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unter Club RAW - chapter (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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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4# 작전개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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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우웁…. 후아, 왜 이렇게 목이 마르냐.”
박지현은 목구멍이 타들어가는 것 같은 갈증을 느꼈다. 아무리 억지로 침을 짜내도 바짝 마른 입 안은 그대로였다. 꼭 혓바늘이 돋아난 것 같은 느낌이라, 숨을 쉬기가 불편했다.
조용히 숨을 가다듬는 것은 그녀뿐만이 아니었다. 그녀 주위에 횡대로 늘어선 선봉대원들 전원은 전방 먼 곳을 응시하며 팽팽한 신경 끈을 졸라매는 중이었다.
횡진을 이룬 오십여 선봉대가 대기하고 있는 곳은 중도시 로렐라이의 앞마당. 그들이 기다리고 있는 것은 저 멀리서 스멀스멀 다가오고 있는 죽음의 사신이었다.
저 멀리서, 물결치는 검은 해일이 서서히 몰려오는 것이 보였다. 덩어리진 검은 기운이 먹구름처럼 널리 퍼져 그 주위를 새까만 얼룩으로 물들였다. 그림리퍼가 만들어낸 죽음의 대지는 앞에서 보이는 너비만 약 일천 미터가 넘었으니, 실상 그 범위는 로렐라이 평야 전체를 아우른다고 봐도 무방했다.
저 암흑의 땅은 산 자의 생기를 아귀처럼 먹어치우는, 움직이는 역병이었다. 그 땅에 어린 귀기(鬼氣)는 단지 멀리서 보는 것만으로도 소슬한 한기가 감돌 정도다.
출진 전에 익히 숙지한 사항이지만, 막상 그림리퍼의 위용을 이렇게 눈앞에서 보고나니 절로 위축이 되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으… 신성 주문을 여기저기 떡칠했는데도 불안하군.”
“그러게……. 얼마나 버틸 수 있을까?”
“길어야 십 분, 이십 분 이라고 하던데? 본대가 그 안에 진형을 갖추길 바랄 수밖에.”
다가오는 사신을 맞이한 대원들이 조곤조곤 이야기하는 소리가 들렸다. 창대를 힘껏 꼬나 쥔 박지현 역시 떨리는 눈동자로 밀려오는 어둠을 응시했다.
하늘과 땅을 가리지 않고 피어나는 검은 안개의 중심엔, 새하얀 대낫을 든 그림자가 자리하고 있다. 저것이 선봉대와 연합군의 타격 목표인 죽음의 사신, 그림리퍼였다.
부대의 선두에 서서, 다가오는 재앙을 똑바로 응시하고 있던 무릴로는 입가를 비죽이며 음산한 미소를 흘렸다.
“더 강해졌군. 너희 피라미들은 접근조차 하지 못하겠어.”
“…….”
몇몇 이들의 어깨가 눈에 띄게 움찔거렸다. 무릴로의 혼잣말을 들은 탓이다. 아니, 혼잣말이라 하기엔 지나치게 큰 목소리였으니, 실상 전부 들으라고 한 말이나 다름없었다.
‘쳇. 누가 피라미야?’
금세 심기가 불편해진 박지현은 슬며시 무릴로의 뒤통수를 노려보며 배에 힘을 주었다. 선봉대원으로서 이곳에 모인 이들은 하나 같이 각 클럽에서도 당당히 1군 자리를 꿰차고 있는 정예들이다. 그런 이들을 두고 피라미라니.
모두 기분이 언짢은 얼굴들이었지만, 아무도 대놓고 불만을 내비치진 못했다. 왜냐하면 그 말을 한 사람이 다른 누구도 아닌, 폭군 무릴로였으니까.
“여봐라, 피라미들. 귓구멍 열고 잘 들어라.”
대답을 바란 것이 아닌 듯, 무릴로는 빠르게 말을 이었다.
“반경 백 미터다. 그 안으로는 얼씬도 하지 마라. 시간을 끄는 것은 너희들이 아니라 나니까. 너희 피라미들은 그저 열심히 헤엄쳐서 놈의 주의를 분산시키면 되는 거다.”
