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unter Club RAW - chapter (3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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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8# Opening
하유라가 무어라 웅얼거린 순간, 임유진은 형언할 수 없을 정도로 오싹한 기운이 그녀로부터 퍼져나감을 느끼곤 재빨리 불의 마력으로 몸을 에워쌌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체내의 마력이 꽁꽁 묶여버린 것처럼 말을 듣지 않는 게 아닌가.
앱솔루트 제로. 공간과 마력을 포함한, 일대의 모든 것을 일시적으로 동결시키는 하유라의 권능이 발휘된 탓이었다.
하유라는 임유진의 기운이 맥없이 끊겨버린 그 틈을 놓치지 않았다.
“앗… 컥!”
잠깐 동결된 마력에 신경을 쏟는 사이, 허점을 찔러오는 예기를 감지한 임유진은 다급히 몸을 틀어 하유라의 검기를 피해냈다. 하지만, 그것은 미끼. 그 뒤를 이어 번개처럼 쇄도한 하유라는 임유진의 턱을 강하게 걷어찼다.
두개골이 뒤흔들리는 충격을 받은 임유진의 눈앞에 무수히 많은 별들이 명멸했다. 평범한 사람이었다면 바로 즉사를 하거나 기절을 해도 이상하지 않을 충격이었지만, 간발의 차이로 마력 동결을 깨는 데 성공한 임유진은 가까스로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만약 임유진이 가지고 있는 마력의 성질이 광염이 아니었다면, 바로 이 순간 승부가 결정 났을 터.
하유라는 임유진이 숨 돌릴 틈조차 주지 않았다. 비조처럼 발을 차올려 강렬한 앞발차기를 먹인 하유라는 그대로 공중제비를 돌며 아발란체를 사선으로 그어내렸다. 그러자 공간을 베어 가르는 검기와 함께 푸른 빛깔의 마법진이 허공으로 솟아오르더니 임유진을 중심으로 강력한 눈보라가 휘몰아치기 시작했다.
그것도 모자라, 하유라는 순식간에 수인을 맺어 그 위에 또 다른 마법진을 띄워 올렸다. 중첩 마법진, 더블 스펠(Double spell)이었다. 커다란 마법진이 푸르스름한 빛을 발하자, 이번에는 살갗을 찢어발기는 맹추위와 함께 큼지막한 우박의 폭풍이 불어 닥쳤다.
하유라가 띄워 올린 두 개의 대규모 마법진은 빙계 마법에 있어서 최고의 광역기로 꼽히는 블리자드(Blizzard)와 헤일스톰(Hailstorm).
터무니없는 마력동결에 당해 꼼짝없이 빈틈을 노출한 임유진은, 숨 돌릴 틈 없이 이어진 끔찍한 얼음폭풍에 속수무책으로 휘말릴 수밖에 없었다.
“으으으윽……!”
임유진은 살갗이 벗겨져나갈 것 같은 혹독한 추위에 어금니를 부러져라 깨물었다. 시야를 하얗게 물들이며 끊임없이 날아오는 얼음알갱이들은 그녀를 한치 앞도 볼 수 없게 만들었다. 한순간 끊겨버린 마력의 제어를 되찾긴 했으나, 그 대가로 싸움의 주도권을 뺏겨버린 것이다.
하유라의 권능, 앱솔루트 제로는 단지 임유진의 마력을 동결한 것에 그친 게 아니었다. 이 공간 전체를 본인의 의지 하에 둔, 일종의 절대명령이나 다름없었다. 바꿔 말하면, 임유진은 이 공간 안에서 싸우는 것만으로도 팔다리에 무거운 족쇄를 매달고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이 절대명령을 깨트릴 방법은 오직 두 가지. 범위 밖으로 몸을 빼내거나, 아니면…….
‘…똑같은 방법으로 상대하거나.’
순간, 임유진의 부릅뜬 동공에서 이글거리는 홍염이 치솟아 올랐다. 동시에, 바람 앞의 촛불처럼 위태롭게 일렁이던 그녀의 기운이 첫새벽을 밝히는 태양처럼 환하게 불타오르기 시작했다.
소용돌이치는 우박에 얻어맞고, 할퀴어 넝마처럼 변한 임유진을 완전히 끝내버릴 결정타를 준비하고 있던 하유라는, 그녀에게서 심상치 않은 기운이 피어오르자 눈매를 가늘게 좁혔다.
“…뭐지?”
