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unter Club RAW - chapter (4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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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9# 뜻하지 않은 기쁨
노구덕은 숙연히 고개를 숙인 임유진과 데모나를 돌아보며 잔소리를 마무리 지었다.
“좌우지간 너희들은 쓸데없는 생각 말고 몸조리나 신경 써. 두 사람은 앞으로도 탐사와 전장에서 배제할 테니까.”
“네? 하지만 전쟁이 한창인데…….”
“전쟁이고 뭐고 내게는 너희들이 가장 중요해. 위원회 쪽에는 내가 알아서 사정을 설명할 거다. 애초에 무리한 참전 요구에는 응하지 않기로 한 조항을 넣어둔 데다, 전쟁도… 지금 이런 상황에서 제대로 지속할 수 있을 리 없지.”
“하긴… 그렇겠네요…….”
구체적인 수치는 알 수 없지만, 아마도 상당수 헌터들이 의도치 않게 부모가 된 상황이다. 이런 마당에 위험한 전쟁을 무리하게 속행할 수 있을 리 없었다. 전투가 일어나도 소규모 집단이 부딪치는 국지전 정도가 전부일 터.
반군 측의 사정은 알 수 없으나, 일단 연합군 쪽의 사정은 노구덕의 예상대로 흘러갈 가능성이 높았다.
“데모나, 너도…….”
“헛소리. 내가 쉬면 네 약은 누가 완성시키지?”
“시제품은 확보했다고 했잖아?”
“똑같은 말 반복하게 하지 마. 그건 어디까지나 시제품일 뿐이라고 말했잖아? 그리고 스펙터의 완성도 얼마 남지 않았어.”
“으음…….”
노구덕은 데모나의 야무진 말에 무어라 대답할 할 수가 없었다. 마음 같아서야 당연히 그녀도 푹 쉬게 배려해주고 싶었지만, 데모나의 말이 어디 하나 틀린 구석이 없었기 때문이다.
늑대왕을 상대할 비전의 ‘약’과 신궁 클라리스의 사체를 이용한 유령여왕의 완성. 데모나가 담당하고 있는 이 두 가지 작업은 그녀가 아니면 다른 누구도 진행할 수 없는 일이었다.
물론, 이는 임유진처럼 전장에서 몸을 쓰는 격한 활동은 아니다. 하지만 데모나가 한번 일에 몰두하기 시작하면 좀처럼 자기 몸을 돌보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는 노구덕은 걱정이 될 수밖에 없었다. 얼마 전에도 과로로 쓰러진 그녀가 아니던가.
“…다른 건 몰라도, 그 약은 반드시 기일 내에 완성시켜야 해. 이 아이를 유복자로 만들 순 없으니까.”
“…쯧. 그냥 말이라도 괜한 소릴.”
쯔쯔 혀를 찬 노구덕은 데모나의 흑단 같은 머릿결을 부드럽게 어루만졌다.
“…그래도 너무 무리하지는 마라. 넌 이제 홑몸이 아니야. 네 몸의 아이를 생각해.”
“나도 알아. 네가 걱정할 필요는 없어. 내가 알아서 할 테니까.”
야멸차게 대꾸한 데모나는 쌀쌀맞게 콧방귀를 뀌더니, 노구덕을 등진 방향으로 돌아누웠다. 내심 그녀가 아이를 배면 그래도 조금 성질이 유순해지지 않을까 기대했던 노구덕은 옅은 헛웃음을 지었다.
‘역시 데모나는 데모나로군. 산모가 되면 어리광이라도 좀 피울 줄 알았더니.’
허나, 그의 옆에서 데모나를 가만히 지켜보던 임유진은 조금 생각이 다른 것 같았다. 외롭게 돌아 누운 데모나의 등을 물끄러미 바라본 그녀는, 갑자기 노구덕의 배 위로 부드러운 몸을 실었다.
“여보, 잠깐만 실례할게요.”
“으응?”
엉금엉금 노구덕의 몸을 넘어, 데모나의 등 뒤로 위치를 옮긴 임유진은 등 돌린 데모나의 허리를 따스하게 끌어안았다. 그러자 베개를 베고 누운 데모나의 흰 목덜미가 흠칫 잘게 떨리는 것이 보였다.
“…임유진, 무슨 짓이야? 취향이 이쪽이었어?”
“데모나, 아까는 미안했어. 나도 모르게 그만, 힘이 들어가서…….”
“됐어. 당연한 걸 가지고 사과할 필요 없어. 내 생각은 바뀌지 않았으니까…. 난 양보하지 않아.”
