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unter Club RAW - chapter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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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드래프트(Draft)
2# 드래프트(Draft)
일행이 내던져진 곳은 야트막한 언덕이 올려다 보이는 벌판 한가운데였다.
“어휴~, 뭐라도 나올 것 같은 분위기네~. 썰렁해라.”
주변을 둘러 본 최나연의 첫 감상이었다. 방정맞은 호들갑이었지만 일행은 대체로 그에 공감하는 분위기였다. 그녀의 말마따나 널따란 벌판은 황량하기 짝이 없었다. 바닥에 깔린 누렇게 변색되어 맥없이 늘어져 있는 들풀들이나, 드문드문 보이는 기괴하게 뒤틀린 고목(古木)들이 아니라면 영락없이 사막으로 착각했을 정도다. 아니, 녹빛이라곤 도무지 찾아볼 수 없으니, 사실상 사막이나 마찬가지였다.
“아무래도 저기가 목적지인 것 같은데.”
근육남 김규식이 걸걸한 목소리와 함께 언덕 정상을 가리켰다. 김규식의 굵은 손가락 끝이 향하는 곳에는 기분 나쁠 정도로 새하얀 석탑이 우뚝하니 솟아 있었는데, 뾰족한 세모꼴의 지붕 끝에 매달린 이름 모를 새 조각상이 마치 일행을 내려다보는 것만 같았다.
굳이 김규식의 말이 아니더라도 일행이 있는 곳에서부터 탑까지는 미세한 소로(小路)로 구불구불 연결되어 있었다. 즉, 시험이 치러지는 장소라는 뜻이다.
“하, 사막 한 가운데 솟은 탑이라. 분위기 한 번 죽이는데.”
“그럼 가 보도록 할까요.”
키 큰 여성, 안혜미를 선두로 한 일행은 천천히 탑을 향해 나아가기 시작했다. 전방, 중앙, 후방은 각기 2, 3미터 정도 거리를 두고 움직였는데, 탑에 들어가기 전까지는 별 위험이 없다 여겼는지 사람들은 각 조별로 시시콜콜 잡담을 하며 걸어갔다. 하기야 사방이 확 트인 벌판인 만큼, 가는 도중에 불의의 습격을 당할 확률은 거의 없었다. 하태경도 그리 생각했는지, 아직까지는 별다른 제지를 하지 않았다.
완전히 관심 밖의 존재가 된 노구덕은 맨 후미에서 터덜터덜 걸었다. 그 옆에는 비교적 짧은 검을 든 여대생과 손도끼 한 쌍을 허리춤에 매단 남자가 발을 맞추고 있었다. 앞서가는 다른 조에서 간간이 웃음소리도 들리는 걸로 봐서 나름대로 친목도모를 하고 있는 것 같은데, 유독 이 조는 조용했다. 다른 조에 비해 인원수가 적은 것도 그렇지만, 아마 노구덕이라는 불편한 존재가 낀 것도 한 몫 했을 터였다.
여대생, 신소율은 이 불편한 침묵이 영 견디기 어려워 남몰래 한숨을 내쉬었다.
‘휴우. 내가 미쳤지, 어쩌다 후방을 맡는다고 나서가지고.’
이정한은 남들과 어울리기보다 혼자 손도끼로 저글링하는 걸 좋아하는 남자 같았고, 노구덕이라는 아저씨는 시무룩해 있는 꼴이 영 말을 걸 분위기가 아니다. 앞으로 이삼십 분은 이렇게 걸어야 할 듯 싶은데, 가는 내내 이런 분위기라면…….
‘갑갑해서 못 참아.’
활달함을 타고난 그녀는 결국 참지 못하고 먼저 말문을 텄다. 대상은 그래도 비교적 접근하기 쉬운 노구덕이었다. 흉험한 손도끼를 빙글빙글 돌리며 고독한 티를 팍팍 풍기는 이정한보다는, 그래도 노구덕이 말을 걸기 편했다. 물론 마음 한 구석의 동정심도 없다고는 할 수 없었다.
