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unter Club RAW - chapter (4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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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3# 예정된 위기
쿠우웅!
등 뒤로 들려온 성난 폭음에, 소냐는 작은 어깨를 초조하게 들썩였다. 서둘러 뒤를 돌아보니 꼭두각시들의 파상공세에 울펜이 일방적으로 밀리고 있는 것이 보였다. 핏빛 기류를 둘러친 울펜이 나름대로 선전하고는 있었으나 반격보다는 방어에 급급한 모습인지라, 오래버티진 못할 것 같았다.
숨을 헐떡이며 울펜이 말했던 결계의 근원지에 도착한 소냐는 한 숨 돌릴 겨를도 없이 정신을 집중했다. 아케인센스를 최고 수준으로 발휘해 결계의 핵을 찾는 작업에 들어간 것이다.
얼마 지나지 않아, 소냐는 태풍의 눈 같은 무형의 소용돌이가 신전 앞마당에서 천천히 회전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찾았다.’
적란운(積亂雲)처럼 높은 탑을 이루며 결계의 축을 형성하고 있는 근원. 특이하게도 기둥을 이루는 마력의 색과 성질은 고요한 새벽녘의 이슬을 보는 듯 투명하고, 은밀했다. 육안으로 식별할 수 없었던 데에는 다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애써 결계의 축을 찾아낸 소냐는 다시 커다란 난관에 부딪칠 수밖에 없었다. 그녀가 지닌 마력 양에 비해, 축을 이루고 있는 티렐의 마력은 너무 강대했다. 한 줌 밖에 남지 않은 그녀의 마력을 작은 바늘에 비유한다면, 저건 단단한 대리석 기둥이었다.
작고 초라한 바늘로 대리석 기둥을 무너뜨릴 수 있을까?
불가능이다. 기껏해야 표면에 아주 미약한 흠집을 남기는 게 전부. 무리를 하다간 바늘째로 부러지고 말 터였다.
‘어떡하지?’
언제나 영활하게 잘 돌아가던 머리가 기능이 정지한 것처럼 사고를 멈추었다. 표정을 잃어버린 소냐는 넋 나 간 사람처럼 우두커니 서서, 단단한 빙벽처럼 앞을 막아선 기둥을 올려다보았다.
이 기둥을 무너뜨리지 못하면 티렐의 손아귀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장하나, 길포드, 울펜의 희생과 용기도 별 가치 없는 헛짓거리로 전락하게 되겠지.
‘그럴 순 없어.’
별안간, 소냐는 빠득 소리가 날 정도로 어금니를 세게 깨물었다.
그들의 노력을 물거품으로 만들 수는 없었다. 길포드의 말마따나, 여기서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물러난다면 평생 제대로 발을 뻗고 자지 못할 거야. 소냐는 그렇게 생각했다.
‘어차피 어려운 일이란 건 처음부터 알고 있었잖아. 하지만……. 앗!’
빠르게 마력 기둥을 훑어 내리던 소냐의 눈에 갑자기 이채가 어렸다. 높게 치솟은 마력 기둥의 아랫부분, 말하자면 밑동 주변에 깨알 같이 새겨져 있는 도형들이 눈에 들어온 것이다. 눈에 힘을 꽉 주고 살피지 않았더라면 깜박하고 지나쳤을 뻔한 아주 작은 문양들이었다.
‘마법 술식!’
크게 치떠진 소냐의 동공이 먹잇감을 발견한 맹금처럼 번뜩였다.
마법진의 해독과 파훼는 소냐의 주특기라고 할 수 있는 분야였다. 정교하게 짜인 마법진은 외부의 작은 개입으로도 파훼될 수 있다. 만약 저 작은 마법진이 기둥의 구성에 조금이라도 관여하고 있다면…….
‘쓸데없는 마법진이라면 저토록 은밀하게 감출 이유가 없어.’
