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unter Club RAW - chapter (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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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2# 짧은 휴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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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하하하핫!”
“형님, 너무 그러지 마십시오.”
“아니, 아니… 나도 모르게 그만. 크음흠!”
“…….”
정신없이 웃음보를 터뜨리던 헨더슨은 노구덕의 눈썹이 불편하게 꿈틀거리자 얼른 표정을 바로 했다. 이두식이 제때 만류해주지 않았다면 등짝을 세게 두들겨 맞았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헨더슨은 아직 아련한 웃음기가 남아, 절로 히죽거리는 얼굴로 말했다.
“뭐, 인생에 한 번쯤 쓴맛은 필요한 법이지. 안 됐구만, 그 꼬맹이.”
“가희가 상심이 크겠군요.”
출신이 출신이라 그런지, 심사가 여러모로 비틀린 헨더슨에 비하면 지극히 정상적인 이두식의 반응이 천사처럼 보일 정도였다.
노구덕과 이두식, 헨더슨. 알맞게 숙성된 수제 맥주가 한가득 든 오크통을 끼고 앉아 있는 그들이 한창 술안주로 삼아 곱씹고 있는 것은 ‘임가희의 샤프슈터 전승 의식’이었다.
결과적으로 말하면, 임가희의 전승 의식은 실패했다. 샤프슈터에서 영롱한 빛이 뿜어져 나왔을 때에는 금방이라도 전승 의식에 성공할 줄 알았지만… 십 분 정도가 지나, 임가희는 신기가 발하는 강한 반발력에 공처럼 바깥으로 튕겨져 나왔다. 신기의 주인으로 인정받지 못한 것이다.
당시 상황을 떠올린 노구덕은 반들반들한 머리를 문지르며 말했다.
“상심하기야 했겠지만… 가희 녀석, 이런 쪽에는 제 엄마랑 완전히 다르단 말이지. 아니… 어떻게 보면 닮은 건가?”
“응? 그 꼬맹이, 지금쯤 울고불고하면서 방에 틀어박혀 있기라도 할 줄 알았는데.”
“이봐, 내 딸내미가 그렇게 약한 줄 아나.”
노구덕은 맥주잔을 단번에 쭈욱 들이켰다. 쌉쌀하면서도 진득한 보리의 맛이 시원하게 식도를 타고 내려가 몸 전체로 부드럽게 퍼져 나가는 듯했다. 그는 숙성 맥주의 감미로운 맛을 음미하며 당시의 상황을 회고했다.
샤프슈터에게 거부당해 한순간에 튕겨져 나온 임가희. 한동안 실연당한 여인네처럼 멍하니 주저앉아 있던 그녀는 이내 이를 까득 악물며 다시금 샤프슈터를 움켜쥐려고 했으나, 그 즉시 좀 전보다 강한 반동이 일어나 재차 그녀를 밀쳐냈다. 그러길 세 차례. 임가희의 막무가내식 도전은 점점 강해지는 샤프슈터의 거부 반응을 보다 못한 노구덕과 박지현이 말리고 나서야 겨우 멈추게 되었다.
노구덕에게 붙들려, 성난 황소처럼 거센 콧김을 뿜으며 씩씩거리던 임가희는 무서운 눈초리를 샤프슈터에게 고정시킨 채, 그 자리에서 악에 받친 고함을 내질렀다.
‘난 포기하지 않아! 언젠가 반드시 널 굴복시켜주겠어!’
…그리고 그대로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뒤도 돌아보지 않고 방을 나가버렸다.
“…여기로 오면서 잠깐 소식을 들었는데, 연무장에 틀어박혀서 훈련을 하고 있다더군.”
노구덕으로부터 사건의 전말을 들은 헨더슨은 다시금 배를 붙잡으며 크게 웃음을 터뜨렸다. 평소 임가희의 행실이 어떤지 뻔히 알고 있는 그였기에, 당시의 상황이 눈에 훤하게 그려졌다.
“와하하하… 왈가닥 꼬맹이다운 선언이군. 안 그러냐?”
“실의에 빠진 것보단 낫군요. 그런데, 이미 거부를 당했는데 재도전이 가능합니까?”
“으음… 나도 그걸 모르겠단 말이야. 보통 한 번 신기의 선택을 받지 못하면 만지는 것조차 불가능하다고 하던데… 가희는 다시 만질 순 있었단 말이지. 심한 반동 때문에 다시 밀려나긴 했어도. 북왕 형님도 이런 경우는 처음 본다고 하시더군.”
