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unter Club RAW - chapter (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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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7# 연말연시(年末年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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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냐, 음냐…….”
휙! 허공을 가른 작은 손바닥이 넙대대한 상판을 찰싹 건드리고 지나가자, 죽은 듯 감겨 있던 노구덕의 눈이 번쩍 뜨여졌다.
“요 녀석. 잠버릇 하고는.”
살짝 고개를 들어 손의 주인을 확인한 노구덕은 낮게 혀를 찼다. 그의 옆에 거머리처럼 진득하게 달라붙어 있는 여인은 신소율이었다. 좋은 꿈이라도 꾸고 있는 걸까? 눈꺼풀을 내리 깐 신소율의 얼굴엔 벙글거리는 웃음이 한 가득이었다.
“아잉… 아저씨이… 엉덩이는 안 돼……. 찢어진단 말야….”
“…….”
살짝 혀를 찬 노구덕은 그녀가 깨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상반신을 일으키려다가, 그의 몸에 지분을 차지하고 있는 것이 신소율뿐만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고는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우측에는 신소율, 좌측에는 소피아가 담쟁이 덩굴처럼 엉겨 붙어 있고, 다리가 있는 아래쪽에는 올챙이 배를 한 임유진과 데모나가 사이좋게 서로를 감싼 채 곤히 잠들어 있다. 물론, 모두가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알몸이다.
어찌어찌 성공적으로 몸을 빼낸 노구덕은 방에 걸려 있는 흰 가운을 대충 걸치고, 잠들어 있는 아내들이 찬 공기에 노출되지 않도록, 구겨진 이불을 널찍하게 펴서 덮어주었다.
침대가 워낙 크다보니 이불도 개개인이 따로 써야 할 정도다. 첫 순번인 신소율에게 두꺼운 솜이불을 덮어준 뒤, 새우잠을 자는 소피아에게 시선을 돌린 노구덕은, 백옥 같은 알몸 한 가운데에 유독 돋보이는 한 부위를 보며 고소를 머금었다.
그의 시선이 머무른 곳은 실한 복숭아 같은 형태를 갖추고 있는 소피아의 엉덩이다. 어찌된 일인지 그녀의 엉덩이는 사과처럼 퉁퉁 부어 빨갛게 익어 있었다. 그리고 인두 도장을 찍은 듯 선명하게 남아 있는 다섯 손가락 자국. 간밤에 지속된 체벌의 흔적이었다.
소피아의 투실투실한 엉덩이에 깊은 낙인을 새긴 장본인, 노구덕은 안쓰럽게 몸을 웅크린 소피아의 가냘픈 등허리를 살짝 어루만지며 중얼거렸다.
“하여튼… 아무리 서운해도 장난칠 게 따로 있지…….”
“히잉… 죄송해요오……. 잘못했어요….”
기다렸다는 듯이 들려온 대답. 혹시 잠이 깼나 싶어 눈길을 주었지만, 여전히 소피아의 눈은 꾹 감겨 있었다. 아마 잠꼬대인 모양이었다.
“엉덩이가 너무 아파요오…….”
이불을 턱 아래까지 쑥 끌어올린 소피아의 얼굴은 상당히 괴로워보였다. 잠결에 소리 내어 애원할 정도인 걸 보면, 엉덩이를 찰싹찰싹 두들겨 맞는 악몽을 꾸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러게 맞을 짓을 하지 말았어야지.”
하지만 노구덕의 표정엔 일말의 동정을 찾아볼 수 없었다. 소피아 때문에 곤욕을 치른 걸 생각하면, 솔직히 저 정도 체벌도 약과라 생각될 정도다. 갑자기 들이닥친 안세희 때문에 싸늘해진 공기를 수습하느라 그가 얼마나 진땀을 뺐던가.
뒤늦게 합류한 소피아의 고백으로 알게 된 일이지만, 알고 보니 안세희의 난입은 그녀가 뒷수작을 부린 것이었다.
‘서운했단 말이에요! 누구는 힘들게 마무리 작업까지 하고 왔는데, 누구누구는 주인님이랑 깨나 볶고 있고!’
