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unter Club RAW - chapter (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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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티라녹의 마굴(魔窟)
스퀘어에서는 일반적으로 본 리그가 시작하기 전, 한 달 간의 프리시즌(Preseason)을 가진다. 각 클럽들은 프리시즌 기간 동안 소속 헌터들의 장비 상태와 컨디션 등을 점검하며, 리그 소유의 레귤러 1개소를 사전에 인가를 받아 탐사할 수 있었다.
시티리그의 개막까지는 아직 상당한 시간이 남아 있었지만, 아이리스가 이번에 가게 되는 탐사 또한 개막 전의 프리시즌 탐사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었다.
탐사 절차는 간단하다. 탐사에 참여할 멤버들이 해당 레귤러를 관리하는 헌터 하우스에 들러 개인의 저널 번호를 등록하고, 리더가 대표로 관련 서류에 서명을 하면 되었다. 그러면 헌터 하우스에서 탐사 멤버들의 정보를 시스템에 전송하고, 이를 인식한 시스템에서 참여 헌터들의 저널을 탐사 모드로 활성화시키는 방식이었다.
아이리스가 헌터 하우스의 통지를 받고 ‘티라녹의 마굴’을 향해 출발한 것은 강철 대로에서의 쇼핑이 끝나고 이십여 일이 지난 후였다. 만전을 기하기엔 조금 부족한 기간이었지만, 새로운 장비에 적응하기엔 충분한 시간이었다.
크래들타운 주변의 레귤러들은 대부분이 걸어서 하루 이틀 정도의 거리에 위치해 있었기 때문에, 멤버들이 짊어진 짐은 무척이나 가벼웠다.
“정인 오빠. 저 궁금한 게 있어요. 물어봐도 돼요?”
역시나 지루한 걸 참지 못하는 신소율은 이번 탐사길에도 쉴 새 없이 입을 조잘거렸다. 그녀의 이번 타겟은 김정인이었다.
“그래.”
“우리가 이번에 가는 티라녹의 마굴이란 레귤러요. 인간형 카름들이 나타난다는 건 알겠는데요, 인간형 카름이 대체 뭐예요? 사람처럼 생긴 괴물인가?”
“저번에 설명할 때 잘 들었으면 이런 질문이 나올 리 없을 텐데…….”
뼈가 있는 김정인의 말에, 신소율은 찔리는 게 있는지 몸을 움찔했다. 아마 그 시간에 졸거나 딴청을 피운 모양. 그래도 귀엽게 혀를 내미는 모습이 마냥 밉지 만은 않았다.
“에헤헤. 깜빡 졸았나?”
김정인은 나직한 한숨을 토했다.
“이번 탐사는 아주 중요해. 설명 하나도 허투루 들을 수 없다는 소리야. 알겠어?”
“죄송해요. 오빠, 한번만 봐주세요오. 다음부터는 안 그럴게요.”
그러면서 새끼 고양이처럼 두손을 모아 애교를 부리는데, 그 깜찍한 면전에 대고 멋없이 타박만 할 수도 없는 노릇인지라, 김정인도 가벼운 경고만으로 넘어갈 수밖에 없었다.
“마굴에서 출현하는 괴물들은 사람처럼 사지가 달리고 직립보행하는 괴물을 뜻하는 게 아니라, 정말 인간이야.”
“네에?”
그러지 않아도 큰 눈이 밤송이처럼 커졌다.
“아니, 엄밀히 말하면 인간은 아니지. 겉보기에는 인간과 똑같지만, 레귤러에 갇혀 무한히 재생하는 괴물들이야. 인성을 잃어버린 채, 오염된 의지에 따라 파괴와 살육을 반복하는 불쌍한 존재들이지.”
“대체 어떻게 그런 괴물들이 생길 수 있어요?”
“오래 전, 티라녹의 마굴은 어느 사교집단의 은신처였어. 당시 그 사교집단의 위세는 대단해서, 천여 명에 달하는 광신도들이 마굴에 모여 있었다고 해. 그런데 어느 날, 하늘이 뒤틀리며 보라색 광채가 그 일대를 뒤덮었다더군. 카르마 누출현상, 이레귤러가 일어난 거지. 오염된 카르마에 노출된 광신도들은 그대로 괴물이 되었고.”
“그… 그게 가능해요? 우리도 마녀의 산에 들어갔지만 멀쩡했잖아요?”
