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unter Club RAW - chapter (3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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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8# Open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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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유진은 하유라의 갑작스런 행위에 크게 놀라 두 눈을 부릅뜨며 기함했다.
“무슨 짓을…!”
시스템으로 유지되는 보호막이 사라진 것도 놀라운 일이지만, 그보다 더 경악스러운 것은 하유라가 발출한 힘이 이 대무투장의 필드를 빠져나가 외부에 타격을 준 사실 그 자체였다.
보호막은 만일에 대비한 명목상일 뿐, 아바타로 투영된 힘은 그 실체가 없어, 인위적 공간인 이 대무투장 안에서만 통용되는 허구의 에너지다. 그런데 하유라는 그 전제를 비웃기라도 하듯, 마력을 방출해 외부에 막대한 피해를 입혔다.
이 사실이 의미하는 바는 단 하나.
“…아바타가 아니었어?”
그녀와 맞서 싸우고 있는 하유라는 실체를 투영한 아바타가 아니라, 본신 그대로라는 것.
임유진의 중얼거림을 들은 것인지, 아수라장이 된 장내를 훑어 내리던 하유라의 입가에 차가운 호선이 그려졌다.
“그걸 이제야 알아차리다니. 머리 회전이 느린 편이군.”
“대체 왜…?”
“충고 하나 해주지, 임유진. 그딴 걸 따져 묻기 전에, 지금이라도 아바타 링크를 해제하는 편이 좋을 거야.”
“……!”
임유진은 이를 악물었다. 예상치 못한 난리가 일어난 지금, 분하지만 하유라의 말이 옳았다. 현재로서는 그녀와 다툼을 이어가기보다, 서둘러 노구덕 일행의 안위를 살피는 게 중요했다.
이내, 임유진의 미려한 모습이 바람에 날리는 민들레 홀씨처럼 아스라이 사라졌다. 아바타와의 연결을 자력으로 해제한 것이다. 임유진은 사라지기 직전, 하유라에게 칼 같은 한마디를 남기는 것을 잊지 않았다.
“…다음엔 기필코 결착을 짓겠어.”
“후. 명년 그 날은 네 제삿날이 되겠지.”
사라져버린 임유진이 그녀의 대꾸를 들었는지 알 길은 없었다. 잠시 임유진이 사라진 자리를 묵묵히 바라보던 하유라는, 난장판이 되어버린 대무투장을 떠나 홀연히 자취를 감추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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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우웅!
다시금 천지가 진동하는 굉음이 울려 퍼졌다. 그와 함께 거대한 대무투장이 당장이라도 무너져 내릴 듯, 사방에서 뿌연 먼지와 돌가루들이 소낙비처럼 떨어져 내렸다.
그 충격과 진동의 근원은 대무투장 한쪽에서 벌어지고 있는 무시무시한 격전이었다. 십존 중의 다섯 명이 격돌하는 싸움의 여파가 대륙에서 가장 거대한 건축물을 밑뿌리부터 뒤흔든 것이다.
“제기랄… 이놈들, 아주 작정하고 들고 일어났군.”
건너편, 북왕의 위기를 목도한 노구덕은 큰 고민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
대외적으로 이번 행사에 참여한 것으로 알려진 일곱 명의 십존 중, 서리여왕, 어스퀘이커, 마도왕, 폭풍왕이 반란에 가담했다. 그들에게 습격을 받은 북왕과 신궁은 백척간두에 서 있었고, 피아를 식별할 수 없는 다른 한 명은 어딜 갔는지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노구덕으로선, 두 가지 선택을 강요받고 있는 상황이었다.
북왕을 도와 저 살벌한 싸움에 참전할 것이냐? 아니면, 이대로 일행을 데리고 임유진을 찾아 몸을 내뺄 것이냐?
기실 고민이랄 것도 없는 문제였다. 노구덕이 많이 강해졌다고는 하지만, 저쪽에서 벌어지고 있는 전투는 그야말로 스케일이 달랐다. 기습을 당한 북왕과 신궁이 겨우겨우 버티고 있는 것도, 나머지 세 사람이 대무투장이 무너지는 것을 신경 써서 힘을 조절했기 때문이지, 그게 아니었다면 진즉 결판이 나도 한참 전에 났을 터였다.