어스름하게 떠오른 놀람은 이윽고 심장이 멎을 듯한 경악으로 뒤바뀌었다. 눈이 멀어버릴 것처럼 환한 광채를 뿜어내는 임유진. 갑자기 그녀를 중심으로 들불처럼 거대한 불길이 일어나기 시작한 것이다. 마치 거대한 불꽃의 날개가 등 뒤에 돋아나, 비상을 위한 세찬 날갯짓을 하는 듯했다.
그녀로부터 일어난 광휘의 불길은 차갑게 동결되었던 공간을 단번에 부수고, 흐물흐물 녹여버렸다. 하유라에게서 비롯된 권능, 앱솔루트 제로가 유지되고 있는 영역이 녹아내리는 양초처럼 허물어지고 있었다.
범인(凡人)의 눈에는 보이지 않았지만, 그 영역을 유지하고 있는 하유라 본인은 똑똑히 느낄 수 있었다. 자신이 구축한 절대적인 철옹성이 밑바닥부터 무너져 내리는 것을.
아니, 무너져 내린다는 표현은 부적절했다. 정확히 말하면, 그 성채의 맞은편에 또 다른 성채가 순식간에 들어서고 있다는 게 맞았다. 그녀와 대등한 권능을 지닌, 뜨거운 태양빛을 머금은 홍염의 성채가.
“…붉은 봉황.”
하유라의 앙다문 입술 사이로, 까득 거칠게 이 갈리는 소리가 새어나왔다. 마력마저 동결하는 앱솔루트 제로가 깨진 것은 그녀가 아발란체를 사용한 이래 처음 겪는 일이었다.
그러나 아직 우위를 빼앗긴 것은 아니었다. 마력 동결의 영향을 벗어난 지 얼마 되지 않은 탓인지, 임유진이 발휘하는 권능은 갓 태어난 새끼처럼 미약하기 짝이 없었다.
“…디바인 피스트(Divine fist), …피셔(Fissure).”
하유라가 재빨리 시동어를 외우자, 아발란체에서 막강한 신성력이 퍼져 나오며 거대한 주먹의 형상을 만들었다. 흡사 거인의 주먹처럼 단단하게 뭉친 신성력은 비척거리며 일어서는 임유진의 정면을 사정없이 후려쳤다.
정면에서 파고드는 폭발적인 신성력의 압력에, 임유진은 마주 불길을 일으켜 대항했다. 그러나 다음 순간, 겨우 몸을 가누며 일어섰던 그녀는 크게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딛고 서 있던 대지가 마른 등껍질처럼 갈라지며 깊은 골짜기가 생겨버린 것이다. 마력을 발휘해 뜨면 그만이라지만, 찰나지간 빈틈을 노출시키는 데에는 충분했다.
퍼억!
“아악!”
똘똘 뭉친 금빛의 주먹에 호되게 얻어맞은 임유진은 애처로운 비명을 내지르며 뒤로 나가떨어졌다. 이후 임유진을 강타한 것은 바람의 마법, 거스트 오브 윈드(Gust of wind)와 전격계 마법인 썬더스톰(Thunder storm)이었다. 모두 해당 속성 내에서도 고위급에 속하는 주문들이었다.
앱솔루트 제로로 마력을 동결한데 이어 눈보라와 우박폭풍의 무지막지한 시너지를 선보이더니, 고위 신성주문이 작렬한 이후엔 땅, 바람, 번개의 향연이 이어진다. 특정 속성이랄 것도 없이 무작위로 난사하는 마법의 폭격. 하유라는 ‘만능’이라는 본인의 장기를 유감없이 발휘하고 있었다.
하유라의 압도적이고도 무자비한 공세를 지켜보던 관중들은 일제히 마른 침을 삼키며 경탄했다.
“…붉은 봉황도 꽤나 선전했지만… 역시, 서리여왕의 승리로 끝나는가.”
“그녀의 재능은… 볼 때마다 경이적이로군. 암, 십존이라면 능히 저 정도는 되어야지.”
“붉은 봉황의 무력도 충분히 강력했네. 상대가 나빴을 따름이야.”
벌써 승부가 결정되었다는 듯이 섣부른 평가를 내리는 이들은, 대부분 평범한 눈을 지닌 언론사 관계자들이나 일반 위원들이었다. 그러나 헌터 출신이거나 어지간한 무력을 지닌 자들이 보는 싸움의 향방은 또 달랐다.
“서리여왕이 잔재주를 부리는군. ‘권능’을 쓰는 저 여자에게 저런 얕은 수가 통할 리 없지. 뭔가를 준비하기 위한 밑작업이다.”