아직 희망을 버리기엔 일렀다. 견고한 대리석 기둥의 가장 취약한 균열점을 찾아낸 소냐는 서둘러 마력진이 새겨져 있는 밑동으로 달려가 마법진의 파훼에 착수했다.
소냐가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칙칙한 어둠 속에서 희미한 빛을 찾아낸 그때, 티렐의 두 꼭두각시를 상대하는 울펜은 외줄타기처럼 아슬아슬한 대치 구도를 이어가고 있었다.
섬뜩하리만치 예리한 기운을 발하는 바람의 칼날을 가까스로 빗겨낸 울펜은 그 틈을 노리고 날아온 불덩어리에 피할 새 없이 몸을 내주고 말았다.
“쿨럭!”
울펜은 답답한 기침을 토해내며 힘없이 비틀거렸다. 몸을 감싸고 있는 기운 덕분에 외상은 면했지만, 내부에 받은 충격은 속에서 쓴물이 올라올 정도로 강렬했다.
“슬슬 밑천이 떨어졌나보군.”
“이놈…!”
가래가 들끓는 울펜의 음성에 진한 노기가 깃들었다. 상대의 말투에서 전해지는 여유로움을 읽은 탓이다.
사실, 티렐이 끝내려고 마음만 먹었으면 진작 끝난 승부였다. 그럼에도 티렐은 울펜을 적당히 봐주면서 상대하고 있었다. 마치 실험용 쥐를 다루듯, 이것저것 천천히 뜯어보면서 그가 벌레교단의 비기들을 꺼낼 수밖에 없게끔 상황을 조성하고 있었다.
그 이유는 아마도…….
“그것이 벌레교단의 고유 주술인가? 발레기우스도 비슷한 능력을 쓸 수 있겠지?”
“닥쳐라!”
또 한 번 발레기우스의 이름이 언급되자, 분기탱천한 울펜은 격하게 오른 소매를 떨쳐 선홍빛 기운을 날려 보냈다.
마력의 핵을 정확히 타격하는 일격. 처음 꼭두각시를 기습해 무력화시켰던 기습과 동일한 수법이었다. 하지만 꼭두각시는 그때처럼 순순히 당해주지 않았다. 불의 꼭두각시가 유연하게 몸을 틀어 선홍빛 광선을 빗겨낸 사이, 어느새 울펜의 배후에 나타난 바람의 꼭두각시는 그 자리에서 한 바퀴를 돌아 울펜의 등허리를 발로 차 버렸다.
“어억!”
호되게 얻어맞은 울펜의 노구가 깃털처럼 붕 떠서 오 미터는 넘게 날아갔다. 그는 쓰러지자마자 곧바로 몸을 튕겨 일어났다. 겉으로는 별 타격을 받지 않은 모습이었으나, 실상 그의 내부는 이미 엉망인 상태였다.
‘그, 글렀군….’
골렘이라도 있었다면 어떻게든 더 시간을 끌 수 있었겠지만, 그의 주력 수단인 골렘은 소냐를 구해내기 위한 그 한 수를 위해서 미끼로 던져버렸다. 검사로 치자면 검을 버린 것이나 마찬가지인 행동. 그러나 한 점 후회는 없었다.
‘아쉽구먼. 내가 백년만 젊었더라면…….’
속으로 실없는 생각을 한 울펜은 저승사자처럼 다가오는 두 꼭두각시를 노려보며 각오를 다졌다. 벌써 이백 년이 넘도록 살아온 몸. 발레기우스를 타도한다는 숙원을 이루지 못하고 생을 마감하는 건 좀 아쉬웠지만, 그래도 미련은 남아 있지 않았다.
좌우 양 옆에서 포위망을 굳혀오던 꼭두각시들은 울펜이 양 손을 늘어뜨린 채 미동도 하지 않자, 의아히 머리를 기우뚱했다.
“포기한 건가?”
“그렇다. 더는 날 털어봐야 나올 것도 없다. 실컷 가지고 놀았으면, 어서 죽이기나 해라.”
