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unter Club RAW - chapter (3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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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 탈출
100# 탈출
“…늦어서 죄송해요.”
“유진아!”
시기적절하게 등장한 임유진은 잠깐 자신이 지나온 통로 쪽에 시선을 주었다. 방금 전, 발레기우스를 스칠 때의 무시무시한 존재감의 잔재가 아직도 남아, 살갗을 아리게 하는 기분이었다.
무슨 변덕인지 모르겠지만 그는 적이 확실한 그녀를 그냥 보내줬다. 하지만 그걸 곧이곧대로 믿는 것도 우스운 일. 지금 당장 발레기우스가 저 통로에서 나타나 일행을 몰살시켜도 이상할 게 없었다.
그래. 몰살이다. 임유진이 가늠한 발레기우스의 힘은, 혼자서 일행을 몰살시킬 수도 있는 괴물이었다.
“여보, 서둘러야 해요. 절 따라오세요.”
“…응?”
“오는 길에 퀸젤 위원을 만났어요. 지금쯤 퇴로가 준비됐을 거예요.”
어쩐지 임가희나 신소율이 보이지 않는데도 태연하더라니, 퀸젤에게서 어느 정도 사정을 들은 모양이다. 그러나 그녀의 그 말을 들은 노구덕의 얼굴은 당혹으로 물들 수밖에 없었다. 바로 도망친 줄 알았던 퀸젤이 여태껏 남아있다는 사실에 화가 난 것이다. 당연히 퀸젤의 안위 때문이 아니라, 그녀와 같이 있을 신소율과 임가희, 소냐에 대한 걱정 때문이었다.
“뭐? 아니, 지금껏 도망치지 않고 대체 뭔 짓거리를…!”
“아이들은 이미 피신했어요. 걱정 말고 따라오세요.”
“그, 그래?”
할 말이 없어진 노구덕은 금세 계면쩍은 얼굴이 되어 북왕과 데모나를 돌아보았다.
“어찌된 영문인지는 모르겠지만, 우리 마누라가 살 길을 열어준 것 같습니다.”
“그 전에 할 일이 있어.”
성큼 앞으로 나선 데모나는 바닥에 손을 대고 외마디 주문을 읊조렸다. 그러자 그녀의 손에서 피어난 은은한 마력의 파장이 대무투장의 벽에 담쟁이처럼 들러붙어 있는 나무줄기들을 자극했다.
꽈르르릉!
데모나가 고목 줄기를 폭주시키자, 소극적으로 흐느적거리던 줄기들이 발광하는 오징어처럼 날뛰며 대무투장을 아수라장으로 만들었다. 그 여파로 가뜩이나 균열이 가 있던 천장과 벽면이 우레와도 같은 굉음을 내며 급격히 붕괴하기 시작했다.
우박처럼 쏟아지는 낙석들은 일행의 뒤를 쫓는 앵거스와 티렐, 라키오라의 발걸음을 급격히 늦추었다. 물론 이 정도로 어떤 위해를 입을 이들은 아니었지만, 흙먼지와 거대한 파편들이 끊임없이 앞을 막아서는 데는 어쩔 도리가 없었다. 그렇다고 강제로 길을 뚫자니, 그것 또한 붕괴를 앞당기는 꼴밖에 되지 않았다.
거기다 요소요소마다 치솟은 불의 장벽과 어디서 나타났는지도 모를 언데드들까지 죽어라 달려드니, 그렇잖아도 머리에 열이 올라있던 앵거스는 분기탱천하여 괴성을 질러댔다.
“우아아악! 이놈들이…!”
어느새 노구덕 일행은 저 멀리 달아나 종적을 감춘 상황. 결국 셋 중 가장 냉철한 인물, 마도왕 티렐은 빠르게 결단을 내렸다.
“추적은 포기해야겠군.”
“뭐라고? 티렐! 저 괘씸한 놈들을 이대로 놓아주잔 말이냐?”
“진정해라. 앵거스. 우린 시간이 별로 없다. 놈들을 뒤쫓는다고 해도 단시간에 끝낼 수 있으리란 보장은 없어. 북왕에 본 드래곤을 다루는 사령술사도 있고, 거기에 붉은 봉황까지 합류했다. 또, 군다르의 계집도 조력자로 와 있는 것 같더군.”
“제기랄…….”
티렐의 논리정연한 말에 앵거스는 머리끝까지 치밀어 오른 울화를 삼킬 수밖에 없었다. 그 또한 십존의 위를 가진 인물. 거사를 앞두고 사사로운 감정 때문에 일을 그르치는 바보는 아니었다.
