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unter Club RAW - chapter (4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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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0# 형장의 이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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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구덕으로부터 가리발디의 신병을 넘겨받은지 이틀째가 되던 날, 대륙 중부의 터전에 웅크리고만 있던 위원회가 드디어 벼르고 벼르던 칼날을 빼들었다. 위원회 산하 1만에 이르는 군세가 늑대왕의 영지인 거울의 숲을 대대적으로 침공한 것이다.
그 전에 이미 우두머리를 잃어버린 거울의 숲의 잔당들은 철저하게 이루어진 공세에 이렇다 할 반항조차 하지 못하고 궤멸되었다. 명령체계가 철저히 무너진 상황에서 위원회의 정예 병력을 감당하는 건 애초에 계란으로 바위를 치는 격이었다.
반군 측은 이 전투에서만 오천이 넘는 사상자를 내며 퇴각했다. 차라리 사전에 가리발디의 신변에 이상이 생겼다는 것을 알았더라면 어느 정도 대비를 할 수 있었겠지만, 가리발디가 평소에도 말없이 돌아다니는 것을 좋아하는 터라 대처를 할 수 없었던 게 주요 패인이었다.
반나절도 지나지 않아 끝나버린 전투. 그나마 반나절이나 걸린 것도 거울의 숲이 워낙 넓었기 때문이지, 실제 전투는 두 시간도 채 걸리지 않았다. 그 이후로는 일방적인 학살과 추격의 연속이었다.
이 전투로 한때 프라임리그 유수의 강호로 꼽히던 클럽 루나틱스는 완전히 무너져버렸다. 루나틱스의 주축을 이루는 1, 2군 헌터들 가운데, 생존이 확인된 것은 0명. 나머지 멤버들은 모두 실종 처리되거나 전후 처리 과정에서 시체로 발견되었다. 그마저도 실종 처리된 자들은 노구덕에게 숨통이 끊긴 로건, 사울로, 투르칸 등이었다.
사실상의 멸망. 로건이 죽기 직전 마지막으로 말했던 그대로, 늑대왕 가리발디 체제하에서 전성기를 누리던 클럽 루나틱스는 시대의 희생양이 되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고 말았다.
늑대왕의 영지인 거울의 숲이 평정되고나자, 전투에 참여했던 헌터들의 머릿속엔 한 가지 의문이 앙금처럼 남았다.
숲의 주인인 늑대왕 가리발디는 어디로 사라진 것일까?
가리발디와 루나틱스의 정예들이 그대로 남아있었다면 이토록 일방적인 전투는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팥 없는 찐빵이라고 할까. 승리는 기쁜 일이었지만 전투 내내 늑대왕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던 것은 많은 이들의 마음을 미적지근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그도 잠시, 전투가 끝나고 곧바로 위원회의 이름으로 공표된 내용은 수많은 이들을 경악에 빠트렸다.
위원회가 발표한 내용이란, 다름 아닌 늑대왕 가리발디의 공개처형이었다. 전장에 나타나지 않아 많은 헌터들을 찝찝하게 만들었던 그가 피폐한 몰골로 사로잡혀 있는 장면이 온 대륙에 생방송으로 퍼져나간 것이다.
그와 함께, 가리발디는 새로운 십존, 파멸의 현자 유메르바인과 몇몇 헌터들에게 당해 사로잡힌 것이란 소문이 나돌았다. 소문의 진실은 알 수 없었으나 육마의 일인인 늑대왕이 위원회에 생포된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었다.
늑대왕 가리발디의 공개처형은 매우 신속하게 이루어졌다. 그의 신변에 이상을 알아차린 발레기우스나 반군이 대응할 틈을 주지 않기 위해서였다.
처형 날짜는 선전 당일로부터 이틀 후. 즉, 유메르바인이 가리발디를 압송한 뒤, 정확히 나흘째가 되는 날이었다. 일사천리로 진행되는 일처리의 속도는 유례를 찾기 힘들 정도로 재빨랐다.
그리고 마침내, 처형 당일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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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늑대왕 가리발디를 처형대에 세운 장본인인 노구덕은 처형식에는 얼굴을 비추지 않은 채, 칼립스의 관저에서 편안한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대형 스크린이 설치된 그의 방에는 임유진과 임가희, 신소율, 데모나, 소피아가 모여 모처럼 가족끼리의 시간을 보내는 중이었다.
“역시 집이 좋단 말이야.”
“벌써 사흘째 아무것도 안하고 쉬고 계시는데, 그래도 괜찮겠어요?”
“큰 일을 치렀으니 조금쯤은 쉴 수도 있는 거지. 이렇게 쉬는 게 얼마만인지 모르겠군….”
푹신한 등받이에 파묻히도록 몸을 기댄 노구덕은 느긋한 시선으로 스크린 너머의 장면을 감상했다.
한쪽 벽면 전체를 거의 차지하다시피한 스크린에서는 마침 늑대왕 가리발디의 공개처형이 생방송으로 진행되고 있었다.
“발레기우스는 움직일 생각이 없나 보군.”
