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unter Club RAW - chapter (4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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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3# 예정된 위기
123# 예정된 위기
소냐가 이상한 낌새를 알아차린 건, 블랙랩터의 클럽 홀을 나선지 몇 분도 되지 않아서였다.
‘꼬리가 붙었어.’
본격적으로 마력을 다룰 수 있게 되면서부터, 그녀는 자신에게 비범한 재능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녀가 가지고 있는 재능 중 하나는 냄새만으로 마력의 성질과 정체를 구별해 낼 수 있다는 것이었다. ‘냄새’라는 단어로 표현하긴 했지만, 이건 인간의 오감으로는 잴 수 없는 제 6의 감각이라고 봐도 좋았다.
예컨대 얼음의 성질을 띤 마력에겐 서늘한 느낌이, 불의 성질을 띤 마력에게서는 뜨겁거나 따스한 감각이 느껴졌다. 또한 같은 성질을 띤 마력이라도 주인의 성격이나 성향에 따라 그 정도가 천차만별이었다.
놀랍게도 소냐는 수천, 수만 가지나 되는 마력의 색감을 매우 정교한 단계에서 구분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꽤 멀리 떨어진 곳에서도 원하는 마력의 잔향(殘香)을 감지할 수 있었다.
그녀 스스로는 아케인센스(Arcane sense)라 이름 지은 이 능력. 아직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은 그녀만의 비밀이었다.
미행이 있다는 걸 알아차린 것은 이 아케인센스의 능력 덕분이었다.
조금이라도 마력을 지니고 있는 인물들은 특유의 향기를 흘릴 수밖에 없다. 일반인들이 대다수인 이 딕툼의 거리에서 그런 향기를 지닌 인물들은 대충 헤아려 살필 수 있을 정도로 적은 수.
그런데, 아까부터 두 개의 향기가 그녀가 지나온 곳을 정확히 따라붙고 있었다. 하나는 시원한 바람. 다른 하나는 뜨거운 불을 연상시키는 마력들이었지만, 두 개의 향기는 기분 나쁠 정도로 퀴퀴한 냄새를 풍기고 있었다.
소냐는 자기 어깨보다 챙이 넓은 고깔을 더욱 깊게 눌러썼다. 그리고 미행하는 자들이 눈치 채지 못하도록 자연스럽게 대로를 걸어가며 바쁘게 염두를 굴렸다.
‘둘 모두 나보다 강한 마법사. 어떡하지? 이모에게 연락을 넣어야 할까? …아니. 그럴 순 없어.’
호주머니 안의 통신용 수정을 만지작거리던 소냐는 지그시 입술을 깨물었다.
그녀가 지금 여기서 통신용 수정을 꺼낸다면, 미행을 눈치 챘다고 자인하는 것과 진배없다. 그럼 미행자들이 어떻게 나올까? 순순히 물러난다면 좋겠지만, 그녀가 감지한 마력의 주인들은 그렇게 호락호락한 자들이 아닌 것 같았다.
일이 잘못되었다고 느낀 순간, 그녀를 뒤따르는 저 두 마법사는 십중팔구는 이 대로 한복판에서 무자비한 납치를 시도할 것이다. 그녀가 마력을 일으켜 대항한다면 상대 역시 똑같이 마력을 일으킬 테고, 그러면 딕툼의 거리는 한순간에 피비린내 나는 수라장이 되겠지.
…이것이 소냐가 예상한 시나리오였다. 상대의 마력에서 풍기는 냄새는 그토록 음험하고 어두침침했다.
‘목적이 뭐지? 납치? 납치라면 왜? 대부님과 관계된 일일까?’
연약한 어린아이(겉으로 보기엔)를 납치하여 아이와 관계된 유력자를 압박했다. 정치적으로 흔히 일어날 법한 발상이다.
‘시간이 별로 없어.’
소냐의 마음이 조급해졌다. 저 멀리, 대로의 끝에 자리 잡고 있는 워프게이트가 보이고 있었다. 두 마법사가 그녀를 납치할 목적이라면 워프게이트에 입성하는 걸 가만히 바라보고만 있을 리 없다.
워프게이트 주변은 특히 인구의 유동이 많은 곳. 그곳에서 싸움이 벌어졌다간 앞서 예상한 아비규환의 참상이 그대로 재현될 터.
이곳 딕툼은 고작해야 미들리그 수준의 헌터들이 상주하는 도시다. 적어도 빅리그 이상의 수준으로 짐작되는 저 두 마법사가 날뛰기 시작하면 막을 수 있는 사람이 없다는 의미였다.
‘어떻게 하지? 워프게이트로 뛰어야 할까? 아니면…….’
“꺄아아아–!”
멀쩡히 걸어가고 있던 소냐는 갑자기 튀어나온 돌부리에라도 걸린 듯, 째진 비명을 내지르며 앞으로 넘어졌다. 동시에, 그녀가 눌러 쓰고 있던 고깔모자가 벗겨지며 청순가련한 엘프 여아의 얼굴이 드러났다.
“뭐지?”
“어머나….”
