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unter Club RAW - chapter (5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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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4# 새내기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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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왕의 안식처 탐사를 무사히 끝낸 당일 저녁, 신소율은 박승찬과 상의하여 레귤러에서 그리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야영을 하기로 했다. 애초에 ‘탐사 체험’이 아닌 진짜 탐사를 목표로 나온 원행이었으니, 될 수 있으면 야영이나 노숙을 경험하는 게 본래 취지에도 부합한다는 판단이었다.
“다들 수고했어. 오늘은 맘껏 마셔도 좋아.”
“정말요? 그럼 술… 마셔도 돼요?”
“뭔 소리야? 당연히 주스지. 술은 절대 안 돼.”
들뜬 표정을 지었던 임가희의 얼굴이 금방 시무룩해진다. 신소율은 기운 잃은 토끼처럼 고개를 늘어뜨린 임가희를 보며 늙은이처럼 혀를 찼다.
“쯔쯔쯔! 쥐방울만 한 게 어디 벌써부터 술을 입에 대려고 해?”
축 처져 있던 임가희는 쥐방울이란 소리에 금세 또 발끈해서는 목소리를 높였다.
“언니도 참! 이렇게 큰 쥐방울 봤어요? 그리고 이제 나도 열여덟이란 말이에요! 성인이 된지 삼 년이나 지났는데…….”
임가희의 항변이 영 틀린 것은 아니다. 통상적으로 스퀘어의 젊은이들은 열다섯이 되면 성년이 된 것으로 친다. 하프 헌터들의 경우, 나이 열다섯에 저널이 생성되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상대는 아직 지구에서의 고루한 사고방식을 버리지 못한 신소율이었다. 어느덧 스퀘어에서 십 년 가량의 세월을 보낸 그녀였지만, 젊은 십대들이 눈앞에서 음주가무를 벌이는 걸 가만히 두고 보기엔 아직 고지식한 면이 남아 있었다.
“그래도 안 되는 건 안 돼. 적어도 내가 보는 앞에서는!”
“이익! 너무해!”
“억울하면 나중에 지현 언니 방으로 찾아가든가.”
불퉁하게 입술을 내밀었던 임가희는 신소율의 의미심장한 말에 헉 하고 숨을 들이켰다.
“…그, 그건 어떻게 알았어요?”
“밀주(密酒) 냄새가 복도까지 진동을 하는데, 내가 모를 줄 알았어? 하여간 끼리끼리 논다니까. 이걸 뭐라고 하더라… 음, 부창부수(夫唱婦隨)? 근묵자흑(近墨者黑)?”
“둘 다 틀린 말은 아니로군.”
“그쵸? 승찬 오빠도 그렇게 생각하죠?”
몇 년 전, 헨더슨과 화촉을 밝힌 박지현은 아이리스 내에서도 소문난 주당이 되어 있었다. 하기야 처녀 시절부터 곧잘 헨더슨, 이두식과 어울리며 대작을 했던 그녀였으니 근묵자흑이란 말은 조금 어폐가 있는지도 모르겠다.
한편, 신소율의 폭로에 의해 임가희의 음주 사실을 알게 된 젊은이들은 그다지 놀랍지도 않다는 얼굴들이었다.
“언니가 그럼 그렇지.”
“난 술은 너무 써서 못 마시겠던데… 그걸 무슨 맛으로 먹는 거야?”
“데미안, 너는 몰라도 된다. 맞지 않으면 시작도 안 하는 편이 좋아.”
차례대로 레이나, 데미안, 한승우의 말이었다.
또래들의 수군거림을 들었는지, 임가희의 하얀 목덜미에 선홍색 기운이 번지는 게 보였다. 얼굴이 온통 발그스름하게 달아오른 임가희는 그새 절절한 표정이 되어 주뼛주뼛 말을 꺼냈다.
“어, 엄마랑 아빠도 알아요?”
“아마도? 유진 언니나 아저씨 감각은 나보다 훨씬 뛰어나니까. 모르는 게 더 이상하지 않을까? 아마 언제 삼진아웃되나 벼르고 있을 걸? 참고로 너 지금, 투아웃이야.”
“…….”
따끔한 충고를 들은 임가희의 낯빛이 하얗게 탈색되었다. 망연자실한 안색만 봐도 ‘으악! 난 죽었다!’는 속마음이 여실히 들여다보인다.
