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unter Club RAW - chapter (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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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2# 군법회의
서부연합군의 총병력이 집결해 있는 연병장은 엄청난 충격의 도가니에 빠졌다. 그도 그럴 것이, 그림리퍼 타도를 부르짖으며 단결을 표방하던 수뇌부의 비리가 벌거숭이처럼 드러난 것이다. 그것도 가장 최악의 형태로.
고의로 타 클럽의 헌터를 치밀한 함정에 빠트렸다. 그리고 그 동기는 구역질이 날 만큼 불순했다. 그걸 말려야 할 상관은 오히려 그걸 빌미로 피해자인 헌터뿐 아니라 소속 클럽을 아래로 끌어내리기 위한 계략을 공모했고, 또 실천에 옮겼다.
막장도 이런 막장이 없었다. 이건 도저히 구제가 불가능한 수준이다. 다른 오너들이 그저 입만 쩍 벌리고 있는 바간의 곁에서 슬금슬금 멀어지고 있는 것만 봐도 알 수 있었다.
끝장이다. 추악한 맨 얼굴이 수면에 떠오른 이상, 서부의 명문으로 꼽히는 피에스타의 명예는 이제 끝장이 났다고 봐도 좋았다.
살얼음 같은 침묵이 깔려 있는 장내. 먼저 이 기묘한 정적을 깨트린 것은 서부사령관 무릴로의 뜬금없는 박수였다.
짝! 짝! 짝!
무성의하게 뚝뚝 끊으며 손뼉을 친 무릴로는 사신처럼 음산한 웃음을 짓고 있었다. 차가운 살의로 번들거리는 그의 눈은 한시라도 빨리 이 우스꽝스러운 연극의 끝을 보고 싶어 안달이 나 있는 듯했다.
“크크크… 재밌군, 재밌어. 세상에 이런 반전도 다 있군 그래. 뭐 하나, 부사령관? 계속 진행해야지.”
“…퍽이나 재미있으시겠네요.”
지금껏 방관만 하고 있던 사령관의 얄미운 태도에, 그녀답지 않게 날카로운 한마디로 응수한 유메르바인은 매섭게 고개를 돌렸다.
“바간 오너, 해명이 필요할 것 같은데요. 하실 말씀이 있으신지?”
“이, 이건… 터무니없는 음해요! 말도 안 되는 영상이야! 내가 뭣 때문에……!”
쿵!
바간의 되도 않는 변명은 시작부터 끊겨버리고 말았다. 힘껏 지팡이를 내리찍어, 바간의 말을 잘라버린 유메르바인의 얼굴에선 뼛속까지 얼려버릴 것 같은 북풍한설이 사납게 몰아치고 있었다. 평소의 유한 모습은 간데없고 꽤나 난폭한 모습이다.
“말이 되는지 안 되는지는 영상 속의 피에스타 오너께서 모두 설명해주신 것 같은데요. 그럼 이 영상들이 모두 조작되었다는 건가요? 변명을 하려면 제대로 하세요.”
“으, 으… 그, 그건…!”
영상조작은 그가 생각해도 무리수다. 유구무언, 할 말을 찾지 못한 바간은 한겨울에 땀을 뻘뻘 흘리며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그러나 간절히 도움을 바라는 그의 시선을 받아주는 사람은 어디에도 없었다.
같이 영상에 등장했던 어울림, 청색여단, 엔드리스의 오너들은 하나 같이 푸르죽죽하게 변한 시체 같은 꼴을 하고 있었고, 그 밖의 다른 사람들은 그가 똥 묻은 개라도 되는 것처럼 슬슬 그 주변에서 떨어지고 있었다.
“이, 이자들이…!”
뒤꽁무니를 내빼는 이들을 향해 원망스런 눈길을 보낸 바간은 부르르 떨리는 주먹을 말아 쥐며 필사적으로 항변했다.
