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unter Club RAW - chapter (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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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8# 대재앙
**** 시간이 되신다면 오늘 후기는 꼭 읽어주셨으면 합니다!***
128# 대재앙
바쁘게 놀려지고 있던 깃펜이 다소 히스테릭하게 동작을 멈추었다. 부르르 눌린 깃펜의 끝에서 진한 잉크가 번져 나오고 있는 것이 보였지만, 펜을 쥔 손의 주인은 전혀 그 사실을 눈치 채지 못한 듯 답답한 한숨을 토해냈다.
기력을 잃은 손의 주인은 연맹 소속의 위원으로서 한창 왕성한 활동을 보이고 있는 자하드였다.
최근 태양왕의 압제에서 벗어난 모고르는 일개 자치령에서 벗어나, 연맹의 정식 인정을 받은 대도시로 승격되었다. 자하드라는 새로운 주인을 맞이한 모고르는 대륙 전체로 번진 전화(戰火)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연일 발전을 거듭하고 있었다.
사실, 전쟁이란 재앙은 사막 부족인 모고르에 있어 더할 나위 없는 호기였다. 모고르는 칼립스와 마찬가지로 금속 제련을 주특기로 하는 부족이고, 전쟁으로 인한 특수는 그들의 주특기를 유감없이 발휘할 수 있게 해주었으니까.
태양왕의 밑에서 눈칫밥을 먹으며 경험을 쌓은 자하드의 지도력은 제법 괜찮은 편이었다. 거기다 아이리스의 은밀한 지원을 등에 업은 그는 큰 무리 없이 모고르를 이끌어가며 아이리스의 남부 거점 역할을 톡톡히 수행하고 있었다.
모든 것이 순조로운 현재, 대부족을 이끄는 젊은 지도자의 수려한 얼굴엔 뜻밖에도 짙은 수심이 깔려 있었다.
“…이런.”
혼이 나간 사람처럼 넋을 빼고 있기를 일 분여. 정신을 차린 자하드는 새카맣게 번진 종이를 보고 늙은이처럼 혀를 찼다. 기껏 열심히 작성한 서류가 못 쓰게 되었기 때문이다.
종이를 구겨 휴지통에 던져버린 그는 한숨을 쉬며 등받이에 몸을 기댔다.
“…아직인가. 정말 큰일이군.”
혹시나 하는 마음에 열린 창밖으로 청각을 집중해 보지만, 고대하던 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들리는 것이라곤 더위에 목청까지 바짝 메말라버린 사막 새들의 지저귐뿐.
자하드가 기다리는 것은 추적추적, 굵은 빗방울이 세차게 지붕을 두드리는 소리였다. 하지만… 역시 허탕이다. 쨍쨍하게 내리쬐는 햇살을 보아하니 오늘도 비가 오기는 그른 것 같았다.
사막에 비가 오지 않는다. 이건 아주 심각한 문제였다.
대도시 모고르가 있는 남부 사막지대는 뚜렷한 건기와 우기를 가진다. 사계절의 은혜를 입는 대륙의 다른 지방과는 달리, 사막지대는 1년에 두어 번 정도 있는 우기에 대체적으로 많이 의존하는 편이었다.
지금은 우기. 일 년 중 가장 비가 많이 내리는 시기다. 모고르 부족민들은 이때 내린 비를 저장하여 담수로 사용한다. 농업용수, 생활용수로 사용되는 대부분의 물이 이 시기에 저장되는 만큼, 우기에 내린 비의 양에 따라 금년의 생활의 질이 결정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데… 본격적인 우기가 시작된 지 한 달이 넘어 두 달이 가까워지고 있건만, 도대체 비가 내릴 낌새가 보이지 않았다. 물론 매년 우기가 오는 시기가 일정한 것은 아니다. 짧게는 한 주, 길게는 2, 3주 정도의 차이가 있을 수 있다.
하지만 무려 오십 일이 넘었다. 지금까지 우기가 이토록 늦어진 적은 모고르의 긴 역사를 뒤져봐도 흔치 않은 경우였다. 아니, 우기가 가장 늦춰진 시기가 대략 사십일 정도라고 하니, 이미 역사상의 최고기록을 경신한지 오래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 이상기후는 예삿일이 아니다. 지금이야 비축해 두었던 물을 풀어 어찌어찌 버티고 있지만, 비가 계속 오지 않는다면 이것도 얼마나 갈 수 있을지 알 수 없었다.
“대족장님, 들어가도 되겠습니까?”
“들어와라.”
갑작스레 울린 정중한 노크 소리. 인기척을 감지한 자하드는 낯빛에 깔린 수심을 지우며 자세를 바로잡았다. 아랫사람에게 궁상맞은 꼴을 보여줄 수는 없었으니.
