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unter Club RAW - chapter (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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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9# 서부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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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메르바인의 미간이 급격히 좁혀졌다. 감겨 있는 눈꺼풀 안쪽은 보이지 않았지만, 그녀가 상당히 동요하고 있다는 것 정도는 알 수 있었다.
믿지 못할 말을 들은 그녀는 재차 확인하듯 물었다. 상대는 정찰조의 대장인 시먼이었다.
“뭐라고 했죠? 다시 한 번 말씀해주세요, 시먼. 농담이라면 사양할게요.”
“아니… 나도 믿기지 않지만 말이야……. 그게…….”
여느 때라면 거침없는 입담을 쏟아냈을 시먼이 머뭇거리고 있다. 그만큼, 이번 정찰에서 그가 본 광경은 입에 담기 힘들 정도로 충격적이었다.
하기야 그 누가 짐작이나 할 수 있었을까. 그 재앙급 카름, 그림리퍼에게 홀로 달려드는 사람이 있었을 줄은. 문제는 그 미친놈이 서부의 사령관이라는 직함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이다.
“…젠장!”
자신을 향하는 수많은 시선들을 의식한 듯, 작게 욕지거리를 내뱉으며 입술을 짓씹은 시먼은 작은 눈자위를 사납게 굴리며 말했다.
“말 그대로다. 더하거나 뺀 것도 없어. 무릴로, 그 자가 갑자기 나타났고, 그림리퍼와 제대로 한판 붙었지. 한 30분 정도 싸웠나? 처음에는 좀 압도하는 듯했는데… 나중에는 점점 밀리다가, 마지막에는 놈에게 당했어. 그게 끝이야.”
“…하.”
잠자코 얘기를 듣고 있던 유메르바인의 아름다운 입술에서 작은 한탄이 흘러나왔다. 두 번이나 듣는 얘기지만 도저히 실감이 나지 않았다.
말도 없이 사라졌던 사령관이 뜬금없이 그림리퍼와 일전을 벌이고, 허망하게 전사했다는 말을 믿으란 말인가?
“그 그림리퍼에게 혼자 덤볐다고? 공명심에 눈이 멀어도 유분수지!”
“미친……. 알고 보니 미친놈이었네요.”
“허허허, 어이가 없군.”
사방에서 무릴로를 성토하는 목소리가 잇따랐다. 그도 그럴 만한 게, 적의 동태를 살피기 위해 정찰조를 보냈더니, 돌아온 것은 얼토당토않은 사령관의 전사 소식이다. 솔직히 욕이 나오지 않을래야 않을 수가 없다.
유메르바인은 좀 더 정황을 자세히 파악해야 할 필요성을 느꼈다. 아무리 무릴로가 종잡을 수 없는 인물이라곤 하지만, 갑자기 이유 없는 자살을 시도할 남자는 아니다.
“모두, 조금만 진정해 주세요. …시먼, 좀 더 자세한 얘기를 듣고 싶어요. 이건 그만큼 중대한 문제니까요. 이해해 줄 수 있지요?”
“…이해는 하는데, 그 애새끼 타이르는 듯한 말투가 심히 거슬린다만.”
“시먼.”
“알았어, 알았다고.”
불만스레 고개를 끄덕인 하플링은 정찰 임무에서 목격했던 장면을 여과 없이 풀어놓기 시작했다.
무릴로는 어떤 예고도 없이, 정말 갑작스럽게 나타났다. 시먼을 포함한 정찰조원 열두 명이 지켜보고 있는 가운데, 무턱대고 그림리퍼에게 돌진한 그는 전설로 회자되는 재앙급 카름과 한 치의 밀림 없는 치열한 접전을 벌였다고 한다. 심지어 초반에는 그림리퍼를 포대자루 두들기듯 압도했었다고.
하지만 그의 무시무시한 공세에도 불구하고, 그림리퍼는 별다른 타격을 받지 않은 것처럼 보였다. 반면, 초장에 너무 힘을 쓴 것인지는 몰라도, 무릴로의 공세는 점점 그 날카로움을 잃어만 갔다.
