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unter Club RAW - chapter (381)
0381 / 0777 ———————————————-
95# Primal phoenix
짝. 짝.
노구덕은 두어 번 박수를 쳐서 주의를 환기시켰다.
“심연의 구슬은 당분간 내가 맡고 있겠다. 위험한 물건이지만, 혹시 나중에 쓰일 데가 있을지도 모르니까. 그리고 이걸 개인에게 지급할 생각은 없으니 그리 알도록 해.”
여인들은 모두 고개를 끄덕이며 알았다고 대답했다. 소피아나 신소율은 심연의 구슬에 대해 꽤 관심이 있는 눈치였지만, 노구덕의 태도가 꽤 단호해 보이자 더는 토를 달지 않았다.
심연의 구슬에 대한 건을 일단락지은 노구덕은 서류철에 빼곡하게 꽂혀 있는 문서들을 하나하나 훑어보면서 말했다.
“소피아, 사람들을 불러 모아라. 내가 긴히 할 얘기가 있다고, 모두 모이라고 해.”
“모두라고 하시면……. 1군 주요 멤버들을 말씀하시는 거죠?”
“그래. 가이탄 님과 상기에게도 연락해라. 아, 그리고 도현이도 불러.”
“응? 권도현 헌터까지요…? 아하.”
노구덕의 의중을 빠르게 파악한 소피아는 냉큼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가 바쁘게 연락을 돌리는 사이, 노구덕은 서류철을 덮은 다음 여인들에게 양해를 구했다.
“모처럼의 휴식인데 미안하게 됐다. 가만 생각해 보니까, 이런 건 빨리 전해두는 게 좋을 것 같아서.”
“무슨 일인데 그래요?”
“일단 사람들이 모이면 그때 얘기하도록 하자.”
노구덕의 얼굴이 꽤나 심각해 보이자, 신소율은 의아해하면서도 입을 꼭 다물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곧 그녀의 입술은 댓 발이나 튀어나올 수밖에 없었는데, 임유진이나 데모나, 소피아는 노구덕이 무슨 말을 할지 벌써 짐작이라도 하고 있는 듯 그리 궁금한 얼굴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왠지 혼자 왕따를 당하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멀뚱하게 앉아 있는 브리트라야 처음부터 논외 대상이었고.
차 한 잔을 마실 정도의 시간이 흐르자, 소피아의 긴급 호출을 받은 멤버들이 속속들이 집무실로 모여들기 시작했다. 가장 먼저 달려온 것은 클럽 홀 밖에 따로 집을 구해 살고 있는 장상기, 노엘 부부를 비롯해, 일선에서 물러나 자문역을 맡고 있는 가이탄 등 상대적으로 한가한 사람들이었다.
“오랜만이야. 친구. 아직도 깨가 쏟아지나?”
“뭐? 신혼 지난 지가 언젠데… 어으윽!”
괜한 소리를 늘어놓다 노엘에게 사정없이 옆구리를 꼬집힌 장상기는 과장되게 엄살을 부리며 아픈 척을 했다. 예전과는 다르게 제법 너스레도 떨 줄 아는 장상기. 방에만 틀어박혀 골렘 연구에만 몰두했을 때와는 많이 달라진 모습이었다.
누가 봐도 다정해 보이는 그들 부부의 모습에, 노구덕과 임유진은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그 다음 순번은 아예 헌터를 은퇴하고, 아이리스의 위성 클럽 블랙 랩터의 단장으로 눌러 앉은 권도현이었다.
“으하하하! 구덕 형님, 오랜만에 뵙습니다!”
“이놈, 여전하구나.”
벌컥 문을 열고 들어오기 무섭게 호탕한 웃음을 터뜨리는 권도현은 그 외모가 백팔십도 달라진 상태였다. 가시덤불 같았던 턱수염과 구레나룻은 온데간데없고, 머리도 말끔하게 정리해서 빗어 넘겨 과거의 산도적스런 이미지는 한 점도 찾을 수 없었다.
권도현과는 지난 번 정기 보고 이후로 세 달 만에 만나는 셈이었다. 그 만남도 화상을 통한 만남이었던지라, 노구덕은 반갑게 그와 주먹을 부딪쳤다.