“출처! 증거의 출처를 가져오시오! 저런 불법적인 영상을 증거로 인정할 수 있겠소? 사석에서 하는 말까지 죄다 감시된다면, 이 세상에 떳떳할 사람이 누가 있단 말이야!”
딴에는 맞는 말이다. 하지만, 먼저 증거로 제시했던 영상의 출처를 지금껏 밝히지 않았던 피에스타가 할 말은 아니었다.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이란 건가요? 옹졸하군요. 그 말씀은 영상의 내용이 전부 사실이라는 걸 인정하는 의미로 받아들이겠어요.”
“아니, 부사령관! 그게 아니라…!”
“피에스타 오너. 착각하시는 것 같은데, 이건 위원회 주관의 사법재판이 아니에요. 군사령관과 부사령관이 주관하는 군법회의죠. 증거를 인정하고 말고는 사령관에게 전권을 위임받은 제가 판단해요. 그리고 전 될 수 있으면 공정성 있는 재판을 지향한답니다. 피에스타의 증거를 인정해서 받아들였던 것처럼 말이죠.”
“……!”
털썩 주저앉은 바간의 입술이 힘없이 달싹였다. 망연히 고개를 내젓는 그의 시야에, 석상처럼 뻣뻣하게 굳어버린 남일우의 낯짝이 잡혔다.
‘저 망할 새끼 때문에……!’
뒤늦은 후회가 밀려왔다. 사촌인 남일우가 문형식 같은 놈과 함께 여기저기서 난봉질을 하고 다닌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지금까지 별 문제가 없어 그리 심각하게 여기지 않았다. 사실, 그조차도 열 명이 넘는 처첩을 거느리고 있지 않던가. 능력 있는 남녀가 여러 명의 배우자를 거느리는 걸 당연시하는 이 사회의 풍조상, 약간의 난봉꾼 기질은 애교라 할 수 있었다.
그런데… 바로 그 남일우의 난봉질이 수 대를 이어온 클럽을 망치는 원흉이 될 줄이야. 실상 남일우가 들고 온 건수를 좋다고 덥석 물은 것은 그였지만, 바간의 머릿속에선 자신의 잘못은 이미 싹 지워진지 오래였다.
‘일우야, 네가 저지른 일이니 마무리도 네가 지어라.’
결국 그가 마지막으로 선택한 것은 꼬리 자르기였다.
“여, 영상의 내용은 일부 인정하겠소. 하지만 이번 일의 자세한 내막은 전혀 몰랐소. 그걸 알아주시오.”
“주모자가 피에스타 오너가 아니란 건가요?”
“그렇소! 영상에서도 봤겠지만, 난 그저 아이리스의 평판을 조금 끌어내리고 싶었을 뿐이오. 진홍의 성녀가 우리 헌터에게 집적거린다는 얘기를 들었으니, 당연히 기분이 좋지 않았지. 그런데 마침 저 남일우란 녀석이 이번 건수를 이용해 아이리스에 복수할 수 있다고 살랑살랑 부추기니까 거기 넘어가서…! 이런 추잡한 음모가 얽혀있었다는 걸 알았다면 절대 가담하지 않았을 거요!”
그러자 이번엔 남일우의 낯짝이 새까맣게 타들어가는 것이 보였다. 왜 아니 그렇겠는가? 같이 일을 꾸미고 공조한 사촌이 자기 보고 독박을 쓰라는데.
“형님!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같이 일을 꾸미실 땐 언제고…!”
“이노옴! 그 주둥아리 닥치지 못해! 같이 일을 꾸몄다고? 마지막 영상은 뭐냐? 그것도 내게 말한 계획의 일부냐?”
“어… 그, 그게….”
뜨끔한 남일우는 어버버거리며 말을 더듬었다. 찔릴 수밖에 없었다. 마지막 영상, 그가 일대일로 안세희에게 연락을 넣어 협박하는 부분은 사전에 바간과 논의한 내용이 아니었으니까.