“헌터는 이레귤러의 영향을 받지 않아. 카르마에 오염되어 괴물이 되는 건 원(原) 스퀘어 세계에 속해 있는 존재들이지. 그것도 이레귤러가 처음 발생했을 때만 그런 현상이 일어나는 거고.”
“그렇구나…….”
레귤러 지역에 뭉쳐 있는 카르마 덩어리들은 그 자체로 살아있는 생명체나 다름없었다. 생물을 괴물로 변하게 하고, 세포와 유전자 단위로 그 형체를 기억하며 끊임없이 괴물들을 되살려낸다. 게다가 항상 똑같은 괴물들만 출현하는 것도 아니다. 레귤러는 카름을 재생할 때 약점이 두드러진 부분은 반드시 보완하는 교활함을 보였다. 매번 레귤러의 난이도가 다른 것은 이런 이유였다. 단, 레귤러가 보유한 카르마의 절대량은 항상 일정하기 때문에, 난이도에 변화가 생기더라도 그 폭이 크지는 않았다.
“개인적으로는, 첫 탐사가 마굴이라 다행이라 생각해.”
“왜요?”
“상대가 인간이니까. 괴물이지만, 실제 인간과 다른 것은 거의 없어. ‘사람을 죽이는 것’을 간접 체험할 수 있는 기회란 소리야.”
“……!”
납덩이같은 침묵이 멤버들 사이를 휘감고 지나갔다. 간접살인의 기회. 어감은 좀 이상하지만, 김정인의 뜻은 충분히 전달되었다. 그가 요구하고 있는 것은 살인에 무감각해지라는 것이 아니었다. 사람을 죽이는 것의 무게를 감내할 수 있을만한 강인한 정신력이었다.
멤버들은 그 말에 담긴 의미를 모를 정도로 바보가 아니었다.
“정인이 말이 옳다. 반드시 한 번 쯤은 거쳐야 되는 일이기도 하고. 언제까지고 가벼운 기분으로 있을 수만은 없어. 차라리 잘 됐다. 이번 기회를 헌터로서의 통과의례라 생각하자.”
가장 연장자인 노구덕이 대표로 나서 김정인의 말에 힘을 실어주었다. 굳이 그 말이 아니더라도 모두 같은 생각이었다. 일행은 모두 고개를 주억이며 동의를 표했다.
그렇게 한 시간여. 멤버들은 옆 사람과 작게 조곤조곤 이야기할뿐, 처음과 같은 나들이 분위기는 어디에도 찾아볼 수 없었다. 김정인의 한마디로 이번 탐사의 무게감을 재차 실감한 탓이었다.
“유진이 언니.”
“응?”
“티라녹의 마굴 말이에요. 어떻게 생각하세요? 헌터 하우스 자료를 보면 난이도는 B+로 랭크되어 있던데……. 솔직히 감이 잘 안 잡혀서요.”
윤희지의 질문에, 임유진은 난처한 빛을 띠고 머리를 흔들었다.
“미안해. 회의 때도 말했지만 나는 소규모 이레귤러나 떠돌이, 이탈자 카름들 위주로 사냥해서 레귤러 탐사 경험은 거의 없어. 클럽에 속한 적도 없었으니까……. 내가 말해줄 수 있는 건 헌터 하우스에서 매기는 난이도에 너무 의존하지 말라는 거야.”
“지역이나 리그마다 난이도를 책정하는 기준이 다르단 거죠?”
“그렇지. 프라임리그에서는 C급 레귤러라도 지역 리그의 S급 레귤러는 가볍게 상회하는 난이도를 가졌으니까. 이건 극단적인 예시이긴 하지만. 가장 확실한 방법은 리그 소속 클럽들의 1군 전력이 낸 성과와 레귤러 난이도를 비교하는 거야.”
“하아……. 회의에서도 그렇게 했었죠. 그런데 그쪽 전력에 대해 정보가 거의 없으니까, 너무 뜬구름 잡는 느낌이에요.”
크래들타운의 주요 클럽들이 최근 티라녹의 마굴에서 거둔 달성률을 나열해 보자면, 골드러쉬가 72%, 아머 타이탄즈가 77%, 벤젼스(구 레드 고르곤)이 91%였다. 탐사에 관한 자세한 지표는 해당 클럽에서 공개하지 않기 때문에, 정보력이 취약한 아이리스가 알 수 있는 건 헌터 하우스에서 열람할 수 있는 달성률뿐이었다.
