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unter Club RAW - chapter (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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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6# 죽음의 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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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우우웅!
육중한 팔치온(Falchion)이 대기를 가르고 파고들자, 박지현은 급히 창대를 머리 위로 들어 가드했다.
쾅!
“우욱!”
절로 앓는 소리가 흘러나왔다. 손목에 가해진 엄청난 힘을 이기지 못하고 순간 창대를 놓칠 뻔한 박지현은 급히 자세를 바로잡았다.
그녀의 상대는 고풍스러운 흑색의 갑주를 걸친 기사였다. 전형적인 인간의 모습이지만, 그 키와 덩치는 오우거의 그것과 맞먹는다. 아름드리나무보다 더 두꺼운 저 팔뚝이 발휘하는 파괴력은 일격일격이 성문을 박살내는 공성추와 비견될 정도. 어지간한 헌터들을 웃도는 근력 재능을 가지고 있는 박지현이 밀리는 이유도 다른 데 있는 게 아니었다.
“…정말 장난 아니네. 이거.”
“이봐, 선봉대! 괜찮아? 혼자서는 무리라니까!”
“그러니까 내 이름은 박지현이라고 몇 번이나 말 했는데….”
씁쓸히 중얼거린 박지현은 놈의 팔치온이 재차 높이 쳐들리자, 낮은 한숨을 내쉬며 뒤로 물러났다. 좀 전의 여파가 아직까지도 손목을 얼얼하게 만들고 있는데, 이런 상태로 두 번째 공격까지 맞받는 건 어불성설. 솔직히 무리였다.
과연 상급 언데드 중 단일 무력으로는 최강을 다툰다는 데스나이트(Death knight). 그 명성이 허명이 아니었다.
“저런 괴물을 졸병으로 부릴 정도면, 그림리퍼인지 뭐시긴지는 얼마나 강하단 거야?”
“선봉대! 혼자 떠들지만 말고 합공해!”
“아씨! 내 이름은 박지현이라고요! 선봉대가 아니라고!”
앙칼지게 쏘아붙인 박지현은 훌쩍 디딤발을 딛고 뛰어올라, 삽시간에 놈의 면전을 향해 짓쳐들었다. 놈이 양 옆에서 전사단의 협공을 받느라 정신이 없는 사이, 속 빈 깡통처럼 보이는 투구 안쪽을 단숨에 꿰뚫어버리려는 속셈이었다.
아무리 괴물이라도 머리통이 날아가면 살 수 없으리라. 그게 박지현의 생각이었다.
한 줄기 섬광으로 화한 창두가 시커먼 투구 속을 파고 들려는 찰나, 아무것도 보이지 않아 공허해 보이는 투구 안에서 시뻘건 흉광이 뿜어졌다.
봉사가 눈을 뜬 것처럼 번뜩이는 한 쌍의 혈광(血光). 그 사이한 눈알과 시선을 마주친 박지현의 가슴에 서늘한 냉골이 자리 잡은 순간, 철탑 같은 놈의 전신에서 대량의 투기가 발산되었다.
“우왁!”
“피해!”
깡!
박지현의 창두는 암흑 속에서 빗발친 투기를 관통하지 못했다. 허망하게 튕겨 나온 창두에 전해진 반탄력은 박지현의 균형을 순식간에 무너뜨렸다. 디딜 곳 없는 허공에서 자세가 무너진 박지현은 눈을 부릅뜨고 놈의 다음 공격에 대비했다. 교활한 데스나이트가 이 기회를 놓칠 리 없었으니까.
아니나 다를까, 전신에서 강한 압력을 방출해 귀찮게 들러붙은 헌터들을 떨쳐낸 데스나이트의 팔치온이 중력을 무시한 채 위로 치솟았다. 허공에서 중심이 무너진 박지현을 단숨에 양단해 버릴 듯 무시무시한 속도였다.
예상을 빗나가지 않는 데스나이트의 움직임을 본 박지현의 눈에 파르스름한 독기가 차올랐다. 왠지 모르게 놈이 자신을 만만하게 보고 있다는 생각이 들자 자존심이 상한 것이다.
“망할 새끼. 내가 그렇게 호락호락해 보였냐! 복순아, 잠깐만 나와!”
중력에 의지해야만 하는 허공. 달리 피할 곳도 없어 저 무식한 일격을 고스란히 맞받아야 하는 절망적인 상황이지만, ‘팬텀랜서’인 박지현에게는 예외였다.
그녀에게는 영혼의 파트너인 복순이가 있었으니까.
히히힝!
텅 빈 허공에 뜬금없이 커다란 말안장이 나타났다. 박지현은 애마 복순이의 말안장을 디딤돌 삼아 놈의 머리 위로 재차 크게 도약했다. 그녀를 노린 팔치온이 애꿎은 말안장을 가르고 지나간 것과 동시였다.
공격이 제대로 빗나갔으니, 남은 것은 응분의 카운터 어택이다. 무방비인 놈의 어깨 위로 안착한 박지현의 창대가 거센 나선을 그리며 회전했다. 그녀가 스퀘어에서 가장 먼저 배운 창술, 스핀 스피어(Spin spear)였다.