“지나치게 놀았어. 이건 명백한 우리 실수다. 블러디핀드에게 한소리를 들어도 할 말이 없군.”
“끄응… 지금은 일단 퇴각해야겠구려.”
“어쨌든 소기의 목적은 달성했으니.”
짧게 대화를 주고받은 세 사람은 노구덕 일행이 도주한 곳과 정반대 방향으로 몸을 돌려 나아가기 시작했다. 대무투장의 북쪽, 서리여왕이 점거한 시온의 워프게이트를 향해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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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우우웅!
대도시 시온이 멀리 내려다보이는 외곽지대의 언덕. 그 정상에서 일 미터 정도 떨어진 허공에서 밝은 빛무리가 일며 큼지막한 마법진이 나타나더니, 꽃봉오리가 피는 것처럼 공간의 틈새가 활짝 열리며 그 안에서 꾸역꾸역 몇 명의 사람들이 떨어져 내렸다.
장대한 체구를 지닌 오크와 중상을 입은 중년인, 검은 로브를 걸친 마법사 여인과 붉은 경갑을 걸친 여인이 차례대로 튀어나온 뒤, 마지막으로 닫히는 마법진과 함께 떨어진 사람은 터질 듯 육감적인 몸매를 지닌 붉은 머리카락의 여인이었다.
말할 것도 없이, 이들은 막 시온의 대무투장에서 탈출한 노구덕 일행이었다. 세 십존을 따돌리는데 성공한 노구덕 일행은 임유진의 인도로 퀸젤과 다시 만나, 그녀가 준비해 놓은 워프게이트를 통과하여 이곳에 떨어진 것이다.
“아빠! 괜찮아요?!”
“아저씨! 언니!”
즉발 워프의 영향인지, 심하게 지끈거리는 머리를 부여잡고 끙끙대던 노구덕은 가까운 곳에서 들려오는 외침에 겨우 표정을 펼 수 있었다.
고개를 드니, 아래에서부터 달려오고 있는 신소율과 임가희, 소냐가 보였다. 다행히 어디 다친 곳 없이 멀쩡해 보이는 게, 그녀들 역시 퀸젤의 워프게이트를 타고 무사히 탈출한 모양이었다.
그와 마찬가지로 약간의 두통에 살짝 이마를 찌푸린 데모나는 어이가 없다는 듯이 중얼거렸다.
“즉발형 워프게이트라니… 대체 얼마나 많은 돈을 퍼부어야 이런 걸 가지고 다닐 수 있는 거지?”
워프게이트로 대변되는 공간이동 마법진은 모든 마법 분야 중에서도 특히나 마력의 소모가 심하고 마법진의 구조가 까다로운 분야다. 다수의 수준 높은 마법사가 달라붙어도 준비에 시간이 걸리는데, 그걸 즉발로 구현시키는 스크롤이 있다는 말은 들어본 적도 없었다.
“하하. 위원회 직계의 특권이라고나 할까. 뭐, 그런 거지. 왜, 돌아올 마음이 생겼어?”
“어림없는 소리.”
“비싸게 굴기는.”
다시 만나자마자 데모나와 실없는 소리를 떠드는 퀸젤의 얼굴은 얼핏 보기엔 평소와 다를 바 없었지만, 나름대로 사람 보는 연륜이 있다 자부하는 노구덕은 그녀의 낯빛에 다소 어두운 그늘이 드리워져 있다는 걸 알아차릴 수 있었다.
어찌 그렇지 않겠는가. 위원회의 비호 아래, 금이야 옥이야 자랐을 터인 그녀에게, 십존들이 주도가 된 이번 반란은 엄청난 충격이었을 터였다. 외부에서 이미 포착된 반군이 쳐들어온 것과, 내부의 든든한 대들보가 뒤통수를 후려친 것은 차원이 다른 문제이니까.
“퀸젤 위원, 고맙군. 덕분에 전원 무사히 탈출할 수 있었다.”
“응? 아, 아냐. 나도 당신 덕에 살았는데, 뭘. 구해줘서 고마워, 노구덕 위원.”
어색하게 인사를 주고받은 두 사람은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자연스레 고개를 돌려, 검은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는 시온을 내려다보았다. 암갈색의 먼지 구름에 휩싸여 한낱 장작더미처럼 불타오르고 있는 시온의 초라한 전경은 보는 이의 기분을 절로 씁쓰레하게 만들었다.