대악마 마스테마와 동화한 무릴로는 절대로 죽지 않는 불사자(不死者)라 알려져 있다. 실제로 그는 그림리퍼와의 첫 조우에서 전신의 생기를 남김없이 흡취 당하고도 멀쩡히 살아나는 모습을 보여준 바 있었다.
이이제이(以夷制夷). 따지자면, 연합군이 준비한 작전은 괴물로 괴물을 맞상대하는 전법이라 할 수 있다. 그 사실을 잘 알고 있는 선봉대원들은 무릴로의 연이은 무시에도 입 하나 벙긋하지 못했다.
“오는군. 준비해라.”
“……?”
무릴로는 고개를 갸우뚱하는 헌터들을 쳐다보지 않은 채, 그대로 자세를 낮췄다. 마치 바로 달려 나가기라도 할 것처럼.
그리고, 그 예상은 어김없이 적중했다.
“간다.”
“엇!”
무어라 말할 틈도 없었다. 짧은 한마디를 남긴 무릴로는 뒤에 남은 선봉대는 신경도 쓰지 않고 앞으로 튀어나갔다. 일순 크게 일어난 먼지바람이 일대를 뒤덮을 정도로 무시무시한 속도였다.
“아니, 저게 무슨…!”
“끙! 정말 제멋대로 구는군!”
순식간에 검은 점으로 화한 무릴로는 멍하니 쳐다보고 있던 헌터들은 허겁지겁 그 뒤를 따랐다. 부대원들을 일일이 챙겨주는 자상한 지휘관을 바란 건 아니었지만, 이건 너무하지 않은가.
“어휴! 저런 인간이 무슨 사령관이야! 가자! 이럇!”
작게 투덜거린 박지현 또한 급히 팬텀스티드를 소환하여 앞서 가는 헌터들의 뒤를 따랐다. 다행하게도, 선봉대에는 이럴 때를 대비해 다섯 명의 조장들이 배치된 상태였다. 즉, 10명씩 5개 조인 형태다.
박지현이 속한 곳은 선봉대라는 창의 머리. 기동력과 돌파력이 뛰어난 헌터들이 주를 이룬 제 1조였다. 말하자면, 창두(槍頭).
“선두의 움직임을 놓치지 마라! 종진(縱陣)을 유지하면서 놈의 주위를 한 바퀴 돈다!”
우렁찬 고함을 발하며 헌터들을 독려하는 이는 눈부시도록 새하얀 은빛의 갑주를 걸친 중년 기사였다. 그는 선봉대 제 1조 조장이자, ‘블루 드라군(Blue dragoon)’이라는 별명으로 유명한 헌터 심준호로, 용마(龍馬)라 불리는 페가수스를 파트너로 둔 청색여단의 인물이었다.
심준호의 지시를 받은 헌터들은 제 1조를 필두로 길게 진을 형성하면서 검은 대지를 향해 뛰어들었다.
사아아아아아…….
‘젠장, 이건 또 무슨 소리야?’
동료들과 함께 내달려, 순식간에 죽음의 땅으로 진입한 박지현. 그녀는 거짓말처럼 뒤바뀐 주위의 풍광에 덜컹 가슴이 내려앉는 것 같았다.
밖에서 봤을 때에는 그저 진한 먹구름처럼 보였는데, 막상 안에 들어오니 그게 아니었다.
사방은 온통 시커먼 암흑에 잠겨 방향을 분간하기 어려운데다, 지금 딛고 있는 이 땅이 조금 전의 초원인지, 아니면 질퍽한 진창인지조차 구별하기 힘들었다. 사방이 정전된 것처럼 검은색 일색이라, 마치 데모나의 주특기 중 하나인 베일 오브 다크니스(Veil of darkness) 속에 갇혀 있는 것 같았다.
…그리고 아까부터 귀에 거슬리는 이 소리. 어찌 들으면 스산한 바람 소리 같기도 하고, 달리 들으면 슬픔에 잠긴 여인의 호곡성(號哭聲) 같기도 한 기이한 소성이 자꾸만 신경을 어지럽혔다.
“엉뚱한 데 신경 쓰지 마라! 내게 집중해! 긴장을 놓는 순간 놈의 먹이가 된다!”
“예엡!”