마음만 먹으면 대무투장을 통째로 날려버릴 수 있는 괴물들의 싸움이다. 그가 끼어든다고 해도, 무엇 하나 전황을 바꿀 수 있는 것은 없었다. 더군다나, 그에게는 챙겨야 할 아이들도 있지 않은가.
이성적으로 본다면 여기서 나 몰라라 내빼는 것이 맞다. 당장 십존쟁탈의 관람을 위해 찾아온 유수의 헌터들도 이 사태에 혼비백산하여 도망치는 자들이 상당수였다. 그들도 아는 것이다. 저기에 끼어봤자 고래 싸움에 새우등 터지는 결과밖에 초래되지 않는다는 것을.
그토록 현실이 명백할진대… 왜 선뜻 발걸음이 떨어지질 않는 것일까.
“아저씨? 일단 어서 탈출해야 할 것 같은데….”
“아빠….”
“잠깐… 잠깐만.”
신소율과 임가희가 불안하게 부르는 소리가 들리자, 눈썹 사이를 있는 대로 찡그린 노구덕은 잠깐만 기다리라는 듯, 손을 들어 보였다. 아직, 마음의 결정이 서지 않은 탓이다.
‘뭐지? 이 느낌은…….’
현실적으로 보자면, 여기선 무조건 일행을 데리고 도망가는 게 맞다. 그런데 좀처럼 발이 떨어지질 않았다. 마치 보이지 않는 무언가가 그의 발목을 꽉 붙잡고 놔주지 않는 느낌이었다.
잠시 의미를 알 수 없는 한숨을 내쉰 노구덕은 얼굴 가죽을 바위처럼 굳히더니, 나머지 일행들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소율아, 여기 퀸젤 위원과 아이들을 부탁한다.”
“엑? 아저씨, 왜 그래요? 그냥 다 같이 나가면 되잖아요!”
펄쩍 뛰는 신소율 뿐 아니라, 다른 여인들도 노구덕의 이해할 수 없는 태도에 당황한 얼굴들이었다. 그러나 노구덕은 단호하게 머리를 흔들었다.
“난 여기서 나갈 수 없어. 북왕 형님을 살려야만 한다.”
“구더기, 왜 그러는 거야? 네가 낀다고 달라지는 건 없어. 오히려 네 목숨만 위험해질 뿐이야. 설마, 의리 때문에 그런 거야?”
눈매를 매섭게 치켜올리며 쏘아붙이는 데모나. 그녀에게 매몰찬 소리를 들은 노구덕은 조용히 자문했다. 정말, 북왕과의 의리 때문에 그런 것일까?
억지로 갖다 붙이면 그럴 수도 있겠다. 북왕은 그래도 지금의 아이리스가 있기까지, 여러 가지로 큰 도움을 준 사람이니까. 냉정해지자고, 독해지자고 마음먹었어도 위기에 처한 그를 나 몰라라 버려둘 순 없었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부가적인 이유에 불과하다. 단순히 말해서, 북왕의 목숨과 여기 있는 일행의 목숨을 저울질하여 어느 한쪽을 선택하라고 한다면, 노구덕은 추호의 망설임도 없이 후자를 택할 것이다. 아니, 일행까지 갈 것도 없이 데모나나 신소율, 임가희 한 명의 목숨만 되어도 마찬가지 결정을 내릴 터였다.
그런데도 노구덕은 북왕을 도와, 그를 살리는 길을 택했다. 살릴 수 있을지 자신할 순 없었지만, 일단 최선을 다해보기로 마음먹은 것이다. 왜냐고 묻는다면, 그조차도 정확한 이유를 몰랐다. 왠지 꼭 이렇게 해야만 한다는 ‘육감’이었다.
그러나 이 중요한 때에 육감 같은 어설픈 이유를 갖다붙일 수는 없는 노릇. 대답이 궁해진 노구덕은 되는대로 이유를 짜 맞췄다.
“십존 중의 다섯 명이 배신했다. 최악의 경우 십존의 과반수가 모반에 가담했을 수도 있어. 이런 상황에서 북왕과 신궁을 잃게 되면, 전쟁의 판도가 초반에 갈릴 수도 있다. 그것만은 막아야 해.”
“…납득할 수 없어. 그게 네가 목숨을 걸고 모험을 할 만한 이유라고 생각해?”
