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unter Club RAW - chapter (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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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그리즐리(Grizzly)
‘월례 총회’ 혹은 ‘클럽 총회’란 일반적으로 해당 도시 내 클럽들이 달마다 정기적으로 갖는 모임을 일컫는 말이다. 물론 대륙 모든 도시의 클럽들이 월례 총회를 갖는 것은 아니다. 월례 총회가 열리기 위해서는 도시 내에 상주하는 충분한 수의 클럽들은 물론이고, 총회 장소를 제공하는 ‘헌터 하우스’가 있어야 했다. 도시에 헌터 하우스가 있다는 말은 곧 연맹의 영향력 아래에 있다는 뜻이고, 이 말은 곧 ‘헌터 하우스는 연맹이 보장하는 중립지대이며, 본 장소에서 개최되는 총회는 제도적인 힘을 얻는다.’는 것을 뜻했다.
서부 지구의 크래들타운은 위의 2가지 조건, ‘적정 클럽 수’와 ‘헌터 하우스의 존재’를 만족하는 도시였다. 크래들타운의 클럽 총회는 달초에 개최되었으며, 지금이 정확히 9회 째였다. 연차가 1년도 되지 않은 것은 크래들타운 주변이 안정화된 지 얼마 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헌터하우스 뒤편에 마련된 넓은 야외 공터는 도시 내에 상주하는 클럽 관계자들로 북적이고 있었다. 저마다 아는 사람들끼리 작은 무리를 지어 옹기종기 모여 있는 사람들의 시선은, 묘하게도 어느 한 방향을 계속해서 힐끔거리고 있었다.
“아이리스가 참가를 하다니. 별일도 다 있군.”
“클럽 간판만 달면 다 같은 클럽인줄 아는 게지요. 쯧쯧.”
각양각색의 눈빛들이 한 데 모인 곳에는, 검박하지만 깔끔하게 차려입은 김정인과 윤희지가 앉아 있었다. 끝이 살짝 웨이브진 머리를 길게 늘어뜨린 윤희지는 눈부시도록 하얀 어깨 윗부분을 드러내 여성스러움을 한껏 강조한 드레스 차림이었고, 김정인은 날렵하고 건장한 몸의 선을 잘 살린 옷으로 멋을 냈다. 두 사람 다 검정색으로 색을 통일해 일체감을 준 모습이었다.
따로 떨어져 있어도 보는 이의 눈을 사로잡는 선남선녀가 꼭 붙어 있으니 자연히 눈이 갈 수밖에. 그러나 두 사람이 본회의가 시작하기도 전에 좌중의 시선을 독차지한 것은, 수려한 외모 때문이 아니었다.
그동안 구설수에 오르내리면서도 침묵을 고수하던 아이리스가 드디어 첫 공식 활동을 개시했다는 것과, 과연 그들이 어떤 행보를 보여줄 것인가에 대한 궁금증 때문이었다.
잠시 후, 혈색 좋은 오십대 초반의 중년인이 장내가 훤히 내려다보이는 상석에 올랐다. 전체적으로 동글동글한 얼굴에 사람 좋은 넉넉한 웃음을 보이고 있는 중년인은 헌터 하우스의 마스터(Master), 최진석이었다.
관례대로, 크래들타운의 헌터 하우스를 책임지는 그가 클럽 총회의 의장 겸 사회를 맡기 위해 나선 것이었다. 최진석이 상석에 자리하자 끼리끼리 모여 무질서하게 흩어져 있던 사람들도 저마다 제자리를 찾아 움직였다.
“다 모이셨습니까? 흠흠. 지금부터 제 10회 크래들타운 내 클럽 월례 총회를 개회하도록 하겠습니다. 개회에 앞서, 간단히 본회에 참석한 클럽 명부를 확인하겠으니 양해를 부탁드립니다. 아, 오늘은 모처럼 아이리스 관계자 분들도 참석해 자리를 빛내주셨군요. 환영합니다.”
최진석이 아는 체를 하자 김정인과 윤희지 또한 정중한 목례로 화답했다. 그러자 사방에서 곱지 않은 시선들이 쏟아졌다.
