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unter Club RAW - chapter (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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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8# 대재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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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부 사막지대의 대부족, 모고르.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던 사막의 도시가 단 하루 사이에 사라졌다.
이 ‘하루’라는 기간. 기실, 그것은 모고르에서 옥쇄한 긍지 높은 전사들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였다. 실상 그 수라장에서 구사일생으로 살아나온 사람들의 증언에 따르면, 모고르라는 대도시가 완전히 파멸하기까지는 불과 서너 시간 밖에 걸리지 않았다고 한다.
지옥의 마왕이라도 강림한 것일까. 모고르의 멸망이라는 비현실적인 소식을 접한 사람들은 도저히 믿기지 않는 소식에 아연실색하면서도, 대체 어떤 재앙이 번화한 대도시를 순식간에 폐허로 만들었는지 궁금해 했다.
그리고 생존자들의 증언을 통해 밝혀진 멸망의 원흉.
‘놈’의 정체는 마왕의 강림보다 더욱 경악할 만한 것이었다.
도시 중앙에 뚫린 거대한 구덩이에서 기어 나와, 수천, 수만의 인구가 상주하고 있는 대도시 모고르를 주춧돌 하나 남기지 않고 휩쓸어버린 괴물.
전설로만 일컬어지던 사막지대의 최고의 포식자이자, 먹이사슬의 정점.
그 형체는 거대화한 지렁이를 닮았으며, 머리부터 꼬리 끝까지의 길이만도 백여 미터가 훨씬 넘어가는 상식 밖의 괴물은 드래곤조차 한 입에 삼킨다고 전해지는 사막의 공포, 샌드웜이었다.
놈이 처음으로 역사에 등장한 것은 카름 전쟁이 막 시작되었을 당시, 즉 수백 년 전이었다. 최초의 샌드웜은 사막지대에 홀연히 나타나, 몇 달 되지 않는 사이에 수만에 이르는 인명피해를 내며 남부 왕국 말리크를 멸망 직전으로 몰고 간 재앙급 카름이었다.
최초의 개체가 두 왕국의 연합군에 의해 격퇴된 이후, 동일 개체는 수백 년 간 단 한 번도 나타나지 않았다. 남부 지구의 주민들에겐 더없이 다행스런 일이었지만, 샌드웜이 남긴 전율과 공포는 대를 이어 구전되며 남부의 전설로 남았다.
그런데, 그런 무시무시한 전력을 간직한 사막의 제왕이 수백 년이란 시간을 뛰어넘어 현세에 다시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샌드웜이 모고르를 제물로 삼아 화려한 부활을 신고하자, 온 대륙은 크게 술렁일 수밖에 없었다. 샌드웜이란 초월적 개체는 비단 남부 지구의 문제만이 아닌, 범대륙적 문제였다. 이대로 그 괴물을 방치하다간 남부 지구 전체가 폐허가 되는 것도 시간문제였으니까.
모고르가 잿더미로 화한 뒤, 하루라는 시간이 속절없이 흘러갔다. 샌드웜이 모고르의 페허 위에 둥지를 틀었다는 소식이 전해지고, 통제력을 상실한 위원회가 허겁지겁 대책을 강구하던 다음 날.
대재앙이 일어났다.
샌드웜은 시작에 불과했다. 카름 전쟁 당시 출현하여 대륙을 멸망 직전으로 몰아넣었던 신화 속의 괴물들이 곳곳에서 속속 나타났다.
동부와 남부를 잇는 변경 사막지대엔 타락한 불의 정령 이프리트(Ifrit)가 나타나 국경 일대를 이글거리는 용암지대로 변모시켰으며,
북부 해안가에는 심해의 괴수 레비아탄(Leviathan)이 출현해 거대한 해일을 일으켰다.
남부와 서부를 잇는 교역로에선 죽음의 사신 그림리퍼(Grim reaper)가 등장해 사방을 칙칙한 어둠으로 물들이고 죽은 자들을 일으켜 세웠다.
이 모두가 과거 대륙에 크나큰 피해를 입힌 전력이 있는 재앙급 카름들. 한 개체만 출몰해도 악몽이라 불릴 만한 카름들이 한꺼번에 동시다발적으로 튀어나온 지독한 현실에 직면한 대륙인들은 두려움에 몸서리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 두려움은 곧바로 현실이 되어 나타났다. 모고르에 이어 또 다른 대도시 하나가 마수들의 먹잇감이 되어 처절하게 짓밟힌 것이다.
게다가, 다음 희생양이 된 곳은… 끔찍하게도 동부의 주도인 에덴이었다.
상시 십만 명이 넘는 인구가 밀집해 있는 에덴. 그 도심 상공에 거대한 죽음의 그림자를 드리운 것은 과거에서 돌아온 마룡(魔龍), 티아마트(Tiamat)였다.
예고 없는 재앙의 도래.
당연한 말이지만, 마룡은 도시의 사람들이 준비를 갖출 때까지 기다려주지 않았다. 마룡의 흉악한 아가리가 크게 벌어졌을 때, 에덴의 주민들은 그저 멍하니 어둠이 들어찬 하늘만 올려다 볼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다음 순간, 도시의 약 2할에 달하는 면적이 일만이 넘는 사람들과 함께 흔적도 없이 증발해버렸다.