문을 열고 들어선 이는 중후한 얼굴에 깊은 관록이 느껴지는 장년의 사내였다. 그의 이름은 칼리드. 자하드의 가장 충실한 심복이자, 그의 안위를 책임지는 친위대장이었다.
자하드의 앞에 공손히 부복한 그는 무릎을 꿇자마자 흉보(凶報)를 아뢰었다.
“대족장님, 서쪽 주거 지역의 담수고(淡水庫)가 바닥을 드러냈다고 합니다.
“…….”
그렇잖아도 뻣뻣하게 굳어 있던 자하드의 얼굴이 다시 일그러졌다. 애써 관리한 표정이 전혀 쓸모없게 되는 순간이다.
“…빠른 조치를 취해야 할 것 같습니다.”
“태양궁의 물자를 풀어라. 그리고, 내일을 기해 담수 배급량을 낮추도록 한다.”
칼리드는 황급히 고개를 들었다. 이미 우기가 미뤄진지 한 달이 넘은 시점부터 모고르의 수자원은 배급제로 전환한지 오래. 그것도 결코 넉넉하다고 볼 수 없는 양이다. 헌데 거기서 더 양을 낮춘다?
“여기서 더 말입니까?”
“그럼 달리 방도가 있나?”
“반발이 있을지도 모릅니다.”
“태양궁의 물자를 풀면 어느 정도 불만을 무마시킬 수 있을 거다. 부족민들도 사정을 이해하고 있으니까…….”
자하드는 옅은 한숨을 내쉬었다. 왜 하필이면 역사상 손꼽히는 이상기후가 지금 나타나는지, 태양신이 원망스러울 따름이었다.
그때, 조심스레 대족장의 눈치를 살피던 칼리드가 넌지시 질문을 했다.
“…신인(神人)께서는 아무 답이 없으신지요?”
신과 일체가 된 사람, 신인. 태양신의 성물을 유례없는 최고 순도로 받아들여, 사막 한복판에 거대한 불기둥을 쏘아올린 임유진을 일컫는 말이다. 정확히는, 그녀가 속한 아이리스에서의 지원을 묻는 것이리라.
“이쪽의 사정을 최대한 공감하실 수 있도록 사람을 보냈으니, 조만간 답신이 올 거다. 인정이 있으신 분이니, 좋은 소식을 기대할 수 있을 테지.”
“그렇다면 한숨 돌릴 수 있겠군요.”
“아니. 안심할 일은 아니다. 내가 보기에 이 이상기후는 심상치 않아. 어쩌면 최악을 대비해야 할 수도 있어.”
“…동부 쪽도 심상치 않은 징후가 나타났다고 들었습니다.”
자하드의 최측근이라 할 수 있는 칼리드는 자하드가 동부의 패터슨과 긴밀한 정보 협력관계를 구축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엄밀히 말하면 직접적인 협력 관계라기보다는 중앙의 칼립스를 통한 공조관계라 할 수 있겠지만.
“그래. 거긴 오히려 홍수를 걱정해야 할 지경이라고 하더군.”
“비가 많이 온다면 얼마나…….”
“원래 비가 많이 오는 지방이 아닌데, 한 달 내내 비가 내리고 있어. 덕분에 주요 교역로가 물에 잠기고, 곳곳이 진창이 되어버려 교역이 중단되었다고 하던가. 다행이라면 호우의 중심지가 칸다무어가 아니라 에덴이라는 것 정도겠군. 교역중단으로 인한 피해는 어쩔 수 없겠지만.”
“…….”
얄궂은 일이다. 이쪽은 쩍쩍 갈라지는 땅덩이를 보며 한숨 짓고 있는데, 저쪽은 오히려 물난리라니. 그것도 말끔한 마음가짐으로 시작해야 할 새해부터 이게 웬 난리란 말인가.
“듣기론 이상기후가 일어나는 지역이 한두 곳이 아니라고 들었습니다.”
“그래. 그게 이상한 일이지. 얼마 전까지만 해도 그럴 수도 있다고 여겼는데… 이건 뭔가… 꺼림칙한 느낌이다.”
대륙 곳곳에서 일어나는 이상기후. 기후란 시계처럼 정확한 것이 아니니, 평년보다 기후가 다른 것은 충분히 있음직한 일이다. 하지만 그것이 비슷한 시기에, 동시다발적으로 한꺼번에 일어나는 일이라면 얘기가 달라진다.