‘이 아저씨도 참 불쌍하지. 어쩌다가 여기 휘말려서는…….’
“아저씨?”
“엉?”
노구덕은 멍청한 얼굴로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올망졸망한 눈망울을 깜박이는 하얀 얼굴이 보인다. 그러고 보니 막 정신을 차렸을 때 처음 대화를 나눈 것도 저 여대생, 신소율이다. 자세히 보니 얼굴선이나 이목구비가 참 고운 처자다. 시원하게 드러낸 이마를 지나 뒤로 한 데 묶어 늘어뜨린 새까맣고 윤기 넘치는 머릿결은 하얀 피부와 더불어 갓 피어난 모란꽃 같은 느낌을 자아냈다. 모르긴 몰라도, 그녀 주위의 남학생들은 여럿 애간장이 끓었으리라.
그런 여성이, 원래대로라면 펜을 쥐고 있어야 할 가느다란 손가락이 새파란 빛을 흩뿌리는 날붙이를 꼬나 쥔 모습이라니.
“아저씨?”
“엉?”
재차 들려온 음성에 노구덕은 퍼뜩 정신을 차렸다.
“아, 아, 아. 딴생각 좀 하느라고. 그래, 왜 불렀어?”
“어, 음…. 생각보다 조용하신 것 같아서요.”
“그게 무슨 소리야?”
“조금 전에 그런 일도 있었고… 솔직히 그렇잖아요. 난데없이 이런 데 떨어지면, 누구라도 불안할 거예요. 저라면 아마 울고불고 난리도 아니었을 걸요?”
신소율의 얼굴과 꾹 쥐고 있는 소검을 번갈아 쳐다 본 노구덕은 그녀의 마지막 말에는 결코 동의할 수 없었지만, 그걸 굳이 겉으로 드러내진 않았다. 모처럼 말을 걸어 준 그녀의 호의에 대한 실례였으니까.
기실 노구덕은 이미 상당부분 마음을 정리한 상태였다. 난 데 없는 황무지에 떨어진 게 결정적이었다. 공간이동 같은 초자연적인 일을 실제로 체험하고 나니 그 외의 일들은 상대적으로 작게 느껴진 것이다. 그나마 이런 자포자기나 다름없는 여유라도 가질 수 있는 건, 몇 년 후에 쉰을 바라보는 나이 덕이었다.
“뭐, 그렇지. 하지만 어쩌겠어? 그 저널인가 뭔가도 봤고, 떡하니 이런 데로 와버렸는데. 믿지 않을 수 없잖아? 방을 나가기 직전까지도 혹시나 하긴 했지만… 제기랄.”
“헤에, 연륜이란 거네요.”
“연륜은 무슨. 포기가 빠른거지.”
여전히 둘에게는 관심이 없는 듯 손도끼를 만지작거리는 이정한을 곁에 두고, 두 사람의 대화는 도란도란 이어졌다.
“그래서 너희는 대체 뭐야? 나도 뭐라도 좀 알고 싶다고.”
노구덕의 채근에 신소율은 잠시 고민했다. 말 해주기 싫어서가 아니라, 어디서부터 얘기를 해야 할지 생각하는 눈치였다.
“음, 우린 헌터(Hunter)라고 불려요. 그리고 이곳은 셉틱 스퀘어(Septic square)라는 곳이죠. 줄여서 스퀘어라고 해요. 그러니까 이곳의 지구는 스퀘어라고 불리는 셈이죠. 그리고 우리들, 헌터는… 뭐라고 해야 할까….”
“괴물 사냥꾼이지.”
이정한이 갑자기 끼어들었다. 눈은 여전히 손가락에 걸려 핑그르르 회전하는 손도끼에 고정된 채였다. 설명이 도중에 강제로 끊겨버린 신소율은 입술을 삐죽 내밀었지만 이정한은 그다지 신경 쓰지 않고 말했다.
“아저씨. 축구 좋아해? 보는 거 말이야. K 리그, 프리미어리그 같은 것 있잖아.”
