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unter Club RAW - chapter (3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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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6# 이별과 만남
‘주인님, 주인님! 너무 티 나잖아요!’
무심코 그의 말을 끊고 합격 선언을 한 노구덕은 머릿속을 웅웅 울리는 소피아의 텔레파시에 퍼뜩 정신을 차리고 목을 가다듬었다. 급한 나머지 실수를 하고 만 것이다.
“하, 합격이라고요?”
“큼큼… 자기소개가 합격이란 말이네. 목소리가 아주 좋군. 귀에 쏙쏙 들어오는 중저음이야.”
“예에?”
노구덕은 어리둥절하게 서 있는 청년을 앞에 두고 대충 말을 얼버무렸다. 사실, 그의 머릿속은 방금 전 훑어내린 청년의 저널 정보를 제대로 파악하는데 온 신경이 쏠려 있는 상태였다.
“그럼 다음 단계로 넘어가지. 소피아, 다음은 네게 일임하마.”
어정쩡하게 바통을 이어받은 소피아는 쉴 새 없이 눈동자를 굴리며 정보를 읽어 내리는 노구덕의 얼굴을 힐끗거리면서 텔레파시를 보냈다.
‘…주인님, 합격인가요?’
‘그래. 일단 합격시키고, 뒤처리는 나중에 하자.’
소피아에게 뒷일을 떠넘긴 노구덕은 팔짱을 끼고 청년의 저널 정보를 주시했다. 그러자 자기 얼굴을 보는 줄 알았던지 거북하게 고개를 숙이는 문석현. 그러나 실상 노구덕의 두 눈은 허공에 출력되는 그의 저널창에 고정되어 있었다.
[이름(Name) : 문석현] [종족&인종(Tribe&Race) : 인간(Human)] [클래스(Class) : 마법사(Wizard)] [재능(Talent) : Lv3 위조(S), Lv1 검술(C), Lv3 마법(UC), Lv2 정령(R), Lv3 안목(U)] [특성(Characteristics) : 만물박사, 장인의 손재주, 마법 숙련가] [Lv3 위조(S) : 당신은 한 번 본 것은 좀처럼 잊지 않는 뛰어난 기억력과, 사람 및 사물의 세세한 특징까지도 순간적으로 포착할 수 있는 관찰력을 지녔습니다. 위조(僞造)는 이 능력을 바탕으로, 본판과 그런대로 비슷한 모작을 만들어낼 수 있는 재능입니다. 당신이 놀라운 손재주까지 지녔다면,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들 사기꾼이 될 수도 있겠군요. 아무쪼록 당신이 이 재능을 위폐 따위나 만드는 데 쓰는 바보가 아니기를 바랍니다.] [Lv3 안목(U) : 당신은 사람과 사물의 본질을 꿰뚫어 볼 수 있는 특수한 재능을 가졌습니다. 이는 직관력이 뛰어난 사람이 후천적으로 지닐 수 있는 능력이지만, 당신의 이 재능은 그들의 통찰에 비해 보다 동물적이고, 보다 감각적입니다. 당신은 타고난 본능적인 안목으로 선악(善惡)의 판별은 물론이고, 강약(强弱), 득실(得失)을 판별할 수 있습니다. 물론, 어디까지나 당신의 기준으로 말이지요.]특별함(Special) 등급의 재능인 위조와, 유일한(Unique) 등급의 재능인 안목. 노구덕이 체통도 잊고 무심코 합격을 외쳐댄 것은 말할 것도 없이 이 두 재능 때문이었다. 아니, ‘특별한 재능’은 아무래도 좋다. 하지만 ‘유일한 재능’이라니? 이건 무슨 대가를 치르더라도 반드시 잡아야 하는 인재였다.
단순히 재능의 등급이 헌터의 강약을 결정할 수 있는 건 아니다. 그건 별다른 특출한 재능 없이 검왕의 반열에 오른 김정인만 봐도 알 수 있다. 김정인의 경우에는 Lv6 검술(C)이라는, 그 끝을 알 수 없는 엄청난 포텐셜이 있었지만……. 어쨌든, 일반적인 경우가 그렇다는 얘기다.
하지만 유일한 재능이라면 이야기가 다르다. 이건 말 그대로 스퀘어에 등장한 헌터 중, 오직 한 사람만이 갖고 있는 재능이라는 뜻이다. 그리고 일반적으로 이 등급의 재능은 무궁무진한 가치를 지니고 있는 경우가 많았다.