“움직여서 얻을 수 있는 이득이 없으니까요. 아니면, 늑대왕이 버림패가 되었는지도 모르죠.”
“흠. 그럴 지도…….”
노구덕은 문득, 가리발디와의 싸움 도중 그가 충왕각인을 알아보더니 크게 분통을 터뜨렸던 장면이 떠올랐다.
‘내가 아는 놈들 중에도 충왕각인을 쓰는 놈이 있거든. 참고로, 난 그놈을 아주 싫어해. 할 수만 있다면 모가지를 비틀어서 뽑아버리고 싶을 정도로 말이다.’
…아마 이렇게 말했던 것 같은데, 그 대상이 만약 발레기우스라고 한다면, 흡혈왕과 늑대왕 사이에는 어떤 알력이 있었던 것일지도 몰랐다.
‘아니면 반군 내부에서 다툼이 있을 수도 있겠군.’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다. 십존이라는 것들은 죄다 꼬장꼬장하여 자존심이 하늘을 찌르는 족속들이니까. 그런 자들이 발레기우스를 순순히 상전처럼 모실 리 없었다. 서리여왕 하유라만 하더라도 그 성격에 남을 받들어 모신다? 상상도 못할 일이었다.
‘뭐, 그 생각은 나중에 하도록 하고… 지금은 소소한 이벤트나 즐겨야겠다.’
“앗…!”
“윽! 아프잖아!”
좌우에 앉아 있는 임유진과 데모나의 어깨를 양 팔로 힘껏 부둥켜안은 노구덕은 두 여인의 가벼운 핀잔을 뒤로하고 스크린에 시선을 집중했다.
처형대가 내려다보이는 객석에는 폭군 무릴로, 청룡왕 이정, 성갑왕 에드가 등 위원회 측에 몸담고 있는 십존들과, 십존에 이름을 올리긴 했지만 위원회보다는 연방의 축이 되는 각 왕가에 몸을 담고 있는 파멸의 현자 유메르바인, 스펠브레이커 플랑기스, 명왕 강문식 같은 쟁쟁한 실력자들도 얼굴을 비추었다.
그 외에도 각 지방과 도시를 대표하는 빅클럽을 상징하는 깃발과 문양들이 객석 곳곳에서 눈에 띄었다. 오랫동안 십존위를 유지하며 맹위를 떨쳤던 가리발디의 처형식이니만큼, 각지의 유력자들도 관심을 가지는 모양이었다.
“익숙한 문장들이 많이 보이긴 하는데… 얼굴들은 잘 모르겠군.”
“그러게요. 다 대리인인가?”
신소율이 볼을 긁적이며 의문을 표하자, 소피아가 싱긋 웃으며 그 말을 받았다.
“유진 언니의 십존쟁탈 때 한번 뜨거운 맛을 봤으니까요. 요새는 각 지역 패자들의 얼굴을 보기가 힘든 추세예요. 공식석상에도 2인자나 대리인을 보내는 것이 관례가 되어버렸죠.”
“그렇겠구나. 다 모여 있을 때 저번처럼 쓸려버리면 안 될 테니까.”
혹독한 선례가 있는 만큼 예전처럼 쉽게 당하지는 않을 테지만, 그래도 조심하겠다는데 누가 뭐라할 것인가.
고개를 끄덕인 노구덕의 눈길이 스크린 한 가운데, 기다란 장대에 덩그러니 매달려 있는 늑대왕 가리발디에게 머물렀다.
칼립스 뒷골목의 거지보다도 못한 꾀죄죄한 꼴을 하고 있는 가리발디는 이미 죽어버린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미동이 없었다. 잔뜩 기름이 껴서 떡이 진 머리는 먼지투성이에다, 핏물과 땟물이 엉겨 붙은 몸뚱이는 임종을 눈앞에 둔 노인처럼 가느다란 숨을 내쉬고 있을 따름이다.
지금 이 추레한 사내의 어딜 봐서 과거 대륙을 호령하던 늑대왕 가리발디의 모습을 떠올릴 수 있을까.
그래도 병신처럼 줄줄 침까지 흘려대지는 않는 걸 보면, 위원회에서도 나름 가리발디의 외양에 신경을 쓴 모양이었다. 육마의 일인이자, 흉악무도한 늑대왕을 효수하는 기념할 만한 처형식이 이지를 상실한 바보를 처치하는 잡스런 이벤트가 돼서는 곤란할 테니까.
“시작하려나 보군.”
-둥둥!
스크린 너머의 화면에서 우렁찬 북소리와 함께 한 남자가 천천히 처형대로 올라오는 것이 보였다. 송곳처럼 예리한 외눈을 번뜩이며, 빛 바랜 검은 무복을 걸치고 있는 중년의 사내. 그는 에덴 공방전에서 반군의 수괴인 발레기우스와 막상막하의 접전을 벌였던 폭군 무릴로였다.
에덴에서 무시무시한 무력을 선보인 바 있는 무릴로의 현재 위상은 은연중 십존의 수좌(首座)로 여겨지고 있었다. 게다가 그의 포지션이 위원회의 비밀병기쯤으로 치부되고 있는 탓에, 각 세력에서는 그에 대한 정보를 조금이라도 얻기 위해 일거수일투족을 주시하고 있는 중이었다.