“흥. 창녀 같은 계집이 여기가 어디라고 기어들어와? 또 몸이라도 팔았나?”
“허허, 아이리스란 클럽은 또 처음 들어보는군. 자네는 아나?”
“아니요. 저도 금시초문입니다. 똑같은 이름의 반상회는 들어봤지만요. 하하하!”
개중에는 수위가 도를 넘어 주변 이들마저도 눈살을 찌푸리게 만드는 발언도 있었지만, 아무도 나서서 제지하는 사람은 없었다. 아니, 제지할 필요를 못 느낀다는 것이 맞았다. 회장의 분위기가 조금 소란스러워지자, 최진석은 나무망치를 땅땅 두드려 주의를 환기시켰다.
“자자. 잡담은 그만들 하시고. 이번 총회는 참가율이 꽤 되는군요. 그럼 명부 확인도 끝났으니, 바로 본회의에 들어가도록 하겠습니다. 이거 참, 그러고 보니 오늘은 정말로 중요한 안건이 있군요. 허허, 참가율이 왜 이리 높나 했더니…….”
최진석은 가볍게 농담조로 말했지만, 장내의 분위기는 그런 그의 노력이 무색할 정도로 침중했다. 말없이 앉아 있는 모든 이들은 최진석의 입을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었다. 잔말 말고 어서 안건이나 꺼내 놓으라고 재촉이라도 하듯이.
‘쯧쯧. 사람들이 이렇게 여유가 없어서야…….’
작게 혀를 찬 최진석은 바로 본론에 들어갔다.
“서부 최전방의 전선에 성채를 쌓은 지 어언 7년이 넘는 세월이 흘렀습니다. 중앙의 지원을 받아 이주민과 피난민들을 받아들여, 카름을 막기 위한 성채는 작은 도시로 발전해 지금에 이르렀습니다. 이제 도시에 적을 둔 정식 클럽이 12개에, 완전한 평정을 이룬 주변 레귤러도 9개에 달합니다. 이에 저는, 여러분을 대표해 연맹에 재가를 요청하는 서한을 보냈고, 오늘 오전 그 답신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최진석은 잠시 말을 끊고 숨을 돌렸다. 좌중은 크게 긴장된 얼굴로 그 목울대의 작은 움직임까지 놓치지 않겠다는 듯 집중했다.
최진석은 그 열렬한 시선들이 심히 부담이 되는지, 작게 헛기침을 하며 말을 이었다.
“…크흠. 결론적으로 말하면, 시티 리그(City league)의 발족을 정식으로 허가받았습니다.”
“우오오오오오오오오옷—!”
“만세에에에–!”
말이 끝나기 무섭게 우레와 같은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사람들의 반응은 격렬했다. 하늘 높이 양손을 쳐들고 만세삼창을 외치는 사람도 있었고, 두 손을 맞잡고 눈을 꼭 감은 채 누군가를 향해 기도를 올리는 이도 있었다.
클럽이 적을 둔 도시가 연맹이 인정한 공식 리그를 가진다는 것, 그리고 그 리그에 참가한다는 것은 그만큼 대단한 가치를 지닌 것이었다.
먼저, 당당히 레귤러를 탐사할 수 있는 권한이 주어진다. 끊임없이 강력한 카름들을 찍어내는 레귤러는 헌터 입장에서 보자면 황금 알을 낳는 거위였다. 카름의 핵이 가지는 가치는 말할 것도 없고, 간혹 얻을 수 있는 고급 장비나 희귀한 재료들은 헌터라면 꿈에서라도 바라마지 않는 것들이었다.