“거 참, 희한한 활일세. 남녀 간에 밀당하는 건 많이 봤지만 활이 이러는 건 또 금시초문이군. 이름값을 하겠다, 이건가?”
“헨더슨 형님. 밀당… 많이 해보셨습니까?”
“이 자식이, 사정 뻔히 아는 놈이 뭘 그런 걸 묻고 있어! 아픈 데 찔러보는 거냐?”
노구덕은 여느 때와 다름없이 티격태격하는 두 사람을 보며 한 시름을 덜 수 있었다. 나타샤의 이적과 가이탄의 은퇴로 혹시 이두식이 흔들리지 않을까 걱정했지만, 괜한 기우였던 셈이다.
헨더슨이야 지금은 실없는 마법사 나부랭이처럼 보이지만, 본래 그 출신은 비트레이의 비밀결사다. 이스턴리그의 강자였던 비트레이에서도, 그 가능성을 인정받아 비밀리에 오너 직속으로 육성하고 있었던 음지의 조직. 어쩌면 헨더슨은 아이리스의 헌터들 중 가장 마인드컨트롤에 능한 사람 중 하나일지도 몰랐다.
지금은 많이 나아졌지만, 경력에 비해 아직 꽤 순박한 면이 남아 있는 이두식과 음지에서 닳고 닳은 헨더슨. 조합만 놓고 보자면 물과 기름처럼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두 사람이 이처럼 친밀해진 건 솔직히 의외였지만, 아무렴 어떠랴. 사람을 처음부터 정해 놓고 사귀는 것도 아니고, 마음이 맞는다면 그걸로 된 거지.
“그래… 둘 다 요새 지내는 데 불편한 건 없겠지? 있다면 가감 없이 말해도 좋다.”
이두식의 굵직한 목에 되도 않는 헤드락을 걸고 있던 헨더슨은 갑자기 진지해진 노구덕의 분위기에 이상하다는 듯 귓구멍을 후볐다.
“오너, 갈 때가 얼마 남지 않은 거요? 갑자기 왜 분위기를 잡고 그러지?”
“멍청한 놈. 꼭 이럴 때 초를 쳐야 하겠냐. 나중엔 배려를 해주고 싶어도 할 수 없을 것 같으니 미리 말해두란 말이다.”
“흠… 전쟁 때문에 그런가. 하긴, 이곳이라고 언제까지 안전지대일 순 없겠지.”
괜히 핀잔을 얻어먹은 헨더슨은 이내 납득한 것처럼 고개를 끄덕이더니 볼을 긁적이며 푸념하듯 말했다.
“나야 뭐 불만이랄 게 있나. 급료 잘 나오겠다, 내 팔자에 구경도 못해 볼 귀한 오리지널도 익혀봤겠다… 빈말이 아니라, 오너에게는 정말 감사하고 있소. 덕분에 코가 꿰인 것 같아 그건 좀 그렇지만… 아! 하나 더, 이상하게 클럽에 예쁜 여자는 많은데… 그 중에 내 짝은 없는 것 같다는 게 슬프다고 할까. 이게 다 누구의 과도한 독점 때문이 아닐까 원망하는 중이오.”
꽃밭에 드러누우면 뭘 하는가. 그 꽃밭이 모두 주인이 있는 사유지인 것을. 허나, 정작 그 ‘꽃밭 주인’은 헨더슨의 불평불만에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그거야 네놈이 덜떨어졌으니 그런 거지. 여기 대놓고 연애하는 커플이 얼마나 많은데. 두식이나 진솔이 좀 봐라. 상기는 이미 살림 차려서 분가까지 한지 오래고, 2, 3군에도 내가 아는 것만 벌써 몇 커플이나 있는데.”
“솔직히 큰형님 말씀이 맞다고 생각합니다.”
“제길! 아주 잘나셨구만! 인기 없는 수컷은 서러워서 이만 나가보겠수다!”
노구덕과 이두식의 협동공격에 느닷없이 정색을 하고 일어선 헨더슨은 술냄새를 풀풀 풍기며 그대로 밖으로 나가버렸다. 헨더슨의 돌발행동에 노구덕이 어리둥절해진 사이, 이두식은 오크통을 기울여 그의 빈 잔을 채우며 입을 열었다.
“벌써 8시군요.”
“……?”
“사실, 큰형님 오시기 전에 얘기를 했었거든요. 9시에 도심 레스토랑에서 어떤 여성분하고 약속이 있다고 하던데……. 술 냄새도 지우고 샤워도 하려면 일찍 나가는 게 좋겠죠.”
