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unter Club RAW - chapter (4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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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9# 뜻하지 않은 기쁨
109# 뜻하지 않은 기쁨
에덴 공방전은 당초 예상대로 연합군의 승리로 끝났다. 위원회는 이 전투에서 동부의 주도인 에덴을 탈환했을 뿐만 아니라, 약 2천에 이르는 반군을 죽이고 수백여 명의 전쟁 포로를 생포하는데 성공했다.
그러나 정작 적의 수뇌부를 단 한 명도 죽이거나 생포하지 못했다는 점을 감안하면, 정작 알맹이가 빠진 승리라고 할 수 있었다.
퀸젤과 도정섭을 사령부에 무사히 인도한 노구덕은 싸움의 명암이 갈리자마자 논공행상을 뒤로하고, 임유진과 함께 급히 아이리스로 복귀했다. 지금 그에게 있어 중요한 건 이따위 시답잖은 전쟁이 아니었다.
그러나, 막상 부리나케 달려와 도착한 아이리스 클럽 홀은 생각보다 무척 한산했다.
“위원님, 오셨습니까.”
“오너! 무사히 돌아오셨군요! 전쟁은 어떻게 됐습니까?”
반갑게 맞아주는 사용인들과 헌터들에게 승전 소식을 전해다 준 노구덕은 그 길로 곧장 데모나의 방으로 향했다. 물론 임유진도 함께였다.
이미 노구덕과 임유진이 복귀했다는 사실을 전해들은 것인지, 굳게 닫혀 있는 데모나의 방문 앞에는 소피아와 신소율, 임가희가 마중을 나와 있었다. 아무래도 사안이 사안이다보니, 일부러 소식을 널리 알리지 않고 가족들만 모이기로 한 모양이었다.
“아빠!”
매일 같이 듣던 ‘아빠’ 소린데, 오늘따라 유난히 특별하게 들리는 것은 단지 기분 탓이 아닐 터. 품에 안겨드는 임가희의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어 준 노구덕은 왠지 모르게 분한 기색이 역력한 소피아와, 싱글싱글 웃고 있는 신소율을 바라보았다.
“아저씨, 진짜 아빠가 됐네요. 축하해요.”
“으, 으으… 왜, 왜 나느으으은……!”
담담하게 축하를 하는 신소율과는 달리, 입술을 잘근잘근 짓씹으며 울분을 삼키는 소피아. 어째 두 사람의 역할이 바뀐 것 같다는 느낌이 드는 것은 착각일까?
“진짜 아빠라니… 괜한 말 하지 마라.”
“맞아! 소율이 언니는 참! 아빠는 그전에도 우리 아빠였는데!”
“응. 그렇지. 내가 괜한 말을 했네. 요 입이 방정이다.”
발을 구르며 오두방정을 떠는 임가희와 머쓱하게 볼을 긁적이며 무안해하는 신소율을 보고 있던 임유진은 왠지 모를 한숨을 내쉬었다. 애써 아무렇지도 않은 듯 평정을 가장하고 있었지만, 이곳까지 오는 내내 어딘가 체한 것처럼 속이 불편했다.
‘나도 참 못됐구나. 데모나, 그 아이를 축하해주지는 못할망정…….’
그래도, 그래도… 그이의 첫 아이는 내가 가지고 싶었는데. 아무에게도 털어 놓지 못한 그녀의 본심이었다.
“유진이 언니? 많이 피곤해 보이는데요.”
“으응? 아아, 괜찮아. 여독이 덜 풀려서 그런가봐.”
임유진은 소피아의 걱정스런 시선에 별일 아니라는 듯 가볍게 웃어 보였다. 사실, 에덴의 일이 정리되자마자 아이리스에서 날아온 급보에 곧바로 노구덕과 함께 복귀한 그녀는 전투의 피로가 상당히 쌓여 있는 몸이었다.
‘차라리 소피아처럼 솔직하게 분해할 수 있었더라면……. 하아… 유진아. 제발 정신 차리자.’
자꾸만 여러 잡념이 머릿속을 어지럽게 헤집자, 크게 도리질을 한 임유진은 여전히 염려를 거두지 못하는 소피아를 보며 화제를 돌렸다.
