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unter Club RAW - chapter (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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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2# 짧은 휴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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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여기저기 많이도 기웃거렸다. 행정부에 걸음을 했다가, 북왕의 처소에 들렀다가, 우연치 않게 술 냄새에 이끌려 방문한 헨더슨의 방에서 술까지 거나하게 얻어먹었다. 그 후로도 아이리스의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던 노구덕이 마지막으로 향한 곳은 데모나의 전용 실험실이었다.
노구덕이 위원이 되고, 아이리스의 클럽 홀이 위원 관사(官舍)를 겸하게 되면서, 원래는 좁은 개인실에서 연구를 진행했던 데모나는 온갖 설비가 설치된 전용 실험실을 가지게 되었다. 좀처럼 모습을 드러내지 않을 뿐이지, 아이리스에서 그녀의 위상은 임유진, 소피아와 더불어 절대적이었으니, 당연히 반발 같은 건 없었다.
그녀의 실험실은 예전 드래고니안의 시체가 안치되어 있던 비밀 안가와 직통으로 연결된 워프게이트가 있어, 공식적으로 허용되지 않는 비밀 연구를 하기에도 편리했다.
가까이만 다가가도 불온한 그림자가 감도는 것 같은 문 앞에 다다른 노구덕은 문고리를 잡고 돌려보았다. 깔끔하게 철컥 소리가 나는 걸 보니 잠겨 있지는 않은 것 같다.
“데모나, 들어간다.”
일방적 통보와 함께 방 안에 들어선 노구덕은 코를 쿡쿡 쑤시는 것만 같은 지독한 약품 냄새에 인상을 썼다.
널찍한 실험실 중앙에는 거품이 보글보글 피어오르고 있는 우윳빛 용액이 담긴 석관이 자리하고 있었다. 불투명한 용액 속에 희끄무레한 인영이 보이는 걸로 봐서, 안에 사람 혹은 사람 크기의 무엇인가가 깊이 담겨져 있는 것 같았다.
“구더기…?”
“어엉…? 오오오! 마침 잘 왔구나!”
주방처럼 만들어진 구석의 시설에서 약초로 보이는 잎사귀를 잘게 빻고 있던 데모나는 문에서 비롯된 인기척에 고개를 돌렸다가, 노구덕의 모습을 보더니 하던 것을 멈추고 몸을 돌렸다. 그러자 노상 화가처럼 얼룩덜룩하게 물든 앞치마가 눈에 들어왔다.
그 옆에는 데모나의 실험체 샘플 겸 애완동물(?)인 브리트라가 입가에 과자 부스러기를 가득 묻힌 채 꾸벅꾸벅 졸고 있었는데, 갑작스런 문 여는 소리에 잠이 깼는지 벌떡 자리에서 일어나서는 쪼르르 그의 앞으로 달려오는 게 보였다.
“이 지옥에서 탈출하고 싶다! 이 몸을 내보내다오!”
보자마자 뜬금없이 애원을 하며 바짓가랑이를 붙잡고 늘어지는 브리트라를 본 노구덕은 머리를 갸우뚱 움직였다.
“뭔 소리야? 누가 여기 묶어두기라도 했냐?”
“묶었잖느냐–! 여길 봐! 여길 보라고!”
빼애애애애액! 발악하듯 소리친 브리트라는 눈물을 글썽이며 자기 목을 가리켰다. 실내가 어두워 눈치채질 못했는데, 자세히 보니 검은 가죽 띠로 만든 개목걸이 같은 것이 그녀의 가는 목에 끼워져 있는 게 보였다.
필시 데모나의 작품일 터. 노구덕은 기가 찬 눈으로 데모나를 쳐다봤다.
“데모나, 이게 뭐냐?”
“귀찮게 자꾸 돌아다니면서 주변을 어지럽히길래. 반경 삼 미터 이상 벗어나지 못하도록 장치를 해 둔 거야.”
“삼 미터…?”