지금까지 노구덕이 알고 있는 유일한 등급의 재능은 하유라의 만능(U)과 자신의 기적(U). 그 재능 하나로 절대적인 강함을 손에 거머쥔 하유라의 만능이야 말할 것도 없고, 그를 죽음에서 부활시킨 데다, 여러 방면에 걸쳐 긍정적인 영향을 보정하고 있는 기적 역시 비할 데 없는 진귀한 재능이었다.
그런 재능을 가진 이라면, 인상이 글러먹었더라도 반드시 붙잡아야 한다. 정 안 되면 세례를 통한 정신개조를 해서라도 발목을 붙들어 둘 셈이었다.
그때, 면접을 맡고 있는 소피아와 문석현의 조곤조곤한 대화 소리가 그의 귓가를 간질였다.
“…응? 문석현 씨? 왜 그러시죠?”
“커험! 아, 아닙니다. 가, 갑자기 오한이…….”
갑자기 오줌이라도 마려운 듯 낯빛이 굳어지며, 주위의 눈치를 보는 문석현. 그의 불안에 찬 시선이 얼핏 얼굴을 스치고 지나가자, 노구덕은 순간적으로 머리에 찬물이 끼얹어진 듯한 기분이었다.
‘아차!’
찰나에 불과했지만 분명히 알 수 있었다. 면접을 잘 진행하던 문석현이 갑자기 불안해하는 이유. 그건 바로 자신 때문이었다.
‘설마, 그새 내 생각을 읽은 건가? 아니, 그 정도는 아닌 것 같은데….’
노구덕은 차분히 되뇌어보았다. 방금 전, 그가 무슨 생각을 했던가. 문석현을 강제로 잡아 세뇌를 시키겠다는 음험한 마음을 품었다. 만약, 그 생각을 문석현이 곧이곧대로 읽었다면 그 반응은 겨우 저 정도에서 그치진 않았을 것이다. 게다가, 방금 전 했던 말.
‘오한이라고 했지…. 저 녀석… 본능적으로 느끼는 건가?’
‘안목’ 항목에 나와 있는 설명을 보더라도, 이 가정이 맞는 것 같았다.
노구덕은 문석현에 대한 생각을 정리했다.
‘안목’ 재능을 가진 문석현은 그 눈으로 상대의 본질을 꿰뚫어 볼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은 구체적인 내용이 아니라 그 자신을 기준으로 한 이해득실, 안위에 관련된 것일 터. 그가 어느 정도까지 재능을 개발했는지는 모르겠으나, 지금까지 파악한 바로는 그 정도가 전부인 것 같았다.
“소피아, 잠깐만.”
지그시 손을 들어 형식적인 면접을 진행하고 있는 소피아를 제지한 노구덕은, 자신을 꺼림칙하게 바라보고 있는 문석현과 얼굴을 마주했다.
“문석현 헌터.”
“예.”
외마디 대답에서도 그를 꺼리는 듯한 기색이 강하게 풍겨온다. 역시, 방금 전 강압적인 생각을 품었던 것이 작은 경각심을 심어 놓은 듯했다.
“괜찮다면, 아이리스에 지원한 이유를 다시 한 번 들을 수 있겠습니까?”
좀 전과는 다른 정중한 말투에, 문석현은 영문을 몰라 어리둥절한 얼굴이었다.
“예? 아, 뭐… 꼬여버린 제 헌터 인생을 다시 시작할 수 있는 기회라 생각했으니까요. 듣기론 평판도 굉장히 좋고, 무엇보다 위원님의 명성이 자자했던 것도 있고요…….”
전형적인 질문에 전형적인 답변. 오랫동안 사람을 대해왔던 노구덕은 단번에 알 수 있었다. 문석현 지금 거짓말을 하고 있다. 그의 답변을 들은 노구덕은 무심히 고개를 끄덕이면서 다시 한 번 ‘확인’을 위한 질문을 던졌다.
“기분 좋은 대답이군요. 느낌이 아주 좋습니다. …자기소개 때도 그렇고, 문석현 헌터는 왠지 아이리스와 잘 맞을 것 같군요.”
“…예? 어… 예. 감사합니다.”
일순 눈에 띄게 당황하는 얼굴이 되더니, 급히 표정을 수습하는 문석현. 그것을 본 노구덕은 확실히 감을 잡을 수 있었다. 그가 아이리스에 지원한 이유, 그는 이곳에서 무언가를 보고 어떤 좋은 ‘느낌’을 받은 것이 분명했다. 자신에게 큰 이득이 될 거라는.