그렇게 30분 정도를 끌었을까. 호시탐탐 기회를 엿보던 그림리퍼의 대낫이 무릴로의 심장을 관통했다. 가슴팍이 꿰뚫린 무릴로는 쇠꼬챙이에 걸린 고깃덩이인 양 속절없이 위로 떠올랐고, 이내 검은 연기로 화해 사라져버렸다.
“…내가 본 건 여기까지다. 정찰조 모두가 같은 장면을 봤으니, 원한다면 다른 녀석들에게 물어봐도 돼.”
“…그럼 시체를 본 건 아니로군요?”
“글쎄…. 그건 어떨지. 말 안했던가? 그림리퍼에게 생기를 빨린 것들은 모두 그런 식으로 죽어버렸다고. 무릴로가 나타나기 전에도 웬 까마귀가 똑같이 먼지로 변해버렸지.”
태산처럼 무거운 공기가 장내를 짓눌렀다. 계속되는 사람들의 불만에도 줄곧 무릴로를 편들었던 유메르바인마저 입에 자물쇠를 채운 듯 말이 없었다. 사령관이라는 직함은 제쳐두고, 무릴로는 재앙급 카름을 상대하는데 없어서는 안 될 전력이다. 그런 전력을 본 게임에 들어가기도 전에 허망하게 잃어버렸으니 그 심정들이 오죽할까.
꿔다 놓은 보릿자루처럼 말없이 자리만 채우고 있던 노구덕은 남몰래 고개를 흔들었다.
‘시작부터 많이도 삐거덕대는군. 이거, 제대로 작전이나 제대로 짤 수 있을지……. 그나저나 무릴로란 놈, 그런 멍청이로 보이지는 않던데.’
얼핏 보았던 무릴로의 얼굴을 떠올린 노구덕은 뒤에 시립해 있는 신소율에게 넌지시 말을 건넸다.
“소율아, 네가 보기엔 어땠냐?”
“그냥… 저 사람이 하는 말이랑 별로 다른 거 없어요. 나도 웬 미친놈인가 싶었다니까요.”
“…그래?”
정찰조의 일원으로 참가했던 신소율이 이렇게까지 말하는 걸 보면, 그림리퍼와 싸운 의문의 사내는 확실히 무릴로가 맞는 것 같았다. 하긴 삼십 분이라 해도 단독으로 재앙급 카름과 맞설 만한 무력을 지닌 사내가 그 말고 또 누가 있으랴마는.
“골치 아프군. 대체 그만한 사내가 왜 그런 짓을…….”
무릴로의 기행을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미간을 짓누르던 노구덕은 갑자기 흠칫 표정을 굳혔다.
“소율아. 너, 뒤에 그건 뭐냐?”
“엥? 뭐가요? …앗! 어, 엄마야!”
노구덕의 시선을 따라 슬쩍 고개를 돌린 신소율은 화들짝 놀라며 뒷머리를 부여잡았다. 그녀의 등에서 불이라도 난 듯, 시커먼 연기가 스멀스멀 피어오르고 있었기 때문이다.
등짝에 검은 연기를 매단 신소율은 기겁하여 손발을 허우적거렸으나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도리어 검은 연기는 그녀의 행동을 비웃기라도 하듯, 점차 그 크기를 더해 커져 가기만 했다.
“거기, 무슨 일인가요?”
“갑자기 웬 연기가…….”
그런 소란을 떨었으니 이목을 끌지 않을 리 없다. 삽시간에 회장의 주목을 받게 된 신소율은 울상을 지으며 노구덕에게 매달렸다.
“아, 아저씨! 어떻게 좀 해줘요!”
“이리 와!”
저 검은 연기. 뭔진 몰라도 좋은 징조처럼 보이진 않는다. 다급해진 노구덕은 우거지상이 된 신소율을 무릎에 엎드리게 한 다음, 검은 연기가 피어오르는 등허리의 가죽 갑옷을 억지로 찢어버렸다.
찌이익–!
처참하게 찢겨나간 가죽 갑옷 틈새로, 은어처럼 매끈한 등허리가 드러났다. 그러나 노구덕의 눈은 우윳빛의 미려한 살결을 감상할 틈도 없이 검은 연기의 진원을 쫓았다.
