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unter Club RAW - chapter (4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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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3# 예정된 위기
벼락같은 외침과 함께 거인의 손아귀가 위로 덮쳐들자, 그늘이 드리워진 울펜의 얼굴이 아득하게 일변했다.
그물망처럼 펼쳐진 거인의 손, 그리고 물 먹은 솜처럼 지쳐 늘어진 그의 몸뚱이. 어딜 돌아봐도 도망칠 구석도, 저 거력을 막아낼 힘도 남아 있지 않았다.
‘허… 이건 막을 수 없다.’
늑대를 쫓아냈더니 호랑이가 온 격이랄까. 거인의 손아귀에 깃든 정령의 힘은 그로서도 가늠하기 어려울 정도로 강력한 것이었다. 설령 몸이 멀쩡하다 하더라도 막을 수 있을지 의문이었다.
‘이렇게 죽는구나.’
울펜은 최후를 예감하고 눈을 감아버렸다. 때문에 그는 보지 못했다. 그와 게오베르그의 손아귀 사이로 한 줄기 녹색 그림자가 끼어드는 것을.
쿵!
울펜의 볼품없는 몸뚱이를 불도저처럼 휩쓸어버릴 것만 같았던 게오베르그의 손바닥이 움직임을 멈추었다.
“……?”
아무리 기다려도 예상했던 고통이 느껴지지 앟자 이상함을 느낀 울펜은 슬그머니 한쪽 눈꺼풀을 쳐들었다.
그의 눈에 들어온 것은 울퉁불퉁한 근육으로 뒤덮여 있는 강인한 사내의 등판이었다. 탄력있는 고동색 가죽 갑옷을 걸친 너른 등판의 좌우로 보이는 꺼끌꺼끌한 녹색 피부, 그리고 어지간한 여인의 몸뚱이보다 두꺼워 보이는 우람한 양 팔은 분명 기억 한 구석에 강렬히 남아 있는 사내의 것이었다.
양 팔을 뻗어, 코뿔소처럼 거인의 일격을 버티고 선 오크 사내. 망연히 입을 벌리고 있던 울펜은 퍼뜩 정신을 차리곤 그의 이름 세 글자를 부르짖었다.
“노구덕!”
“영감님, 오랜만입니다.”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그를 구원한 사람은 다름 아닌 노구덕이었다.
한편, 게오베르그의 맞은편에 나타난 노구덕을 목격한 소피아는 까무러칠 듯이 놀랄 수밖에 없었다. 아니, 소냐를 덮치려는 괴생명체(?)를 공격했는데 왜 거기서 동행한 노구덕이 끼어든단 말인가?
“주, 주인님!”
‘소피아, 힘을 거둬라.’
“네, 네엣!”
질겁한 것도 잠시, 뇌리를 울리는 노구덕의 텔레파시를 받은 소피아는 거듭 고개를 끄덕이며 서둘러 힘을 거둬들였다.
잠시 후, 게오베르그의 소환을 해제한 소피아는 바삐 발을 놀려 노구덕과 울펜이 있는 곳으로 달려갔다. 숨이 찰 정도로 뛰어온 그녀는 무너져 내릴 것만 같은 얼굴을 하고선 주인에게 깊은 사죄를 올렸다.
“죄…죄송합니다! 죽어 마땅한 죄를 범했어요!”
사정은 모르겠지만 저 괴인은 그의 주인과 안면이 있는 사이 같았다. 즉, 자신의 오해로 노구덕의 지인의 목숨을 앗아갈 뻔했다는 얘기다. 또 그건 둘째 치고, 실수이든 아니든 노구덕을 공격했다는 행위 자체가 소피아의 입장에선 죽을죄나 마찬가지였다.
“아니… 난 괜찮네만…….”
울펜은 정신머리 없이 산발을 한 미인이 당장이라도 오체투지를 할 것처럼 극진한 사죄를 올리자 어리둥절한 얼굴로 노구덕을 바라보았다.
“이 처자는 누군가? 혹시 방금 전 거대한 손을 소환한 사람이…?”
노구덕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며 그의 의문을 해소해주었다.
“제 아냅니다. 저기 쓰러져 있는 소냐의 이모지요. 소냐는 제 수양딸이기도 하고요.”
“허어…?”
말을 잇지 못하는 울펜에게서 시선을 뗀 노구덕은 몸 둘 바를 몰라하는 소피아의 동그란 어깨를 굳게 다잡아서 진정시켰다.
