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unter Club RAW - chapter (4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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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6# 그림자의 방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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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이쿠야…….”
털썩. 집무실 의자에 걸터앉은 노구덕은 불현듯 까칠까칠한 뺨을 어루만지며 앓는 소리를 냈다. 넓적한 놋그릇 같은 그의 뺨에는 희미한 붉은 자국이 낙인처럼 찍혀 있었는데, 가만 보니 그건 형체 뚜렷한 손자국이었다.
말인즉, 뺨따귀를 한바탕 크게 얻어맞았다는 뜻이다. 그것도 그의 단단한 피부에 얼얼한 자국이 남을 정도로 세게.
과연 아이리스의 절대 권력자인 노구덕의 뺨을 기세 좋게 올려붙인 사람은 누구일까? 뭐, 남의 눈치 보지 않고 노구덕을 때릴 수 있는 사람이라면, 답은 뻔히 나와 있었다.
“데모나 녀석, 여전히 손이 맵단 말이야. 그렇다고 마력까지 사용해서 손을 쓸 건 뭔지…….”
간만에 임유진과 함께 데모나의 실험실에 방문해서 오붓한 티타임을 즐긴 것까진 좋았다.
그런데, 그놈의 음란마귀가 문제였다.
고된 훈련도 끝났겠다, 배도 부르고 등도 따숩겠다, 여우같은 마누라들과의 질척한 한판이 생각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물론 막상 본경기에 돌입한다면 절대 한판으로 끝나진 않을 테지만.
게다가 요즘엔 욕구도 제대로 풀지 못해서 꽤나 쌓여있는 상태였다. 그는 그대로 바빴고, 신소율은 훈련삼매경에, 임유진과 데모나는 떨어지는 낙엽도 조심해야 하는 임산부다. 그렇다고 일에 치이는 소피아를 괴롭힐 수도 없는 노릇이고.
마침 비슷한 형편의 아내를 둔 이두식에게 넌지시 운을 떼보니, 그 동네는 정상적인 성생활을 즐기는 중이란다. 오히려 안정기에 접어든 이후로 나타샤의 성욕이 강해져 이두식 쪽에서 꺼릴 지경이라고. 뜻하지 않은 절간 생활을 하고 있는 노구덕으로서는 시샘이 일 정도로 부러운 나날들이었다.
그래서 그 자리에서 은근한 제안을 꺼내며 토실토실한 엉덩이를 어루만졌던 것인데…….
돌아온 것은 가차 없는 응징이었다. 그리고 이어지는 가열찬 일침.
‘여기서 돼지처럼 껄떡이지 말고 네 애완견한테나 가 보시지.’
‘아니, 소피아는 지금 바빠서…….’
‘꺼져. 저리 가. 방해되니까.’
혹시 그가 만진 엉덩이에 성격 전환 스위치라도 달려있었던 것일까? 조금 전의 화기애애한 분위기는 어디가고, 갑자기 성화를 부리는 데모나의 태도에, 노구덕은 떠밀리듯 방에서 쫓겨날 수밖에 없었다.
“거 참, 이 나이 먹도록 도무지 여자란 생물은 이해가 되지 않는다니까.”
분명 예전에는 살살 녹을 듯한 눈빛을 보내며 먼저 유혹을 해 오던 데모나가, 얼마나 시간이 지났다고 태도를 싹 바꾼단 말인가.
일부 여자들의 경우엔 임신 기간에 변덕이 죽 끓듯 한다더니, 데모나가 꼭 그런 경우인 것 같았다.
“마누라가 넷이나 되는데도 이놈을 해소할 길이 없다니… 원. 이놈아, 물 건너갔다. 이만 좀 수그려라.”
노구덕은 제멋대로 김칫국을 들이마시고 우람하게 솟아 있는 아랫도리를 내려다보며 나지막한 한탄 섞인 숨결을 토해냈다. 저 멀리 창밖에서 내비치는 앙상한 나무의 신세가 꼭 그와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이나 하자. 잡념 없애는 덴 일이 최고지.”