비가 내리지 않는 지방에서 홍수가 났고, 도리어 비가 와야 할 지방은 극도의 가뭄을 겪고 있다. 땅울림이라곤 전혀 없는 지역에서는 지진이, 어떤 지역에서는 주먹보다 더 큰 우박 세례로 큰 인명피해가 났다고 들었다.
새해 정초부터 계속되는 괴사들. 패터슨과의 공조를 통해 알게 된 사실이지만 이 일련의 괴현상들은 주로 남부와 동부에 치중되어 있었다.
혹시, 이 이상기후들 간에 뭔가 연관이 있는 것은 아닐까? 그렇지 않고서야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동시에 난리가 일어날 이유가 없지 않은가.
자하드는 협력자인 패터슨과 머리를 맞대고, 그 상관관계를 찾아내기 위해 의견을 교환해봤으나 별 소득은 없었다. 해서, 두 사람은 상관인 노구덕에게 사람을 보내기로 결정했다. 그들로서는 도저히 답이 나오지 않으니, 유능한 인재를 여럿 데리고 있는 노구덕이 무언가 해답을 제시해 줄 것이라는 믿음이었다.
당연히 이상기후로 인한 지원 요청은 덤. 남은 것은 위의 답을 기다리는 일이었다.
“…지금으로선 그분의 자비에 기댈 수밖에……. 음?”
씁쓸히 중얼거리며 새로이 꺼내든 백지를 책상에 펼쳐 놓은 자하드. 순간, 그의 눈에 작은 이채가 어렸다.
책상 위에 반듯하게 놓인 백지의 살짝 말려 올라간 귀퉁이가… 파들파들 눈에 띄게 떨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자세히 보니 비단 종이의 귀퉁이뿐만 아니라 유리로 된 잉크병 또한 뚜렷한 잔떨림을 보이며 달그락거리는 소리를 내고 있었다.
“…지진?”
자하드가 무심코 혼잣말을 내뱉은 찰나, 갑자기 바닥 밑에서부터 강렬한 진동이 타고 올라와 방 전체를 마구 뒤흔들기 시작했다.
쿠르릉! 와장창!
순식간에 방 전체를 뒤덮은 지진의 여파는 단정하게 정돈되어 있던 집무실을 순식간에 아수라장으로 만들었다. 온갖 집기가 쏟아지고, 엎어지는 가운데, 기울어지는 책장에 세게 뒤통수를 부딪친 자하드는 아찔한 신음을 토해냈다.
“큭!”
“대족장님!”
친위대장 칼리드 또한 생전 처음 경험하는 지진에 정신이 없기는 마찬가지였다. 가까스로 균형을 잡은 칼리드는 허물어지는 자하드를 몸으로 감싸 안은 채, 서둘러 집무실 책상 밑으로 몸을 숨겼다. 어떤 상식에서 비롯된 행동이 아니라, 단순히 저곳이 안전할 것이라는 본능에 의한 행동이었다.
쿵 쿠쿵! 퍽! 쿠르릉! 아아악…!
책상 아래 벌레처럼 웅크린 두 사람의 귀로 육중한 소음이 쉴 새 없이 흘러들었다. 대개는 책상 위로 떨어져 내린 집기들이 우박처럼 부딪치면서 자아내는 소음들이었지만, 일부 멀리서 들리는 소리 중에는 사람의 비명 소리 같은 것이 섞여 있기도 했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끝도 없을 것 같던 진동이 거짓말처럼 가라앉자, 두 사람은 조심스럽게 오그린 몸을 풀어 책상 밖으로 기어 나왔다.
“대족장님! 괜찮으십니까?”
“가, 갑자기 이 무슨…….”
책장 모서리에 찍힌 뒤통수에서 붉은 피가 철철 흘러내리고 있었지만, 자하드는 그것을 전혀 자각하지 못한 듯 망연자실한 얼굴이었다.
그도 그럴 게, 태양궁의 집무실을 엉망으로 휩쓸고 간 대지진이다. 두꺼운 반석 위에 지어진 태양궁의 내실이 이 정도로 엉망이 되었다면, 바깥 거리에 어떤 참상이 펼쳐져 있을지는 안 봐도 뻔한 일이 아니던가.
“대족장님, 우선 지혈을…!”
“칼리드… 나는 괜찮으니 밖을 살펴라. 바깥은… 도시는 지금 어찌 되었는지….”
“아, 알겠습니다!”
그때였다. 별안간 귀청이 찢어질 듯한 괴성이 터져 나오며, 그 여파가 방 안을 재차 강하게 뒤흔들었다.
-끼에에에에에……!
“이, 이건…?”
“설마!”
자욱하게 흙먼지가 일어난 창가에서 들려온 괴음. 고막이 떨어질 것 같은 기성에 칼리드의 얼굴이 얼떨떨해진 사이, 낯빛이 물에 불린 시체처럼 푸르딩딩하게 변한 자하드는 다급히 창가로 달려 나갔다.