“소피아, 진정해라. 왜 이렇게 정신이 없어. 이럴 때일수록 이모인 네가 마음을 다잡아야지. 우선 소냐의 상세부터 살펴라. 다행히 겉으로 보기엔 이상이 없는 것 같지만, 혹시 모르니까.”
“아…! 네! 소, 소냐!”
황망히 끄덕이는 얼굴과는 달리, 그녀는 아직도 반쯤 정신이 나가 있는 것 같았다. 그나마 소냐라는 말에 다시 이성을 수습한 소피아는 부리나케 근처에 쓰러져 있는 소냐에게로 향했다.
노구덕은 허겁지겁 소냐의 상세를 살피는 소피아의 뒤태를 보며 나직하게 한숨을 내쉬었다.
소냐의 실종 소식이 전해진 후로, 소피아는 극도의 불안 증세를 보였다. 소냐가 사라진 두 시간여 동안, 소피아는 바람의 정령을 동원해서 칼립스와 딕툼 일대를 빈틈없이 휘젓고 다녔다. 그녀가 미친년이 산발한 꼬락서니를 하고 있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었다.
그 정성이 하늘에 닿은 것인지, 딕툼의 신전 지대에 펼쳐진 결계의 존재를 가장 먼저 알아차린 것 또한 때마침 딕툼을 수색하던 소피아였다. 그녀가 티렐의 결계를 눈치챌 수 있었던 것은 최초에 울펜의 골렘이 결계의 중심부를 뒤흔들어 결계에 타격을 준 덕분이었다.
하지만 그녀가 감지할 수 있었던 것은 어떤 미지의 힘이 딕툼에 도사리고 있다는 것뿐. 잠시 흔들렸던 결계의 힘이 다시 원상태로 돌아가면서, 그 정확한 위치까지는 알아낼 수 없었다.
별 수 없이 처음 기운을 감지한 일대를 굶주린 늑대처럼 맴돌던 소피아. 그 뒤, 소냐가 결계의 파훼에 성공하면서 밖으로 새어나간 결계의 존재를 놓치지 않고 포착한 그녀는, 신전 일대의 공간 격리가 풀리자마자 이 내부로 난입한 것이었다.
“주인님! 단순한 마력 탈진인 것 같아요. 다른 이상은 없고요….”
마력의 소모로 인한 탈진이라면 생명에 지장이 갈 정도의 중상은 아니다. 내심 소냐의 상세를 걱정하던 노구덕은 소피아의 진단을 듣고서야 가슴을 쓸어내릴 수 있었다.
“그래? 정말 다행이군.”
“네. 다행이에요. 정말 다행이야……. 흑….”
소피아는 조카의 창백한 볼에 얼굴을 비비며 작게 흐느꼈다. 그러자 꼭 감겨져 있는 소냐의 눈 언저리가 작은 떨림을 일으켰지만, 소냐의 몸을 끌어안고 있는 소피아는 그 미미한 변화를 눈치 채지 못했다.
소냐를 품에 안고 오열하는 소피아를 안쓰럽게 쳐다보던 노구덕은 이윽고 두 엘프에게서 시선을 거두고 울펜을 바라보았다.
“휴우. 죄송합니다. 저 녀석, 저 아이가 유일한 혈육입니다. 갑자기 아이가 실종됐다는 말을 들은 뒤부터는 쉴 새 없이 뛰어다녔지요.”
“이해하네. 자네 부인이 저토록 모정(母情)이 깊으니… 저 아이가 번듯하게 큰 이유를 알겠군. 수양딸이라고 했나? 자식 하나는 정말 잘 키웠네.”
“뭐… 소냐가 또래에 비해 조금 의젓하긴 하지요.”
울펜의 칭찬을 들은 노구덕은 씁쓸하게 웃으며 대꾸했다. 고작 9살인 소냐가 번듯하게 컸다는 칭찬을 들으니, 왠지 모르게 어색한 기분이었다. 하긴, 그조차 가끔 소냐의 나이가 두 자릿수도 되지 않았다는 것을 간혹 까먹을 때가 있었으니…….
불현듯, 노구덕은 은근하게 풀어진 얼굴을 바로 했다. 생각지도 못한 울펜과의 만남이 반갑긴 했지만 회포는 나중에라도 풀 수 있었다. 지금은 ‘소냐 실종사건’의 전모를 파헤치는 게 더 중요했다.
소피아와 함께 결계 안으로 진입한 그가 본 것은 신전 앞마당에 자갈처럼 널브러져 있는 사람들과, 쓰러진 소냐에게 달려가는 울펜의 모습이 전부였다. 달리 범인으로 짐작되는 인물은 보이지 않았다.