“그런데 소피아, 그게 정말이니? 해금도 하지 않았는데 임신이라니…….”
“맥을 짚어 봤는데 거의 확실한 것 같아요. 세희도 동의했고요.”
소피아도 그렇고, 사제인 안세희가 보증했다면 틀림없을 것이다. 아니, 다른 건 다 제쳐두고라도, 산모가 그 데모나다. 의술과 인체에 누구보다 조예가 깊은 데다, 영력이 대단한 주술사이기도 한 그녀가 스스로의 몸 상태를 착각할 리 없지 않은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구덕과 임유진이 데모나의 임신 사실을 쉬이 믿지 못한 것은, 헌터들에게 걸려 있는 불임이라는 제약 때문이었다.
여성 헌터들은 오직 같은 헌터인 남성의 정자로만 임신할 수 있고, 남성 헌터들은 ‘해금’이란 의식을 거치지 않으면 제대로 여성을 수정시킬 수 없다. 이는 무분별한 저널의 확산… 정확히는, 혈족으로 이루어진 세력의 등장을 막기 위해 위원회에서 헌터들에게 걸어 놓은 일종의 통제 장치였다.
이는 연맹위원인 노구덕이라고 예외는 아니었다. 게다가 지금 전시 상황. 자식을 낳고 싶은 마음은 굴뚝 같았지만, 지금은 아이를 키우기에 적합한 시기가 아니다. 본래 노구덕은 최소한 전쟁이 어느 정도 마무리된 이후에나 자식을 가질 생각이었다.
그런데 뜬금없이 데모나가 임신을 하다니…. 마른 하늘에 날벼락을 맞은 기분이 이러할까? 절대 나쁜 기분은 아니었지만, 상식적으로 있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난 마당이니 굉장히 당혹스러웠다.
어떻게 데모나가 임신을 하게 된 것일까? 노구덕과 임유진은 이곳까지 오는 동안 나름대로 그 이유에 대해서 고민했고, 어느 정도 그 인과관계를 유추해 낼 수 있었다.
“…역시 발레기우스, 그 사람이 했던 말과 관계가 있는 걸까?”
“아마도 그렇겠지.”
소피아 역시 고개를 끄덕이며 두 사람의 의견에 동조했다.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시스템의 견고함이 무너졌다는 아주 직접적인 징후죠.”
발레기우스는 최근의 선언에서, 적어도 보름 이내에 헌터들이 진정한 자유의 의미를 알게 되리라고 호언장담을 했다.
위원회와 시스템에 구속되어 있는 헌터들이, 그 모든 속박을 벗어던지고 해방된다. 그 선포를 뒷받침하는 증거로써, 자연적인 임신만큼 파급력 있는 것이 있을까?
…정말로 이것이 발레기우스가 의도한 바라면, 지금까지 위원회에 의해 헛소리로 치부되었던 그의 선포에 큰 신뢰성이 생기게 된다. 이는 반대로 말하면, 지금까지 위원회가 갖은 언론플레이로 간신히 틀어막았던 혼란의 물꼬가 다시금 펑 터져 버린다는 것을 의미했다.
결국, 에덴에서의 승리도 큰 의미를 가지지 못한다는 말이다. 지금 위원회는 당장의 승리에 축배를 들 때가 아니었다.
게다가, 진짜로 헌터들 간의 임신이 제한 없이 가능해졌다면… 오늘 이후로 얼마나 많은 생명들이 탄생하게 될지 도저히 감이 잡히지 않았다.
헌터들의 성생활은 상당히 문란한 편이다. 해금이란 확실한 수단이 있으니, 임신에 대해 아무런 걱정 없이 마구 싸지르는 관계가 대부분이란 말이다.
“아마도 지금쯤이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뱃속에 아이를 품고 있는 헌터들이 못해도 수천은 될 거예요. 그것도 정말 최소한으로 잡았을 때의 얘기고요.”
소피아는 앞으로 초래될 대혼란이 두려운 듯, 작은 어깨를 부르르 떨었다.
“…그런 건 우리가 걱정할 일이 아니지. 소피아, 우린 우리 가족들만 챙기면 되는 거다. 그 이상은 사치에 불과해.”