노구덕과 정신이 연결되어 있는 탓에, 방 안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알게 된 소피아. 자기만 쏙 빼놓고 나체의 향연을 즐기고 있다는 사실에 크게 분개한 소피아는 애꿎은 안세희를 끌어들여 판을 뒤엎어버린 것이었다.
그 억울한 심정이야 충분히 이해는 가지만, 그래도 정도라는 게 있다. 그 와중에 희생된 안세희나, 은밀한 현장을 들켜버린 나머지 네 사람의 체면은 어떡하란 말인가. 결국, 소피아의 불이 난 엉덩이는 스스로가 자초한 재앙인 셈이다.
“…일어나셨어요?”
“유진아.”
침대 아래쪽에서 데모나와 살을 맞대고 있던 임유진이 살짝 머리를 들고 있는 것이 보였다. 노구덕이 부스럭거리며 움직이는 소리에 잠이 깬 듯했다.
“…읏.”
노구덕이 담요를 들고 다가오는 것을 본 임유진은 천천히 몸을 일으키려다 말고 미약한 신음을 내뱉었다. 어젯밤의 격렬했던 여운이 아직도 하반신에 생생히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나름대로 부드럽게 한다고 했지만, 오랜만에 받아들이는 노구덕의 남성이 남기고 간 여파는 천하의 십존을 꼼짝도 할 수 없게 만들었다.
“더 누워 있어. 아침이야 이쪽으로 가져오라고 하면 되니까.”
“…그냥 거르는 게 나을 것 같아요.”
“뭐, 그것도 괜찮고.”
한창 단잠에 빠져 있는 여인들을 괜히 깨우는 것보단 그게 나을지도. 고개를 끄덕거린 노구덕은 자신에게 빤한 시선을 던지는 임유진의 몸뚱이를 두툼하게 솜이 들어 있는 담요로 감쌌다.
“저, 이불 덮고 있는데.”
“두 겹으로 덮어. 한겨울이잖아. 몸을 따뜻하게 해야지. 그게 애한테 좋아.”
노구덕이 덮어준 이불로 데모나와 자신의 몸을 감싼 임유진은 푹신한 솜이불에 깊이 얼굴을 묻었다. 남편이 손수 덮어준 이불은 그 어느 때보다 더욱 따스한 온기가 감돌고 있었다.
“그럴게요. 고마워요.”
“그리고 말인데, 전담 의사를 고용해야겠어.”
“전담 의사요?”
“데모나가 예상보다 빠르잖아. 유축기나 젖병 같은 것도 준비해야하고… 젖몸살이 나지 않으려면 충분히 마사지를 해줘야지. 난 그런 쪽은 잘 모르니까…….”
“후훗. 마사지라면 어제 충분히 해 주셨잖아요? 저는 데모나, 저 아이가 그런 표정을 짓는 건 처음 봤어요.”
“어흠!”
뼈대가 느껴지는 임유진의 말에 금방 어색한 헛기침이 터져 나온다. 지금 데모나가 옆에서 떠드는 소리에도 아랑곳 않고 잠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는 이유가 무엇이던가. 간밤에 그에게 쭉쭉 젖을 빨리며 미친 듯이 몸부림치던 데모나를 떠올린 노구덕은 머쓱하게 뒷목을 긁적였다.
“아니, 열이 오르다 보니깐 나도 모르게… 맛있기는 하더만. 원래 모유가 그리 달던가?”
“그것도 오늘까지만이에요. 초유는 모아두는 편이 좋으니까요. 예전에 알아보니까 보존 주문이 걸린 젖병에다 유축하면 된다고 하더라고요.”
“음, 내가 말하려던 게 바로 그거야. 이왕이면 전문가 주도로 하는 게 좋잖아? 예전에 아가레스트를 봐 준 그분이 좋겠어.”
노구덕은 아가레스트의 케어를 전담한 노의사를 거론했다. 그 나이 많은 여의사라면 칼립스 내에서도 첫손에 꼽히는 명망있는 사람이니, 아내들의 전담을 맡기기엔 딱 적격이었다. 듣기론 손수 받은 아이만 수백 명이 넘어간다고 하던가.
