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unter Club RAW - chapter (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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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2# 군법회의
132# 군법회의
그날 저녁 불어 닥친 바람은 쉽게 잦아들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이미 아이리스의 안세희를 찾는 방송이 나갔던 터라, 그녀가 모종의 일에 휘말렸다는 사실은 숨길래야 숨길 수도 없었다. 게다가 이후, 사령부를 나선 안세희의 막사 앞에 사령부 직속의 헌터들이 번을 서는 것이 목격되면서 사람들의 궁금증은 커져만 갔다.
결정적인 것은 저녁 훈련이 끝난 뒤 공지된 군법회의의 개최 소식이었다. 그 뒤 출동한 영내 감찰단이 사건 내사를 이유로 진지를 이곳저곳 들쑤시고 다니면서, 안세희가 연루된 사건은 영내에서 모르는 이가 없는 큰 이슈로 발전했다.
“야, 진홍의 성녀가 꼬리를 쳐서 사람을 빼 가려고 했다던데?”
“그건 모르지. 내가 듣기론 부대 내에서 왕따였다는데.”
“그러고 보니 그런 소문을 들은 것 같기도 하고…….”
그날 밤은 유독 길었다. 밤이 깊은 동안에도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며 내일을 기다리는 헌터들을 쉽게 볼 수 있을 정도였다. 대부분은 고된 훈련만 반복되는 일상에 지쳐있던 차에, 마침 흥미진진한 얘깃거리가 떠올라 반기는 분위기였다.
일부 식견이 있는 사람들 중에선 이를 두고 서부를 무대로 한 파워게임이라고 말하는 이도 있었다. 표면적으로는 몇몇 헌터들이 연루된 작은 사건이지만, 실상 그 속사정을 들여다보면 신흥세력을 대표하는 아이리스, 전통명문을 대표하는 피에스타 간의 충돌이라는 해석이었다.
신흥강호와 전통명문을 대표하는 두 세력의 대립이라는 말은 터무니없는 비약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어찌 됐든 이번 사건이 어떻게 마무리되느냐에 따라, 한쪽은 이미지에 치명적인 타격을 받을 테니 아주 틀린 말이라 치부할 순 없었다.
그 동안에도 무심한 시간은 하염없이 흘러만 가, 어김없이 아침이 찾아왔다.
평소라면 아침 식사가 끝나고, 오전 훈련 준비로 시끌벅적한 소리가 한창이었을 주둔지 내는 기묘한 적막이 내려앉아 있었다. 외곽 경계와 야외 훈련이 있는 일부 부대를 제외하고, 전 병력이 중앙 연병장에 둥글게 원을 그리며 집합해 있었기 때문이다.
그 이유는 두말할 필요 없이 오전에 열리는 군법회의 때문이었다. 사안의 중대함, 그리고 연루된 클럽들의 위치를 감안했기 때문인지 이례적으로 크게 개최된 이번 군법회의는 전부 공개적으로 진행되었다.
직접 사건에 관계된 아이리스와 피에스타를 비롯해, 레전더리, 어울림, 진혼, 청색여단, 포레스티아, 엔드리스, 그믐달, 크로스게이트, 두억시니 등 서부연합군의 주력을 구성하는 쟁쟁한 클럽들의 오너들이 단상에 자리했다.
그리고 또 한 명, 저번 군법회의 때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던 폭군 무릴로도 버젓이 상석을 채운 채였다. 그 아래에는 회의의 주재자인 파멸의 현자 유메르바인이 음성 증폭으로 간략히 회의 개요를 역설하고 있었다.
“…저는 서부연합군의 부사령관으로서, 겨우 사흘 사이에 두 번의 군법회의가 열린 작금의 상황에 대해 심각한 회의감을 느끼고 있습니다. 이런 해이해진 군기로는 절대로 연합군 소기의 목적을 달성할 수 없습니다. 연합군이 결성된 목적이 무엇인지, 그리고 중요한 훈련 일정을 건너뛰며 전 병력을 소집한 의의가 무엇인지 상기해주시길. 우리 서부연합군에 있어, 불미스러운 일은 부디 이번이 마지막이길 진심으로 바랍니다.”
칠, 팔백 명에 달하는 인원이 운집해 있는데도 숨소리조차 들리지 않는 장내를 고요한 눈길로 쓸어본 유메르바인은 담담한 어조로 말을 이어나갔다.