하지만 이것이 무슨 도움이 되겠는가. 당시 레드 고르곤의 1군 전력에 어떤 면면들이 있었는지도 모르는 마당에. 윤희지가 뜬구름 잡는 것 같다고 말한 것은 바로 이 때문이었다.
“어쩔 수 없지. 그래도 어떤 괴물들이 출현하는지는 대충 알고 있으니까, 그걸 바탕으로 공략해 나갈 수밖에. 티라녹의 마굴에서 가장 주의해야 할 건 역시 마굴 내를 광범위하게 돌아다니는 카름, ‘교구장(敎區長) 티라녹’이야. 패턴은 매번 변하지만, 근접전에 취약한 마법사형 카름이라는 점은 바뀌지 않았어.”
그때, 앞서 가던 신소율이 불쑥 끼어들었다.
“정말 치사해요. 카름을 퇴치하는 건 헌터들의 공통적인 목표 아니에요? 지금도 안정화되지 않은 지역에서는 카름들과 치열한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고요. 그런데 관련 정보는 하나도 공개하지 않고 자기들끼리만 알려 하다니! 너무해요, 정말!”
레귤러 탐사에 관한 정보를 공개하지 않는 클럽들에 대한 질타였다. 그러나 신소율의 투정은 별다른 공감대를 불러일으키지 못했다. 현실에 무지한 정론이었기 때문이다.
“흥. 바보 같은 소리를 잘도 지껄이네. 산속에서만 산 나도 너보다는 세상 물정을 잘 알겠다.”
“뭐예요?”
“너 같으면 경쟁자들에게 피땀 흘려 얻은 귀한 정보를 그냥 넘겨주겠어? 카름을 사냥하는 게 헌터들의 공통적인 목표라고? 처음엔 그랬을지도 모르지. 지금은 그냥 사업이야. 돈벌이라고. 리그에 속한 헌터들 중, 정말로 카름이 없어지길 원하는 녀석들이 하나라도 있을 것 같아? 현실은 달라. 이 멍청아.”
거하게 면박을 당한 신소율은 잔뜩 흥분한 얼굴로 씩씩대기만 할뿐, 데모나의 말을 받아치지는 못했다. 거칠게 말하긴 했지만, 틀린 말은 아니었으니까. 그래서 더욱 분했다. 입술을 꾹 앙다문 신소율은 더 이상 대화하기 싫다는 듯, 잰걸음으로 선두가 있는 쪽으로 가버렸다.
“삐졌네.”
낮게 중얼거린 노구덕은 데모나를 가볍게 타박했다.
“넌 왜 그렇게 심보가 꼬였어? 타이르더라도 좀 좋게 말할 수 있잖아.”
“내가 쟤 엄마인 줄 알아? 그리 걱정되면 네가 가서 응석 받아주던지.”
“하여간…….”
데모나와 말 섞어서 득 될게 없다는 걸 다시 한 번 체감하는 노구덕이었다. 그렇게 고개를 절레절레 젓는데, 그동안 꿔다 놓은 보릿자루처럼 조용히 있던 이두식이 말을 걸어왔다.
“저, 구덕이 형님.”
“뭐? 야 이…… 녀석아, 구덕이 형님이 아니라 구덕 형님이랬잖아. 그게 어려우면 그냥 큰형님이라고 부르라니까.”
데모나 탓에 ‘구더기 노이로제’를 앓고 있는 노구덕은 이제 그 비슷한 발음만 들어도 ‘구더기’로 인식하게 되어버렸다.
그에게 핀잔을 들은 이두식은 찔끔하여 머리를 숙였다.
“예. 큰형님.”
“그래, 왜 그러냐?”
“소율이한테 안 가봐도 괜찮을까요?”
이두식의 곰 같은 얼굴은 신소율에 대한 걱정으로 가득했다. 신소율은 아이리스에서 이두식과 스스럼없이 장난을 주고받는 유일한 존재였다. 사실, 장난을 주고받는다기 보다 한쪽이 일방적으로 놀리는 것에 가까웠지만. 말하자면, 이두식은 노구덕의 대타로 신소율의 심심풀이 상대가 되어주고 있는 셈이었다.