잠깐 울펜을 의심하기도 했었지만, 그건 극히 가능성이 낮은 일이었다. 발레기우스에게 쫓기는 입장인 울펜이 이 딕툼 번화가에서 무슨 이유로 그런 무리한 짓을 벌인단 말인가? 게다가, 그가 알기로 벌레교단의 주문들 중엔 이런 식의 대규모 결계는 없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는 울펜을 믿었다.
“그건 그렇고… 영감님, 어떻게 된 겁니까? 자초지종을 듣고 싶군요.”
“음, 그게…….”
“아. 잠시만 기다려주십시오.”
통신용 수정을 꺼낸 노구덕은 아이리스와 블랙랩터 등, 주요 클럽들에게 연락을 넣어 지원 인력을 요청했다.
“…그래, 의식을 잃고 쓰러진 사람들이 다수 있다. 사제들 위주로 데려오는 게 좋을 것 같다. 세희도 부르도록 해. 시간이 없다. 서둘러라.”
신소율에게 지시를 넣은 노구덕은 다시 울펜을 돌아보며 미안하다는 듯 살짝 고개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아무래도 현장 정리를 해야 할 것 같아서요. 휘말린 사람들이 꽤 많아 보이는군요.”
“음. 그래야겠지. 그래서 말인데, 저쪽 두 사람의 응급처치를 부탁해도 되겠나?”
“두 사람이라면…?”
울펜의 손을 따라 이동한 노구덕의 시선이 멀지 않은 곳에 쓰러져있는 장하나와 길포드에게 머물렀다.
“저 아이를 지키기 위해 목숨을 아끼지 않고 싸운 사람들이네. 특히 저 전사는 조속한 치료가 필요해.”
“알겠습니다. 소피아, 들었겠지. 부탁한다.”
“…맡겨주세요.”
어느새 흐릿하게 남은 눈물 자국을 제외하곤 차분함을 되찾은 소피아는 서둘러 길포드에게 다가갔다. 소냐를 위해 싸워준 고마운 이들이라면 절대 허투루 대할 수 없었다.
“소피아의 치유 주문이라면 어느 정도 응급처치는 될 겁니다. 또, 조금 있으면 사제들이 도착할 테니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고맙군.”
“응당 할 일을 한 것뿐입니다.”
그제야 마음을 놓은 울펜은 옅은 한숨을 지으며 맨바닥에 엉덩이를 붙였다. 빳빳하게 조였던 긴장의 끈이 한 번에 풀어진 탓에 좀처럼 서 있을 수가 없었다.
“…이곳에 나타난 범인은… 겉으로 보기엔 두 명이었네. 아마도 저 아이를 데려갈 목적으로 접근한 것처럼 보였는데… 굉장한 실력을 가진 마법사였지. 자네도 보았겠지만, 이만한 결계를 칠 수 있는 사람은 대륙을 뒤져도 흔치 않을 게야.”
“대충 높은 수준의 마법사일 거라 짐작하긴 했습니다. 그런데… 겉으로 보기엔 두 명이라니요? 다른 조력자가 더 있다는 말씀입니까?”
“아니, 상대는 한 명이었어.”
“예?”
방금 전에는 두 명이랬다가, 이번에는 한 명이란다. 울펜의 말이 앞뒤가 맞지 않자, 노구덕은 그에게 설명을 요구하는 눈빛을 보냈다.
“이곳에 나타난 두 명은 사람이 아니라 퍼핏(Puppet)이었네. 불과 바람의 마법을 쓰면서, 근접전에도 능한 퍼핏들이었지. 그것들이 퍼핏인지, 골렘인지, 아니면 또다른 종류의 무언가인지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각 개체가 아주 강력했어.”
마법도 통하지 않고, 물리력으로만 상대할 수 있는 꼭두각시에 대한 설명을 들은 노구덕의 눈두덩이 심각하게 꿈틀거렸다.
“그걸 한 놈이 조종했다는 말입니까?”
“내가 보기엔 그렇다네.”
“…인형을 매개로 이 정도의 결계를 쳤다는 건…… 어쩌면 상상이상의 실력을 가진 자일지도 모르겠군요.”
기실 소냐는 티렐의 정체를 소리 내어 말한 적이 있었지만, 울펜은 그것까진 자세히 듣지 못한 모양이었다.
