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unter Club RAW - chapter (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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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그리즐리(Grizzly)
표리부동(表裏不同)이란 말이 있다. 사람의 겉과 속이 다름을 일컫는 말이다. 이처럼 외관만 봐서는 그 속을 알 수 없는 것이 사람인데, 어디에나 예외는 있는 법이다.
성실한 황소처럼 순박하고 우둔해 보이는 외모를 가진 이두식은 표리부동이란 말이 통용되지 않는 실사례 같은 청년이었다. ‘그리즐리’라는 별명이나, 그의 과거에 얽혀 있는 피비린내 나는 전력들도, 도저히 이두식이라는 사람만 놓고 봤을 때는 상상하기 힘든 것들이었다.
“반갑습니다. 이두식입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아이리스 라인에 당도한 이두식이 해맑게 웃으며 처음 인사를 건넸을 때만 하더라도, 그에 대한 소문을 들은 일행들은 섣불리 접근하길 꺼려하는 눈치였다. 그러나 어색하게나마 몇 번의 대화가 오가고 나자, 상황은 백팔십도 달라졌다.
이두식은 좀처럼 보기 힘든 맘씨 바른 청년이었다. 속내를 감추는 법이 없었고, 누구에게나 솔직하게 마음을 열었다. 그 인성에 감화된 멤버들이 그를 받아들인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수순이었다.
“저렇게 멍청할 수가 있다니. 뒤통수 맞기 딱 좋은 케이스네.”
딱 한 사람, 데모나를 제외하면.
어찌 됐든 이두식은 별 무리 없이 아이리스에 녹아들었고, 멤버들은 이두식의 환영회 겸 사기진작을 위해 작은 파티를 열었다. 파티라고 해봤자 간단한 다과 몇 개가 전부였지만. 흥취를 돋운다는 취지에는 딱 알맞은 이벤트였다.
“흐응, 그럼 두식 오빠 급료는 내 30배네요? 너무한 거 아니에요?”
“그, 그런가? 미안하다.”
뭐가 미안한지는 몰랐지만, 일단 고개부터 숙이고 보는 이두식이었다. 그러자 오히려 당황한 것은 장난을 친 신소율이었다.
“무슨 남자가 그렇게 쉽게 고개를 숙여요? 오빠가 미안할 게 뭐 있다고!”
“미, 미안!”
“어휴!”
안절부절 못하며 자라처럼 머리를 수그리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다그칠 맘도 생기지 않는다. 이건 순진한 정도가 아니라 어딘가 좀 모자란 것 같지 않은가. 실제로 이두식은 스물 셋이란 나이에 비해 행동거지가 조금 어리숙한 면이 있었다.
“과자 줄게요! 아~!”
“아.”
“와아! 다 들어갔어!”
가희는 이두식의 커다란 입에 과자를 듬뿍 채워 넣고는 손뼉을 치며 즐거워했다. 그 모습이 꼭 제 엄마가 소여물 주는 것을 따라하는 것 같았다.
한편 그로부터 조금 떨어진 테이블에서는 한창 심각한 이야기가 오가는 중이었다.
“그래서 이번에 사활을 걸고 레귤러 탐사에 나서게 되었다고?”
“예.”
“조금 성급했던 것 아니냐? 물론 네 결정이라면 난 따르겠지만…….”
꼭 노구덕의 노파심이라고만 볼 수는 없었다. 현실적으로도 아이리스의 레귤러 탐사는 실패로 돌아갈 것으로 예상하는 사람들이 대다수였으니까. 하지만 걱정을 하는 노구덕도 그렇고, 소식을 접한 멤버들은 모두 한결 같은 마음으로 김정인의 결정을 지지했다.
윤희지처럼 맹목적인 믿음은 아니었지만, 어쩐지 김정인의 말에는 사람을 따르게 하는 힘이 있었다. 그 점을 제하더라도, 동고동락을 함께 한 동료로서, 클럽을 이끄는 리더로서 김정인이 받는 신뢰는 무척이나 두터운 것이었다.
“형님. 이 탐사가 아이리스에게는 큰 분기점이 될 겁니다. 지금으로서는 우리가 취할 수 있는 가장 최선의 방법이었다고 생각하고요.”
