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unter Club RAW - chapter (3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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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3# Fallen sun
머리가 날아간 태양왕의 몸이 뒤로 벌러덩 쓰러지려는 찰나, 완전히 속박에서 벗어난 노구덕은 그의 멱살을 붙잡아 쓰러지지 못하게 붙든 다음, 복날 개 패듯이 주먹질을 해댔다.
쾅! 쾅! 쾅!
대포알 같은 주먹질은 태양왕의 건장한 몸뚱이를 순식간에 다져진 고깃덩이로 바꾸어놓았다. 노구덕은 걸레조각처럼 너덜너덜하게 변한 그의 동체를 바닥에 내던지더니, 가까운 잔해에서 수 톤은 나갈 것 같은 대리석 기둥을 번쩍 들어 올려 그대로 태양왕의 몸뚱이를 찍어버렸다.
태양왕의 육체를 다진 고기로 만들고, 그 위에 집채만 한 돌덩이까지 올려 찍어버렸다. 무자비하게 태양왕을 짓뭉개버린 노구덕이었지만, 굳어진 그의 표정은 좀처럼 펴질 줄 몰랐다. 태양왕의 육신에서 피와 뼈가 전혀 튀질 않았던 것이다. 꼭 생기가 없는 고무 찰흙을 짓이기는 듯한 손맛이었다.
“또 그 정체불명의 능력이로군.”
노구덕은 허탈하게 중얼거렸다. 설마 태양왕이 어비스 쉬라인의 비술을 사용할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어비스 쉬라인은 예전에 울펜이 벌레교단이나 마녀회, 발할라와 함께 거론했던 신비의 단체로서, 그나마 어느 정도 기록이 남아 있는 앞의 세 단체와는 달리 제대로 알려진 게 거의 없는 수수께끼의 조직이었다. 그나마 알려진 거라곤 그들이 ‘악마 숭배’와 관련이 있다는 것. 때문에 노구덕도 태양왕의 저 능력이 악마와 관련이 있다는 정도로만 짐작할 뿐, 그에 대한 대처는 전혀 떠올릴 수 없었다.
‘이놈을 무슨 수로 죽이지? 내가 할 줄 아는 거라곤 때리고 부수는 것뿐인데… 젠장할!’
바쁘게 염두를 굴리던 노구덕은 바닥에서 올라오는 뜨거운 열기에 학을 떼며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전면을 보니, 비석처럼 박혀있던 대리석 기둥이 물에 뜬 솜덩어리처럼 지글지글 녹아내리는 것이 보였다.
“…솔직히 놀랐다. 네놈이 내 염동력을 힘으로 깨부술 줄은, 미처 예상하지 못했어. 세상은 과연 넓고도 넓구나. 희한한 놈들이 참으로 많아.”
“내 눈엔 네가 더 희한하게 보이는데.”
“흐흐흐흐…….”
녹아내리는 돌무더기 사이에서 여유롭게 걸어 나오는 태양왕의 모습은 조금 전까지 걸레짝 같았던 몰골이었다곤 생각할 수 없을 만큼 멀쩡했다.
“어쩔 수 없지. 죽지 않으면, 죽을 때까지 두들겨 팰 수밖에.”
한숨을 내쉰 노구덕은 재차 허벅지에 힘을 주며 힘껏 뛰어올랐다. 그러나 이번만큼은 태양왕도 녹록하게 당해주지만은 않았다. 허공을 가로지르던 노구덕의 몸뚱이가 보이지 않는 줄에 걸린 빨랫감처럼 대롱대롱 매달려버린 것이다.
“…엇?”
“네놈의 육체가 지닌 힘은 확실히 경이적이지만, 디딜 곳 없는 허공에서만큼은 제대로 힘을 발휘할 수 없다. 피할 곳도 없고…. 그렇다면 잠깐 잡아두는 것 정도는 가능하단 말이지.”
킬킬거리며 조소를 보낸 태양왕은 허연 눈깔을 희번덕거리며 소리쳤다.
“이 괴물 같은 놈, 얌전히 잿더미가 되어라!”