‘상당히 어정쩡한 능력이야. 당장 위험 감지조차 내 마음의 변화에 따라서 들쑥날쑥한 수준이니… 개발이 덜 되어서 그런가? 어쨌든 두고 볼 가치는 있겠군.’
문석현의 안목은 꽤 유용한 능력이지만, 절대적인 것은 아니다. 그건 그의 이력만 보더라도 알 수 있었다. 노구덕은 그가 제출한 이력서를 보고 자기도 모르게 입가를 살짝 씰룩였다.
“…꽤 특이한 이력이군요.”
“…….”
조마조마한 눈으로 노구덕이 가지고 있는 서류를 보고 있던 문석현은 그가 서류를 읽어내리자 면목 없다는 듯이 고개를 떨구었다. 속으로 그가 자기 이력서만은 보지 않기를 바라고 바라기라도 한 모양.
“…화폐 위조범에, 사기 경력이라… 용케 헌터하우스에서 제명되지 않으셨습니다?”
화폐 위조와 사기. 황당하게도 문석현, 그는 범죄 경력이 있는 헌터였다. 어지간한 일에는 좀처럼 놀라지 않는 소피아조차 그 커다란 눈에 어처구니없는 빛을 담았을 정도니.
범죄를 저지른 헌터는 그 경중에 따라 제명이 되기도 한다. 사기야 어찌어찌 넘어간다고 하더라도 화폐 위조는 도시 경제의 근간을 뒤흔들 수도 있는 중범죄. 간 크게 그런 짓을 저지르고도 버젓이 헌터 직함을 달고 다닌다니 놀라울 따름이었다.
“…당시엔 초범이었고, 당시 마스터께서 좋게 봐주셔서 겨우… 제명은 면했습니다. 사기죄는… 피해자와 합의를 하고 전액 배상을 했고요.”
노구덕의 눈치를 보며 겨우겨우 해명을 한 문석현은 슬그머니 사족을 덧붙였다.
“…그 일은 많이 반성하고 있습니다.”
사기 및 화폐위조범의 반성이라. 솔직히 별 믿음이 가지 않았지만, 노구덕은 다른 의미로 안도할 수 있었다.
‘불쌍한 놈이군.’
비범한 재능을 가졌으면서도 어떻게 쓸 줄을 몰라 썩히고 있는 케이스, 그게 바로 문석현이었다. 위조(S) 재능은 위폐를 만드는 데 쓰고, 안목(U) 재능은 면피를 위한 도구로 쓴다니, 실로 어처구니가 없을 지경이었다. 노구덕은 문석현이 범죄를 저지르고도 아직 헌터 직함을 쓸 수 있는 이유에 ‘안목’ 재능이 작용했을 것이라 판단했다. 아마 미리 헌터하우스의 마스터와 어떤 연을 만들어 둔 것일 터.
제 3자가 본다면 이런 멍청한 놈이 있냐며 욕지거리를 할 지도 모르겠지만, 어찌 보면 이해되지 않는 일도 아니었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헌터의 본업은 카름의 사냥이다. 안목과 위조… 등급과 잠재성은 출중하지만, 이 재능들이 전투에서 무슨 힘을 발휘할 수 있단 말인가? 차라리 고레벨의 검술(C)이나 마법(C) 재능이었으면 자기 어필을 하기가 더 쉬웠을 것이다. 하지만 저널창을 뚝 떼서 남들에게 홍보할 수 없는 이상, 당장 드러난 능력치만을 보고 판단하는 스카우터들이 문석현을 높이 평가했을 리 없었다.
전투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여겨지는’ 두 재능을 제외한 문석현의 남은 재능은 Lv1 검술(C), Lv3 마법(UC), Lv2 정령(R). 그나마 ‘만물박사’, ‘장인의 손재주’, ‘마법 숙련가’란 특성을 보면 달리 전투 분야에 집중한 것 같지도 않다.
‘생계에 허덕이다 범죄의 길에 빠지게 된 건가… 뭐, 자세한 건 나중에 알아보면 되겠지.’
“…문석현 헌터, 화폐위조는 왜 하게 된 겁니까?”
“…도, 돈이 없어서…….”
“아니, 그것 말고, 왜 하필 화폐위조였습니까? 스퀘어의 화폐는 문양이 상당히 복잡한데다 마법적인 가공까지 되어 있어서 쉽지 않았을 텐데요. 문석현 헌터처럼 특이한 이력을 지닌 사람은 처음인지라, 한번 꼭 얘기를 들어보고 싶군요.”