“그래. 네가 그렇다면 그런 거겠지. 나도 그렇고, 모두가 널 믿고 있어. 네가 리더니까. 네가 정하면 우린 그저 따를 뿐이야.”
“감사합니다.”
“고마워요.”
분명 김정인 한 사람에게 말을 했는데, 돌아오는 대답이 두 개다. 노구덕은 게슴츠레한 눈으로 김정인과 윤희지를 번갈아 보더니, 다 들으라는 듯 중얼거렸다.
“벌써부터 제 서방을 챙기는구만……. 이거 어디 서러워서 살겠나.”
“형님!”
“서, 서방이요? 그게 무슨!”
노구덕의 말 한마디에 차분하기로는 클럽 내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운 두 남녀가 제각기 당황해서 손을 마구 휘젓는 진귀한 광경이 연출됐다. 딱 연애 초기의 풋풋함이 느껴지는 그 모습에, 노구덕은 킬킬거리면서도 마음 한편이 따스해지는 것 같았다.
‘희지 저것도 참 여우기질이 있단 말이야. 그럴 기미는 보이긴 했는데, 언제 저렇게 구워삶았지?’
그는 아직도 좀 전의 여운이 남아 볼에 옅은 홍조가 진 두 사람에게 물었다.
“농담이다. 근데 희지 너, 얼굴이 왜 그렇게 빨개? 술 먹었어?”
“제… 제 얼굴이 뭐 어때서요? 차, 찻주전자 가지고 올게요!”
새침하게 대꾸하던 윤희지는 더는 버티지 못하겠는지, 화끈거리는 얼굴을 감싸며 주방으로 총총히 사라졌다. 노구덕은 아주 재밌어 죽겠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이야. 저 새침데기가 어디 사는 누구랑 엮이기만 하면 천하의 부끄럼쟁이가 되어버리네.”
“형님, 그만하십시오.”
“알았다, 알았어. 너도 점잔 빼지만 말고 희지한테 잘 대해줘라. 쟤 저래 봬도 한국의 톱스타 아니냐. 요즘 연예인 같지 않게 거드름 피우는 것도 없고, 참 착해.”
“예…….”
살짝 끝을 흐리는 것이 영 미덥지 못했지만, 노구덕은 남의 연애사에 대한 관심은 이쯤에서 접어두기로 했다.
“그건 그렇고, 어느 레귤러로 가게 될지는 결정이 난 거냐?”
“아마 티라녹의 마굴(魔窟)로 가게 될 것 같습니다. 자세한 것은 헌터 하우스에 들러 자료를 참고 해야지요.”
“그래……. 그럼 저 녀석도 함께 가는 거고?”
노구덕이 손가락을 들어 신소율과 임가희 사이에서 꾸역꾸역 비스킷을 먹어 치우고 있는 이두식을 가리키자, 김정인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번 일을 위해 영입한 히든카드니까요.”
“듣자하니 임대라며? 저놈, 얘기를 해 보니까 좀 바보 같긴 해도 심성은 착한 놈이야. 괜히 정 붙였다 휙 떠나면 아쉬운데…….”
“계약 내용이 조금 복잡합니다. 자잘한 걸 제외하고 말씀드리면, 레귤러 탐사 때는 몸상태에 큰 하자가 없는 한 반드시 이두식을 참가시켜야 하고, 1년 후에는 골드러쉬에 3m의 이적료를 지불하고 완전이적을 해야 하는 조항이 있습니다. 단, 아이리스가 이적료를 지불하지 못할 경우 계약불이행의 책임을 져 30m의 위약금을 물어야 하고요.”
총회에서 헤르만이 아이리스의 리그 진출을 거들었던 데에는 이런 이유가 있었다. 골드러쉬와 아이리스 간의 계약내용을 들은 노구덕은 떨떠름하게 말했다.
“골드러쉬 그놈들, 아주 우리가 쫄딱 망하기만을 바라겠어. 아니면 두식이 저놈의 광증(狂症)이 도지길 기다리거나. 두식이를 무조건 레귤러 탐사에 포함시키라고? 이거 너무 노골적이잖아.”
“그래서 이번 탐사에 클럽의 명운을 건 겁니다. 어차피 올인 베팅이라, 잃을 게 없으니까요. 후후.”
