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unter Club RAW - chapter (4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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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 새로운 얼굴들, 그리고 분쟁(紛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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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가 다르게 아이리스의 위상이 높아지고 있는 어느 날, 노구덕은 아이리스에 적을 두고 있는 모든 헌터들을 클럽 홀 내부에 있는 대규모 집회장으로 불러들였다.
실로 오랜만의 대규모 호출. 어지간히 중요한 일이 아니고서는 좀처럼 이런 식의 호출을 하지 않는 노구덕이다. 때문에 칼립스 각지에 흩어져 있던 아이리스의 헌터들은 요란하게 진동하는 연락 수정을 보고 의아해할 수밖에 없었다.
허나 그도 잠시, 헌터들은 곧 개인적인 용무를 접어두고 서둘러 노구덕의 호출에 응했다.
“오빠, 무슨 일이래요? 전원 호출이라니? 뭔 일이라도 났나?”
“글쎄… 가보면 알겠지. 요새 시국이 워낙 흉흉하잖냐.”
“그래도 서부는 조용한 편인데…….”
호출을 받은 헌터들이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며 소집에 응하고 있는 동안, 클럽 홀 옆 별관에 따로 마련되어 있는 거대한 집회장에는 이미 노구덕을 비롯해 아이리스 1군의 주요 헌터들이 원탁에 모여 앉아 뒤늦게 도착하는 헌터들을 기다리고 있는 중이었다.
“이봐, 도일. 지내는 데 불편한 점은 없나?”
원탁의 우측에 앉아 헨더슨과 잡담을 나누고 있던 도일은 예의 그 잘생긴 얼굴에 시원한 웃음을 그려냈다.
“하하… 딱히 불편한 점은 없습니다. 오히려 샤이닝스타에 있을 때보다 훨씬 편한 느낌입니다. 볼거리가 많으니까요.”
“볼거리?”
도일의 답을 들은 노구덕의 고개가 비스듬히 기울었다. 칼립스가 볼거리가 많은 도시였던가? 강철대로가 명물이긴 하지만 그걸 관광지라 부를 정도는 아니다.
궁금해진 노구덕이 재차 질문을 하려는데, 갑자기 왼쪽에 있던 신소율이 대화에 끼어들었다.
“뻔하잖아요. 도일 오빠, 지금 여자 얘기하고 있는 거예요.”
“하하하. 신소율 헌터, 누가 들으면 오해합니다.”
“흥. 엊그제 도일 오빠가 헨더슨 아저씨랑 같이 여자들에게 추근대는 걸 본 사람이 있다고요.”
생각지도 못한 폭로에 몇몇 여성 헌터들의 표정이 짐승을 보듯 찡그려지자, 느닷없이 궁지에 몰린 헨더슨은 시뻘게진 얼굴로 신소율의 말을 저지하고 나섰다.
“저 꼬맹이가! 누가 아저씨라는 거냐! 난 아직 젊어! 그리고 그건 우연히 그냥 그쪽에서 합석을 하자고 하길래 같이 술 한 잔 먹었던 거고! 나 원, 이래서 어린애들은!”
“이 아저씨가! 누가 어린애예요? 스물다섯 먹은 어린애도 있어요?”
“쓸데없이 나이만 먹으면 뭐해? 가슴이 평평해서 보이지도 않는데! 납작 가슴은 다 어린애다!”
“뭐, 뭐예요?”
입 한 번 잘못 놀렸다가 제대로 카운터를 먹었다. 넋 나간 얼굴로 입술을 벙긋하던 신소율의 얼굴은 이내 펄펄 끓는 주전자처럼 검붉게 달아올랐다.
홧김에 막말을 내뱉은 헨더슨도 주변에서 들리는 킥킥거리는 소리에 정신을 되찾았는지, 큼큼 헛기침을 하며 자리에 앉았다. 그러나 이미 체면은 구겨질대로 구겨진 상태였다. 하긴, 이미 칠전팔기의 맞선남으로 알려진 그가 찌그러질 체면이 어디있으랴마는.
노구덕은 신소율의 성질머리가 폭발하기 전에, 막 풀리려는 그녀의 고삐를 단단히 붙들어 잡았다.