‘어째 여기 사내놈들은 하나같이 혀가 짧아? 에잉, 빌어먹을 놈들.’
속으로 투덜댄 노구덕이 고개를 끄덕였다.
“당연하지. 그놈의 축구 때문에 내가 이 지경이 된 건데….”
그는 귀갓길에 차에 치인 순간, 초자연적인 힘이 발생해 이곳에 떨어진 것이라 추측하고 있었다. 따지고 보면 하필 그 시간, 그 횡단보도를 건너게 된 원인이 바로 축구경기 아니던가. 물론 앞뒤 전부 거른 중얼거림을 이정한이 알아들을 턱이 없었다.
“……?”
이정한 무슨 소리냐는 눈빛이었지만 굳이 캐묻지는 않았다.
“그럼 설명하기가 쉽군. 여기 스퀘어도 지구와 똑같이 사람들이 살아가는 곳이야. 다만 차이가 있다면 카름(Kar’m)이라는 괴물들이 득실거린다는 거지. 우린 그 괴물들을 처리하기 위해 지구에서 초청되어 온 용병이야. 스퀘어 원주민 보다는 지구인이 ‘임파워링’에 적합하거든. 말 그대로 괴물들을 사냥하기 위한 목적을 가지고 왔으니 만큼, 통칭 ‘헌터’로 불려.”
“지금 우리가 치르고 있는 시험은 드래프트라고 하는데, 일종의 신인선발전이라고 보면 돼. 지금 우리 말고도 다른 팀들도 드래프트에 참가하고 있을 거야. 여기서 어떤 성적을 내느냐에 따라 클럽들의 주목도가 달라지지.”
“클럽?”
“헌터클럽. 헌터들이 소속되어 있는 단체들이야. 축구나 야구도 각 구단들이 있잖아? 그 정도로 생각하면 돼. 역할도 비슷하지. 드래프트에서 성적이 좋은 헌터는 대형클럽에서 오퍼가 들어와. 그러면 계약을 맺고 계약기간 동안은 거기서 편히 생활하는 거야. 이 시험 한 번에 앞으로의 인생이 피는 거지.”
옆에서 듣고만 있던 신소율이 입이 근질거렸는지 얼른 설명을 이어받았다.
“그래서! 다들 신경이 예민한 거죠. 수능? 비교도 안돼요. 여긴 정말로 목숨을 걸어야 하니까. 괴물들도 만만치 않다고 들었거든요. 사실 좀 걱정이에요. 실전은 처음인데…….”
가만히 듣고 있던 노구덕은 한 가지 의문이 생겼다. 얘기를 들어보면 이들도 모두 이곳에 갓 들어온 신입이라는 소린데, 사전 지식은 어떻게 된 게 빠삭하지 않은가?
“만만치 않다고 들어? 누구한테?”
“아, 그게 말이죠. 절 발탁한 스카우터(Scouter)가……”
“도착했다.”
또다시 말이 끊긴 신소율은 뾰로통한 얼굴이 되었지만, 이내 진지한 눈으로 전방을 응시했다. 그 모습을 본 노구덕 또한 까닭 없이 몽둥이 손잡이를 쥔 손에 힘이 들어가는 걸 느꼈다. 어쩌면 지금까지 산전수전 겪어오며 닦여진 본능이 경고를 보내고 있는 걸지도 몰랐다.
이 앞은, 정말로 위험하다고.
언덕 아래에서 올려다봤을 땐 몰랐는데, 막상 입구 앞에 서니 석탑의 크기가 상당했다. 벽면에 눈금처럼 나 있는 네모난 창의 수를 세어보니 4, 5층 정도로 이루어진 구조물인 듯싶었다. 두꺼운 원통에 고깔모양 지붕을 얹어 놓은 탑의 모양새를 두고, 중앙조의 최나연은 뚱뚱한 연필을 뒤집어 놨다느니, 탑 설계자는 분명 비전공자일거라니 하며 궁시렁거렸다. 나중에 신소율의 귀띔으로 알게 된 사실로, 최나연은 미대생이라고 했다.