“아, 그분이라면 저도 안심이에요.”
똑똑.
자연스럽게 대화가 이어지는 가운데, 갑작스레 끼어 든 노크 소리.
“오너어~! 들어가도 돼요?”
경쾌하고 높은 톤의 음색. 문을 두드린 사람은 안세영이었다. 잠깐 임유진과 서로를 마주 본 노구덕은 헐렁한 가운의 끈을 고쳐 매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들어와.”
“네. 들어갑니다.”
짤막한 대답과 함께 문을 열고 들어온 안세영은 실내에서 베어 나오는 비릿한 냄새에 코를 부여잡으며 얼굴을 찌푸렸다.
“윽! 냄새….”
침대에 널브러져 있는 네 여인을(임유진은 자는 척이었지만) 힐끔거리며 확인한 안세영은 가운으로 몸을 감싼 노구덕이 가까이 다가오자 흠칫하며 뒷걸음질을 쳤다.
“왜 그러냐?”
“…아니요. 새삼 오너의 혈기왕성함에 감탄이 나왔을 뿐이에요.”
‘어떻게 한꺼번에 네 명을… 오너는 역시 색마야.’라고 중얼거리는 안세영의 표정에선 살짝 질린 기색마저 엿보였다. 색마 소리를 듣는 거야 하루 이틀 일이 아니었기에 가볍게 흘려 넘긴 노구덕은 은근슬쩍 안세희의 근황을 물어보았다.
“세희는?”
“갑자기 언니는 왜요?”
“아니… 어제 세희가 소피아랑 뒷정리 담당이었거든. 잘 들어갔나 궁금해서 물어본 거다.”
스스로 생각해도 궁색한 변명이다. 그러나 이상한 낌새를 눈치 채지 못한 안세영은 별걸 다 묻는다는 듯, 입술을 삐죽이며 대꾸했다.
“어차피 클럽 홀 안인데 들어가고 자시고가 뭐 있어요? 가만, 언니가 마무리 담당이었다고요? 아, 그래서 그런가…? 대체 몇 시까지 일을 시킨 거예요?”
“몇 시까지 일을 시키다니? 자정도 안 됐을 걸? 금방 끝났다고 들었는데?”
“엥? 이상하네…”
“왜, 세희한테 뭔 일이라도 있냐?”
“뭔 일이라기 보단… 언니, 오늘 아침에 보니까 얼굴이 말이 아니더라고요. 다크서클이 엄청나던데… 과로도 아니면, 잠이라도 설쳤나? 웬일이지?”
“…크흠흠! 그럴 수도 있지.”
역시, 올해 스물 하나가 되는 처녀에겐 너무 큰 충격이었나보다. 안세희의 근황을 접한 노구덕은 침중한 신음을 흘릴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의 어깨 너머로, 임유진이 덮고 있는 이불이 살짝 들썩거리는 것이 보였다.
괜히 민망해진 노구덕은 안세영이 낌새를 알아차리기 전에 얼른 화두를 돌렸다.
“오늘은 푹 쉬라고 전해라. 별로 할 일도 없으니까…. 그런데 세영이 너는 아침부터 어쩐 일이냐? 지금쯤이면 진솔이랑 같이 있을 줄 알았는데.”
“뭐, 뭐예요. 진솔 오빠가 거기서 왜 나와요?”
“허, 아니면 아닌 거지 왜 화를 내냐?”
노구덕의 술수에 넘어갔다는 것을 깨달은 안세영은 눈살을 찌푸리며 흥! 하고 거센 콧방귀를 뀌었다. 언제나 느끼는 거지만, 버들처럼 유약한 김진솔이 어떻게 이런 사나운 녀석을 감당할 수 있는지 의문이었다. 의외로 외유내강(外柔內剛)한 성격인 것일까?
잠시 후, 능글맞게 웃고 있는 노구덕을 앙칼지게 흘겨본 안세영은 패배를 인정하듯 설레설레 고개를 내저었다.
“…다른 게 아니고요. 새해 첫 손님이 찾아오셨거든요? 지금 응접실에 모셔놨어요.”