“둘 다 자리에 앉아라. 그리고 소율이 이 녀석, 남의 사생활은 이런 자리에서 들추는 게 아냐. 그러니까 그런 소리나 듣지. 그리고 네 가슴은 작아도 귀여우니까 문제없다. 나만 좋아하면 됐지, 안 그러냐?”
“와하하하핫! 사랑 받는 아내구나!”
“푸흡…! 푸흐흣!”
“호호호… 소율이는 좋겠네!”
노구덕이 장난스럽게 덧붙인 말에 사방에서 왁자지껄한 웃음이 터져 나왔다. 졸지에 망신살의 주인공이 된 신소율은 화끈거리는 얼굴을 부여잡고 끙끙 앓는 소리를 내며 테이블에 머리를 처박았다.
“으으… 이건 성희롱이야…!”
여전히 미소를 띤 도일은 신소율의 희생(?)으로 즐겁게 풀어진 회장의 분위기를 둘러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괜찮군요. 전 이런 점이 좋습니다.”
“그런가? 나도 딱딱한 건 싫어하는 성격이라서 말이야.”
“그래도 오해는 풀어드려야 될 것 같군요. 그날 저와 헨더슨 씨가 술을 마신 건 친목을 다지기 위해서였고, 먼저 합석을 요구한 건 여성분들 쪽이었습니다.”
“호오.”
“뭐, 다 제 잘생긴 외모 탓이죠. 흔히 있는 일입니다.”
그 말이 끝나자마자 남성 헌터들 위주로 ‘우-!’하는 야유가 들려왔다. 이것 또한 익숙한 일인지, 도일은 천연덕스럽게 눈을 찡긋하곤 어깨를 으쓱거렸다. 겨우 이적 한 달 만에 뭇 남성 헌터들의 공공의 적이 되다니… 처음 만났을 때에는 잘 몰랐는데, 알고 보니 이놈, 꽤나 재수 없는 놈이었다.
“변호를 위해서라면 마지막 말은 안하는 게 더 효과가 좋았을 거라고 생각하는데.”
“사실이니 어쩔 수 없죠. 제 박복한 팔자려니 합니다.”
“…재수 없는 놈.”
나르시시즘에 젖어있는 도일에게서 떨떠름하게 시선을 뗀 노구덕은 이번엔 또 다른 뉴페이스, 박승찬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엘프족의 상징인 뾰족하고 길쭉한 귀를 가진 박승찬은 도일 정도는 아니지만 갸름한 얼굴선을 가진 미남자였다. 많아봐야 이십대 후반 정도로 보이는 외모와는 달리, 실제 나이 36세의 놀라운 동안을 자랑하는 그는 프라임리그에서 잔뼈가 굵은 베테랑이기도 했다.
“박승찬 헌터. 자네는 어떤가?”
“…나쁘진 않습니다. 시끄러운 게 조금 흠이긴 하지만, 이것도 나름대로의 즐거움이겠지요.”
비슷한 시기에 이적을 해, 금방 사람들과 친해진 도일과는 다르게 그는 과묵하고 사색을 즐기는 성격이었다. 사람 자체가 워낙 진중하고 무거운 분위기를 풍기는 터라, 아직 그의 인간관계는 노구덕과 몇몇 헌터들이 전부일 정도로 비좁았다.
“그건 미안하군. 보다시피 이래저래 떠들고 나서길 좋아하는 녀석들이 많아서. 이건 자네가 이해심을 발휘해 줬으면 좋겠어.”
“물론입니다. 클럽에 맞추는 건 제 자신. 클럽이 제게 맞춰 줄 필요는 없지요.”
…그 진중함이 지나쳐 가끔 이렇게 비꼬는 것으로 오해할 만한 발언을 하긴 하지만, 박승찬은 사람 자체가 나쁜 이는 아니었다. 만약 그랬다면 그런 거금을 주고 힘겹게 데려오는 일은 없었을 터. 오히려 그는 사람이 좀 진지하다 뿐이지, 진심을 다해 다가오는 이에게는 마찬가지로 열과 성을 다해 대하는 진국 같은 인물이었다.
“…자네가 와 주어서 기쁘게 생각하네.”
“그것이 클라리스 님에 대한 마지막 예우라고 생각했을 뿐입니다.”