그 다음은 포인트였다. 클럽들은 연맹이 포인트를 부여하는 모든 행위(탐사, 사냥, 잡무 등)를 통해 포인트를 가산 받는데, 이 누적 포인트에 따라 해당 클럽의 위치가 정해졌다. 그 외에도 포인트로 누릴 수 있는 특권들은 여러 가지였다. 리그에 속하지 못한 클럽들이 포인트를 벌기 위해 아등바등하는 반면, 리그 소속 클럽들은 정기적으로 레귤러 청소를 통해 안정적으로 포인트를 획득할 수 있었다. 다만 획득 포인트는 탐사 달성률에 따라 차등을 두었으며 한 시즌, 즉 1년 성적을 종합했을 때 가장 낮은 포인트를 획득한 클럽이 강등이 되어 리그에서 퇴출되는 방식이었다.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비정규 일용직에서 어엿한 정직원이 된 것이다. 물론 ‘강등 및 퇴출’이라는 조항이 있긴 하지만, 여기 있는 그 누구도 그 주인공이 자신의 클럽이 될 것이라고는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엄밀히 말하면 크래들타운에서 이번에 시행되는 ‘시티 리그’는 정식 리그로 인정받기에는 많이 애매한 수준의, 현대 프로축구로 치면 5, 6부 리그나 동네 조기축구회 정도의 소규모 리그였다. 물론 어디까지나 최정상에서 군림하는 ‘프라임 리그’를 기준으로 삼았을 때의 얘기였다. 개개인이 일인군단으로 불리며, 현존 최강의 헌터들인 십존(十尊)이 현역으로 활약하는 프라임리그는 스퀘어 전역에 퍼진 가장 악명 높은 16곳의 레귤러를 담당하며, 클럽 간 트레이드로 천문학적인 액수가 오가는 꿈의 리그였으니까.
이곳에 모인 헌터들은 모두 프라임 리그는 아니더라도, 그보다 아래의 정규 리그에 진출하길 원하고 있었다. 이 척박한 도시까지 와서 클럽을 일군 것도 언젠가는 그 꿈을 이룰 수 있다는 희망 때문이었다. ‘시티 리그’는 그 발판으로 삼기에 딱 제격이었다.
최진석은 그들의 마음을 이해하기에, 회장의 열기가 서서히 가라앉기를 기다렸다. 그런 그의 눈에 장내의 열기에 동화되지 못하고 어색하게 앉아 있는 두 사람이 들어왔다. 아이리스의 김정인과 윤희지였다.
‘흠. 저들도 오늘 일진이 사납겠어.’
의미심장한 속내를 감춘 최진석은 어느 정도 흥분이 가신 듯 보이자, 회의를 속개했다.
“규정대로라면 시티 리그에 참여할 수 있는 클럽은 연고 클럽을 비롯해 정식으로 도시에 적을 둔 클럽뿐입니다. 따라서 현재 도시 내 12개의 클럽이 레귤러 9개소를 균등히 탐사할 수 있는 방식으로 편성하도록 하겠습니다.”
“의장, 잠시 발언권을 요청합니다.”
희끗한 머리카락을 말끔히 넘긴 왜소한 체구의 초로인이 손을 들며 발언권을 요청하자, 최진석은 머리를 주억였다.
“발언하세요. 벤젼스 오너.”
왜소한 몸집의 중늙은이는 다름 아닌 구 레드 고르곤의 오너이자 현 클럽 벤젼스의 오너이기도 한 요제프였다. 요제프는 사나운 눈빛으로 멀찍이 떨어진 김정인과 윤희지를 노려보며, 으르렁거리듯 말했다.
“클럽 벤젼스는 클럽 아이리스의 리그 참가에 이의를 제기하는 바요.”
“정식으로 도시 클럽 명부에 등록된 이상, 아이리스의 참가를 제지할 명분은 없습니다.”
“그건 알고 있소. 하지만 그건 저들이 교활한 방법으로 레드 고르곤의 명패를 뺏었기 때문이지, 아이리스가 자력으로 클럽 허가를 받은 게 아니잖소! 거기에 아이리스는 최소 기준인 스무 명은 고사하고 겨우 대여섯 명의 헌터가 전부요. 리그가 애들 장난도 아니고, 이들로 무슨 레귤러를 탐사하겠다는 거요? 말도 안 되는 얘기지. 차라리 아이리스를 제외한 11개의 클럽으로 리그를 구성하던가, 아니면 클럽 기준을 충족시킨 예비 단체를 추후 참가시키는 방향으로 하는 것이 현명해 보이는데, 어떻소?”
