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unter Club RAW - chapter (4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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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8# 칸다무어 잔혹사
“으으음….”
바짝 마른 노구덕의 입술에서 미미한 신음이 흘러나오자, 쓸데없는 기 싸움을 벌이고 있던 박지현과 신소율은 화들짝 놀라 고개를 돌렸다.
“오너!”
“아저씨, 정신이 들어요? 아앗! 세, 세희야!”
노구덕의 얼굴을 살피던 신소율은 그에게 무릎을 빌려주고 있던 안세희의 낯빛이 금방이라도 쓰러져버릴 것처럼 해쓱해져 있자, 크게 기함하며 각인에 잇대어져 있는 그녀의 가녀린 팔을 떼어냈다.
“얘는! 나한테 뭐라고 했으면서 자기가 이러면 어쩌자는 거야!”
“저, 저는 괜찮아요….”
“괜찮기는! 지현 언니! 어서 팔 대!”
“으, 응? 해도 되는 거야?”
“지금 그런 거 따지게 생겼어?”
“뭐, 그렇다면야.”
얼굴이 파리해진 안세희가 물러나고, 그 뒤를 이은 박지현에게까지 수혈을 받고 나자, 무서운 속도로 핏물을 빨아들이던 충왕각인도 그제야 좀 만족을 했는지, 혈액을 빨아들이는 속도가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또한, 말라비틀어진 것 같았던 노구덕의 얼굴색도 현저히 좋아졌다. 여전히 평소에 비해 안쓰러울 정도로 깡마르긴 했지만, 몸 곳곳에 나 있던 상처에 딱지가 내려앉으며 느리게나마 회복되는 양상을 보였다. 재생 능력이 서서히 돌아오고 있다는 징후였다.
앓는 신음만 내던 노구덕이 눈을 뜬 것은 그로부터 약 삼 분 정도가 지나, 각인에 피를 빨리고 있던 박지현이 어지럼증을 호소할 무렵이었다.
기실 노구덕은 안세희와 박지현이 교대를 했을 때 정신을 차린 상태였다. 다만 눈꺼풀을 들고 말할 힘조차 없어 기절한 것처럼 보였을 뿐.
신소율과 안세희, 박지현의 헌혈 덕분에 최소한의 기력을 회복한 노구덕은 더 이상의 희생자가 나오기 전에 서둘러 입을 열었다.
“지현아….”
“오, 오너?”
“그만… 이제 그만 해도 된다….”
“아니… 괜찮은 거예요?”
노구덕은 당황한 박지현의 물음을 뒤로 하고, 그녀의 어깨 너머로 보이는 이두식을 불렀다.
“두식아…….”
마침 박지현의 다음 타자로 나서기 위해 소매를 걷고 있던 이두식은 노구덕의 갑작스런 호명에 급히 그의 곁으로 달려왔다.
“예! 형님!”
“사로잡은 포로 중에… 떨거지 한 놈만 데려와라…….”
“알겠습니다!”
“어…? 포로는 왜…?”
뜬금없이 포로를 데려오라는 노구덕의 부탁에 모두가 의아해했지만, 이두식은 전혀 고민하는 기색 없이 노구덕의 명령을 수행했다. 노구덕이 말했다면 분명히 뭔가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것이 이두식의 생각이었다.
조금 떨어진 곳에서 아이리스 헌터들이 하는 양을 지켜보고 있던 라이칸스로프들은 거구의 이두식이 성큼성큼 다가오자, 하나 같이 강렬한 적의를 불태우며 그를 노려보았다. 그 대장에 그 부하라고 해야 될까. 수장인 늑대왕이 패했는데도 전혀 기가 꺾이지 않은 의연한 태도였다.
그들이 눈을 부라리거나 말거나, 이두식은 그중 가장 왼쪽에 있는 자의 어깨를 덥석 붙잡았다. 전부가 프라임리그에서 활약한 이들 중 솔직히 떨거지가 어디있으랴마는, 그래도 직접 싸웠던 그가 생각하기에, 미세하게나마 가장 약하게 느껴졌던 사내였다.
“이 자식! 이거 놓지 못해!”
“형님, 데려왔습니다. 어떻게 할까요?”
노구덕은 이두식의 손에 붙들려 악다구니를 써대는 사내를 향해 손을 까딱였다.
“이리로……. 저놈 가슴이 내 손바닥에 닿게…….”
가만히 서 있던 도일과 헨더슨, 박지현 등의 고개가 비뚜름하게 기울어졌다. 가슴팍에 손을 대게 해달라니. 말만 놓고 보자면 상당히 묘한 내용이었다. 그러나 이두식은 별 생각이 없는 듯, 노구덕이 원하는 대로 포로 사내를 번쩍 들어, 노구덕의 오른손이 그 가슴어림에 닿도록 만들었다.
그때, 신소율이 무언가를 깨달은 것처럼 얕은 탄식을 흘렸다.
“아, 그거구나….”
“뭐야? 지금 오너가 뭐 하는 건데?”
