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unter Club RAW - chapter (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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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9# 서부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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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의는 끝났다.
무릴로가 스스로 밝힌 정체 때문에 잠시 실내가 소란스러워지긴 했으나, 워낙 이상현상이 많이 일어나는 요즈음이라 그런지 생각보다 큰 여파는 없었다.
무릴로, 그가 스스로 밝힌 자신의 정체는 남부 지방에 오랫동안 존속되어온 비밀 결사, 어비스쉬라인의 대군주(Overlord)였다. 또한 그는 발레기우스와 동시대의 인물이기도 했다. 흘러간 시간으로 짐작컨대, 그의 나이는 대략 사백 살 정도 되었을 터.
짤막하게 자신의 정체를 밝힌 무릴로는 사람들이 믿거나 말거나 개의치 않고 회의를 진행했다.
‘내가 신이든, 악마이든 그게 중요한가? 쓸데없는 곳에 정신을 쏟을 시간에 놈을 잡을 방도를 생각해라.’
혼란스러워하던 사람들은 무릴로의 따끔한 일갈에 정신을 차리고 회의에 집중했다. 어쩐지 어물쩍 넘어가려는 의도가 엿보였지만, 딴에는 맞는 말인지라 달리 할 말이 없기도 했다. 중요한 것은 무릴로의 정체가 아니라, 그만한 실력자가 서부에 협력하고 있다는 사실이었으니.
어수선한 장내를 정리한 무릴로는 기존에 유메르바인과 수뇌부들이 짜 두었던 편제를 일사천리로 재편했다. 처음부터 갈아엎는 수준은 아니었고, 약간 손을 본 정도였다.
그가 제시한 그림리퍼의 주요 공략법은 세 가지.
첫째, 홀리필드(Holy field), 혹은 성역(Sanctuary) 같은 광역 신성 주문을 지속적으로 유지하여 그림리퍼의 영역을 축소한다. 이를 위해선 로테이션으로 주문을 유지할 수 있는 사제단이 필요했다.
둘째, 주공(主攻)은 화염 속성으로 한다. 그림리퍼는 크게 분류하면 언데드에 속하는 카름이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신성력과 불에 취약했다. 따라서 대(對) 그림리퍼 전에서 주공 임무를 도맡은 것은 화염 주문으로 무장한 마법사단이었다.
셋째, 놈이 들고 있는 대낫을 집중적으로 노릴 것. 그림리퍼의 대낫은 단순한 무기가 아니라 또 다른 분신과도 같았다. 그리고 뚜렷한 형체가 없는 본체에 비해, 놈의 대낫은 확고한 물리적 형체가 있으므로 상대적으로 타격을 하기도 쉬운 편이었다. 그의 설명으론, 힘을 증폭하는 대낫이 파괴되면 그림리퍼의 힘이 크게 약해진다고.
무릴로는 한번 그림리퍼를 처치한 경험이 있는 이답게 놈에 대한 공략을 술술 풀어냈다. 처음에는 그의 말에 강한 불신을 보이던 수뇌부들도, 그의 막힘없는 말솜씨에 자기도 모르게 머리를 끄덕끄덕 움직이며 귀를 기울였다.
무릴로의 본격적인 합류로 훨씬 수월해진 것 같은 그림리퍼 공략이었지만, 주의해야 할 점도 산재해 있었다.
우선, 놈의 영역 안에서의 병력 손실은 최소한으로 줄여야만 했다. 병력의 손실을 줄인다. 어찌보면 당연한 말이지만, 대 그림리퍼 전에서는 좀 더 특별한 이유가 있었다. 놈의 영역에서 목숨을 잃은 이는 그 즉시 망자가 되어 부활하는데다, 그가 지니고 있던 생기는 고스란히 그림리퍼의 힘을 증폭시키기 때문이다.
게다가, 놈이 소환하는 많은 수의 망령군대도 문제였다. 그 망령들을 처리하고 그림리퍼 본체에 다다르면, 놈의 드넓은 영역 전체를 관통하는 광역기가 기다리고 있다. 그림리퍼의 수법들은 하나 같이 광역기가 많아서 방어하기가 보통 까다로운 게 아니었다.