“흠.”
티렐은 울펜의 말을 믿지 않았다. 지금까지 아득바득 싸워오던 상대가 이처럼 갑자기 무력해졌다는 것도 믿기지 않거니와, 무엇보다 울펜의 저 눈은 포기한 자의 눈이 아니었다.
“…그렇다면, 끝내주도록 하지.”
“오냐, 덤벼라.”
동시에, 울펜의 흐릿한 눈자위에 시뻘건 기운이 가시처럼 돋아났다. 또한 그의 주변을 둘러싼 핏빛 기류가 스펀지 속으로 스며드는 물처럼 비루한 몸 안으로 쏙 빨려 들어갔다.
뻔해도 너무 뻔한 수법. 한순간에 증폭된 그의 기운을 감지한 티렐은 혀를 차며 중얼거렸다.
“자폭인가. 내가 그걸 맞아줄 거라 생각하나?”
울펜은 주름투성이의 입꼬리를 슬쩍 말아올렸다. 티렐의 말대로, 모든 기운을 몸 안에 응축한 울펜. 그가 준비한 비장의 수는 벌레교단의 자폭주문이었다.
“네가 피한다 해도, 결계에 영향은 줄 수 있으렷다.”
“그럼 저 아이까지 휘말리게 될 텐데.”
“어차피 여기서 네놈과 결판을 짓지 못하면 저 아이는 네 손에 넘어가게 되겠지. 네놈이 정말로 저 아이를 원한다면, 여기서 날 막는 게 좋을 것이야.”
말인즉슨, 소냐를 잃고 싶지 않으면 자폭 주문을 받아내라는 뜻이다. 짐짓 소냐를 볼모로 삼은 것처럼 비정하게 구는 울펜. 허나 그 목소리에서는 미세한 떨림이 일고 있었다.
그의 허장성세를 알아채지 못한 것일까? 결사의 각오가 깃든 울펜의 얼굴을 뚫어져라 쳐다보던 티렐은 할 수 없다는 듯 중얼거렸다.
“과격한 노인네로군.”
“흐흐흐… 본 교단의 전통이니라.”
음충맞은 미소를 흘리며 대꾸하는 울펜. 그러나 티렐의 다음 말은 그가 전혀 예상하지 못한 것이었다.
“착각하지 마라. 노망난 늙은이의 장난에 부응해 줄 생각은 없으니까.”
“무엇이? 나, 날 막지 못한다면 저 아이가…….”
티렐의 두 꼭두각시는 당황한 티가 역력한 울펜을 내버려두고 오륙 미터 정도 뒤로 물러났다. 울펜처럼 두 손을 가지런히 늘어뜨린 것이, 전혀 싸울 생각이 없는 것 같았다.
“의기만은 기억해 둘 테니, 헛수고하지 말라는 뜻이다.”
“뭐라고?”
“울펜이라고 했지. 제법 흥미로운 수법들이었다. 다음을 기대하겠다.”
꼭 금방이라도 물러날 것 같은 말투다. 다 잡은 고기를 내버려두고 물러난다고? 어째서? 아직 영문을 파악하지 못한 울펜의 표정에 큰 혼란이 일어난 찰나.
쩌적!
거대한 알의 표면이 갈라지는 소리가 났다. 신전 일대를 아우르고 있는 티렐의 결계에 굵직한 균열이 생겨난 것이다.
그토록 굳건하던 결계가 해제되고 있다. 육안으로는 살필 수 없는 현상이었으나, 뛰어난 기감을 가진 울펜은 똑똑히 느낄 수 있었다.
“설마… 그 아이가 정말로!”
황급히 고개를 돌린 울펜의 시야에 기진맥진하여 신전 한복판에 주저앉은 소냐의 모습이 들어왔다. 마침 그쪽을 바라보고 있던 소냐는 말간 얼굴에 희미한 미소를 짓더니, 힘없이 고개를 늘어뜨렸다. 모든 마력을 탕진하여 탈진 증상이 나타난 것이다.