“저도 궁금하군요. 설마 저 북슬북슬한 가슴을 만지고 싶은 건 아닐 테고….”
“도일 오빠, 이 상황에서 농담이 나와요?”
도일을 흘겨보며 따가운 눈총을 쏘아 보낸 신소율은, 어쩐지 쉬이 말을 꺼내기 어려운 것처럼 콧잔등을 찡그리며 뜸을 들였다.
“…별로 보기 좋은 광경은 아닐 거예요. 웬만하면 그냥 뒤돌아 서 있는 게 어때요?”
“야. 그러니까 더 보고 싶어지잖아.”
“그러게 말입니다. 그게 대체 뭔데 그러는 겁니까?”
아무래도 역효과였나 보다. 괜한 말을 해서 사람들의 호기심을 불러일으킨 신소율은 동그란 어깨를 으쓱이며 머리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아, 몰라요. 궁금하면 직접 보든… 시작했네.”
“뭐, 뭐야! 어어억!”
신소율이 뭔 소리를 하나, 궁금해하던 헌터들은 난데없이 들려오는 비명에 반사적으로 시선을 돌렸다.
당황 섞인 비명의 주인공은 이두식이 데려온 라이칸스로프 사내였다. 가슴팍에 노구덕의 손을 얹은 그는 몸뚱이에 칭칭 휘감긴 쇠사슬을 끊어버릴 것처럼 사지를 뒤틀어대고 있었다.
“으, 으아아아아악……!”
조금 전만 하더라도, 죽음을 불사할 것처럼 당당하던 사내의 낯빛은 형언할 수 없는 공포로 물들어 있었다. 아니, 그것은 공포라기보다, 창자를 끊어내는 듯한 고통에서 우러나오는 처절한 몸부림이었다.
무엇이 저 심지 굳은 사내의 표정을 저토록 일그러지게 만들었을까. 그 원인을 찾아 시선을 내린 아이리스 헌터들은 일제히 기함할 수밖에 없었다.
“아니! 저럴 수가…?”
“저, 저게 뭐야?”
장대한 체구를 자랑하던 사내의 몸이 바람 빠진 풍선처럼 급격히 쪼그라들고 있었다. 나이답게 튼실한 근육이 붙어 있던 팔이 마치 늙은 노인처럼 홀쭉해지고, 야생마처럼 굳건했던 두 다리도 비루먹은 당나귀처럼 볼품없이 변해버렸다.
그 원인은 말할 것도 없이 가슴에 맞닿아 있는 노구덕의 손이었다. 사내가 절규하며 몸을 뒤틀 때마다, 반대로 노구덕의 상태는 눈에 확연히 보일 정도로 좋아지고 있었다. 마치 사내의 피와 살이 고스란히 노구덕에게로 이동하고 있는 것처럼 보일 정도였다.
노구덕이 사용한 것은 흡수의 권능이었다. 브리트라에게서 건네받은 권능을 사용하여 사내의 육체를 제물로 삼아 생명 에너지를 보충한 것이다.
“끄어어어…….”
건장했던 장한이 수백 년 된 미이라처럼 변해버리는 데에는 불과 일, 이 분 밖에 걸리지 않았다.
어느 정도 생기를 되찾은 노구덕은 폭삭 말라붙은 채 절명해버린 사내를 밀쳐버리고 가뿐하게 몸을 일으켰다. 평소에 비하면 아직 많이 말라 보이는 모습이었지만, 언행엔 별 지장이 없었다.
‘쯧. 이것도 미봉책일 뿐이군.’
몸 상태를 점검해 본 노구덕은 나지막이 혀를 찼다. 흡수의 권능으로 체력은 많이 회복되었지만, 정작 그의 주요 능력들인 히드라의 핵과 비틀쉘, 아트로포스의 핵 등 직접적으로 약효에 노출된 요소들은 아직도 제 기능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었다. 이래서야 속 빈 강정이나 다름없는 몸이다.
‘너무 비효율적이군. 부작용을 커버하려면 한두 명의 목숨가지곤 안되겠어.’
안타깝지만, 흡수의 권능으로 약의 부작용을 만회하겠다는 발상은 접어두어야 할 것 같았다.
“뭘 그렇게 보고 있어?”
“아, 아니에요.”
“흠, 흠….”
노구덕의 말이 떨어지자 후다닥 그로부터 달아나는 시선들. 방금 전, 라이칸스로프 사내를 한순간에 미이라로 만들어버린 흡수의 권능에 무척이나 강한 인상을 받은 듯, 충격이 가시지 않은 얼굴을 하고 있는 일행들이다.
“오너, 괴상한 능력을 가지고 계시는군요.”
“뭐, 누구나 하나쯤 가지고 있는 비밀병기 같은 거지. 괜한 관심은 사절이다.”
“쩝.”
마법사답게 강한 호기심을 내비친 도일과, 그 뒤에서 눈치를 보며 은근히 지원에 나선 헨더슨은 노구덕의 단호한 태도에 입맛을 다시며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소율아, 소피아는?”