손님. 모처럼 아내들과 오붓한 아침을 즐기고 싶었던 노구덕에겐 그리 달갑지 않은 단어다. 큼직한 눈두덩을 꿈틀거린 노구덕은 살짝 신경질적으로 되물었다.
“손님? 기별도 없이 누가?”
“제가 여기까지 직접 찾아왔다는 건 꽤나 중요한 손님이라는 거겠죠?”
“그런 중요한 손님이 기다리고 있는데 지금껏 잡담이나 하고 있었던 거냐?”
“잡담은 오너가… 아얏!”
따박따박 말대꾸를 하며 까불다가 기어코 알밤을 얻어맞은 안세영은 지끈거리는 정수리를 감싸 쥐며 노구덕을 노려보았다. 하지만 노구덕이 재차 커다란 주먹을 들고서 흔들어 보이자, 슬며시 치켜세운 꼬랑지를 내리고는 고분고분하게 말을 이었다.
“…두 명이에요.”
“한 명이 아니라 두 명?”
“네. 한 명은 모고르에서 온 전령이고요, 다른 한 명은 패터슨 오빠가 보낸 사람인 것 같아요. 먼저 온 쪽은 패터슨 오빠… 그러니까 칸다무어에서 온 사람이고요. 일단 두 분 다 다른 응접실에 모셔 놨으니 순서대로 만나보시면 될 것 같아요.”
남부의 자하드와 동부의 패터슨이 동시에 사람을 보냈다는 얘긴데, 노구덕은 고개를 갸웃거릴 수밖에 없었다. 뻔히 핫라인이 연결되어 있는 마당에 굳이 사람을 보낼 이유가 없었던 것이다.
아니, 바꿔 말하면 핫라인으로는 전하지 못한 긴한 소식이 있는 것일지도 몰랐다.
‘뭔 일이 생긴 건가?’
조금 전까지 안세영과 능글맞게 농담따먹기를 하던 노구덕의 낯빛이 차갑게 가라앉았다. 남부와 동부에서 동시다발적으로 보내온 전령. 어쩐지 예감이 좋지 않았다.
“잠깐 기다려라. 그리고 전령들은 내 집무실로 같이 오라고 해. 한꺼번에 얘기를 듣는 게 나을 것 같으니까.”
발 빠르게 지시를 내린 노구덕은 서둘러 옷을 갈아입었다.
“여보.”
어느 틈엔가 안세영의 눈치를 보느라 자는 척을 하고 있던 임유진이 반쯤 몸을 일으킨 것이 보였다. 그녀의 말간 얼굴에 어렴풋한 걱정이 깃들어 있음을 감지한 노구덕은 그 작은 어깨를 토닥이며 아내를 안심시켰다.
“몸조리 잘 하고 있어. 금방 다녀올 테니.”
“…알았어요.”
말 잘 듣는 아이처럼 고갯짓을 하는 임유진의 이마에 짧게 입맞춤을 한 노구덕은 문 근처에서 대기하고 있는 안세영에게 눈짓을 하며 방을 나섰다.
“가자.”
============================ 작품 후기 ============================
여러분의 추천과 코멘은 작가에게 큰 힘이 됩니다!
즐거운 저녁 보내고 계신가요? 저는 어제 저녁부터 오늘까지 상당히 바쁜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오늘은 일단 여기까지인 것 같고요, 시간이 되면 새벽에 하나 더 올리든가 아침을 노려보도록 하겠습니다. 몸이 피로하면 건너뛸 수도 있어요 ㅠㅠ
근래에 리리플을 달아드릴 짬이 나지 않아서 조금 속상하네요. 그래도 리플 달아주신 분들! 하나도 빠트리지 않고 꼼꼼하게 읽어보고 있습니다!
아가레스트가 제정신을 차릴지.
노구덕이 과연 세희를 홀라당 자빠트릴 수 있을지.
소, 소냐는… 읍! 읍!
이 떡밥들은 3부에서나 풀 수 있을 것 같네요.
좋은 밤 되시고, 작가는 이만 물러가겠습니다!
오늘 저녁 짬에는 지난화 오타수정과 소제목 나누기를 할 생각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