“신수가 아주 훤해졌군. 우리 소냐를 노예처럼 부려먹고 있는 건 아니겠지?”
“아이고, 형님! 무슨 말씀을 그렇게 하십니까! 오히려 제가 그 꼬맹이 눈치를… 크험험! 소냐 아가씨가 얼마나 맹랑한지 아십니까? 파견 나온 지 얼마나 됐다고, 벌써부터 제 머리 꼭대기에 올라가 있단 말입니다. 대체 어떤 영재 교육을 하셨길래 꼬맹… 아가씨가 그 모양이 된 겁니까? 회계에 분석, 입안까지 아주 못하는 게 없어요.”
꼬맹이와 아가씨를 바쁘게 왕복하는 호칭을 보아하니, 권도현이 처한 상황을 대강 알 만했다. 소냐의 비범함이야 그녀의 재능을 익히 알고 있는 노구덕은 물론이고 제 이모인 소피아마저 놀래킬 정도니, 그녀에 대해서 알지 못하는 메이슨이나 권도현은 아주 얼이 빠졌을 터.
그러나 고까워하는 말투와는 달리, 권도현의 눈은 여전히 웃음기를 띠고 있었다. 그것을 본 노구덕은 적잖이 안심할 수 있었다. 걱정했던 것과는 다르게, 소냐와 권도현의 사이가 꽤 좋은 것 같아 다행이었다.
“…그래도 잘 하고 있는 모양이군.”
“의욕이 넘쳐서 무서울 정도입니다. 이것 보십시오, 오늘도 회담 내용을 자필 보고서로 작성해 오라고 제게 시키지 뭡니까? 제가 이 나이에 깜지를 쓰게 생겼다고요. 형님, 부탁드리는데 제발 요점만 간단히 말씀해주십시오.”
권도현은 어울리지 않게 울상을 지으며 노트와 펜을 들어보였다. 그 익살스런 몰골에 피식 입매를 터뜨린 노구덕은 끼익 문이 열리는 소리에 슬며시 시선을 틀었다.
“아, 안녕하세요.”
조심스럽게 문을 열고 들어온 이는 김진솔이었다. 그 뒤로는 나란히 서 있는 안세희, 안세영 자매도 보였다. 왁자지껄 떠드는 소리에 조금 놀랐는지, 어색하게 굳어져 있던 그의 얼굴은 정면을 가로 막고 있는 권도현과, 그 옆의 장상기를 보자마자 환하게 밝아졌다.
“도현 형님! 상기 형님!”
“엇? 진솔이 아니냐? 오랜만이다! 호오, 더 남자다워졌는데?”
보자마자 얼싸안고 포옹을 하는 두 사람. 오랜 기간 같은 조로 활동한 만큼, 그 진한 우정을 모르는 바는 아니었지만… 솔직히 썩 보기 좋은 광경은 아니었다.
그 뒤로도 개인 훈련을 하고 있던 이두식과 나타샤, 연구를 위해 출장을 나가 있던 헨더슨까지 합류하면서, 잔잔했던 집무실은 금세 시장바닥처럼 시끄러워졌다.
오랜만에 만난 지인들끼리 서로 안부를 묻고, 회포를 푸는 것을 잠시 지켜보던 노구덕은 이만하면 됐다 싶었는지 큰 소리로 말했다.
“이제 그만들 하고 자리에 앉아라. 바쁜 사람들도 있으니까 빨리 끝내도록 하자.”
노구덕의 묵직한 음성을 들은 사람들은 분연히 자기 자리를 찾아 착석했다. 애초에 많은 테이블이 준비된 응접실이 아니었던 탓에, 노구덕과 여인들을 중심으로 아무렇게나 동그랗게 모여 앉은 모양새가 되었다.
대충 장내가 정리되자, 노구덕은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는 얼마 전 연맹총단에서 위원회 파벌에 속한 퀸젤과 연을 맺은 것부터 시작하여, 이번 사막 원정에서 겪은 일을 최대한 알아듣기 쉽게 간추려서 풀어 놓았다.