한판(?)에 대한 미련을 떨치지 못한 듯, 한참이나 멍한 눈으로 창밖을 바라보던 노구덕은 이제 거의 습관처럼 굳어진 예의 그 팔자타령을 하며 두꺼운 서류철을 집어 들었다. 며칠 동안 심령차력술을 익히느라 업무를 뒷전으로 밀어 놓은 탓에, 그의 집무실 책상에는 곰팡내 나는 서류더미가 산처럼 쌓여 있었다.
정작 클럽의 주인인 노구덕이 이처럼 고통에 겨운 나날을 보내고 있는 것과는 별개로, 클럽 아이리스의 현황은 이보다 더 잘 돌아갈 수 없을 정도로 순항을 이어가고 있었다.
정치 쪽으로는 노구덕이 맹주로 군림하고 있는 철의 동맹 레그나토르가 여전히 단단한 결속력을 자랑했고, 긴트 – 모고르 – 칼립스로 이어지는 대도시 연합체제도 별 문제가 없었다. 최근에는 강철대로와 모고르의 기술 교류를 추진하면서 두 지역의 유대가 한층 더 깊어진 느낌이었다.
한편, 사업체의 번창도 순조로웠다. 노구덕은 과거, 반군의 발호로 난장판이 되어버렸던 중부의 대도시 시온의 복구사업에 막대한 기금을 투자했다. 그리고 그 결과로, 예전 서리여왕 하유라의 퀸즈가든이 들어섰던 바로 그 부지의 절반 정도에 대한 권리를 얻을 수 있었다.
그 성세가 예전만 못하다지만, 그래도 시온은 중부 왕국의 중심지. 퀸즈가든의 부지는 시온의 중심 상권에서도 핵심 알짜배기라 할 수 있는 노른자위 땅이었다. 그 땅의 대략 절반에 달하는 지분을 손에 넣었으니, 제대로 된 상업 지구를 꾸리기만 한다면 십년 내에 투자금을 회수할 수 있을 터. 근시일내에 과거 퀸즈가든에 비견할 만한 종합센터를 건설하는 것이 노구덕의 계획이었다.
동부의 사업체 또한 패터슨이 도맡아 잘 운영해 나가고 있으니, 별다른 걱정거리는 없었다. 듣기론 고일성이란 놈을 단물까지 쪽쪽 빨아 먹을 요량인 것 같던데, 그거야 패터슨이 알아서 할 일이지, 그가 신경 쓸 일은 아니었다.
또, 아이리스는 내부적으로도 꾸준히 발전을 거듭하는 중이었다. 임유진과 데모나라는 주요 전력이 당분간 이탈하긴 했으나, 2군과 3군에서 장래가 촉망되는 젊은 인재들이 연일 두각을 내보이고 있었다.
특히, 가진 재능에 비해 한동안 슬럼프에 빠졌던 안세영이 다시 가파른 성장세를 되찾았고, 데모나가 부렸던 듀라한과 언데드 군단의 지휘권을 넘겨받은 인재도 나타났다. 그 외에도 주목할 만한 신진들이 상당수였다. 당장 이들을 전선에 세울 수는 없겠지만, 향후 10년을 내다봤을 때 어디에 비교해도 꿀리지 않는 믿음직한 초석(礎石)들이었다.
사실 굳이 먼 미래까지 들먹일 필요도 없이, 아이리스의 내실은 굉장히 탄탄한 상태였다. 이미 단순 전력만으로는 프라임리그 클럽의 수준에 근접했거나, 혹은 그 이상이라고 봐도 무방했다.
게다가 완성을 목전에 두고 있는 데모나의 ‘유령여왕’이 부활에 성공한다면, 아이리스의 전력은 한층 더 두터워질 터. 기실 데모나가 요즘 심각하게 예민한 이유도 바로 이 대작의 완성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기 때문이었다. …라고, 노구덕은 짐작하고 있었다.