“어제, 아이리스의 안세희 헌터에 대한 고발이 들어왔습니다. 안세희 헌터가 지위를 남용하여 피에스타의 헌터를 꾀어낸다는 제보로…….”
천천히 말문을 연 유메르바인은 대략적인 사건 개요와 고발자의 주장, 안세희의 변론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하면서, 동시에 단상 위 임시로 설치된 대형 스크린에 제출된 증거 영상을 공개했다.
안세희와 이태양이 나눈 대화… 아이리스로의 이적을 대가로, 같은 소속인 남일우와 그레이스의 약점을 찾아내겠다는 내용을 담은 증거영상이 공개되자, 그때까지 잠잠하던 분위기는 끓는 물처럼 급작스레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유메르바인이 암만 안세희의 변론을 늘어놓았어도, 직접 눈으로 보고 들은 영상의 임팩트를 이길 순 없다. 증거 영상의 공개는 긴가민가하던 장내의 분위기를 한순간에 한쪽으로 확 기울게 만들었다.
“이야, 저건 좀 아니지! 대우 좀 더 받자고 동료를 팔아넘겨? 저 새끼 누구야?”
“피에스타의 이태양이라는데… 저놈이 일부러 저렇게 유도해서 고발한 거 아니야?”
“나 참. 정말 안세희가…? 그렇게 안 봤는데……. 어쩐지 요새 소문이 좋지 못하더라마는… 다 이유가 있었군.”
“하… 세상에 믿을 사람이 없네요.”
사건 관계자인 안세희에게 빗발치던 비난은 이내 진로를 바꾸어,
“아이리스, 아이리스 하더니만… 이런 졸렬한 클럽이었어?”
“아니, 뒷수작을 부릴 거면 좀 들키지 않게 하든가. 나름대로 열심히 싸우자고 모였는데 저게 무슨 짓거리야? 황당해서 말이 안 나오네.”
그녀가 소속된 클럽인 아이리스를 겨냥하여 쏟아졌다. 사건 자체가 클럽 간 이적이라는 민감한 내용과 연루되어 있었던 만큼, 안세희의 소속 클럽인 아이리스가 비난을 피하지 못하는 건 당연한 귀결이었다.
이후에는 간밤에 있었던 내사의 결과발표가 이어졌다. 문제가 제기되었던 안세희의 제 7부대를 중심으로 한 사실관계조사에 관한 내용이었다.
조사결과, 그레이스와 몇몇 헌터들이 부대 내에서 무리를 이루어 행동했던 것은 사실로 밝혀졌다. 그러나 그들이 대장인 안세희를 고의적으로 따돌려 부대 내에서 고립시켰다는 안세희와 아이리스 측의 주장은 사실무근으로 결론이 났다. 직접적인 증거도 없었을뿐더러, 부대 내의 헌터들이 한 목소리로 그런 일은 없었다고 딱 잘라 부정했기 때문이다. 고발과 동시에 철저하게 입을 맞춰 놓은 결과였다.
조사 발표를 들은 아이리스 측의 헌터들은 하나 같이 어처구니없다는 반응이었다. 안세희의 주장을 철썩 같이 믿는 그들로선, 사실무근이라는 결과는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엉터리였다.
특히, 신소율은 옆의 도일, 이두식만 아니었다면 진즉에 단상 위로 뛰어 올라갔을 정도로 흥분해서는 거칠게 숨을 씩씩거렸다.
“사실무근? 그딴 게 어딨어! 그럼 세희가 거짓말을 했다는 거야?”
덕분에 씨근덕거리는 그녀를 말리는 두 남자만 고생이었다.
“아, 가만히 좀 있으라니까요. 무슨 여자가 이리 힘이 셉니까.”
“소율아, 아직 결과가 난 게 아니야. 좀 더 지켜봐라.”
“아저씨! 아저씨는 대체 왜 가만히만 있는 거야!”
“형님께서도 무슨 생각이 있으시겠지.”
단상 위의 노구덕이 크게 고함치는 신소율의 목소리를 듣지 못했을 리 없다. 그러나 작게 찌푸린 이마를 손으로 문지르고 있는 노구덕은 여태 그랬던 것처럼 무언가 골똘히 고민하는 것처럼 보일 뿐, 아직까지도 별다른 내색을 하지 않고 있었다.
