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unter Club RAW - chapter (4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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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4# identi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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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급히 데모나의 방으로 찾아간 노구덕. 그가 문을 열고 들어서자마자, 미리 그 기척을 읽고 있었던 데모나는 기다렸다는 듯이 테이블 위에 놓인 작은 약병을 가리켰다.
“완성했어.”
손바닥만 한 크기의 원통형 유리병에 담겨 있는 투명한 약물은 언뜻 보아서는 맹물과 별다른 차이점을 찾을 수 없을 정도였다.
그러나 이 별 것 아닌 것처럼 보이는 액체에 담긴 내용물을 알게 된다면, 누구나 놀랄 수밖에 없으리라.
카르믹스톤(Karmic stone). 예전, 데모나의 아버지인 바이론이 최초로 개발에 성공하여 항간에 뜨거운 화제를 불러일으켰던 바로 그 물질. 여러 가지 요소가 첨가되기는 했지만, 주된 성분을 따지자면 이 액체는 그 카르믹스톤의 액상 버전이라고 할 수 있었다.
“이론적으로 할 수 있는 노력은 다했어. 아마… 부작용은 일어나지 않을 거야. 출력을 약간 줄이는 대신에 세포에 가해지는 부담을 낮췄으니까. 트롤을 대상으로 한 실험에서도 별 문제가 없었으니, 그보다 더한 재생력을 가진 너라면……. 어딜 보는 거야?”
가는 손가락으로 약병을 집고서 천천히 설명을 이어나가던 데모나는 노구덕의 시선이 악병이 아닌 전혀 엉뚱한 곳에 머물러 있자, 피곤함이 짙게 깔린 얼굴을 슬며시 찌푸렸다.
그토록 고대하던 작품이 눈앞에 있음에도, 다른 곳을 유심히 보고 잇던 노구덕은 멋쩍게 웃으며 반들반들한 머리를 긁적였다.
“오, 미안하다. 그런데 데모나, 배가 좀 부른 것 같은데…?”
그가 뚫어져라 보고 있던 것은 다름 아닌 데모나의 배였다. 임신한 산모라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늘씬한 몸매를 자랑하는 데모나였지만, 자세히 보니 그의 말대로 아랫배가 살짝 부푼 것 같기도 했다.
하긴 이제 4개월 차에 접어들었으니 티가 나지 않는 게 더 이상한 일이었다. 빤히 바라보는 그의 시선이 영 부담스러웠던지, 데모나는 슬그머니 아랫배를 가리며 신경질적인 투로 쏘아붙였다.
“…신경 꺼.”
“웃차. 어디 내 새끼 좀 안아보자.”
“구더기, 지금 이럴 때가……!”
은근슬쩍 다가오는 노구덕에게 짜증을 내던 데모나는 이내 신이 나서 아랫배를 더듬는 노구덕의 태도에 어쩔 수 없다는 듯 진한 한숨을 흘렸다.
노구덕은 의자에 앉아 있는 데모나를 공주님 안기로 번쩍 들어 침대로 데려갔다. 좁은 의자에서는 그녀의 배를 마음껏 만질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임유진도 그렇고, 데모나도 그렇고. 요새는 두 여인의 배를 더듬으며 얼마나 불렀는지 체크를 하는 것이 그의 즐거움 중 하나였다.
처음에는 그의 그런 낯간지러운 행동에 질색하던 데모나도 요즘엔 거의 포기했는지, 초기의 완강하던 태도가 많이 누그러져 있었다. 아니, 최근에는 말로만 싫다고 할뿐이지, 얼핏 그의 손길을 즐기는 것처럼 보일 정도다.
하기야 아이 아버지가 될 사람이 그런 애정을 쏟는데 싫어할 여자가 어디 있을까. 성질이 사납고 까다로운 데모나지만 그녀 또한 사랑받고 싶어하는 한 여인에 불과했다.
데모나를 침대에 반듯하게 눕히니, 확실히 앉아 있을 때보다 배가 부른 것이 티가 났다. 그 곁에 누운 노구덕은 커다란 손바닥으로 그녀의 배를 조심스레 쓰다듬으며 팔불출 끼가 다분한 미소를 지었다.
“엊그제 만졌을 때보다 조금 더 커진 것 같은데? 이러다 우량아가 나올지도 모르겠어.”