정체불명의 연기는 그녀의 등과 허리를 잇는 중심부에서 스며 나오고 있었다. 겉보기로는 특별히 구멍이라든가, 이상한 조짐은 보이지 않는다. 마치 그녀 몸 안의 무언가가 피부를 통과하여 밖으로 뻗쳐 나오는 느낌이었다.
“이게 무슨… 음!”
노구덕은 이해할 수 없는 기현상에 고개를 흔들다 말고 낮게 침음했다. 신소율의 몸에어 피어오른 검은 연기가 뭉클거리며 한 데 뭉치더니, 점점 뚜렷한 형상으로 화했기 때문이다. 땅을 딛고 선 두 다리와 허리춤까지 늘어진 두 팔, 그리고 사지가 달린 몸뚱이. 아무리 봐도 저건 사람의 윤곽이었다.
잠시 후, 사람 형상의 그림자를 에워싼 검은 연기가 잿가루처럼 휘날려 사라져버리고, 그 안에서 모습을 드러낸 것은 검은색 일색의 복장을 걸친 외눈의 사내였다.
난데없는 소동에 눈매를 찌푸리며 경계를 취하고 있던 유메르바인은, 사내가 나타나자마자 지팡이로 땅을 강하게 찍으며 소리쳤다.
“무릴로!”
“무릴로라고?”
“아니, 그럼 저자가……!”
좌중에서 큰 술렁임이 일었다. 방금 전의 보고로 죽은 줄로만 알았던 무릴로가 멀쩡히 살아서 나타나다니?
“여기들 모여 있었군.”
가래가 끓는 것처럼 탁한 목소리. 허나 그 속에 스며 있는 예기는 시퍼렇게 날이 살아 있는 칼날을 대하듯 피부가 따끔거릴 지경이다.
독안의 사내, 무릴로가 유유히 시선을 돌리며 주변을 훑어내리자, 조금 전까지 그를 성토하던 사람들은 황급히 고개를 돌리며 그의 눈길을 피하기 바빴다. 소문이 자자한 폭군 무릴로를 직접 마주 대하고 보니, 그의 악명에 서려 있는 피비린내를 다시 상기한 탓이다.
하루 동안에 일천 명의 리버를 학살한 괴물. 무릴로.
그가 없는 곳이라면 모르되, 이처럼 대놓고 모습을 드러낸 마당에 감히 그를 비난할 수 있는 사람이 누가 있을까? 나랏님 욕하는 것도 듣는 귀가 없을 때나 가능한 법이다.
그나마 그의 살기에 구애 받지 않는 건, 유메르바인이나 시먼 정도의 실력자들뿐이었다.
“무릴로, 지금까지 어디에 있었던 거죠?”
“방금 보지 않았나. 저 꼬맹이의 안에서 잠깐 쉬고 있었지. 들었다시피, 놈에게 당해서 몸이 온전치 못했거든.”
“으아아… 내, 내, 내 안에서…?”
노구덕의 품에 안겨 있는 신소율의 얼굴 근육이 파들파들 경련을 일으켰다. 자연스럽게 상석을 향해 걸어가던 무릴로는, 순결을 잃은 처녀 같은 얼굴을 하고 있는 신소율에게 힐끔 눈길을 주었다.
“그리 편하지는 않더군. 위리놈(Wirinom) 꼬맹아, 좀 더 노력하는 게 좋을 거다.”
“무슨 말을 하는 거야… 위리놈이라니…?”
무릴로는 신소율의 멍한 혼잣말에 나직이 혀를 찼다. 노구덕이 잘못 본 것이 아니라면, 차디찬 그의 눈길에 담긴 감정은 틀림없는 한심함이었다.
“쯧. 예상은 했다만 제대로 된 계약조차 맺지 못한 머저리였나. 내 알 바는 아니겠지.”
“자, 잠깐…!”
무릴로는 신소율의 부름을 들은 체도 하지 않고 상석으로 나아갔다. 그의 무심한 뒷모습을 지켜보던 노구덕은 우두커니 꿇어 앉아 있는 신소율의 작은 몸을 보듬어 끌어안았다. 속으로 그가 했던 말을 천천히 되새기면서.
