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unter Club RAW - chapter (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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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4# 깊은 어둠
우우웅…!
이제는 이오도 확실히 느낄 수 있었다. 테이블 위에 놓인 다기가 지진이라도 일어날 것처럼 잘게 떨리며 달그락거리는 소리를 내고 있었다. 램프 위에서 타오르는 불꽃이 금방이라도 꺼질 듯 위태롭게 일렁였다.
원인은 위층에서부터 내려오는 막대한 기파(氣波). 천라지망으로 펼쳐진 무형의 압력이 서서히 두 여인의 숨통을 옥죄어 오고 있었다.
뚜벅. 뚜벅. 뚜벅.
막 문을 열어 밖으로 나서려던 아가레스트의 행동이 멈추고, 그 뒤편에 서 있던 이오의 목구멍으로 마른 침이 넘어갔다.
고요한 가운데 홀로 가까워지는 인기척. 묵직한 발걸음 소리로 가늠하건대, 적은 하나였다.
점차 발소리가 가까워지고 있는 가운데, 이오는 이 말도 안 되는데 상황에 아연히 고개를 흔들었다.
“어떻게 이 안가를…….”
“…제가 뒤를 밟힌 것 같군요.”
“……!”
그건 더 말이 되지 않는다. 아가레스트가 누구인가? ‘안개여왕’으로 불리며, 대륙의 그 누구도 그녀의 진면목을 본 자가 없다는, 모든 것이 수수께끼에 가려진 여인이었다. 그만큼 변장과 기만, 속임수에 능통하고, 환상과 예지 능력까지 갖춘 재녀였다. 더군다나 오라클의 총수로서 항상 빈틈없이 행동하는 그녀가 뒤를 밟힌다니. 이오의 상식으로는 절대 있을 수 없는 얘기였다.
그러나 침통한 아가레스트의 얼굴을 보면, 그것이 거짓인 것 같지는 않다. 이런 형편에 그녀가 없는 말을 꾸며낼 리도 없으니…….
‘저, 정말 아가레스트 언니가 뒤를 밟혔다고…?’
정말로 그렇다면… 어쩌면 최악의 사태를 상정해야 할지도 모른다. 이오는 천천히 팔을 테이블 아래로 집어넣었다. 떨리는 손마디 끝에, 뭉툭하게 튀어나온 딱딱한 돌기가 만져졌다. 여차하면, 이 비상스위치를 눌러 이곳을 봉쇄하고 최후의 탈출을 도모할 속셈이었다.
얼음 조각상처럼 굳어진 아가레스트는 여전히 일생일대의 적이라도 만난 것처럼 낡아빠진 문짝을 무섭게 노려보고 있었다. 정확히는 그 문 너머의, 질식할 것 같은 기세로 그녀를 압박하는 미지의 존재를 향해서였다.
그러는 동안에도 정체불명의 인기척은 점점 가까워지고 있었다.
두꺼운 군홧발로 내는 듯한 울림이 차가운 밀물처럼 두 여인의 심장어림에 스며들었다. 소리가 가까워질수록 긴장한 심장은 쿵쿵거리며 튀어 오르는 반면, 체내에 흐르는 피는 냉랭한 얼음물에 닿은 것처럼 차갑게 식어가는 느낌이었다.
이윽고, 위에서 아래로 이어지던 인기척이 뚝하고 멎었다. 지하로 이어진 계단을 내려와, 마침내 비밀 안가가 있는 복도에 다다른 듯했다. 비밀 안가의 위치는 복도의 입구에서 두 번째로 보이는 문. 거리로 따지면 불과 십여 미터 정도 밖에 되지 않는다.
문손잡이를 잡고 우두커니 서 있던 아가레스트의 손에 점점 힘이 들어갔다. 여기까지 찾아온 상대가 안가의 위치를 모른다는 건 말이 되지 않는다. 싸움은 피할 수 없는 수순이었다.
‘이오를 휘말리게 해서는 안 돼.’
결심을 굳힌 그녀가 막 손잡이를 돌리려는 찰나, 뜻밖의 부름이 복도의 적막을 깨뜨렸다.
