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unter Club RAW - chapter (5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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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0# 마녀의 외출(번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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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린과는 딕툼에서 헤어졌다. 처음부터 비공식적인 만남이었기 때문에 서로 오래 마주 보고 있을 처지는 아니었다. 정치 얘기를 하고 싶진 않지만, 동부의 인물이 서부에서 목격되는 건 그리 좋은 그림은 아니니까.
그렇게 오린을 떠나보내고 칼립스에 복귀했을 때, 나는 생각지도 못한 소식을 접했다.
“…추억 여행? 누구랑?”
“네. 작은 어머니. 대부님과 큰어머님, 그리고 이모가 따라갔습니다. 가희 언니, 아란이와 송경이도 함께요.”
예상대로 신소율은 제외다. 최근 그 녀석은 새롭게 얻은 힘을 자기 것으로 만들겠다고 용을 쓰고 있었으니. 지금쯤 어디 훈련장에라도 박혀 있을 거다.
“갑자기 왜?”
“아무래도 요즘 대부님께서 많이 우울해 하셨으니까요. 대모님께서 기분 전환으로 아이디어를 내신 것 같습니다.”
그래, 요새 구더기가 죽상이었던 건 사실이다. 그러니까… 북부 지구에서 대규모로 열린 북왕의 장례에 다녀오고 난 이후부터였던 것 같다. 아이들하고 있을 때에는 티를 내지 않았지만, 혼자 있을 때나 집무실에 있을 땐 눈에 띄게 어두운 기색이었다.
단지 북왕의 전사 때문이라곤 생각하지 않는다. 원래부터 잡생각이 많은 인간이니, 또 혼자서 말 못할 고민으로 끙끙대고 있는 거겠지. 그러고 보니 얼마 전에 그 인간이 의미심장한 질문을 했던 게 기억난다.
‘데모나. 나 말인데… 좀 변한 것 같냐? 성격적으로. 아니면 인간적으로라든가?’
‘갑자기 웬 헛소리지?’
‘아니… 뭐, 그냥. 궁금해서.’
‘넌 항상 똑같아. 성욕을 주체 못하는 변태에, 폭력적이고 우둔한 구더기 그 자체야. 더 말해 줄까?’
‘흐흐흐… 됐다. 네게서 들으니까 안심이 되는군.’
…으레 때가 되면 하는 헛소리라고 치부했었는데, 역시 뭔가를 말하고 싶었던 걸까?
“대부님께선… 최근 고민이 많아 보였습니다. 걱정이 될 정도로요.”
“…딕툼에만 박혀 있는 네가 그걸 어떻게 알지?”
“최근 클럽 일로 몇 번 뵙기도 했으니까요. 자주 뵙지 못하는 제가 알 정도면, 그만큼 심각하다는 뜻 아닐까요?”
요사스러운 붉은 빛이 스민 눈동자와 거추장스럽게 큰 귀가 시신경을 자극했다. 정나미 떨어지는 외모는 물론이고, 한마디도 지지 않는 게 제 이모랑 똑같다.
이 꼬마, 고작해야 열 살 주제에 숱한 가식으로 본모습을 숨기고 있다. 특히 기분이 나쁜 건, 이 꼬마가 풍기는 배타적인 분위기가 비슷한 나이 대의 나와 닮았다는 거다. 거울을 보는 느낌이라고 해야 할까… 아무튼, 마음에 들지 않는다. 그래, 그렇게 묘하게 사람의 기분을 거슬리는 태도가 말이지.
지금만 해도 그렇다. 예의는 예의대로 차리면서, 말 속에는 힐난이 담겨 있다. 가까이 있으면서 왜 구더기의 상태를 방관했느냐는 투다. 하… 머리에 피도 마르지 않은 애송이가 시어머니라도 된 것처럼 굴고 있으니, 기가 찰 수밖에.
“그래서 구더기가 어딜 갔다는 거야?”
“…크래들타운으로 가셨다고 들었습니다.”
