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unter Club RAW - chapter (4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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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7# 광야의 혈전
그리고.
“쿠헉!”
노구덕의 입에서 비죽한 피화살이 내뿜어졌다. 엄청난 압력이 담긴 가리발디의 주먹에 명치를 정통으로 얻어맞은 그는 달려들 때보다 더 빠른 속도로 튕겨져 뒤로 날아갔다.
“아저씨!”
“오너!”
개구리처럼 뻗어버린 노구덕의 주위로 사색이 된 아이리스 헌터들이 모여들었다. 그러나 입에 보글거리는 피거품을 문 노구덕은 간헐적으로 몸만 꿈틀거릴 뿐, 주위의 부름에도 여전히 꿈이라도 꾸는 것처럼 몽롱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주먹 한 방에 노구덕을 날려버린 가리발디는 대 자로 엎어진 그를 비웃듯, 목청에서 야성이 어린 포효성을 길게 뽑아냈다.
“그르르릉… 같잖은 놈.”
홧김에 내지른 주먹이라 잠시 세기를 조절하는 걸 잊었다. 명치를 제대로 맞은 데다, 주먹 끝에 뼈마디가 박살나는 것이 확실히 느껴졌으니, 놈은 볼 것도 없이 죽은 목숨이었다. 오히려 가슴뼈가 통째로 허물어지고도 즉사를 하지 않은 것이 용할 정도.
가리발디는 베일 듯한 시선으로 전면의 무리를 훑어 내렸다. 메인디쉬가 영 싱거워 손맛을 느낄 겨를도 없었지만, 그에 대한 아쉬움은 저쪽의 계집들로 채우면 된다. 자세히 보니 꽤나 먹음직스러운 얼굴들이 보이지 않은가.
“주인님, 어떻게 할까요?”
“에테르 윙과 룬메이커는 내가 맡겠다. 너희는 저 떨거지들을 처리해라. 단, 계집들의 목숨은 붙여 놔라. 아, 지천에 마법 트랩이 깔려 있으니 유의하도록 하고.”
“명을 받듭니다!”
로건을 비롯한 루나틱스의 헌터들이 전장으로 뛰어들자, 노구덕 주변을 지키고 있던 아이리스 헌터들도 발 빠른 대응에 나섰다.
“어딜!”
“아저씨는 절대 못 건드려!”
“덤벼라!”
양 측의 무리가 한 덩어리로 뒤엉켜 전투에 돌입했다. 최후방의 안세희가 선홍색의 오오라를 일으키고, 헨더슨이 지원을 도맡았다.
그리고 나머지 일행은 난입한 네 명의 라이칸스로프를 맞이했다.
가장 먼저 달려든 로건의 앞을 막아선 것은 항상 여유있는 웃음을 달고 다니는 귀공자, 도일이었다.
“룬메이커.”
“로건, 당신과는 예전부터 한 번 싸워보고 싶었습니다. 주역이 아닌 건 좀 아쉽지만요.”
“이적을 했다는 건 들었는데… 안타깝게도 줄을 잘못 잡았군.”
“글쎄, 어떨까요. 싸워보면 알게 되겠죠.”
“크아아앙!”
검은 빛깔의 야수로 변한 로건이 눈부시도록 새하얀 빙벽으로 몸을 둘러싼 도일에게 달려든 그때, 벌판의 다른 곳에서도 동시다발적으로 전투가 벌어졌다.
에테르 윙 박승찬과 소피아가 각기 라이칸스로프 한 명을 도맡았고, 이두식과 박지현이 한 조를 이루어 다른 라이칸스로프를 상대했다.
“으. 나도 싸우고 싶은데.”
“꼬맹이, 너까지 빠지면 누가 우릴 봐 주냐? 잠자코 여기 있어.”
“칫, 알고 있다고요.”
마지막, 신소율은 전투지원 겸, 헨더슨과 안세희가 있는 후위 보호라는 임무를 떠안고 얌전히 후방에 남았다.
“…흐음.”
전황이 바쁘게 돌아가는 동안, 음흉하게 변한 가리발디의 눈은 신소율과 안세희, 박지현, 소피아 등 여성진의 얼굴과 몸매를 빠르게 훑어 내리고 있었다. 그의 머릿속엔 이미 이 전투의 결과 따위는 한참 전에 정해진 지 오래였다.
“볼수록 괜찮은 물건들이군. 특히 저… 혼돈의 정령사. 비트레이 오너의 동생이라 그런지, 각별한 맛이 있을 것 같아. 어디… 느음?”
한적한 걸음걸이로 전장을 향해 나아가던 가리발디는 돌연 발을 멈추고 눈자위를 꿈틀거렸다. 거센 격랑에 휩쓸린 전장의 한복판, 좀비처럼 미적거리며 몸을 일으키는 사내가 시야에 들어왔기 때문이다.
