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unter Club RAW - chapter (390)
0390 / 0777 ———————————————-
98# Opening
++++++++++++++++++++++++++++++
“늦었네? 노구덕 위원.”
“음.”
대무투장의 전경이 훤히 내려다보이는 VIP석을 배정받은 노구덕은 데모나, 신소율과 함께 관전을 위해 지정된 자리에 들렀다가, 그 자리에 미리 도착해 있는 퀸젤을 보곤 가볍게 목례를 했다.
“흥.”
“…칫.”
퀸젤의 동석이 상당히 유감인 듯, 나란히 서 있는 두 여인은 일제히 대놓고 불만을 표시했다. 데모나는 원래부터가 퀸젤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고, 신소율은 압도적인 부피를 자랑하는 그녀의 가슴 쪽을 보더니 인상이 확 일그러졌다.
그러거나 말거나, 퀸젤은 두 여인들 쪽에는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어휴, 이번 십존쟁탈에서 승리를 하면 이제 함부로 대하지도 못하겠네. 저번에 잘 부탁한다고 말했을 때부터 알아봤어야 했는데. 이런 대형사고를 칠 줄이야.”
애매하게 돌려 말하고 있지만, 그녀의 어조엔 명백한 책망의 뜻이 어려 있었다. 자연스럽게 그녀의 옆자리… 에 앉으려다 뭇 여인들의 눈치에 한 칸을 건너 뛰어 엉덩이를 붙인 노구덕은 거친 뺨을 긁적이며 말했다.
“미안하군. 북왕 형님과 서리여왕의 주도로 워낙 갑작스럽게 진행된 일이라… 나도 어떻게 할 방법이 없었어.”
“그래도 서리여왕에게 도전한다는 사실 정도는 사전에 알려줬으면 좋았잖아? 내 라인에 있는 노구덕 위원이 이런 빅 이벤트를 꾸밀 동안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다니… 내 체면이 말이 아니게 됐어.”
노구덕의 이맛살에 미미한 주름이 잡혔다. 이전에도 몇 번이나 해명을 했건만, 또 다시 거론을 하는 걸 보면 아직도 앙금이 풀리지 않은 모양이다. 퀸젤, 의외로 뒤끝이 있는 여자였다.
“무슨 간섭이야? 아이리스의 행사를 일일이 당신에게 보고할 의무는 없어.”
이때다 싶었는지 퉁명스럽게 말을 내쏘는 데모나와, 그 옆에서 열심히 고개를 끄덕이는 신소율. 그때서야 두 여인에게 눈길을 옮긴 퀸젤은 익살스럽게 눈매를 좁히며 푸념하듯이 말했다.
“나 참, 이게 고모를 대하는 조카의 태도야? 내 팔자도 참 기구하지.”
“고모는 무슨…….”
두 여인 사이의 묵은 갈등이 또 다시 재점화될 기미를 보이자, 노구덕은 재빨리 데모나의 가냘픈 허리춤에 팔을 두르며 그 사이에 끼어들었다.
“잡담은 이쯤하지. 퀸젤 위원, 공사다망하신 분이 일부러 예까지 행차하신 이유가 뭐지?”
“너무 딱딱하게 말하지 마. 그냥 노구덕 위원과 할 얘기도 있고, 조카도 보고 싶고, 겸사겸사 오붓하게 관전이나 할까 해서 온 거니까. 아, 그쪽 아가씨와는 두 번째 만나는 거지?”
“아가씨가 아니라 신소율이에요.”
“응. 그래, 미안해. 신소율 헌터. 똑똑히 기억했어. 다음부터는 이름으로 불러줄게.”
“어… 으흠! 고, 고마워요.”
데모나와 마찬가지로 진한 적대감을 발하고 있던 신소율의 낯빛이 일순 갈피를 잡지 못하는 듯 우왕좌왕 변하나 싶더니, 이내 처음에 비해 많이 누그러진 표정이 되었다. 오만한 듯하면서도 이따금씩 보이는 소탈한 행동과 부드러운 말투를 보이는 퀸젤의 모습에, 자기도 모르게 경계심이 살짝 풀린 듯했다.
‘하여튼 알기 쉬운 녀석이라니까.’
신소율의 맹한 모습에 그녀의 풍성한 머리카락을 한번 헝클어뜨려준 노구덕은 웅장하게 울려 퍼지는 커다란 북소리에 시선을 아래로 돌렸다. 그러자 광활한 대무투장을 딛고, 일정한 간격을 둔 채 대치한 두 여인의 모습이 보였다.
“…시작하는군.”
“흐음….”