“뒈져! 이 새끼야!”
맹렬한 회전을 일으키는 창두가 데스나이트의 투기를 찢어발기며, 어둠이 도사리는 투구 속으로 말려들어갔다.
꽈앙!
그리고 이어진 거센 폭발. 불의의 일격을 당한 데스나이트는 금방이라도 제자리에 주저앉을 듯, 거대한 몸을 비틀거렸다.
이윽고, 위태롭게 흔들리던 무릎 한쪽이 바닥에 처박히면서, 형편없이 우그러진 투구가 목에서 툭 떨어졌다.
“주, 죽은 건가?”
“박지현 헌터! 나이스!”
박지현의 원맨쇼를 멍하니 보고 있던 헌터들은 무인지경으로 날뛰던 데스나이트가 쓰러지자 그제야 환호성을 내질렀다. 그때까지도 목을 잃어버린 어깨에 매달려 있던 박지현은 저 아래에서 엄지손가락을 들어 보이는 헌터들의 태도에 고소를 머금을 수밖에 없었다.
“어휴, 한 건 하니까 이름 불러주는… 우왓?”
혼잣말을 중얼거리던 박지현은 반사적으로 힘껏 몸을 튕겨 데스나이트에게서 떨어졌다. 그리고 불과 몇 초도 지나지 않아, 그녀가 앉아 있던 어깨를 우악스런 손길이 강하게 쓸어내리는 것이 보였다.
“이놈, 아직 살아 있잖아!”
“제기랄! 어떻게 된 거지?”
한순간 승리에 취해 있던 헌터들은 다시 부활한 데스나이트의 위용에 크게 당황한 얼굴들이었다. 보통 데스나이트는 머리가 약점. 투구를 부수면 다시 움직이지 못하는 게 정석이다. 그런데, 이 개체는 뭔가가 이상했다.
박지현은 머리가 없는데도 멀쩡하게 몸을 일으키고 있는 데스나이트를 보며 헛웃음을 지었다. 어째 머리만 안 들고 있다 뿐이지, 듀라한과 다를 바 없지 않은가.
“…머리가 날아가도 일어난다면… 아주 가루로 만들어야 된다는 거네?”
“가루로 만들 것 까지는 없고, 사지불구 정도면 된다.”
“엥?”
굉장히 낯익은 목소리에 귀를 쫑긋거린 박지현이 휙 뒤를 돌아본 그때, 거무스름한 질풍이 그녀의 옆자리를 빠르게 스치고 지나갔다.
박지현은 세차게 휘날린 머리카락이 후두둑 뺨따귀를 때리는 것도 인지하지 못한 채 멍하니 입을 벌렸다. 아니, 지금쯤 한가하게 사령부에 앉아 쉬고 있을 사람이 왜 여기서 튀어나온단 말인가.
“…오너?”
말할 것도 없이, 그녀를 스쳐 지나간 그림자는 노구덕이었다.
쿵!
겨우 몸을 일으키나 싶던 데스나이트의 동체가 힘없이 바닥에 처박혔다. 눈 깜짝할 사이에 그 다리 사이로 파고든 노구덕이 놈의 정강이를 힘껏 걷어찼기 때문이다. 볼썽사납게 앞으로 넘어진 데스나이트는 수영하듯 허우적거리며 일어나려고 애썼지만, 노구덕은 이미 멀쩡한 다른 쪽의 다리를 뜯어내고 있는 중이었다.
깡! 필사적으로 뻗어오는 놈의 팔치온을 튕겨낸 노구덕은 우두커니 서서 보고만 있는 헌터들에게 불 같은 호령을 내렸다.
“뭐하나! 전장에 구경하러 온 건가! 놈에게서 팔을 떼어내!”
“아, 알겠습니다!”
“예엣!”
저번 군법회의에서의 깽판을 통해 일약 스타로 도약한 노구덕이다. 여기 있는 헌터들 중 그의 얼굴을 모르는 사람은 없었다. 왜 저 사람이 여기에 나타났나? 라는 의문을 가질 새도 없이, 그의 불호령에 번쩍 정신이 든 헌터들은 분연히 그의 지시를 따라 움직였다.
암만 데스나이트라고 할지라도 두 다리가 떨어져 엉금엉금 기는 와중에 열이 넘는 정예 헌터들의 합공을 견딜 수 있을 리 없다. 불쌍한 데스나이트는 금세 다리가 다 떨어져 나간 메뚜기 신세가 되어 그 육중한 몸뚱이만 덩그러니 남게 되었다.
박지현은 오체분시가 되어 간헐적으로 몸을 꿈틀거리는 데스나이트를 멍하니 쳐다보다가, 그 위에서 탁탁 손을 털며 내려오는 노구덕을 보고는 잽싸게 그에게 뛰어갔다.
“오너! 여긴 왜 왔어요?”
“너희들 걱정 돼서.”
“나 참, 우리가 앱니까?”
“그래서, 불만이냐? 방금 전에도 어벙한 실수나 하고 말이다.”