그날, 아비규환에 빠진 에덴에서 살아남은 자들은 고작 1, 2만에 불과했다. 십만이 넘는 인구 중 겨우 이 할 남짓만이 살아남은 것이다. 나머지는 마룡이 내뿜는 불길에 타죽거나, 무너지는 건물과 아우성치는 인파에 휩쓸려 떼죽음을 당했다. 하필이면 최초의 공격에 도시의 워프게이트가 파괴되어 피해는 더욱 클 수밖에 없었다.
사람들은 샌드웜에게 모고르가 무너진 다음 날, 재앙급 카름들이 한꺼번에 출현해 수많은 생명을 앗아간 그 날을 ‘학살의 날’이라 명명했다. 그날 하루만 추정 십만에 달하는 목숨이 사라진, 근 백년 간 최고, 최악의 하루였다.
전쟁은 중단되었다. 지금, 같은 대륙민끼리 칼을 겨눌 때가 아니었다. 자칫하면 대륙 전체가 멸망할 수도 있는 위기를 맞이한 반군과 위원회는 암묵적으로 정전에 동의했다. 위원회도 위원회지만, 남부와 동부에 근거지를 두고 있는 반군도 재앙으로부터 자유로울 순 없었다.
위원회는 곧바로 연방회의를 소집했다. 대륙 곳곳에서 날뛰고 있는 재앙급 카름들은 보통 헌터들로는 당할 수 없는 괴물들. 그 재앙의 화신들을 사냥할 수 있는 것은 최소한 프라임리그 급의 강함을 갖춘 헌터들뿐이었다. 그 중에서도 특히 주력을 담당하는 십존들의 협력이 절실했다.
십존이란 본래 최악의 카름들을 상대할 때를 대비해, 원회에서 무제한의 권위를 누리게 해준 인간병기들. 지금이야말로 십존들이 밥값을 하기에 적절한 시기였다.
위원회의 긴급한 호출을 받은 강자들은 하나 둘, 회의가 개최되는 중부 지구의 이레브로 모여들었다.
지금껏 전쟁에서 중립을 지키고 있던 검왕 김정인을 비롯해, 산 속에 틀어박혔던 북왕 아이벤도 위원회의 호출에 응했다.
서부에서 손꼽히는 세력을 이끌고 있는 노구덕이 이레브에 입성한 것도 바로 그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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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그렇듯 하얀 빛무리가 일어나 망막을 따갑게 물들이고 나자, 눈앞에 펼쳐진 풍경이 순식간에 뒤바뀌며 가벼운 현기증이 느껴졌다. 어지럼증을 떨치고자 몇 번 눈을 깜박인 노구덕은 근처에서 자신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는 젊은 마법사 여인에게 금화 하나를 건넸다.
“고맙네.”
“가, 감사합니다!”
넙죽 금화를 챙긴 마법사 여인의 입이 함지박만 하게 벌어졌다. 기껏해야 몇 실버 정도를 기대했는데 번쩍번쩍 황금빛이 도는 금화라니. VIP 전용 워프게이트를 관리하다보면 간혹 큰 액수를 팁으로 받긴 하지만, 금화는 드문 경우다. 두말할 것도 없는 횡재였다.
“편안한 여행되세요!”
자박자박 걸어가는 노구덕의 뒤로 목청껏 인사하는 여인의 음성이 들려왔다. 노구덕은 알겠다는 듯 가볍게 손사래를 치면서 그녀의 인사에 답했다.
“…이 시국에 편안한 여행은 무슨.”
신소율은 워프게이트를 벗어나기 무섭게 투덜거렸다. 딱히 마법사 여인을 탓한다기보다는 종일 우울했던 심경을 저런 식으로 토로한다고 보는 게 맞았다. 모고르의 참사를 접한 직후, 아이리스의 내부의 분위기는 쭉 심해처럼 가라앉아 있었으니까.
“분위기 어두운 것보단 낫지 않습니까. 그래도 이레브는 비교적 평화로운 것 같아 다행이군요.”
워프게이트 주변 거리를 둘러보던 도일은 신소율을 달래듯 두어 마디를 덧붙이다가, 돌연 낯빛을 반갑게 물들이며 번쩍 손을 들어보였다.
“유메 누님! 여깁니다!”
유메르바인을 찾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무수히 오가는 사람들로 북적이는 이레브의 거리 한복판에서, 유독 크게 형성되어 있는 빈공간만 찾으면 되었으니까.
겉으로는 길쭉하고 얇은 지팡이 하나에 의지하고 있는 가련한 소경 여인처럼 보이는 그녀. 단아하게 빗어내려, 살짝살짝 흔들리는 칠흑의 머리가 고아한 인상을 풍기는 동양적인 미인이다. 허나, 남자라면 누구나 보듬어주고 싶을 것 같은 미녀의 주변은 보이지 않는 장막이라도 쳐져 있는 것처럼 휑하기 짝이 없었다.
