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unter Club RAW - chapter (5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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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0# 마녀의 외출(번외)
“빠우아…?”
앙실방실하게 웃음 짓는 작고 귀여운 얼굴이 보인다. 강아지가 내게 맡기고 간 송경이다. 고사리 같은 손을 자꾸 허우적대며 가슴팍을 더듬는 게 젖을 찾는 것 같다. 다른 젖먹이들 같으면 울거나 보채면서 젖을 달라고 할 텐데, 아란이나 송경이는 지나치게 얌전해서 걱정이 될 정도다.
그나저나 젖이라. 임유진을 불러야겠는데.
“임유…….”
“응, 그건 거기다 두면 돼.”
“가희야, 헛간에 가서 장작 좀 가져다줄래?”
나는 임유진을 부르려다 생각을 바꿨다. 밖에서 부산스러운 소리가 들려온 탓이다. 아까도 거의 혼자서 음식을 만드는 것 같던데… 괜히 번거롭게 오라고 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나는 무심코 송경이를 쳐다봤다. 이슬을 떼어다 붙인 듯 맑고 투명한 눈망울이 또렷하게 나를 응시하고 있다. 척 봐도 제 어미를 닮아서 똘똘하게 생겼다. 구더기를 닮지 않은 게 천만다행이야. 아마 특별한 이변이 없는 한, 구더기의 후계자는 이 녀석이 되겠지…….
“…흥.”
나도 모르게 못마땅한 콧소리가 튀어 나왔다. 아란이가 사내아이로 태어났더라면… 이미 지난 일에 미련 두지는 말자. 어차피 장남은 이 녀석이다. 대신, 내 딸은 누구나 우러러 볼 수밖에 없는 뛰어난 마녀로 키워내면 된다.
“흥아, 흥아….”
이런, 너무 시간을 끌었나보다. 인내심이 한계에 다다랐는지, 녀석이 코를 씨근덕거리며 울음을 터뜨릴 기미를 보인다.
“조용히 해. 젖 줄 테니까.”
“우응….”
젖을 물려주니 금방 조용해진다. 작은 입술을 열심히 꼬무락거리는 걸 보면 꽤나 배가 고팠나보다. 이 녀석, 줏대 없는 건 제 아비를 닮았어. 제 엄마가 아니라도 별 상관은 없는 걸까. 핏덩이 주제에 빠는 힘이 너무 강해서 젖꼭지가 다 아플 지경이다.
그러고 보면 송경이에게 젖을 물리는 건 이번이 처음이다. 제 동생에게 줄 젖을 힘차게 빨아 젖히는 걸 보니 퍽 얄밉다. 게다가 송경이 이 녀석… 보기와는 다르게 대식가다. 한번 물면 좀처럼 놓아주질 않아서 임유진이 곤란해 하는 걸 몇 번이나 봐왔다.
이러다 아란이에게 줄 젖이 하나도 남지 않는 게 아닐까. 괜한 불안이 치밀어서 나도 모르게 잔소리를 하고 말았다.
“이 돼지 같으니. 적당히 먹어. 난 네 엄마랑 달리 젖소가 아니니까.”
“…푸흐흐!”
…이 음흉한 웃음소리는…….
나는 가늘게 뜬 눈을 앞으로 향했다. 그러자 곤히 잠든 아란이를 조심스럽게 옆으로 내려놓는 구더기의 모습이 보인다. 잘도 저렇게 들썩이는 배 위에서 잠이 들었네.
“깬 거야?”
“자지도 않았다. 갓난애가 배 위에 있는데 불안해서 어떻게 자?”
하긴, 듣고 보니 그렇다. 잠결에 몸이라도 옆으로 돌려 누우면 정말 큰일이 날 수도 있다. 멍청한 강아지 년, 무슨 생각으로 아란이를 저 위험지대에 올려둔 거야? 몰상식하긴!
그건 그렇고, 빤히 날 쳐다보는 구더기의 시선이 자꾸 신경 쓰인다. 저건 꼭… 임유진이 아이들을 볼 때의 눈빛과 닮았다.
“…왜 웃어?”
“으흐흐흐… 귀여워서. 다시 한 번 말해봐. 방금 뭐라고 했지?”
