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unter Club RAW - chapter (41)
0041 / 0777 ———————————————-
10# 클래스를 얻다
히드라의 핵은 데모나의 몫을 제외하고 멤버들에게 정확히 사등분 되어 분배되었다. 사등분인 이유는 임유진이 딸아이를 구한 것으로 만족한다며 자기 몫을 포기했기 때문이었다. 데모나가 노구덕의 몫으로 따로 떼 간 손톱크기의 핵 역시 마땅한 치유에 쓰였다는 이유로 분배에서 제외되었다.
통상적으로 카름의 핵은 오염된 카르마가 깃들어 있기에, 그대로 사용하면 커다란 부작용이 뒤따른다. 다행히 아이리스에는 임유진과 데모나가 있었다. 히드라의 핵은 임유진이 가진 불의 기운으로 정화되고, 데모나의 주술적 처리까지 가미되어, 헌터가 복용하기에 최적의 상태로 일행에게 전달되었다.
노구덕의 심장에 자리한 핵은 그러한 사정으로 새로 분배받고, 복용한 것이었다. 차이가 있다면 다른 멤버들의 것은 핵의 성질 중 ‘마력’을 끌어올리는 데 중점을 두고 가공한 반면, 그가 받은 것은 히드라 본연의 성질인 ‘재생력’을 극대화시켰다는 것이었다.
어두운 지하 연무장 안, 비릿한 피 냄새가 감도는 그곳에서는 훈련에 매진하는 두 남녀의 신음이 한창이었다.
“흐읍! 흐으읍!”
“하아…….”
“흐그으으으읏!”
“하아아…….”
“흐으……. 이런 젠장! 왜 자꾸 옆에서 훼방을 놔?”
참다 참다 못한 노구덕이 성을 내며 데모나를 노려보았다. 가면을 벗어 놓은 데모나는 뭔소리냐는 듯 뚱한 표정을 지었다.
“기가 막히네. 내가 무슨 훼방을 놨다는 거야?”
“안 했냐? 안 했어? 옆에서 자꾸 이상한 숨소리를 내니까 집중이 안 되잖아!”
멀뚱히 두 눈을 깜박이던 데모나는, 이내 매끄러운 이맛살을 찌푸렸다.
“그러니까, 네가 성공 못하는 게 내 탓이다?”
“꼭 그런 말은 아니고…… 네 숨소리가 좀 거슬려서…….”
“겨우 이런 것도 못하는 주제에 유난 떨지 마. 보다가 한심해서 저절로 숨이 넘어온 거니까. 정 신경 쓰이면 성공하면 되잖아? 안 그래?”
말도 안되는 억지였지만, 말꼬리를 잡고 대들어서 얻을 거 하나 없는 상대가 데모나였다. 된서리나 맞지 않으면 다행이지. 그 사실을 수차례의 경험으로 체득한 노구덕은 금세 꼬리를 내렸다.
“어휴, 미안하다. 내가 무능해서……. 이게 유지하는 건 되는데, 급속 재생으로 전환하면 안 되네.”
노구덕의 수련은 사흘째 제자리걸음이었다. 수련을 시작하기 전, 노구덕은 그래도 나름 자신이 있었다. 주술에 대해 아주 문외한도 아니고, 한 달 동안 미리내 농장에서 지내면서 데모나에게 동조술의 기본에 대해 배운 바가 있었으니까. 하지만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그런 얕은 자만심은 유리잔처럼 산산이 부서졌다.
히드라의 핵을 동력으로 삼아 데모나가 팔에 걸어 놓은 주술을 유지하는 것과, 거기서 더 나아가 본연의 힘을 이끌어내는 것은 완전히 다른 문제였다. 그냥 다른 게 아니라 아예 하늘과 땅 차이라고 해도 무방했다.
“흥, 무능한 걸 알긴 아니 다행이네.”
지그시 팔짱을 낀 데모나는 연보랏빛 입술을 살짝 깨물었다. 아무리 노구덕의 재능이 바닥이라 해도, 자신은 완숙한 경지에 이른 주술사였다. 그런데 이리 진전이 없다는 것은 그녀의 자존심과도 직결되는 문제였다.
“암만 봐도 방식에 문제가 있어.”
“방식? 그럴 리가. 네게 배운 대로 했는데…….”