헌터를 뽑는다면서 뜬금없이 범죄이력에 대해서 얘기해 달라니. ‘날 놀리는 건가?’라는 듯한 의문을 얼굴에 띄우던 문석현은 노구덕의 눈빛이 더없이 진지해 보이자 짙은 한숨을 내쉬며 답을 해주었다.
“…예전부터 손재주와 기억력에는 자신이 있었습니다. 이 대륙의 주화 패턴이 무척 복잡한 것은 사실이지만, 흉내 내지 못할 정도는 아니라서요.”
“호오, 순수 마법으로만 새겨지는 정교한 공정도 있을 텐데, 그걸 순수하게 손재주로만 흉내를 냈다고요?”
“…까다롭긴 했지요. 하지만 어렵지는 않았습니다. 몇 번 반복을 하다 보니 요령이 붙어서 금세 익숙해지기도 했고…….”
“그런데 어떻게 탄로가 난 겁니까?”
“…같이 일하던 동료가 배신을 했습니다. 그래도 목숨은 건졌으니, 다행이지요….”
말과 달리, 씁쓸하게 대꾸하는 문석현의 얼굴은 그리 편하게 보이지 않았다. 반면, 그런 문석현을 앞에 둔 노구덕은 싱글벙글 튀어 나오려는 웃음을 억누르느라 진땀을 빼야만 했다. 방금, 문석현을 요긴하게 쓸 수 있는 방도가 여럿 떠오른 탓이다.
‘이놈, 쓰임새가 아주 많겠군. 복덩이가 굴러 들어왔어.’
‘위조’. 언뜻 보면 별 쓸 데가 없어 보이는 재능이다. 그 재능을 가진 문석현조차 고작 위폐제조에나 썼을 정도니. 하지만 노구덕은 그 재능이 다름 아닌 저널창에 표기되어 있다는 사실에 주목했다.
‘전투와 직간접적으로 관여된 재능이 아니라면 저널에 뜰 리가 없지.’
저 재능을 잘만 이용하면 스크롤과 마법진… 더 발전시킨다면, 어쩌면 박지현의 무기인 소울체이서(Soul chaser)나 이두식의 슬로터(Slaughter) 같은 고유 장비의 레플리카까지 제작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거기에 안목과 내 ‘하이 스카우터의 눈’을 조합하면 굉장한 상승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하이 스카우터의 눈은 구체적인 능력치를 읽어낼 수 있는 대신, 사용에 제한이 있다. 반면, 문석현의 안목은 정보가 두루뭉술한 대신 광범위한 다수를 대상으로 적용이 가능하면서 사용에 제한이 없다. 이 두 능력을 잘만 조합시킨다면…… 아이리스의 인재풀에 큰 도움이 될 수 있을 것 같았다.
초조해하는 문석현을 앞에 둔 노구덕은 무거운 얼굴로 이력서를 반으로 접었다. 그러자 문석현의 얼굴에 뚜렷한 동요의 빛이 나타났다.
“타, 탈락입니까?”
본래 소심한 사람인 것 같지는 않은데,
“…문석현 헌터의 이력은 흥미로습니다만, 헌터로서의 능력이 출중한 것 같지는 않군요. 아쉽습니다.”
“…그렇지요…….”
“단…….”
예상했던 반응이다. 그러면 그렇지하는 얼굴로 고개를 늘어뜨린 문석현은 노구덕의 음성에서 미세한 여지가 느껴지자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문석현 헌터. 헌터가 아닌 다른 일은 어떻습니까?”
“예? 다른 일이라니….”
“클럽 아이리스는, 당신을 정식으로 고용하고 싶습니다. 직무와 조건은 차후 조정을 해야겠지만, 충분히 만족할 만한 대우를 해 드릴 것임을 약속드립니다.”
당연히 떨어진 줄 알았던 찰나에 들어온 뜻밖의 제안. 예상치 못한 동아줄이 하늘에서 내려오자, 문석현은 다급히 고개를 끄덕이며 소리쳤다.
“하, 하겠습니다!”
“그거 고마운 말씀이군요. 잘 해봅시다.”
노구덕은 뜻밖의 횡재에 좋아라하는 문석현을 두고 속으로 진한 웃음을 삼켰다. …누가 횡재를 했는지는, 두고 봐야 알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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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의 추천은 작가에게 큰 힘이 됩니다!
걱정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제 건강 문제는 아니고, 동생이 사고를 당해 병원에 입원한지라… 다음 주 수요일에 수술 예정인데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네요.. 저녁화가 올라갈 수 있을지 없을지는 아직 장담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독자 여러분도 항상 몸조심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