그 순간, 노구덕 밑의 지반이 움푹 갈라지며 그 틈 사이로 눈부신 빛이 뿜어져 나왔다. 작열하는 빛무리가 찬연히 사위를 물들임과 동시에, 주위의 공기가 급속도로 뜨거워지는 것을 감지한 노구덕의 낯빛에 낭패한 기색이 어렸다.
“염병… 끄아아아–!”
작게 흘러나오던 목소리는 일시에 폭발한 섬광에 흔적도 없이 파묻혀버렸다. 노구덕이 둥실둥실 떠 있던 허공을 삽시간에 삼켜버린 빛무리는 연이어 두 번째, 세 번째 폭발을 일으키며 주변 수십 미터 일대를 업화로 가득 찬 불지옥으로 만들었다.
권능을 발휘해 주위를 초토화시킨 태양왕은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그는 장난치듯 가볍게 손을 휘저어, 넘실거리는 불구덩이 속에서 용암처럼 뚝뚝 녹아내리는 바윗덩이들을 건져냈다. 그렇게 공중으로 둥둥 떠오른 바윗덩이가 무려 백여 개.
강력한 염동력을 발휘해 바윗덩이들을 들어 올린 태양왕은 음침한 미소를 지었다.
“이놈, 네놈이 했던 그대로 되돌려주마.”
방금 전의 버닝 플레어(Burning flare)로 노구덕이 죽었을 수도 있었다. 아니, 십중팔구는 죽었으리라. 그러나 상대는 줄곧 그의 불길을 맨몸으로 받아내면서도 끈질기게 버텨냈을 뿐만 아니라, 초밀도의 염동력까지 힘으로 이겨낸 괴물 중의 괴물이었다.
밑바닥이 보이는 것 같으면서도 보이지 않는 미지의 상대. 본인은 자각하지 못하고 있겠지만, 태양왕은 그런 노구덕에게 일말의 두려움을 느끼고 있었다. 그가 굳이 확실한 마무리를 하는 것은 그런 까닭에서였다.
“영광으로 알아라. 네 무덤은 사막에서 가장 거대한 무덤이 될 테니까.”
상공을 구름처럼 두둥실 맴돌던 바윗덩이들이 일제히 한 지점으로 낙하했다. 낙석 무더기가 향하는 곳은 노구덕이 폭사(爆死)했을 거라 짐작되는 그 지점이었다.
쿵! 쿵! 쿠쿠쿠쿵!
유성군처럼 무자비하게 내리꽂히며 차곡차곡 쌓여가는 돌무더기를 흡족하게 바라보던 태양왕은 갑자기 눈두덩을 꿈틀거렸다. 난데없이 막대한 마력의 파동이 느껴지는가 싶더니, 사정없이 쏟아지는 낙석세례의 경로 중간에 거대한 뼈의 장막이 출현한 것이다.
“웬 놈이냐?”
“놈은 늙은이, 너 아냐?”
싸늘한 일갈이 태양왕의 가슴께를 서늘하게 적시며, 두터운 잔해로 막혀있던 통로가 산산이 터져나갔다. 붕괴한 줄 알았던 내궁 안에 생존자가 있었던 것이다.
무너진 내궁 안, 어두컴컴한 공간에서 등장한 이는 시퍼렇게 치뜬 두 눈에서 북풍한설 같은 한기를 흩뿌리는 까만 로브의 여인이었다. 칠흑과도 같은 어둠을 온몸에 휘감은 여인은 부득부득 이를 갈며, 태양왕에게 앙칼진 눈초리를 쏘아 보냈다.
“망할 늙은이. 숨통을 끊어주겠어.”
“너는… 그놈의 계집이로구나. 어헛!”
무심결에 데모나에게 눈길을 주던 태양왕은 짧은 단말마를 터뜨리며 다급히 염동력으로 방어막을 둘러쳤다.
콰아앙!
무형의 방어막이 태양왕을 둘러쌈과 동시에, 그의 바로 앞 미간에서 귀가 멍멍할 정도의 폭발이 일어났다. 실로 간발의 차이. 조금만 늦었더라면 어떻게 해 볼 틈도 없이 머리가 두 쪽이 날뻔했다.
‘무서운 속도다.’