대화를 주도했던 노구덕과 퀸젤의 입이 다물리고, 그 옆에 자리한 데모나와 신소율의 얼굴에도 무거운 기색이 감돌았다. 굳게 입을 다문 좌중은 각자의 생각과 기대를 묻어둔 채, 대무투장 한가운데로 시선을 집중시켰다.
++++++++++++++++++++++++++++++
북풍(北風)과 태양(太陽).
은은한 달빛을 품은 얼음 조각상이 그대로 현신한 듯한 아름다움을 지닌 서리여왕 하유라. 그녀는 그 이름에 걸맞게 투명한 은색으로 빛나는 미스릴 경갑을 걸치고 있었다. 설원처럼 하얀 피부와 잔잔하게 물결치는 은빛의 머리카락이 백은색의 갑주와 한 데 어울려, 넋이 빠질 것 같은 신비로움을 자아냈다. 더욱이 갑주를 입었음에도 확연히 도드라지는 잘록한 허리와 몸매의 볼륨감은, 어째서 그녀가 스퀘어 최고의 미녀 중 한 명으로 꼽히는지 보란 듯이 알려주고 있었다.
그러나 언제나 뭇 남성들의 시선을 사로잡았던 하유라에게는 유감스럽게도, 현재 대무투장에 자리한 남성 관객들의 과반수는 그녀가 아닌 임유진 쪽에 주목하고 있었다.
하유라가 만지면 얼어버릴 것 같은 시린 아름다움을 자랑한다면, 마찬가지로 붉은 색의 미스릴 경갑을 장비한 임유진은 가슴이 절로 따뜻해지는 훈훈함을 지닌 여인이었다. 특히, 터질 것 같이 들썩이는 흉갑과, 하유라에 비해 한 치는 더 튀어나온 것 같은 둔부는 보는 것만으로도 심장에 무리가 갈 것 같은 농염함을 풍겼다. 게다가, 무르익을 대로 무르익은 육체에 걸맞지 않게 따사로운 상냥함이 깃든 비취색 눈동자는, 그녀를 지켜보는 뭇 남성들의 가슴을 사정없이 붙잡아 뒤흔들었다.
“붉은 봉황… 여전히 대단한 미모로군.”
“아니, 예전 얼굴을 봤는데, 지금이 훨씬 나은 것 같네. 성숙미라고 해야 할지… 보다 관록이 붙은 느낌이야. 노구덕 위원이 부럽구먼.”
“복덩이도 저런 복덩이가 없지. 저 정도 미모에 십존에 버금가는 실력이라니… 칼립스에서 보여준 퍼포먼스는 확실히 서리여왕에 비해 모자람이 없었어.”
앞다투어 이어지는 후한 평가. 그 평가를 들었음인지, 임유진을 마주하고 선 하유라의 표정에 날카로운 실금이 아로새겨졌다.
“재밌네. 다 망가진 퇴물이 한순간에 스타가 됐어.”
“…….”
“내게 고마워해야 하지 않아? 응?”
“당신과 나눌 말은 없어요.”
촤르르륵!
임유진에게 꼭 맞게 디자인된 미스릴 갑주는 그 자체로 하나의 검집이었다. 그녀가 마력을 일으키자, 갑주의 뒤편에 비늘처럼 꽂혀 있던 이백여 개의 단검들이 공작새의 깃처럼 올올이 일어나 부채꼴의 호선을 그려냈다. 현재의 그녀가 다룰 수 있는 단검의 숫자는 정확히 200자루. 과거, 한창 전성기적의 임유진이 서른 개의 단검을 다루었던 것에 비하면 괄목이라는 말로도 부족할 정도의 성장이었다.
문답무용(問答無用). 쓸데없는 대화조차 나누지 않겠다는 임유진의 단호한 태도에, 하유라의 입가에 어린 웃음이 더욱 잔혹하게 물들었다.
“…기세가 등등한데? 좋아. 그래야 짓밟는 맛이 있지.”
진심을 다해 부딪치는 상대의 전력을 정면에서 사정없이 박살내버리는 것이 하유라의 유일한 즐거움이다. 그 상대가 자신의 예상을 뒤엎었던 존재라면 더더욱, 그 흥취가 남다를 터.
나지막하게 중얼거린 그녀의 손아귀에는 어느새 싸늘한 빛을 내뿜는 빙검, 아발란체가 들려 있었다. 아직까지 그 정확한 능력이 밝혀지지 않은 미지의 신기.