“언니… 나 어떡해요?”
“어떡하기는. 복귀하는 대로 자진납세해야지. 그러면 엉덩이에 불나는 사태만은 막을 수 있을지도 모르겠네.”
“우으웃……!”
신소율은 병 걸린 것처럼 끙끙 앓는 임가희를 보며 피식 입매를 터뜨렸다. 사고치고 전전긍긍하는 모습이 꼭 예전의 자신을 생각나게 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그 정숙한 임유진에게서 어떻게 저런 천방지축이 나왔을까 의아해하는 모양이지만, 신소율은 알고 있었다. 그 임유진도 저 나이에는 한창 질풍노도의 시기를 보냈다는 것을. 아마 네뷸라에서 명성을 날리던 임유진이 더러운 수작에 휘말리지 않았더라면 지금 임가희의 모습이 그대로 남아 있지 않았을까?
‘…저것만 봐도 그 엄마에 그 딸이지. 그 유전이 어디 가겠어?’
문득, 죽상이 된 임가희의 봉긋한 가슴팍에 시선이 미친 신소율은 갑자기 뜻 모를 짜증이 솟구치는 것을 느꼈다. 유전자도 빈익빈 부익부라니. 이러나저러나, 세상은 참 불공평하다.
“…그리고 가희 너, 언니라고 부르지 말랬지. 다른 언니들은 다 작은 엄마라고 부르면서 왜 나한테만 꼬박꼬박 언니언니 하는 거야?”
“갑자기 왜 그래요? 친근하고 좋잖아요. 작은 엄마들 중에서 소율 언니가 제일 좋은데.”
“으흠흠! 그, 그래도 안 되는 건 안 되는 거야. 다음부터는 작은 엄마라고 불러.”
“알았어요. 언니. 히힛!”
방금 전까지만 해도 울상을 짓던 표정은 어디 가고, 장난스럽게 혀를 내밀며 답하는 임가희다. 천성이 쾌활해서 그런지, 그녀는 좀처럼 주눅 드는 법이 없었다.
어느새 저쪽으로 건너가 또래들과 재잘대는 임가희에게 얄미운 눈초리를 던진 신소율은 옆에서 느껴지는 자그마한 인기척에 고개를 돌렸다.
“소냐?”
차분하게 가라앉은 벌꿀빛 머리칼의 소녀는, 잔뜩 들떠 있는 주변의 분위기와는 달리 찬물처럼 가라앉아 있었다.
신소율을 빤히 응시하는 적색의 눈동자는 가늘고 길게 뻗은 섬세한 팔다리와 맞물려 귀금속으로 빚어낸 인형을 보는 듯하다.
임가희가 죽 끓는 듯한 변덕쟁이라면, 성년이 된 소냐는 시종일관 잔잔한 빛을 잃지 않는 호수와도 같았다. 잡티 하나 찾아볼 수 없는 깨끗한 피부에, 항상 고집스럽게 다물려 있는 도톰한 입술은 설익은 앳된 외모와 조화를 이루어 묘한 매력을 발산한다.
아직 만개하지 않은 꽃이건만, 그래서 더욱 청초한 아름다움을 뽐낸다. 꽃에 빗대자면 설중매(雪中梅)라고 할 수 있을까.
‘예쁘긴 정말 예쁜데… 이쪽으로는 엄마를 전혀 닮지 않았네.’
새삼 물이 오르기 시작한 소냐의 미모에 감탄한 신소율의 눈빛이 그 어떤 특정 부위에 잠깐 머물렀다. 5년의 세월…. 작고 여리기만 했던 소녀가 성숙해지는 데에는 충분한 시간이었지만, 저 평야지대 만큼은 시간의 흐름을 빗겨나간 듯하다.
‘역시 신은 공평해.’
“…칼립스에 연락을 넣으려고 합니다. 이모가 걱정하실 것 같아서요.”
“아, 그랬지. 소피아 언니가 안달났겠네. 응, 이쪽으로 와. 같이 보내자.”
소냐는 갑자기 손을 맞잡으며 지나치게 살갑게 구는 신소율의 태도에 잠시 어리둥절한 얼굴이 되었다가, 이내 고개를 끄덕이며 그녀의 뒤를 따랐다.
“…음?”