“닥……. 수유중인 것 안 보여? 눈 돌려.”
“부부 사이인데 뭘 부끄러워하고 그러냐? 그나저나 송경이 이놈, 아빠 몫을 잘도 먹는구나. 그래, 많이 먹고 쑥쑥 커라.”
기막힌 소리를 잘도 지껄인다. 뺏어 먹을 게 없어서 애들 걸 뺏어먹고… 아무리 생각해도 저 인간은 아버지 실격이다.
“네 몫은 젖소한테 가서 찾으시지.”
“너무 그러지 마라. 안 그래도 저번에 유진이한테 한 소리 들어서 섭섭한데, 너까지 그러기냐? 그런데 참, 은근히 비리면서도 맛있단 말이야. 중독성이 있어. 애들이 환장하는 이유를 알겠군. 게다가 골라먹는 재미도 있고.”
“난 절대 네게 줄 생각 없으니까 헛된 생각은 하지 않는 게 좋을 거야.”
괜히 하는 소리가 아니다. 지금 송경이가 빠는 건 구더기와 비교하면 정말 어린애 장난인 수준이다. 이전에 하도 간청하며 매달리기에 어쩔 수 없이 물려준 적이 있었는데, 젖꼭지가 고무처럼 늘어나는 줄 알았다. 따귀를 올려붙이며 억지로 떼어냈기에 망정이지, 그러지 않았다면 젖 대신에 피가 나왔을 거다.
오죽했으면 그 바보처럼 온화한 임유진이 잔소리를 했을까.
구더기. 내 남편…… 이지만, 저건 정말이지, 식탐과 성욕이 낳은 괴물이다.
“송경아, 작은 엄마 젖은 어떠냐? 엄마 거랑은 맛이 좀 다르지? 신선할 거다.”
“애한테 못하는 소리가 없네.”
“허허, 살다 보니 말버릇으로 데모나에게 한 소리 듣는 날이 오는군.”
낄낄거리며 웃는 구더기의 목소리는 작았다. 옆에서 자고 있는 아란이를 의식하고 있는 거겠지.
새근새근 잠들어 있는 아란이를 보다보니, 그 옆에 불룩하게 튀어나와 있는 구더기의 뱃살이 눈에 띈다. 나와 얘기하느라 옆으로 돌아누워 있으니 평소보다 훨씬 더 크게 보이는 느낌이다.
저 인간, 이제 몸 관리는 뒷전인 걸까. 정신 바짝 차리도록 한마디 해줘야겠다.
“…쿠션이 대단하네. 아란이가 좋아하는 이유를 알겠어.”
“응? 그렇지? 흐흐흣! 요놈이 내가 잠깐만 정신을 팔아도 기를 쓰고 기어오르려고 하더라고. 여기가 좋나봐.”
신경 좀 쓰라고 비꼰건데, 오히려 기를 세워주고 말았다. 멍청한 인간한테는 돌려 말하기가 먹히지 않는다는 걸 간과한 내 실수다.
“요새 트레이닝은 아예 안하는 거야? 예전에도 봐 줄 만한 수준은 아니었지만, 지금은 아예 멧돼지가 친구하자고 할 수준이네.”
“음, 네 말을 들으니 근력 트레이닝을 안 한지도 꽤 된 것 같다. 요새는 이미지 트레이닝에 치중하는 편이라서. 보기엔 이래도 전투 모드로 들어가면 찰진 근육남으로 변신할 수 있으니까 걱정 마라.”
찰진 근육남? 저건 또 무슨 자신감인지 모르겠다. 하긴… 충왕각인은 단련에 그리 구애받는 주술이 아니니까 저런 말을 할 수 있는 거겠지. 게다가 애들이 좋아한다는 그럴듯한 핑계거리도 있으니. 게을러터진 구더기에게 이만한 명분도 없을 거다.
…라고 말하긴 했지만, 실제 구더기의 몸매가 그리 심각한 수준으로 퍼진 것은 아니다. 예년에 비해 배는 좀 나왔어도 두 갈래로 쪼개진 가슴팍의 대흉근을 비롯해서, 어깨와 팔뚝으로 이어지는 이두와 삼두, 허벅지와 장딴지의 울룩불룩함은 여전하다.