심준호의 벼락 같은 호통에 자기도 모르게 목청껏 대답한 박지현은 본능적으로 그가 있는 곳을 향해 말을 몰았다. 이 어두컴컴한 공간에서 유일무이하게 순백의 무장을 갖춘 심준호의 모습은 어디서나 눈에 잘 들어오는 이정표나 다름없었다.
박지현을 포함한 조원들이 심준호가 있는 곳으로 말머리를 재촉하는 그 순간이었다.
샤아아아아!
줄곧 신경을 거슬리게 했던 호곡성이 더욱 진해지며, 조원들을 둘러싼 검은 공간이 크게 일렁였다. 꼭 깊은 먹물 속에서 무언가가 뛰쳐나오려는 듯한 모습이었다.
동시에, 박지현의 후미 쪽에서 누군가가 질겁하여 외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조심해!”
“우우웃!”
반사적으로 뒤를 돌아본 박지현은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 어둠 속에서 뻗어 나온 길쭉한 덩어리가 맹렬한 속도로 조원들의 뒤를 쫓고 있었던 것이다. 새까만 암흑 한가운데서 요사스럽게 미끄러지며 쫓아오는 그 ‘무언가’의 모습은 철석간장을 자랑하는 박지현의 등골마저 서늘하게 만들었다.
거대한 아가리를 찢어지도록 벌린 왕구렁이.
그 순간, 어둠 속에서 징그럽게 물결치는 놈의 윤곽을 마주 대한 박지현의 머릿속에 떠오른 이미지였다.
샤아아아아–!
“괴물이다!”
“뱀, 뱀이야!”
“요란 떨 것 없다! 신성 주문 때문에 생기를 흡취하기 어려우니, 괴물을 내보내 직접 집어삼키려는 속셈이겠지! 뻔한 의도지 않은가!”
잠시 페가수스의 고삐를 멈춰 세운 심준호는 별안간 허공에 대고 크게 손바닥을 펼쳤다. 그러자 허공에서 생겨난 무수한 빛의 입자가 자석에 빨리듯 모여 들며 순식간에 거대한 랜스의 형상을 이루었다.
“먹어라! 허업!”
눈 깜짝할 사이에 길쭉한 빛의 창을 소환한 심준호는 힘찬 기합성을 내지르며 후미로 덮쳐들고 있는 괴물을 향해 창을 내던졌다. 이윽고, 그의 손을 떠나 무시무시한 속도로 날아든 빛의 창은 괴물의 미간 한복판에 정확히 명중하며 눈이 멀어버릴 것 같은 큰 폭발을 일으켰다.
콰아아앙!
-시아아아악! 시아아!
과연, 신성력이 한가득 깃든 주문이 효과가 있었던 것일까. 어둠의 괴물은 마치 살아있는 생명체처럼 발버둥 치며, 얼핏 듣기에도 괴로운 듯한 신음을 냈다.
“뭘 멍하니 있는 건가! 어서 움직여!”
“……!”
심준호의 호통에 퍼뜩 정신을 차린 조원들은 서둘러 괴물로부터 멀리 떨어지기 시작했다.
한편, 일찌감치 심준호의 뒤로 바짝 따라붙어 있던 박지현은 조장다운 위엄을 내보인 심준호의 활약에 감탄을 금치 못했다.
‘대단해. 역시 세상은 넓구나.’
예상치 못한 변수의 연속에도 침착함을 잃지 않고 부하들을 독려하는 면모, 그리고 별다른 준비 영창도 없이 강력한 위력의 신성 주문을 사용하는 임기응변… 모두 그녀가 가지고 있지 못한 장점들이다.
‘훈련 때도 대단한 실력자라고는 생각했지만… 역시 다르네. 그냥 폼만 잡고 있는 아저씨가 아니었어.’
밑바닥에 살짝 깔려 있던 자만심이 봄철 눈 녹듯 사그라들었다.
심준호뿐 아니다. 서부연합군엔 그녀 이상의 실력자들이 강바닥의 자갈들처럼 즐비했다. 당장 여기 선봉대만 하더라도, 각 조의 조장들은 모두 그녀가 범접할 수 없는 괴물들이었다. 아니, 조금 전까지는 그래도 어떻게 비벼볼 만하다고 생각했지만, 실제로 뚜껑을 열어보니 그런 생각이 싹 사라졌다.