“레르고.”
“…….”
얼핏 듣기엔 맑고 청아하면서도, 어딘지 모르게 요망하다는 느낌이 드는 가느다란 목소리. 그 목소리를 들은 아가레스트의 눈꺼풀이 이슬이 내려앉은 꽃잎처럼 파르르 떨려왔다.
비로소, 상대의 정체를 알아차린 것이다.
“언제까지 손님을 세워둘 생각입니까? 내가 그쪽으로 찾아갈까요?”
“…후웁.”
길게 심호흡을 한 아가레스트는 천천히 문을 열었다. 동시에, 그녀는 복도의 저편을 음울하고 새까만 어둠으로 물들이는 젊은 남자를 볼 수 있었다.
지워지지 않을 것 같은 어둠 속에서, 푸른 핏줄이 비칠 듯한 창백한 얼굴만이 덩그러니 홀로 떠 있다. 목 아래의 형체는 심연에 녹아든 양 흐릿하기만 하여, 그녀의 뛰어난 안력으로도 명확히 실체를 파악할 수 없었다.
아가레스트는 참고 참았던 숨을 나직하게 토해냈다. 현명함을 품은 황금빛 시선이 귀신처럼 입꼬리를 말아 올린 사내를 조용히 응시했다.
“…발레기우스.”
흡혈왕 발레기우스. 수백 년을 가장 어두운 칠흑 속에서 살아온, 괴물이라는 말로도 수식하기에 모자란 불가사의한 흡혈귀. 이 자리에서 가장 만나고 싶지 않았던 상대가 나타난 것이다.
발레기우스는 입꼬리를 미묘하게 틀어 올리며 요사스러운 미소를 지어보였다. 명백한 사내임에도 불구하고, 단장한 미녀에게서나 풍길 법한 요염함이 정신을 아찔하게 어지럽힌다.
“낭만 없는 재회로군요. 무어라 불러드리면 되겠습니까? 레르고? 아가레스트?”
“…피차 말은 필요 없을 것 같군요.”
“너무 서두르지 마십시오. 어차피 결말은 정해져 있으니, 지금은 다소곳하게 회포라도 푸는 게 어떻습니까?”
아가레스트는 아랫입술을 지그시 깨물었다. 당대의 십존을 앞에 두고도 저리 오만한 태도라니. 그러나 그 대상이 다른 누구도 아닌 발레기우스였기에, 그녀는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그의 강함은 상궤를 벗어난 것. 그는 여타 십존들과는 차원이 다른 괴물이었다.
“레르고…. 당신은 남부 지구에서 약 6년 간… 눈에 띄는 실적을 쌓아올리며 남부 미개척지대 주둔지의 핵심 간부로 부상했습니다. 태양왕과의 연계, 병력의 모집… 당신을 동부로 불러들인 것도 그 공로를 인정했기 때문이지요. 그런데, 일 개 군단을 이끌어 주리라 기대했던 당신의 정체가 그 무시무시한 오라클의 총수님이라니. 뒤통수가 까진 것처럼 얼얼하군요.”
“뒤통수라고 할 것 까지야 있나요. 처음부터 당신들의 편이 아니었으니, 새삼 서운해 할 필요도 없을 텐데요.”
“하긴, 간첩이란 원래 그런 것이니까요. 당신의 정체를 알았을 땐, 솔직히 조금 놀랐습니다. 설마하니 팔콘의 금지옥엽이 이토록 오랜 시간 동안 간자로서 활동할 줄, 누가 짐작이나 하겠습니까.
“…어떻게 알아차린 거죠?”
요사스런 미소를 지은 발레기우스는 그대로 한 걸음 앞으로 발을 내딛었다. 그러자 어두침침하게 드리워져 있던 그늘의 장막 일부가 걷혀나가며, 칠흑의 코트를 걸친 그의 전신이 드러났다.
언뜻 날개를 감싼 박쥐의 형상처럼 보이는 몰골. 그가 풍기는 위압에 짓눌린 아가레스트는 자기도 모르게 한 걸음 뒤로 물러나려다가, 옆방에 아직 이오가 있다는 것을 깨닫고는 황급히 걸음을 멈춰 세웠다.