“자식, 너도 그렇게 웃을 줄 아는구나. 살 떨린다, 살 떨려. 자주 좀 웃어라.”
가볍게 핀잔 섞인 충고를 한 노구덕은 천천히 거구를 일으켰다. 모처럼 즐기는 날이다. 언제까지고 이런 골치 아픈 얘기로 궁상을 떨 수는 없지 않겠는가.
파티 분위기가 무르익고 있는 3층과는 달리, 2층의 주방은 비교적 조용했다. 간혹 들리는 음료를 홀짝이는 소리나 도마 위에 타다닥 칼질하는 소리가 사람이 있다는 것을 알려주고 있었다.
그동안 맹훈련을 했던 멤버들을 위해 일일주방장을 자처한 임유진은(평소에도 요리 담당은 그녀였지만.) 간식을 내기 위해 당근과 양파를 채 썰다 말고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녀는 구석진 테이블에 앉아 홀로 레드와인을 홀짝이는 데모나에게 말했다.
“데모나. 너도 올라가서 있는 게 낫지 않겠니? 오늘 같은 날은 사람들이랑 어울리기도 좋을 텐데…….”
“쓸데없는 참견 마. 난 혼자 있는 게 더 편하니까.”
“그래도 멤버들과 하루 이틀 볼 사이도 아닌데, 더 친해지면 좋지 않겠어?”
“그래서 이 맛없는 비스킷을 꼭꼭 씹어 먹으며, 위의 덜떨어진 무리에 들어가 애완동물처럼 아양을 떨란 소리? 미안하지만 그럴 필요성은 전혀 못 느끼겠네.”
임유진의 가녀린 어깨가 파르르 떨렸다. 뭣보다 ‘맛없는 비스킷’이란 말이 뾰족한 가시가 되어 심장을 쿡쿡 찌르는 것 같았다.
‘그렇게 맛이 없나? 나름 공들인 비스킷인데…….’
그녀는 상처 입은 작은 새의 눈으로 데모나가 있는 쪽을 쳐다봤다. 은근히 주당 기질이 있는 데모나는 값싼 편이긴 하지만, 그래도 클럽 홀에 비치되어 있는 와인 중에는 고급인 와인을 개봉해 독작하고 있었다.
처연한 임유진의 시선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달콤 쌉싸름한 와인의 뒷맛을 음미하는 데모나는 완벽한 마이페이스. 그 자체였다. 철저히 공기 취급을 당한 임유진이 힘없이 시선을 돌리려는데, 문득 데모나의 테이블에 놓인 비스킷 바구니의 절반 이상이 비워져 있는 것이 눈에 띄었다.
‘저건 3인분으로 준비한 건데……. 호호, 얘도 참. 솔직하지 못하다니깐.’
구름이 걷히고 하늘이 맑게 갠 것처럼, 활짝 얼굴을 편 임유진은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부엌칼을 잡았다. 조용하던 주방에 돌연 그녀의 경쾌한 흥얼거림이 들어차자, 데모나는 콧잔등을 찡그리며 임유진을 노려봤다.
“시끄러우니까 좀 조용히 하지?”
“흐흐흥~. 이게 뭐가 시끄럽다고 그러니?”
그러면서 자신을 귀엽다는 듯 쳐다보는 임유진. 마치 딸아이인 가희를 볼 때의 그것과 똑같지 않은가. 그것이 데모나의 기분을 팍 상하게 만들었다. 그녀는 탁 소리가 나도록 와인글라스를 내려놓으며 불쾌함을 가득 담아 중얼거렸다.
“더러워. 눈빛만으로 능욕당한 기분이야.”
“어? 너도 여기 있었냐?”
“하. 이젠 술맛 떨어지는 면상까지. 최악이야.”
불쑥 등장한 노구덕을 보며 씹어뱉듯 투덜거린 데모나는 반쯤 비어버린 비스킷 바구니에 와인을 담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디 가냐?”
“내 방.”
짧게 답한 데모나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사라져버렸다.
“하여간 까칠하기는.”
“아직 사람들 사이에서 지내는 게 어색한가 봐요. 이해해줘야죠.”
“우리야 그러려니 넘기지만 다른 사람들한테도 저렇게 톡톡 쏘아대면 오해가 생길 수도 있어.”