그도 잠시, 으스러져라 이를 악문 남일우는 번쩍 고개를 쳐들었다. 여기서 독박을 쓰고 무너진다면, 그의 인생은 정말로 끝장이었다.
“그것 말고는 전부 다 형님께 얘기하지 않았습니까! 오히려 그 뒤로 저기 오너들을 끌어들여서 자리를 만든게 누굽니까? 형님이잖습니까!”
“이놈이 그래도 거짓말을!”
“거짓말이라니요! 부사령관! 당장 저기 남 일처럼 구경만 하고 있는 오너들을 격리 심문 해보십쇼! 제 말이 사실이라는 걸 금방 알 수 있을 테니까요!”
“이 새끼가! 이젠 하다하다 못해 되는대로 막 지껄여대는구나! 어려서부터 제가 싸지른 온갖 똥을 다 닦아주며 키워줬더니, 은혜를 원수로 갚아? 엉?”
“씨팔! 은혜는 무슨! 일이 이 지경이 되었으니 나보고 독박쓰라는 거 아냐! 내가 혼자 죽을 줄 알아! 죽을 거면 다 같이 뒈져야지!”
회의 내내 찰떡처럼 척척 죽이 맞던 두 사람이 서로를 향해 죽일듯한 폭언을 퍼부어대는 꼴은 진정 가관이었다. 꼴값을 떨다 못해 서로에게 책임을 떠넘기느라, 자기들 스스로 지은 죄를 거의 다 실토하고 말았으니, 이건 따로 확인절차를 거칠 필요가 없을 정도였다.
“조용히 하세요.”
서로를 헐뜯으며 이리처럼 물어뜯던 두 사람의 언쟁은, 유메르바인의 엄숙한 한마디에 쏙 들어가고 말았다. 연신 바쁘게 눈알을 이리저리 굴려대는 꼬락서니가 여전히 늘어놓고 싶은 변명이 산더미처럼 많아 보였지만, 그런 잡설을 일일이 들어줄 시간은 없었다.
“더 들어볼 필요도 없을 것 같네요. 이 시간부로 사건에 연루된 피에스타, 청색여단, 어울림, 엔드리스의 오너들은 근신과 함께 곧장 내사에 들어가겠습니다. 처벌수위는 죄의 경중에 따라 정하겠어요. 그리 오래 걸리지는 않을 겁니다.”
“그럴 수가….”
유메르바인에 의해 지목된 오너들은 불만스런 기색을 감추지 못했으나, 대놓고 반발하진 못했다. 이미 더러운 면상들이 적나라하게 찍힌 증거가 만천하에 공개되었으니, 여기서는 한 발 물러서는 것이 옳았다.
“그리고 제 7부대에 대해서는 처음부터 다시 조사를 시작하겠어요. 연합사제단 휘하 7부대 인원들에 대해서는 전원 위증죄를 적용할 것이고, 사건의 주동자인 피에스타 헌터들에 대해서는 보다 강도 높은 처벌을 할 생각입니다. 그리고 주동자인 남일우, 그레이스 헌터는 연합군 내에서의 지위 박탈 및 최하계급 강등을 명합니다. 출진 전까지 연병장 말뚝에 묶여서 지은 죄를 반성토록 하세요. 끼니는 물론, 물 한 모금도 허용하지 않습니다.”
본래 안세희에게 돌아갈 처벌이 남일우, 그레이스에게 고스란히 돌아갔다. 시커멓게 표정이 죽어버린 두 남녀는 변명조차 하지 못하고 고개를 숙였다. 벌써 그들 주변은 시끌벅적한 육두문자와 비난으로 한 가득 채워진 상태였다.
“개 같은 연놈들! 할 짓이 있고 못 할 짓이 따로 있지!”
“피에스타 이거, 순 쓰레기 집단 아냐! 야이 개새끼들아!”