그렇다고 놈의 본체가 약한 것도 아니다. 마구잡이로 휘둘러지는 육중한 대낫은 살짝 스치기만 해도 상처가 악화되는 저주가 걸리고, 그 자체의 위력만으로도 단단하기로 유명한 아다만티움 원석을 베어낼 정도였다. 실제로 이백 년 전의 싸움에선 중장갑으로 무장한 한 부대의 전사들이 놈의 대낫 공격 한 번에 방패째로 썰려나간 적도 있었다고 했다.
그 무시무시한 설명을 듣고 있자니, 단독으로 그림리퍼와 맞서 싸웠다는 무릴로가 도무지 인간처럼 보이지 않았다. 하긴, 심연에 거하는 여섯 악마의 수좌, 대악마 마스테마와 일체화한 그를 평범한 인간으로 본다는 것 자체가 넌센스였지만.
무릴로, 유메르바인, 노구덕, 신소율.
회의가 끝난 장내에는 오직 그들 네 사람만이 남아 있었다. 무릴로와 유메르바인이야 사령관과 부사령관이었으니 당연한 일이었고, 노구덕과 신소율은 지극히 개인적인 이유로 자리를 지켰다.
두 사람이 남은 이유. 뻔하게도, 그건 무릴로에게서 심연의 구슬에 대한 정보를 캐내기 위함이었다.
그들의 사정을 모르는 유메르바인은 노구덕과 신소율이 회의가 파했음에도 초조한 기색을 보이며 남아있는걸 의아히 여겼다.
“노구덕 위원, 뭔가 다른 용무라도 있나요?”
“음, 그게…….”
노구덕은 대답을 주저하며 슬쩍 무릴로의 표정을 살폈다. 신소율이 하도 닦달해서 일단 남긴 남았는데, 제대로 된 대화조차 나눠 본 적 없는 무릴로를 어떻게 대해야 할지 얼른 감이 잡히지 않았기 때문이다.
“에잇. 내가 말할래요!”
노구덕이 애매하게 말을 흐리는 모습이 답답해 보였던 것일까? 그 뒤에 서 있던 신소율이 갑자기 잰걸음으로 다가오더니, 무릴로의 면전에 대고 느닷없이 털썩 무릎을 꿇는 것이 아닌가.
“스승님!”
“…….”
쥐 죽은 듯 고요하게 흐르는 정적. 뜸을 들이던 노구덕의 입이 살짝 벌어지고, 다소곳하게 앉아 지팡이에 손을 얹고 있던 유메르바인의 머릿결이 잔물결을 일으켰다.
하지만 정작 무릴로의 반응은 무반응. 다리를 비스듬히 꼰 채, 유메르바인이 가져온 서류를 읽어내리는 그는 신소율 쪽은 쳐다보지도 않고 있었다.
속된 말로 개무시를 당한 신소율은 그의 냉담한 반응에 으득 어금니를 악물었다. 아니꼽고 배알이 뒤틀려, 성질이 있는 대로 치솟았지만 그녀는 꾹 참아냈다. 어차피 무릴로가 무릎 꿇기 한 번에 설득당할 인간이라고는 생각하지도 않았다.
절을 하듯 그의 앞에 머리를 조아린 신소율은 힘겹게 바라는 바를 털어놓았다.
“제가 가지고 있는 악마… 그러니까 분명히… 위리놈이라고 했죠…?”
“…….”
“그 녀석의 힘을 빌리고 싶어요…. 나름대로 노력했지만 도무지 진전이 없어서…….”
“…….”
“제발 나 좀 도와주세요. 약간의 힌트라도 좋아요. 어떻게 하면 그 녀석의 힘을 빌릴 수 있죠? 전 임자 있는 몸이라 밤시중 같은 건 못 들지만, 스승님이 원하신다면 하인 같은 거라도 할게요…….”
도움을 구하는 신소율의 음성은 절절함이 가득 배어 있었다. 그녀는 결연한 각오가 선 눈망울로 묵묵부답으로 일관하는 무릴로를 올려다보았다. 섶을 지고 불구덩이에 뛰어들라면 정말로 그렇게 할 기세였다.