“벤젼스 오너의 말이 옳소!”
“이제 와서 무슨 염치로 숟가락을 올리겠다는 건가!”
“아이리스의 참가는 용인될 수 없소! 보아하니 콩고물이라도 얻어먹으려고 총회에 참가한 것 같은데, 어림없는 짓이지!”
요제프의 말에 동조하는 발언들이 홍수처럼 쏟아졌다. 안 그래도 아이리스를 마뜩찮게 여기던 오너들이 요제프의 발언을 기점으로 둑이 터진 것처럼 성화를 부리는 것이었다. 그들을 중심으로 아이리스를 성토하는 분위기가 주를 이루자, 윤희지는 불안함에 떨리는 눈동자로 김정인을 쳐다보았다. 그리고 안심했다. 김정인의 검은 눈동자에 담긴 굳은 심지를 읽었기 때문이었다. 그는 여느 때처럼 든든한 버팀목이 되고 있었다.
“…그렇다는데, 아이리스 오너? 음, 아니… 리더?”
“아이리스 리더라고 불러주십시오. 발언권을 요청합니다.”
“좋습니다. 아이리스 리더. 발언하십시오.”
땅땅.
경쾌한 나무망치 소리가 소란스럽던 장내를 진정시켰다. 월례 총회에서 의장이 가지는 위치를 알 수 있는 대목이었다.
발언권을 얻은 김정인은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사방에 포진한 적개심 어린 눈빛들이 그 행동 하나하나를 뒤쫓아 움직였다. 지구에서 평범하게 살았던 때와 비교하면 이조차도 과분한 관심이다. 하루하루가 힘겨웠던 그때를 떠올리자, 김정인은 찬물을 마신 것처럼 마음이 차분해짐을 느꼈다.
마침내, 굳게 다물려 있던 그의 입이 열렸다.
“저는…… 여러분이 아이리스를 왜 싫어하는지, 도무지 그 이유를 모르겠습니다.”
요제프의 턱이 목젖에 닿을 듯, 떡 벌어졌다.
“뭐, 뭐라고!”
“한번 얘기를 들어보고 싶군요. 벤젼스 오너, 할 말 있으십니까?”
할 말이 있다마다. 요제프는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고함을 질렀다.
“이 뻔뻔한! 왜 아이리스를 싫어하냐고? 정말 몰라서 묻는 건가! 너희들이 얕은 수작을 부려 레드 고르곤을 빼앗지 않았느냐!”
“정당하게 공증인을 불러 주스트가 성립되었고, 그로 인한 온당한 권리를 행사했습니다. 거기에 얕은 수작이라 부를 만한 다른 무언가가 있었는지요?”
요제프는 말문이 턱 막혀 가래 끓는 소리만 냈다. 대신 옆에서 좌시하고 있던 자 중 하나가 나섰다. 요제프의 측근인 모양이었다.
“그건 주스트라 부를 수도 없는 막장이었다! 세상에, 주스트 경기에서 고춧가루를 눈에 뿌리고, 고환을 발로 차는 행위가 어디 말이나 될법한 일인가! 어디 입이 있으면 말을 해보라!”
“정규 헌터가 드래프트를 갓 통과한 소녀를 성적으로 희롱하고, 모욕하며 짓밟는 행위는 부끄럼 없이 떳떳한 모양이군요. 애당초 신출내기들을 상대로 1년차 이상의 헌터들이 상대로 나온, 전력상으로 따지면 상대도 되지 않는 경기였습니다. 그런 경기에서 패배를 하고도 할 말이 남았습니까? 아니면, 그쪽에서 초빙한 공증인의 공신력은 정당한 주스트를 얕은 수작이라 치부해도 될 정도로 형편없는 겁니까?”
“그건…….”