잠시 후.
“……!”
창밖에 펼쳐진 시가지의 처참한 모습을 목도한 자하드는 그만 말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모고르의 번화한 시가지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져 있었다.
방금 전까지 수많은 사람들이 오가던 거리를 대신해, 그 자리에 있는 것은 직경 백여 미터가 넘어가는 거대한 대공동(大空洞). 보는 것만으로도 그 시커먼 어둠에 빨려 들어갈 것 같은 싱크홀(Sinkhole)이었다.
-끼에! 끼에에엑–!
자하드는 보았다. 그 심연의 중심부에서 끝이 뭉툭한… 거대한 무언가가 꿈틀꿈틀 기어 올라오고 있는 것을.
흙먼지에 가려 자세히 보이진 않았지만 길쭉한 그 형태는 뱀과 닮아 있었다. …아니, 다시 보니 저건 오히려 지렁이에 가깝다. 일반적인 지렁이와 차이가 있다면… 크기가 무지막지하게 크다는 것뿐.
이윽고, 구멍에서 온몸의 절반쯤을 꺼내 놓은 괴물의 모습을 마주한 자하드는 아주 먼 옛날, 전설로 전해내려오던 마수의 이름을 떠올릴 수밖에 없었다.
“샌드웜(Sandworm)…….”
지금 이 순간, 찬란한 사막의 도시 모고르를 피로 물들일 재앙의 현신이었다.
============================ 작품 후기 ============================
여러분의 추천과 코멘은 작가에게 큰 힘이 됩니다!
안녕하세요! 작가입니다.
해당화 첫머리에 쓸데없는 문구를 붙인 것은 조금이나마 독자님들께 감사함을 전하고 싶기 때문입니다.
왜냐면! 오늘이 연재 1주년이거든요! 사실은 어제이지만요.. 하하..
제가 지금까지 3월 31일날 연재를 시작한 줄 알았는데, 다시 확인해 보니 30일날 시작을 했더라고요. 지금까지 몰랐습니다.
작년 이맘때 시작한 글이 여기까지 오게 될 줄 누가 알았을까요? 감개가 무량하다는 말은 이럴 때 쓰는 것 같습니다.
솔직히, 저도 시작 할 때에 연중이 없다고 못박고 시작했지만 여기까지 올 줄은 예상하지 못했거든요. 가게 일 하면서 짬 날때 하고 싶은 것을 찾던 와중에 취미로 시작한 일이라.. 그저 머릿속에 든 것을 풀어내고 싶다는 생각밖엔 없었습니다.
그런데 막상 글을 쓰다보니 글 쓰는 게 참 재미있더라고요.
처음엔 누가 보더라도 별 상관없다는 마음가짐이었지만 편수가 더해질수록 댓글 달아주시는 분들도 늘어나고, 코멘을 주고 받으면서 취미 이상의 의미가 생기게 되었습니다.
만약 연재가 아니라 저 혼자 글을 썼더라면 절대 여기까지 오지 못했을 겁니다.
소설은 일기와는 다릅니다. 저 혼자 보려고 쓴 게 아니라, 남들이 봐주길 원하는 글이죠.
그때그때 반응을 보는 것도 재미있고, 기다려주시는 분들이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힘이 납니다.
제가 한창 열심히 글을 쓸때 주위 사람들이 걱정을 했더랬지요. 본업이 따로 있는데 뭣하러 몸을 축내면서까지 글을 쓰냐고.
음.. 명확한 하나의 이유가 있는 건 아닙니다. 그냥, 쓰고 피드백을 받는 것이 좋습니다. 여러분의 반응을 지켜보는 것이 좋아요. 혹시, 이건 관음증인가요.. 하하.
아시다시피 제 작품은 그리 눈에 띄는 작품이 아닙니다. 사실, 꾸준히 관심을 주시는 독자님들이 아니었더라면 진즉 접었을지도 몰라요. 이야기를 하는 것도 리액션이 있어야 할 맛이 나지, 반응이 없으면 쓰는 저도 재미가 없거든요. 1년이나 지속할 이유가 없지요.
그래서 여러분께 더욱 감사한 마음입니다.
응원에 보답하는 길은 꾸준한 연재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뭔가 잡설이 괜히 길어진 느낌이네요.. 하고 싶은 말은 많지만, 못다한 말은 600화 후기때 다시 남기도록 하겠습니다.
하여튼, 그냥 고맙습니다. 제가 하고 싶은 말은 그게 전부입니다.
감사합니다.
언제나 좋은 하루 보내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