데모나는 날카롭게 치켜 뜬 눈으로 노구덕을 쏘아봤다. 짙은 다크서클이 드리운 눈으로 도끼눈을 뜨니 귀신도 놀랄 정도로 섬뜩했다.
“모르는 소리. 주술은 변화와 응용의 학문이야. 그렇게 머리통이 돌멩이처럼 굳어 있으니, 사흘째 헤매는 것도 무리는 아니지.”
“그렇군. 그럼 다이나믹하고 유연한 뇌를 가진 네 고견을 들려줘.”
“그딴 식으로 비꼬지 마. 한 번만 더 그랬다간 그 쓸모없는 눈깔을 터트려 버릴 테니까.”
“……미안.”
노구덕의 소심한 항거를 살벌하고 무자비하게 진압해버린 데모나는 냉랭한 조소와 함께 자신이 생각한 바를 말해주었다.
“동조술은 주술의 많은 분야 중에서도 ‘상상’이 가장 중요하게 작용하는 분야야. 너도 알다시피 동조술은 모방, 상상, 동조의 3단계로 이루어져. 대상의 행동을 모방하고, 기관의 작용을 상상하고, 자신과 대상을 완전히 일치시킴으로써 동조를 완성하는 거지. 그런데 네 경우에는 이게 좀 힘들어. ‘재생’이라는 특성은 너무 추상적이니까.”
“오오. 역시 그렇지? 난 내가 주술 재능이 없어서 그런 줄 알았다니까.”
없는 게 주술 재능뿐이랴. 노구덕이 가진 재능이라곤 Lv1 근력 재능이 전부였다. 안도하는 노구덕을 본 데모나는 눈살을 있는 대로 찌푸렸다.
“구더기, 그렇게 이름값 한단 소리를 듣고 싶어? 네가 지금 동조술을 익힐 수 있는 건 순전히 히드라의 핵 때문이야. 그게 아니면 턱도 없어. 주술 재능이 조금이나마 있었으면 겨우 동조술 하나 익히는데 그치지 않았겠지.”
데모나의 말대로였다. 노구덕의 현 상태를 비유하자면 텅 빈 컴퓨터에 억지로 운영체제를 깔아 놓은 것과 비슷했다. 하드웨어 사양이 워낙 낮아 지뢰찾기나 핀 볼 정도밖에 못하는 컴퓨터라는 게 문제지만.
그녀의 면박에 움찔한 노구덕은 깊은 한숨을 쉬며 어려움을 토로했다.
“네 말이 맞아. 솔직히 뭘 모방해야 할지도 모르겠고, 상상도 잘 안 돼.”
“근데 왜 안 물어봐?”
“그야…….”
네게 물어보면 퍽이나 알려주겠다. 라고 솔직히 말하기엔 아직 간담이 너무 작았다. 노구덕은 슬그머니 말끝을 흐리다 별안간 좋은 생각이 났는지, 무릎을 탁 쳤다.
“그래! 그거야!”
“또 무슨 쓰잘머리 없는…… 윽!”
반사적으로 노구덕을 타박하던 데모나는, 가까이 다가온 그가 갑자기 어깨를 덥썩 잡고 흔드는 바람에 혀를 살짝 깨물고 말았다.
“좋은 생각이 났다고!”
“……놔.”
“어? 어……. 미안하다. 혀 깨물었어? 많이 아프냐?”
“닥쳐.”
눈물이 핑 도는 얼굴로 노구덕을 잡아먹을 듯 노려본 데모나는 입술을 잘근잘근 짓씹었다. 노구덕은 평소 귀염성 없이 구는 데모나의 좀처럼 보기 힘든 모습에 미안함을 금치 못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웃음이 나올 뻔한 걸 간신히 삼켜야 했다.
“말해봐. 헛소리라면 지금 당장 팔을 자르겠어.”
‘어휴, 독살스럽기는. 저걸 한순간이라도 귀엽다고 생각한 내가 병신이지.’
귀신같이 태세를 전환한 노구덕은 입에 혓바늘이 돋는 것을 느끼며, 주섬주섬 입을 열었다.
“생각해 봤는데, 요는 그거잖아? 모방과 상상이 안 된다는 거. 즉 공감이 안 된다 이거야. 왜냐? 이 속이 어떻게 생겨먹었는지를 모르니까. 그럼 방법은 간단하잖아. 속이 어떤지, 어떻게 되어있는지 공부를 해야지.”