배가 살짝 나온 건 자기 말대로 최근 근력 단련보다 이미지 트레이닝에 치중하고 있기 때문이다. ‘심령차력술’을 보다 섬세하게 사용하기 위해서는 필수적인 훈련이다.
내가 한동안 말없이 가만히 있자, 옆으로 누워 있는 구더기가 쓱쓱 턱을 긁었다. 뭔가 어색하거나 계면쩍을 때 나오는 저 인간의 버릇이다. 몸매가지고 잔소리를 좀 했더니, 내가 화라도 난 줄 알았나보다.
“크흠! 클라리스는 좀 어떠냐?”
아니나 다를까, 슬그머니 말머리를 돌리려는 시도를 한다. 한두 번 겪는 수법이 아니지만, 이번에도 그냥 당해주도록 할까.
“…여전해.”
“흠. 생각보다 적응 기간이 긴데.”
“시간이 해결해 줄 문제야. 지금은 본 드래곤에 집중하는 게 효율적이라고 봐.”
“그거야 그렇지.”
이전의 그림리퍼 전은 내 손을 거쳐 새로이 유령여왕(Spectral queen)으로 각성한 클라리스의 성능을 시험할 수 있는 좋은 실험무대였다. 그래서 나는 임유진과 달리 단독으로 움직이면서 클라리스를 소환할 준비를 했다.
스펙터의 개량형인 클라리스는 그림리퍼의 생기흡취에 영향을 받지 않으면서, 생전의 무력을 어느 정도 엇비슷하게 갖추고 있어 놈을 상대하는데 더없이 적합한 병기였다… 라고 생각했지만, 막상 현장에 투입하니 생각지도 못한 문제가 생겼다.
전장에서 소환된 클라리스의 자아가 갑자기 격한 감정을 발산하며 흥분하기 시작한 거다. 가만히 내버려두면 가까스로 안정시킨 자아가 폭주할 염려가 있었던 터라, 난 어쩔 수 없이 클라리스를 역소환할 수밖에 없었다.
그 원인은 전장에 널려있던 시체들… 정확히 말하면 클라리스의 지인이었던 클럽 포레스티아 소속 헌터들의 시체였다. 옛 동료들이 처참한 시체로 나뒹구는 광경이 과거의 기억을 되살리면서 충돌을 일으킨 게 폭주의 원인이었다.
아직 마땅한 대처는 하지 못했다. 십존급에 이르는 강자의 시체로 ‘유령여왕’이라는 개체를 만들어낸 것은 나로서도 처음이었고, 평소 동료들에게 다정다감했다는 클라리스의 성격도 한 몫 했겠지. 지금은 일단 경과를 두고 보는 게 최선이었다.
“참, 레이나가 얼마 전에 듀라한 소환에 성공했다며? 열일곱에 그 정도 성과라니. 역시 재능이 있는 녀석이야.”
레이나. 나만 보면 쫄래쫄래 쫓아다니면서 ‘사부님’이라는 같잖은 소리를 입에 달고 다니는 녀석이다. 딕툼 외곽의 고아원 출신으로, 열세 살 때부터 아이리스에 들어와 그 수혜를 톡톡히 받아먹은 밥벌레이기도 하다.
얼마 전에는 본 드래곤과 유령여왕 때문에 내 통제를 벗어난 언데드 군단의 소유권을 넘겨줬다. 말하자면 쓰레기통에 쓰레기를 버린 건데, 그게 녀석의 눈에는 뭔가 대단한 걸 물려주기라도 한 것처럼 비쳤나보다.
외부에서도 녀석을 내 제자쯤으로 여기는 모양이고… 붙임성이 좋은 건 나쁘지 않지만, 이래저래 귀찮은 짐덩이다.
따지고 보면 녀석의 스승은 내가 아니라 베로니카 할망구인데 말이지.
“…겨우 듀라한가지고 호들갑 떨기는. 할망구의 지도가 있었는데도 겨우 그 정도야. 나쁜 재능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특출나지도 않아.”
“그거야 네 관점으로 보니까 그렇지. 베로니카 할멈은 황천 일맥을 제대로 이을 인재가 나타났다면서 좋아하던데.”
“끼리끼리 노는 거야. 할망구 수준엔 그 정도가 어울려.”