“사내라면 덩치가 있는 편이 좋잖아.”
“뭐, 그것도 나쁘진 않지.”
아직도 아들에 대한 미련을 숨기지 않는 데모나다. 예전 임유진에게 듣기로 데모나의 가계(家系)는 대대로 딸을 낳았다고 하는데, 이렇게 아들을 원하는 걸 보면 확실히 그 마녀의 혈통을 극복했다고 믿는 모양이었다. 실제로도 그 혈통의 굴레를 벗어난 건 틀림없었지만.
“…주의사항을 일러 줄 테니 들어. 나중에 잊어버리지 말고.”
“음. 제대로 귀 기울이고 있으니까 걱정 마라.”
“이 약의 효용 시간은 대략 1시간 정도야.”
“꽤 짧군.”
“아니. 실제는 그보다 더 적은 시간일지도 몰라. 나는 네가 이 약을 사용했을 경우, 활성화 시간을 약 30분 정도로 보고 있어.”
그녀의 배를 어루만지던 노구덕은 작게 침음했다. 30분이라. 데모나의 예상이라면 십중팔구는 거의 그렇다고 보면 될 터. 기대했던 것보다 더 빠듯한 시간이었다.
“더 늘릴 수는… 없겠지?”
“네 신체에 가해지는 부담과, 약이 발휘할 수 있는 출력의 타협점을 찾아 이상적으로 도출한 시간이야. 현시점에서 다른 방법은 생각나지 않아. 트롤의 경우엔 넉넉히 1시간을 넘겼지만… 네 세포와 힘은 트롤과 비교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니까.”
“좀 아쉬운데. 진작 내 몸으로 임상실험을 했더라면…….”
“안전성이 보장되었다면 내가 먼저 그렇게 하자고 했을 거야. 그럴 수 없었던 이유, 잘 알잖아? 입 아프게 두 번 말하게 하지 마.”
“…그렇긴 하지.”
강력한 약이긴 하지만, 완성품으로도 확실히 안전을 보장할 수 없다. 아예 아무런 데이터가 없는 상황에서 이 정도까지 되는 완성품을 만들어낸 것만으로도 데모나이기에 가능한 성과였다.
카름과 인간을 결합하는 연구는 음지에서 오랫동안 자행되어 왔지만, 그 역사에 비해 뚜렷한 성과를 낸 적은 그리 많지 않았다. 그나마 완성도 있는 사례를 꼽으라면 예전, 바이론이 배성길을 모체로 하여 만들어낸 드래고니안 정도일까. 그나마 이것이 가능했던 것은, 바이론이란 인간이 위원회가 오랜 세월 축적한 데이터를 한 머리에 담아 두었던 천재이기 때문이었다.
이 연구는 이처럼 까다롭고 난해한 분야였다. 데모나 역시 바이론이 축적해 놓은 데이터가 아니었다면 여기까지 도달할 수 없었으리라.
그러나 그만한 성과를 내놓고도, 데모나의 표정엔 스스로의 작품에 대한 자신감을 찾을 수 없었다.
“이건… 정말 위험한 물건이야. 될 수 있으면 쓰지 않는 편을 추천해.”
“첫 시음을 곧 실전에서 할 수밖에 없다는 소리군.”
끝내 약을 사용하겠다는 소리다. 홱 고개를 돌린 데모나는 두 눈을 상큼하게 치뜨며 그를 노려보았다.
“그렇게까지 해서 늑대왕을 잡을 필요가 있어? 나나 임유진을 데려가. 너만 바라보는 그 강아지도. 할 수 있는 전력을 다 동원해. 룬메이커, 에테르 윙… 다 합세하면 이 약을 쓰지 않아도…….”
자기 분야에 대한 자부심이라면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 데모나가 이런 자신없는 태도를 보인다. 그만큼 이 약이 위험하다는 방증이었다. 그러나 노구덕은 단호히 그녀의 말을 끊었다.
“처음 계획은 그랬지.”
“…그럼 그대로 밀고 나가면 되잖아.”
“아니, 그럴 순 없어. 이 싸움의 본질은 너희들… 내 가족을 이 난장판에서 지켜내기 위해서야. 그런데 너희들을 위험 속으로 밀어 넣으라고? 그거야말로 본말이 전도된 거지.”
