말인즉슨, 그 불길을 의지만으로 다루는 달인이라는 의미였다.
“그 계집이 광염을 다룬다 했으니, 아주 상성이 잘 맞을 것 같다. 마침 은퇴를 하고 적당한 상대가 없어 적적하던 참이었으니, 이참에 새로운 반려를 맞이하는 것도 괜찮을 것 같구나. 어떻게 생각하느냐?”
“왕의 뜻을 어찌 거스르겠습니까마는, 그 여인은 대륙적으로 명성이 있는 여인인지라, 다소 주의를 하실 필요가 있습니다.”
“멍청한 놈. 하렘의 가장 깊은 곳에 처박아두면 바깥 놈들이 어찌 알겠느냐?”
하쉬미르가 노한 기색을 보이자 자하드는 황급히 다시 고개를 숙였다. 하쉬미르는 모고르 족에 있어서 절대 신이나 다름없는 인물. 그의 심기를 거슬렀다간 왕자라 할지라도 목숨을 부지하기 어려웠다.
“어차피 대계가 코앞이다. 걸리적거리는 것들을 모조리 치워버릴 때가 머지않았음이니. 미리 전리품을 챙긴다고 해서 문제될 건 없겠지.”
“…그렇습니다.”
“흐허허허허… 기다려지는구나. 이 태양왕(太陽王)이 다시 세상에 군림할 그 날이……!”
더는 거리낄 게 없다는 듯, 걸쭉한 웃음을 터뜨리는 하쉬미르. 그런 그를 바라보는 자하드의 낯빛은 왠지 모르게 어두운 그늘이 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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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진은 이상 없겠지?”
“문제없습니다.”
“그래야 할 거다. 만에 하나 내궁의 마법진에 이상이라도 생기는 날에는, 너뿐 아니라 내 목숨도 남아나지 않을 테니까.”
“옙!”
수하의 빠릿빠릿한 대답에 만족스런 미소를 머금은 사내는 그대로 걸음을 옮겨 지하로 내려갔다.
지하로 통하는 계단이 이어져 있는 곳은 태양궁의 지하 별궁으로, 부족의 고위층조차 함부로 드나들지 못하는 금지였다. 왜냐하면, 그곳은 세상에 밝혀져서는 안 될 비밀이 잠들어 있는 곳이었으니까.
몇 분을 걸어, 두터워 보이는 철문 앞에 도착한 사내는 주머니를 뒤적여 열쇠를 꺼내, 문을 봉하고 있는 잠금장치를 해제했다.
찰칵거리는 소리가 나며 잠금장치가 해제되자, 철문은 바닥에 깔린 레일을 따라 스르륵 양 옆으로 밀려났다. 아마 잠금장치가 해제됨과 동시에 자동으로 열리게 되어 있는 구조인 듯했다.
“다 왔군.”
“다 왔느냐?”
“그렇다.
헌데, 문을 열고 내부로 들어온 사내의 상태가 뭔가 이상했다. 분명 혼자인데, 마치 누군가와 대화를 나누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실제로 사내의 걸걸한 음성 외에도 가냘프고 높은 음색을 가진 소녀의 목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여긴 어디냐?”
“지하 별궁이다.”
“지하 별궁은 뭐하는 곳이더냐?”
“괴물들을 찍어내는 요람 같은 곳이지.”
“요람? 그건… 우움, 시간이 다 됐군.”
아쉬운 음성과 함께 사내의 뒤쪽에 드리워져 있는 그림자에서 갑자기 꾸물거리는 인영(人影)이 솟아났다. 칙칙한 검은 안개와도 같은 덩어리에서 폴짝 뛰어내린 것은 다름 아닌 백금발을 휘날리는 미소녀, 브리트라였다.
“그 마녀, 얄밉긴 해도 제법 쓸 만한 재주를 지녔도다.”
데모나가 건네준 ‘베일 오브 다크니스’ 스크롤의 여분을 고이 품속에 보관한 브리트라는 다시 길쭉하게 찢어진 뱀눈을 번뜩이며 사내의 얼굴을 노려봤다. 그러자 사내의 몸이 움찔 떨리며, 술에 취한 듯 가물가물하던 초점이 다시 희미하게 변했다. 그녀의 환상 주문에 걸린 것이다.