깨물어 주고 싶을 만큼 귀여운 여아가 눈물을 글썽거리며 까진 무릎을 감싸 쥔 채 주저앉아 있으니, 시선이 쏠리지 않을 수가 없다.
소냐의 가여운 모습에 이끌린 사람들, 특히 모성애 깊은 여인들은 어머어머를 연발하며 소냐의 주위로 몰려들었다. 눈 깜짝할 사이에 그녀의 주위에 모인 어른들만 수십여 명. 소냐가 아닌 다른 아이가 넘어졌어도 이만큼의 사람들을 끌어 모을 수 있을지 의문이었다.
“얘야, 일어날 수 있겠니?”
“아, 아니요…….”
그렁그렁 눈물방울을 매단 소냐는 울먹이면서 도리질을 했다. 그러자 몰려든 어른들 사이에서 한 여인이 번쩍 손을 들며 앞으로 나섰다. 로브에 새겨진 문장으로 봐서는 클럽에 소속된 헌터인 것 같았다.
“제가 치유 주문을 쓸 줄 알아요!”
인파를 헤치며 소냐에게 다가간 그녀는 울상을 짓고 있는 소냐를 안심시키려는 듯, 그 작은 등을 토닥이며 말했다.
“응. 아파도 조금만 참으렴. 이 언니가 말끔히 낫게 해 줄게.”
소냐의 무릎에 손을 얹은 여인이 조그맣게 주문을 외우자, 그녀의 손에서 성스러운 하얀 빛이 뿜어지며 무릎의 출혈이 멎기 시작했다. 이윽고 까진 상처가 완전히 아문 것을 확인한 그녀는 품에서 손수건을 꺼내서 무릎에 번진 핏자국을 닦아주었다.
“어떠니? 괜찮아졌지? 일어나볼까?”
“…윽!”
여인이 내민 손을 부여잡고 살짝 몸을 일으킨 소냐는 살짝 이마를 찡그리며 다시 자리에 주저앉았다.
“다, 다리가 너무 아파요.”
“다리가 아프다고?”
마법사 여인은 이상하다는 듯 고개를 갸우뚱했다. 치유 주문을 받은 소냐가 아직도 아파한다는 사실이 얼핏 이해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때, 옆에서 걱정스런 눈길을 보내던 한 남자가 끼어들며 참견을 했다.
“뼈가 어긋나거나 부러진 것일 수도 있지. 치유 주문은 제자리를 이탈한 골격까지 원래대로 되돌려 주진 않으니까.”
“아! 그럴 수도 있겠네요. 그, 그럼 어쩌지요?”
“여기서 이럴 게 아니라 애를 신전에 데려가야겠군. 얘야, 다른 보호자는 없니?”
사내의 물음을 들은 소냐는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버림받은 새끼양처럼 불쌍해 보이는 그 모습에 가슴 언저리가 찡해진 사내는 짙은 턱수염이 휘날리도록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면 이 아저씨가 업어서 바래다주도록 하마. 마침 아벨 신전엔 아는 사람도 있으니까.”
“저, 저도 동행할게요.”
순식간에 두 사람을 끌어들인 소냐는 남몰래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스스로의 연기력에 감탄할 만큼, 누가 봐도 자연스러운 상황 연출이었다. 소냐는 우선 두 사람의 도움을 받아 아벨 신전으로 향한 뒤, 미행자들의 눈길이 미치지 않는 곳에서 소피아에게 구원을 청할 생각이었다.
아홉 살 아이의 영악한 계획에 휘말린 두 남녀는 자신들이 깜박 속아 넘어갔다는 사실은 꿈에도 모른 채, 주저앉은 소냐를 등에 업고 아벨 신전으로 향했다.
딕툼 시내의 아벨 신전은 대로에서 조금 떨어진 외곽에 있었다. 그곳으로 향하는 동안, 소냐는 마법사 여인과 턱수염 사내의 신상을 알 수 있었다.
두 사람은 모두 클럽에 속한 헌터들이었다. 마법사 여인의 이름은 장하나, 턱수염 사내의 이름은 길포드로, 딕툼의 리그에서 무난한 활약을 보이는 헌터들이었다.
“아, 길포드 헌터셨군요. 이름은 많이 들었어요.”
“하하. 장하나 헌터의 얘기도 많이 들었습니다. 소문대로 미인이시군요.”
“어머, 뭘요.”
이 두 사람, 첫 만남부터 찌릿하게 통하는 게 있었던지 어느새 등 뒤의 소냐는 까맣게 잊어버리고 하하호호 이야기꽃을 피우고 있다. 길포드가 은근슬쩍 자신의 무용담을 늘어놓으면서 장하나의 미모를 칭찬하면, 장하나가 뻔한 내숭을 떨면서 길포드의 얼굴에 금칠을 해 주는 식이다.
아주 분위기가 화기애애한 것이, 가만히 놔두면 이 자리에서 떡두꺼비 같은 아들이라도 뚝딱 만들어낼 기세였다.
‘휴, 어른들이란…….’