울먹이는 브리트라의 뒤꽁무니에 달린 목줄이 팽팽히 당겨져 있는 걸 보면, 브리트라가 앉아있던 의자와 노구덕이 서 있는 문과의 거리가 삼 미터 정도 인 것 같은데… 문고리가 잡힐 듯 말 듯 애매한 거리를 설정해 놓은 게 과연 우연일까?
…데모나의 독한 성격을 미루어 짐작하건대, 절대 우연일 리 없었다.
“문가에 손톱자국이 좀 있는 것 같은데….”
“내가 긁었다. 그런데 아무도 오지 않더구나.”
빨간 물이 든 손가락을 들어 보이며 눈시울을 적시는 브리트라의 꼴을 보니, 버림받은 강아지가 따로 없다.
“데모나의 실험실은 평소에도 좀… 기피대상이거든. 냄새가 나기도 하고.”
“그런 건 됐다. 됐으니… 날 좀 여기서 나가게 해 다오. 배가 너무 고프다.”
브리트라의 애절한 호소를 들은 노구덕은 데모나에게 ‘좀 너무하지 않냐?’는 눈빛을 쏘아 보냈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목줄을 달아놓은 것도 모자라, 손톱에 피멍이 들 정도로 문을 박박 긁어댔다면 대체 어떤 괴롭힘을 당한 것인지 상상이 되질 않았다.
허나 정작 데모나는 무슨 문제가 있냐는 듯 대수롭잖은 표정이었다. 오히려, 그녀는 눈물을 점점이 찍어내는 브리트라를 향해 같잖다는 코웃음을 쳤다.
“흥. 날 탓하기 전에 이 왕뱀이 저지른 짓부터 들어보는 게 어때?”
“모함하지 마라! 내가 무, 무슨 짓을 저질렀단 말이냐! 난 그저 생존본능에 충실했을 뿐이다!”
…갑자기 말을 더듬거리는 게 좀 수상하다.
“생존본능? 하! 내가 안 보는 사이에, 저기에 쌓아둔 허브를 다 먹어치운 게 누구지? 그것도 자그마치 2만 골드어치를.”
데모나가 가리킨 곳. 이 실험실에 자주 들르는 노구덕도 익히 아는 곳이다. 쉽사리 구할 수 없는 귀중한 약재들과 허브들을 쌓아두는 약재창이 도둑이라도 든 것처럼 텅 비어 있었다.
“이 몸이 배가 고파 그깟 풀떼기 좀 먹었기로서니 너무 쩨쩨하게 구는구나! 그럼 애초에 내 식사를 잘 챙겨줬으면 됐지 않았느냐!”
“점심으로 4인분, 저녁 식사로 3인분을 먹은 게 누구지?”
“나, 나는 뱀이란 말이다! 어디 감히 미개한 인간의 잣대로 내 그릇을 재려하느냐!”
…그 그릇이 보통 그런 의미로 사용되는 건가?
대충 상황을 알 것 같았다. 그렇다면 결국 배가 고파서 탈출하기 위해 문을 긁어댔다는 소리다. 기가 찬 나머지 땅이 꺼져라 한숨을 내쉰 노구덕은 옥신각신 다툼을 벌이는 브리트라와 데모나 사이에 끼어들었다.
“됐다, 그만해. 다음부터는 사용인에게 끼니마다 10인분 정도를 가져오라고 하지. 그럼 되겠지?”
“시, 십인 분?”
두 눈이 휘둥그레진 브리트라는 노구덕의 마음이 바뀔세라 급히 고개를 끄덕였다. 동시에 후루룹 군침을 삼키는 걸 보면, 정말 어지간히 배가 고팠던 모양이다.
‘그래도 3인분이면 절대 적은 양이 아닌데…….’
혹시 그녀의 뱃속엔 먹을 걸 흡수하는 아공간이 들어있는 게 아닐까? 데모나도 비슷한 생각을 했는지, 브리트라의 작은 배를 유심히 살피는 그녀의 눈초리에 살벌한 기운이 엿보였다. 어쩌면 브리트라를 해부하거나 뱃속을 갈라 내장기관을 확인해 보고 싶은 걸지도 몰랐다.