그녀는 정말 간절했다. 근래에 쉬지 않고 훈련에 매진했던 이유가 무엇이던가. 오로지 심연의 구슬을 갖기 위한 자격을 획득하기 위해서였다. 심연의 구슬이 별반 반응을 보이지 않은 것은, 스스로의 자격이 부족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했으니까.
하지만 암만 훈련에 훈련을 거듭해도, 심연의 구슬은 그녀에게 작은 힘마저 허락하지 않았다. 무언가 작은 진전이라도 있다면 거기에 희망을 걸어볼 텐데, 늘어난 것은 손에 거칠게 박인 굳은살뿐이었다.
동기를 잃어버리니 제대로 훈련이 될 리가 없다. 요즈음 신소율은 아무리 검을 휘둘러도 공허한 마음을 채울 수 없었다. 심연의 구슬을 소화해내지 못한다면, 그녀가 노구덕의 옆자리에 당당하게 설 날은 까마득히 요원해지고 만다.
그러던 차에 겨우 길을 알려줄 실마리를 찾았다. 그녀에겐 절대 놓칠 수 없는 동아줄이었다.
그러나 구원줄을 가진 상대는 여전히 그녀에게 관심을 두지 않았다. 망망한 눈으로 무릴로의 철가면 같은 얼굴을 응시하던 신소율은 별안간 머리를 크게 뒤로 젖히더니, 이마를 바닥에 세게 내리찍었다.
쿵!
절굿공이를 내리찧은 것 같은 둔탁한 소리가 실내에 진동했다. 신소율의 갑작스런 자해에 경악한 노구덕은 크게 기함하며 일어나 그녀의 어깨를 붙잡았다.
“소율아! 이게 무슨 짓이야!”
“이거 놔요, 아저씨.”
다시 고개를 든 신소율의 이마는 심하게 찢어져 피범벅이 된 채였다. 고통이 극심할 텐데도, 철철 흐르는 핏물 가운데 찢어질 듯 부릅떠진 눈알은 작은 깜박임조차 보이지 않고 강철처럼 단호한 빛을 뿌리고 있었다.
“나, 여기서 이마 한번 제대로 깨져보려고요. 어차피 노력해도 안 되는 거, 제대로 된 방도만 알 수 있으면 이마가 대수예요?”
독기 가득한 신소율의 말에 노구덕이 할 말을 잃어버린 사이, 줄곧 침묵을 고수하던 무릴로가 마침내 그녀에게 눈길을 주었다.
“멍청한 계집이군.”
“어! 말했다!”
“난 네년의 이마가 깨지든 말든 관심 없으니, 귀찮게 하지 말고 꺼져라.”
“하인은! 하인은 필요 없어요?”
“필요 없다.”
피로 얼룩진 신소율의 머리가 멍하니 늘어졌다. 잠시 우두커니 땅만 바라보고 있던 그녀는 갑자기 크게 팔을 뻗어 무릴로의 발목을 부여잡았다.
“제발 알려줘요! 나보고 어떻게 하란 말이야! 제바알…!”
“아, 아니…! 소율아!”
무릴로는 바짓가랑이를 부여잡으며 떼를 쓰는 신소율을 무심하게 내려다보았다. 피범벅이 된 얼굴로 악다구니를 써대는 것이 여간 처참한 게 아니었다. 그러나 그는 폭군 무릴로, 일말의 동정심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냉혈한이었다.
“악!”
무릴로의 발등에 걷어차인 신소율은 허공을 붕 날아올라, 회의장 구석에 힘없이 처박혔다.
“무릴로!”
그녀가 깡통처럼 나뒹구는 꼴을 본 노구덕의 눈에 새빨간 불똥이 튀었다. 장내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게 돌아가는 것을 감지한 유메르바인의 지팡이에 아지랑이 같은 마력이 피어오르는 찰나, 냉정하게 뒤돌아선 무릴로가 나직하게 입을 열었다.
“천 명을 죽여 제물로 바치든지, 네가 죽음을 받아들이든지. 선택은 네 몫이다.”
쓰러져있는 신소율의 머리가 크게 꿈틀거렸다.
“고, 고마워요…….”
“글러먹은 계집이군. 스스로 수라의 길을 택하다니.”
‘수라의 길?’