원래 데모나에게 부탁했던 이 약은 최후의 수단으로써 사용하려던 것이었다. 늑대왕을 잡을 계획을 세울 때만 하더라도 임유진과 데모나는 가용한 전력으로서 분류되었고, 그 중에서도 핵심 역할을 맡을 예정이었다. 당시만 하더라도 임유진이나 데모나가 아이를 배리란 생각은 전혀 하지도 못했으니까.
그러나 상황이 바뀌었다. 배가 부른 그녀들을 전장으로 내모는 것은 노구덕에게 절대로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 공백으로 인한 위험부담이 있다면, 차라리 그 자신이 짊어지는 편이 훨씬 나았다.
무슨 말로도 그의 결심을 바꿀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된 데모나는 불안으로 흐려진 얼굴을 반대쪽으로 돌려버렸다.
“…이 아이를 유복자로 만들기만 해봐. 지옥 끝까지 찾아가서라도 죽여버릴거야.”
“어이쿠. 무서워서 죽지도 못하겠군.”
“흥.”
노구덕은 쌀쌀맞게 구는 데모나의 어깨를 넉살 좋게 감싸 안았다. 팔에 맞닿은 그녀의 몸이 흠칫 작게 떨리는 게 느껴졌지만, 그녀는 그리 싫은 내색을 하지 않고 얌전히 그의 품 안으로 딸려 들어왔다.
그는 색색거리는 데모나의 숨결을 느끼며, 그녀가 건네 준 투명한 약병을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이 작은 병 안에 담겨 있는 투명한 액체는 데모나가 그를 위해 밤낮을 가리지 않고 연구에 몰두한 정성의 결실이었다.
그는 투명한 병 안을 바라보다가 내심 쓴물처럼 웃음이 치밀었다.
‘무슨 일을 벌일 때마다 목숨을 걸어야 한다니. 무슨 놈의 팔자가 이 따위인지, 원.’
신이 있다면 멱살을 붙들어서라도 따져 묻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나마 남들보다 훨씬 질긴 목숨줄을 가지고 있다는 게 위안이라면 위안일까.
카르믹스톤을 융해한 이 약물이 있다면, 그는 이론적으로 현재의 서너 배는 되는 힘을 발휘할 수 있다. 그의 몸에는 엄연히 카름의 세포로 이루어진 조직이 신체의 일부로서 자리잡고 있기 때문이다.
히드라의 핵과 킹스콜피온의 갑각이 바로 그것이었다. 히드라의 핵을 활성화시키면 지금보다 훨씬 더 강력한 재생력을 얻을 수 있을 테고, 킹스콜피온의 갑각을 강화하면 그의 신체 내외를 보호하는 비틀쉘 역시 더욱 진화한 위력을 낼 수 있을 터.
그러나 그 두 가지 요소는 어디까지나 부가적인 산물에 불과했다. 그가 이 약물을 원한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바로 다섯 번째 충왕각인 때문이었다.
‘헤라클레스(Hercules)… 참 맛대가리 없는 놈이었지.’
기억하기도 싫은 그 고기 맛을 떠올린 노구덕은 슬며시 이맛살을 찌푸렸다. 파리에 바퀴벌레, 벼룩, 개미… 살면서 별스런 것들을 다 먹어본 그였지만, 그렇게 맛이 없는 음식(?)은 난생 처음이었다.
“…언제 시작할 거야?”
괴로운 기억에 설레설레 고개를 저은 노구덕은 가슴팍에 얼굴을 기댄 데모나의 물음에 쓴웃음을 지으며 대답했다.
“…이제 곧. 놈의 동태는 계속 주시하고 있었으니까. 네 약이 완성되기만을 기다리고 있었지.”
늑대왕을 꾀어낼 수단은 많다. 차고 넘쳐서 뭘 골라야 할지 고민부터 하게 될 정도다. 하지만 그것이 늑대왕을 쉽게 잡을 수 있다는 뜻은 아니었다.
“그래……?”
가슴에 얼굴을 묻은 데모나는 후… 하고 길게 숨을 내쉬었다. 갑자기 고개를 든 그녀는, 흑요석처럼 반짝이는 눈으로 그의 얼굴을 빤히 쳐다보았다. 그리고는 대뜸 한마디를 내뱉었다.
“하자.”
“…응?”