인맥 쪽도 이렇다 할 특이사항은 없었다. 에덴 공방전 이후 위원회와 헌터계에 진한 염증을 느끼고 거의 은퇴하다시피 한 북왕 아이벤과는 여전히 정기적으로 연락을 주고받고 있었고, 체스터나 그 휘하 세력과의 관계도 양호한 편이었다.
첫만남이 그리 좋지 못했던 시먼이야 별로 신경 쓸 인물도 아니었고, 가리발디의 인도 건으로 조금 토라진 듯했던 유메르바인도 좋은 술을 대접하기로 약속하면서 다시 원만한 사이가 되었다.
이렇듯 만사가 술술 잘 풀려나가는 가운데, 그나마 걸리는 게 있다면 그건…….
‘아가레스트. 그리고 퀸젤.’
머리를 어지럽히는 두 여인의 존재를 떠올린 노구덕의 목이 마뜩찮게 기울어졌다.
우선 아가레스트. 다 잡은 고기를 끝에 가서 허망하게 놓쳐버리고 말았다. 하필이면 그 시기에 티렐이란 놈이 소냐를 노리는 바람에 어쩔 수 없었다곤 하지만, 아가레스트라는 패로 취할 수 있었던 막대한 이익이 사라져 버린 건 굉장히 아쉬운 일이었다.
뭣보다 세상에 다시 풀려 나간 그녀가 어떤 피바람을 일으킬지 쉬이 짐작이 가질 않았다.
그녀는 전성기보다 더욱 강해졌다. 그런 무시무시한 마력량을 보유한 여인이 미쳐서 날뛰기라도 한다면 그 땅은 금세 죽음의 대지로 변하리라. 아가레스트가 객지에서 죽어버리든, 어딘가를 난장판으로 만들든 그건 상관없지만, 혹시나 그녀가 벌인 일의 배후로 엮이는 것은 사양이었다.
가장 우려되는 것은 정신이 말짱한 아가레스트가 퀸젤과 연합하는 것이었다. 퀸젤이 아가레스트란 패를 손에 넣고, 열세에 처한 상황을 뒤집어 체스터를 몰아세운다면 그의 편에 서 있는 노구덕의 입지도 곤란해진다.
모처럼 퀸젤을 낙동강 오리알 신세로 만들어 자연스럽게 후계구도에서 밀려나도록 판을 짜 놨는데, 기껏 준비한 판이 흔들리는 건 정말이지 난감한 일이었다.
최악의 상황을 상정한 노구덕은 손에 쥔 펜대로 초조하게 탁자를 두드렸다.
“그럼 안 되지. 처음 계획했던대로 두 마리 토끼까지는 못 잡더라도, 하나 정도는 반드시 건져야 돼. 제기랄, 아가레스트, 그년은 대체 어딜 간 거지?”
사람이란 이토록 간사하다. 소냐를 무사히 구해냈을 때만 하더라도 이게 어디냐라는 생각이 들었는데, 얼마간 시간이 흐르니 그새 본전 생각이 나는 걸 보면.
그때였다. 우두커니 턱을 괸 노구덕이 꿀꺽 삼키지 못한 떡을 떠올리며 신경질적으로 입맛을 다시는데, 갑자기 테이블 구석에 배치되어 있는 핫라인이 찌르릉거리며 우는 소리를 냈다.
“이 시간에 누가… 어엉?”
무심결에 곧장 핫라인을 받아든 노구덕은 영상 너머로 비치는 불그스름한 색상을 보더니 두 눈을 소처럼 끔벅거렸다.
스크린에 떠오른 것은 장인의 붓으로 그린 듯 수려한 여인의 얼굴. 한동안은 볼 일이 없을 거라 생각했던 그 여인의 이름은 방금까지 그의 머릿속을 맴돌던 퀸젤이었다.
-노구덕 위원? 아, 안녕? 잘 지냈어?
애매하게 입매를 씰룩이며 인사하는 꼴을 보니, 그녀도 이 상황이 영 어색하게만 느껴지는 모양이다. 아무래도 단순히 안부나 전하려고 핫라인을 연결한 건 아닌 것 같았다.