브리트라는 데모나와 마찬가지로 내궁에 깔린 마법진의 영향을 거의 받지 않은 상태였다. 그도 그럴 것이, 그녀는 데모나의 소울 트랩을 정면으로 맞고도 그 정신력으로 버텨내던 강한 내성의 소유자다. 신격을 지닌 고대의 왕뱀이란 타이틀은 그저 허울이 아니었던 것.
특히, 환상 주문의 달인이라고 할 수 있는 그녀가 내궁 전역에 깔린 마법진의 존재를 모를 리 없었다. 다만, 그녀가 눈치를 챘을 때에는 노구덕과 임유진이 마법진의 영향을 받은 상태였다.
순진한 브리트라는 곧바로 그 두 사람의 정신을 일깨우려고 했으나, 사전에 그 기미를 눈치 챈 데모나가 그녀를 제지했다.
‘어차피 내궁 밖으로 벗어나지 못하는 한, 저 두 사람을 일깨워봤자 의미는 없어. 상당한 내성을 가진 구더기는 몰라도, 임유진은 금방 다시 걸려들 테니까.’
‘그럼 어쩌라는 것이냐?’
‘이런 마법진이 깔린 데에는 이유가 있을 거야. 다행히 이 마법진은 당장 목숨에 별 위해가 되지는 않아. 우린 적당히 장단을 맞춰주면서 놈들의 속셈을 파헤칠 테니, 그동안 넌 밥값을 해줘야겠어.’
‘밥값? 돈을 내라는 것이냐?’
‘멍청하긴. 네 일부를 되찾아야 할 것 아냐? 왕뱀, 구더기와 조금 떨어져 있어도 능력을 쓸 수는 있겠지?’
‘…이 내궁 안에서라면 가능하다. 더 떨어진다면 힘들겠지만…….’
‘그럼 놀지 말고 일을 해. 다른 건 몰라도 네 환상 주문은 나도 인정하니까. 네 힘이라면 이곳의 바보들을 속이긴 쉬울 거야. 여기 스크롤을 빌려 줄 테니, 알아서 단서를 찾도록 해 봐.’
‘…빌려준다고?’
‘그래. 나중에 꼭 갚도록 해. 잊어버리지 말고.’
…이것이 데모나와 브리트라가 세운 발칙한 계획의 전말이었다.
유독 깐깐하게 구는 데모나에게 빚을 진다는 게 영 찝찝하기는 했으나, 당장 선택의 여지가 없었던 브리트라는 데모나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그리고 방문을 지키던 시녀와 병사들에게 환상 주문을 걸어 놓고 방을 빠져나왔다.
그 다음부터는 일사천리였다. 내궁에서는 은밀한 연회가 벌어지는 중인지라 대부분의 병력은 그쪽으로 이동한 상태. 브리트라의 사안(邪眼)을 이겨낼 만한 강자는 없었다. 아니, 상당한 강자라고 할지라도 정신계 주문에 대한 내성이 없다면 꼼짝없이 걸려들 수밖에 없는 것이 브리트라의 권능이었다.
그렇게 무주공산이 된 내궁을 휘젓던 브리트라는 어느 지점에서 ‘일부’의 존재감을 강하게 느꼈다. 그 지점이란 다름 아닌 지하로 통하는 별궁의 입구. 신바람을 내며 그 입구까지 단숨에 달려간 브리트라였지만, 안타깝게도 그 앞은 두꺼운 철문으로 가로막혀 있었다.
금세 풀이 죽어 발길을 돌리려던 브리트라. 하지만 이게 웬 행운일까. 그녀는 마침 근처에서 순찰을 돌고 있던 고위직의 사내를 발견할 수 있었다. 뭔가 있어 보이는 사내를 면밀히 주시하던 브리트라는 기회를 봐서 사내를 덮쳤고(?), 성공적으로 사내를 꼭두각시로 만들 수 있었다.
결과적으로 별궁 내에 잠입하는 데에는 성공했지만, 시간이 그리 많지 않았다. 사내에게 걸어둔 환상 주문은 지금의 그녀로서도 심혈을 기울여야만 하는 것. 현재처럼 힘의 공급이 불안정한 상태라면 언제 주문이 풀려도 이상할 게 없었다.