구왕조 중 중부 지구를 다스렸던 왕국 시온의 수도이기도 했던 대도시 시온은 수백 년 간 카름에 맞서 온 대륙의 구심점 역할을 수행했던 상징적인 도시이기도 했다. 바로 저곳에서 연맹의 최초 모태가 되었던 전쟁기구 리뎀션이 발족했으며, 구왕조에 이은 위원회 체제가 뿌리내린 곳 역시 시온이었다. 그런 유구한 역사를 가진 덕에, 현재에 이르러서도 연맹총단, 대무투장 등 굵직굵직한 기능을 가진 기구들이 들어서 있는 곳이 바로 저곳이었다.
그런 유구한 역사를 가진 시온이 불타고 있다. 정확히 말하면 불타고 있는 것은 연맹총단과 대무투장이었지만…… 지금도 저 장면은 온 대륙에 똑똑하게 송출되고 있으리라.
연맹총단과 대무투장이 무너지고, 시온이 불타오르고 있다. 이건 단순히 건물에 자행한 테러로 일축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다.
바로 현재 이 시간, 대륙의 모든 눈이 연맹의 붕괴를 똑똑히 보고 있는 중이다. 위원회가 수백 년에 걸쳐 쌓아올린 권력의 금자탑이 철저히 으깨지고 부서져 철저히 무너져내리는 순간이었다.
오늘로서, 하늘에서 신처럼 노닐던 위원회의 위엄은 형편없이 저 땅 밑바닥으로 추락했다. 신비와 미지를 무기 삼아, 절대권력으로 군림하던 신이 그 고고한 격을 잃어버린 것이다.
한참 동안 시온의 전경을 내려다보던 노구덕은 한숨을 쉬며 연락용 수정을 꺼내들었다.
“우선… 아이리스에 연락을 취해야겠군. 소피아 녀석, 지금쯤 이쪽으로 헐레벌떡 달려오고 있을 지도 모르니까.”
“아저씨, 귀신이네. 바로 옆 도시라고 하던데요?”
신소율은 두 눈을 껌벅이는 노구덕을 향해 싱그러운 미소를 지어보였다.
“연락이라면 이미 취해놨어요. 여기 좌표도 말해놨으니, 조금 있으면 소피아 언니가 도착할 거예요.”
“그래? 잘했구나.”
“뭘요. 할 일도 없는데 이런 거라도 해야지.”
왠지 모르게 씁쓸함이 느껴지는 어조였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신소율은 언제 풀이 죽었냐는 듯 심각한 얼굴이 되었다.
“그건 그렇고, 아저씨. 지금 큰일 났어요. 전 대륙이 아주 난리도 아니라고요.”
“그야 그렇겠지. 대무투장에서 일어난 학살이 고스란히 실시간으로 나갔을 테니…….”
“아니, 그게 문제가 아니란 말이에요!”
신소율이 버럭 언성을 높이자 주위의 시선이 자연히 그녀에게 모여들었다. 사정을 알고 있는 것인지, 신소율을 따라 덩달아 무게를 잡고 있는 두 꼬맹이들만 빼고.
“그게 무슨 소린가? 시온에서 일어난 일보다 더한 일이 일어나기라도 한 건가?”
막 노구덕에게 얘기를 하려던 찰나, 누군가가 눈치없이 끼어들자, 화난 얼굴로 홱 고개를 돌린 신소율은 그 상대가 북왕인 것을 보자 살짝 움츠러든 기색으로 조곤조곤 입을 열었다.
“그러니까… 그게…… 어떻게 된 거냐면요….”
신소율은 자신에게 몰린 좌중의 이목에 조금 긴장이 되었는지, 꿀꺽 침을 삼킨 뒤 소피아와 통신을 하면서 알게 된 사실을 털어놓았다. 노구덕 일행이 대무투장 안에서 난리를 겪는 동안, 십존의 일인인 흡혈왕이 전 대륙에 반란을 선포했다는 것을.
그녀의 얘기를 들은 노구덕 일행은 다시 한 번 크게 장탄식을 터뜨릴 수밖에 없었다. 엎친 데 덮친 격이라더니, 흡혈왕의 말이 사실이라면 시온에서 난리가 일어났을 때, 동부와 남부에서도 일제히 반군이 준동했다는 게 아닌가. 설마 전 대륙을 상대로 거짓부렁을 하진 않았을 테니, 지금쯤이면 동부와 남부의 일부가 반군의 손에 들어갔다고 봐도 무방할 터였다.
“아주 작심하고 일을 벌였군.”
“허어… 완벽히 당했군.”
그때, 줄곧 침묵을 지키고 있던 임유진은 조심스럽게 노구덕을 불렀다.
“여보.”
“음?”
“저, 그자와 만났어요.”
“그자라니? 누구?”
“그 흡혈왕이란 남자요. 그 사람… 자기 본명이 발레기우스라고 했어요.”