‘어쩐지 얼굴에 아주 그림을 그려 놨더라니.’
최나연의 거북할 정도로 두꺼운 화장이 이해되는 순간이었다.
탑 내부에 들어서니 폐부에 달라붙는 것처럼 눅진하고 텁텁한 공기가 반겨왔다. 숨을 들이쉴 때마다 코 끝을 찌르는 퀴퀴한 냄새에 다들 얼굴을 찡그리고 있는 사이, 하태경은 전방의 안혜미를 중앙의 전투지원으로 보직변경시켰다. 개활지가 아니니 굳이 눈 좋은 사람이 앞장 설 필요가 없다는 말을 하면서.
“그런데 불은 어떻게 하지? 더 들어가면 아무것도 안보일 텐데. 횃불이라도 만들어야 하나?”
“그래야 할… 필요는 없을 것 같네요. 저길 보세요.”
“어? 램프잖아?”
“기름도 채워져 있는데? 부싯돌로 불만 붙이면 되겠어.”
입구 바로 옆 선반에는 기름램프 세 개가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이것도 주최(?)측 나름의 배려일까. 대놓고 쓰라고 준 것이니, 요긴하게 써 주는 게 인지상정인 법. 일행은 좋아라하며 각 조별로 램프 하나씩을 분배한 뒤 대오를 갖추고 탐험을 개시했다.
“으…. 냄새나.”
“쉿. 조용히.”
최나연이 투덜대다 하태경에게 한 소리 들은 걸 빼면, 일층 탐사는 조용하고 순조로웠다. 아니, 그보다는 아무것도 없었다는 게 맞는 말이었다. 입구에서부터 좌측으로 한 바퀴를 돌아 제자리에 올 때까지 아무 것도 발견하지 못한 일행은 살짝 맥이 빠지는 걸 느꼈다. 그래도 거둔 성과라면, 탑의 구조가 어떤 식인지 파악했다는 것 정도일까. 보통 이런 석탑은 각 층의 구조가 동일하게 이루어진 경우가 많기 때문에, 일층의 구조를 숙지하면 다른 층을 탐사하는데도 도움이 될 가능성이 높았다.
“아무것도 없잖아?”
“가장자리의 복도가 중앙의 방 4개를 둘러싸고 있는 구조군. 다음 층으로 가는 계단은 입구 반대편에 있고.”
“문제는 아래층으로 가는 계단도 있다는 거죠.”
흔히 이런 곳을 탐사할 때면 일어나는 문제가 일행의 발목을 붙잡았다. 위층을 먼저 갈 것인가, 아래층을 먼저 갈 것인가.
“아래층이라고 해봐야 그냥 지하실인 것 같던데. 깔끔하게 거기부터 다녀오지? 뒤가 구린 건 싫은데.”
“위쪽부터 가 봐요. 지상 층은 그래도 복도 쪽에서 햇빛이 들지만, 지하실은 한 치 앞도 보이지 않을 거예요. 괜히 위험한 곳부터 갈 필요는 없잖아요?”
의견이 갈렸다. 김규식, 박정환 같은 남자들은 지하실부터 다녀오자는 쪽이고 윤희지, 안혜미, 최나연 등 여자들은 처음부터 위험을 감수할 필요가 없다고 피력했다.
결정은 리더인 하태경의 몫이었다. 곰곰이 양 쪽의 의견을 듣던 그는,
“서로의 의견이 모두 일리가 있습니다. 그럼 이렇게 합시다. 확실히 지하실은 단층인지 복층인지도 모르고 상대적으로 위험하니, 초입만 살피는 겁니다. 단순 저장고라면 거기서 탐사를 더 진행하고 구조가 복잡하다면 지하 탐사는 나중으로 미루도록 하죠. 이의 있습니까?”
두 입장을 모두 수렴한 방안이니 이견이 있을 리 없었다. 확실히 하태경이 리더로 뽑힌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H무역상사에 다녔다고? 아주 귀티를 풀풀 풍기는구만.’