어쩐지 행동거지에 어색함이 철철 넘쳐 흐르더라니… 노구덕은 괜히 허탈해졌다. 그러고 보니, 이따금 이두식을 통해 헨더슨이 젊은 여성들과 만남을 가진다는 소식을 들었던 것 같기도 했다.
“…저번에도 뭔 약속이 있다고 하지 않았냐? 같은 여자냐?”
“다른 여잡니다. 헨더슨 형님이 같은 여자를 만나는 건 보지 못했습니다. 이번 달만 해도 벌써 세 번째군요.”
드러난 충격적인 진실에, 노구덕은 그렇잖아도 커다란 입을 딱 벌렸다. 그 말대로라면 천하의 바람둥이가 아닌가.
돌이켜보니 헨더슨 정도면 오히려 인기가 없는 게 이상했다. 한창 팔팔할 삼십 대의 나이에, 외모도 그 정도면 못난 편은 아니다. 더욱이 칼립스 최고의 클럽인 아이리스에 속해 있고, 나름대로 실력 있는 마법사 아닌가. 마음만 먹는다면 칼립스 일대의 여자들을 후리고 다닐 수도 있을만한 조건을 두루 갖췄다.
쿵! 열불이 치민 노구덕은 탁자를 세게 내리쳤다. 한 달에 세 번이나 여자를 갈아 치우다니, 일 년 이면 도대체 몇 명이란 말인가? 그는 꿈도 꾸지 못할 만행이었다.
“이런 개자식! 부럽… 크흠! 다리몽둥이를 부러뜨릴까보다! 그런 놈이 나더러 어쩌구 어째? 뭐? 독점?”
펄펄 뛰며 화를 내는 노구덕을 묘한 눈초리로 응시하던 이두식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가서 밥값만 내고 오는 모양입니다. 오늘은 9시쯤에 만났으니, 11시 이전에는 돌아오겠죠. 늘 이렇습니다.”
“…….”
금방이라도 헨더슨을 죽일 듯하던 노구덕의 표정이 다시 측은하게 뒤바뀌었다. 그 말이 사실이라면, 호구도 이런 호구가 없었다.
“아니, 허우대 멀쩡한 놈이 왜 그래?”
“막상 만날 땐 좋은데, 여자가 적극적으로 나오면 무섭다고 합니다. 주변 사례를 보니 부담도 되고… 그냥 헨더슨 형님은 평생 독신으로 살지도 모르겠습니다.”
“나 원, 무슨 여성공포증도 아니고…… 그게 뭔 짓이냐. 여자에 그렇게 묶여 살 필요는 없는데.”
“그러게 말입니다. 안타까운 일이죠.”
느긋하게 이어지던 대화가 끊기고, 두 남자는 짧게 침묵했다. 왠지는 모르겠지만, 마지막 대화가 미묘하게 서로의 심금을 울리는 느낌이었다. 잠시 후, 서로의 눈치를 살피던 두 남자는 어색해진 공기를 환기시키기 위해 재차 말문을 열었다.
“나타샤는…….”
“형수님들은…….”
“…….”
“…….”
또 다시 어색하게 내려앉은 침묵. 숨 막히는 공기가 이 불쌍한 공처가들의 어깨를 지그시 짓누르는 것만 같았다. 노구덕은 견딜 수 없이 무거워진 공기를 타파하려는지, 애꿎은 맥주를 큰 동작으로 꿀꺽 들이켰다.
“크으! 두식아, 스, 슬로터는 쓸 만하냐? 개조가 끝났다고 들었는데.”
그가 도마에 올린 것은 와일드팽을 처치하고 얻은 완갑, 슬로터였다. 신기로 받들어지는 샤프슈터 정도는 아니지만, 십존의 일인인 늑대왕이 소싯적에 사용했을 정도로 강력한 위력을 내장한 무구. 또한, 신기와 마찬가지로 주인을 가리는 장비이기도 했다.
그러나 그런 장비일지라도, 대놓고 차고 다니기엔 상당한 부담이었다. 그건 애초에 와일드팽을 죽이고 얻은 전리품이었으니까.
그런 까닭에, 노구덕은 이두식에게 정체가 탄로나지 않도록 슬로터의 개조를 지시했다. 칠을 다시 해서 색을 바꾸고, 아다만티움 판금을 덧대 형태에도 변화를 주는 동시에, 정교한 모조품을 만들어 반대쪽에도 똑같은 완갑을 착용토록 한 것이다. 이 정도만 해도 이두식의 장비가 슬로터라는 것을 알아볼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터였다.