등에 식은땀을 흘린 태양왕은 가까스로 숨을 고르며 전면에 나타난 여인에게 시선을 주었다. 두 눈에서 시린 독기를 발하고 있는 갈색 머리의 여인은, 분명 방금 전 그에게 망언을 일삼았던 여인과 마찬가지로 노구덕이 데리고 온 여인이 틀림없었다.
“…죽여버리겠어.”
“버릇없는 계집이구나. 침대에서라면 얼마든지 죽어줄 수 있다만.”
“하아아압!”
분노에 찬 얼굴로 태양왕을 노려보던 임유진은 두말하지 않고 단번에 모든 마력을 폭발시켰다.
“허어…….”
건달처럼 능글거리던 태양왕의 눈빛이 싸늘하게 식었다. 임유진이 줄기줄기 뿜어대는 방대한 마력은 절대 만만히 볼 수준이 아니었다. 이글거리는 마력에 휘감긴 수십 개의 단검들은 각 개체가 메두사의 머리처럼 영활하게 움직이며 지금 이 순간에도 그의 방어막을 집요하게 파고들고 있었다.
‘제법 명성이 있는 계집이라곤 들었지만, 설마 이 정도 수준일 줄이야. 잘못하면 위험할 수도 있겠어….’
태양왕은 임유진과 데모나를 생포해 노리개로 삼으려던 계획을 완전히 철회했다. 이 두 여인들은 사막의 절대자인 그로서도 결코 쉬이 여길 수 없는 상대였다. 까딱하다간 돌이킬 수 없는 낭패를 당할 수도 있었다.
“감히… 물러나라!”
호통을 치는 태양왕의 전면에서 다시금 눈부신 빛무리가 쏟아졌다. 태양궁을 불지옥으로 만든 초고온의 열기가 파도가 되어 임유진을 덮친 것이다. 홍옥처럼 새빨갛게 빛나던 임유진의 신형이 하얀 빛무리 속으로 꼼짝없이 삼켜지는 광경에, 태양왕은 득의한 미소를 머금었다.
“멍청한 계집이로다. 나의 권능을 정면에서 맞받을 생각을… 헉!”
태양왕의 자축은 일러도 너무 일렀다. 다음 순간, 임유진을 뒤덮었던 하얀 빛무리가 호두알처럼 반으로 쪼개지며 그 틈새에서 찬연히 타오르는 불길이 사납게 치솟아 오른 것이다. 아니, 억지로 쪼개진다기보다는, 마치 태양왕이 일으킨 불길이 감히 임유진의 불에 범접치 못하고 저절로 길을 열어주는 듯한 모습이었다.
“나, 나의 성화가… 이 무슨 말도 안 되는… 크허어억!”
태양왕은 너무 놀란 나머지 임유진의 공격을 피할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그가 뒤늦게 자신의 실책을 알아차렸을 땐, 적색 불꽃을 품은 수십 개의 단검 다발이 그 몸을 벌집으로 만들어 놓은 뒤였다.
“임유진! 저놈은 그 정도로는 죽지 않아!”
목청을 높여 경고한 데모나는 두 사람이 공방을 주고 받는 사이 준비한 주문을 발동시켰다. 그러자 그녀의 가냘픈 손에서 검은색 마력으로 이루어진 대형 마법진이 풍선처럼 팽창하며 허공에 자수처럼 새겨졌다.
“소울케이지(Soul cage)!”
넘실대는 묵색의 마력은 먹물처럼 허공을 물들이며 일대에 거대한 새장을 둘러쳤다. 얼핏 보면 빈틈이 많아 보이는 새장이지만, 실상은 영적인 차원에서 외부와의 연결을 완전히 끊어버리는 무시무시한 주문이었다. 이 공간 안에서는 정령을 비롯한 다른 어떤 이차원의 존재를 끌어들일 수 없다. 그것은… 설령 어비스 차원의 악마들이라 할지라도 마찬가지.
“이, 이 계집이…!”
눈 깜짝할 사이에 훼손된 신체를 복구한 태양왕의 얼굴이 당혹으로 물들었다. 어비스 쉬라인의 악마에게서 무한정으로 공급되던 막대한 기운이 한순간에 단절된 것이다. 어비스 쉬라인과 악마. 그 단어의 나열에서 착안한 데모나의 노림수가 멋들어지게 적중한 셈이었다.