사내는 땀을 삐질삐질 흘릴 뿐, 어버버 거리는 입에서 어떤 말도 꺼내지 못했다. 까딱하다간 칼립스 연맹 위원의 이름에 먹칠을 할 판이었으니까. 결국 그는 본전치기도 못하고 자리로 되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요제프 일당의 입을 다물게 한 김정인은 좌중을 오시하며 말했다.
“아이리스가 나타나기 전, 크래들타운은 레드 고르곤을 중심으로 한 일당체제였습니다. 하지만 레드 고르곤이 무너진 직후, 그 아래에서 숨죽이던 클럽들이 기지개를 켜며 세력의 다각화를 이루어냈죠. 까놓고 말해서, 여기 있는 분들은 오히려 아이리스를 반겨야 하는 입장이 아닙니까?”
“후후후. 레드 고르곤의 폭거에서 벗어나게 해줬다, 이건가?”
“그런 셈이죠.”
짝. 짝. 짝.
가만히 듣고 있던 사각턱의 사내가 느릿한 템포로 박수를 쳤다. 굵고 각진 얼굴, 붓으로 칠한 듯 짙은 눈썹 아래의 호목(虎目)이 무척이나 용맹해 보이는 중년인은 크래들타운 4중의 하나인 아머 타이탄즈(Armor titans)의 오너 겸 리더를 맡고 있는 강상문이었다.
“아주 배짱이 두둑하군. 근래 아이리스의 리더가 맨 이터를 쫓아 이곳저곳 돌아다녔다는 얘기는 들었지. 총회의 안건도 그때 주워들은 건가?”
“부인하지는 않겠습니다.”
강상문은 굵은 눈썹을 꿈틀거리며 피식 웃었다.
“뭐, 자네 말도 영 틀린 말은 아니야. 우리가 레드 고르곤 밑에서 찍소리도 못하고 눌려 지냈다는 것처럼 들려서 기분은 나쁘지만.”
“사실을 말했을 뿐이죠.”
“흐흐흐. 식견이 넓어지더니 간도 그만큼 커진 것 같군. 도저히 이번 드래프트로 들어 온 애송이로 보이지 않을 정도야. 그래, 자고로 남자는 그래야지. 자네 배포를 봐서라도, 아머 타이탄즈는 아이리스의 리그 참가에 별로 상관하고 싶지는 않아.”
“타이탄즈 오너!”
아이리스가 리그에 참여하게 된다면 어지간한 방법으로는 건드릴 수도 없게 된다. 호시탐탐 아이리스의 해체를 노리고 있는 벤젼스로서는 절대 막아야 할 일이었다. 요제프의 급박한 부르짖음이 들렸지만, 강상문은 어디 개가 짖느냐는 듯 깡그리 무시해 버렸다.
“하지만 자네들도 최소한의 도의는 지켜야지. 이 크래들타운은 우리가 7년 동안 일궈온 터전이야. ‘시티 리그’는 그 결실이고. 그걸 이제 와서 숟가락만 얹겠다는 건 도리가 아니지 않나? 아니, 숟가락을 들 힘이 있을지도 의문이군.”
김정인은 작게 심호흡을 했다. 강상문의 말대로였다. 이대로 아이리스가 리그에 참가한다면 끝없이 잡음이 불거질 것은 자명한 일이었다. 여기 모여 있는 클럽 뿐 아니라, 크래들타운의 누구도 납득하지 못하리라. 그건 차라리 리그 참가를 포기하느니만 못한 일이었다.
“그래서 제안을 하나 하겠습니다.”
“제안?”
“지금 문제시 되는 것은 아이리스에 레귤러를 탐사할 자격이 있느냐가 아니라, 탐사할 능력이 되느냐겠죠. 그렇다면 증명해 보이겠습니다. 9군데의 레귤러 중 어디라도 좋습니다. 아이리스는 자력으로 레귤러 탐사를 ‘성공’해 보이겠습니다.”