“까칠하기는… 하긴, 툴툴대면서 은근히 다 챙겨주는 게 네 매력이지. 레이나도 그래서 널 잘 따르는 거고.”
“헛소리. 내가 언제…….”
“송경이 잔다.”
불리할 것 같으니까 갑자기 아기를 들먹이다니. 치사하고 비열한 인간이다. 아래로 시선을 내리니 어느새 젖에서 입을 뗀 송경이가 나른하게 퍼진 것이 보였다. 칠칠치 못하게 입가에 허연 자국을 묻힌 모습이 젖먹이답다는 생각이 든다.
조심스럽게 송경이를 먼저 잠들어 있는 아란이 옆에 눕혔다. 아란이도 그렇고, 둘 다 작은 손가락을 꾹 움켜쥐고 있는 게 그 안에 소중한 보물을 숨겨놓기라도 한 것 같다.
사이좋게 나란히 잠든 두 아기. 젖꼭지 끝이 조금 얼얼했지만, 이런 걸 보면 만족스럽기도 하고… 뭐라고 해야 할까. 여전히 적응이 되지 않는 생소한 기분이다. 이런 게 임유진이 말했던 모성애란 걸지도.
“마녀가 엄마가 다 됐구만. 그렇게 웃을 줄도 알고.”
“뭐?”
“가슴을 훤히 내놓고도 부끄러워하지 않는 걸 보면 엄마가 다 됐다는 거지.”
아… 아이를 챙기다보니 속옷을 다시 입는 걸 잊었다. 음흉한 구더기 같으니라고.
돌아 앉아 속옷을 다시 걸치려는데, 뒤에서 슬그머니 허리를 감싸 안는 손길이 느껴진다. 이 거칠거칠한 피부의 질감, 징그러운 손가락 끝의 움직임… 말할 것도 없이 구더기다.
“뭘 그렇게 서둘러? 아직 내 차례가 남았는데.”
“…안 준다고 했잖아.”
“어허, 그러지 말고. 이쪽은 아직도 단단한 것 같은데. 젖이 너무 차면 몸에 안 좋아. 뺄 때 한 번에 빼줘야지.”
언제나처럼 내 말은 들은 척도 하지 않는다. 구더기의 손은 벌써 앞쪽으로 스멀스멀 기어 올라와, 가슴 밑을 이리저리 더듬고 있다. 송경이에게 먹이지 않은 반대쪽 가슴이다.
“…오랜만에 네 무릎베개도 하고 싶고.”
“다시 말하지만 ‘임유진표 가슴마사지’의 재현은 죽어도 싫어.”
“커흠… 그건 뭐… 사이즈가 다르니 어쩔 수 없지.”
갑자기 화가 치민다. 그건 사이즈의 문제가 아냐. 자존심 문제지. 이 망할 구더기.
“윽! 갑자기 왜 꼬집고 그래?”
“저리 가라고 했잖아?”
“데모나! 상 다 차렸어. 슬슬 나오지 않을래?”
딱 맞춰서 임유진이 부르는 소리가 들린다. 그러자 머쓱한 표정이 된 구더기가 더는 수작을 부리지 않고 몸을 일으켰다. 그러면서도 미련이 가시지 않는지 내 엉덩이를 톡톡 두드린다. …어쩐지 조금 아쉬운 느낌이다.
“벌써 밥 시간이 다 되었군. 마침 아이들도 자고 하니… 나머지는 오늘 밤에 이어서 할까?”
“흥. 좋을 대로. 상상은 자유니까.”
나는 구더기보다 먼저 일어났다. 살짝 얼굴이 붉어진 건, 방 안의 공기가 덥기 때문이다. 이러면 아이들에게도 좋지 않을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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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의 추천과 코멘은 작가에게 큰 힘이 됩니다.
어제 온종일 향방작계.. 그리고 출근해서 일 마치고 바로 뻗었습니다. 도저히 글이고 뭐고 쓸 체력이 안되더군요.. 가뜩이나 낮에 날이 더워서 더 피곤했던 것 같습니다.
데모나의 시점은 이걸로 종료합니다. 다음 시점은 누구인지는 비밀. 그리고 저 저녁밤 이벤트는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