구더기라는 단어를 쓰자 꼬맹이가 또 떨떠름한 반응을 보인다. 웃기지도 않네. 그래도 대부라고, 아주 효녀가 따로 없어.
“그래, 어딜 갔나 했더니… 크래들타운이란 말이지.”
“작은 어머니, 가실 생각이십니까?”
“당연하잖아. 내 아이가 거기 있는데.”
“외람되지만 저도… 저도 같이 동행하고 싶습니다.”
이건 또 무슨 소리일까. 나는 일부러 못마땅한 표정을 지었다. 그렇잖아도 소피아, 그 애완견 같은 여자가 따라갔다는 사실에 짜증이 나는데, 껄끄러운 짐덩어리를 하나 더 데려가라고? 내가 왜?
“안… 될까요?”
“…따라와.”
“아… 감사합니다!”
…그래, 이왕 덕을 쌓기로 했으니까. 하려면 제대로 하는 거야.
벙글벙글 웃으며 기뻐하는 꼬맹이의 얼굴을 보니 기분이 이상해진다. 나쁜 건 아닌데… 뭔가 어색한 느낌이다. 빗대자면 모델 일을 하다가 맞지 않는 옷을 입었을 때의 그 느낌이다.
그리고… 로브자락을 조심히 움켜잡는 꼬맹이의 체온, 생각보다 따스하고 포근하다. 생각해 보니 이 꼬맹이는 아란이에게 언니가 되는 걸까? 음흉한 쪽으로 영향을 받지는 않아야 할 텐데.
하아. 내가 무슨 소릴 하고 있는 건지 모르겠다. 자꾸만 의미 없이 짜증이 나고, 화가 난다. 누가 됐든지 애처럼 투정을 부리고 싶다. 난 심보가 못된 여자라서 어쩔 수 없다.
갑자기 까닭모를 한숨이 나왔다. 요즈음… 뭔가 이상해. 평소의 내가 전혀 아니다.
빨리 크래들타운으로 가야할 것 같다. 뭐든지 다 받아주는 그 남자한테 가서, 뭐가 됐든 속을 풀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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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래들타운… 조금 그리운 이름이다. 돌이켜보면, 모든 게 그곳에서 시작되었지. 그때, 임유진의 뒤를 따라 산을 내려올 당시만 하더라도 내게 평범하게 아이를 낳아 기르는 미래가 있을 거라곤 생각도 하지 못했었다.
먼저 간 일행은 내게 따로 어디 가 있을 거라는 메시지를 남기지 않았다. 어차피 나는 아란이가 어디에 있든 위치를 알 수 있다. 구더기나 임유진도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을 테니, 알아서 찾아오란 의미겠지. 사실, 그래봐야 있을 곳은 뻔하다.
익숙한 도시 바깥의 돌담을 지나, 얕은 성벽이 보이는 외곽에 접어들자 회색 연기가 모락모락 피어나는 허름한 농장이 보였다. 대강 보아하니 빵을 굽는 모양이다. 좀 더 걸음을 재촉하니, 수수를 엮어 만든 담벼락 안에서 반갑게 손을 흔드는 얼굴들이 보인다.
“역시.”
“저긴…….”
“미리내 농장. 임유진이 아이리스에 들어오기 전까지 네 언니와 살던 곳이지.”
이곳에 오는 게 처음인 꼬맹이가 신기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인다.
임유진이 떠난 이후 따로 관리인을 두고 관리했던 농장은 여전히 옛 모습 그대로였다. 마당에는 커다란 탁자를 두고 벌써 그 위에 빵이며 밥이며 갖가지 음식들을 올려놨다. 질박하게 늘어선 농장의 모습이 옅은 노을이 지고 있는 풍경과 맞물려 제법 고즈넉한 운치가 있다.
“데모나! 일은 잘 끝났니? 어머, 소냐까지!”
“격조했습니다. 큰어머님.”
“응. 이 주 만이구나. 출발할 때 연락하라 그랬는데, 왜 하지 않았니? 데모나랑 같이 와서 그런가?”
“네?”