“예…. 아다만티움을 덧댄 것 때문에 조금 둔해진 감은 있지만, 그리 티가 날 정도는 아닙니다. 다만 모조품과 본판의 성능 차이가 너무 커서 조금 불편한 건 있더군요.”
“그거야 어쩔 수 없지. 이런 장비는 쉽게 구할 수 있는 게 아니니까.”
“뭐, 그것만 빼면 상당히 괜찮습니다.”
퍽 만족스럽다는 듯 답하던 이두식은 조심스럽게 잔을 내려놓으며 넌지시 말을 꺼냈다.
“조만간 문수 어르신께 한번 다녀올 생각입니다.”
“…흐음.”
실렌이 죽고난 뒤, 크게 상심한 허문수는 그길로 헌터를 은퇴해, 지금은 아이리스가 운영하고 있는 딕툼의 고아원에서 한적한 삶을 누리고 있었다. 은퇴했다고는 하지만, 노구덕과 임유진을 비롯해 그와 친분이 있는 헌터들은 이따금 그의 거처를 방문해 가끔 얘기를 나누고 돌아오곤 했다.
그런데, 이두식이 이렇게 일부러 말을 꺼내는 걸 보면 허문수에게 다른 용무가 있는 것 같았다.
“…주례를 부탁드릴까 해서요. 더 늦기 전에, 나타샤 누님과 고아원에서 간소하게 식을 치를 생각입니다.”
“허.”
결혼이라. 생각지도 못한 이두식의 말에 짧은 탄식을 내지른 노구덕은 고개를 끄덕이며 이두식의 어깨를 두드려주었다.
“잘 생각했다. 앞으로 바빠지면 그럴 짬도 없을 테니까. 따로 필요한 게 있거든 뭐든지 말해라. 내가 다 알아서 준비해주마.”
“아니요. 그런 건…….”
“쩝, 내가 말을 잘못했군. 나중에 따로 나타샤에게 물어보는 게 낫겠어.”
아무래도 이런 건 남자보다는 여자 쪽이 훨씬 더 잘 아는 법이다. 반쯤 남은 맥주를 마저 들이키고, 자리에서 일어난 노구덕은 여전히 처음 만났을 때와 마찬가지로 순박함이 남아 있는 이두식의 얼굴을 마주하며 한 손을 내밀었다.
“…결혼, 축하한다. 두식아.”
============================ 작품 후기 ============================
여러분의 추천과 코멘은 작가에게 큰 힘이 됩니다!
순회공연 세번째.. 헨더슨과 이두식.
다음은 아마도.. d모양 쪽이 될 것 같네요.
그리고 가희의 도전은 과연 성공할 수 있을지?
호야[虎夜] / 오타 수정했습니다! 크앙!
불타는고기 / 아니.. 그건 너무 앞서가셨어요 ㅋㅋㅋ
NineBreaker / 강캐는 알겠는데 지강캐는 뭐지요!
누구게?? / 데커드케인… 시온 = 트리스트럼???
쥬얼마스터 / 뜻하지 않게 사망플래그가 선 북왕..
은신설야 / 활의정령에게 거부 당한 가희…
모욕감 / ???? 저는 m이 아닙니다… 지극히 노멀하답니다..
북치네 / 감사. 합니다.. 저녁에 다시 뵐게요!
향향공주 / 가희.. 불우한 어린시절을 보냈지만 알고 보니 금수저였다.. 어? 이거 어디서 많이 보던?
가식적썩소 / 오타 수정했습니다. 감사합니다!
월병인 / 실바나스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언데드가 되는 건 기정사실이네요 ㅎㅎ
벌레 / 요리에 다소 시간이 걸립니다 고갱님
신수[神手] / but… 실패….
모그퐁 / 항상 감사합니다! 저녁때 뵙도록 해요!
트릭스타 / 미래를 내다본 투자! 수익률은 아직 미지수!
smxdmdmd / 칼침을 맞아도 튕겨낸다는게 함정이군요!
김도리131 / 죄송합니다.. 올려드렸어요!
asd메이지 / 행운은 재능중에서도 꽤나 애매한 축에 속하는 재능이니 어떤 식으로 작용할지는 알 수 없지요! 예의 활이 모티브가 된 게 맞습니다 ㅎㅎ 예리하시군요!
코카콜라중독 / 방랑벽이 있으신 분이니 여전히 떠돌 것 같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