김정인의 공언에 강상문뿐 아니라 회장에 자리한 모든 이들이 아연실색했다. 심지어 흥미롭게 지켜보던 최진석마저 나무망치를 떨어뜨릴 뻔 했다. 그만큼 김정인의 발언이 어처구니없었기 때문이었다. 현재 크래들타운의 레귤러에 도전한 클럽들의 기록을 살펴보면, 평균 달성률이 약 6할을 조금 넘는 정도였다. 10인으로 구성된 정규 탐험대가 그 정도인데, 지금 아이리스의 전력으로 탐사를 성공해 보이겠다? 지나가던 개가 웃을 일이었다.
회장이 술렁이는 가운데, 가까스로 정신을 수습한 강상문이 재차 확인하듯 물었다. 그는 아직도 자신이 헛소리를 들은 것이라 여기고 있었다.
“탐사를 성공한다고? 7할 이상의 달성률을 보이겠단 말인가?”
“그렇습니다.”
“못하면?”
“아이리스를 해체하겠습니다. 레귤러 탐사도 못해낸다면, 클럽의 존재의의가 없으니까요.”
쿵!
연이은 폭탄선언에 사람들은 입도 뻥긋하지 못한 채 숨을 들이켰다.
제 10회 클럽 월례 총회가 파했다. 김정인의 제안은 받아들여졌다. 아머 타이탄즈의 리더가 지지를 보낸데 이어, 골드러쉬의 헤르만까지 편을 들어준 덕이었다. 그 여파에 휩쓸렸는지는 몰라도, 벤젼스를 제외한 4중의 모든 클럽들이 ‘모 아니면 도’식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아이리스가 레귤러 탐사에 성공한다면 크래들타운의 정식 클럽으로 인정함과 동시에 리그의 일원으로 받아들이지만, 실패한다면 클럽 홀 부지를 비롯한 모든 재산을 압류하고 그 인원들은 도시 밖으로 추방한다는 극단적인 조건이었다.
김정인과 윤희지는 텅 비어버린 회장에 마지막까지 남아 있었다.
“수고했어요. 정인 씨.”
“해내지 못한다면, 아이리스를 해체한다는 말은 진심이었습니다.”
“알아요.”
“화내지 않는 겁니까?”
윤희지는 말없이 그를 끌어안았다. 김정인은 조금 당황한 듯 보였지만 이내 팔을 뻗어 그녀의 가느다란 허리를 마주 감쌌다. 보드랍고 나긋나긋한 여인의 몸과 단단하고 억센 사내의 몸이 포개졌다.
윤희지는 기다란 속눈썹을 내리깔며 김정인의 귓가에 속삭였다.
“그거 알아요? 우리, 포옹은 처음인 거?”
“흠, 흠……. 그런가요.”
멋없게 대답하는 김정인. 윤희지는 붉은 입술을 삐죽거렸지만 소리 내어 타박하지는 않았다. 어쩌겠나, 원래 이런 남자인걸.
“가끔 그런 생각을 해요. 정인 씨가 말하면 정말 그대로 될 것 같다는…… 신기한 생각. 뚜렷한 계획이 있는 것도 아니고, 만반의 준비가 되어 있는 것도 아닌데… 그냥 그렇게 느껴져요. 정인 씨, 어떻게 그럴 수 있는 거죠?”
“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확신은 있습니다. 제 믿음이 틀리지 않다는 확신이요.”
“후후. 그럼 저도 정인 씨의 그 믿음에 베팅하겠어요.”
옅은 숨소리와 함께, 촉촉한 입술이 그의 볼에 맞닿았다.
“우리, 내일은 다 같이 푹 쉬어요. 아무 생각도 하지 말고 푸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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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밌게 보셨다면 추천/코멘 부탁드립니다.
아무래도 다음화는 그리즐리의 신고식 겸 여러 이벤트에 치중한 화가 될 것 같군요.
슈퍼테크닉 / 2연참했습니다 ㅠㅠ
티렌 / 감사합니다.
장마와방 / 이 곰은 위험한 곰입니다.
올리고당내리고당 / ㅠㅠ 당분간 안녕히… 빨리 오세요~
雨雲香 / 죄송합니다 ㅠㅠ
doskyob / 타이밍에 맞췄네요 감사합니다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