노구덕은 정말 데모나가 브리트라를 잡아 수술대에 올리기 전에 서둘러 못을 박았다.
“대신, 당분간 여기서 데모나의 일을 돕는거다. 알겠지?”
“으으으으음… 알겠다. 주인이 그리 말한다면, 어쩔 수 없구나.”
고뇌하는 척 해봤자 입이 헤벌쭉 벌어진 것까지 숨길 순 없다. 노구덕은 기분나쁘게 히죽거리는 브리트라를 곁눈질하며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나름 귀여운 애완동물을 들인 건 좋은데, 밥값이 정말 만만치가 않다.
그래도 브리트라는 제법 쓸모가 많았다. 상당 부분 기억이 소실되었어도, 천 년을 살아온 왕뱀답게 아는 것도 많았고, 무엇보다 시약이나 포션의 성분과 효과를 몇 모금 마시고 기가 막히게 짚어내는 재주가 있었다. 말하자면 아주 유능한 감별사인 셈이었다. 데모나가 굳이 브리트라를 옆에 두는 이유도, 중요연구를 진행하는데 있어 이러한 브리트라의 능력이 꼭 필요했기 때문이었다.
그래, 정말 아주 중요한 연구다. 노구덕은 불투명한 용액이 담긴 석관을 힐끔 바라본 뒤, 넌지시 데모나에게 말을 걸었다.
“데모나, 연구는 좀 어때? 진척 상황을 좀 알고 싶은데.”
“아직까지는 순조로워. 예상치 못한 변수가 없는 한, 늦어도 두 달 안에 마무리를 지을 수 있을 것 같아.”
“그래?”
석관에 가까이 다가선 노구덕은 미약하게 끓고 있는 것 같은 액체를 바라보았다. 내부가 흐릿하게 비치는 탓에 정확한 형체는 보기 어려웠지만, 일반인의 수준을 뛰어넘는 노구덕의 시력은 그 안에 잠들어 있는 매혹적인 여인의 곡선을 선명하게 잡아냈다.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 생동감 넘치는 얼굴빛으로 석관에 잠들어 있는 여인의 정체는, 두말할 필요도 없이 신궁(神弓)이란 별칭으로 대륙을 활보하던 다크엘프의 여왕 클라리스였다.
“신궁 클라리스… 아쉽군. 샤프슈터도 쓸 수 있다면 좋았을 것을.”
“욕심이 많네. 어둠의 존재가 엘프족의 신기를 다룰 수 있을 리 없잖아? 만약 그게 가능하다고 해도 내가 감당하지 못해.”
노구덕은 데모나의 핀잔에 피식 실소를 터뜨렸다. 욕심이 많다라는 말. 최근 들어 자주 듣는 말이었다.
데모나는 클라리스를 언데드로 부활시키고, 권속으로 거두기 위해, 기존의 권속이었던 언데드군단의 통제권을 대부분 포기했다. 본스티드를 탄 듀라한을 포함해서, 망령, 본 골렘, 해골 기사, 해골 병사들… 숫자로만 따져도 수백이 넘는 언데드의 소유권을 포기한 것이다.
마녀회의 사령술로 부리는 망자의 수와 질은 술자가 가진 영력의 크기에 따라 달라지는데, 클라리스를 권속으로 거두는데 필요한 영력의 크기가 그녀가 가진 모든 언데드 군단을 합친 것보다 많았기 때문이다.
이제 그녀에게 남은 권속은 미완성 상태의 본드래곤과 마녀 베로니카뿐이었다.
“그래도 듀라한이나 본 골렘들은 좀 아까운데. 망령 군단도 전쟁에서 요긴히 써 먹을 수 있을지도 모르고….”
“어쩔 수 없어. 양보단 질이니까.”
“하긴, 그렇지.”