그의 이야기가 진행되는 동안, 자리에 앉은 이들의 안색은 시시각각으로 변해갔다. 특히 동부와 남부에 강대한 반군 세력이 있다는 대목과 과거의 강자였던 태양왕과 싸웠다는 대목에서는 놀라다 못해 헛바람 빠지는 소리를 내며 경악한 이도 있을 정도였다.
노구덕은 진중한 눈빛으로 사람들의 면면을 쓸어보며 말했다.
“…곧 전쟁이 일어날 거다. 위원회와 반군… 이제는 서로가 서로의 존재를 아는 만큼, 더 이상 눈 가리고 아웅 할 필요가 없어졌지. 특히 남부의 반군은 이번에 큰 보급지대를 잃었어. 놈들이 이대로 말라 죽을 작정이 아니라면, 어떤 식으로든 보급지대를 되찾거나, 그에 상응하는 다른 행동을 보이겠지.”
불과 십 분 전만 하더라도 살짝 들떠 있던 분위기가 서리라도 내린 듯 싸늘하게 얼어붙었다. 지금, 노구덕은 퀸젤과 마찬가지로 반군의 발호를 예견하고 있었다. 이전까지라면 터무니없는 얘기라고 흘려들을 수도 있었겠지만, 그렇게 안일하게 생각하기엔 현재 돌아가는 상황이 심상치 않았다.
“수백 년의 세월은 위원회의 공고한 지배력을 썩어빠지게 만들었지. 나태해진 위원회가 감시의 눈길을 거둔 사이, 암중에서 자라나던 종기는 무르익을 대로 무르익었다. 언제 곪은 게 터져버릴지 모를 정도로 말이다. 남부의 미개척지대에 주둔하고 있는 반군들의 숫자만 수천이고, 동부는 그보다 더한 세력을 구축하고 있는 상황이다. 어쩌면, 북부나 서부에도 비슷한 일이 벌어지고 있을지도 몰라.”
“예측하건대, 놈들의 병력은 최소한 1만 이상이다. 그것도 한 명 한 명이 전직 헌터이거나 리버 출신… 아니, 아직까지 버젓이 가면을 쓰고 현역 헌터로 뛰고 있는 놈도 있겠지. 게다가 그중에는 태양왕 같은 강자들도 상당수 섞여 있는 상황이다.”
“놈들의 목적은 현 체제의 전복이다. 현재 대륙에 뿌리 내리고 있는 리그 시스템의 붕괴와 위원회의 말살… 표면적으로는 그렇게 말하고 있지만, 실제 그 수뇌의 생각이 어떤지는 알 수 없어. 어쩌면, 그놈들은 자기들이 제2의 위원회가 되길 원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장광설을 설파한 노구덕은 잠깐 목을 축인 뒤에 말을 덧붙였다.
“…위원회의 반응은 꽤 미적지근하다. 그럴 수밖에 없지. 이만큼 커버린 반군의 실체를 대놓고 공표하면, 스스로 무능을 인정하는 것이나 진배없거든. 뭐, 그 안에서도 여러 의견이 분분한 것 같기는 한데, 주류는 아직까지 반군의 존재를 최대한 숨기면서 놈들을 제압하자는 쪽인 것 같다.”
“…놀랍도록 안일한 생각이지만, 위원회의 입장을 고려하면 이해되지 않는 것도 아니다. 벌써 반군의 세력이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커 버린 마당에, 그 존재가 공개되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놈들에게 동조할지 알 수가 없어졌으니까. 도둑이 제 발 저린다고 할까…. 모순이지만, 위원회도 알고 있는 거지. 자기들이 얼마나 형편없는 통치를 해 왔는지.”
밖으로 새 나간다면 반역으로 몰려도 할 말이 없을 만큼 신랄한 발언이다. 노구덕은 거기서 그치지 않고 결정타를 날렸다.
“사실, 이미 늦었을지도 모른다. 반군이 대대적으로 들고 일어나면, 정말로 이 대륙의 체제가 뒤집힐지도 몰라. 위원회가 그리 호락호락하게 당하지는 않을 테지만… 반군의 수뇌도 이만한 대계를 수십 년 동안 은밀하게 준비해온 자들이다. 게다가 그 실체는 아직 제대로 밝혀지지도 않았지.”