무릴로의 뜻 모를 중얼거림은 그를 향해 온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던 노구덕의 얼굴을 딱딱하게 경직시켰다. 수라의 길. 언뜻 듣기에도 결코 좋은 뜻으로 들리진 않는 말이다.
마침, 그의 곁을 지나치던 무릴로는 팔근육을 울끈불끈 팽창시킨 노구덕을 일별하며 기이한 안광을 발했다.
“…이건 또 의외로군. 발레기우스의 잔당인가? 아니면, 반역도?”
“…반역도는 그놈이지. 내가 정통이다.”
무릴로를 어떻게 대할지 고민했던 것이 허망할 정도로, 쉽게 튀어나오는 반말이다. 하지만 정작 무릴로는 노구덕의 반말투를 그리 신경 쓰지 않았다.
“정통? 네놈에겐 ‘각인’이 없는 것 같은데…… 상관없겠지.”
노구덕에게서 시선을 뗀 무릴로는 비척비척 일어나고 있는 신소율에게 다시 눈길을 주더니,
“벌레에 악마라. 시대가 변하니 이런 재미있는 조합이 나오기도 하는군.”
시답잖은 몇 마디를 남기고 막사를 떠나버렸다.
멀어져가는 무릴로의 뒷모습을 지그시 노려보던 노구덕은 이내 아차 정신을 차리곤, 의자에 기대어 숨을 고르고 있는 신소율에게 다가가 호통을 쳤다.
“이 녀석! 누가 그렇게 멋대로…!”
“헤헤헤… 어쨌든 힌트는 얻었잖아요?”
크게 화를 내려던 노구덕은 신소율의 해맑은 웃음에 그만 화를 낼 기력조차 잃어버리고 말았다. 그간 얼마나 큰 응어리를 가지고 있었으면 스스로 이마를 깰 생각을 했을까. 그리 생각하니 바보처럼 웃고 있는 신소율이 무척 안쓰럽게 보였다.
“…자기 이마를 깨면서 애원하다니, 그런 무식한 방법이 무릴로의 마음을 움직일 줄은 몰랐네요. 그런 건 어디서 배운 거죠?”
“에? 그냥 좀… 임팩트 있게 하고 싶어서….”
“…임팩트?”
“에이, 몰라요. 원래 강하게 부탁하려면 이마로 땅 박고 그런 거 하지 않나? TV에서 많이 나오잖아요.”
“하아. TV요?”
어이가 없어진 유메르바인이 고개를 설레설레 내젓는 것을 본 노구덕은 남몰래 쓴웃음을 삼켰다. 갑자기 왜 이마를 박나 했더니, 어디 사극에서 본 걸 그대로 행동에 옮긴 모양이다. 조금만 더 분위기에 취했으면 ‘통촉하여주시옵소서!’까지 나올 뻔했다.
어처구니가 없다고 해야 할지, 그녀답다고 해야 할지. 어쨌든 결과가 좋으니 다행이었다.
‘그걸 힌트라고 할 수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노구덕이 무릴로가 남긴 전언을 되새기고 있을 때였다. 갑자기 막사의 문이 열리며 다급히 한 남자가 뛰어 들어왔다. 그는 유메르바인의 직속 전령을 맡고 있는 헌터였다.
“부사령관님! 큰일났습니다. 영내에서 싸움이…!”
“…싸움이라고요?”
유메르바인의 눈썹 끄트머리가 급격한 호선을 그리며 치솟았다. 갑자기 싸움이라니, 이게 웬 난리란 말인가.
한숨을 내쉰 그녀는 지팡이를 짚고 일어서며 물었다.
“안내하세요. 어디죠? 분쟁을 일으킨 사람들은요?”
“후미 막사 쪽입니다! 그게, 확실치는 않습니다만 아이리스와 피에스타에 소속된 헌터들 간의 싸움이라고….”
“뭐라고요?”
“아이리스?”
예상치 못한 소식을 접한 노구덕과 유메르바인은 무심결에 서로를 마주볼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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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아침 투척으로 월요일을 열어 보도록 하겠습니다!
소율이 이마에 흉이 지지 않아야 하는데 말이죠. 세희가 있으니 말끔히 낫겠죠?
월요병 걸리지 말고 산뜻한 시작하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