“후훗. 그래도 사리분별은 할 줄 아는 걸요. 데모나가 가희랑 얼마나 잘 놀아주는데요. 구덕 씨를 빼면 가희가 가장 좋아라하는 사람이 데모나예요.”
이건 또 의외였다. 저 매사에 불만투성이 마녀가 어린아이랑 놀아주는 취미도 있었던가? 노구덕은 도저히 가희와 데모나가 어울리는 그림이 상상이 되질 않았다.
“그래? 애 울리지나 않으면 다행일 것 같은데.”
“데모나가 워낙 신기한 재주가 많거든요. 처음에는 몇 번 울리기도 했는데, 나중에는 귀찮다고 투덜대면서도 곧잘 놀아주더라고요. 가희도 좋아하고요.”
“흐음.”
사람의 몸을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해부해대는 냉혈의 마녀라도 모성(母性)은 품고 있다는 것일까? 노구덕은 언제 기회를 봐서 그 현장을 직접 관람하리라 다짐하며, 요리를 하고 있는 임유진에게 다가갔다.
“음. 냄새 좋다. 어, 부침개잖아? 이야, 어쩐지 냄새가 익숙하다 싶더니만, 이건 또 오랜만인데.”
“제 자신작이에요. 한번 드셔보실래요?”
임유진은 젓가락으로 먹음직스럽게 익은 부침개 한 귀퉁이를 뚝 떼어 내서는, 입으로 후후 불며 노구덕의 앞에 가져갔다.
노구덕은 김이 모락모락 피어나는 부침개를 냉큼 받아먹었다. 부드러운 반죽 속에서 아삭아삭 씹히는 야채들의 식감이 잘 우러나는 맛. 그 옛날 어머니가 만들어준 부침개의 맛 그대로였다.
그는 눈을 휘둥그레 뜨고 엄지손가락을 들어보였다.
“이야~! 우리 유진이 요리 잘하는 줄은 알았는데 이건 아주 제대로네, 제대로야!”
조금 호들갑을 떠는 감이 없잖아 있지만, 자신의 요리를 맛있게 먹어주는데 싫어할 사람은 없다. 임유진은 활짝 만개한 꽃처럼 아름다운 미소를 지었다.
“한 점 더 드릴까요? 아, 여기 간장도 있어요. 어머!”
느닷없이 귀밑머리를 간질이는 더운 숨결이 밀려오자, 임유진은 화들짝 놀라 새된 소리를 냈다. 노구덕의 산악 같은 동체가 그녀의 조그마한 몸을 뒤에서 껴안은 탓이었다.
“구, 구덕 씨?”
당황한 임유진이 몸을 비틀며 벗어나려고 했지만, 노구덕은 새장이라도 된 것처럼 꼼짝도 하지 않았다.
“유진아. 오빠 정말 오래 참았다. 폭발 직전이야, 지금.”
빈말이 아니다. 노구덕은 정말 오래 참았다. 첫날을 제외하고는 백일 가까이 임유진의 살결을 느껴보지 못했다. 고기 맛을 본 중치고는 정말 초인적인 인내심을 발휘한 것이다. 그 고기가 어디 보통 고기던가? 임유진은 그 어떤 진미에 빗대도 부족한 우물(尤物)인 것을.
“자… 잠깐만요. 여기서는…… 학!”
살짝 벌어진 붉은색 입술 사이로 짧은 콧소리가 흘러나왔다. 어느새 치마를 위로 들춰낸 사내의 손이 매끄러운 다리 사이의 비밀스런 심처를 침범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것도 모자라 구렁이 담 넘어가듯 속옷 속으로 파고들기까지.
울창한 수풀을 우악스레 헤집고 다니던 사내의 중지 손가락이 슬그머니 더 깊은 곳으로 빠져들었다. 이내 새끼 구렁이는 앞을 가로막는 도톰한 꽃잎을 좌우로 헤쳐 벌리고, 아주 깊은 옹달샘에 도달했다.
순식간에 노구덕에게 내밀한 속살을 점령당한 임유진은 어쩔 수 없다는 듯, 다리를 좀 더 벌리고 서서 사내의 손이 편히 움직일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남자들이란 한번 스위치가 들어가면 다 이렇게 앞뒤재지 않고 행동하는 걸까?’