한편, 장내의 기류가 점차 아이리스와 안세희의 잘못을 규탄하는 방향으로 흐르자, 바간을 비롯한 그쪽 라인의 오너들은 크게 득의양양한 얼굴이었다.
“이것 보시오. 내가 뭐랬소?”
“그러게 말입니다. 저것 좀 보라지요. 시끄럽게 떽떽거리기는. 근본 없는 클럽이라 그런지 예의도 배우지 못했나 봅니다.”
한 사람이 단상 아래에서 악을 써대는 신소율을 가리키자, 여기저기서 피식거리는 웃음이 터져나왔다. 그들은 이미 승리를 확정지은 것 같았다. 그런 이들에게 있어, 분을 참지 못한 신소율의 행태는 무대 위에서 춤추는 광대와 다를 게 없었다.
그동안, 단상 옆에 마련된 증인석에서는 피에스타 측에서 준비한 증인들이 차례차례 사건과 관련한 증언들을 쏟아내고 있었다.
“친분이 있었던 헌터들과 유독 친하게 지냈다는 건 인정합니다. 하지만 그건… 어느 부대에서나 있는 일이었어요. 만약 이게 죄가 된다고 한다면 달게 벌을 받도록 하겠습니다. 하지만 제가 주도해서 대장님을 따돌렸다니… 그건 말도 안 돼요.”
“그레이스 언니가 그럴 리 없어요. 클럽에서도 후배들을 얼마나 잘 챙겨주는 언닌데요. 아, 죄송합니다. 이건 상관없는 얘기였군요…. 네, 안세희 대장은 그냥 좀… 일반 부대원들이랑 가까이 지내길 싫어하는 것 같았어요. 의외로 권위주의적인 면이 있는 것 같더라고요. 식사도 늘 따로 했으니까요.”
“예전에 안세희 헌터가 남일우 헌터에게 의도적으로 접근했다는 소문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뭐, 아시다시피 남일우 헌터와 그레이스 헌터는 클럽 내에서 공인된 애인 사이고요. 그렇게 따지면 오히려 그레이스 헌터가 피해자 아닐까요?”
“음… 접근이라고 하긴 뭣하지만, 그녀가 박지현 헌터와 있었던 일을 대신 사과하겠다면서 은밀히 만남을 제의한 적은 있었습니다. 물론 저는 근신 중이었던지라 정중히 거절했지만요. 그렇다곤 해도 설마 저 말고 이태양 헌터와도 접촉했을 줄은…….”
피에스타의 그레이스와 남일우, 그리고 그 뒤에 잇따른 제 7부대 소속 헌터들의 증언들 중, 안세희의 편을 드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당연한 일이었다. 만약 여기서 그녀의 편을 들어줄 만큼 심지가 굳은 이가 있었다면, 안세희가 처음부터 무력하게 고립될 일도 없었을 테니까.
십여 명이 넘는 피에스타 측의 증인들이 증언을 마쳤다. 이태양은 상태가 좋지 않다는 핑계로 참석하지 출석에 응하지 않았다.
그즈음 연병장 내의 분위기는 험악해질 대로 험악해져, 단상 구석에 죄인처럼 꿇어 앉아 있는 안세희를 향한 살벌한 욕지거리가 주를 이루고 있었다.
깡!
어디선가 날아온 수통이 안세희의 주변에 둘러쳐져 잇는 보호막에 튕겨 날아가는 소리가 들렸다. 분위기에 휩쓸린 누군가가 생각 없이 던진 모양이었다.
“…하아.”
얼굴에 피로한 기색을 짙게 드리운 유메르바인은 한숨을 지으며 무릴로가 있는 쪽을 살폈다. 허나 명색이 사령관이라는 무릴로는 오히려 장내를 진정시키기는커녕, 흥미진진한 미소를 지으며 돌아가는 사태를 주시하고 있었다.
그러면 그렇지, 기대도 하지 않고 고개를 돌린 그녀는 다시 노구덕에게 의례적인 질문을 했다.
“…노구덕 위원, 아이리스 측이 준비한 증인이 있다면…….”
“없소.”
“…….”
어떻게든 적당한 선에서 상황을 마무리지으려던 유메르바인. 그녀는 누구도 알아주지 않는 노력을 하는 자신이 문득 바보처럼 느껴졌다.
“…그렇군요. 그럼….”
이제는 될 대로 돼라. 반쯤 포기한 그녀가 막 입을 열었을 때였다.