그래도 그런 장난질이라도 치면서 꽤 친분을 쌓은 것은 사실이었다. 나이도 두 살밖에 차이나지 않았으니, 골드러쉬에서 외롭게 지냈던 이두식으로서는 신소율을 귀여운 여동생으로 여기고 있었다. 그러니 저렇게 안절부절 못하는 것도 이해가 되는 일이었다.
“괜찮다. 지금은 저렇게 꽁해 있어도 조금만 지나면 금방 털고 잊어버릴 테니까. 데모나에게 저런 말 듣는 게 하루이틀 일도 아니고.”
“그래도…….”
“정 걱정되면 네가 가 봐라. 아니, 근데 그걸 왜 나한테 일일이 허락을 받으려고 해? 내가 쟤 아빠냐?”
노구덕은 방금 전 데모나가 했던 말을 자신이 그대로 읊고 있다는 걸 알고는 있는 걸까?
“그, 그러게요.”
삐질삐질 대답한 이두식은 묵직한 몸을 앞쪽으로 돌렸다. 그대로 걸음을 재촉해 신소율이 있는 곳으로 이동하는 그 뒷모습을 보던 노구덕은 돌연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이두식의 뒷덜미를 붙잡았다.
“두식아.”
“예? 예. 큰형님.”
그래도 아주 바보는 아닌지, 이번에는 제대로 된 호칭을 붙이는 이두식.
“너, 고아원은 제대로 돌아가고 있는 거냐? 그동안은 네가 계속 상주하며 애들을 보살폈다지만, 지금은 네가 없잖아. 그때 가서 보니깐 너 말고는 다른 어른도 없는 것 같던데.”
“아하.”
약간의 텀을 두고 노구덕의 말을 이해한 이두식은 양 손바닥을 짝! 소리가 나게 부딪쳤다.
“애들이 잘 할 겁니다. 저는 그냥 안에서 먹고 자기만 했지, 애들 보살피는 건 두 사람이 도맡아서 했거든요.”
“두 사람? 저번에 갔을 때는 분명히… 애들 밖에는 없었는데.”
노구덕은 이마를 찡그리며 임유진과 고아원에서 이두식을 처음 만났을 때를 떠올렸다. 폐가나 다름없는 흉물스런 건물 속에서도 작은 보금자리를 만들어 생활하고 있던 어린아이들. 아무리 기억을 더듬어 봐도 그 속에 이두식이 믿을만한 인물은 찾아볼 수 없었다.
“그때는 두 사람이 자리를 비웠었거든요. 아마… 장보러 갔을 때일 겁니다.”
“흠. 뭐 그렇다면야… 진즉에 내가 그쪽에도 신경을 써줬어야 하는 건데, 미안하다.”
“괜찮습니다. 큰형님. 저 이만 가도 될까요?”
“그래라.”
이두식은 꾸벅 허리를 숙이고 앞쪽으로 이동했다.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선두에서 걷고 있던 신소율의 쾌활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두식의 위로(?)가 효과가 있었던 건지는 몰라도, 데모나와의 앙금은 말끔히 잊어버린 듯 활달한 음색이었다.
“도착했어요!”
번쩍 든 손을 좌우로 이리저리 흔들어 보이는 신소율의 어깨 너머로, 불그스름한 황토로 뒤덮인 거대한 고분(古墳)의 위용이 드러났다. 겉모습은 영락없는 무덤이었지만, 실상을 안다면 돔형의 건축물이라고 해야 옳았다. 융성하던 옛 시절을 말해주듯 둥그스름한 둘레가 수십 미터에 달하는 마굴은, 저무는 노을빛을 받아 불길한 핏빛을 머금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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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리고당내리고당 / 쿠폰 감사합니다. 넙죽 받아먹겠습니다.
雨雲香 / 넵 코멘트 감사합니다~
빙뢰(氷雷) / 힘겨운 첫걸음을 내딛었을 뿐인데… 아직 머나먼 길입니다 ㅠ
하늘에서 오는비 / 솔직히 재생력은 이걸 의도한 설정이기도…
dndls / 재밌게 봐주셨다니 다행입니다 ^^
장마와방 / 여자들 속에서 살아가는 주인공에게는 필수죠 ㅎㅎ
r3f24sf / 다른 방면도 어서 발전해야 할텐데 ㅠㅠ
하얀산군 / 감사합니다!
티렌 / 전투에도 이제 능력을 키워나가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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