임유진이 무얼 하나 잠자코 지켜보던 노구덕의 눈살이 약간 찌푸려졌다. 모처럼 맏언니인 임유진이 사과를 하는데, 냉랭한 반응을 보이는 데모나. 예상하긴 했지만, 그래도 탐탁찮은 것은 어쩔 수 없다.
“데모나, 너….”
“쉬잇. 당신은 가만히 계세요.”
“어? 음…….”
그녀에게 또 한마디를 하려던 노구덕을 조용히 시킨 임유진은 데모나를 끌어안은 팔에 더욱 힘을 주며 머리맡에 코를 가져다댔다. 꼭 토라져 있는 어린 아이를 포근한 가슴으로 끌어안는 어머니처럼. 그 행동거지 하나하나엔, 사람의 마음에 따뜻하게 스며드는 햇살 같은 모성애가 넘쳐흐르고 있었다.
“데모나, 너무 무서워할 필요 없어.”
“…뭐?”
크게 한숨을 들이켜듯 터져 나온 외마디 소리는 마치 정곡을 찔린 이가 되레 성을 내는 것처럼 격하기 짝이 없었다.
“엄마가 된다는 것 말이야. 나도 처음엔 두렵고, 무서웠어. 내 몸 속에 조그마한 생명이 자라난다는 게… 얼마나 신비로우면서도 벅차던지. 그때는 지금처럼 옆에 있어주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으니까…….”
조용한 가운데서 나긋나긋하게 울리는 임유진의 음성은, 꼬리를 바짝 세운 암고양이 같았던 데모나의 기세를 약간이나마 누그러지게 만들었다.
“나는….”
“데모나… 넌 좋은 엄마가 될 수 있어. 외로움이 뭔지 알고 있으니까. 그리고… 우리 아이들은 좋은 형제, 자매가 될 수 있을 거야. 너와 나처럼, 그리고 우리 가족들처럼.”
“…….”
조금 씩씩거리는 듯하던 데모나의 숨소리가 차츰 희미하게 잦아들었다. 그녀는 그대로 나른하게 잠이 든 것처럼, 한동안 말이 없었다.
생각해 보면, 어두운 숲에서 거의 홀로 자라 온 그녀가 약육강식(弱肉强食), 혹은 야생과도 같은 힘의 논리에 집착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일지도 몰랐다. 그녀의 인생 대부분을 차지했던 것은 야생 속에서의 생존 경쟁이었을 테니까.
여태껏 고집스럽게 맏이를 운운한 것도 결국은 사회라는 이름의 야생에서 자기 아이가 조금이라도 도태되지 않길 바라는 간절한 어미의 마음이었을 터. 일평생을 거의 홀로 살아온 그녀에게는 아직 낯설기만한 우애(友愛)라는 단어보다, 경쟁이라는 단어가 더 가깝게 다가왔을 것이다.
누구보다도 데모나와 친하게 지낸 임유진은 데모나의 쌀쌀맞은 가면 속에 가려진 그 조바심을 놓치지 않고 읽어냈다.
‘그랬군….’
두 사람의 대화에 귀를 기울이고 있던 무능한 남편, 노구덕은 다시 한 번 자성의 시간을 가져야만 했다.
그저 항상 강한 면모를 보이는 데모나였기에, 이번에도 으레 그런 것이라 생각했건만. 실상은 전혀 그게 아니었다. 오히려 그녀는 잔뜩 겁을 집어먹고 있었다. 궁지에 몰려 덧없는 이빨을 드러낸 쥐처럼, 생전 경험해 보지 못한 상황에 몸을 움츠리고 도움을 바라고 있었던 것이다.
노구덕은 그제야 비로소 데모나가 통 식사도 하지 않고 방에 틀어박혀 있다고 했었던 임유진의 말을 떠올렸다.
생각지도 못한 임신. 아무도 도와줄 사람 없는 이 좁은 방 안에서, 그녀는 며칠 동안을 홀로 보냈다. 그 시간 동안, 데모나는 무슨 생각을 했던 것일까?
‘바보병이라… 그래, 제일 바보는 나였군. 그 나이를 먹고도 어린 아내 마음 하나 헤아리질 못하다니.’
무엇이든 아는 척, 훈계를 하며 혼낼 생각만 했던 조금 전까지의 스스로가 참을 수 없이 창피하기만 했다.
노구덕과 임유진, 두 사람의 빤한 시선이 머물고 있다는 것을 느낀 것일까. 여전히 얼굴을 보이지 않은 채 누워있는 데모나의 몸이 별안간 큰 기복을 일으키며 꿈틀거렸다.