“……!”
예고없이 이어진 임유진의 폭탄선언에, 노구덕과 신소율은 그야말로 경악을 넘어 까무러칠 정도로 놀라고 말았다. 비교적 침착함을 유지하는 데모나마저도 눈가에 잔경련을 일으키며 동요를 내보일 정도였으니.
“어, 언니! 바, 바, 발레기우스라고요? 그 벌레교단의 교황?”
“응. 맞아. 자기 입으로 정체를 밝혔어. 그리고 내가 봤을 때도… 사실인 것 같아. 도저히 이길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으니까…….”
노구덕의 낯빛이 절로 침중해졌다. 서리여왕을 상대하면서도 일말의 두려움을 보이지 않았던 임유진이 싸우지도 않고 사실상 패배를 자인했다. 수백 년 간 살아오며 힘을 탐한 발레기우스니, 그 정도로 강하지 않다면 오히려 이상한 일일 터. 문제는 그의 신분이었다.
“발레기우스가 이번 반란을 주도한 흡혈왕과 동일 인물이라고? 젠장…….”
악연도 이런 악연이 없었다.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던 노구덕은 근처에서 익숙한 기척이 다가오는 것을 느끼곤 고개를 들었다. 심장으로부터 비롯된 종속의 각인이, 그의 추종자가 가까이 왔음을 알려주고 있었다.
이 친숙하고 정겨운 느낌. 누가 왔는지는 안 봐도 뻔했다.
“…소피아가 온 모양이다. 거의 이 근처로군. 대책은… 일단 집에 돌아가서 세우도록 하자.”
달리 할 말이 없기는 다른 이들도 마찬가지였던 터라, 남은 일행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 작품 후기 ============================
여러분의 추천과 코멘은 작가에게 큰 힘이 됩니다!
일단 올리고 나서, 리리플 달도록 하겠습니다! 저녁편은 12시 전후 혹은 새벽녘에 올라갈 예정입니다!
asd메이지 / 예리한 코멘 언제나 즐겁게 보고 있습니다! 구더기 무서워 장 못 담근다.. 그거 노린 거였는데 눈치채셨군요!
은신설야 / 재밌게 봐주시니 저로서는 그저 감사할 따름!
elas / 정인이도 아마 생방송으로 즐기고(?) 있겠죠?
kred / 코멘트 주의 깊게 잘 읽었습니다! 반란이 일어나긴 했지만 레귤러 자체가 없어지는 것은 아니기에, 프라임리그에 속한 마굴들은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예전처럼 평화로운 탐사는 할 수 없겠지만요.. 체제가 유지될지는 스포가 될 수 있으므로 말씀을 못 드리겠지만, 차후 스토리가 진행되면서 프라임리그 탐사 장면은 보실 수 있다는 것 정도는 말씀드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소프트푸딩 / 그건 스토리 진행되면서 차차 밝혀질 문제이기에.. 여기서 말씀드리기엔 좀 ㅎㅎ;;
모그퐁 / 항상 감사드려요! 좋은 하루 보내세요!
벌레 / 식용 엘프가 아니었습니다…
한따가리 / 그래도 세 명이서 기습까지 했는데, 한 명도 못 죽이면 말이 안되지요!
니오그타 / 늑대왕은 뭐.. 이미 플래그 세워놨으니 아실거라 짐작합니다만!
북치네 / 아쉽긴 하지만..북왕과 신궁 둘 다 살리는 건 너무 억지다 싶었어요!
호야[虎夜] / 요새 짜잘한 오타가 많네요 ㅠㅠ 수정했습니다! 반군과는 아마 노선을 달리하겠죠?
월병인 / 실바나스 드립에 빵 터졌습니다 ㅋㅋㅋ
모욕감 / 넵 감사합니다! 좋은 하루 되시길!
서울우유 / 십존의 자리를 계승중입니다…
신수[神手] / 북왕처럼 근접전 짱짱맨이면 살았을 텐데요.. ㅠㅠ
쌈커 / 오늘도 좋은 하루 보내세요!
포식활자 / 그럴듯한 미끼를 던져놔야 지지자들을 끌어모을 수 있을 테니까요..
아키츠키 / 포세이큰의 여왕님!
파염마신 / 부지런히 분량 쌓아놓겠습니다 ㅠㅠ
가식적썩소 / 와.. 이런 오타들은 어떻게 눈여겨보시는 건지.. 송구할 따름입니다..
노여연 / 이번엔 워프게이트로 간신히 탈출을 했네요!
필리온 / 그럼 저는 다시 열심히 분량을 쌓겠습니다..!
Velos / 클라리스 부들부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