속으로 깊은 숨을 내쉬는 임유진이었다. 보통 때는 나이다운 연륜으로 조언을 아끼지 않는 노구덕도, 이럴 때는 어리광부리는 아이나 다를 바 없었다.
“아, 안되는데……. 으흐응……”
새끼 구렁이의 집요한 지분거림에 다소 메말라 있던 옹달샘에 서서히 단물이 차오르기 시작했다. 임유진은 노구덕의 애무에 아랫도리가 찌릿찌릿한 와중에도 수시로 위로 통하는 계단을 곁눈질했다. 벼랑 끝에서 위태로운 줄다리기를 하는듯하여 가슴이 조마조마했다.
이런 추태를 다른 멤버들에게 들키기라도 한다면…….
탁자를 짚고 선 임유진의 손끝에서 붉은색의 마력줄기가 스멀스멀 퍼져나갔다. 목적지는 위, 아래로 통하는 계단. 급한 대로 차단막을 쳐 둘 셈이었다.
‘흐흐, 그렇단 말이지.’
노구덕도 임유진이 마력을 사용하는 걸 보았다. 탁자 위로 붉은색 마력이 뻗어나는 걸 보고 있자니, 갑자기 장난기가 발동한 그는 지금까지보다 더욱 대담하게 움직였다.
그는 임유진의 정신이 마력 컨트롤에 쏠린 틈을 타, 그녀의 치마를 허리어림까지 훌러덩 까 올려 버렸다. 그리고는 탐스럽게 드러난 엉덩이에 걸려 있는 속옷을 무릎까지 쑥 내려버린 뒤, 육중한 실체를 그녀의 가랑이 사이로 쑤욱 집어넣었다.
순진하게도 노구덕의 행위가 가벼운 애무 정도로 그칠 줄 알았던 임유진으로서는, 완벽한 기습을 당한 셈이었다. 무방비 상태로 노구덕의 물건을 받아들인 임유진은 세차게 몸을 들썩였다.
“아으, 아하학……!”
온천수를 함빡 머금은 옹달샘 속으로 무지막지한 위용을 자랑하는 거대한 이무기 한 마리가 첨벙 뛰어들었다. 뜨거운 물웅덩이에 세모꼴의 대가리를 처박은 이무기는 기어코 그 끝을 구경하겠다는 듯, 주변의 여린 꽃잎을 무자비하게 헤치며 비대한 몸을 들이밀었다.
“…윽! 흐윽!”
임유진은 급히 입을 틀어막았지만, 그 사이로 신음이 새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꼿꼿하게 곤두선 불방망이가 소중한 애기집 입구를 두드리며 진퇴를 반복할 때마다, 임유진의 가녀린 몸이 파도를 만난 난파선처럼 위태롭게 출렁였다. 그에 따라 그녀가 거미줄처럼 쳐 놓은 마력줄기도 어지럽게 흐트러졌다.
임유진은 입술을 꾹 깨물었다. 어떻게든 신음을 참고 싶은데, 여인의 몸뚱이란 원래 이런 것인지 끝내 앓는 소리가 나오고야 만다.
그녀는 뒤를 돌아보며 애원하듯 말했다.
“학! 학! 지, 진짜… 아흑! 누가 오기라도… 학! 하, 하면…….”
“으윽! 오랜만에 해서 빨리 끝날 것 같으니까, 걱정 마!”
“그, 그런 문제가… 하아앙!”
끈적이는 점액으로 뒤덮인 암녹색 이무기가 분홍색 계곡 속으로 깊게 틀어박힐 때마다, 노구덕의 불두덩과 임유진의 엉덩이가 세차게 부딪치며 찰싹이는 소리를 냈다.
임유진은 노구덕이 뒤에서 강하게 내려찍는 바람에 몇 번이나 탁자 위로 엎어질 뻔했다. 그녀는 결국 입에 대고 있던 손마저 내린 채 안간힘을 써가며 탁자 모서리를 붙들었다. 야릇한 신음소리가 여지없이 튀어나왔지만,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탁자째 앞으로 떠밀려버릴 것 같았다. 노구덕의 움직임이 점차 속도를 더해갈수록, 임유진이 붙잡고 있는 탁자도 쿵쿵거리며 거칠게 뒤흔들렸다.