꼬맹이가 드물게 어리둥절한 얼굴이 됐다. 대충 사정을 알 만했다. 꼬맹이도 용무가 있어서 칼립스에 왔다고 했으니, 그 사이에 임유진이 딕툼으로 보낸 전갈이 엇갈린 거겠지.
“아… 전갈은 받지 못했습니다. 칼립스에서 오는 길이거든요. 아마… 엇갈린 것 같습니다. 혹시 어떤 내용을 전하셨는지 여쭤도 되겠습니까?”
“후훗. 별 내용은 아니었어. 모처럼 가족끼리 야유회를 나왔으니, 당연히 우리 소냐도 불러야하지 않겠니? 출발할 때 연락을 하라고 했던 건, 소냐는 크래들타운이 생소할 테니까 마중을 나가려고 했던 거고. 그래도 용케 데모나를 만났구나.”
저 꼬맹이. 딴에는 속 깊은 척 해도, 임유진의 말에 환한 표정을 숨기지 못하는 걸 보면 역시 아직 어린애다.
“네… 작은 어머니 덕분입니다.”
“데모나 덕분… 으응, 데모나. 잘했어. 다시 봐야겠는걸?”
꼬맹이의 말을 들은 임유진이 갑자기 묘한 눈웃음을 짓는다. 흥. 무슨 의미인지는 뻔하다. 갑자기 안 하던 짓을 하니, 신기한 거겠지. 나도 지금 내가 이해되지 않을 정도니까.
나는 쓸데없는 말로 시간을 허비하고 싶지 않아, 바로 화제를 돌렸다.
“아란이는 어디있어?”
“응. 슬슬 날이 추워져서. 송경이랑 안에 들어가 있어. 소피아가 보고 있을걸?”
“그 여자가?”
“잠깐만, 지금 들어가면…….”
마음이 급해졌다. 그 정치병 환자의 손에 내 딸을 맡기다니, 제정신인가 싶다. 나는 뒤에서 부르는 임유진의 목소리를 무시하며, 희미한 빛이 새어나오는 방문을 열어젖혔다.
“까르르르!”
문을 열자마자 보인 건, 가까운 곳에 앉은 소피아가 젖먹이 하나를 안아서 달래고 있는 모습. 포동포동한 뺨에 옅은 홍조를 띤 채 까르륵 웃고 있는 젖먹이는 내 딸 아란이가 아니라, 임유진의 아들 송경이다.
“왔어요? 그 문 좀 닫아요. 애들 찬바람 쐬면 안 좋다는 것도 모르나?”
“…….”
나는 조용히 문을 닫았다. 자기 아이도 아닌 주제에 유세를 떠는 강아지의 태도가 무척 아니꼬웠지만, 틀린 말은 아니다.
“미야아아…….”
아란이는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었다. 방 중앙, 바닥에 불룩하게 솟은 배 위에 거북이처럼 엎어져 있는 갓난아이가 보였으니까.
“니야아앙….”
날 발견했는지, 위아래로 기복을 보이는 배 위에 얌전히 올라타 있던 아란이가 살며시 고개를 들었다. 흑요석처럼 반짝이는 투명한 눈이 거울처럼 내 얼굴을 반사한다. 배를 듬뿍 채운 고양이이가 갸르릉거리듯, 만족스러운 소리를 낸 아란이는 이내 다시 초록색 동산 위에 뺨을 묻었다. 그 위에는 드르렁 코를 골고 있는 구더기의 넓적한 낯짝이 보인다.
조금 어이가 없어졌다. 기껏 야외에 나와서 한다는 일이 낮잠이라니. 아란이가 행복해 보이니 상관은 없었지만… 저렇게 세상 모르고 잠에 빠져 있는 구더기의 모습은 정말 오랜만에 보는 것 같다. 이래서 임유진이 들어가는 걸 막았나보다.
“…조용히. 주인님이 최근에 불면증에 시달렸던 것, 알고 있겠죠? 깨우면 안 돼요.”