묵묵히 뒤에서 다른 이들을 바라보고 있던 박승찬의 눈두덩이 꿈틀거렸다. 갈고 닦은 예리한 감지망에 무언가 석연찮은 낌새가 감지된 것이다.
‘짐승은 아니다. 빠르게 이 근처로 다가오고 있어.’
역동적으로 움직이던 눈매가 더욱 가늘어졌다. 즐거이 웃고 떠드는 젊은이들, 소냐와 함께 칼립스에 연락을 하고 있는 신소율… 아직 이상을 눈치챈 사람은 그 외엔 없는 것 같았다.
짧은 시간 동안 온갖 가정이 떠올랐다. 이 탐사대의 일원들은 차후 아이리스의 미래를 책임질 기대주들이다. 만약 아이리스를 적대하는 자들이 있다고 한다면, 이 인원들이 밖으로 나돌고 있는 지금이야 말로 절호의 기회라 할 만했다.
‘그게 가능한가? 이번 원행은 내부에서도 아는 사람이 그리 많지 않을 텐데.’
고민의 시간은 그리 길지 않았다. 정말로 습격자들이 나타났다고 한다면 한가롭게 머리를 싸매고 있을 시간은 없었다.
그는 팔짱을 풀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신소율.”
“에?”
“…주위를 살펴라.”
박승찬의 딱딱하게 굳은 분위기는 고스란히 신소율에게 전달되었다. 산전수전 다 겪은 베테랑답게 그 태도의 의미를 단번에 파악한 신소율은 덩달아 미간을 좁히며 몸을 일으켰다.
이윽고 박승찬이 감지한 것과 동일한 기척을 잡아낸 신소율은 아직도 사태를 파악하지 못한 젊은이들에게 경고성을 날렸다.
“어이, 병아리들. 전투 대기해.”
“소율 언니, 갑자기 무슨…….”
“입 다물고, 일어나서 태세 갖춰. 뭔가 온다.”
“…….”
비로소 장난이 아니라는 것을 인지한 병아리들의 얼굴에서 웃음기가 싹 사라졌다. 임가희는 서둘러 샤프슈터를 꺼내들었고, 레이나와 데미안은 중얼중얼 입술을 움직이며 주문을 주문했다.
촤르륵!
사슬을 소환한 한승우는 수풀이 우거진 왼편 방향을 똑바로 응시하는 신소율의 옆에 다가가 섰다.
“…거리는 얼마쯤 됩니까?”
“일 킬로미터 정도? 아니, 지금은 팔백. 계속 가까워지고 있어.”
“…그렇군요.”
일 킬로미터가 넘는 범위까지 감지망이 미친다니. 자신은 감히 넘보지도 못할 영역이다. 가장 먼저 낌새를 알아차린 박승찬도 그렇고, 레그나토르의 간판 전력에 이름을 올린 자들은 하나 같이 괴물 아닌 자가 없었다.
다시 한 번 그녀와의 아득한 격차를 실감한 한승우는 굳게 입을 다물었다. 넘어설 산을 원한다면 레그나토르로 가라는 패터슨의 장담이 더욱 절실히 마음에 와 닿았다.
잠시 후, 멀리서부터 아련히 물결치는 폭음이 들려왔다. 무언가가 좌충우돌 펑펑 터지면서 빠르게 가까워지는 듯한 소리였다.
쿠우웅…! 쿠궁…!
“오백 미터.”1
콰앙! 쾅!
“삼백 미터.”
꽝!
“…백 미터!”
고양이처럼 웅크리고 있던 신소율의 동체가 벼락처럼 튀어 오르는 것이 신호였다. 진녹빛 덤불 속에서 검은 그림자가 솟구친 순간, 미리 대기하고 있던 임가희와 한승우가 곧바로 반응했다.
“이얍!”
“어딜!”
시위를 떠난 화살이 섬전과도 같이 번쩍이면서, 삽시간에 뽑혀 나온 사슬이 허공을 어지럽게 수놓았다.
“잠깐! 멈춰!”
사슬보다 앞서 날아간 임가희의 화살이 그림자의 허벅지를 관통하기 직전, 신소율의 단검에서 발출된 먹구름이 그림자의 주변을 감싸며 화살과 사슬을 튕겨냈다. 맥없이 무력화된 공격에 깜짝 놀란 두 사람은 크게 눈을 치뜨며 신소율을 바라봤다.