“구태여 주속성이 아닌 주문을 난사한 건… 눈속임인가? 오, 시간벌기로군.”
처음은 드물게도 긴 코멘트를 내놓은 마도왕 티렐, 그 다음은 북왕 아이벤의 평이었다. 그리고 전황은, 두 사람이 말한 그대로 흘러가는 중이었다.
되살아난 불씨를 몸에 휘감은 임유진은 하유라의 빗발치는 공격을 훌륭하게 막아냈다. 데미지가 누적된 건 틀림없는 사실이었지만, 이미 자신만의 영역을 구축한 그녀에게 속성 보정을 받지 못하는 하유라의 무작위 주문은 큰 위협이 되지 못했다.
하유라 역시 그 정도 마법으로 임유진에게 큰 타격을 줄 수 있으리란 생각은 하지 않았다. 애초부터 그녀가 준비하고 있던 메인 카드는 따로 있었으니까.
불의 화신으로 변한 임유진의 모습이 번개의 폭풍을 뚫고 막 위로 치솟아 오르자, 하유라는 그것만을 기다렸다는 듯 아발란체를 높이 치켜들며 차갑게 일갈했다.
“…크라이어제닉 쇼크(Cryogenic shock)!”
쩌정! 쩌저저저적!
아발란체로부터 발해진 한기가 짙푸른 안개로 유형화하여 사방으로 뻗어나갔다. 그 안개는 맞닿는 모든 것을 얼려버리는 극저온의 마력덩어리였다. 그에 닿는 것은 대기와 땅, 심지어는 튀어 오르는 불똥마저 투명한 얼음으로 변해버렸다. 앱솔루트 제로가 마력의 동결, 그리고 공간의 지배라는데 주안점을 둔 힘이라면, 크라이어제닉 쇼크는 단순히 ‘빙결’의 힘을 극대화하여 자연 법칙마저도 무시해버리는 파괴적인 주문이었다.
닿는 모든 것을 얼려버린다. 그것은 임유진이 흩뿌리는 초고온의 불길마저도 예외가 아니었다. 자신이 내뿜는 불꽃이 표면부터 야금야금 얼어붙는 것을 본 임유진은 크게 당황하여 화력을 높였다. 그러자 하유라의 냉기와 그녀의 화염이 엎치락뒤치락 치열한 힘싸움을 벌이기 시작했다.
상식적으로 이해가 되지 않는 일이었다. 아무리 하유라의 힘이 강대하다고는 하나, 서로의 마력량은 거의 비등. 하물며 속성으로 따지면 ‘광염’을 가지고 있는 그녀가 앞선다. 그런데 어떻게 이런 줄다리기가 벌어질 수 있단 말인가?
‘어떻게 이럴 수가… 설마 저 검이?’
고민을 거듭하던 임유진이 찾은 해답은 하유라가 지니고 있는 빙검 아발란체였다. 아직까지 어떠한 능력을 지녔는지 밝혀지지 않은 미지의 검. 그러고 보니 그녀가 발출한 ‘권능’은 거의가 저 검을 통해서 발현되지 않았던가. 앱솔루트 제로도 그렇고, 크라이어제닉 쇼크도 마찬가지였다.
만약 아발란체가 그저 능력의 강화를 넘어, 속성 자체의 질을 높여주는 힘을 가졌다면? 그렇다면 하유라의 이 힘은 단순한 얼음이 아니라, 극빙(極氷)이라 불러야 마땅하리라.
임유진은 그럴 것이라 생각했다. 그게 아니라면 겹속성을 지닌 자신과 단순 힘싸움에서 밀리지 않는 게 설명이 되지 않았다. 아니다. 밀리지 않는 수준이 아니라, 하유라의 마력은 오히려 조금씩 임유진의 힘을 갉아먹고 있는 수준이었다.
‘…아니, 아발란체가 아니라도 비슷했을 거야. 이건… 경험의 차이야.’
임유진은 점점 숨통을 조여 오는 하유라의 압박에 지그시 입술을 깨물었다. 오랫동안 힘을 가다듬어 온전히 자신의 것으로 만든 하유라에 비해, 임유진은 경험과 기술적 측면에서 상대적으로 많이 부족했다. 가진 힘의 절대적 양은 비슷할지 몰라도, 질적인 차원에서 상대가 되지 않는 것이다.
앱솔루트 제로에 이은 크라이어제닉 쇼크. 모두 들어본 적 없는, 처음 접하는 주문들이다. 아마도 하유라 그 자신이 다루는 권능을 최고조로 구현하여 집약한, 서리여왕만의 오리지널 기술들일 터.