“윽! 그, 그게… 불만이라기보다는…. 아니, 모가지까지 쳤는데 일어날 줄 내가 어떻게 알겠어요?”
노구덕은 어설프게 항변하는 박지현을 힐끔 보며 혀를 찼다.
“쯔쯔. 위에서 내려온 지침도 듣지 못한 모양이군.”
“노구덕 위원님. 지침이라니…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이번에 그에게 물음을 던진 것은 나이가 좀 있어 보이는 중년의 전사였다. 그 말고도 여기 모여 있는 헌터들 모두가 의아한 얼굴들이다. 자세히 보니 이들 중 대장이나 조장급인 것 같은 이들이 보이지 않았다.
“여기 조장은 누구요?”
“…조장은…….”
“오너. 여기 조장은 셰이드한테 당했어요. 갑자기 배후에서 기습을 당해서 손 쓸 도리가 없었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구원군으로 제가 온 거고요.”
중년 사내의 어두운 얼굴, 그리고 박지현의 부연 설명을 들은 노구덕은 고개를 끄덕였다. 선봉대로 출진해 잠깐 숨을 돌리고 있을 터인 박지현이 왜 후방 수비대 틈바구니에 끼어 있나 했더니, 그런 속사정이 숨겨져 있을 줄이야.
“이곳 영역에 있는 언데드들은 죽지 않는다. 기존에 알려져 있는 약점이나 공략법이 전혀 소용없단 뜻이지.”
“그럴 수가….”
“전방 쪽에서는 이미 상당한 피해를 입었다. 지현이 너처럼, 죽은 줄 알았던 마물들에게 당한 탓이지. 그래서 가급적이면 죽이기보다는 전투불능으로 만들라는 지침이 내려왔다. 아예 소멸시키면 다시 부활하지만, 저렇게 애매한 상태로 만들어 두면 잉여가 될 테니까.”
노구덕이 들썩이는 데스나이트의 동체를 가리키자, 사람들은 그제야 앞서 그의 행동을 이해한 듯했다.
“작전이 제압 위주로 바뀌었다면… 공격대의 진격도 더뎌졌겠군요.”
말살과 제압은 그 난이도에서 현격한 차이를 보인다. 전자는 그저 죽이고 없애면 그만이지만, 후자는 날뛰는 마물의 공세를 버텨내면서 전투불능으로 만들어야 하니, 까다로울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개전 초처럼 화끈한 화력지원도 기대할 수 없는 상황이다. 일방적으로 몰아붙이던 처음과는 달리, 강력한 언데드들이 곳곳에서 출몰하면서 전황은 거의 난전의 형태를 띠고 있었다. 최소한의 대열은 유지하고 있지만, 방금 전 데스나이트처럼 대형, 혹은 준대형의 언데드가 난입한다면 필연적으로 진이 무너질 수밖에 없었다.
때문에 현재 마법사단의 화력 지원은 언데드 군단의 외곽과 그림리퍼가 있을 것이라 예측되는 어둠의 중심부에 집중되고 있었다.
언데드 군단… 아니, 죽여도 죽여도 죽지 않는 불사의 군단이 공격대의 앞을 가로막고 있다면, 그들을 넘어가야하는 공격대의 날이 무뎌지는 것 또한 필연적.
작전에 중요한 차질이 생겼으나, 노구덕은 그리 걱정하는 기색이 아니었다.
“그건 걱정하지 않아도 되네. 저쪽이 불사의 군단을 내세웠다면, 이쪽에서도 그에 준하는 카드를 꺼낸 참이니까.”
“예?”
“일인군단 말이야. 저기 뒤를 보게.”
의미를 알 수 없는 소리에 고개를 갸우뚱하던 이들의 시선이 노구덕의 손가락 끝을 따라 이동하더니, 이내 그 의미를 알겠다는 듯, 작은 탄성이 터져 나왔다.
“파멸의 현자!”
로렐라이 평야의 위쪽, 전장이 확 트이게 내려다보이는 중천(中天)에 내걸려 있는 것은 눈부신 태양이 아니라, 그에 버금가는 화사한 미모를 자랑하는 여인이었다.
남청색의 배틀로브를 펄럭이며 하늘 한가운데 두둥실 떠 있는 여인의 이름은 파멸의 현자 유메르바인. 일인군단이라 불리는 십존의 일좌였다.
이윽고, 어색함 없이 허공을 짚고 있던 그녀의 지팡이 끝이 하늘을 찌를 듯 치켜 올라가며, 무르익은 그 입술에서 낭랑하고도 단호한 음성이 흘러나왔다.
“…아포칼립스(Apocalyp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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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의 추천과 코멘은 작가에게 큰 힘이 됩니다!
안녕하세요! 즐거운 주말 보내셨나요?
저는 시골집에서 자고, 오늘 오후에 올라왔습니다. 일이 그럭저럭 마무리 되어서 몸은 피곤하지만 마음은 상쾌하네요.
다음화는 시간과 분량이 되는 대로 새벽~오전 중에 올리도록 하고, 빠르게 정상적인 연재주기로 되돌아가도록 하겠습니다.
항상 감사합니다!
즐거운 저녁 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