“…안에 누가 있는 모양이군요.”
“제 호기심부터 풀어주는 게 어떤가요?”
“후후. 꽤 아끼는 사람인 것 같군요. 그리 어설프게 숨길 필요 없습니다. 어차피 제가 관심이 있는 건 아가레스트, 당신뿐입니다.”
“핫. 별로 달가운 관심은 아니군요.”
발레기우스는 강한 적대심을 발하는 아가레스트를 보며 피식 입매를 터뜨렸다.
“어떻게 당신의 정체를 알아차렸냐고 물었습니까? 죄송하지만 적진에 간자를 심어 놓은 건 당신들 위원회뿐만이 아닙니다. 당장 저만 하더라도… 얼마 전까지는 위원회의 충실한 사냥개였으니까요.”
“…….”
아가레스트는 조용히 입을 닫았다. 반군은 지난 수십 년 간 치밀하게 물밑작업을 해왔다. 그 은밀함과 철두철미함을 감안하면, 그 말대로 위원회의 심처에 끄나풀 한둘 정도 심어놔도 이상할 건 없을 터였다.
“당신… 어떻게 ‘통제’를 벗어난 거죠?”
“너무 날로 드시려 하는군요. 수백 년 간 사냥개로 살아왔다고, 앞으로도 개새끼처럼 살란 법은 없지 않습니까. 그 질문에 대한 답은, 방금 전 드렸던 말로 대신하도록 하겠습니다.”
“아직까지 이해할 수 없군요. 위원회와 누구보다 가까웠던 당신이, 그 단물의 가장 큰 수혜자였던 당신이 우릴 배신하다니… 반군이 내건 기치는, 도무지 제가 아는 당신과 부합하지 않아요. 대체 목적이 뭔가요?”
발레기우스는 매끄러운 턱을 매만지며, 수면 위로 비릿한 웃음을 띄워 올렸다. 그는 아가레스트의 말이 너무나 우스워 참을 수 없다는 듯, 어깨까지 들썩이며 큭큭거리는 소리를 냈다.
“쿡쿡. 조금 깨인 사람이라 여겼더니만… 아가레스트, 당신도 어쩔 수 없는 위원회의 종자로군요.”
“…무슨 소리죠?”
“당신네들은 그래서 안 된다는 겁니다. 멋대로 잣대를 만들어, 뭐든지 그 안에 담아서 재려고 하지요. 오랜 세월 하늘 높은 곳에서 노닐다보니, 정말 신이라도 되는 줄 아는 겁니까? 당신이 아는 ‘나’라니… 그게 뭡니까? 언제까지나 제가 당신의 상냥한 발레기우스 숙부로 남아있을 줄 알았습니까?”
“…….”
“슬프군요. 그 귀엽고 조그마한 소녀가, 자라서는 이렇게 뇌가 굳어버리다니. 정말 슬프기 짝이 없습니다. 당신의 그 어설픈 변장술만큼이나 슬픈 일이에요.”
발레기우스는 비극을 연기하는 배우처럼 과장되게 가슴을 쥐어뜯으며 온몸으로 서글픔을 표현했다. 어찌 보면 우스꽝스럽게 보이는 광경이었지만, 아가레스트는 감히 그를 비웃을 수 없었다. 이어진 그의 다음 말이, 그녀의 심장을 바늘처럼 쿡 찔러왔기 때문이다.
“…이번 반란, 그 시작은 위원회였다는 걸 알고 있습니까?”
“…뭐라고요?”
“입안자는 오베른 가주. 흔히 말하는 ‘물갈이’ 계획의 전형이었습니다. 이레귤러를 통제해, 체제에 반하는 이들을 솎아내는 것만으로는 성에 차지 않았던 거지요. 오베른은 반감을 품은 자들이 홀릴 수밖에 없는 교묘한 미끼를 던져, 밑바닥부터 썩어있던 뿌리를 단번에 일망타진할 계획을 세웠습니다.”
발레기우스는 시시각각 얼굴빛이 변하는 아가레스트의 모습을 즐기기라도 하는 것처럼 느긋하게 말을 이었다.