기성 강자들이 둘러치고 있는 장벽은, 아직 그녀가 넘보기엔 꽤나 높은 허들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넘지 못할 벽도 아냐. 두고 봐. 조만간 몇 년 이내에……. 어!’
자신만만하게 결심을 다지던 박지현은, 앞서 가는 심준호의 어깨 너머에서 무언가를 발견하고는 외마디 비명과도 같은 소리를 내질렀다.
“대장-! 앞에!”
심준호의 앞에 나타난 것은 또 다른 구렁이였다. 시커먼 아가리를 흉측하게 벌린 그것은 거대한 덩치에도 불구하고 소리 없이 바닥을 미끄러지며 심준호의 정면을 덮쳐왔다.
“알고 있다!”
하지만, 백전노장인 심준호가 놈의 기습을 눈치 채지 못할 리 없었다. 이미 박지현보다 한 발 앞서 놈의 기척을 감지하고 있었던 그는, 랜스를 크게 휘둘러 강대한 신성력의 파동을 발산했다.
-샤악! 스아아아…!
놈이 주춤하는 사이, 심준호는 마치 자동차가 드리프트를 하는 것처럼 급격히 방향을 틀어 정면을 막아선 놈의 옆을 간신히 빗겨지나갔다.
그 탓에, 그의 뒤꽁무니를 바짝 쫓아가던 박지현도 허겁지겁 고삐를 틀어쥘 수밖에 없었다. 이대로 정면으로 돌진하다간 크게 벌어진 놈의 아가리에 그대로 골인을 하게 될 판이었으니.
“큭! 으랴라아아아!”
관성을 무시하고 무리하게 방향을 틀었기 때문인지, 엉덩이와 팔뚝에 상당한 반동이 전해졌다. 만약 그녀의 팬텀스티드가 평범한 말이었다면 틀림없이 근육에 무리가 갔을 정도로 무리한 턴이었다.
박지현까지는 어찌어찌 통과했다. 하지만, 그 다음이 문제였다. 벌써 정신을 차린 괴물이 시커먼 혀를 날름거리며 다음 조원을 향해 달려들었던 것이다.
“우아아악!”
불행히도 세 번째 조원이 타고 있던 말은 평범한 군마였다. 혈통 좋고 뛰어난 말이긴 해도, 페가수스나 팬텀스티드처럼 무지막지한 드리프트를 선보일 순 없었다.
다행히 놈에게 잡아먹힌 것은 사람이 아니라 말이었다. 하지만, 낙마한 사람이 부대의 뒤를 따를 순 없는 노릇.
다급해진 박지현은 심준호를 향해 크게 부르짖었다. 구렁이가 말을 잡아먹느라 여념이 없는 지금, 말머리를 돌린다면 사람은 살릴 수 있을지도 몰랐다.
“대장!”
“어쩔 수 없다! 지금 멈추게 되면 뒤에서 따라오는 놈에게 잡히고 만다는 걸 왜 모르나! 앞뒤로 포위당해 전멸하고 싶은 건가!”
“……!”
박지현은 이를 악물었다. 뒤에서 버리지 말라는 간절한 외침이 들려오고 있었지만, 그녀의 뒤를 따르는 조원들은 애써 그를 외면하며 말에 박차를 가했다.
“이봐! 어, 어딜 가는 거야! 살려줘! 날 버리고 가지 말란 말이다–!”
점점 아련하게 멀어지는 절규가 그녀의 기분을 더없이 무겁게 만들었다. 힘주어 어금니를 깨문 박지현은 음울한 앙금을 떨치듯, 시퍼렇게 치뜬 눈으로 오로지 정면만을 주시했다.
전투는, 겨우 이제 시작일 뿐이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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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의 추천과 코멘은 작가에게 큰 힘이 됩니다.
뜻하지 않은 평일 휴재 때문에 너무 죄송스럽습니다 ㅠㅠ
지현이 기분도 꿀꿀한데, 일이 마무리되지 않은 제 기분도 꿀꿀하네요..
그래도 오늘은 어떻게든 연참을 할 수 있도록 노력해 보겠습니다..
좋은 하루 되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