‘위리놈이라고… 소율이가 가지고 있는 심연의 구슬에 잠들어 있는 악마 얘기인가.’
무릴로는 어비스쉬라인의 군주. 어떻게 그를 잘만 구슬린다면 난관에 부딪쳐 더 나아가지 못하고 있는 신소율의 문제를 해결할 방도를 찾을 수 있을지도 몰랐다.
문제는 무릴로를 어떻게 구슬리느냐, 하는 것이겠지만. 노구덕이 보기에, 무릴로란 인간(그를 인간으로 칭할 수 있다면)은 교섭 상대로 최악의 인물이었다.
노구덕이 뜻밖에 직면한 문제로 고민을 하는 사이, 당연하다는 듯 상석을 꿰찬 무릴로는 오연한 시선으로 장내를 둘러보았다.
“레전더리, 피에스타, 어울림, 진혼, 청색여단.”
그 낮은 울림에 정확히 다섯 명의 사람들이 몸을 움찔거리는 것이 보였다. 지금 무릴로가 콕 집어 말한 다섯 클럽의 오너들. 조금 전까지 무릴로의 행태를 나무라며 언성을 높이던 이들이었다.
“얘기들은 잘 들었다. 아주 잘 떠들어대더군.”
“끙… 응당 해야 할 말을 했을 뿐이오. 누가 봐도 당신의 행동은 이해하기 어려운…….”
“너희들의 동의를 구할 생각은 없다. 필요한 일이라 생각했고, 그래서 행동에 옮겼을 뿐이니까.”
“무릴로, 그건 무슨 뜻이죠? 일부러 혼자서 그럼리퍼와 싸웠다는 건가요?”
“그래. 싸우기 전에 적을 알아야 한다는 건 상식 아닌가?”
무릴로의 태연한 대답에, 회의석상에 늘어선 이들의 얼굴에 어처구니가 없다는 빛이 떠올랐다. 고작 사전 정보를 얻기 위해 그림리퍼와 단독으로 맞선다? 평범한 인간이라면 결코 떠올릴 수도, 실행할 수도 없는 발상이다.
그것은 유메르바인이라고 예외는 아니었다. 기가 막힌 듯, 잠깐 뜸을 들인 그녀는 다시금 그에게 물음을 던졌다.
“…그래서, 소득은 있었나요?”
“물론. 싸워보니 알겠더군. 같은 놈이었어.”
“…같은 놈이라뇨? 설마…….”
“그 설마다. 놈은 200년 전에 출몰했던 그림리퍼와 동일한 개체다. 혹은 놈의 정보를 그대로 베껴낸 복제판이거나.”
“이봐, 당신이 그걸 어떻게 확신하지? 설마 200년 전의 놈과 싸워보기라도 했다는 건가?”
득달같이 치고 드는 시먼의 질문을 받은 무릴로는 심드렁하게 대꾸했다.
“정답이다. 내가 무엇 때문에 너희들의 사령관으로 임명되었다고 생각하나. 뻔한 것을 묻다니, 어지간히 머리가 나쁘군.”
이번에도 설마가 사람을 잡았다. 상식을 뛰어넘는 그의 대답은, 그렇잖아도 착 가라앉아 있던 분위기를 더욱 어수선하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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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의 추천과 코멘은 작가에게 큰 힘이 됩니다!
크흠, 어제 중간 문단 두개 정도가 복사된 일이 있었습니다 ㅠㅠ 어쩐지 용량이 크다했더니 중간에 복사 문단이 들어가 있었던 거였네요. 코멘달아주신 덕분에 일찍 확인은 했지만 제가 밖에 나가 있어서 수정이 조금 늦었습니다. 이점 죄송합니다.
어제 술자리가 너무 늦게까지 이어져서, 오늘은 하루 쉴까 했는데 막상 집에 있으니 할게 없더군요..
빗소리 들으면서 뒹굴던 차에, 늦게나마 한편이라도 써서 올려봅니다..
내일부터 다시 쭉쭉 진도를 빼도록 하겠습니다!
독자님들 모두 즐거운 주말 보내셨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