“반군은 많으면 많을수록 좋습니다. 어차피 다 도려내야 할 환부이니까요. 당신도 알다시피, 위원회는 수만의 반군을 일거에 쓸어버릴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오베른과 위원회는, 이 ‘반란 프로젝트’로 악성 종기를 제거하고, 다시금 세계에 절대적인 존재로 군림하려고 했습니다. 그가 제게 이 계획을 맡기면서 했던 말이 기억에 남는군요.”
“…….”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아야 한다. 번듯한 자루에 썩은 술을 담을 수는 없지 않느냐…. 라고 했던가요. 불쌍한 사람, 썩어버린 건 정작 술이 아니라 자루인 걸 깨닫지 못하다니…. 그리 아둔한 사람이니, 그렇게 죽어버린 것일 테지만요.”
그 말이 사실이라면, 그야말로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긴 격이다. 아니, 생선 가게 주인까지 물어 죽여버렸으니, 고양이가 아니라 호랑이라 해야 하나.
일순 눈앞이 아득히 멀어질 만큼 충격적인 진실이었지만, 아가레스트는 필요 이상으로 동요하지 않았다. 지금은 오라클의 총수인 자신이 그런 뒷사정을 까맣게 모르고 있었다는 것보다도, 이오와 함께 이 자리를 벗어나는 것이 최우선이었다.
‘조금만… 조금만 더…….’
아가레스트는 떠들어대는 데 여념 없는 발레기우스의 눈치를 살피며 천천히 마력을 끌어 모았다. 아무리 괴물 같은 발레기우스라 할지라도, 이토록 근접한 거리에서 그녀의 신기를 정통으로 직격당한다면… 무사하지는 못하리라. 그녀는 그 실낱같은 가능성에 희망을 걸고 있었다.
그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발레기우스는 여전히 한가롭게 입을 놀리고 있는 중이었다.
“위원회가 어떻게 나올지는 뻔히 알고 있습니다. 아직까지 소극적인 대응으로 일관하는 것도, 좀 더 우리가 세를 불리길 기다리는 것이겠죠. 그 후에는… 쾅! 비밀무기를 가동해서 한번에 청소를 하려는 수작일 테고요. 흐음, 당신이 생각해도 너무 진부하지 않습니까?”
“당신….”
“하지만 이걸 어쩌지요? 당신들이 철썩 같이 믿고 있는 비밀병기는 이미 제 손에 떨어졌는데.”
기습을 준비하던 아가레스트의 신형이 움찔거리며 반응했다.
“무슨?”
“카멜롯(Camelot)… 제가 모를 줄 알았습니까?”
쿵쾅거리던 아가레스트의 심장이 땅에 추락할듯이 철렁 내려앉았다. ‘천리안(千里眼)’을 사용하느라 항시 반개하고 있던 눈이 활짝 뜨여질 만큼, 그녀가 받은 심적 충격은 어마어마했다.
‘카멜롯… 카멜롯의 비밀이 파헤쳐지다니…!’
하지만 경악하고 있을 틈은 없었다. 대륙에서 최고로 꼽히는 지성답게, 단시간에 평정심을 되찾은 아가레스트는 마왕처럼 우뚝 서 있는 암흑의 존재를 향해, 전력으로 끌어 모은 신기의 힘을 방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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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의 추천과 코멘은 작가에게 큰 힘이 됩니다!
본격적인 설 연휴의 시작이네요. 저도 오늘부터 연휴 기간 동안 상당히 바쁠 것 같습니다. 일단 오늘은 한편이 한계일 것 같네요. 시골에 내려가야 하는데, 차가 밀리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만.. 아마도 꿈이겠죠 ㅠㅠ
리그 설정 / 세희 세영이 저널은 일요일쯤에 올려드릴 예정입니다만… 일이 바쁘면 하루 정도 밀릴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양해부탁드립니다…
한 10분 전에 출발했어야 했는데 이거 올리느라 잠시 지체했네요. 시간상 리리플은 힘들 것 같습니다..
오늘도 좋은 하루 보내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