“언니!”
“이 사람, 중상이야. 일단 대충 구속만 해 둬. 진짜는 이 다음이니까.”
“에에? 진짜라니…? …헉!”
어둠의 기류로 뒤덮인 그림자의 정체는 전신이 피투성이인 중년 남자였다. 금방이라도 숨이 넘어갈 듯 헐떡이고 있는 그는 한눈에도 성한 곳이 없을 만큼 상처 투성이였다.
“데미안! 이 사람 좀 봐! 빨리!”
“아, 알았어!”
“…….”
헐레벌떡 뛰어온 데미안이 남자의 상세를 살피는 동안, 근처에 있는 소냐의 얼굴에 미세한 변화가 일었다. 힘겹게 숨을 내쉬는 저 얼굴, 그녀가 아는 사람이었던 탓이다.
‘저 사람이 어째서…?’
등줄기 사이로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잘못하면, 그녀가 오랫동안 간직해 왔던 비밀이 전혀 생각도 못한 곳에서 탄로날 수도 있었다.
‘어떻게… 하지?’
소냐가 데미안의 치료를 받고 있는 사내를 보며 복잡한 갈등에 빠진 사이, 정체불명의 사내를 바짝 뒤쫓는 다수의 기척을 감지한 신소율은 성난 암사자처럼 덤불 속으로 몸을 날렸다.
“승찬 오빠! 애들 좀 봐줘요!”
“조심해라. 저놈들… 보통 놈들이 아냐.”
“알고 있다고요!”
상큼하게 소리친 신소율의 몸이 그대로 어둠 속에 녹아들었다. 저들 간에 어떤 사정이 있는지는 모른다. 괜한 일에 끼어든 것일지도 몰랐다. 그러나 신소율과 박승찬은 우선 추격자들을 격퇴하기로 암묵적인 합의를 보았다.
그 이유는 간단했다. 피에 절을 대로 절어 역겹기까지 한 이 살의(殺意)… 사내의 뒤를 따라온 추격자들은 철저히 훈련된 살인기계들이었다. 그런 자들이 무고한 목격자들을 살려 둘 리 없었다.
“…조력자가 있었군. 모두 죽여라!”
아니나 다를까, 나쁜 예상은 결코 빗나가는 법이 없었다. 나무 사이를 가르며 쏜살처럼 달려오는 일곱 명, 그 중에서 우두머리로 짐작되는 사내의 지시를 들은 신소율은 파르스름한 예기를 발하는 단검을 들어 올리며 씩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알아서 죽일 명분을 만들어주니 반갑지 않을 수가 있나.
“…그렇잖아도 몸 풀 일이 없어서 심심했는데. 마침 잘 됐어.”
장난기 가득한 목소리에 어린 살기를 느낀 것일까. 주변의 수풀이 사르륵거리는 소리를 내며 몸을 떨었다.
지금은 달빛 한 점 없는 칠흑의 밤. 사방에 내려앉은 어둠은 그녀의 친구.
밤의 악마가 진득한 핏물을 들이키기엔 더할 나위 없이 최고의 무대였다.
============================ 작품 후기 ============================
여러분의 추천과 코멘은 작가에게 큰 힘이 됩니다!
황금 연휴 잘 보내고 계신지요! 저는 내일 모처럼 쉬면서 남이섬에 다녀올 예정입니다. 사람이 많지 않았으면 좋겠네요!
그리고.. 흠흠! 질문이 하나 있습니다! 순수한 호기심에 비롯된 질문이니, 절대 지레짐작은 말아주십사 부탁드립니다!
그 질문이 뭐냐하면.. 소설도 아청법이 저촉되는가 하는가 하는.. 험험! 질문입니다. 저번에도 비슷한 질문을 드렸던 것 같은데요.. 영 불안하네요.
일단 작품 설정 상으로는 열다섯 이상이면 성인이라는 설정인데 말이죠. 반대로 만약에 천년 로리 브리트라의 xx가 나오면 그건 위법인 것인가..? 지금까진 별 생각이 없었는데 슬슬 때가 다가오니 머리가 복잡해집니다.
혹시 아시는분 계신다면 코멘이나 쪽지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스토리를 뒤집어야 할 수도 있는 문제라서요.
언제나 감사합니다! 좋은 밤 되세요!