그렇겠지. 방금 머릿속에 떠오른 대로 갖다 붙인 이유니까. 독 오른 뱀처럼 고개를 치켜든 데모나는 못마땅한 눈빛으로 그를 노려봤다.
“쓸데없는 짓 하지 말고…….”
“데모나, 부탁이다. 날 믿어주면 안되겠냐? 네 도움이 필요해.”
거듭 노구덕을 몰아세우던 데모나는 벙어리처럼 입을 다물었다. 마냥 몰아붙이기엔, 노구덕의 표정이 너무나 진지했던 탓이다. 결국, 입술을 잘근잘근 깨문 데모나는 뻣뻣하게 치켜 들었던 목의 힘을 풀 수밖에 없었다. 어쩐 일인지, 그가 저리 진지하게 나오면 한없이 약해지는 그녀였다.
“…알았어.”
“고맙다.”
그때, 미묘한 시선으로 두 사람이 얘기하는 것을 지켜보고 있던 퀸젤은 살짝 비꼬듯이 말했다.
“노구덕 위원, 그렇게 위원회에 대한 충심이 강한 사람이었어? 다시 보게 되는데.”
“충심이 아니다. 이해득실을 따진 거지. 연맹이 초반부터 지리멸렬하면, 명목상 그 안에 속해 있는 내 입지도 위태로워질 테니까.”
퀸젤은 노구덕의 냉랭한 대꾸에 나지막한 한숨을 내쉬었다. 조금 전까지만 하더라도 아연실색하여 낯빛이 창백하던 그녀는 다시 평소의 침착함을 되찾은 상태였다.
“…그러시겠지. 하여튼, 노구덕 위원의 말뜻은 잘 알았어. 우리보고 먼저 가라는 거지? 나도 최선을 다할 테니까, ‘원군’이 오기 전까지 조금만 버텨줘.”
“원군? 듣던 중 반가운 소리군.”
노구덕의 목소리에 살짝 힘이 실렸다. 퀸젤의 말마따나 원군이 오고 있다면, 이 어두컴컴한 전황에 한 줄기 빛을 드리울 수 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물론, 그 원군이 ‘내부’에 들어올 수 있을 때의 얘기겠지만.
“…퀸젤 위원, 소율아. 우선은 유진이가 있는 대기실 쪽으로 달려가. 그 다음, 유진이와 만나면 무조건 밖에 나가는 데 집중해. 원군이든 뭐든, 밖으로 빠져나가란 말이야.”
노구덕의 말에 깔린 묘한 뉘앙스를 가장 먼저 알아차린 것은, 말없이 작은 가슴을 졸이고 있던 소냐였다.
“대부님… 혹시, 이 건물을…….”
잠시 소냐의 촛불처럼 일렁이는 작은 얼굴에 눈길을 준 노구덕의 머릿속에 짧은 아쉬움이 스쳐지나갔다. 그녀와 꼭 빼닮은 어떤 여인의 빈자리가 너무나 크게 느껴진 탓이다.
‘이럴 줄 알았으면 무리를 해서라도 소피아를 데리고 올 것을…….’
이제 와서 되새겨봤자 별 의미 없는 후회였다. 노구덕은 늦은 몸에 들러붙은 흙먼지를 탁탁 털어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정면으로 저 싸움을 멈출 수는 없으니까. …이 대무투장을 통째로 무너뜨릴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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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자력으로 아바타와의 링크를 끊어내고 대기실에서 급히 뛰쳐나온 임유진은 얼마 나아가지 못하고 터져 나오는 신음을 삼킬 수밖에 없었다. 대무투장 본관으로 이어진 길쭉한 통로, 그 사이를 막아선 한 사내 때문이었다.
언뜻 여인으로 착각할 만큼 아름다운 외모를 가진 젊은 남자. 눈송이처럼 새하얀 피부는 핏기를 찾아보기 힘들만큼 창백한데다, 흑단 같은 검은 머릿결은 물에 풀어진 해초처럼 생동감이 넘쳤다. 오뚝하게 솟은 콧대를 중심으로 뚜렷하게 제 자리를 잡고 있는 이목구비가 왠지 모르게 사이한 분위기를 풍기는 남자는 통로 한 가운데를 차지하고 무언가에 한창 열중하는 중이었다.