자초지종을 듣게 된 노구덕은 나직하게 머리를 주억거리더니, 바닥에 처박혀 있는 인간형 골렘을 가리켰다. 저 골렘, 아까부터 묘하게 그의 신경을 거슬리게 만들고 있었다.
“…저건 뭡니까?”
“허허허.”
울펜은 바로 답하지 않고 의미심장한 웃음을 지었다.
“눈치 챘나?”
“아주 낯이 익은 놈이군요.”
“자네를 본떠서 새롭게 만든 놈이지. 아다만티움 성분도 섞어 넣어서 내구력이 아주 강하다네.”
“그건 모르겠고, 왜 하필 모델이 접니까?”
“자네를 본받아 교단의 기둥이 되란 의미에서…….”
“됐습니다.”
쯧쯧. 이 영감은 오랜만에 만났는데도 변함없이 괴팍한 면이 있었다.
노구덕이 혀를 차며 소피아를 부르려는 그때, 멀찍이서 아련한 외침이 들려왔다. 요란한 인기척이 들리는 곳으로 눈길을 주니 저 멀리서 신소율… 이 아닌 안세영이 발바닥에 땀이 나도록 뛰어오고 있는 것이 보였다. 그밖에도 여러 인기척이 감지되는 걸로 봐선 아까 요청한 지원인력이 당도한 모양이었다.
‘그런데 왜 전령이 세영이지? 소율이는?’
의문을 느낀 것도 잠시. 뛰어오는 안세영의 입모양이 만들어낸 급보를 전해들은 노구덕의 표정이 무서우리만치 굳어졌다.
“오, 오너! 빨리 복귀를! 화, 환자가… 사라졌어요!”
============================ 작품 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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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어떻게 오늘 두 편을 올렸네요. 내일은 예비군입니다. 훈련을 받는 건 이번년도가 마지막이네요.
내일 연재일정은 솔직히 잘 모르겠습니다. 그래도 최소한 한편 정도는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우선 올리고, 리리플은 12시 넘어서 달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혀기11 / 옳은 말씀입니다. 리리플 보다는 한편 더 올리는게 독자님들에겐 더 좋겠지요. 제가 한 200화 까지만 하더라도 매편마다 리리플을 달았었는데, 연재 속도를 올리면서부터는 그러질 못하게 되었습니다. 비중을 둔다기 보다는.. 그냥 소통 같은 거라고 할까요. 제게는 그런 의미이네요.
소설폐인맨 / 넵. 예비군 잘 다녀오도록 하겠습니다!
저주붙은힐 / 외모지상주의를 벗어날 수 없죠 ㅠㅠ
니오그타 / 이참에 말끔히 면도를 해드려야 겠어요.
퍼나몬드 / 워낙 꼴이 말이 아니다보니… 이런 오해도 사게 되네요.
하수구시체 / 흠흠.. 리플 달아주시는 그 벌레님은 아니겠죠?
ShiftDelete / 외모라기 보다는.. 상황상 어쩔 수 없는 부분이.. 하하..
신수[神手] / 어떻게 끝나게 될까요? 소냐야!
얼라이언스 / 이래서 면도가 중요한 겁니다.
쌈커 / 다행히 꾀꼬닥은 면했네요.
가식적썩소 / 제 성향은 지극히 노말입니다.
빅대어 / 가벼운 해프닝으로 끝났네요. ㅎㅎ;
은신설야 / 항상 감사합니다 (_ _
kred / 조교의 부작용일까요 ㅋㅋ 소냐와 구더기한테는 허점을 마구노출하는 소피아네요.
디바인워즈 / 다행히 적절히 주인공이 난입을 했습니다!
벌레 / 노멀한 댓글 감사합니다.
북치네 / 추천 감사히 받았습니다~!
라이거나이트 / 에이, 설마 제가 여기서 울펜을 죽이겠습니까? 막장드라마도 아니고 ㅎㅎ;
asd메이지 / 그럴 리가요! 그런 무리수 진행은 하지 않아요!
아스라히i / 앞으로도 구를 날이 많이 남았는데 벌써부터 그런 말씀을 하시면!
아름바름 / 소냐는 적당히 괴롭히겠습니다 ㅠㅠ
xusaku / 지금은 완전 팔불출 아줌마가 다 되었네요!
멀린의혼 / 다행히 참사는 면했습니다!
꼼아꼼아 / 수염과 머리카락을 너무 많이 기른 죄…?
Tatura / 울펜 할배는 더 오래 살아야지요.
매후 / 훈련 열심히.. 는 아니고 적당히 받고 오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