가슴 쪽에 덧댄 강판이 찌그러져 함몰된 것이 눈에 보이는데도, 뻥 꿰뚫린 구멍 속으로 비쳐 보이는 녹색 피부는 주변의 핏자국이 마치 거짓인 양 아무런 상처도 보이지 않는다.
찰나 동안 말을 잃어버린 가리발디는 믿지 못할 광경을 본 양 가만히 눈을 끔벅였다.
“그걸 맞고… 살았다고?”
무의식중에 기가 찬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가리발디는 노구덕에게서 시선을 떼고 자신의 움켜쥔 주먹을 내려다보았다. 분명 주먹에는 놈의 피륙을 짓뭉개는 촉감이 생생히 남아 있는데, 상대는 죽기는커녕 상처 하나 없이 몸을 일으켰다? 귀신이 곡할 노릇이었다.
“…그렇군. 믿는 수가 있었어. 어쩐지 너무 싱겁더라니.”
그는 나직하게 혀를 찼다. 어찌 된 까닭인지 대장이 쓰러졌는데도 주변 헌터들이 별반 동요하는 기색이 없더라니, 이런 이유가 있었던 모양이다.
“주먹이 아주 묵직하더군. 하마터면 정신줄을 놓아버릴 뻔했다.”
퉤, 입 속에 앙금처럼 남아 있는 핏물을 뱉어낸 노구덕의 몰골은 처음과는 상당히 달라져 있었다.
전신의 근육이 고무공처럼 팽창하여 흡사 오우거처럼 거대화된 형상. 키도 머리통 하나는 더 커져, 마치 골격을 통째로 잡아 늘린 듯했다. 그 신장은 대략 2.5m? 아니, 그보다 좀 더 큰 것 같다. 다섯 개의 충왕각인이 한번에 발동한 모습은 더 이상 인간으로 보기 힘들 정도로 무시무시한 박력을 떨치고 있었다.
그런 노구덕이 한 걸음을 내딛자, 육중한 무게를 이기지 못한 바닥이 진흙처럼 움푹 내리눌리며 깊은 족적이 새겨졌다. 꼭 녹색 이끼로 뒤덮인 거암(巨巖)이 움직이는 것 같았다.
“괴물이로군.”
전투 모드로 돌입한 노구덕을 일별한 가리발디의 짧은 감상평이었다. 그 말을 들은 노구덕은 나무 밑동을 연상시키는 두꺼운 목을 꺾으며 피식 바람 빠지는 소리를 냈다.
“사돈 남 말 하는군. 이봐, 개새끼. 내가 왜 서리여왕, 폭풍왕 같은 자들을 제치고 하필이면 네놈을 상대로 골랐을까? 그 이유를 알려줄까?”
“무어라?”
“간단하다. 비교적 네놈이 만만하기 때문이야. 라이칸스로프는 마법을 쓰지 못하잖아? 이런저런 괴상망측한 수법을 쓰는 것들은 좀 난감하지만… 네놈처럼 단순히 치고받는 게 주특기인 상대라면 할 만한다고 생각했지. 왜냐면, 나도 그게 특기거든.”
노구덕의 설명을 들은 가리발디는 짧게 침묵했다. 잠시 후, 그는 흥에 겨워 참을 수 없다는 듯이 어깨를 들썩거리며 헛웃음을 자아냈다.
“하. 하. 하…. 이제 보니 미친놈이로구나. 박투로 이 가리발디와 겨루면 승산이 있을 거라 생각했다고?”
“왜, 거짓말 같냐?”
“아니다. 정말 진심으로 들리는군. 그래서 더 어이가 없어. 설마 이 정도로 정신이 빠진 놈이었다니……. 그 단순한 뇌구조에 진정으로 감탄이 나올 지경이다. 이름처럼 구더기 같은 놈이군.”
노구덕은 가리발디의 조롱을 표정 하나 변하지 않고 천연덕스럽게 받아쳤다.
“구더기라. 갑자기 마누라가 그리워지는데. 그러고 보니, 이번엔 내 차례였지?”
“네 차례?”
“네놈도 불알 달린 사내라면, 어디 피하지 말고 한번 받아봐라. 한낱 구더기의 주먹을 피할 이유가 없잖아? 지레 겁먹지 않았다면 말이다.”
“무슨…….”
“먼저 피하는 놈이 지는 거다.”
가리발디가 무슨 웃기지도 않는 소리를 지껄이냐고 말하려는 찰나, 전면에서 굉장한 풍압이 일어났다. 대뜸 말을 지껄인 노구덕이 힘껏 팔을 젖혀 주먹을 휘두른 것이다.