데모나의 말에는 뼈가 있었다. 특히, 요즘이기에 더욱 절실히 와 닿는 말이었다. 요새 맞닥뜨린 강한 적들… 예컨대 브리트라와 태양왕을 상대했을 때, 언데드군단이 할 수 있었던 일은 그리 많지 않았다. 심지어 상성상 최악이라 할 수 있는 태양왕 앞에서는 잠시 시간조차 끌지 못할 정도로 무력하기만 했다.
또, 이번 시온에서는 어땠나. 본 드래곤이 아니었다면 자칫 탈출하는 것도 힘들었을 터.
그녀가 드래고니안을 토대로 한 본드래곤에 눈독을 들이고, 제작에 착수한 것도 보다 강한 언데드가 필요하다는 것을 뼈저리게 절감했기 때문이었다. 그나마 만들어낸 본드래곤도 머리만 만들어진 조악한 시제품이라는 걸 고려하면, 십존 클라리스의 유해는 천금, 만금보다 더한 값어치가 있었다.
데모나는 석관 옆에 튀어나온 의자에 느긋이 앉아, 가녀린 등을 석관에 기대어 그 차가운 표면을 조심스럽게 보듬었다. 그 광경이 꼭 부푼 배를 어루만지며 곧 태어날 아이를 기대하는 산모 같다면, 지나친 비약일까?
“생전보다 강하진 않을 거야. 무기도 잃어버렸고, 엘프로서 지녔던 특성도 모두 사라졌을 테니까. 하지만 그래도… 내 언데드 군단을 통째로 잡아먹은 값어치는 해주겠지.”
“그런데… 되살아난 그녀가 자아(自我)도 유지하고 있을까?”
“물론. 과정에 문제가 없다면, 기억이나 이성은 그대로 유지하고 있을 거야.”
“십존의 프라이드가 있을 텐데, 고분고분 우릴 도와줄지 조금 걱정이군.”
“나와 혼의 계약을 맺는 이상, 십존이 아니라 십존 할애비라도 내 명령을 거부하진 못해. 그리고… 본인도 복수를 원할 테니까. 도와주지 않을 이유는 없지. 다른 거라면 몰라도.”
“다른 것?”
“예를 들어… 네 딸의 지도 같은 허튼 짓거리 말이야.”
“…….”
속내를 들켜버린 노구덕은 절로 뜨끔해져서는 입을 다물었다. 임가희의 지도까지는 아니더라도, 샤프슈터의 전승 의식에 대해 구체적으로 물어볼 생각 정도는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같은 길을 걸어 간 유경험자의 조언은 무엇보다 훌륭한 도움이 될 테니까. 하지만 데모나의 말을 들어보면, 자아를 되찾은 그녀가 순순히 협조해 줄지는 미지수였다.
아깝다는 듯 입맛을 다신 노구덕은 지나가는 투로 물었다.
“이대로 그녀가 되살아난다면… 종류가 뭐지? 좀비?”
질문을 받은 데모나는 살짝 어이가 없는 얼굴이 되었다가, 이내 한심스럽다는 듯 혀를 찼다.
“뇌에 구멍이라도 뚫렸어? 이 귀한 실험체를 내가 고작 좀비 따위로 되살릴 것 같아? 이건 스펙터(Spectre)야. 그것도 마녀회 비전의, 엘프의 시체를 위한 특별 버전이지. 굳이 이름을 붙인다면…… 그래, 유령여왕(Spectral queen) 정도가 좋겠네.”
…라고, 장난스럽게 말하는 데모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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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의 추천과 코멘은 작가에게 큰 힘이 됩니다!
아마.. 아마도… 이 다음화는..누군가와의.. 혹은 누군가들과의… 푹찍이 될 것 같습니다.
가게가 바쁜 관계로 리리플 달아드리지 못해 죄송합니다 ㅠㅠ
내일은 제 컨디션이 좋으면 3연참까지도 달려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비축분이 좀 있어서요! 하하.. 비축분이 모이면 다 써버리는게 인지상정 아닌가요?
독자님들! 제게 힘을 주세요!
좋은 밤 보내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