무거운 짐을 토해내듯, 후련한 한숨을 내쉰 데모나는 그 자세 그대로 천천히 입을 열었다.
“임유진.”
“…응?”
“…이복형제도, 친형제처럼 지낼 수 있을까?”
“그럼. 우리만 봐도 알잖아?”
“…흥. 모르겠는데?”
“후훗. 솔직하지 못하구나?”
“시끄러워. 떠들지 말고 잠이나 자.”
매몰차게 쏘아붙인 데모나는 어깨선에 걸쳐진 이불을 머리끝까지 올려버렸다. 흡사 부끄러워 숨을 구석이 필요한 아이처럼 민망해 보이는 동작이었다.
그 사이에 끼지 않고 그저 지켜보고만 있던 노구덕의 가슴엔 어느새 따뜻한 훈풍이 감돌고 있었다. 저 둘 사이에 끼지 못하는 게 조금 아쉽긴 하지만, 아무래도 오늘은 이대로 잠을 청해야만 할 것 같았다.
‘유진이가 있어서 정말 다행이야….’
구석으로 밀려나 완전히 제삼자가 되어버린 노구덕은 두 여인의 다정다감한 대화를 자장가 삼아, 이내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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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로부터 며칠이 지나, 동부의 주도 에덴의 탈환으로 좀 잠잠해지는 듯했던 대륙의 정세는 또 다시 유례없는 대혼란을 맞이하고 말았다.
사상 최다(最多)의 베이비붐 세대.
그저 하룻밤 불장난, 혹은 연인과의 일상적인 관계, 아니면 돈을 벌기 위한 수단…. 수많은 명목하에 이루어진 관계들이었지만, 그 어디에도 ‘임신’이라는 뒷일을 생각하는 사람은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그들은 해금 없이는 자연적인 임신을 할 수 없는 헌터들이었으니까.
그런데, 요 며칠 사이에 그 절대적인 명제가 단번에 뒤집어지고 말았다. 세상이 바뀌어버린 것이다.
자고 일어나니 수많은 헌터들이 한 아이의 엄마, 아빠가 되어 있었다. 본인들도 모르는 사이에 원치 않거나 계획에 없던 임신을 하게 된 것이다. 그나마 동거하는 연인이나 사실혼 관계에 있던 헌터들은 사정이 나았지만, 그렇지 못한 경우도 많았다.
대륙 전역은 한순간에 극심한 혼란에 빠져들었다. 이제 전쟁은 아예 뒷전이었다. 에덴을 점거하고 있던 연합군에서도 수많은 이들이 아이를 이유로 탈퇴를 했다. 연합군의 수뇌는 연일 이어지는 탈퇴, 탈영에 속수무책일 수밖에 없었다.
자기 아이를 품은 여인을 전장에 내보낼 수 없다는데, 무슨 명분으로 그들의 앞을 가로막는단 말인가?
세상이 혼란의 도가니로 변해버렸으나, 서서히 시간이 지나자 헌터계는 대체로 이번 일을 호의적으로 받아들였다.
스몰, 미들리그에 속해 있는 대다수 헌터들은 기본적인 생식권마저 제한 당한 채, 평생 자손을 남기지 못하고 쓸쓸하게 죽어간다. 그런 그들에게 있어 후손을 남길 수 있다는 기본권의 해방은 가뭄의 단비나 마찬가지였다.
일부 아비를 알 수 없거나, 배우자가 책임을 감당하지 못하고 도주한 미혼모들의 경우엔 낙태라는 극단적인 선택을 하기도 했지만, 혼란을 수습한 대부분의 헌터들은 부지불식간에 이루어진 생명의 잉태를 신의 축복으로 받아들였다. 그들에게 있어선 그토록 바라던 사랑의 결실이었다.
거센 격랑이 한바탕 온 세상을 휩쓸고 지나가자, 대륙의 여론은 또다시 뒤바뀌었다. 일찍이 발레기우스가 세계에 대고 외쳤던 진정한 해방. 그리고 그 해방이 사실로 드러나면서, 지금껏 위원회에 의해 매도되었던 그의 발언들이 크게 신빙성을 얻게 된 것이다.
겨우겨우 유리한 고지를 점했던 위원회로서는 다시금 발등에 불이 떨어진 격이었다.
이제 발레기우스란 이름은 진정한 자유의 해방자로, 사랑의 결실을 가져다 준 영웅으로서 회자되기 시작했다. 반면 위원회에 대한 헌터들의 시선은 더할 나위 없이 냉담해졌다. 더불어 발레기우스의 말이 사실로 드러나면서, 더는 통제력을 잃은 위원회를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는 목소리들이 큰 힘을 얻으며 부각되었다.