이른바 텔레그래핑 블로우(Telegraphing blow)라 불리는 타격이다. 동작이 커서 빈틈도 많고, 어딜 공격하는지 뻔히 보이는 수법이라 카운터 당하기도 쉬운 어설픈 타격. 이쯤 되면 이걸 맞아줘야 하나, 피해야 하나 고민이 될 정도였다.
‘아니, 피할 순 없지.’
굳이 맞아주지 않아도 되는 펀치다. 하지만, 놈의 마지막 말이 마음에 걸렸다.
‘지레 겁먹지 않았다면… 먼저 피하는 놈이 지는 거라고?’
기가 차서 웃음이 나왔다. 속내가 뻔히 들여다보이는 도발이다. 그러나… 남자라는 동물의 본능은 이런 원초적인 대결에서 절대 물러설 수 없도록 설계되어 있다. 팔씨름, 정력, 오줌발… 어린애처럼 유치해 보이더라도 결코 얕보이고 싶지 않은 것이 남자의 본능인 것이다.
스스로가 자부심을 가지고 있는 분야라면 더더욱 그러하다.
노구덕이 걸어오고 있는 것은 주먹 싸움… 즉, 단순한 완력의 대결. 다른 것은 몰라도, 늑대왕 가리발디는 근접전에서 자신 있게 대륙 최강을 논할 수 있는 스페셜리스트다. 만에 하나라도 양보란 있을 수 없었다.
‘어리석은 놈. 감히 내게 힘 싸움을 제안하다니… 좋다. 받아주겠다.’
단순히 자만심에서 비롯된 판단이 아니다. 상대의 자세, 주먹, 그리고 투기를 면밀히 살펴본 결과 이루어진 논리적 사고의 귀결이었다.
자세는 제법 숙련되어 있으나 일반적인 틀은 벗어나지 못했고, 주먹 또한 초중량의 무게에서 뿜어지는 물리적 위력만이 더해졌을 뿐, 북부 지구의 무인들이 쓰는 묘리는 찾아볼 수 없다. 은은하게 넘실대는 투기 역시 그리 강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겉보기에만 무지막지해 보일 뿐, 어디에도 위협이 될 만한 요소는 없다. 아니, 일반적인 헌터들을 기준으로 삼자면 굉장히 강한 주먹이겠지만, 늑대왕의 힘을 넘어서기엔 한참이나 부족하다.
한껏 비웃음을 머금은 가리발디는 기꺼이 노구덕의 주먹을 정면으로 맞받았다. 그리고 불과 0.5초도 지나지 않아, 그는 자신의 판단이 크게 잘못되었음을 깨달았다.
투콰앙!
“크학!”
굳게 다물려 있던 가리발디의 입이 더할 나위 없이 크게 벌어졌다. 두 눈은 튀어나올 듯 부릅떠지고, 꼿꼿하게 서 있던 등허리는 새우처럼 굽혀졌다.
과연 방금 전 들렸던 굉음이 인간과 인간이 맞부딪쳐서 낼 수 있는 소리일까. 그건 마치… 빗대자면 대형 화물트럭과 전차가 정면에서 부딪친 것 같은 무시무시한 격돌음이었다.
그 충격의 정도를 말해주듯, 가리발디의 벌어진 입에서는 그의 생전 몇 번 낸 적도 없을 것 같은 고통어린 헐떡임이 흘러나오고 있다.
늑대왕의 비명이라. 두 눈으로 보고 있으면서도 믿기 어려운 비현실적인 광경이었다.
“주군!”
“주인님! 괜찮으십니까!”
저 멀리서, 급작스런 가리발디의 비명에 크게 당황한 로건과 수하들이 부르짖는 소리가 들려왔다. 노구덕의 주먹이 일으킨 여파는 주변의 치열한 전투까지 일시적으로 중지시킬 정도였다.
“…끕!”
크게 숨을 들이킨 가리발디는 답답한 신음을 흘리며 한 손을 들었다. 괜찮으니 다가오지 말라는 제스처였다. 푹 고개를 숙인 그의 눈은 스스로의 발이 그려낸 발자국을 무서운 눈으로 응시하고 있었다.
‘다섯 걸음… 뒤로 물러났다. 이 내가…….’
부정하고 싶었지만 이건 분명한 현실이었다. 게다가 가슴팍을 타고 쓴물처럼 올라오는 이 통증. 투기로 급소를 보호했음에도 순간적으로 숨이 턱 막혀 구역질을 할 뻔했다. 그 정도로 강맹한 위력이었단 의미다.
‘이놈… 대체 무슨 수작을 부렸길래?’