“늙은이, 너무 말이 많았어. 저승에서는 그 입을 아예 꿰매고 다니는 건 어떨까 싶네.”
“이 녀어어언!”
격노한 태양왕은 광포한 야수 같은 포효성을 내지르며 데모나에게 손을 뻗었다. 초능력을 발휘해 단숨에 데모나의 목을 비틀어버릴 심산이었다. 악마와의 연결은 끊겼지만 아직 비축된 힘은 상당량 남아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는 이번에도 뜻을 이루지 못했다. 그 옆에는 태양왕에게 있어 최대의 천적이라 할 수 있는 임유진이 눈을 벌겋게 뜨고 있었으니까.
방대한 마력을 물리력으로 전환해 태양왕의 염동력을 튕겨낸 임유진은 서른 개가 넘는 단검을 움직여 태양왕의 온갖 급소를 동시에 급습했다.
“어림없다!”
다급해진 태양왕의 얼굴에선 이제 좀 전과 같은 여유는 찾을 수 없었다. 악마에게서 힘의 공급이 끊어진 이상, 그의 불사체(不死體)도 언제 그 수명이 다할지 몰랐다. 지금부터는 시간싸움. 한시라도 빨리 두 여인을 처치하고 이 격리된 공간에서 빠져나가야만 했다.
졸지에 서 있는 과녁판이 되어버린 태양왕은 사방에 불길을 일으켜 두꺼운 장막을 만들어 임유진의 단검 세례에 대응했다. 그의 성화는 세상 모든 불 중에서도 손에 꼽히는 업화(業火). 업화로 이루어진 두터운 장막은 그 어떤 공격이라도 막아낼 수 있는 최강의 방패였다.
하지만 이번에는, 상대가 너무 나빴다. 태양왕은 방금 전, 자신이 일으킨 성화가 임유진에게 맥없이 갈려나간 것을 봤으면서도 똑같은 실수를 범하고 말았다. 그만큼 그가 당황했다는 의미였다.
그리고, 그 실수는 이번에도 똑같은 결과를 만들어냈다. 임유진의 광염을 머금은 단검 앞에서, 그가 자랑하는 업화의 장막은 흥건하게 젖은 창호지나 다름없었다.
“아, 아니! 케헤…엑–!”
믿음직한 철옹성이 어이없을 정도로 손쉽게 숭숭 구멍이 뚫려버렸다. 있을 수 없는 광경에 눈을 부릅뜬 태양왕은 비명을 지르다 말고 몸을 부르르 떨었다. 임유진이 조종하는 단검 하나가 훤히 드러난 입천장을 뚫고 정수리에 커다란 바람구멍을 내버린 것이다.
오늘 벌써 여러 번 허물어지는 태양왕의 동공엔 도저히 믿을 수 없다는 빛이 가득했다. 그도 그럴 것이, 그가 어찌 짐작이나 할 수 있었겠는가? 지금 맞상대하고 있는 여인이, 모든 화염계 능력자에게 있어 천적이나 다름없는 사기 특성을 보유하고 있다는 사실을.
그 사기 특성의 정체는 다름 아닌 피닉스포스. 반신급 이하 모든 화염 속성에 대해 비교 우위를 지닌다는, 말도 안 되는 ‘권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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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의 추천은 작가에게 큰 힘이 됩니다.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립니다. . ㅠㅠ 조금 늦었습니다.
수요일인데 가게가 너무 바빠서, 짬을 내기가 힘들더군요. 늦게나마 올리고 갑니다!
가게 정리로 인해 리리플은 생략하도록 할게요! 궁금하신 점이 있다면 이번화에 달아주세요!
아참, 이시이시님, 브리트라의 심장을 따로 구했다는 묘사가 혹시 작중에 있었나요? 브리트라가 이번에 구해온 것은 따로 나누어진 ‘일부’입니다. 혹시 제가 착각했거나 설정 오류가 발생했을 수도 있으니 의문가신 점 다시 자세히 코멘 달아주시면 정말 감사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