무심히 대꾸한 노구덕은 고요한 방문 앞에 서서 옷매무새를 가다듬었다. 그리곤 마치 식장에 입장하는 새신랑처럼 긴장된 얼굴로 문고리를 잡았다.
“…그럼 어디, 내 새끼 얼굴 좀 볼까?”
도란도란 얘기를 나누던 여인들이 모두 조용해진 가운데, 느릿하게 심호흡을 한 노구덕은 천천히 문을 열었다. 그러자 정숙한 여인처럼 다소곳하게 열리는 문 틈 사이로, 여느 때와 다를 것 없어 보이는 데모나의 방 안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데모나는 침대에 누워 있지 않았다. 하긴, 밖에서 그렇게 길게 수다를 떨어댔으니 노구덕과 임유진이 왔다는 것도 알아차렸을 것이다.
첨벙 빠져들 것만 같은 칠흑의 머리카락을 곱게 빗어 어깨 아래로 늘어뜨리고, 머리색과 대조되는 하얀 실크로 된 잠옷을 입은 데모나는 침대 귀퉁이에 걸터앉아, 김이 모락모락 피어나는 찻잔을 홀짝이고 있었다.
문고리를 잡은 노구덕의 손에서 슬며시 힘이 빠졌다. 만삭의 임산부를 기대한 것은 아니었지만, 평소와 전혀 다를 게 없는 데모나의 자태를 보니 약간 맥이 빠졌다.
열린 문 사이로, 노구덕과 여인들이 줄줄이 들어오는 것을 힐끔거린 데모나는 작게 한숨을 내쉬며 찻잔을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
“냄새 나.”
“……?”
“귀가 막혔어? 냄새 난다고 했잖아. 좀 씻고 오면 어디가 덧나는 걸까?”
엉뚱한 그녀의 말에 멍하니 서 있던 노구덕은 어색한 미소를 지을 수밖에 없었다. 지금껏 전장에서 계속 구르던 그의 몸엔 옅은 흙먼지가 가득했다. 평소처럼 오크 전용의 향수를 뿌리며 치장할 겨를이 없었다는 말이다. 예의가 없다고 구박을 당해도 할 말이 없었다.
노구덕은 순순히 자기 잘못을 인정했다.
“미안하다. 내가 좀 급했거든.”
“흥.”
막 팔을 벌려 그녀를 끌어안으려다, 슬그머니 두 팔을 내리는 노구덕을 곱게 흘긴 데모나는 보랏빛의 입술을 삐죽이며 말했다.
“내가 먼저야. 아마도.”
“응?”
“나랑 관계를 가진 게 먼저니까, 이 아이가 첫째인 건 당연하잖아?”
무슨 말인가 했더니, 아이 얘기였나 보다. 노구덕은 뭘 새삼스럽게 그런 말을 하느냐는 듯 데모나를 쳐다보았다.
“당연하지. 네 아이 말고 또 누가 있다고….”
“임유진.”
“…뭐?”
“하아… 멍청하긴. 그것도 몰랐던 거야? 난 지금 바로 알았는데.”
노구덕과 소피아, 신소율, 임가희의 입이 일제히 벌어졌다. 데모나에 이어 임유진이 임신을 했다? 생각지도 못한 겹경사가 아닌가.
데모나의 충격적인 폭로에, 한 덩어리로 뒤섞인 네 남녀의 시선이 자연스럽게 임유진의 얼굴로 향했다.
그러나 정작 당사자인 임유진은 전혀 생각지도 못한 말을 들은 것처럼 깊은 패닉에 빠져 있었다.
“내, 내가 임신…?”
데모나는 망연하게 중얼거리는 임유진을 보며 한심하다는 듯 혀를 찼다.
“둔탱이가 따로 없네. 구더기와 오래 붙어 있었더니 바보병이 옮기라도 한 거야?”
“화, 확실히 요즘 입맛이 떨어지긴 했지만……. 그래도 설마…….”