“포레스티아 오너를 설득하는 게 쉽지는 않았을 텐데…….”
“사정을 말씀드리니 너그러운 마음으로 이해해주시더군요.”
‘이해? 너그러워? 그런 놈이 240만 골드나 뜯어가?’
노구덕은 목구멍까지 치민 마지막 말을 간신히 꿀꺽 삼키고는, 어색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정든 보금자리를 떠나 이곳까지 와 준 박승찬에게 무슨 잘못이 있겠는가. 돈독이 오른 포레스티아의 오너가 죽일 놈이지.
“…하여튼, 지내면서 힘든 일이 있으면 언제든 말을 하게. 무슨 고충이든 내 기꺼이 들어줄 테니.”
“배려, 감사합니다. 하지만 별로 그럴 일은 없을 것 같군요.”
“끙. 자네의 그런 솔직함, 아주 좋아한다네.”
원탁에 모여 앉은 헌터들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 삼삼오오 모여 들던 헌터들이 마침내 한 사람도 빠지지 않고 전원 집결했다.
1군, 2군, 3군으로 나뉘어진 헌터들과 행정부의 보직도 겸하고 있는 안세희, 안세영, 김진솔, 문석현까지 포함해 총 50명에 달하는 인원들이다.
명백히 30명 제한 룰에 어긋나는 인원이었지만, 클럽들 간의 군비경쟁으로 이적시장이 미쳐 돌아가고 있는 판국에 그런 구시대적인 룰은 아무런 효과도 없었다. 아무리 전력을 보강해도 모자랄 이 난세에 30인 제한 룰을 지켜 스스로 자기 힘을 제한하는 멍청이가 어디 있단 말인가?
원탁의 한 가운데, 가장 상석에 앉아 있던 노구덕이 천천히 거구를 일으키자, 회장을 가득 채우던 떠들썩한 말소리들이 언제 그랬냐는 듯 쏙 들어갔다. 오십 인에 달하는 헌터들의 눈길이 칼립스, 그리고 아이리스의 유일한 절대자로 군림하는 늙은 오크의 두툼한 입술로 모여들었다.
자리에서 일어난 노구덕은 잠시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원탁 주변을 가득 채운 헌터들의 면면을 차분히 살펴보았다. 항상 얼굴을 맞대고 사는 마누라들과 1군의 주요 헌터들을 넘어, 묵묵히 제 소임을 다해주는 2군, 3군의 헌터들까지.
특히, 예비군인 3군에는 조만간 정식 멤버로 발탁될 앳된 얼굴들이 몇몇 보이고 있었다. 아이리스 유스(Youth) 1기 멤버인 안세희, 안세영의 뒤를 이어, 헌터 육성 정책의 수혜를 톡톡히 누린 젊은 인재들이다. 어렸을 때부터 그가 가진 ‘스카우터의 눈’으로 가능성을 확인하고, 체계적인 교육과 지원으로 재능을 한껏 개화시킨 아이리스의 미래들.
그리고 이 자리엔 모이지 않았지만, 그의 딸인 임가희 역시 장래가 촉망되는 출중한 인재였다.
더욱이… 아이리스에는 아직 세간에 알려지지 않은 측정불가의 괴물이 하나 더 있었다.
‘소냐는… 규격 외니까 제외하도록 하자. 그 아이가 다른 아이들과 함께 교육을 받았다간 아이들 전체의 사기가 꺾일 수도 있어.’
얼마 전, 소피아에게서 소냐가 중첩 마법진인 더블 스펠을 성공시켰다는 얘기를 들었을 때 얼마나 놀랐던가. 그러나 노구덕은 곧 ‘소냐라면… 그럴 수 있지.’라는 생각으로 금방 납득해 버렸다.
고작 9살짜리가 중급의 빙계 주문을 자유로이 구사하며 더블 스펠까지 사용한다? 어느 길가던 마법사에게 그런 말을 했다가는 웬 미친 소리냐며 뺨을 얻어맞을지도 몰랐다. 그러나 소냐는 그 말 같지도 않은 소리를 현실로 만드는 엄청난 재능이 있었다.