자만하던 마음이 싹 사라졌다. 안색을 굳힌 가리발디는 입 안에 고여 있는 침을 퉤 뱉어냈다. 조금 전, 노구덕이 피가 섞인 가래를 내뱉었던 것과 묘하게 대치되는 광경이었다.
“…그래, 꽤나… 강렬한 펀치였다. 물주먹은 아니었군.”
“…허허. 몸뚱이가 꽤 단단한데?”
내색은 하지 않았으나, 노구덕은 그 나름대로 크게 놀라는 중이었다. 방금 그건 정말로 전심전력을 담은 주먹이었다. 한 번 주먹을 맞고 나면 가리발디가 처음처럼 순순히 맞아줄 리가 없으니, 처음이자 마지막 기회라 생각하고 후려친 주먹질이었다는 말이다.
그런데도 피를 토하기는커녕, 겨우 다섯 걸음을 물러나게 하는 데 그쳤다. 상대가 허세를 부린다고 감안해도 맥이 빠지는 결과였다.
‘망할 놈… 정말 괴물은 따로 있었군. 그러면서 나보고 뭐?’
그때, 가리발디의 낮게 가라앉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네놈의 주먹, 확실히 받았다. 이번엔 내 차례겠지?”
“으응?”
“네 입으로 말했으렷다. 사내라면, 피하지 말고 받아내라.”
이놈이 설마 계속하자는 건가? 그 펀치를 맞고도? 그리 생각한 노구덕이 가리발디를 내려다 본 순간,
뻐어억!
…그의 시야가 일순 캄캄한 암흑으로 물들었다.
============================ 작품 후기 ============================
여러분의 추천과 코멘은 작가에게 큰 힘이 됩니다!
오늘은 2연참이 끝일 것 같습니다..
가리발디와의 대결은 내일이나 모레쯤 마무리가 되겠네요.
남자답게 펀치를 주고 받는 방식의 대결은 예전에 어느 독자분이(죄송합니다… 어느 분이 달아주셨는지 까먹었어요 ㅠㅠ)
늑대왕과 노구덕이 펀치 랠리를 하는 걸 보고 싶다는 코멘에서 영감을 얻었습니다. 저도 그런 거 참 좋아하거든요!
sprtmxj / 코멘트 감사합니다! 좋은 저녁 되세요!
xesonthebeach / 구덕띠 ㅋㅋㅋ 뭔가 발음이 이상하면서 웃기네요 ㅋㅋ
Velos / 구더기가 여기서 더 늙으면 욕쟁이 할배??
천선(天仙) / 5연참은 ㅠㅠ 제 시간과 체력이 따라가질 못할 것 같네요… 죄송합니다.
아스라히i / 펀치 랠리입니다! 하하하;
판타지나라 / 십존 상대로 무쌍을 찍으려면 한 700~800화쯤 되면…?
asd메이지 / 총알로 저격하는게 아니라 주먹으로 저격을 한다는게 차이죠.. 흠흠.
모욕감 / 한번쯤 구성진 욕을 써보고 싶어서요 ㅎㅎ;
홍시박하 / 걸쭉했나요? 의외로 이런거 좋아하시는 분들이 많이 보이네요!
티렌 / 흠흠.. 작가가 욕을 좋아하는 건 절대 아닙니다.
잘큰고추 / 겉은 오크지만 내용물은… 묵고 묵은 아저씨니까요!
무쏘의뿔처럼 / 헌터들이 강하면 강할수록 수명과 젊음이 늘어나는 건 사실이지만, 그건 투기나 마력 등 보유한 에너지가 많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구더기의 경우에는 아직 미지수입니다. 발레기우스는 본인이 마력이 강대하지만.. 구더기는 그리 높은 편이 아니거든요.. 수명에 대해서는 확답을 드릴 수 없을 것 같네요 ㅠ
가식적썩소 / 일단은 남자의 펀치 랠리로 서막을!
신수[神手] / 정곡을 푹! 찔렀네요!
북치네 / 가끔씩 이렇게 입을 털어줘야 겠네요 ㅎㅎ
유철상 / 만족하셨다니 다행입니다!
호야[虎夜] / ++ 해서 대상이 아무래도 구더기라는 점이 한몫하겠죠?
능력Skyey / 돌직구 욕설이 은근히 효과가 있네요!
smxdmdmd / 인간미보다는.. 오크미가… 죄송합니다.
광환마룡 / 다들 좋아라 하시니 저도 좋습니다!
포식활자 / 아가리파이터 ㅋㅋㅋ 뒷골목에서는 그렇게 불릴지도 모르겠군요
Rnoa / 과연! 구더기가 이긴다면 십존에 들어갈지! 두구두구두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