“제대로 나오고 있는 겁니까?”
“예, 예……. 여, 연결이 유지되고 있으니, 말씀만 하신다면 언제든지… 방송이 가능합니다.”
검붉은 빛의 로브를 걸친 남자의 앞에는 수더분한 인상의 중년인이 무릎을 꿇고 앉아 있었는데, 그는 굶주린 야수 앞에 선 초식동물처럼 벌벌 몸을 떨고 있었다. 자세히 보니, 목에 걸고 있는 명찰에 ‘스퀘어 타임즈’라는 큼지막한 글자가 눈에 띄었다. 분명, 이번 십존쟁탈을 생방송으로 대륙 전역에 내보내는 언론사 중 하나였던가.
두 남자의 사이에는 구조가 복잡해 보이는 방송 장비가 놓여 있었다. 아마 이곳에서 담아낸 영상수정의 정보를 마법진을 통해 외부로 송출하는 장비로 보였다.
“어디 보자, 이 얼굴이 제대로 나오려는지 모르겠군요. 몇 번 연습은 해봤지만, 실전 방송은 처음이라서… 흠?”
혼자서 중얼중얼하던 그는 불현듯 고개를 들어 한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임유진이 주춤하여 서 있는 그 방향이었다.
“호오… 붉은 봉황. 이거, 적절한 때에 특별 게스트가 와 주셨군요.”
젊은 남자가 천천히 몸을 일으키자, 임유진은 자기도 모르게 두세 걸음 뒷걸음질을 쳤다. 그에게서 풍겨오는, 보이지 않는 심해처럼 꺼림칙한 기운 때문이었다.
“당신은…?”
“아, 소개가 늦었군요. 저는 십존, 블러디핀드(Bloody fiend)입니다. 흡혈왕(吸血王)이라고도 하지요.”
“…….”
임유진의 목울대가 위아래로 흔들리며 꿀떡였다. 한 시가 급한 마당에 최악의 장해물을 마주친 것이다.
십존, 블러디핀드… 드물게도 흡혈귀란 종족으로서 정상의 힘을 거머쥔 헌터로서, 세간에 알려진 게 거의 전무하다시피 한 수수께끼의 인물이었다. 그나마 드러난 것이라곤, 그가 창백한 얼굴을 가진 중년의 남자라는 것. 그런데 지금, 여기서 자기가 블러디핀드라 말하는 청년은 갓 약관을 넘은 것 같은, 지나치게 젊은 나이로 보였다.
그러나 이에 대한 의문을 가질 겨를은 없었다. 임유진의 신경은 온통 청년의 일거수일투족에 집중되어 있었으니까. 그의 정체가 십존이든 아니든 간에, 임유진의 예민한 감각은 절대로 청년에게서 눈을 떼서는 안 된다고 연신 경종을 울리고 있었다.
바짝 곤두선 임유진과는 달리, 청년은 시종일관 여유로운 태도를 고수했다.
“…아, 당신에게는 부적절한 소개였군요. 하기는, 그간의 인연도 있으니 본명을 밝히는 게 예의인 것 같습니다.”
“…그간의 인연?”
임유진은 긴장한 와중에도 인상을 쓰며 고개를 갸웃했다. 분명 처음 만난 사이인데, 인연은 무슨 인연이란 말인가? 그러나 다음 순간, 임유진의 의식은 곧바로 이어진 청년의 다음 발언에 도화지처럼 하얗게 변해버렸다.
“다시 소개하겠습니다. 제 이름은 발레기우스. 과거에 잊힌 몰락한 교단의 교황이라고 한다면… 아실지도 모르겠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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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의 추천과 코멘은 작가에게 큰 힘이 됩니다.
늦어서 죄송합니다. 저녁화는 12시 근처 혹은 새벽녘에 올라갈 것 같습니다.
임시공지에 달아주신 리플들, 걱정들, 모두 주의 깊게 읽었습니다. 걱정해주시고 조언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다행히 장소가 금은방 근처라 cctv는 확보했습니다. 빨리 가해자들이 잡혔으면 좋겠네요..
다시 한 번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립니다. 작은 코멘트 하나하나가 큰 힘이 된 것 같습니다.. 몇 시간 뒤에 저녁화로 다시 찾아뵙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