‘아니… 그 영악한 아이가 더블 스펠 정도로 만족해서 소식을 전했을 리 없지. 적어도 그 이상 숨겨놓은 게 있을 거야. 설마 하던 마법 재능 Lv6… 소냐라면, 어쩌면 정말일지도 모르겠군.’
소냐의 저널이 본격적으로 개화하는 6년 뒤가 괜히 기다려지는 노구덕이었다.
잠시 딴 생각에 젖어있던 노구덕은 곧 정신을 차리고 목청을 가다듬었다. 아래에서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오십 쌍의 눈동자를 향해 작게 목례를 한 그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다들 바쁠 텐데 소집령을 발동해서 미안하게 생각합니다. 집회는 되도록 빨리 끝내도록 하지요. 그럼,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겠습니다.”
“…….”
“다들, 프라임리그의 레귤러 ‘종말의 협곡’을 알고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노구덕이 꺼낸 화두에 가만히 듣고 있던 대다수 헌터들의 낯빛이 빠르게 일변했다.
종말의 협곡. 서부 지구를 가로지르는 등줄기인 벨룸 산맥의 곁가지로 뻗어 나와, 본래 쌍둥이산(Twin mountain)이라 불리던 지역의 이름이다. 더불어 프라임리그에 속해 있던 16개의 마굴 중 한 곳이기도 했다.
종말의 협곡은 칼립스의 지근거리에 있는 악명 높은 레귤러지만, 정작 칼립스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는 레귤러이기도 했다.
도시 주변의 레귤러는 통상적으로 그 수준에 따라 가까운 소, 중, 대도시 중 한 곳의 헌터하우스가 맡아 관리하도록 되어 있지만, 해당 레귤러의 난이도가 빅리그의 헌터들로서도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강력하다면, 그 관리권은 연맹 직속으로 넘어가게 되어 있다.
대륙에는 그렇게 관리되는 레귤러가 백여 곳이 넘었는데, 그 중 대다수는 5대 리그 수준에서 관리되는 레귤러였고, 그보다도 수준이 높은 열여섯 군데의 레귤러는 프라임리그에 속해 특별 관리를 받고 있었다.
종말의 협곡은 바로 그 특별 관리를 받고 있던 레귤러 중 하나로, 프라임리그 기준 A등급에 랭크되어 있는 장소였다.
헌터들의 낯빛이 숙연해진 것은 단지 종말의 협곡이라는 레귤러의 이름값에 짓눌려서가 아니었다.
정말 중요한 것은 종말의 협곡의 지리적 위치였다. 종말의 협곡은 대도시 칼립스와 긴트의 경계선에 걸쳐 형성된 레귤러. 그리고 어제, 대도시 긴트에서 종말의 협곡에 대한 관리권을 주장하고 나섰다는 건 헌터치고 모르는 사람이 없는 얘기였다.
상황이 그러할진대… 칼립스의 지배자인 노구덕이 바로 이 시점, 이 장소에서 종말의 협곡을 언급했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단 하나였다.
“다들 긴트에서 종말의 협곡에 대한 관리를 하겠다고 나선 건 익히 알고 있을 겁니다. 긴 말 하지 않겠습니다. 나는 칼립스 위원으로서, 연고 클럽 아이리스의 오너로서 종말의 협곡을 이대로 긴트에게 넘겨줄 수 없습니다.”
쥐 죽은 듯 조용해진 집회장에서 들리는 것이라곤 오직 엄숙한 그의 목소리 뿐. 노구덕은 우람한 팔뚝을 들어 올리며 주먹을 불끈 쥐어보였다. 마치 긴트의 위원인 허영덕이 앞에 있기라도 한 것처럼.
“응당 우리에게 와야 할 관리권을 되찾겠습니다. 긴트에서 불복하고 나선다면… 전쟁이라도 기꺼이 불사할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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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의 추천과 코멘은 작가에게 큰 힘이 됩니다!
어제 새벽에 잠들어서 해가 중천에 떴을 때 겨우 일어났네요. 그동안 달리면서 피로가 좀 쌓였던 것 같습니다…
그래도 글빨이 터졌을 때 계속해서 쓰는 게 마음이 편합니다. 주말에 어떻게 될지는 모르겠지만요..
제 몸 걱정해주신 분들 모두 감사합니다. 저는 아직 건강합니다. 리리플은 다음화에 달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