“알고 있으니까 너나 조용히 해.”
“…그나저나 우리 아란이, 울지도 않고 참 착하네~. 아빠 배가 그렇게 좋아요? 큰엄마도 정말 좋아한단다. 우리 아란이가 성질머리 더러운 엄마랑은 달라서 참 다행이야. 그치, 송경아?”
“아우우….”
하. 졸렬하기는. 저따위 도발을 복수랍시고 떠들어댄다는 것 자체가 유치한 발상이다. 저런 저질과는 아예 말을 섞지 않는 게… 아니, 잠깐만.
“…큰엄마?”
“우후후후… 왜요? 제가 세 번째니 당연하잖아요? 데모나 씨는 네. 번. 째. 고요.”
“웃기지 마. 누구 마음대로?”
“그야 우리 아란이 마음대로지요. 아란아, 큰엄마 해보자. 큰. 엄. 마.”
“마아아…….”
“봐요. 들었죠? 아란이가 인정했어요. 제가 큰엄마래요.”
“멍청하기는. 저건 그냥 하품한 거야.”
“으… 어마아아…….”
…방금 아란이가 뭐라고 한 거야? 난 엉겁결에 강아지를 쳐다보았다. 우연찮게도 강아지도 나를 보고 있었다. 그렇다는 건 잘못 들은 게 아니란 거잖아.
“…들었어?”
“…들었어요?”
묘하게 말이 겹쳤다. 나는 치미는 짜증을 억누르며 다시 한 번 확인차 말했다.
“엄마라고 말했어.”
“진짜 큰엄마라고 말했어요.”
…이제는 옹알이 소리도 구분 못할 만큼 맛이 가 버린 걸까. 저 강아지는 답이 없다. 나는 강아지를 깨끗이 무시하기로 했다.
마침, 바깥도 시기적절하게 소란스러워졌다.
“엄마! 다녀왔어! 어…? 소냐잖아? 왜 이렇게 늦었어!”
“안녕하세요. 언니.”
“그래, 잘 사왔네. 이제 마무리 상차림만 하면 되겠다. 소피아, 잠깐 나와서 도와주지 않겠니?”
강아지의 표정이 눈에 띄게 일그러진다. 이 시점에서 나가는 게 왠지 패배처럼 느껴지는 모양이다. 흥. 끝까지 주제넘게 굴기는. 정말 어쩔 수 없는 족속이다.
“…상차림 끝나면 부르러 올 테니까 주인님 깨우지 말아요. 애들도 잘 보고요. 알았죠?”
“너만 곱게 나가주면 구더기가 깰 일도 없을 것 같은데?”
“누가 할 소리를….”
패배한 개가 구차한 변명을 남기며 사라졌다. 솔직히 통쾌하다. 꼬리 내린 강아지가 물러나는 뒷모습은 언제 봐도 즐거운 구경거리다.
오랜만에 맛보는 승리감에 취해 있는 그때, 나는 돌연 가슴 언저리를 더듬는 작은 손길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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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의 추천과 코멘은 작가에게 큰 힘이 됩니다.
연참 약속을 지키지 못했습니다 ㅠㅠ 죄송합니다.
주말 지나고 월요일은 보통 손님이 없는 경우가 많은지라 3연참 호언장담을 했었는데.. 오늘은 이상하게 가게가 바빴네요 ㅠㅠ 쓸 틈이 없었습니다..
다시 한 번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립니다.
내일은 제가 향방 작계를 갑니다. 훈련은 끝났지만 전반기 후반기 향작은 아직 남아 있네요.. 휴재는 아니고, 가급적 연참할 수 있도록 노력해 보겠습니다.
덧)) 번외편의 스토리라인은 상당히 가변적입니다. 내용을 아무렇게나 바꿔도 본편에는 영향을 주지 않으니까요. 독자님들의 댓글을 많이 참고하고 있습니다. 참고할 예정이기도 하고요. 혹시 바라시는 씬이 있다면 작가가 날름 주워담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미세먼지 조심하시고, 좋은 하루 되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