세간에는 하유라의 주무기가 창이라 알려져 있지만, 그건 그녀가 지금까지 진심을 드러낸 적이 거의 없기에 퍼지게 된 잘못된 정보였다. 실제 그녀에게 있어, 창이나 검 같은 무기의 구분은 무의미했다. 차이가 있다면, 그것은 무기 그 자체의 성능. 그 점으로 미루어 본다면, 빙검 아발란체는 그녀가 가진 최고최강의 수라고 봐도 무방했다.
짧게 이어진 대치를 깨고 먼저 움직인 쪽은, 도전자인 임유진이었다.
“합!”
그녀는 하유라가 아발란체를 꺼내들기 무섭게 무수히 많은 단검을 쏘아 보냈다. 하나하나가 고위 화염 주문에 준하는 위력을 지닌 단검 다발이 삽시간에 거대한 화염의 그물망을 형성하여 하유라를 위에서부터 덮쳐들었다.
“어설픈 수작.”
넓게 펼쳐진 붉은 그물망 어디에도 빠져나갈 곳이 보이지 않건만, 정작 그 표적인 하유라는 유람이라도 나온 듯 여유가 넘치는 모습이었다. 허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겉모습일 뿐, 하유라는 기민한 두뇌를 움직여 임유진의 공격에 대응할 방도를 궁리하고 있었다.
‘짜증나지만, 저 쓰레기의 공격력은 확실히 나보다 위.’
일전의 퍼포먼스는 임유진의 전력을 파악하기 위한 탐색전의 의미도 가지고 있었다. 그 결과, 하유라는 임유진이 가진 광염의 위력이 자신의 얼음을 상회한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말인즉슨, 순수한 속성 대 속성의 대결이라면 승산이 없다는 뜻.
하지만, 그녀에게는 임유진이 가지지 못한 무기가 있었다.
쩌저저저정–!
그녀를 둘러싼 대기가 순식간에 꽁꽁 얼어붙었다. 떠도는 공기마저 빙결시킨 서리여왕은 두꺼운 빙하의 장막을 온몸에 휘감았다. 반경 수십 미터에 달하는 반구형의 얼음장벽이 임유진의 그물망을 막아선 것이다.
그러나 광염(光焰)은 하유라의 얼음을 완벽하게 상회하는 속성. 깃든 마력량이 같다면 속성의 우위를 점한 쪽이 유리한 것은 당연한 이치였다. 그 사실을 반영하듯, 거세게 타오르는 화염의 그물은 하유라가 둘러친 두터운 얼음장벽을 일시에 녹여버리며 그 안으로 깊이 파고들었다.
얼음장벽을 허수아비처럼 허물어버리며 파죽지세로 진격하는 단검 세례에, 하유라의 왼손에서 다시금 시퍼런 빛이 뿜어졌다. 그러자 후끈한 열기에 속절없이 녹아내리던 얼음의 장벽이 다시금 꼿꼿이 솟아오르며 그물망의 발목을 붙잡았다.
그 광경을 지켜보던 노구덕은 우묵한 눈두덩을 꿈틀거렸다.
“어떻게 된 거지? 같은 얼음장벽인데, 처음과는 위력이 다르잖아.”
“평범한 빙하가 아냐. 론다리온 교단의 홀리 프리즈(Holy freeze)가 섞였어. 그것도 최고위 사제급의 위력으로. 임유진의 광염에 대항해서, 인위적으로 겹속성을 만들어낸 거야.”
“마력과 신성력을 중첩해서 캐스팅했다고요? 무슨 저런 괴물이 다 있어?”
이어지는 데모나의 해설과 신소율의 경악성에 귀 기울이고 있던 퀸젤은 빙긋 웃으며 말했다.
“서리여왕을 너무 만만하게 보지 마. 그녀의 진면목은 아직 드러나지도 않았으니까.”
어쩐지 가슴을 서늘하게 물들이는 두 마디였다. 괜히 불안해진 신소율은 떨떠름한 얼굴로 다시금 고개를 돌려 전장을 주시했다.
신성한 불꽃에 맞서는 신성한 얼음이라고 해야 할까. 서리여왕이 만들어낸 새로운 얼음의 장막은 임유진의 파상공세를 꿋꿋이 막아내고 있었다. 물론, 인위적으로 만들어낸 것이기에 점차 밀리는 형국이었지만, 상대의 압도적인 공세를 상당 시간 지연시킬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서리여왕에게는 반격의 계기를 마련해 준 것이나 다름없었다.
한동안 방어에만 치중하던 서리여왕이 움직인 것은, 유성우처럼 퍼부어지던 임유진의 공세가 살짝 느슨해진 바로 그때였다. 그 찰나의 순간을 놓치지 않고 불길의 탄막을 꿰뚫으며 뛰쳐나온 하유라는 순식간에 임유진과의 거리를 좁혀 투명한 칼날을 내리 그었다.