노구덕은 왠지 하태경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 냉철하고 지적인 면상이나, 이곳에 어울리지 않는 수트 차림새나(열 받게도 하태경은 수트핏이 정말 잘 받는 몸매였다.), 리더 역할을 도맡아 하는 것이나, 최나연이나 안혜미가 그를 은밀한 눈길로 훔쳐보는 것이나 뭐 하나 마음에 드는 게 없었다. 그것은 비단 준비의 방에서 하태경에게 서운한 일을 당했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난 놈이네. 저거.”
“네?”
중얼거림을 들었는지 옆의 신소율이 돌아봤지만, 노구덕은 입을 꾹 다물었다. 한참이나 젊은 녀석에게 질투나 하다니, 입맛이 썼다. 저 나이 때의 자신은 무엇을 하고 있었나 떠올리자, 어쩐지 스스로가 한심해지는 노구덕이었다.
복도를 돌아 맞은편 계단에 당도한 일행은 김규식을 앞세워 천천히 지하로 내려갔다. 잠시 후, 후미에서 신소율, 이정한과 함께 슬금슬금 뒤따르던 노구덕은 김규식의 허탈한 음성을 들을 수 있었다.
“뭐야? 이거 잠겼잖아?”
“쇠사슬도 그렇고, 자물쇠도 엄청 두꺼워요. 따로 열쇠를 찾아야 하는 것 같아요.”
“에헤이~. 괜히 시간만 낭비했어.”
최나연의 방정맞은 소리를 끝으로 선두로 들어갔던 인원들이 터벅터벅 계단을 올라왔다. 들어보니 지하로 가는 통로는 단단한 철문으로 꽉 막혀있는데다 문고리에는 두꺼운 자물쇠까지 채워져 있어 도저히 들어갈 수가 없단다. 이래서야 좀 전까지 탐사방향을 두고 의견을 조율했던 게 말짱 헛일이 되어 버렸다.
“차라리 잘 됐습니다. 이대로 2층으로 가죠. 그리고 혹시 모르니 가면서 주면을 잘 살피도록 하세요. 지하 자물쇠 열쇠를 발견할 수 있을지도 모르니까. 또… 음.”
하태경의 눈살이 살짝 찌푸려졌다. 분위기가 많이 풀어진 것이 보였기 때문이다. 석탑에 들어올 때까지만 해도 몸에 잔뜩 힘을 주고 들어왔는데, 1층은 텅 빈 방들뿐이고 지하는 자물쇠로 잠겨있다. 긴장이 풀리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인 것이다. 벌써 발걸음만 봐도 터덜터덜. 조심성 없는 게 느껴지지 않는가.
‘좋지 않다.’
“2층 진입했습니다. 선두, 조심…”
막 주의를 주려는 찰나, 전방에서 다급한 외침이 터졌다.
“거기, 가지마!”
“뭐? 으, 으아아악! 끄아아아!”
철컹!
불길한 쇳소리와 함께 누군가의 찢어지는 비명소리가 들렸다. 앞쪽에서 일이 터지자 형식적으로나마 유지되고 있던 진형이 완전히 어그러졌다. 무엇을 보았는지 최나연은 덩달아 비명을 질렀고, 황기종은 앞으로 뛰쳐나갔으며, 윤희지도 하얗게 질린 얼굴이었다. 그 와중에도 하태경은 중심을 잡으려 애를 썼다.
“조용! 조용!”
“꺄아아아아!”
“최나연 씨! 좀!”
그럼에도 최나연은 놀란 가슴을 추스르지 못하고 꺅꺅댔다. 보다 못했는지, 후미에서 자리를 지키던 이정한이 재빠르게 움직여 최나연의 입을 강제로 틀어막았다. 하태경은 서늘한 눈으로 최나연의 질린 얼굴을 지그시 노려봤다. 안 그래도 화장 때문에 하얗게 뜬 얼굴이 아예 핏기가 쏙 빠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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