그러나 멀리 있는 울펜이 그녀의 상태를 알 수 있을 리 없었다. 맥없이 쓰러지는 소냐의 모습을 본 울펜은 안색이 홱 돌변했다. 그녀가 죽었다고 착각한 울펜은 기껏 활성화시킨 공갈용 자폭을 중단하고, 허둥지둥 그녀가 쓰러진 곳으로 달려갔다.
“얘, 얘야!”
무방비로 뛰어가는 울펜의 등이 적나라하게 보이고 있었으나, 티렐의 꼭두각시들은 울펜 따위는 안중에도 없다는 듯 쓰러진 소냐의 얼굴만을 주시하고 있었다.
“볼수록 감탄하게 만드는군. 악마에게 영혼을 팔아서라도 손에 넣고 싶은 재능이야.”
로브자락이 강풍에 휘날리듯 거세게 펄럭이고, 허공으로 살짝 떠오른 두 꼭두각시의 발밑에 작은 마법진이 생겨났다.
“…씨앗은 뿌려뒀으니. 수확이 기다려지는군. 네 선택을 기다리마.”
의미를 알 수 없는 독백을 남긴 꼭두각시들은 그대로 마법진 속으로 빨려들어, 순식간에 자취를 감추었다.
티렐의 꼭두각시들이 홀연히 사라진 다음 순간, 거북의 등처럼 균열을 거듭하던 결계가 마침내 산산이 부서져 내렸다. 그리고 산산이 흩어지는 진한 마력의 잔향 속에서, 귀청이 떨어질 것 같은 날카로운 고함소리가 날아들었다.
“소냐야아아아–!”
째진 비명과도 같은 고함과 함께 나타난 여인은 귀신처럼 산발을 한 소피아였다. 새하얀 머리카락을 펄럭이며 안으로 뛰어든 그녀는 충혈된 눈을 빛내며 미친년처럼 주위를 두리번거리다, 근처에서 죽은 것처럼 쓰러져 있는 소냐를 발견했다.
…그리고 공교롭게도, 그런 소냐를 헐떡이며 덮치려고 하는 추레한 늙은이의 모습도.
다시 말하지만 울펜의 외모는 추악하기 짝이 없다. 솔직히 말해서 멀리서 보면 사람인지 털복숭이 괴물인지 분간이 되지 않는다. 게다가 상황도 상황이니 만큼… 소피아의 눈에는 그 장면이 영락없게도 사악한 꼽추 늙은이가 여리디 여린 소녀를 덮치려고 하는 것으로 보였다.
“무, 무슨 짓이야! 저리 떨어지지 못해!”
발등에 불이 떨어진 마당에 앞뒤 가릴 게 무에 있으랴. 눈이 뒤집어진 소피아는 망설임없이 게오베르그의 손아귀를 소환했다.
“이, 이건?”
그 나름대로 정신없이 뛰어, 엎어지면 코 닿을 거리까지 도달한 울펜은 소냐의 윗공간에서 갑자기 거대한 손아귀가 소환되자 기겁을 할 수밖에 없었다.
깜짝 놀란 울펜이 걸음을 멈춰 세운 찰나, 그의 귓전에 칼로 후벼파는 듯한 절규가 날아들었다.
“죽어어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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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어서 죄송합니다 ㅠㅠ 어제 늦게까지 과음을 하다보니.. 리리플 남길 겨를도 없이 오자마자 뻗어버렸습니다. 일어나보니 해가 중천에 떠 있네요..
허겁지겁 출근준비하기 전에 분량 좀 써놓고, 가게 나와서 분량 채우고 올립니다. 12시 전에 한편 더 올릴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내일 마지막 예비군도 다녀와야 하는데 큰일이네요. 오늘 하루는 글 쓰는 기계가 되어야 할 것 같습니다.
예 비 군
정말 귀찮아요 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