자신의 팔을 툭툭 건드리는 노구덕의 말에, 데모나는 드물게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 입도 쓸모 있는 말을 할 줄 아네. 그저 먹는 데만 쓰는 줄 알았는데. 그럼 네 말은 해부학 지식을 쌓겠단 소리?”
“그 정도로는 어림없어. 하려면 제대로 해야지. 공부만 하는 게 아니라 직접 해부도 해 볼 생각이야. 주변의 도시를 돌면서, 시체를 구하거나 장의사를 찾아가야지. 팔뿐 아니라 몸 전체를 모조리 한 꺼풀 벗겨 봐야 해. 그래야 성공할 수 있어.”
“흐음…….”
데모나는 새삼스런 눈길로 노구덕을 바라보았다. 그냥 이리저리 휩쓸려 다니는 쓸모없는 사내인 줄 알았더니, 할 때는 하는, 꽤 의연한 면도 있지 않은가. 물론 당장 노구덕에 대한 평가가 뒤바뀔 정도는 아니었다.
“좋아. 그런 거라면 마침 내게 해부학 서적이 있으니까 그걸 빌려 가도록 해.”
“오, 그래? 잘됐군. 그런데 그 전에 할 일이 있어.”
“무슨 일?”
“이것 좀…… 붙여주면 안될까?”
노구덕은 얼음상자 안에서 꺼낸 초록색 손가락 2개를 딸랑딸랑 흔들어 보였다.
내세울 거라고는 불알 두 쪽밖에 없는 노구덕의, 그나마 있는 장점이라고 한다면 한번 결정한 일을 불도저처럼 밀어붙이는 추진력이었다. 그는 그 길로 지하 연무장을 나와 굉장히 초췌한 안색으로 이름 모를 책더미에 파묻혀 있는 윤희지와 대면했다. 그녀의 상태가 많이 안 좋아보였던지라, 말 몇 마디를 끝으로 게 눈 감추듯 인출 허가를 받고는 은행에서 상당한 금액을 인출했다.
“시체를 찾는 거라면 치안이 좋은 대도시보다는 이곳 같은 변경 도시가 좋을 거예요.”
임유진의 조언에 따라 가장 먼저 들린 곳은 크래들타운의 시체 안치소였다. 과연 상당히 넓은 시체 안치소 가장 안쪽에는 연고를 알 수 없거나, 신원미상의 시체들이 여러 구 나뒹굴고 있었다. 장의사들의 말로는, 이런 시체들은 대부분 달리 처리할 방법이 없어 그냥 주기적으로 한데 모아 태워버린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시체를 팔라 하자 대뜸 가격을 후려치는 것이, 시체 장사를 한두 번 해 본 게 아닌 것 같았다. 시체 시세에 밝은 데모나가 옆에 있지 않았다면, 초장부터 꼼짝없이 덤터기를 뒤집어쓸 뻔했다.
“시체 가격을 어떻게 그리 잘 아냐?”
“많이 해 봤으니까.”
간결한 대답에, 노구덕은 두 번 묻지 않고 납득해버렸다.
크래들타운 외에도 도시 하나를 더 돌아 죽은 지 얼마 되지 않은 성인 남성의 시체 5구를 확보한 두 사람은 곧바로 해부작업에 착수했다. 노구덕은 해부 밑준비를 위해 다섯 구의 시체를 박박 문질러 닦고, 체모를 깎느라 진땀을 뺐다. 해부 분야에 조예가 깊은 데모나는 다리를 꼬고 앉아서 여러 가지 조언을 해주었다.
“서적은 그냥 참고용으로만 쓰도록 해. 네가 전문적인 지식이 필요한 건 아니니까. 각 기관이 어떻게 작용하는지 정도만 알고, 상상할 수만 있으면 된 거야.”
“앞의 3구는 연습용이고, 뒤의 2구는 표본을 만들 거야. 하나는 피부껍질만 벗겨 놓고, 다른 하나는 근육까지 드러내자. 아, 연습용 한 구는 뼈가 상하지 않도록 조심히 다루도록 해. 그건 골격 표본을 만들 거니까.”
“앞서 2구는 팔다리부터 시작하도록 해. 세 번째 시체는 등부터 피부를 벗길 거야.”
“칼을 쓸 때는 너무 힘을 주지 않도록. 그래, 그렇게.”