숨죽인 사람들을 앞에 둔 노구덕은 무겁게 한탄하듯이 말했다.
“조만간… 선택의 순간이 올 거다. 위원회에 붙을지, 새로운 기치를 들고 일어난 반군에게 붙을지……. 그 순간의 선택이 우리의 평생을 좌우하겠지. 이 전쟁에서… 중립은 있을 수 없다. 위원회는 반군의 싹을 모조리 제거하려고 할 테고, 반군은 위원회와 연맹의 틀을 완전히 박살내려 들 테니까.”
“그럼… 우리는 누구 편이죠? 위원회인가요?”
누군가가 조그마한 목소리로 던진 물음. 기실, 이곳에 모인 모두의 의문을 대변하는 질문인지도 몰랐다.
그 질문에 대한 노구덕의 대답은, 앞서 그가 말한 것과는 상반되는 것이었다.
“우리는 누구의 편도 들지 않는다.”
“네? 방금, 중립은 없다고 하셨잖아요?”
“위원회가 표방하는 것은 체제의 안정, 반군이 내건 것은 억압으로부터의 자유. 하지만 나는 그런 거룩한 가치에는 아무런 관심도 없다. 중요한 건 결국, 우리가 사느냐 죽느냐. 그것뿐이야. 따지고 보면 놈들도 마찬가지지. 이건 이념, 가치의 싸움이 아니라, 서로의 생존을 건 싸움이다.”
“…….”
“살아남을 수 있다면, 선택은 언제든지 달라질 수 있다. 정해진 게 아니야. 지금은 우선… 최선을 다해 준비할 뿐이다. 그러니 다들, 각오를 분명하게 다져놔야 할 거다. 어쭙잖은 마음가짐으로는 다가올 전쟁에서 살아남을 수 없을 테니까. …이 점을 꼭 말해두고 싶었다.”
엄숙하게 말을 마친 노구덕은 소피아를 돌아보았다.
“소피아, 내가 전에 지시한 명단은 뽑아놨겠지?”
“넷. 주인님.”
“좋다. 그럼 이 자리에서 바로 공표하도록 하지.”
무엇을 시작한다는 것일까? 어리둥절해하는 사람들의 귓가에, 노구덕의 가라앉은 음성이 또렷하게 파고들었다.
“현재의 1군, 2군, 3군… 아이리스는 분명 강한 클럽이지만, 그 정도로는 부족하다는 게 내 생각이다. 최소한, 지금 바로 프라임리그에 올라가도 문제없을 만큼 강한 전력을 구축하지 않으면 안 돼. 곧 다가올 여름이적시장… 거기서 최고의 대어들을 낚아올 계획이다. 그것을 위해서 지금껏 축적된 아이리스의 모든 재화를 쏟아 붓는다. 강한 헌터들로 전력이 보강되면, 자연히 약한 사람은 도태되겠지.”
꿀꺽 침을 삼키는 소리가 들렸다. 약한 자는 도태된다는 선언이 가슴을 강하게 울렸기 때문이다. 각오를 강하게 다지라는 말은, 이런 의미였던 것일까?
그러나, 노구덕의 말은 아직 끝난 것이 아니었다.
“물론… 아무리 많은 돈을 푼다고 한들, 갓 웨스턴리그에 입성한 아이리스에 프라임리그급의 강자들이 모일 리 없겠지. 그래서… 그걸 위한 선전 이벤트를 준비했다.”
모두의 떨리는 시선이 그의 두꺼운 입술에 쏠린 찰나, 노구덕의 목에서 천둥과도 같은 울림이 떨어졌다.
“바로, 십존쟁탈전이다.”
============================ 작품 후기 ============================
여러분의 추천은 작가에게 큰 힘이 됩니다~!!!
십존쟁탈전의 주인공이 누구인지는.. 말 안해도 아시겠죠?
저녁에 예약이 있어서 조금 바쁠 것 같습니다. 지금도 열심히 다음화 쓰는 중이니 리리플은 생략토록 하겠습니다 ㅠㅠ 죄송합니다. 궁금하신 점이 있다면 이번화에 달아주세요! 빨리 분량 채워놔야 저녁에 올릴 수 있으니까요..! 좋은 하루 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