당장 그 까마득하게 벌어져 있는 수준 차를 따라잡는 건, 현재의 임유진으로서는 분명히 무리였다.
‘그렇지만… 내게도 비장의 수는 남아 있어.’
서리여왕과 차이가 있다는 건 임유진도 익히 알고 있다. 그리고 임유진은 그 모든 사실을 감안한 상태에서 그녀에게 도전을 했다. 말인즉슨, 이 불리한 상황을 단번에 뒤집을 수 있는 그녀 나름대로의 히든카드를 가지고 있다는 뜻.
다만, 이 기술을 쓰기 위해서는 아직 시간이 조금 더 필요했다. 서리여왕이 크라이어제닉 쇼크를 쓰기 위해 시간을 벌었던 것처럼.
‘조금만 더… 응?’
안간힘을 쓰며 하유라의 압박을 견뎌내고 있던 임유진은 불현듯 눈을 동그랗게 치떴다. 정면에서 희미하게 보이는 하유라의 얼굴이,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천천히 옆으로 돌아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불가사의하게도, 임유진은 바로 귓전에 대고 속삭이는 것처럼 똑똑히 들을 수 있었다. 미미하게 달싹이는 하유라의 입술에서 흘러나온 음성을.
“운이 좋네. 시간 초과야.”
“…무슨?”
임유진이 미처 의문을 가지기도 전, 완전히 옆으로 고개를 돌린 하유라는 무심히 아발란체를 휘둘러 어마어마한 마력이 담긴 참격을 쏘아 보냈다.
그 목표는 대전 상대인 임유진이 아닌 전혀 엉뚱한 곳. 분명 시스템으로 유지되는 보호막이 쳐져 있을 터인 VIP 관람석이었다.
============================ 작품 후기 ============================
여러분의 추천과 코멘은 작가에게 큰 힘이 됩니다!
소제목 오프닝.. 값 해야겠죠?
새벽에 올릴 수 있을 줄 알았는데 겨우겨우 12시에 맞출 수 있었네요!
월요일 모두 즐겁게 보내셨으면 합니다 ㅠㅠ
덧) 소설은 소설일뿐이니 자연법칙은 쿨하게 무시해주셨으면… 하하… 마력이 담긴 시점에서 일반적인 얼음과 불은 아니니까요. 그리고.. 결정적으로 문돌이 머리 터져욧!
코멘은 일단 올려놓고, 잠시 후에 달도록 하겠습니다!
너는나의것 / 다음 편 투척했습니다! 코멘 감사합니다!
서울우유 / 추천은 정말 언제나 감사합니다…
ㅂㅈㄱㄷㅂ241 / 마법적인 불과 얼음은 좀 다르답니다(?)
벌레 / 문돌이인 작가를 용서해주세요..
트릭스타 / 오호 여기서 토막지식 알아갑니다! 감사합니다!
호야[虎夜] / 오타 수정했습니다! 유라의 유혹 시작인가요 ㅋㅋ
천상군 / 대결은 좀 흐지부지하게 끝날 것 같네요!
은신설야 / 팔뚝에 소오름이.. 좋은 주말 보내셨길!
북치네 / 항상 감사드립니다! 좋은 하루 되세요!
월병인 / 너무 깊게 파고드시면 위험합니다..
쿠루루기스자크○ / 이렇게 되면 승부의 행방은…?
빅대어 / 재수없는 컨셉을 가진 여자라.. 존재 자체가 죄송합니다 ㅠㅠ
아토므스크 / 하유라 나쁜년! 내 머릿속을 뒤죽박죽으로 만들었어!
코카콜라중독 / 무능한 작가를 용서하십시오
lyw1440 / 예? 여기서 왜 갑자기 분유가…??
asd메이지 / 괴물은 괴물이지요.. 십존 중에서도 꽤나 강한편.
Velos / 은근히 괜찮겠네요 그거…
노루찡 / 추워서 돋은 소름이라 다행이네요!
모그퐁 / 감사합니다! 월욜병 조심하세요!
포식활자 / 아니 아래 분유도 그렇고 이번엔 모유라니… 나중에 한번 구더기에게 먹여보겠습니다.
트릭스타 / 너무 티나게 플래그를 꽂아놔서 그런지, 예상하시는 분들이 많군요!
3ppoo / 우리… 무승부로 하지 않을래..?
감자껍질 / 가급적이면 아침화로 올릴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ㅠㅠ 잘다녀오세요
인첸 / 선궁은 선궁인데.. 궁이 2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