의미를 알 수 없는 말에 어리둥절해하던 노구덕은 별안간 국부에서 전해지는 야릇한 감촉에 헉 하고 숨을 들이켰다.
“하다니… 너, 임신한 몸으로…….”
“살짝 넣는 정도라면 괜찮아. 슬슬 안정기에 접어들기도 했고. 아니면… 입으로 해줄까?”
노구덕은 너무 놀라 입을 딱 벌렸다. 데모나가 저 작은 입술로 그의 것을 몸소 위로해준다? 꿈에서도 바라마지 않던 일이었지만, 평소 까다롭게 굴던 그녀가 갑자기 저리도 대담하게 나오니 뭔가 선뜻 내키지가 않았다.
“데모나, 너 무슨 일이라도…….”
“요즘 꽤 쌓아두고 있지 않아?”
“아니, 그렇긴 한데.”
막 뭔가 말하려고 했던 노구덕은 가물가물한 촛불처럼 일렁이는 그녀의 얼굴을 보더니 입을 국 다물었다. 어렵사리 말을 꺼내는 그 얼굴에서 초조한 속내가 여실히 드러나고 있었기 때문이다.
저런 여인을 두고 그 진의(眞意)조차 바로 파악하지 못하다니. 스스로를 자책한 노구덕은 팔을 들어 그녀를 가볍게 껴안았다. 한 사람 분의 무게가 더해졌는데도 여전히 깃털처럼 가벼운 몸이었다.
데모나의 몸에 배인 특유의 짙은 라벤더 향이 콧속으로 깊이 스며들자, 노구덕은 아직도 물끄러미 그를 바라보고 있는 그녀의 이마에 진하게 입을 맞췄다.
“다 잘 될 거다. 너무 불안해하지마.”
“…멍청이. 널 걱정하는 게 아냐. 나는 이 아이가…….”
말끝을 애매하게 흐린 데모나는 실 풀린 인형처럼 목을 늘어뜨리며 도로 그의 가슴에 얼굴을 묻어버리고 말았다.
“…다 잘 될 거다.”
아늑한 정적이 내려앉은 방 안. 겁에 질린 아이처럼 움츠린 데모나를 깊이 끌어안은 노구덕은 자기 암시라도 걸 듯 같은 말을 되새기며 굳은 각오를 다졌다.
============================ 작품 후기 ============================
여러분의 추천과 코멘은 작가에게 큰 힘이 됩니다.
일단 올리고, 바로 리리플 달도록 하겠습니다!
오늘도 좋은 밤 되세요!
수없는씨박 / 코멘 감사합니다! 건필하도록 하겠습니다 (_ _
ogrez / 하하.. 그러면 다시 3일치 분량을 열심히 쌓도록 해야겠군요!
은신설야 / 항상 감사합니다! 좋은 밤 되세요!
평범하게살고파 / 바로 그 약이 완성되었다고 합니다.
Velos / 괴수대혈전이 될듯…
북치네 / 홀은 충왕각인이 아니라 심령차력술의 성장과 관계되어 있습니다. 이건 아마 차후 그 능력에 대해 언급될때 같이 언급될 것 같네요!
니오그타 / 사냥의 계절이 돌아왔습니다.
asd메이지 / 아마 삭제 스크롤을 사용한다면, 기술은 그대로일지라도 그 위력이 현저히 감소하겠죠? 현대 검의 명인이 아무리 칼을 잘 다뤄도 원피스 조x처럼 다 잘라낼 수 없는 것처럼요. 그리고 그 스크롤은 생각보다 만능이 아니기 때문에..
whomi / 암약 아닙니다 ㅋㅋㅋ 제가 말한 건 ‘사냥의 계절’이죠!
코카콜라중독 / 구더기처럼 여기저기 여자한테도 껄떡대고 통수도 많이 맞아봐야 하는데 말이죠.
다크체리 / 아가레스트의 사정은 조만간 알게 되실듯!
신수[神手] / 과부킬러 ㅋㅋㅋ 1호 유진이 2호 아가레스트인가요 ㅋㅋ
월병인 / 그런 짤방도 있었나요? 궁금하네요 ㅋㅋ
가식적썩소 / 오타 수정했습니다! 감사합니다! 굿밤되시길!
노여연 / 그 약이 왔습니다. 약약약이왔어요!
모욕감 / 감사합니다. 내일은 가급적 아침화 올릴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