흥에 겨워 들석이는 길포드의 목덜미를 끌어안은 소냐는 티 나지 않게 탄식하며 혀를 찼다. 여성 헌터답게 어여쁜 외모의 장하나와 남자답고 듬직한 인상의 길포드. 객관적으로 봐도 잘 어울리는 한 쌍이다.
문제는 지금 일행의 뒤를 두 마리 맹수가 바짝 뒤쫓고 있다는 것이다. 수준이 떨어지는 장하나와 길포드는 그런 사실을 전혀 알아차리지 못하고 있었다.
“…그래서 말입니다. 제가 트롤의 목을… 오, 다 왔군요.”
끝없이 부풀린 무용담을 자랑스럽게 늘어놓던 길포드는 신전이 보이는 골목 어귀에 들어서자 반색을 했다.
“우리, 아파도 조금만 참자. 참, 그러고보니 네 이름도 모르는구나. 괜찮다면 알려줄 수 있겠니?”
“…소냐예요.”
“소냐? 예쁜 이름이네. 언니 이름은 장하나야. 하나 언니라고 불러줘!”
“…네, 언니.”
소냐는 장하나의 수다에 건성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대충 장단을 맞춰주었다. 사실, 지금 그녀의 신경은 온통 뒤편에서 따라오고 있는 미행자들에게 쏠려 있어, 장하나의 말을 귀담아 들을 여유가 없었다.
그러다 문득, 소냐의 가슴 한쪽에 오싹한 한기가 감돌았다.
‘사람이… 보이지 않아?’
점점 가까워지는 아벨 신전의 전경. 그런데 그 주변은 돌아다니는 사람 하나 없이 텅텅 비어 있었다.
이상한 일이었다. 아벨 신전이 딕툼 대로에 비해 비교적 한산한 곳이라지만, 기본적으로 신전에는 몸이 불편한 환자나 병자들이 자주 드나드는 곳이다. 이처럼 신전 주변에 개미새끼 하나 보이지 않는 건 확실히 비정상적인 일이다.
소냐가 애를 태우는 동안, 두 헌터는 남의 속도 모르고 열심히 북 치고 장구를 치는 중이었다.
“우리 소냐는 낯가림이 심한 모양이구나? 음… 그래! 요즘은 쿨한 여자가 대세라니까, 오히려 그게 장점이 될 수도 있겠다! 길포드 씨, 우리 소냐 정말 예쁘지 않나요? 전 이렇게 귀여운 아이는 처음봐요.”
“흠흠. 두말하면 잔소리지요. 지금도 예쁘지만, 소냐가 크면 훨씬 더 대단한 미인이 될 겁니다. 하나 씨처럼요. 하하하.”
“어머, 어머. 제가 무슨 미인이라고… 호호호!”
“하나 언니, 아저씨.”
“응? 왜 그러니?”
“큼, 이왕이면 오빠라고…….”
“지금부터 제 말 잘 들어요.”
뚝. 장하나와 길포드의 시답잖은 말을 단숨에 끊어버린 소냐는 이내, 길포드의 등을 강하게 박차고 뛰어오르며 크게 고함을 내질렀다.
“도망쳐요! 실드(Shield)!”
다리가 아프다던 소냐가 난데없이 펄쩍 뛰어내린 것도 모자라, 푸른 빛이 감도는 마법의 장막을 펼쳐내자 어리둥절해하던 두 사람의 눈이 튀어나올 듯 커다래졌다.
“어어? 무, 무슨….”
“즈, 즉발 주문? 어떻게 이런 어린 아이가…!”
그러나 팔자 좋게 감탄하고 있을 틈은 없었다. 소냐의 주문이 펼쳐지기 무섭게 뒤쪽 골목에서 거뭇한 그림자가 튀어나오며 이글거리는 불덩이가 날아온 것이다.
콰앙!
작열하는 불덩이를 정면으로 맞받아낸 푸른 장벽이 금방이라도 깨질 것처럼 거세게 뒤흔들렸다.
“…우윽!”
입술을 피가 나도록 깨문 소냐는 형체가 희미해진 보호막에 급히 마력을 불어넣었다. 그리고는 여전히 멍하니 입을 벌리고 있는 두 사람을 돌아보며 언성을 높였다.
“어서 도망치란 말이에요!”
“스, 습격?”
“딕툼 한복판에서 이게 대체…….”
대로 한복판에서 습격이라니? 게다가 고작 열 살 남짓한 아이가 즉발 주문을 쓴다? 두 사람에게는 한편의 연극처럼 보일 정도로 비현실적인 일이었다.
그러는 사이, 또다시 거대한 불덩이가 날아와 소냐의 보호막을 거칠게 두들겨댔다.
콰아아앙!
“꺄아악!”
이번에는 그녀의 수준으로 막을 수 있는 세기가 아니었다. 보호막을 강타하는 충격을 이기지 못한 소냐는 가냘픈 비명과 함께 힘없이 뒤로 나뒹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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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의 추천과 코멘은 작가에게 큰 힘이 됩니다.
오늘은 아마도 2연참 예상합니다. 한편 서둘러 올리고 다음편 조속히 쓰도록 하겠습니다.
행복한 주말 되세요!
참, 전편 whomi님 자세한 정보 감사합니다! 참고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