파정의 순간, 임유진의 엉덩이가 형편없이 짓눌릴 정도로 빈틈없이 치골을 밀착시킨 노구덕은 있는 힘껏, 위를 향해 허리를 들어올렸다. 그 바람에 가뜩이나 까치발을 딛고 있던 임유진의 발끝이 살짝 떠오르며 허우적거렸다.
“우오오오옷!”
“학! 학! 학! 학! 아으, 아흐, 아흐으으으–!”
동시에 긴 단말마를 발한 두 사람은, 그대로 몸을 포갠 채 탁자 위에 늘어졌다. 임유진의 흐드러진 허벅지 사이로, 누렇게 덩어리 진 정액이 매끄러운 살결을 타고 흘러내렸다. 무릎까지 말려 내려간 속옷은 이미 위에서 뚝뚝 떨어진 정액 세례에 못 쓰게 된지 오래였다.
초록색의 동체에 깔린 채 가쁜 숨을 할딱이던 임유진은 반쯤 풀린 눈으로 더듬더듬 손을 움직였다. 다행히 마지막까지 정신을 놓지 않은 덕에 사방에 뿌려 놓았던 기운들을 무리 없이 회수할 수 있었다. 이제 남은 건 누군가 오기 전에 서둘러 깔끔하게 뒷정리를 하는 것.
“구덕 씨……. 저 좀 일어날게요.”
조심스럽게 몸을 틀어보았지만
“잠깐, 잠깐만.”
“네? 어서… 어…? 힉!”
임유진은 아랫배에서 느껴지는 거센 이물감에 엉덩이를 부르르 떨었다. 몸속에 죽은 듯 늘어져 있던 이무기가 어느새 세찬 용트림을 하며 부활의 신호탄을 쏘아올리고 있었다. 한 번 죽었다 깨어난 녀석은 전보다 더욱 굵직한 몸집을 자랑하며, 어서 더 하자고 보채듯 징그러운 몸을 꿈틀거렸다.
“마… 맙소사.”
더 커졌다. 안에서 직접 살이 맞닿고 있기에 확연히 느낄 수 있었다. 이게 말이 되나? 사정한지 얼마나 됐다고? 오크의 정력이 아무리 절륜하다지만, 노구덕과 첫관계를 가졌을 때도 이 정도는 아니었다.
기절초풍할 듯 그렁그렁한 눈을 마주한 노구덕은 머쓱하게 대머리를 긁적였다.
“그게… 이쪽도 회복이 빨라진 것 같아. 장소 바꿔서 좀만 더 하면 안 될까? 응?”
“…….”
그날, 임유진은 헌터가 된 이후 사상 처음으로 두 다리에 힘이 풀려 쓰러지는 진귀한 경험을 할 수 있었다.
============================ 작품 후기 ============================
재밌게 보셨다면 추천 / 코멘 부탁드립니다.
그리즐리 파트가 끝났는데, 어째 그리즐리 비중은 없고 잡다한 이벤트를 모아놓은 느낌이네요. 이두식이 깊은 인상을 남기려면 탐사에나 들어가야 할 것 같습니다.
덧붙이자면 앞으로 한동안 한눈팔 틈없이 굴러야 하는 주인공이 불쌍해 이번화에서 호강좀 시켜줬네요….
coconet31 / 주인공 위주로 이야기를 풀어나가기 때문에, 김정인과 윤희지가 좀 더 가까워 지는 과정은 생략했습니다. 시간이 나면 외전격으로 쓸 지도.. 솔직히 모르겠네요
슈퍼테크닉 / 미저리 ㄷㄷㄷㄷ 무섭습니다
장마와방 / 어쩌면 제 서문이 참고가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어떻게 될지는.. 아직 아무도 모릅니다. 작가도 몰라요
하늘에서 오는비 / 심지어 항아리가 집이라니; ㄷㄷㄷ
빙뢰(氷雷) / 드래프트에서 눈맞은 이후 남몰래 사랑을 키워왔네요!
雨雲香 / 부담가지고 열심히 써보겠습니다.
Czdice / 그건 저도 모릅니다 어쩌면.. 흠..
티렌 / 넵 감사합니다.
노구리 / 노구리? 어째 주인공 이름과 묘하게.. 코멘트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