“소피아 언니는 아직… 저 상태예요.”
아직까지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침낭 위에 정자세로 누워 있는 소피아를 일별한 노구덕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수고했다. 너도, 지현이도, 세희도. 너희 덕분에 내가 살았구나.”
소피아의 침낭 옆에 앉아, 지친 몸을 추스르던 안세희는 희미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내저었다.
“아니요…. 할 일을 한 것뿐인걸요.”
신소율은 정신을 잃고 있었던 노구덕이 지난 상황을 소상히 알고 있는 듯하자, 눈을 동그랗게 뜨며 물었다.
“어? 그건 어떻게 알았어요?”
“머리는 일찌감치 깨어있었거든. 눈만 뜨지 못했을 뿐이지. 하여튼, 그건 중요한 게 아니고…….”
말끝을 흐린 노구덕은 가장 가까이 있는 신소율을 비롯해, 주위에 늘어서 있는 아이리스 헌터들과 일일이 눈을 맞추었다.
신소율, 박지현, 안세희, 박승찬, 도일, 헨더슨, 이두식… 그리고 기절한 소피아까지. 다행히도 내상을 입은 소피아를 제외하면 크게 다친 이는 없어 보였다. 늑대왕 가리발디와 그 심복들을 생포하는 전과를 올렸으면서 별다른 사상자가 없다는 것, 그야말로 신의 은총이 따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노구덕은 거사의 마지막까지 무사하게 남아준 고마운 이들을 향해, 모처럼 밝은 웃음을 지어보였다.
“다들… 정말 수고가 많았다. 일부 행운도 따랐겠지만, 그래도 이만한 성과를 거둘 수 있었던 건 모두가 제 역할을 충실히 해낸 보상이라고 생각한다. 클럽 홀에 돌아가면 화끈하게 포상을 돌릴 테니 기대해도 좋다.”
“아하하. 역시 우리 오너야. 그 말을 기다리고 있었다고요!”
“오오! 듣던 중 반가운 소리군요. 소문으로만 듣던 아이리스의 창고를 개방하는 겁니까?”
“오너. 나는 그… 데모나 헌터의 비전을 좀… 일부라도 좋으니, 어떻게 안 될까?”
“헨더슨 형님, 그만하십시오. 아무리 그래도 데모나 형수님 걸 바라는 건…….”
“이놈아! 그래서 일부라고 했잖냐! 네가 마법사의 학구열에 대해서 뭘 안다고! 이게 날이면 날마다 오는 기회인 줄 알아!”
포상 얘기를 꺼내자마자 피로에 절어 있던 사람들이 금세 왁자지껄 침을 튀기며 시끄럽게 떠들어댔다. 그나마 점잖게 구는 건 평소에도 조용한 편인 박승찬과 안세희뿐, 나머지 헌터들은 벌써부터 돌아가서 받게 될 포상을 구체적으로 산정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역시 헌터는 헌터다. 그 뿌리 깊은 본능이 어디 가겠는가. 진중하던 분위기가 시장 바닥처럼 어수선해지자, 노구덕은 경솔하게 말을 꺼낸 자신의 입을 탓하며 일행을 둘러싼 흥분을 가라앉혔다.
“그만. 포상 건은 우선 이곳 일부터 확실히 매듭을 지은 다음이다. 아직 작전이 끝난 건 아니니까, 긴장 빼지 마라.”
상당히 열기가 고조된 상태였지만, 다들 단맛 쓴맛을 다 본 베테랑 헌터들답게 평정을 되찾는 것도 빨랐다.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 자고로 실패는 언제나 힘을 뺀 마지막에 찾아오는 법. 가장 난해한 미션이었던 늑대왕을 제압하는 건 성공했으나 아직 중요한 미션이 하나 더 남아있었다.
그 미션이란 바로 아가레스트의 구출. 상상 이상의 난이도였던 본편에 비하면 비교적 쉬운 난이도의 보너스 게임 같은 느낌이다. 늑대왕과 그 주요 심복들을 대부분 처리한 마당이니, 아가레스트가 억류되어 있는 거울의 숲에는 아이리스의 정예들을 막아 설 만한 강자들이 그리 많지 않을 테니까.
그러나 방심은 금물. 이 보너스 게임의 중요도는 본편 못지않았다.
‘그럼… 가련한 공주님의 행방을 알아보도록 할까.’
일렬로 꿇어 앉아 있는 포로들 중, 적당한 타깃을 골라잡은 노구덕은 길쭉한 송곳니를 내보이며 마른 입술을 핥아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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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의 추천과 코멘은 작가에게 큰 힘이 됩니다~!
눈이 번쩍 뜨이는 추천에 감동한 작가는 아침화를 투척하였다!
감사합니다!
다음 편 즈음이면 아가레스트의 근황이 공개되겠군요..
리리플은 오늘 마지막화에 달도록 하겠습니다!
월요병 조심하시고, 오늘도 즐거운 하루 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