임유진의 고개가 천천히 아래로 떨어졌다. 그러고 보면 처음 임가희를 뱄을 때에도 초기에 비슷한 증상을 보이기는 했었다. 그런데도 임신이란 생각을 하지 못한 것은, 해금을 하지 않은 노구덕과의 관계에서 수정이 일어나리란 생각 자체를 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반면, 노구덕은 크게 한 방 얻어맞은 표정으로 잘게 떨리는 임유진의 어깨를 감쌌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하더라도 그녀는 큰 전투를 치르지 않았던가? 만약 그녀가 잘못되기라도 했다면… 생각만으로도 눈앞이 아찔했다.
불현듯, 얼마 전 입맛이 없다며 식사를 걸렀다는 그녀의 말이 뇌리를 스쳐지나갔다. 이만큼 나이를 먹고서도 아내의 그런 신호(?)를 눈치 채지 못했다니. 노구덕은 스스로의 둔감함에 넌더리가 날 지경이었다.
“유, 유진아…….”
“여보….”
노구덕의 품에 얼굴을 묻은 임유진은 어깨를 들썩이며 흐느끼기 시작했다. 왠지는 모르겠지만, 갑자기 눈물이 넘치도록 흘러 도저히 멈출 수가 없었다.
“와아아! 언니! 축하해요!”
“으우… 유진이 언니까지… 정말 축하드려요…….”
신소율의 사심 없는 축하 인사에 이어, 소피아의 물미역처럼 흐느적거리는 목소리가 그 뒤를 이었다. 그리고 임가희는 동생이 생겼다는 말이 실감이 나지 않는지, 우두커니 서서 눈을 깜박이다가 갑자기 격한 환호성을 지르며 임유진의 허리를 껴안았다.
“엄마! 나, 나… 동생이 생긴 거야? 여동생일까? 아니면 남동생?”
“가희야. 그, 그건 아직 모르는 거니까….”
노구덕은 살포시 얼굴을 붉히는 임유진과 임가희를 동시에 끌어안으며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딸이면 어떻고, 아들이면 어떠냐. 동생이 생겼다는 게 중요하지. 그렇지, 가희야?”
“응!”
“흥. 내 아이는 무조건 아들이어야 해.”
뒤에서 데모나가 작게 혼잣말하는 소리가 들려왔지만, 노구덕은 별로 개의치 않았다. 그는 정말로 아들이든 딸이든 상관없다는 마음가짐이었다. 성별이야 어찌 됐든 임유진과 데모나가 낳은 아이들이라면,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그의 자식들이 아닌가.
‘이왕이면 나보다는 엄마들 쪽을 닮았으면 좋겠는데. 음, 그럼 딸 쪽이 좋으려나.’
임유진과 데모나를 꼭 빼닮은 딸아이들이 아장아장 걸음마를 하는 광경이라.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절로 흐뭇한 미소가 만들어졌다.
============================ 작품 후기 ============================
여러분의 추천과 코멘은 작가에게 큰 힘이 됩니다!
독자님들의 성원에 감명을 받아 오늘도 아침에 투척을 합니다… 데모나에 이어 유진이까지 임신. 꽤 최근에 던져진 떡밥이었는데, 코멘 달아주신 분 중에 한 분 눈치를 채신 분이 있어서 뜨끔했었습니다. 하하..
오늘도 역시 마지막화를 기준으로 리리플을 달도록 하겠습니다. 그 전화 코멘들 모두 감사히 읽었고, 그 중에서 몇 개 질문에 답해드리자면
1. 도일 저널을 보고 싶어요.
-> 조만간 본편에서 공개토록 하겠습니다.
2. 구더기 5번째 충왕각인 이름이 아직 등장하지 않았는데요?
-> 늑대왕과의 대결에서 등장할 예정입니다.
3. 늑대왕 언제 조지나요?
-> 과연 조져질지(?)는 모르겠지만.. 구더기가 6개월 안에 늑대왕의 목을 딴다고 말 한 만큼, 그때 아마 일전을 벌이겠죠?
4. 인간적으로 앞으로 태어날 아이는 오크 말고 인간으로 해주세요
-> 음… 사실 유진이와 데모나의 아이는 성별은 물론이고 종족도 이미 시나리오 속에 정해져 있습니다. 어떤 종족으로 나오게 될 지는 낳아 보면 알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