당연히, 그건 아이리스도 예외가 아니었다.
“무릴로… 아주버님이 가까이서 들은 말로는, 어비스쉬라인과 관계가 있는 사람이라고 해요. 그리고 발레기우스처럼 오랫동안 위원회에 몸 담아 온 인물이라고 하셨어요. 실제로 태양왕과 비슷한 느낌을 풍기는 기운을 쓰기도 했고요.”
북왕 아이벤과 함께 무릴로의 전투를 가장 가까이서 지켜보았던 임유진의 말이었다. 그녀의 말은 이미 예전에 노구덕과 소피아에게 들려주었던 것과 별 차이가 없었다. 지금 하는 말은 무릴로에 대해서 잘 알지 못하는 임가희나 신소율, 데모나를 배려하는 설명이었다.
“어비스쉬라인….”
아마도 이 중에서 무릴로에 대해 가장 궁금해하는 사람은 신소율일 터. 그녀는 모호한 눈빛으로 처형대를 걸어 올라가는 무릴로의 뒤를 쫓았다.
매일 같이 손바닥 가죽이 벗겨질 정도의 맹훈련을 하고 있는 그녀이지만, 아직 심연의 구슬에 대해서는 이렇다 할 감을 잡지 못한 처지였다.
무릴로가 장대에 매달린 가리발디의 앞에 서자, 처형대 밑 단상에서 위원회 측 관계자로 보이는 남자가 큰 목소리로 장황한 연설을 늘어놓았다. 주 내용은 가리발디의 죄목과 반군의 부도덕함을 질타하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우리는 대륙의 질서를 어지럽힌 발레기우스와 그 도당을 지탄하는 바이며, 가리발디의 목은 그들에게 보내는 엄중한 경고가 될 것입니다.
뻔한 연설이 끝나고 나서 얼마 지나지 않아, 처형대 위의 무릴로가 어디서 구했는지 기다란 대도를 들어 올리는 것이 보였다.
육중한 군마라도 단숨에 베어버릴 수 있을 것 같은 대도를 높이 치켜든 무릴로는 걸레짝처럼 내걸려 있는 가리발디를 올려다보며 스산한 물음을 던졌다.
-유언은?
-…….
-재미없군.
혼이 달아나버린 가리발디가 대꾸를 할 수 있을 리 없다. 또, 무릴로 정도 되는 자가 가리발디의 상대를 알지 못할 리도 없다. 이건 말하자면 대중에게 보여주기 위해 짜여진 연극.
형식적인 문답이 끝나고, 지루한 얼굴이 된 무릴로는 하늘을 찌를 듯 솟아 있는 참마도를 거칠게 휘둘렀다.
서걱!
무릴로의 대도는 가리발디의 목을 깔끔하게 베어냈다. 비명도 없이 솟구친 머리는 짧은 시간 동안 허공을 유영하다가, 이내 힘없이 바닥에 떨어져 볼품없이 나뒹굴었다.
늑대왕 가리발디의 죽음. 앞으로의 역사에 두고두고 회자될 그 무게를 실감하듯, 드넓은 처형장 일대에 기묘한 침묵이 감돌았다.
목을 잃어버린 몸뚱이에서 튄 핏물로 피투성이가 된 무릴로는 발치에 나뒹구는 가리발디의 목을 칼끝으로 쿡 찍어서 들어올렸다. 흡사 육편을 젓가락으로 찍어내듯 감흥조차 느껴지지 않는 움직임이었다.
입을 쩍 벌린 가리발디의 목을 들고 선 무릴로는 화면 너머의 누군가와 눈싸움이라도 벌이는 것처럼 그 동공에서 화산 같은 불길을 뿜어냈다.
-보아라. 추한 반역자의 말로를. 머지 않아 네놈들도 곧 차례가 올 테니, 목을 씻고 기다리는 게 좋을 거다.
픽!
“이런.”
짧게 신음한 노구덕은 서둘러 스크린을 꺼버렸다. 원래는 목을 자르기 직전까지만 보려고 했는데, 괜히 분위기에 휘말려 임산부들에게 못 볼 꼴을 보이고 말았다. 임유진이나 데모나가 시체 하나쯤 본다고 충격을 받을 일은 없겠지만, 그래도 역겨운 장면을 굳이 볼 필요는 없잖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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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의 추천과 코멘은 작가에게 큰 힘이 됩니다!
역시 불금이라 가게가 너무 바쁘네요.. 3연참은 무리였습니다..
큰 이슈가 끝났으니, 한두편 정도는 정비를 할 겸 일상물로 채워질 것 같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조금 애매한 곳에서 끊겨버렸네요.
그리고 다음 이슈는.. 아가레스트… or 아이리스의 누군가가 관련된 중대 이슈입니다.
풀어놓은 떡밥을 회수할 때가 된 것 같아요.
열심히 굴렀으니, 다시 굴려야지요.
그럼 즐거운 불금 보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