“잠깐. 그 전에 질문이 있소.”
“…질문이요?”
그녀의 말을 가로막은 이, 노구덕은 고개를 끄덕였다.
“만약 세희의 유죄가 확정되면, 그 처벌 수위는 어느 정도요?”
뜬금없는 질문에 유메르바인의 눈썹이 미미하게 꿈틀거렸다. 짧은 침묵을 깬 그녀는 지팡이 끝을 묘하게 흔들며 답했다.
“우선… 부대장직 지위 박탈에, 당연히 연합군 내에서도 퇴출이죠. 그리고, 군기강을 심각하게 해친 죄를 물어 출진 전까지 연병장 한 가운데에 묶어 놓을 생각이에요. 신성력을 봉한 채로요.”
“끼니조차 주지 않고 말인가?”
“네. 식사도, 물도, 화장실도 안 돼요. 그녀 정도의 능력자라면 일주일 정도는 굶어도 괜찮잖아요?”
“잔혹하군.”
“본보기예요. 그 이하라면 처벌이라 할 수 없죠. 그녀의 죄질은 그 정도로 심각해요. 물론, 그 죄가 사실이라는 전제하에서 말이지만요.”
“암, 당연하지. 명판결이군.”
“사지를 절단내지 않을 걸 다행으로 여겨야 하는 거 아닌가?”
노구덕은 유메르바인의 말을 옹호하는 바간과 그 무리들을 힐끔 쳐다본 뒤, 갑자기 무거운 몸을 일으키며 앞으로 나섰다. 유메르바인은 얼떨떨한 낯으로 그런 그를 바라봤다.
“노구덕 위원…?”
“좋은 얘기를 들었어. 그럼 증거를 제출하겠소.”
“네? 방금 증인은 없다고…….”
“못 들은 모양이군. 증인이 아니라, 증거요.”
어느새 원탁을 떠나 유메르바인의 바로 코앞가지 걸어온 그는 스산한 얼굴을 들이대며 덧붙였다.
“…이 오합지졸 연합을 개박살 낼 수도 있는 무시무시한 증거지.”
============================ 작품 후기 ============================
여러분의 추천과 코멘은 작가에게 큰 힘이 됩니다.
즐거운 저녁입니다.. 라고 하기엔 좀 늦었나요? 하하.
독자님들이 달아주신 코멘은 모두 눈여겨 읽어 보았습니다.
모두 일리가 있는 말씀이시고, 살이 되고 뼈가 되는 비판들입니다. 지금까지 제 리리플이나 후기를 보면 아시겠지만, 저는 독자님들이 해주시는 피드백을 정말 좋아하고, 반깁니다.
하지만 간혹 댓글들을 읽다보면 기본적인 예의의 선을 넘어가는 분들이 계십니다. 한 가지 바람이 있다면 기본적인 선 정도는 지켜 달라는 것 정도입니다.
저는 저나 작품에 대한 비평에 대해서는 절대 댓삭을 하지 않습니다. 제가 지금까지 댓삭을 한 건 1화에 올라와 있었던 스포일러 뿐이었습니다. 그것도 원래는 몰랐는데, 몇몇 분들의 요청으로 삭제를 하였고요..
모든 비판은 겸허히 감수하겠습니다.
딱 하나 사족을 덧붙이자면, 이 내용에 이만한 분량을 할애할 가치가 있느냐에 대한 변입니다.
가치는 있습니다. 왜냐면 이건 단순히 안세희만의 문제가 아니라, 작중에 언급되었듯이 아이리스의 향후 아이리스가 서부의 패권을 차지하기 위핸 중요한 복선이니까요. 제가 실토함으로서 별 의미는 없게 되었습니다만.. 특히 3부 시작을 위해서는 불가피한 이벤트였습니다.
갑자기 3부 시작하자마자 서부의 짱짱맨은 아이리스가 되었다… 라고 시작하면 그것 또한 설득력이 없을 테니까요. ㅎㅎ; 물론 그렇게 시작한다는 말은 아닙니다. 일단 이건 단순한 예시로 봐 주시면 될 것 같네요.
댓글 달아주신 모든 분들 감사합니다. 해주신 말씀들은 제게도, 제 작품에도 좋은 자양분이 될 것이라 생각합니다.
오늘도 좋은 하루 되셨길 바랍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