동시에 그녀의 칼날에서 발출된 섬뜩한 검기가 임유진의 가녀린 목을 무자비하게 가르고 지나갔다. 그러자 신기루처럼 흩어지는 임유진의 신형. 하유라가 실체 없는 잔상을 벤 것을 깨달았을 때에는, 그녀의 머리 위로 드리워진 붉은 섬광이 살벌한 번쩍임을 토한 뒤였다.
쾅!
허공에 떠 있는 하유라의 몸뚱이가 쇠망치로 후려친 듯 격하게 흔들렸다. 가까스로 얼음 장벽을 만들어 임유진의 돌려차기를 막아냈으나, 그 너머로 비집고 들어온 충격파까지는 어찌하지 못한 것이다. 더욱이, 붉은 빛으로 화한 임유진의 공세는 이제 시작에 불과했다.
쾅! 쾅! 쾅!
붉은 기류에 둘러싸인 하유라는 정신없이 몰아치는 임유진의 공격에, 방망이로 두들겨 맞는 빨랫감처럼 무기력하게 당할 수밖에 없었다. 그녀의 뛰어난 동체시력으로도 임유진의 속도를 쫓을 수가 없는 탓이다. 그도 그럴 것이, 바람의 질주자와 광속(光速)이란 특성을 보유해, 속도 면에서는 그 누구도 따라올 수 없는 임유진이다. 애당초 육안으로 볼 수 있을 리가 없었다.
“날파리가…!”
본능에만 의지해, 감각적으로 임유진의 공격을 막아내던 하유라의 얼굴에 옅은 피로감이 어렸다. 어찌어찌 막아내고는 있다지만, 실상 주위 전체에 기감을 퍼트려 상대의 종적을 쫓는 일이 쉬울 리 없었다. 이대로 있다가는 죽도 밥도 되지 않을 터.
하유라는 생각보다 빨리 진검(眞劍)을 빼들어야 할 순간이 다가왔음을 깨달았다. 뇌리 한구석에 희미하게 남아 있던, 임유진을 얕잡아보던 마음가짐을 완전히 털어낸 것이다.
신경질적으로 이를 악문 하유라는 아발란체에 막대한 마력을 쏟아 부으며 나직한 음성을 토해냈다.
이 모든 공간, 모든 사물, 모든 생명을 동결시키는 절대적인 명령의 발현.
“…앱솔루트 제로(Absolute zero).”
============================ 작품 후기 ============================
여러분의 코멘과 추천은 작가에게 큰 힘이 됩니다!
크… 마지막 한마디 쓰면서 팔뚝에 소오오오름이! 수세미질 좀 하고 오겠습니다.
코멘은 10분 후에 달도록 할게요!
저녁화는 조금 늦어질 수도 있습니다. 늦으면 새벽? 쯤에 올라갈 것 같네요!
수요일 수술이 월요일로 미루어져서, 내일 낮 화는 못 올릴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좋은 주말 되세요!
호야[虎夜] / 올리고나서 클릭하니까 코멘이 달려 있어서 소오름…
흐아아암 / 추천출석 감사히 받았습니다! 좋은 하루 되세요!
코카콜라중독 / 넵. 드디어 시작!
벌레 / 마지막 단어는 못 들은 걸로 하겠습니다…. 큼큼.
빅대어 / 임유진vs하유라 승자는??
은신설야 / 십존이 갈리지 못한다는 건 무승부인가요??
Velos / 코앞입니다요!
새벽산책 / 하하.. 어떻게 전개될런지는 두고 보면 알겠죠?
asd메이지 / 특이할 만한 것은 뚱보라는 것입니다…
모그퐁 / 코멘 감사합니다! 오늘도 좋은 하루 되세요!
월병인 / 일망타진…??
북치네 / 진도 빨리 빼보도록 하겠습니다 ㅠㅠ
신수[神手] / 누가 이길런지…
사소허 / 걱정해주셔서 감사합니다 ㅠ 저도 잘 마무리 됐으면 좋겠네요..
가식적썩소 / 덕분에 힘이 솟아납니다 으싸으싸
osok / 어떡하긴요 다음편 보셔야죠! 투척!
김도리131 / 먹이감 포착 완료!
모욕감 / 항상 감사합니다. 좋은 주말 되세요!
리눅 / 넵! 건필 하겠습니다!
노루찡 / 감사합니다! 빠르게 담편 올리도록 노력할게요!
인첸 / 설마가 사람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