노구덕은 데모나의 지시에 따라 열심히 손칼을 놀렸다. 데모나가 매일 정성껏 관리한 손칼은 놀랍도록 예리해서, 마치 날이 닿기도 전에 피부를 갈라버리는 것 같았다.
‘휴, 아주 못할 정도는 아니네. 비위가 좀 상하긴 해도…….’
이것도 연륜의 힘이란 것일까. 살갗을 가르고 푹푹 들어박히는 칼날의 감촉이 찌르르 손끝을 타고 전해지는데도 별 거부감이 들지 않았다. 구슬땀을 흘리며 해부 작업을 진행하던 겨우 팔 하나의 피부를 벗겨 놓은 뒤, 저릿한 팔을 들어 이마를 훔쳤다. 그는 문득 어렸을 적 학교에서 개구리 해부 실습을 했던 기억을 떠올렸다.
‘그래. 이건 개구리다. 편하게 생각하자.’
마음 한편에서 슬며시 머리를 쳐드는 복잡한 감정을 애써 덮어버린 노구덕은 가죽을 벗겨 낸 시체의 팔에서 피하지방을 제거했다. 피하지방층을 드러내자 얇은 막에 감싸인 각종 근육이 드러났다.
“잠깐. 거기가 중요해. 신경, 혈관이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 눈에 똑똑히 새겨둬.”
데모나의 조언이 아니더라도 그럴 생각이었다. 노구덕은 어느 때보다 신중한 눈으로, 근육을 구성하는 근섬유 하나하나까지 파헤치겠다는 각오로 조심스럽게 살덩어리를 들춰냈다. 근육을 들추자 그 안에 따닥따닥 다발적으로 붙어 있는 붉고 푸른 혈관들이 보였다. 그렇게 마지막 신경다발까지 들춰내고 속에 묻혀 있던 허연 뼈까지 확인하고 나서야, 겨우 팔 한쪽의 작업을 마칠 수 있었다.
그는 뻐근한 허리를 두드리며 길게 숨을 내쉬었다.
“으라차! 어이구, 허리야. 이거 생각보다 힘든데.”
“그래도 처음치고는 잘한 편이야. 어쩌면 해부에 재능이 있을지도 모르겠네. ‘전투’와 관련된 것이 아니라 확인할 수는 없겠지만. …뭐야? 왜 그런 눈으로 봐?”
노구덕은 가늘게 뜬 눈을 급히 원상태로 되돌리며 얼버무렸다.
“아냐. 네가 웬일로 칭찬을 하나 싶어서…….”
“흥. 내 전문 분야에서 거짓말을 할 것 같아? 농땡이 피우지 말고 어서 마저 끝내.”
“아, 알았어.”
왠지 더 파고들면 안될 것 같아, 노구덕은 허겁지겁 바닥에 내려놓은 손칼과 가위를 주웠다. 이제 겨우 팔 하나를 끝냈을 뿐, 시체는 아직 네 구나 남아있었다.
============================ 작품 후기 ============================
어제 란에 올린 글을 보셨는지 모르겠네요. 현재까지 나온 용어들에 대한 설명은 작품 설정란에 올려두었으니 참고해주시기 바랍니다.
클래스 파트는 오늘 내로 끝낼 생각입니다. 오늘 내, 늦으면 새벽 내로 다음화 올려 마무리짓도록 하겠습니다.
올리고당내리고당 / 2번이나 굿을 ㅎㅎ 감사합니다
삼국전기 / 완결까지 오래 걸릴텐데… 넙죽넙죽
하늘에서 오는비 / 여력이 남아있는한 멈추지 않습니다 쿠폰 감사합니다 (_ _
장마와방 / 허허 괴랄이라뇨.. 제게 부담을 주시는군요
티렌 / 거창한 클래스는 아닐 겁니다..
겨우니 / 와.. 조아라 외적인 곳에 추천글이 올라가다니 몸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가서 댓글 하나하나 보고 왔습니다. 추천글 써주신 분도 그렇고 관심가지고 댓글 달아주신분들 모두 감사드립니다.
doskyob / 곧 보여드리겠습니다 ㅎㅎ
雨雲香 / 화이팅 감사합니다!
빙뢰(氷雷) / 소율이는 많이 커야죠.. 이쪽도 커야되고.. 저쪽도 커야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