“7부대 새끼들도 다 똑같은 놈들이야! 니들은 정말 똥만도 못한 새끼들이다!”
연병장 내에 들불처럼 번진 분노는 금방이라도 자라처럼 목을 움츠린 피에스타 헌터들을 집어 삼킬 듯했다.
이번 일이 외부에 알려진다면, 피에스타의 평판은 밑바닥까지 추락하여 재기불능이 될 터. 사실상 이 많은 헌터들의 입단속을 하는 건 현실적으로 불가능이니, 피에스타의 이미지는 오늘부로 완전히 끝장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럼 여기서 회의를…….”
“부사령관, 이의 있소.”
그녀의 말을 끊고 나선 것은 대형폭탄을 터뜨려 이 사단을 만들어낸 장본인, 노구덕이었다.
유메르바인은 눈살을 찌푸렸다. 그녀는 우선 여기서 대충 일을 수습하고, 수뇌부만 남은 자리에서 차후의 일을 논의할 심산이었다. 군법회의가 난장판으로 변한 이상, 여기서 더 일을 키우는 건 연합 전체의 사기를 저하시킬 우려가 있었으니까.
노구덕 정도의 식견을 가진 자가 그걸 모를 리 없었다. 그런데도 뜬금없는 이의 제기라니. 유메르바인의 눈엔 그의 천연덕스런 얼굴이 한없이 얄밉게만 보였다.
“…이의라고 하셨나요?”
“그렇소.”
“말씀해 보세요. 우선 듣기는 하겠어요.”
자연히 곱지 않은 말투가 앞섰지만, 노구덕은 그녀의 불편한 심기는 그다지 아랑곳하지 않는 것 같았다.
노구덕이 천천히 단상 앞으로 나서자 시장통 같던 소음이 차차 잦아들었다. 그는 이번 사건의 가장 큰 피해자인 안세희가 속한 아이리스의 수장. 당사자 본인을 제외하면 누구보다 속이 부글부글 끓었을 인물이었다.
대중 앞에 선 노구덕은 느릿하게 손가락을 움직여, 단상 아래에서 죽상을 하고 있는 몇몇 이들을 가리켰다.
“저놈, 저년. 그리고 너, 너, 너.”
그가 족집게로 집듯이 찍은 인물들은 남일우, 그레이스를 비롯해 증인석에서 얼굴색 하나 바뀌지 않고 거짓부렁을 한 인물들이었다.
“저것들을 고작 연병장에 묶어두는 것으로 처벌을 끝낸다고? 말이 안 되잖소. 적어도 피해자인 세희가 받을 뻔한 형량보다는 커야지.”
“아직 내사가 남았어요. 그들의 처벌은 이후에도 조정이…….”
“다른 7부대 대원들은 몰라도, 저 연놈들은 죄가 확실하잖소? 아니면, 더 다른 영상도 보여드릴까?”
“…하고 싶은 말이 뭔가요?”
노구덕의 범 같은 눈동자가 형형한 빛을 뿌렸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 사람 하나를 매장시키려고 했으면, 응당 그 이상의 죗값을 치러야지. 그리고, 아직 결정적인 한 놈이 더 남았잖소.”
그의 시선이 홱 돌아가자, 그와 눈길을 마주친 바간의 몸뚱이가 부르르 경련을 일으켰다.
“이태양, 그놈 잡아오시오. 몸이 아파도 혓바닥은 놀릴 수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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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의 추천과 코멘은 작가에게 큰 힘이 됩니다~!
푹 쉬고, 푹 자고 일어났습니다. 공지 코멘 달아주신 분들 모두 감사드립니다.
약속대로 오늘은 연참을 할 예정입니다.
늦잠자서 첫편이 좀 늦긴 했지만요..
일단 올리고, 12시 전에 한편 더 올릴 수 있도록 열심히 자판을 두드려 보겠습니다!
좋은 주말 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