시시각각 악화되는 상황. 그리고… 위원회는 결단을 내렸다. 더는 예전과 같은 권위가 없음을 인정하고, 따르는 이들만을 끌어안은 채 이 난국을 헤쳐 나가기로 결정한 것이다.
이는 사실상, 통제력이 미치지 않는 각 도시에 대한 자치권을 인정한 위원회의 포기 선언이나 다름없었다.
그러나, 위원회가 대륙의 지배권을 완전히 포기한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이미지관리를 완전히 내던져버린 위원회는 기존의 어설픈 클럽, 헌터 연합군 체제를 일신하여 강력한 중앙군으로 거듭나게 할 계획을 수립했다.
새롭게 가다듬은 중앙군을 기반으로 남아 있는 반군의 잔당을 격멸하려 하는 위원회와, 일반 헌터들의 지지라는 강력한 여론을 손에 쥔 혁명군. 바야흐로, 대륙의 정세는 한 치 앞을 알 수 없는 안개 속으로 빠져들었다.
퀸젤에게서 연락이 온 것은 바로 이 무렵이었다.
============================ 작품 후기 ============================
여러분의 추천과 코멘은 작가에게 큰 힘이 됩니다!
오늘도 삼연참.. 기력이 쭉 빠지는 것을 느낍니다.. 그래도 기분은 좋네요! 요즘 글이 술술 잘 써지는 것 같아서요!
아이들 종족에 대한 의문이 많으신데 구체적으로 답변해 드릴 수 없는 제 입장 이해해주시길 바랍니다 ㅠㅠ
여기서 최고의 통수는 오크 딸을 낳는 거겠죠..? 딸은 아빠를 닮는다고.. 흠흠! 그렇게 되면 유례없는 악플에 시달릴 것 같은 느낌이 드네요..
일단 올리고, 리리플 달도록 하겠습니다!
좋은 밤 되시길!
호야[虎夜] / 데모나 성격 닮은 딸이라니.. 노구덕 혈압오르는 소리가.. 오타 수정했습니다!
코카콜라중독 / 소율이도 슬슬 이제 몸이나 마음이나 성장해야죠!
dong296 / 그렇다면 저는 더더욱 분량을 쌓아야..
未完 / 정자에도 일단 오크의 힘이 작용하기는 합니다!
능력Skyey / 안녕? 나는 정자! 힘세고 강한 아침!
모그퐁 / 삼연참으로 보답을… 감사합니다.
Velos / 말투가 오락가락하는건 소피아가 만만해서(?)…
ㅂㅈㄱㄷㅂ241 / 고것이 바로 정답입니다! 하하..
아스라히i / 저도 소율이의 이쁜 성장을 바라고 있습니다..
북치네 / 추쿠 감사합니다! 달달한 씬을 좀 더 버무려보겠습니다..
이시이시 / 지금 성관계하자고 하면 구더기 고추를 얼려버릴듯.
능력Skyey / 확답해드릴 수 없는 제 사정을 이해해주시길.. 감사합니다!
가식적썩소 / 도망치느라 바빠서 보쌈은 못해왔네요 ㅠㅠ
가르비 / 글쎄요 어떻게 될지… 스포관련은 노코멘트 입니다 ㅠㅠ 죄송합니다.
월병인 / 아이 참, 노코멘트할 수밖에 없는 입장.. 아시죠??
Rnoa / 저를 차라리 죽여주십시오…
해피엔딩이싫어 / 저 오크를 매우…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플래그가 파파파팍 꽂혀 있는 서리여왕..
신수[神手] / 인간? 오크? 인오크???
유수월향 / 하유라와 목줄 플레이..? 헠헠
미로카 / 이제 다시 본편 스토리가 진행될 차례!
벌레 / 차가운 질 ㅋㅋ 저도 보고 웃었네요 언제나 신사적인 댓글 감사합니다.
헤이바디 / 핫식스 5캔 정도 빤 느낌입니다. 어째 글이 잘 써지네요.
cho서든 / 근데 남자아이면 오크도 상관없지 않나요? 최고의 통수는 오크딸…?
김도리131 / 저도 인간의 한계에 새삼 놀라는 중입니다..
모욕감 / 모욕감님도 감기 조심하세요! 걱정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빅대어 / 구더기 강화도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잘큰고추 / 오크는 정자도 강하다…
asd메이지 / 저거는 살정제 뿌려도 안 죽어요.
노루찡 / 가끔씩이라도 생각나시면 들러주세요. 하하..
쌈커 / ㅊㅊ 감사합니다! 좋은 밤 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