‘서둘러야 한다.’
그나마 다행인 점이라면, 별궁에 들어서자마자 안개가 들어찬 것처럼 두루뭉술하던 일부의 존재감이 나침반이라도 낀 양 확실하게 느껴진다는 것이었다.
‘그리 멀지 않구나.’
집 나간 강아지를 되찾는 심정이 이러할까. 실로 수백 년 만의 해후다. 브리트라는 두근거리는 내색을 감추지 못하며 총총히 앞을 가로질렀다.
별궁의 구조는 단순했다. 아니, 별궁이라기보다는 일직선으로 이어진 복도에 가까웠다.
‘그러고 보니 그 녀석에게 더 질문을 한다는 것을 잊었구나.’
무슨 괴물의 요람이란 말을 했던 것 같지만, 브리트라는 깊이 신경 쓰지 않기로 했다. 인간의 관점으로 따지면 그녀 자신도 괴물이 아닌가. 어차피 그녀의 일부만 되찾고 나가면 될 일. 괜한 곳에 신경 쓸 겨를은 없었다.
그렇잖아도 뛰듯이 걷고 있던 브리트라의 발걸음이 점점 더 빨라져, 나중에는 아예 달음박질이 되었다. 지하 중심부에 가까워질수록, 그녀의 심장을 고동치게 만드는 존재감이 확연히 강해지고 있었던 것이다.
“흐갹!”
급한 마음이 너무 앞섰던 것인지, 작아진 몸을 생각지도 않고 뛰어가던 브리트라는 결국 돌부리에 걸려 볼썽사납게 넘어지고 말았다.
“아우으으으… 아프다! 너무 아프다! 이, 이건 피! 피 아니더냐…! …으응?”
눈물을 글썽이며 무릎어림을 어루만지던 브리트라는 무심코 고개를 들었다가, 눈앞에 펼쳐진 광경에 두 눈을 망망히 부릅뜰 수밖에 없었다.
…음산함마저 감도는 거대한 공동. 치렁치렁하게 늘어진 거미줄 사이로, 한 명의 소녀가 힘없이 늘어진 채 고치처럼 매달려 있었던 것이다.
============================ 작품 후기 ============================
재밌게 보셨다면 추천 / 코멘 부탁드립니다.
이번 화는 작품 예약으로 올라갑니다.
일단 제가 확인한 코멘까지 리리플 달아두고, 퇴근하는대로 한 번 더 달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p.s 저도 데모나 씬을 쓰고 싶었지만.. 너무 스토리가 지지부진해질 우려가 있어.. 데모나는 더 좋은 기회가 남아 있으니 그때 하도록 하겠습니다!
p.s 2 / 소제목은 아직 미정이므로 ?로 하였습니다.
새벽산책 / 남는 건 정력뿐…
은신설야 / 굳이 안바꾸셔도 ㅋㅋㅋ 코멘 달아주시는 것만으로도 감사합니다.
노루찡 / 일종의 후광 효과 같은 거 아닐까요? 강하고 권력만 있으면 뭐..
smxdmdmd / 연참 나왔습니다!
아토므스크 / 더 진하지 못해서 죄송할 따름입니다 ㅠ
니오그타 / 데모나 은근히 음흉한 구석이 있죠 ㅋㅋ
오묘한 샨 / 실제로 사진 찍을 수나 있을까요?
월병인 / 그저 죄송하다는 말씀 밖에는…
그눈건 / 이하 동문….
북치네 / 죄송합니다 ㅠㅠ
asd메이지 / 데모나야 마녀답게 원래부터 요오오오망했으니까요 ㅎㅎ
Geryon / 현자타임 덕분에 정신을 되찾은..?
얼라이언스 / 코멘트 감사합니다!
osok / 그럼 이제 분량을 다시 쌓아야겠네요.. 추천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Velos / 저도 데모나도 참 좋아합니다
벌레 / 데모나야 악으로 깡으로 버티지 않을지..?
이시이시 / 일정 반경 내에서 노구덕과 연결되어 있다면 힘을 쓸 수 있습니다. 이번 화가 호기심 해결!에 도움이 되셨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