사실을 말하자면, 주변 행인들이 애써 그녀를 피해 간다는 느낌이다. 하긴, 그녀의 진실된 정체를 아는 자라면 지극히 당연한 반응이었다.
도일이 외치는 소리를 들은 것일까? 주변을 서성이던 유메르바인은 이윽고 노구덕 일행이 있는 곳을 향해 일직선으로 걸어오기 시작했다. 그러자 바닷물이 열리는 것처럼 그 많던 인파가 시원하게 갈라지는 것이 보였다.
따박따박 지팡이를 움직여, 장님이라고는 생각되지 않는 빠른 걸음걸이로 다가온 유메르바인은 구면인 도일, 신소율과 간단한 눈인사를 주고받고는(장님이지만, 희한하게 눈인사는 가능했다.) 노구덕에게 살짝 목을 숙여보였다.
“오셨군요. 노구덕 위원.”
“많이 기다렸나?”
“저도 방금 도착했어요. 자세한 얘기는 가면서 하도록 하죠. 마차가 준비되어 있어요.”
“…그러지.”
항상 고즈넉한 밤하늘 같은 고요함을 간직하고 있던 얼굴에서 이제껏 보지 못한 초조함이 엿보인다. 그녀 또한 작금의 사태를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다는 의미다.
노구덕과 신소율, 도일은 근처에 대기하고 있던 마차에 몸을 실었다. 적어도 열 명 정도는 너끈하게 탑승할 수 있을 것 같은 넓은 마차였다. 마지막으로 마차에 오른 유메르바인은 마부에게 출발 신호를 보낸 뒤, 가볍게 손을 내저었다. 방음 주문이었다.
마차 주변에 탄탄한 마력의 장막을 둘러친 유메르바인은 이내 노구덕의 얼굴을 보며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먼저… 심심한 애도부터 드리겠어요. 모고르의 일은 정말…….”
“…마음은 고맙군.”
그렇잖아도 납덩이를 달아 놓은 것 같던 노구덕의 얼굴이 더욱 침중해졌다. 그건 그의 수행원인 도일, 신소율도 마찬가지.
최초로 등장한 재앙, 샌드웜에 의해 멸망한 모고르. 셀 수 없이 많은 사람들이 그 자리에서 목숨을 잃었고, 수천에 달하는 피난민이 발생했다. 지도자인 자하드는 다행히도 목숨을 건졌지만, 부족 대대로 내려오던 터전을 지켜내지 못했다는 자책감에 반쯤 실성한 상태였다.
급한 대로 주변 사막 도시에 협조를 구해, 피난민들이 임시로 거할 부지를 선정하고 지원을 아끼지 않고는 있으나, 그 모든 것은 임시방편에 불과했다.
모고르의 폐허 위에 둥지를 틀고 있는 샌드웜을 처치하지 않는 한은.
“…도무지 말이 되지 않아. 중앙에선 어떻게 보고 있나?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지?”
“저희 쪽도 그렇고, 별다른 전조를 감지하지는 못했어요. 다만…….”
“다만?”
“최근에 일부 지역에서 일어났던 이상기후가 재앙의 징후라 짐작되고 있기는 해요. 아직은 심증 단계에 지나지 않지만요.”
노구덕의 머리가 앞뒤로 흔들렸다. 그 또한 재앙이 일어나기 하루 전, 자하드와 패터슨에게서 이상기후에 대한 보고를 받지 않았던가.
그 당시엔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못했다. 기껏해야 심한 가뭄으로 고생하는 모고르에 대한 지원책을 세우는 것이 전부였다. 그리고 그게 당연한 일이었다. 이상기후는 말 그대로 천재지변(天災地變), 그가 어떻게 해결하고 말고 할 문제가 아니지 않은가.
설마하니 그게 대재앙의 전조였을 줄이야. 대륙의 누구도 예상치 못할 신호였을 것이다.
무거운 한숨을 내쉰 노구덕은 답답한 가슴을 달래기 위해 절레절레 머리를 흔들었다.
“…후우. 위원회도 별다른 정보는 없다는 소리군.”
“나름대로 인력을 쏟고 있긴 하지만… 아직까진 별 소득이 없는 걸로 알아요. 그리고 지금으로선 일의 원인보다는, 대책을 강구해야 할 시점이죠.”
“대책이라…….”
노구덕은 빠르게 지나가는 창밖의 풍경을 바라보며 천천히 생각에 잠겼다. 과연 통제력을 상실한 위원회가 이번 사태를 제대로 해결할 수 있을까?
…어쩐지, 그 대책으로 향하는 길이 순탄하지만은 못할 것 같다는 예감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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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본격 레이드물로 회귀를….
저번화 코멘 모두 잘 읽었습니다! 최근 리리플이 뜸한데 정말 죄송하네요 ㅠㅠ 다시 짬내서 달도록 노력할게요!
오늘은 금요일이라 연참이 가능할지는 모르겠지만.. 늦더라도 새벽녘에는 반드시 업로드를 하도록 하겠습니다.
꾸준히 연재를 해야 다음 600화를 바라볼 수 있을 테니까요.
항상 감사합니다 (_ 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