“무슨 일이지? 분명 다시 볼 일이 없을 거라고 하지 않았나?”
-응. 그, 그게 말이지… 조금 골치 아픈 일이 생겨서…….
“…골치 아픈 일?”
-조만간 그쪽에 손님이 찾아갈 거야. 될 수 있으면, 그 상대와는 엮이지 않는 게 좋아.
“이해가 안 되는군. 뜬금없이 연락해 놓고 무슨 소릴 하는 거지?”
-그건…….
노구덕이 비꼬듯이 말을 받자, 두서없이 얘기를 늘어놓는 걸 멈추고, 말문이 막힌 사람처럼 우물쭈물하던 퀸젤은 갑자기 원망스레 눈을 치켜올리며 그를 노려보았다.
-모르는 척 하지 마. 아가레스트 얘기니까. 얼마 전, 나를 찾아왔었어.
“뭐라고?”
실종된 아가레스트가 퀸젤을 찾았다? 귀가 솔깃해진 노구덕은 자세를 바로 하고 넓적한 얼굴을 핫라인 가까이 들이밀었다.
“그 여자가 당신을 찾아갔다고?”
-그래. 노구덕 위원, 왜 내게 그 소식을……!
지직. 지직.
노구덕에게 원망을 쏟아내던 퀸젤의 영상이 노이즈가 낀 것처럼 흐릿해지며, 그 음성에서 중간중간 거슬리는 잡음이 섞여 나왔다. 영상수정에 고개를 처박고 있던 노구덕의 머리가 번쩍 들린 것도 그와 동시였다.
자리를 박차고 일어난 노구덕은 별안간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 허탈한 웃음을 흘렸다. 그의 시선은 집무실 구석, 환한 달빛이 내리쬐는 창가에 못으로 박힌 듯 고정되어 있었다.
“허… 참.”
-노, 노구덕 위원?
“우리도 한참 얕보였나보군. 이젠 이놈저놈 제 집 드나들 듯하니… 보안에 좀 더 신경 써야겠어.”
“그럴 필요는 없어요. 경비가 무능한 게 아니라, 제 능력이 뛰어난 것뿐이니까요.”
삼엄하게 드리운 어둠이 유유히 젖혀지며, 폭발적으로 농염한 여체의 곡선이 드러났다. 여인의 육체에 타이트하게 달라붙은 가죽 갑옷은 무광처리가 된듯 은은하게 비치는 달빛을 깊숙하게 빨아들이고 있었다. 오히려 그 덕분에 섬세한 여인의 검은 윤곽을 적나라하게 내비치고 있었지만, 노구덕에게 여인의 몸매를 감상할 틈은 주어지지 않았다.
“…아가레스트.”
-아가레스트라고? 노구덕 위원!
밤하늘에 떠 있는 별보다 더욱 찬란하게 빛나는 황금색 동공이 시끄럽게 앵앵대는 핫라인의 위에 무심히 머물렀다가, 둥그스름한 모양을 샐쭉하게 일그러뜨렸다.
“마침 잘 됐어요. 그렇잖아도 셋이서 하고 싶은 얘기가 있었는데. 자리에 좀 앉아도 될까요?”
난데없는 아가레스트의 등장에 놀라긴 했지만, 그뿐이다. 어느새 평정을 회복한 노구덕은 철가면을 뒤집어 쓴 것처럼 무뚝뚝하게 고개를 주억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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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의 추천과 코멘은 작가에게 큰 힘이 됩니다~!
몇몇 신캐들에 대한 복선 + 아가레스트 회수 시작.
오늘 내로 마무리하려고 했는데 금요일이란 장벽이 저를 가로막고 말았습니다.. ㅠㅠ
넉넉하게 시간잡고 시작했는데 이것도 시간에 쫓겨서 겨우 완성했네요.
아가레스트 마무리는 제가 피곤하지 않다면 새벽.. 한숨 잔다면 내일 오전으로 연기해야 할 것 같습니다.
좋은 저녁 되세요! 불금 즐기시는 분들은 술 적당히 드시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